1.기술개발과 그효과1) 기술개발이 왜 중요한가사람이 하는 일을 로봇이 履行해준다. 生産工程은 전산시스템으로 自動制御되어 인간노동의 숙련이 예전처럼 필요하지는 않게 되었다. 資本도 마찬가지다. 거액의 자본으로 구입하는 집채만한 크기의 기계사 하는 일을 이제는 손가락만한 電子裝置가 履行해버린다쿠츠네cm는 경제발전이란 이노베이션에서 오는 것인데 이노베이션을 주도 하는것은 科學技術의 발전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역사발전의 주역은 과학기술의 벌전이며 경제 뿐아니라 정치발전이나 사회발전까지도 궁극적으로 과학기술에 의해서 그 변화의 폭이 결정된다는 것이다.2)技術發展의 形態기술발전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이 말은 즉 똑같은 양의 생산요소(예컨대 노동과 자본)을 가지로 보다 많은 양의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기술발전이라 전과 같은 똑같은 양의 생산을 위해서 전보다 적은 양의 생산요소가 투입된다는 뜻을 말한다.그런데 기술이 발전할 경우 생산요소의 사용비율 즉 資本 勞動 比率(Capital Labor Ratio: K/L)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서 資本集的 技術 勞動集的 技術 中立的 技術등으로 나눌 수 있다 자본집약적 기술은 상대적으로 자본을 더 사용하게 되므로써 K/L비율이 올라 가는 경우이고 노동집약적 기술은 그와 반대되는 경우이며 중립적 기술은 K/L비율이 변동하지 않는 경우이다그러면 어떤 경우가 자본집약적 기술이고 어떤 경우가 노동집약적 기술인지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농사를 짓는 데 기계를 더 사용한다든가, 호미로 김을 매는 대신 농약으로 풀을 없애는 경우는 모도 자본집약적 기술이면 그 반대의 경우라면 노동 집약적 기술이라 할 수있다.경제개발에 어떤 형태의 기술이 더 효과적이냐 하는 장단점에 대해서는 노동력이 부족한 선진국은 자본집약적 기술을 개발하고 자본이 부족한 후진국은 노동 집약적 기술은 개발하는 것이 순리라 하겠는데 현실은 보면 선진국은 자본집약적 기술은 개발하고 있는데 대하여 후진국은 노동 집약적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본집약적 기술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후진국에서 노동집약적 기술이 어려운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첫째로 , 후진국이 쓰는 기술은 대부분이 그들 스스로 발명한 것이 아니라 선진국이 발명한 기술을 그대로 모방하는데 불과하다. 그런데 선진국에서는 노동절약적 기술을 개발하게되므로 이것을 모방해서 쓰는 후진국의 기술도 노동절약적 기술을 개발하게 되므로 이것을 모방해서 쓰는 후진국의기술도 노동집약적이 아니라 노동절약적이 되는 경향이 이싸.둘째로, 로센버그에 의하면 가장 대표적인 자본절약적 기술이란 資本財를 더 값싸게 공급하도록 하는 것인데 후진국에서는 資本財의 生産單價가 더 비싸게 들기 때문에 결국 기술이 자본절약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노동절약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3) 技術의 發明과 模倣기술발전은 발명으로부터 시작되고 모방에 의하여 전파된다. 기술혁신에 있어서 발명을 第一波 모방과정을 第二波라고 말하기도 하며 기술혁신이라고 말할 때에는 이들 두 가지를 다 포함 하는 것이다.技術開發을 발명과 모방의 관계에서 보면 第二線技術 第二線技術 第三線技術등으로 나눌수 잇다. 제일선기술은 발명자가 독점하는 단계의 기술로서 아직 모방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이다. 제이선기술은 모방이 한창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도 다른 기술에 비하여 비교우위를 가지며 더 발전시키고 개발할 여지가 많은 단계의 기술이다. 제삼선기술 은 모방이세계적으로 일반화되고 그 기술은 표준화되어 더 개발할 여지가 거의 없는 것이다.第一線技術은 대개 선진국이 독점하고 있으며 후진국의경우에는 개발초기에는 第三線技術그리고 개발이 中進國水準에오면 第二線技術을 도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그러면 발명된 기술을 다른 기업들이 모방하는 데에는 보통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가. 조사에 의하면 새 기술이 나타나서 이 기술을 다른 기업의 절반이 모방을 끝내는 데 드는 소요시간은 조사결과 평균 8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 所要時間은 여러 가지 형편에 의해 크게 차이가 있는데 경쟁적인 산업일수록 이윤율이 높은 산업일수록 모방하는 비용이 작게 드는 기술일수록 모방속도가 빠르다고 한다.4)技術開發과 市長構造기술개발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생간시장구조를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가. 예를 들어 후진국이 電子工業을 육성한다고 할 때 기술개발 한 가지만 생각한다면 산업정책면에서 電子企業을 완전경쟁산업으로 할 것인지 독점기업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寡占企業으로 할것인지 하는 문제이다이에 대해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技術革新을 하자면 어떤 조건이 충족어야 하는가를 볼 필요가 있다. 다음을 통해 다음 세 가지를 지적할 수있다1) 기술개발투자에는 막대한 자금이 장기간 소요되므로 이 자금을 부담할 수 있도록 충분한 社內留保가 축적된 기업이라야 한다2) 기술개발투자로 인한 위험부담을 보상하기 위해서 그 기술의 개발로 인한 獨占的 利潤展望이 있어야 한다.3) 그 기업에 경재상대자가 없는 경우에는 굳이 기술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므로 강력한 경쟁자가 있을수록 기술개발은 촉진된다.이상과 같이 볼때 完全競爭市場은 기업의 규모가 작고 대량의 企業留保가 없으며 경재상대자는 너무 작은 규모의 너무 많은 상대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완전경재 시장에서는 기술개발이 어려우며 다만 第三線技術만이 모방되는 경향이 있다.기술개발을 가장 촉진하는 生産市場形態는 寡占企業이다. 寡占企業은 경쟁자의 존재를 가장 크게 의식하고 충분한 자금부담능력도 있으며 기술개발로 相對企業을 넘어 뜨리면 큰 독점적 이윤도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2 技術發展과 産業競爭力1) 規模의 經濟한 덩어리로 된 백만 원은 만 원씩 백 개로 나누어진 백만 원보다 더 쓸모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이것이 바로 規模의 經濟이다. 곰탕집에서 하루 곰탕 한 그릇만 파는 경우보다는 열 그릇, 열 그릇보다는 백 그릇을 파는 경우가 단가가 싸게 먹힐 것이다. 그러나 하루 10만그릇을 만든다고 하면 원가는 오히려 오르게 될 것인데 이 경우는 規模의 非經濟라고 말한다.규모의 경제는 생산 投刺 구입 販賣등 네 부문에 작용한다. 生産規模의 경제는 앞에 든 곰타의 예에서 보았고 투자의 규모의 경제는 투자규모가 커질수록 생산물 단위당 投刺原價가 싸게 되는 것을 말한다.후진국에서는 規模經濟를 실현하지 못하는 것은 過小規模의 요인으로 자본부족, 시장 부족, 기술부족 등을 지적할 수 있다.2)産業別 生産性의 決定要因기업의 경쟁력은 곧 생산성에 있다. 그리고 기업의 생산성을 결정하는 요인들은 專門化經濟 規模經濟 技術 市場의 크기 등 네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專門化란 상품의 다양화에서 오는 경제를 뜻한다. 전문화 경제는 규모의 경제와는 많은 경우 서로 반대되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단추의 경우 단추는 전체 필요량이 그다지 많지 않은 데다가 모양이나 크기 원료의 종류에 따라 수백 종류를 생산해 내야 한다 이런 경우 단추의 생산성은 규모의 경제가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화가 문제된다.기업의 생산성을 가름 하는 네 개 요인을 위에서 열거하였는데 산업마다 그 생산과정과 상품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네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중요성을 가지는가 하는 것은 획일적으로 말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다.먼저 모든 상품은 異質的 商品 과 同質的 商品으로 나눌 수 있다 이질적 상품이란 앞에서 언급한 단추의 경우이고 동질적 상품이란 예컨대 시멘트 비료 등의 경우와 같이 그 수요는 대량인데 비해서 상품의 종류는 몇 가지 되지 않아서 일관작업에 의하여 大量生産이 가능한 경우이다.
한국경제의 과제지난 97년 11월 우리는 외환위기에 직면했고 그것이 금융위기, 경제 불황으로 이어져 많은 고통을 겪었다. 환율, 금리가 크게 변동함에 따라 부실기업, 도산 기업이 속출하면서 실업률도 크게 높아졌다. 외환위기 발생이후 지금 이러한 기초조건들이 점차 안정 내지 호전 되면서 경제가 양순환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점은 매우 다행이라 하겠다.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여러 면에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해나가지 않으면 앞으로도 경제위기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에서 개혁, 개서, 인식전환 등이 불가피하다.1 외환위기 이후의 과제1) 외환위기 원인에 관한 제설외환위기는 외환보유액이 부족하여 지급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나타났지만 그 구체겆인 원이엔 대하여는 학자에 따라 여러 가지 주장들이 펼쳐졌다첫째, 외환위기 시발은 90년대 이후 96년까지 지속된 무역수지적자의 누증이 외채증가로 이어져 이것이 위기 발생이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것이 증가하면 할수록 소재 ,중간재 자본재의 수입이 큰폭으로 증가한데다 그들의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부가가치 하락 생산성 증가율 둔화 등으로 수출채산성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었고 그것이 국제 경쟁력 약화로 연결된 것이다.둘째, 원화가치가 과대평가되어 대미환율이 낮게 형성돼 이것이 수출을 어렵게 하고 수입을 증가시키는 경과를 가져왔고 따라서 이것이 외환유동성의 급격한 감소를 초래해 외환위기로 연결되었다는 주장이다.셋째, OECD가입과 맞물린 자본자유화 조치가 차관도입을 용이 하게 하자 금융기관들은 경쟁적으로 외채도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였는데, 그 대부분이 1년 만기의 단기자금이었다.넷째, 기업들이 투자확대를 위해 외채를 직접 차입하거나 금융기관을 통해 간접금융으로 조달하거나 하여 저 수익, 비효율이 예견된 부분에 대거 투자하여 부실을 초래하였고 일부 신흥대기업은 정경유착에 의한 관치금융의 힘을 빌어 무리한 시설확장을 시도한 것이 결국단기자금 만기연장 거부로 이어지게 되어 외환위기로 연결정과 무역의 쌍둥이 적자를 지속함에따라 그들이 경제 회생을 위해 전력투구한 결과에서 파생됐고 금융시장의 침체로 82년에 은행법이 개정 되면서 금융시장이 크게 변화하고 발전함으로써 헷지, 펀드가 커지게 시작했으며 83년도부터 전개된 국제 무역협상이 뉴 라운드 라는 이름으로, 다시 86년도부터는 우루과이 라운드라는 이름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유무역이 논의된 때부터 나타난 것이다. 물론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은 93년 말에 타결되었고 그 결과로 GATT체제가 WTO체제로 바뀌었다.세계화 초기인 90년대는 선진국들의 경제가 부진하여 수출 부진, 실업률 증가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다음과 같은데 이유가 있었다.첫째, 저임금에 기초한 산업과 제품은 동구권 국가들과 후발개도국들이 대량생산시설을 도입하여 저임금을 바탕으로 생산품을 선진국에 밀어내어 그 선진국들은 생산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둘째, 공해를 유발하는 굴뚝산업을 개도국이 수입해 가자 자국내에는 정보, 전자 등의 선진산업들이 발전되어 고부가가치화해야 했으나 이러한 산업구조조정은 시간이 걸려 경기침체로 이어졌다.셋째, 세계화에 대비하여 대분업을 실시하고 신제품개발에 주력해야 했으나 이것은 많은 투자를 필요로 했고, 단기간에 그 성과를 거양하기 어려웠다.넷째, 기업의 국적개념이 점차 희박해져 세금 감면국이면 기업이 어느 나라나 진출함에 따라 이는 실업을 수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결국 앞으로의 세계경제는 급속하게 변화하고 발전할 것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변화를 빨리 읽어 그에 대응해 나가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2) 대외경제 협력 강화앞으로 다가올 무한경쟁시대에 대비하여 한국경제를 일류경제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세계경제질서 형성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선진국가로서 수행해야 할 책임도 다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95년도에 출범한 WTO체제와 앞ㅇ로 전개될 환경협상 노동협상 기술협상 경쟁조건협상 등 다자간 협상에 능동적으로 재처하고 APEC을 중심으로 한 아태지역경제협력에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 범세계적인 무역질서속에서 그 유리성을 추구하기 위해 경제블록을 형성하는 일이 성행하고 있다.경제블럭의 대표는 유럽공동체로서, 이는 93년에 유럽동맹조약을 통해 유럽연합으로 바뀌어, 이에는 종래 EC 12개국 외에 동구권 국가들까지 회원으로 되는 유럽국가 전체를 거의 포괄한 경제블럭이 되고 있다.이에 따라 당초 EC를 겨냥하여 89년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태지역국가들을 중심으로 APEC이 결성되었다. 이는 역내 무역 및 투자의 자유화를 목적으로 조직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 ASEAN 6개국은 93년에 따로 아세안 자유무역지역을 출범시켜 APEC내에 소블럭을 형성했고, 또 북미주의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개국은 92년에 합의된 내용에 따라 94년에 북미지역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여 새로운 경제블록을 형성했다.이러한 지역주의는 지리석 인접성, 공통된 역사와 문화, 경제적 밀접성 등에서 이해를 같이 하는 특정국가들 간에 경제협력을 긴밀히 하고자 한데서 발단된 것으로, 이는 기존의 국제경제질서를 구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결국 이는 역외국가들에게 차별을 가함으로써 새로운 의미의 보호주의적 색채를 띈 것이라 할 수 있다.그러면 이러한 상황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 가야 할 것인가.이는 다음과 같은 방향이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첫째, 한국은 어디까지나 WTO체제에 순응하여 지역주의가 심화되는 새로운 국제질서속에서 다자주의를 회복시키는데 주력하는 한편, EU, NAFTA가 배타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을 견제해야 한다.둘째, 지역주의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하여는 종전의 가격경쟁력 위주에서 탈피하여 기술개발을 통한 수출상품구조의 고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셋째,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지역주의가 굳어지기 전에 그 지역내에 우리 기업이 진출해 있으면 지역우선주의에서 오는 불이익을 최소화 할 수 있다.넷째, 개도국에 대한 투자는 물론 기술교류도 확대해야 한다. 최근 우리의 수출시장을 보면 선진국에 대한 수출비중은 답보상태.그러나 그동안의 실정을 보면 정치와 관의 시장개입을 결코 줄지 않고 있고 IMF관리체제를 불러들인 원인의 일부도 이에서 찾을 수 있다.그동안 우리 경제는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문제점이라는 지적이 끈임없이 있어 왔다. 물론 이것은 수입자재가격상승, 높은 금리, 높은 지가, 생산성 향상의 둔화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나타난 결과이지만 근본적으로 시장원리가 제대로 정착되자 못한데 연유가 것이다. 시장원리는 자원의 합리적 배분, 수읍의 자동조절을 기하게 하는 원동력이다.1)자유시장경제체제의 정착95년도에 발표된 세계화추진위원회의 “세계화의 비전과 전략”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여전히 우리에게 그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한국경제가 풍요롭고 안정된 선진경제를 이룩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율과 경쟁, 개방을 통해 경제효율을 증진시켜 삶의 질을 높여 나가는 것이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체제가 정착되어야 한다.첫째, 민간주도의 경제운영체제가 정착되어야 한다. 개발초기에는 희소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위하여 정부가 주도적으로 경제를 운영해왔지만, 이제는 경제규모가 크게 확대되고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도 복잡화되었기 때문에 정부주도의 경제운영은 도리어 비능률과 비효율을 초래하여 경제운영은 도리어 비능률과 비효율을 초래하여 경제선진화를 이루어 나가는데 장애요인이 될 소지가 크다. 그러므로 정부는 그의 고유업무수행에 한정하고 일반경제운용을 완전히 민간부문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단지 조정자, 조력자, 심판관의 위치에만 서야 한다. 이는 선진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가는 길이다.둘째, 공정경쟁체제를 정착시켜야 한다.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 개입은 각종의 제한과 규제가 따르게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정부실패도 그만큼 증가하여 공정경쟁보다는 이권추구활동이나 정부의존적 활동이 늘어나게 된다.셋째, 각종 자원에 대한 가격 및 이용규제를 철폐하여, 그 자원으로 부가가치를 높인 만큼의 기여도가 따라 보상이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자원이용을 극대화하도록 해야 한다.다. 둘째는 여성과 고령자를 활용할수 있는 노동시장의 변화가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셋째는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의 폭이 crth되고 연구 및 사무직 공장노동자간의 격차로 줄어들어야 한다. 그럴때 고용구조는 선진화될 것이다.2)생산요소의시장의 안정(1)자본 및 자재조달시장의 안정지난날 우리나라에서 자본조달비용은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높았다. 그것은 물가상승률이 높아 실질이자율은 낮다는 이유 때문이었으나 음성적 지출도 또한 비용을 가중시키는 큰 요인이었다. 이와같은 높은 금융비용으로 자본을 조달하면 그에 의하여 생산된 제품이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울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다행히 외환위기, 금융위기가 경제불황을 낳자 금융기관도 자금수요자도 자세가 변화되고 있어 예금과 대출금리가 계속 하향추세를 보이고 있다.결국 금리의 하향안정은 물가안정과 직결되지만 정책적으로도 이는 앞으로 계속 낮추어 가야만 금융비용이 절감되고 선진경제도 이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금리는 저축률을 높이려면 대출금리가 낮아져야 하는 상반관계ㅔ 있지만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금리수준은 아직도 높은 편이다.우리와 같이 원자재, 소재, 중간재, 부품의 해외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외국의 선물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방법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필요한 원자재를 사전에 확보하여 위험을 축소함으로써 제품의 원가를 낮추도록 해야 한다.(2) 토지가격정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지가(地價)는 75~89년기간 중 11배가 상승하여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토지세세가 잘 정비 되어 있는 선진국이나 사회주의적 토지제도를 고수하고 있는 국가들은 지가가 상품생산비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지만 우리나라는 이것이 차지하는 비울이 매우 높아 불리한 입장에 있다.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국토면적이 작아 과거에는 부동산투기가 성행하였고 이것이 공장부지가격과 임대료를 상승시켜 공업에는 생산비를, 서비스업에는 장소사용료 가격을 높임으로써 근로자의 임금상승 압력요인이 되게 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93년에 농업용지의다,
● 텍스트의 저자에 대하여 조사작가명 : 볼테르 (본명 : ranois-Marie Arouet / 별명 : 페르네의 장로)출 생 : 1694년 11월 21일사 망 : 1778년 5월 30일출생지 : 프랑스직 업 : 해외 역사인물, 작가경 력경 력 기 간경 력 내 역~귀족과 싸움으로 재차 부당하게 투옥~국외망명 조건으로 석방1718~오이디푸스 상연 성공1726~영국 이주1728~앙리 4세를 찬양하는 서사시 앙리아드 출판1729~귀국1734~1743저술과 연구1744~프랑스 궁정 출입1745~프랑스 수사관 임명1746~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1746~역사 편찬관 임명1750~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의 베를린 초빙1778~이렌의 상연 위해 파리 정착● 핵심적인 내용을 A4 1매 정도로 요약핵심내용 1. 볼테르 자신이 생각하는 낙천주의를 알 수 있다.인용문 1.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최선의 것에 연결되어 있고 최선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인용문 2. “낙천주의가 뭐지요?” 카캉보의 물음에 캉디드가 대답했습니다. “아! 인간이 불행할 때도 모든 것이 잘 이루어져 있다고 우기는 일종의 광기라네.”)핵심내용 2. 과학에 대한 그의 지식을 알 수 있다.인용문 1.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이 최선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즉 리스본에 화산이 있다면, 그 화산(지진의 원천에 대한 동시대의 이론을 암시)은 다른 곳에는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물은 현재 있는 곳에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며, 모든 것은 잘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해 설 1. 18세기의 유명한 논제인 놀레 신부의 ‘우언법’을 본문에 차용한 ‘충족이유’ 즉 “어떤 원인 또는 어떠한 결정적인 이유 없이는 어떠한 일도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라이프니츠의 원리를 수용한 것 등에서 알 수 있다.핵심내용 3. 신세계의 동경 미지의 세계의 동경을 알 수 있다.인용문 1. 모든 것이 잘 된 겁니다. 보세요! 이 새로운 세계의 바다가 우리가 살던 유럽의 바다보다 벌써 더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더 잔잔하고 바람도 더 한결같고(희귀선 사이, 동에서 서로 일년 내내 규칙적으로 부는 무역풍) 말입니다. 틀림없이 신세계는 이 우주에서 최선의 세계일 것입니다.)핵심내용 4. 볼테르의 특징적인 아이러니 즉 빈정거림을 알 수 있다.인용문 1. 자기 인생을 가끔 저주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리고 자신이 가장 블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때는 나를 바다에 거꾸로 집어 던져도 좋아!)핵심내용 5. 볼테르가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인용문 1. “이 자는 예수회 패거리야! 이놈은 예수회 신부라고! 이제 원수를 갚고 맛있게 먹어보자. 예수회 신부 놈을 잡아먹자! 예수회 신부 놈을 잡아먹자!”)핵심내용 6. 볼테르가 가지고 있는 역사관해 설 1. 실제로 유럽에서 있었던 일들을 소설에 사용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고 좀더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을 사용한 것.모든 교리와 싸우기 위해서 그가 사용한 큰 무기는 역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읽고 전체적으로 느낀 점교양수업 ‘인간과 가치’수업을 통해 읽게 된 캉디드의 낙천주의...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과 다른 느낌이었다.솔직히 교과서나 문제집을 제외하고 무협, 판타지 소설 등을 주로 보던 내게.. 많은 책을 보지 않았던 내게 어려운 문장과 이해하기 난해한 용어들이 가득한 철학적인 내용이 가미된 책을 읽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다.그래서 처음 철학적인 내용이 가미된 책을 읽는다는 부담감에 조금 긴장했지만 이 책은 그다지 어렵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어떤 내용이 무엇을 풍자하는지 자세히는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책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어렴풋이 알 수는 있을 것 같았다.볼테르가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생각을 캉디드라는 소설로 우리에게 표현하고 하는 것 같아 보였다.소설 속에는 실제로 유럽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써놓았는데 이것은 볼테르가 그것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소설이라는 도구를 통해 피력했던 것으로 생각 되어진다.캉디드는 첫 번째 시련을 겪은 후에도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시도를 하지만 번번히 많은 좌절과 역경...시련.... 쓰라림을 겪게 되면서 속된 말로 성격이 까칠해지고 모나게 되지만 후에 농장을 차리고 다시 행복하기를 꿈꾸는 그의 삶에서 낙천주의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 볼 수 있다.그러나 이것은 볼테르의 생각일 뿐 그것이 옳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이것은 볼테르 자신이 그것을 보는 시선일 뿐 그것이 정답이다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볼테르는 캉디드에서 유럽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 자신이 생각하기에 불행한일..에 대해 느낀바를 조롱(제 생각으로는)식으로 서술해 놓았는데 이것은 이해는 가지만 이것이 절대적으로 공감되지는 않기 때문이다.난 나의 생각으로 유럽에서 일어난 불행한 일들이 정말로 불행한 일인지 그것을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보는 것인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모든 일은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정답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그리고 모든 일은 앞과 뒤가 있는 법 나쁜 일 후엔 좋은 일도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볼테르가 생각하는 낙천주의의 패배는 캉디드가 낙천주의의 희망을 버렸을 때 진정 불행해지지 않았나 생각하게 되었다.아무튼 이 책은 나에게 다시 한번 삶에 대해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투자한 시간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다.후에 이런 부류의 책을 또다시 읽게 될지 미지수이지만 좋은 경험 이었던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책이 내 인생관 혹은 내가 세계를 이해하는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제가 이 책을 읽고 인생관이 180도 바뀌었다거나 세계를 이해하는데 엄청난 도움이 됐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질말일 것입니다..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어떤 것이 좋음인지 어떤 것이 나쁨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어떤 무엇에 대해 쉽게 흥분하고 쉽게 흥미를 잃었던 적이 많은 제게 조금 더 생각해보고 조금 더 노력해보는 자세를 길러주지 않았나 싶습니다.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진정한 불행과 행복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불행한 삶이고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인지 기준을 정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Ⅰ. 동서문화의 교류①한나라“장건의 서역개척”1. 국위 선양 2. 경제성장“실크로드” 로마제국-한한나라 때 중국의 문화를 윤택하게..비단을 통한 무역흑자②당나라당 618-헤지라622(이슬람)-비잔틴번영의 원인: 외래교류.→교훈. 강대국일수록 타문화의 우월성을 수입. 상대의 이점을 받아들여 활용.그렇다면 폐쇠적 태도였을 때는 어땠을까?③송나라 :국수적 폐쇠적④원나라 :민족차별정책(100년정도)→중국문화 쇠퇴⑤명나라 :명태조(주원장) 1. 한문화부흥2. 농촌사회회복쇄국주의적 입장, 보수적because 북노남왜(몽골, 왜구)영조의 ‘토목보의 변’⑥청나라1. 명태조 답습2. 이민족 통치3. 기독교 선교사(후기) 배척.초기 jesut 파는 제사, 우상숭배 부정안했으나 후기 베네딕트, 프란시스코파가 우상숭배 부정.→점차 고립되어 감“해금무역” 제한된 지역(광동)에서 공식상인(공인)이 제한된물품만 거래하는 제한무역 체제우리나라는 1.중화사상 2. 조공무역으로 세계화에서 고립되어 감.Ⅱ. 바닷길① 최초기록진나라 “가맹” 로마파견아라비아반도까지만 성공. 로마로 착각② 항해술의 발달송나라 때 나침반 발명.③정화의 해외원정명나라 때 영락제 “정화”파견for 조공지역 넓히기 위해but 단순히 조공지역 확대위해서 X영락제는 조카 혜제 죽이고 왕위 오름수도 남경에서 북경으로 옮기고 자금성지음. 혜제가 살아있다는 소문.1. 혜제가 살아있거든 잡아와라2. 죽었거든 시신을 가져와라④의의1. 조공지역 확대2. 화교들이 동남아시아 교두에3. 동서문화 교류에 이바지4. 중국인들의 세계화에 이바지⑤ 중국의 위기수출품: 차 자기수입품: 향신료중국의 엄청난 무역이익(차,자기는 중국의 사치품, 당시 지불수단 ‘은’) → 서양인들의 불만 고조, 인도산 아편의 수출 → 중국의 위기⑥아편전쟁아편수입 1. 정신적 퇴폐2. 사회기강 흔들림3. 은이 도로 빠져나감(은가등기)→국민에서 국가까지 재정파탄 →엄금론vs니금론 엄금론 勝 →‘임칙서’가 광동에서 아편몰수해 태움, 아편 소유하면 통상 못하게 함 → 상인들이 비아 반도) →인도 (플라시 전투 1757 프랑스 vs 영국 →영국 勝 - 동인도 회사 설립, 프랑스도 인도차이나 반도 출범)⑨태국유일한 독립국가1. 출랄론 콜른왕의 근대화의 위한 노력2. 영국과 프랑스의 완충지대.. 인도네시아 에 네더란드 싱가포르에 영국등.. 제국주의 확대⑩식민지의 특징철저한 부의 원칙 - 플랜테이션 등등..⑪나폴레옹“동양의 잠자는 사자, 중국을 깨우지 말라”인도, 이집트 문명 다 사라졌지만 중국은 수천년간 문화가 깨지지 않음 because. 철저한 제도, 만리장성 등등...1. 넓은 영토 2. 문화 풍부 3. 산물풍부 (특히 황금) 4. 많은 사람 →제국주의 어느나라라도 탐냄, 개방요구 그러나 중국은 주와사상으로 서양을 洋夷라 부름.Ⅳ. 서세의 동점, 태평천국 운동아편전쟁부터 해방까지 100여년 동안 제국주의의 침략 아래서 for 1. 자유독립국가, 2. 근대국가 목표로 상상도 하지 못할 노력①불평등 조약‘남경조약’ with 영국1. 홍콩 할양2. 광동 이외 5개 항구 추가로 개방3. 관세 자유권 상실4. 치해 법권 상실5. 조차지역 인정②중화사상의 동요좋은점임, 중화사상은 중국의 발전을 위해 도움 안됨, 중국은 천하국가가 아니라 수많은 국제 사회의 일원이라는 인식. 하지만 일반적 개념으로 자각 되지 못하고 일부 지식인들만 자각. →더욱더 식민지화 되면서 곤경에 처함③ 망하 조약 with 미국황포 조약 with 프랑스④점점 주권을 잃어 버려감*외적 확인 -전쟁으로 인한, 고통, 경제적 곤란 (배상등 돈 지출)*내적 확인 -태평 천국운동1. 청3대 치세 기간 끝난후 만주족에 대한 불만 고조2. 토지가 인구에 비해 모자람3. 자연재해→1850 ‘홍수전’이 이끄는 태평천국운동이 광동성, 광서성에서 일어남⑤광동유일한 무역항구 였다가 추가개방 이후 경제중심지가 상해로 바뀌자 실업자 등 곤궁한 처지.. 태평천국운동의 발원지가 됨→1853년 불과 3년 만에 화중,화남(양자강일대) 점령 ‘태평천국’이라는 국가 세움⑥팔기군청나라 초기에 용맹했던 ‘팔기군’에서 하고 운영은 상인들이..→실패 : 청일전쟁의 실패는 양무운동의 실패를 평가 할수 있다.③원인1. 중체서용 : 제도를 변형시켜 근본적인것 바꾸지 않음. 쓰임, 겉모습만 빌려옴.2. 자금의 부족 : 3황제 뒤에 자연재해, 토지의 부족, 전쟁 배상비, 태평천국운동등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힘든 양무운동의 사업을 재정난 속에서도 시행3. 인재의 부족사농공상.중국은 사서오경,유학등 인문에만 중심, 자연과학 무시했었기 때문에 철도사업등 시행할 인재가 없음.※과거제도596년에 시작 1905 폐기. 1300년동안.과거제 전에는 가문의 높고 낮음에 따라 관직 결정에서 황제권이 약하고 인재가 無→과거제 시행, 인재등용과 황제권 강화.(수나라) 문제-좋은황제 양제-폭군의 대표자로 평가 정말 그럴까? 양제는 고구려 원정 빽 모두 문제의 사업 계승 (대운하, 3성6부, 과거제 강화, 돌궐 정복 등) 수나라 역사는 당나라 때 쓰여진 것이므로 당왕조(이세민)의 정당성 확보 위해 양제 비판하는 역사 씀. 실제로 양제는 남북을 잇는(북경→한주)대운하를 건설해 인적·물적 교류등 국가의 통치, 경제, 통합에 기여..(당)(송) 과거제도 명칭 자리 잡음*과거제의 장점인재등용, 군주권강화·중앙집권사회,능력중심사회, 수직적 신분상승 가능한 사회, 사회의 장시간 평화, 안정.*과거제의 단점출세지향적 사회, 인재의 낭비, 인문,철학 발달, 자연과학 무시 발달 저해, 각종사회에 대한 불만 인자 → 당-황소, 태천-홍수전 과거에 떨어졌던 인물.단점도 있지만 1300년 동안 계속 됐다는 건.. 제일 좋다는 거.4. 인식의 부족: 근대화의 필요성에대한 대외적 인식 부족, 우리에게 그것이 왜 필요해?5. 운영방식의 잘못 : 사사건건 감시, 개입, 개인이 자유롭게 할수 없음6. 지방장관, 한인, 신사층 중심으로 고립·분산적으로 행해짐 : 그 지방의 특성에 맞게하지 못해서 체계적이고 유기적이지 못함지방관 자주바껴 체재도 혼란.→관독 상판의 비 효율성.7. 방향의 잘못된 설정.강→부 이어야 하는데 아편전쟁등으로 재막부에게 천왕에게 권력을 돌려주라 주장⑤대정봉환1867년 황제(천왕)에게 권위를 돌려주는 식 거행 →메이지 명치 황제가 등극.⑥메이지 유신체제 타도후 무사, 농민- 황제 까지 (상에서 하까지) 관계가 이어짐, 상하혼연일체.후에 개혁으로 입헌 군주제 지향.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등 전사회에 걸친 제도적 개혁 시행.그러나 중국은. 체제그대로 유지..⑦단점메이지 유신 성공→러·일 전쟁→조선병합1910 →만주점령1930→태평양 전쟁→1차세계대전의 주범..동아시아의 갈등을 부추기고 오늘날도 화해 못하고 있음.Ⅶ. 청일전쟁우리나라 ‘동학농민운동’ 제압한다는 명분하에 군대 파병에서 일본이 승리했다는 것만 알면 안됨.①과분의 위기.일본은 과거 조공국, 패배로 인한1. 정신적 충격2. 물질적 중격- 전쟁 배상국, 영토 할양,*시모노세키 조약 : 대만, 팽호 열도, 남만주 일대, 요동 반도 일대 빼앗김 →중국내 일본 세력, 영향력 확대.*3국간섭독일 - 산동반도러시아 - 요동반도 (일본에서 넘어감)프랑스 - 복건지방 일대*영국 - 남경조약으로 홍콩 할양 청진 조약으로 양자강 하류 일대 빼앗김..→중국 발달의 원동력인 항구지역을 모두 열강에게 빼앗김.프랑스 - 베트남 두고 청불전쟁.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반도 출범,→중국이 오이토막 처럼 잘릴 듯한 위기(과분), 그리고 내지 까지 확대될 지도 모르는 위기 의식..②청일전쟁의 의의1. 반식민지화2. 동아시아의 강자 위치를 일본에 내어줌.당나라 때부터 있었던 동아시아 질서 개편.③일본의 White Burden.유럽의 의식을 복제 해서 ‘문명개화론’, ‘정한론’ 등 주장, 조선은 식민지의 길을 걷게 됨.④변법론청일전쟁의 패배의 충격 으로 모방에만 급급하지 말고 일본을 본받아 법을 바꾸자는 ‘변법론’ 주장. 강유위, 양계초가 중심*강유위‘공자개제고’ : 공자는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공자는 진정한 개혁론자 이다.‘신한위경고’ : 신나라 때 쓴 책에서 공자를 잘못썼다.→개혁의 당위성 끌어내려함 →상소 올림→청황제 승인⑤무술변법,구교*서적, 상점, 상품 다 불지름,*외국 공사관 까지 불지름→단순히 기독교 배척 만이 아닌 반제국주의 성격의 운동으로 의화단 운동의 성격을 규정 지을 수 있음.→외국 청조에게 진압요청→‘위안 스카이’의 ‘원세개’파견 → 물론 진압은 해야 하지만 심하게 강경진압 ‘우리는 애국주의 운동 실시했었는데..’→분노폭발, 산동을 넘어 수도 성 인근까지 번짐 →이번엔 진압 X④이번엔 왜 진압 안했을까?태평천국 운동 - ‘멸만흥한’의화단 운동 - ‘조청멸양’1. 구호가 마음에 들어서 내버려둠. 대중들의 단합으로 제국주의를 몰아낼 희망을 꿈 →청조의 무능을 볼수 있다.2. 의화단 운동은 친정요구 하는데 서태후가 유폐상태에서 광태후에게 권력 빼앗길 두려움 등등⑤의의1. 외국 군대의 주둔결과적으로 의화단 진압위해 수도에 외국군대가 출병.2. 침략방법의 전환분노한 4억 5000천 의 중국 보고 서양인들이 두려움을 느낌 , 군사적 침략→경제적침략의 침략방법의 전환3. 과분상태의 위기를 벗어남서양이 과분책동을 단념하게 됨-의화단운동은 반제국주의 운동의 시작으 로 평가4. 국민들이 청조에 대한 희망을 접음5. 혁명론, 입헌론*입헌론변법론 실패자들이 입헌론 주장 →청조는 도와주어야 하는데 도와주지 않음. 후에 신정실시, 하지만 때가 이미 늦음. 신군,신학생 들의 불만이 고조 된 상태*혁명론애신각라 氏 - 5명이나 장관자리 차지‘황족내각’- 혁명의지 無→입헌론 입지는 후퇴 , 혁명론 입지 고조, 혁명론이 점차 강해지게 됨⑥손문 (쑨원)하와이 해외 유학( 외과의사), 외국에서 병든 중국을 봄, ‘중국의 병을 고치겠다’→ 공화정 세움 (혁명운동), 국부로 칭송, 손문의 부인도 13억의 어머니로 칭송⑦흠중회1893년, 중화를 부흥 시키는 혁명 모임.청조진압 으로 번번히 실패 - 외세엔 대응 못해도 자국의 내란 진압은 가능하니까.손문 뿐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혁명운동 있었지만 지역적·고립적으로 有, 단체 無 so 청조의 탄압쉬워 번번히 실패 → 조직, 사상 (이념, 목표) 의 필요성 인식⑧중국동있게 됨
헌팅턴의 역사철학: ‘문명의 충돌’새무엘 헌팅턴- 헌팅턴은 뉴욕에서 태어나 예일 대학과 시카고대학에서 수학하고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9년간(1950~1958)교수 생활을 하였고 4 년간(1959~1962) 콜롬비아 대학의 전쟁과 평화 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였다.그는 그 후 하버드 대학의 정치학과 주임교수와 국제문제센터 부회장을 거쳐 현재 는 알버트 위더헤드 교수와 존 올린 전략연구소 소장, 하버드대학 국제아카데미 회 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카터 행정부에서 약 2년간 국가안보위원으로 일하였고 정 치전문 잡지를 창간하여 공동편집인으로 활약하였으며 미국 정치학회 회장직을 역 임 하였다. 그는 이 외에 사회과학연구원과 존 시몬 구겐하임, 행동과학 연구소, 옥 스퍼드 올 소울 대학, 우드로우 윌슨 국제학자센터 등의 평의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특히 군사정치학, 비교정치학, 미개발국가 정치발달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민주주의의 위기” “아메리카의 정치: 불협화음의 약속” “지구상의 딜레마” “제3의 물결: 20세기 후엽의 민주화” “문화가 중요하다” 등은 그의 대표적인 저술 들이다. 그러나 사무엘 헌팅턴이 정치외교학교수에서 일약 세계적 역사철학가로 이 름을 날린 것은 그의 저서의 발간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무려 22개 언어로 널리 번역되었다. 그는 탈 냉전시대를 대표하는 보수적 현실주의 역사철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이데올로기의 대결구도에서 벗어난 세계가 다시 문명충돌의 소용돌이에 휘말 리게 되었다고 선포하여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는 말하자면 냉전시대의 양극화된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숨어 있다가 수면 위로 다시 고개를 쳐든 다양한 문 명들의 상충을 주시한 것이다. 그의 책은 문명을 바탕으로 하는 탈 냉전시대의 역 사 철학의 진수를 음미하고, 더 나아가 새로 나타난 세계질서의 특성과 국제 정치 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고 평가 된다.※ 새로운 세계정세세계의 다극화 . 다 문명화탈냉전 시대에 사상 최초넘어서서 인도문명의 핵심이다.이슬람 - 기원후 7세기경 아라비아 반도에서 출현한 이슬람교는 북아프리카 와 이베리아 반도로 빠르게 전파되었고 동으로는 중앙아시아, 인도, 동남아시아일대를 휩쓸었다. 때문에 이슬람 안에는 아랍, 터키, 페 르시아, 말레이 등 독자문화와 하위문명이 공존 한다.정교 - 정교권은 비잔틴에서 갈라져 나와 다른 종교와 200년의 몽골지배 관 료 독재주의 경험 르네상스 종교개혁 계몽주의와 제한적인 범위 내에 서 접촉하면서 형성된 문명이다.서구 : 서구 문명의 등장 시기는 대체로 기원후 700년에서 800년 사이로 본 다. 학자들은 서구 문명을 크게 유럽 북미 라틴아메리카의 세부분으 로 나눈다.※서구는 특정한 민족이나 종교 지역의 이름이 아니라 나침반의 방위로만 확 인되는 유일한 문명이다.라틴 아메리카 - 라틴은 집단주의적, 권위주의적 문화를 가지고 있다.라틴은 오직 카톨릭이 주류를 이룬다. ‘서구’ 라는 말은 이 제 예전의 서구 크리스트교 국가권을 일컫는 말로 보편화 되었다.아프리카 - 종교는 문명을 규정하는 핵심적 특성이다. 아프리카는 강한 부 족의식에도 불구하고 점차로 아프리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 룩하려고 애쓰고 있다.사상과 기술은 문명에서 문명으로 전파되었지만, 그러기에는 몇 세기가 족히 걸렸다. 문화적 전파로 꼽는 것은 북부인도에서 출현한지 약 600년 만에 이루어진 불교의 전래. 인쇄술은 기원후 8세기 중국에서 발명 활자는 11세기 발명, 그러나 이 기술이 유럽에 전달 된 것은 14세기였다. 종이는 기원후 2세기에 중국에서 만들어져 7세기에 일본에 전달되었지만 서쪽으로는 8세기경 중앙아시아에 10세기경 북아프리카에 12세기경 스페인에 13세기경 북유럽에 전해졌다. 역시 중국이 9세기에 발명한 화약은 몇 백년뒤 아랍에 보급되었으며 유럽에는 14세기에 들어가서야 소개되었다.※ 서구화, 근대화에 대한 반응-헌팅턴은 서구 팽창에 대한 비서구사회의 반을을 다음의 세가지로 분류하고 있다.☆첫 번째로는 근대화와 서구화를 모두 물리치려는 ‘거부주슬람교도들과 서구화하려는 지배 엘리트가 공존하는 분열된 나라로 남게 되었다.☆세 번째로는 전통적인 문화를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근대화를 이루려는 ‘개량주의’이다. 이것은 위의 두가지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절충적 방법으로 주로 비서구 사회의 엘리트들이 선호하였다. 중국 청조말기 근본적인 것은 중국의 것을 배우되 실제적인 것은 서구의 것을 배운다는 ‘중체서용’ 정신은 일본의 것을 수용하고 기술은 서양의 것을 받아들이려는 일본의 ‘화혼양재’ 그리고 과도한 문화의 서구화를 수반하지 않는 기술근대화를 모토로 세우려는 이집트의 무하마드 알리의 정책이 모두 이에 속한다.※ 문명 균형의 변화 : 서구의 쇠퇴-헌팅턴은 서구 문명의 앞날을 두가지 방향으로 접치고 있다. 그 하나는 서구를 세계 다른 문명들을 압도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문명으로 보는 것이고,다른하나는 반대로 서구를 다른 문명들에 비해 현격하게 세력이 떨어지는 문명으로 보는 것이다.어느 모로 보나 둘 다 일리가 있는 방향설정이다. 전자의 경우 탈냉전으로 소련이 붕괴한 다음 초강국으로 올라선 비국은 정치안보에서는 영국,프랑스와 협의하고 경제 분야에서는 독일, 일본과 협의하면서 앞장서 있다. 서구는 미국과 함께 여러면에서 아직도 우의를 유지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 서구는 이전에 비해 그 세력이 떨어지고 있으며 미국도 그 자리를 유지하기 힘들게 되고 있다. 그것은 중국이 부상하면서 아시아 문명권 역시 전대미문의 빠른 속도로 전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팅턴은 이 두 가설을 염두에 두면서 서구쇠퇴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첫째로 서구의 쇠퇴는 완만한 과정을 밟을 것이다. 서구가 떠오르는 데 400년이 걸렸으므로 물러나는 데도 그 정도의 기간이 걸릴 것이다. 경제발전의 성장이 S곡선을 밟는 것처럼 서구의 쇠퇴도 처음에는 느리게 기울다가 점차로 가속이 붙을 것이다.☆둘째로 서구의 쇠퇴는 직선적으로 하강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서구가 개방된 자유 민주주의라는 강한 소생력을 가진 체제를 가지고 있고 다른 문명들과는 강할 틈을 주지말라. 미국이 기선을 잡지 못하게 하라” 미군의 인명피해를 최대화 하라“ 인도의 한 고위 군 장성의 지적은 더 노골적이다.”핵무기가 없거든 미국과 싸우지말라“ 그러한 교훈은 비서구 세계의 정치 지도자와 군 관계자들의 뇌리에 깊이 박히면서 다음과 같은 개연성 높은 전망을 낳았다.핵무기는 냉전시대에는 “균형추” 역할을 했다면 탈냉전시대에서 미국은 재래식 군사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하였으며 이젠 미국의 잠재적 적수들이 핵무기를 보유하려고 한다. 과거의 소련처럼 미국은 군사적 우위를 잃게 될지 모른다.핵무기는 서구를 더 직접적으로 위협 할 수도 있다.중국과 러시아는 핵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을 유럽과 북미에 보낼 수 있다. 북한 파키스탄 인도는 미사일의 사정거리를 계속 넓히고 있으며 언젠가는 서구를 직접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가능성이 높다.역사적으로 테러는 약자의 무기, 곧 재래식 군사력을 갖지못한 세력의 무기였다. 2차대전 후 핵무기는 약자가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를 만회 할 수 있는 무기가 되었다.군사부문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유교-이슬람 결속에서 중국은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많은 이슬람 국가들에게 재래식 무기와 비재래식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연구용임을 표방하지만 상당수의 서방전문가들이 플루토늄 생산능력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알제리의 사막 원자로 건설, 리비아에 대한 화학무기 원료 판매, 사우디 대한 CSS-2 중거리 미사일 제공, 이란 , 리비아, 시리아 , 북한에 대한 핵 기술 및 핵 물질 공여 이라크에 대한 막대한 규모의 재래식 무기 판매의 주역은 모두 ‘중국’이다.유교-이슬람 군사적 유대의 핵심 고리는 한축에 중국과 북한이 있고, 다른 한축에 파키스탄과 이란이 있다. 1980년부터 1991까지 중국의 무기를 주로 도입한 나라는 이란과 파키스탄이었고, 그 뒤를 이라크가 따랐다.1970년대 초반부터 중국과 파키스탄은 대단히 긴밀한 군사적 관계를 발전.1989년 양국은 향후 10년간 무기구입, 공동연구고 한다. 그것은 증강 대 증강이 아니라 증강 대 억제의 싸움이다.서구의 억제노력이 다른 국가들의 무기 증강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을 중지시키지는 못한다. 비서구 국가들의 경제발전, 무기, 기술, 정보를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는 경제적 유혹, 자신이 지역 헤게모니를 수호하려는 핵심국과 지역 강대국이 정치적 욕구 등은 서구의 억제노력을 좌절시키기에 충분하다.인권과 민주주의정치적 변화의 배후에 까려있는 주된 요인은 의심할 나위 없이 경제 발전이다.싱가포르 한 관리는 “아시아에서 인권을 신장하려는 노력은 탈냉전 세계의 변화된 세력구도도 감안해야 한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대한 서구의 영향력은 크게 축소되었다” 고 지적하였다.- 미국과 중국의 전쟁 시나리오문명국가들 사이의 세계대전은 일어날 가능성이 드물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그것이 일어난다면 이슬람과 비이슬람의 분쟁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으며, 핵심국들 사이에서 야기된다. 중국이 동남아시아의 패권국으로서 부상은 미국의 안정에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헌팅턴은 2010년 경 미국과 중국 전쟁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를 다음과 같이 구상하고 있다.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고 일본에서 감축한 다음, 중국은 대만이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한다는 조건으로 유엔가입을 허락한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유전개발문제로 베트남과 교전하고 베트남은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일본은 미국의 지원요구를 거절하고 중립을 선포한다. 미국은 중국의 공격으로 막대한 손해를 본다. 미국 내에서 점차로 염전여론이 일어나는데 특히 남서부의 히스패닉을 중심으로 거세게 일어난다. 한편 전쟁은 다른 문명들의 핵심국에 영향을 준다. 인도는 기회를 틈타 파키스탄에 파상공격을 가하지만 이란과 중국의 군사동맹으로 어렵게 되고 서구의 약화로 아랍의 세력이 강화된다. 미 제 6함대는 힘을 쓰지 못한다. 일본은 점점 중국 쪽으로 붙으면서 전쟁에 가담한다. 러시아는 중국의 부상에 불안을 느껴 중국과 싸우게 된다. 원유의 공급문제로 아랍 국가들의 영향력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