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CA cycle (TriCarboxylic Acid cycle);해당 작용에서 생긴 피루브산이 탈탄산효소와 탈수소 효소의 작용으로 CO₂와 H₂로 분해하는 과정1)서론TCA 회로(tricarboxylic acid cycle; citric acid cycle)는 동식물체의 미토콘드리아 내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생성을 위한 화학적 순환과정으로 이 회로의 반응은 1937년 처음으로 H.A. 크레브스 경에 의해 완성되었고, 동물?식물?미생물?곰팡이 등의 세포를 포함한 수많은 형태의 세포에서 입증되었다. 따라서 이 회로는 여러 형태의 생물이 공유하는 세포의 화학적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회로의 각 단계는 각각 특정한 효소에 의한 촉매작용을 받는다. 미생물을 제외한 동식물에서는 이들 효소 및 생성된 에너지를 적절히 이용하는 데 관련된 단백질들이 미토콘드리아라는 고도로 조직화된 세포내기관에 있다. 에너지 이용에 관련된 효소들은 반응 순서가 자연스럽고 빠르게 일어나며,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배열되어 있다. 미생물에서는 이러한 효소들이 세포막에 배열되어 있다. TCA 회로는 물질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합물 중의 하나인 Acetyl-CoA가 옥살로아세트산(oxaloacetate)과 반응하여 시트르산(sitrate)을 생성하면서 시작된다. Acetyl-CoA에서 2개의 탄소로 된 아세틸기는 당?지방산?글리세롤의 불완전 산화에 의해 가장 자주 나타나는 생성물이다. 연속되는 효소의 촉매반응에서 10개의 중간 생성물이 만들어지는데, 즉 시스-아코니티산, 이소시트르산(isocitrate), 옥살로석신산(oxalosuccinate), α-옥소글루타르산과 이산화탄소, 석신산(succinate)과 이산화탄소와 아데노신삼인산(adenosine triphosphate/ATP), 퓨마르산(fumarate), 말산(malate)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가운데 많은 중간 산물들은 세포에 의해 합성되는 화합물에 탄소를 공급하기 위해 이용된다. 이 회로는 말산이 옥살로아세트산(oxal과정을 통하여 피루브산은 완전히 산화되어 3분자의 CO2가 생성되고, 에너지는 한 분자의 GTP와 4분자의 NADH2, 1분자의 FADH2가 생성된다. 포도당은 2분자의 피루브산으로 분해되므로 최종적으로 2ATP, 8NADH2, 2FADH2, 6CO2가 생성된다.< C3H4O3 → 3CO2 + 4NADH2 + FADH2 + ATP >TCA 회로의 주요 기능은 Acetyl-CoA를 CO2와 H2O로 완전 산화하는 것과 Acetyl-CoA의 자유에너지를 생물학적으로 이용한 NADH2 혹은 FADH2로 회수하는 것이다. TCA 회로는 순환적으로 개시단계에서 사용되었던 옥살로아세트산(oxaloacetate)이 마지막 단계에서 재생성 된다. TCA 회로의 산화환원 반응은 네 곳으로, 세 양성자(H+)와 세 NADH 및 FADH2는 전달반응에서 O2로 산화시키며, 이때 많은 ATP가 얻어진다. 회로자체에서도 하나의 고에너지화합물(GTP)이 얻어진다.(1)과정※pyruvate + CoA + NAD+ → acetyl CoA + CO2 + NADH + H+시트르산 회로로 들어가기 전에 피루브산의 탄소 골격이 분해되어 Acetyl-CoA를 생성한다. glucose는 당분해를 거쳐 pyruvate로 바뀌고 이것은 Pyruvate dehydrogenase complex(PDH 복합체, PDC)에 의해 산화되어 Acetyl-CoA와 CO2, NADH를 생성한다. 이 반응은 탈카르복실화, 산화, 그리고 생성된 Acetyl기를 CoA로 옮기는 세 개의 단계들로 이루어진다.①oxaloacetate + acetyl CoA + H2O → citrate + CoA + H+oxaloacteate는 citrate synthase에 의해 촉매되며, acetyl-CoA의 thioester 결합의 가수분해로 방출되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일어난다. 이 반응은 퍼킨축합반응으로 케톤이나 알데하이드와 에스터 사이의 탄소-탄소 축합반응이다. Acetyl-CoA의 탄소음이온이 옥살로아세트산의 카보닐 탄소에 친핵성 + NADH + H+α-Ketoglutarate는 pyruvate dehydrogenase 복합체와 비슷한 α-ketoglutarate dehydrogenase 복합체와 6가지의 보조인자에 의해 산화적 탈탄산반응을 받아 succinyl-CoA와 CO2를 생성한다. 이 효소 복합체는 α-Ketoglutarate dehydrogenase, dihydropoyl dehydrogenase, dihydropoyl transsuccinylase로 구성되어 있으며, ATP, GTP, NADH, succinyl-CoA 및 Ca2+ 등에 의해 저해된다. 보효소로는 TPP, FAD, NAD+, 리포산, CoA-SH가 필요하다.⑤succinyl CoA + Pi + GDP → succinate + GTP + CoAsuccinyl-CoA는 succinyl-CoA synthetase에 의해 thioester 결합이 가수분해되어 탄소 4개의 succinate를 생성하는데 이 때 발생되는 자유에너지는 GTP를 합성에 이용되며 이것은 다시 ADP와 반응하여 ATP를 만든다.이 반응은 시트르산 회로에서 기질 수준 인산화를 통해서 직접 높은 인산기 이동 퍼텐셜을 가진 화합물을 생성하는 유일한 단계이다. 일부 포유류의 Succinyl-CoA synthetase들은 GDP에 특이성을 가지며, 그 밖의 Succinyl-CoA synthetase들은 ADP에 특이성을 가진다. Succinyl-CoA synthetase에 의해 생성된 GTP는 dinucleotide diphosphokinase(nucleoside diphosphate kinase)에 의해 인산화기를 ADP로 주어 ATP를 생성할 수 있다.⑥succinate + FAD ↔ fumarate + FADH2Succinate는 succinate dehydrogenase에 의해 탈수소되어 fumarate를 생성한다. 이 탈수소반응의 수소수용체는 FAD이다. Succinate dehydrogenase는 mitochondria 내막 전체에 존재하며 반응들을 요약해 보면, Acetyl-CoA와 옥살로아세트산과의 축합으로 두 개의 탄소 원자가 회로로 들어간다. Isocatrate dehydrogenase와 α-Ketoglutarate dehydrogenase의 촉매작용으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탈 카르복실화 반응에서 두 개의 탄소원자가 CO2의 형태로 회로를 떠난다. 또한 4 개의 산화반응에서 네 쌍의 수소 원자들이 회로를 떠난다. 두 분자의 NAD+가 isocitrate와 α-Ketoglutarate의 산화적 탈 카르복실화 반응에서 환원되고, 한 분자의 FAD가 숙신산의 산화반응에서 환원되며, 한 분자의 NAD+가 말산의 산화에서 환원된다. 한 분자의 NAD+가 pyruvate에서 Acetyl-CoA를 형성하는 산화적 탈 카르복실화에서도 환원된다. 그리고 한 개의 높은 인산기를 가진 화합물(보통 GTP형태로)이 Succinyl-CoA의 thioester결합의 분해로부터 생성된다. 두 분자의 물도 소비되며 한 분자는 citryl-CoA의 가수분해에 의한 시트르산의 합성에서 또 한 분자는 fumarate의 수화에서 소비된다.(2) TCA cycle의 조절TCA cycle의 진행은 ATP에 대한 요구에 의해 일어납니다. 즉, ATP가 적을 때 회로가 촉진되고 ATP가 과량일 때 억제됩니다. 또한 Acetyl-CoA와 NADH는 에너지가 충분하다는 신호를 보내어 회로를 억제하고, NAD+와 CoA는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신호를 보내 회로를 촉진합니다. 이러한 경로의 조절은 4개의 효소단계에서 조절되는데, 이제부터 그 조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먼저, 피루브산에서 Acetyl-CoA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PDH복합체는 고농도의 ATP, Acetyl-CoA, NADH에 의해 그 작용이 억제됩니다. 반면에 AMP에 의해서는 활성화됩니다. 즉, 이 화합물들이 풍부하게 존재하면 그 세포는 이러한 조절 작용에 의해 에너지 대사가 느려집니다. 그 다음으로 oxaloacetate와 Acetyl-CoA로부터 시트르산을 합성하자 다이카르복실산(dicarboxylic acid)을 만들기 위해 글라이옥실산 회로(glyoxylate cycle)라고 불리는 변형된 TCA회로를 이용한다. 즉 호기성 미생물들은 초산에서 피루브산을 생합성할 수 없으며, 따라서 oxalacetate는 succinate와 malate의 산화 등 2가지 방법으로 얻는다. 첫 번째 반응으로 TCA회로의 중간 대사물질인 isocitrate가 glyoxylate와 succinate로 분해된다. 두 번째 반응은 Acetyl-CoA와 glyoxylate와 반응하여 malate를 만든다. 반응계산을 하면 Acetyl-CoA에 있는 2개의 탄소는 glyoxylate의 2개의 탄소로 치환되고, TCA회로의 주요 구성물질인 oxalacetate의 전구물질인 malate를 만들기 때문에 glyoxylate 회로는 TCA회로의 시동과정으로 여긴다.글라이옥실산 회로(glyoxylate cycle)는 Acetyl-CoA와 옥살로아세트산(oxaloacetate)이 축합하여 시트르산(citrate)을 생성하고 Aconitase에 의해 isocitrate가 생성되는 단계까지 TCA회로와 같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경로가 달라진다. isocitrate의 분해는 Isocatrate dehydrogenase에 의해 일어나지 않고, Isocatrate lyase에 의해 succinate와 glyoxylate를 생성한다. 이때 생성된 glyoxylate는 malate synthase에 의해 회로 내로 새로 들어온 두 번째 Acetyl-CoA와 축합하여 L-말산을 생성한다. 이어서 말산은 옥살로아세트산(oxaloacetate)으로 산화되고, 또한 NAD+가 NADH로 환원된다. 생성된 옥살로아세트산(oxaloacetate)은 다시 Acetyl-CoA와 축합하여 다음 회전을 시작하게 된다.이 회로가 1회전을 하면 2분자의 Acetyl-CoA가 소비되고, 1분자의 석신산(succinate)이 합성되는데, 이것은 퓨마르산(fumarate)과 말산(malat.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의 차이점을 서술하시오.철학의 태생은 고대 그리스라고 일컫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세 명의 철학자이자, 스승과 제사 사이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들에 의해서 철학적 기초가 마련되어, 현재까지 지구상에 철학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설립한 아카데메이아에서 같이 공부한 적도 있으나, 모방론에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는데 이는 그들만의 인식론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각각 내세웠던 견해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봅시다.모방론이란, 그리스어로 미메스시(m?m?sis)이며, 모방(模倣) 또는 재현적(再現的) 제시,<흉내 내다> <비슷하게 하다>를 뜻하는 동사 mimomai에서 연유된 말로써, 문학이 자연을 모방한다거나 사회현실을 그대로 그려낸다는 개념이지만, 그대로 표절하는 것이 아닌 장인정신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플라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세계의 실체는 이데아의세계가 따로 존재한다고 주장하였으며, 현실세계의 모든 것이 이데아(Idea)의 모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절대적 진리이며, 불변하는 실체인 이데아를 서투르게 모방하는 것이 현실세계라고 하였습니다. 책상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각각 성질이 다른 재료로 만들고 다양한 형태의 여러 책상들이 책상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이 하나의 공통된 원형 즉, 책상의 이데아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책상의 이데아는 목수가 책상을 만들 때 머릿속에 지니고 있는 책상의 원형 또는 본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수들은 여러 종류의 책상을 만들 수는 있지만 책상의 이데아를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목수가 만든 책상은 이데아를 모방한 제 1의 모방이며, 화가 또는 시인이 만든 책상은 제 2의 모방 즉, 모방의 모방이 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플라톤은 문학을 철학의 하의개념 즉, 형이하학으로 보고 비판하고 배격하였습니다. 실재에 대한 왜곡이 심한 시인, 모방의 모방을 만드는 시인, 감성위주로 생각하고 표현하여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시인들은 플라톤이 자신의 공화국을 건설하는데 방해가 되므로 시인을 추방하고, 문학검열제도를 만들게 되었습니다.이러한 이데아론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태양의 비유’와 ‘선분의 비유’, ‘동굴의 비유’인데, 먼저, ‘태양의 비유’를 살펴보면, 이 비유의 이데아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즉, 감각이 아니라 이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옳게 판단하고 무엇이 아름다운지 추한지, 진실인지 거짓인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 있는 능력을 이성이라고 하죠. 바로 그 이성으로만 이데아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데아 중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의’, ‘진실’, ‘사랑’, ‘평화’, ‘믿음’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태양 때문에 여러 가지 물건들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데아를 볼 수 있게 비추는 빛이 있는데, 이것을 ‘선의 이데아’라고 합니다. 즉, 선의 이데아는 이데아 가운데서 가장 높으며, 모든 이데아들은 선의 이데아를 닮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태양처럼 선의 이데아가 모든 이데아를 비추기 때문에 우리는 이데아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다음으로 ‘선분의 비유’를 보면, 이것은 이데아 가운데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데아들은 선의 이데아를 추구하며, 진흙, 먼지, 침대와 같은 구체적인 사물의 이데아보다 정직, 아름다움, 진실과 같은 추상적인 것의 이데아가 좀 더 높은 등급을 가지게 됩니다. 제일 낮은 등급부터 그림자, 그리고 동식물이나 제작물, 약간 높은 등급은 삼각형, 원 등이며, 가장 높은 등급으로 순수한 이데아, 즉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각 물체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 안다고 생각하는 삼각형이나 사각형은 이데아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가 노트 위에다 그리는 삼각형, 사각형은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것을 모방한 것이라고 ‘선분의 비유’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그리고 ‘동굴의 비유’를 보면, 커다란 동굴 속에 죄수들이 오직 동굴의 안쪽 벽만을 볼 수 있도록 묶여있는데 동굴 밖에는 밝은 태양이 빛나고 동굴 바로 앞의 언덕에서 여러 사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굴 안의 사람들은 오직 사물의 그림자만을 보면서 그것이 참된 실재인 듯이 생각하지만 그것은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죠.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사슬을 끊고 밖으로 나와서 참된 세계의 실재(즉, 이데아)를 보게 되고, 지금까지 자신들이 본 것은 단지 허상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로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를 미쳤거나 아니면 잘못된 세계에 나가서 시력을 잃었다고 간주할 것입니다. 그리고 동굴 밖으로 나가려하는 어떤 시도도 금지하며, 다시 동굴 밖으로 나가자고 충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죽이려 할 것이죠. 이것이 바로 플라톤이 제시한 ‘동굴의 비유’인데 그는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이데아론을 잘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벽을 향하고 있던 시야를 밖으로 향하게 하는 교육의 역할, 진정한 교육자의 자격, 교육자의 용기 등의 수많은 요소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진정한 교육자는 반드시 동굴을 벗어나 외부의 세계를 참으로 인식한 사람이어야 하고, 그는 결코 자신만의 고결한 명상을 추구해서는 되지 않으며, 동굴로 다시 내려가 동굴 안의 생활을 계속하면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오도록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고무해야만 하는 것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가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있으며, ‘형상’과 ‘질료’가 결합된 상태로 있다고 하였습니다. 에펠 탑을 예로 든다면 에펠 탑의 형태가 ‘형상’이며, 철 덩어리를 ‘질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을 하자면 형상과 질료의 관계는 에펠 탑의 형태와 철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죠. 또 달리 빵은 여러 재료(질료)로 만들어 질 수 있지만, 빵이라는 형태(형상)가 부여됨으로써 빵이 되는 것이죠. 여기서 형상은 모양뿐만 아니라 기능, 구조가 될 수 있으며, 빵을 만들기 전에도 머릿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릿속에 있는 것을 질료인 밀가루를 가지고 빵을 만듦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을 현실에서 볼 수 있다고 했던 것입니다.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모방 이론이 가장 잘 나타나는 장르를 연극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인간 감정의 순화, 즉 카타르시스는 주로 비극에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극작품을 대하면서 공포 그리고 동정심을 느끼며, 이러한 정서의 순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극론으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문학 및 예술은 근본적으로는 모방(미메시스)에서 비롯한 것이고 이것은 인간 삶에 대한 모방이므로 문학 및 예술 작품은 인간 삶에서 가능한 무엇이 예술적으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은 원래 본질적 구조로써 감성과 영감이 분리 될 수 없다고 하여 시인을 추방하는 것에 반대하였고, 문학(시)이 있을 수 있는 세계, 가능성의 세계를 추구함으로써 보편적 진리의 세계를 보여주므로 문학예술은 특수성에서 보편성의 세계를 추구한다는 개연성의 법칙을 주장하였습니다.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누구나 죽음의 본능(타나토스)이 있지만, 카타르시스(katharsis) 즉, <정화> <마음의 배설>을 통하여 죽음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카타르시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시학(詩學)》이라는 책 제6장 비극에 나오는 용어입니다. 즉, 그리스어죠. 뜻은 ‘정화’, 또는 ‘마음의 배설’입니다. 말하자면 마음이 아주 깨끗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비극을 보면 관객들은 주인공의 비참한 운명과 결말 때문에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두려움이나 슬픔, 동정, 연민이 한꺼번에 폭발되는데 이때 이 응어리가 정신적으로 순화되는 걸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너무나 슬픈 영화나 책을 보고나서 엉엉 울고 나면 마음이 풀어지는 때가 있는데, 이때 “내가 어제 읽은 책에서 주인공이 죽었는데 난 그때 카타르시스를 느꼈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즉, 이런 고도의 감정을 느끼게 하려면 작가나 영화감독은 굉장히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이끌어 내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비극에서 주인공의 비참한 운명에 의해서 관중의 마음에 ‘두려움’과 ‘연민’의 감정 등이 일어나게 되고, 이 인간적 정념이 어떠한 형태로 순화되는데, 이는 일종의 정신적 승화작용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카타르시스를 굳이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오르가즘’, ‘희열’, ‘환희’, ‘충만함’, ‘충족감’ 등의 표현으로 바꾸어 쓸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 미하일 바흐찐의 카니발 이론 정리카니발 이론은 ‘웃음이라는 민속전통’의 지속성과 카니발의 특징인 풍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원래 카니발의 어원은 라틴어의 카르네 발레(Carne:고기, vale:격리) 혹은 카르넴 레바레(Carnem:고기, Levare:안먹다)로, 사육제. 즉 고기와의 작별을 고함 이라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카니발은 크리스마스가 끝난 12월 26일경부터 시작되어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날인 재의 수요일까지 계속됩니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부활절 40일전부터 시작되는 사순절에는 예수가 황야에서 단식한 것을 생각하면서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하는 풍습이 있기 때문에 그 전 카니발 기간 동안에 실컷 고기를 먹고 즐겁게 놀던 것이 그 시초입니다. 카니발이 처음 시작되었던 16세기경에도 이때만큼은 귀족이나 평민 모두 신분이나 재산에 관계없이 화려한 복장과 독특한 가면을 쓰고서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전통이 각 나라의 특성과 맞물려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각 지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그래서 이탈리아 베니스 카니발에 대해 조사해보았습니다. 재의 수요일 전 열흘간 계속되는 베니스 카니발이 시작되면 수천 명의 군중들이 베니스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산 마르코 광장(Piazza di San Marco)으로 모여듭니다. 갖가지 모양의 가면을 쓰고 화려한 의상을 차려 입은 가장 행렬들이 광장을 가득 메워 장관을 연출합니다. 이들의 의상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중세시대 귀족의 복장부터 다소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초현대적인 것까지 아주 다양한데 베니스 주민들에게 있어 카니발에 착용하는 가면과 복장은 그들의 부와 창의성, 그리고 정교한 기술력을 상징하기 때문에 카니발이 끝나면 바로 다음해 복장을 준비할 만큼 큰 의미를 지닙니다. 게다가 수백 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페스티발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관광객들의 얼굴에 분장을 해주기도 해 그 즐거움은 더욱 커집니다.축제는 넓은 광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베니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미로와 같은 골목골목마다 가장행렬은 계속되고 있고, 젊은이들은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또한 갖가지 형태의 가면들을 제작하는 상점들은 거리의 관광객들을 유혹하곤 합니다. 수많은 운하와 강 위에는 모든 곤돌라들이 나와 화려한 퍼레이드를 펼치기도 합니다.이러한 축제들은 바흐찐의 카니발 개념 속에서 웃음의 원리를 도출합니다. 카니발의 이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적인 형식으로 민중의 웃음의 문화를 나타낸다고 합니다.① 의식적-구경거리의 형식들 ② (언어로 표현된) 다양한 유형의 골계 문학 작품들 (패러디 포함)③ 거리낌 없는 광장 언어의 다양한 형식과 장르들 (욕설, 신을 걸고 하는 맹세 등.)카니발은 예술과 삶 자체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것이고, 독특한 놀이의 이미지에 의해 형식화된 삶 자체입니다. 따라서 연극과는 달리 카니발은 바라보여지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살고, 전민중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카니발은 연극적 구경거리 또는 연극에서의 연기가 아니라, 카니발을 통해 실제로 살아가는, 일시적이지만 현실적인 삶 자체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웃음의 원리 속에서 구성된 민중들의 제 2의 삶이며, 민중들의 축제적 삶입니다. 카니발적 웃음의 본성인 축제의 웃음은 전민중적이며, 보편적이고, 양면적 가치를 지닙니다.그리고 이탈리아 베니스 축제에 귀족이나 평민 모두 신분이나 재산에 관계없었던 것처럼 카니발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것으로 간주되며, 인간이 마치 새롭고 순수한 인간적 관계들을 위해 재탄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민중문화의 두 번째 형식은 골계문학인데, 이러한 종류의 문학 작품 속에서의 웃음은 양면가치적 웃음입니다. 즉, 카니발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공식적인 지위를 내던지고, 카니발적인 웃음의 측면에서 세계를 인식하게 해 주었습니다.마지막으로 의 특징은 욕설, 때로는 길고 복잡한 험담 섞인 말과 모욕적인 표현을 아주 빈번하게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것 역시 양면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욕설과 같은 것은 자유로는 카니발적 분위기와 세계에 대한 제 2의 웃음의 면모를 창조하게 됩니다. 이러한 거리낌 없는 광장 언어는 공식적인 언어적 의사소통에서도 제외되고 금지된 다양한 언어적 현상들이 축적되어 있는 저장소가 되었습니다.◎ 영화 감상제목: 방과후 옥상 (See You After School, 2006)감독: 이석훈영화 은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로 고교시절의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현실적인 내용이 바탕으로 되어 있습니다. 받침 하나 빼면 고문고등학교가 되는 악명 높은 공문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억세게 운 없는 고교생 남구달이 학교 짱 강재구를 건드려 방과후 옥상에서 보자는 청천벽력 통보를 받은 뒤, 이를 피해보려 노력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그린 학교 코미디입니다. 그리고 카니발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영화입니다.이 영화에서 중요한 지형학적 공간은 학교옥상입니다. 학교옥상은 이율배반적인 장소입니다. 옥상에서 여러 가지 과학실험이나, 바람을 필요로 하는 놀이, 즉 이로운 일들을 할 수 있는 반면 싸움의 장소가 되는 해로운 장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소설이나 영화 같은 곳에서 보면 옥상이라는 곳은 싸움과 결투가 따르는 공간으로만 인식 될 뿐, 우리가 학교에서 하는 여러 가지 유용한 일들과 필요한 공간인 옥상의 이미지는 전혀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이 영화의 주인공인 남궁달은 연극적 구경거리 또는 연극에서의 연기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 자체입니다. 이 곳 에서의 학교옥상은 참담한 공포의 공간이며, 헤어나올 수 없는 심연, 실로 두려운 무한지옥입니다. 학교 짱으로부터의 “방과후 옥상이다” 라는 청천벽력 같은 사형선고를 받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올라가느냐, 도망가느냐, 사느냐, 죽느냐. 학창 시절을 보낸 이라면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되는 일 없어도 밝게, 깨끗하게, 자신 있게 주어진 고난을 헤쳐 나가는 남궁달의 애처롭고도 꿋꿋한 모습은 먹이사슬의 피라미드 속에서 매일을 사생결단 내듯 살아가는 다양한 세대의 관객들에게 유쾌한 공감과 따뜻한 웃음을 건넵니다.그리고 주인공 남궁달의 오늘 하루는 그가 가장 용감했던 날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가장 비겁했던 날이 될 수도 있는 그런 하루라는 점을 볼 때에 양면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유쾌-조소, 부정-긍정, 매장-부활과 같은 이율배반적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사형제도에 대해서...사형제도를 폐지하는 세계화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 사형제도의 현재 시점과 앞으로의 존폐에 대해 논의 해보고자 이를 작성한다. 우리나라가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한 것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1990년대쯤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 이후로 사형제도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사형수가 제 수명이 다해 감옥에서 죽었다니 그럴만도 한 것이다. 이처럼 사형제도가 무명무실 해진 시점에서 더 이상의 사형제도가 존속될 필요가 있느냐는 제기에 의해 이런 사형제도 존폐문제가 나오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는 사형제도가 폐지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사형제도가 존재하고 있다. 이에 최근 시민들의 의견을 조사해본 결과 사형제도 존속에 찬성이 45.1%, 반대가 33.8%로 모아져 찬성이 10% 이상 높게 나타났다. 대체로 수도권 시민들이 찬성 쪽으로 더 많이 모였는데 이는 그만큼 수도권 지역이 아직은 범죄로부터 안심할 수 없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사형제도의 존속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전 세계가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형제도가 우리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사형제도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현 시점에서의 사형제도 존폐에 관한 문제를 거론하고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사형제도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엄밀히 따지면 사형제도의 유래 같은 것은 없지만 굳이 그 기원을 찾자면 함무라비 법전이나 우리나라 고조선 때의 8조목을 보면 훔친 사람은 그 손목을 자르거나 남을 죽인 사람은 목숨을 빼앗는 인과응보적인 법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문자시대 이전부터도 사형제도는 있었다. 즉,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형벌은 인류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요즘 들어 사형폐지론을 주장하는 것일까? 그것은 현대국가들이 그만큼 개개인의 인권을 중시하기 때문일 것인데 각설하고 이제 사형제도 찬성론의 근거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사형제도 존폐에 관해 가장 흔한 논쟁점은 아마도 그 사형수의 생명, 인권의 문제일 것이다. 사형제도 폐지론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사형수도 염연히 따지면 사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생명, 인권도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사형제도를 폐지한다면 이는 이기적이고 자의적인 살인범의 생명이 희생된 피해자의 생명보다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보호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사형제도 페지론측의 주된 주장인 사람들의 생명, 인권 존중과 모순되는 셈인 것이다. 따라서 피해자의 생명과 인권을 중시한다면 역시 사형제도 또한 존속 되어야 한다.두 번째로 문제가 되는 점은 오판의 가능성일 것이다. 어쩌면 이것도 사형 폐지론자들이 가장 많이 걸고넘어지는 문제일 듯 싶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역시 이러한 오판의 중요성을 중요시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형수를 집행하지 않고 있었다면 이런 오판을 정정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오판이었다는 진술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어쩌면 영영 오판이었다는 진술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이유가 사형제도 폐지론자들의 근거를 뒷받침 해주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과학기술의 세계다. 오판의 문제는 이미 먼 옛날의 이야기다. 많은 과학기술들이 이런 오판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다.세 번째로 문제가 되는 점은 많은 죄수들이 감옥에서 회개한다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독일의 한 감옥에서는 많은 죄수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침으로 그 안에서 모범적인 일들을 한다고 하며 이로 인해 그들의 수감생활을 감면시켜 준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일 것이며 실제로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형수가 아닌 이상 그 감옥 안에서 죄수 자신 스스로 회개한다는 것은 사실상 힘든 일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특별한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시 예로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들자면 그 영화에서 살인죄를 뒤집어 쓴 ‘윤후’가 사형수가 되면서 나중에 ‘신부님’과 ‘유정’의 도움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된다. 하지만 ‘윤후’에게 살인죄를 씌운 진짜 살인자 ‘아는 형’은 그냥 평범한 죄수로 판결됨으로써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뉘우치는 기미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이처럼 한 사람에게서 특별한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이 변화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인 것이다.
영화 “플래툰” 을 보고...지금 우리는 아주 평화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상은 어느덧 먼 나라, 가까운 나라도 없는 국제화 시대로 변했으며 모든 나라는 이제 이웃 나라가 되었다. 전쟁이란 용어는 먼 옛날의 단어가 되어 버렸고, 서로간의 분쟁도 없다. 그래서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쩌면 우리가 늘 꿈꾸던 이상적인 세상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평화로운 시대라 할지라도 전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전쟁은 항상 우리들의 뒤에 숨어있는 존재니까. 앞으로 더욱 긴박해지는 국제화 속에서 국가 간의 경쟁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며 몇몇 나라는 소멸될 지도 모른다. 한 예로 2001년에 일어났던 9. 11 테러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 당시 세계는 매우 혼란스러웠으며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일어난 계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의 전쟁이 있었던 기억을 잊어선 안 되며 다시 한번 그 전쟁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실로 우리는 지금까지 전쟁과 함께 이 시대를 일궈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각 국가 간에 전쟁은 빈번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패권국가로 자리 잡음으로써 실로 미국의 주도 아래 일어난 전쟁은 수없이 많다. 그 한 예로 영화 “플래툰”으로 알려진 월남 전쟁을 들 수 있으며, 이 전쟁은 역사상 미국이 처음으로 패배한 전쟁이다. 패권국인 미국이 패배한 전쟁이니만큼 월남 전쟁은 매우 흥미진진한 부분이 될 것이며 이 전쟁은 후손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줄 것이다. 또한 앞으로 우리가 이끌어나갈 이 시대에 매우 많은 도움을 줄 듯 싶다. 이제 이 월남 전쟁을 바탕으로 그린 “플래툰”이라는 영화를 통해 조금 더 깊은 생각에 빠져보자.이 영화에서 중점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점은 어쩌면 전쟁의 비극성이 아니라 서로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팀웍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듯싶다. 물론 이 영화는 시작할 때부터 전쟁이라는 긴장감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당연히 첫 시발점이 전쟁터의 한 일부였으며 많은 병사들의 시체들을 보여줌으로써 이곳은 전쟁터라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들게 해주고 있었다. 즉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이며 이 세상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존재임을 모든 관중들에게 첫 페이지에서부터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전쟁이 이 영화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면 스토리상 지겹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 영화의 중심점은 아마도 팀원들의 일치감, 즉 협동일 것이다. 팀원 안에서의 내부분열은 아마도 미국이 이 전쟁에서 첫 패배를 하게 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반즈라는 중사와 일라이어스라는 분대장을 두고 두 패로 갈라짐으로써 이미 내부분열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이런 팀 안에서의 분열은 결코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크리스와 그 외의 신병들을 통해서도 그 당시 군대 안에서의 고참들이 신참들에게 얼마나 무관심 했는지도 한 부분으로서 보여주고 있다. 이런 군대 안에서의 서로 간에 해이해짐은 이 영화에서 미군이 서로 두 패로 나뉘어 갈등을 겪게 된 시발점으로 보여 진다.이 영화의 중심 부분인 월남 전쟁은 원래 프랑스군과 베트남 독립군 간의 전쟁으로 시작되었었다. 베트남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베트남을 해방시키고 싶지 않았고 결국 이러한 월남 전쟁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또한 이 전쟁에 미국이 개입함으로서 전쟁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결국 전쟁의 규모가 더욱 커져버렸고 프랑스, 소련, 미국, 한국 등의 여러 나라가 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당시 베트남은 숲으로 울창하였기 때문에 미국이 작전상 전쟁을 주도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 때문에 미국은 고엽제라고 하는 화학약품을 투여하였고 이 약품으로 인해 베트남의 숲을 메마르게 하였다. 이 고엽제라는 약품으로 인해 미국이 전쟁을 유리하게 진행하였지만 이때의 고엽제로 인해 현재까지 생존하고 있는 월남 전쟁 당시의 병사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이처럼 전쟁 당시의 피해는 지금 시대까지도 큰 후유증으로 남아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