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요일” 이란 영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이게 과연 무슨 의미를 말하는 것일까? 하는 강한 궁금증이 들었다. “신은 여덟 번째 날에 조지를 만들었다. 그는 보기에 참 좋았더라.” 라는 대사에 대한 의문을 가진 채 영화를 감상했다.이 영화는 성공한 현대인의 표본이 되는 자, 아리와 사회가 받아주지 않는 자, 장애인 조지를 중심으로 함께 하는 일들로 이끌어진다.조지는 다운 증후군환자이다. 아니 그는 다운 증후군 환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가족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희망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조지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다운 증후군환자로만 본다. 그러하기에 피하게 되고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또다른 주인공인 아리는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지내며 늙어간다. 그것은 동심을 읽어버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데로 움직이는 인형이 되어간다는 뜻이다. 아리는 그런 인형이었다. 매일 7시 30분이면 토스트기가 작동하면서 일기예보가 나오고 그것을 들으면서 출근한다. 그리고 교통체중으로 짜증을 낸다. 직장에서는 유능한 인재일지는 몰라도 인생의 참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불행한 사람이다. 나는 이런 아리의 모습이 현대인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고, 객관적으로 성공해 보이지만 가족이게 버림받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중요한 것을 읽어버린 모습 말이다.조지는 가장 순수한 모습 그 자체였다. 비록 다운증후군을 가진 장애인 이었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조지는 항상 자기 상상 속에 빠져있다. 자기만의 가수가 있고, 돌아가신 어머니도 자기에게는 살아 있다. 조지 에게는 자기만의 사랑이 있고, 자기만의 사는 방식이 있다. 세상물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하면서 늙어가기를 거부한다.이런 아리와 조지는 조지의 개 때문이 인연이 되어 그들은 친구가 된다. 그리고 함께 하면서 아리는 조지의 순수함을 닮아가고 조지는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나간다.처음에 조지는 아리의 도움 없이는 일분 일초도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도리어 조지가 아리를 구원시켜 나간다. 잘 웃지 않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리는 조지를 통해 웃음과 인정을 배우게 되고 그의 사고방식에 동화되어간다.조지가 아리집에서 자고 있을 때 늘 일기예보로 시작하던 텔레비전이 요리 만드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었고 그것은 아리 생활의 전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리와 조지가 팔베개를 하고 잔디에 누워 “딱 1분 동안 누워있자” 라고 하는데 그들만을 위한 일분이라는 소중한 시간이 나에게도 왠지 모를 여유와 따뜻함으로 다가왔다.이렇듯 아리가 조지의 생활에 물들어 가는 것은 참 행복의 의미를 깨닫는, 자신의 문제를 치료하는 과정이었다.인간에게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우리의 사회가 자본주의 체제인 이상 돈이 없으면 불편해지고 불행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어쩔 수 없는 삶을 살면서 세상과 타협해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참 행복을 망각한 채 살면,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일하면서도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바로 아리처럼, 그리고 우리 현대인의 모습처럼 말이다.아리가 행복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되었을 때 조지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딸에게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중 그의 친구들이 아리를 위해 차를 구하는 장면이 있다. 그들은 차를 훔치고 돈도 없이 차를 달라고 한다. 그것은 그들이 너무나 순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나 황당한 일이었을 터이지만 난 그들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아름다워 보였다.차를 들고 회의중인 아리에게 갔을 때 아리도 회의를 버리고 그들을 따라갔다. 아리도 순수함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순수함은 놀이공원을 가동시켰고 폭죽을 터뜨렸다. 그날은 아들의 생일이었는데 그가 달라졌다는 걸 깨달은 가족들은 그를 용서하고 아리는 가족을 되찾게 된다.한편 조지는 아리를 알게 되면서 친구를 위해서 자신의 욕구를 절제해야 하는 예의범절을 배우고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는 초콜렛을 단 하나라도 먹어서는 안된다는 금기사항도 배운다. 그리고 구두를 사기 위해서 엄청난 돈을 가져야 한다는 자본주의 원칙도 배우고 자신의 얼굴 생김 때문에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선물조차 건네줄 수 없고 함께 춤을 출 수도 없다는 철저한 소외감을 배운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자신은 자신의 누나와도 함께 살 수 없다는, 자기는 다른 사람과 다른 어떤 특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이 있을 곳이 없고 아리에게도 더 이상 자신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미련 없이 죽음을 택한다. 비록 조지는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한 얼굴을 하고 옥상에서 뛰어들지만 난 너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죽음밖에 없었을까? 조금만 더 사회와 융화되도록 노력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아있는 장애인들에게 현실의 벽을 허물 수 없다는 절망을 안겨준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2007년 4월 16일 오전에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 되어 최소 범인을 포함 33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 됐다. 7시15분 쯤 신입생 900명을 위한 기숙사 건물에서 총기 사건이 발생했다는 911 제보 전화가 경찰에 걸려왔으며 2시간 후 공학부 건물에서 2차 총격이 발생한 뒤 범인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고 한다.최고의 참사를 낸 총기사건 범인은 한국교포였다. 그는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한 미국 영주권자로 한국국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평소 내성적 이여서 주변사람들과 접촉이 별로 없었고, 주변에서는 그를 외톨이라 하였다. 한 교수는 ‘내 인생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외로워 보였다’ 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혼자 지내야만 했다. 언론에서는 그를 폭력적이고 싸이코 라는 식으로 기사를 보냈지만 나는 환경이 급격히 바뀌고 적응할 틈도 없이 인종차별을 받는 나라에서 견디기 힘들었던 그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못 빠져나왔던 것 같다. 이런 것들이 그를 범인으로 만든 것이다.미국은‘다인종 다문화' 국가다. 버지니아공대만 해도 전체 학생 2만6천여명 중 아시아 출신이 1천600여명에 달한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에서 적응 하기란 어느 누구나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도 이런 입장들을 이해 할 수 있었을 텐데 버지니아 공대에는 유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어느 하나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유학생들이 참여하기엔 미흡하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조승희 씨는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절실히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이럴 때 학교나 사회복지 기관 등에서 적극적으로 유학생들에게 손길을 뻗었다면 이런 비참한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사건이 우리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외국 노동자들에 대한 각종 차별이 범죄 동기화 하지 못하게 이들의 인권 보호에도 적극적이여 한다. 그들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것은 그들에게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배제 시켜야 한다.
?정신지체(1)정의정신지체란 평균이하의 지적 기능 수준과 동시에 적응행동에 결손이 있고, 이러한 두 가지 특징이 18세 이전에 발병하는 장애이며, 미국정신지체협회 에서는 정신지체가 현재의 기능수행에 상당한 한계가 있으며, 지적기능수행이 평균보다 유의하게 낮으며(IQ 70-75이하), 동시에 이와 관련 있는 한계로서 적용 할 수 있는 적응 기술 영역인 의사소통, 자기보호, 가정생활, 사회기술, 지역사회 활동, 자기관리, 건강 및 안전, 기능적 교과학습, 여가, 작업 중 두가지 이상의 영역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18세 이전에 나타난다고 정의하고 있다.(2) 분류* 경도(mild; IQ 50-70) :언어의 이해와 언어사용이 지체되는데, 그 정도는 경미하며 다양하다. 자립성의 발달을 저해하는 실무적인 언어 상의 문제점들이 성인기까지 지속될 수 있다. 성인기 동안 이들은 재활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사회적, 직업적 기술을 성취할 수 있지만, 때로는 감독, 지도, 지원이 필요 할 수 있다. 적절한 지지를 받는 가벼운 정도의 정신지제 자는 대개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지도 감독을 받으면서 성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중등도(moderate; IQ 35-49) :정신지체 가운데 약 10%를 차지한다. 이수준의 정신지체자의 대부분은 초기 소아기에 의사소통의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일부는 언어에 의존하는 직업보다는 시각- 공간적인 기능면에서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는 심하게 서툴지만 사회적 접촉과 간단한 대화나누기를 즐긴다. 언어발달의 수준은 다양하여 그들 중 일부는 간단한 대화에 낄 수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기본적인 요구를 겨우 전달할 수 있을 정도의 언어만을 갖추고 있다. 대부분의 중등도 정신지체 자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걸을 수 있지만 간질 및 신경학적, 신체적 불구 또한 흔하다. 또한 사회적 기술과 직업적 기술의 훈련에 의해 도움을 얻을 수 있지만, 초등학교 2학년 수준 이상은 넘어서기 어렵다.* 중도(sever; IQ 20-34) :심한정도의 정신지체. 정신치제 자들 가운데 3~4%를 차지한다. 초기 소아기 동안 의사소통 언어를 조금 배우거나 대로는 전혀 배우지 못한다. 이 범주에 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당한 정도의 운동장애나 기타 관련된 결손으로 인해 고통을 받으며, 이는 임상적으로 유의한 중추 신경계 손상이나 발육부전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가르침을 통하여 제한된 정도로 기술을 습득할 수 있지만, 몇 가지 “생존”에 필요한 단어는 연습 없이도 읽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최중도(profound IQ 20이하):아주 심한 정도의 정신지체. 정신지체 자들 가운데 대략 1~2%를 차지한다. 소아기 동안 이들은 감각운동 기능에 있어서 상당한 장애를 나타낸다. 언어의 포괄적 이해와 구사는 잘해야 기본적인 지시를 이해하고 단순한 요구를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구분하고 짝짓는 정도의 가장 기초적이고 단순한 시각-공간적 기능은 습득할 수도 있으며, 이에 속하는 사람은 적절한 감독과 지도하에 가사 외 실용적인 작업의 작은 부분에 참여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기질적인 원인을 밝힐 수 있다. 간질, 시각 및 정각장애와 같이 운동성에 영향을 미치는 심한 신경학적 또는 다른 신체적 불구들이 빈번하다. 고도로 체계화된 환경 아 래서는 적절한 발달이 가능하다.(3) 정신지체에 대한 잘못된 견해1) 정신치체는 유전적 병이다.정신지체는 유전이 아니며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일어난다. 뇌손상이 있기 전에 빨리 원인을 알고 조치하면 정신지체를 막을 수도 있다.2)정신지체는 일종의 정신병이다.정신지체와 정신병은 다르다. 정신병은 일시적이며 성인, 청소년기에 주로 나타나며 지적능력에는 문제가 없고 상담, 약물 등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정신지체는 일생동안 지속적이며 어릴 때 발견되고 지적능력에 문제가 있으며 치료가 가능하지 못하다.3)정신지체는 고칠 수 있다.정신지체의 원인은 너무나 다양하고 원인을 의학적으로 명확히 규명하기도 어렵다. 원인이 파악되었다 하더라도 치료가 가능한 경우는 거의 없다. 정신지체인의 재활은 의료적인 면보다는 적절한 교육기관을 찾아서 조기에 교육을 받는 것이다.4) 정신지체는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가르쳐도 좋아지지 않는다.조기에 아동에 맞는 적절한 특수교육, 통합교육, 및 언어치료, 작업치료 등을 받으면 많은 진보가 나타난다.?자폐증(발달장애)(1)정의자폐는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고 말이나 몸짓 등으로 의사소통하는데 있어서 장애를 보이며 활동과 관심영역이 제한되어 있는 특성을 보이는 장애이다.출생일로부터, 또는 일반적으로 거의 생후 30개월 이전에 나타난다. 청각 및 시각 자극에 대한 이상 반응이 있고, 말을 듣고 이해하는데 심한 장애가 있다. 언어발달은 대명사 전도, 미숙한 문법 구성, 추상어를 사용하는 구사능력의 장애 등이 따른다. 일반적으로 말이나 몸짓에 의한 언어에 장애를 가지고 있다. 사회적 관계 형성에 있어서 장애는 5세 이전이 가장 심하고, 눈맞추기, 사회적 접촉, 협동놀이 등에 있어 장애를 보이며 같은 행동의 이상스런 반복, 변화에 대한 저항, 기묘한 대상물에 대한 애착 등이 있다. 추상적, 상징적 사고나 상상놀이 능력이 떨어진다. 지능은 지체에서 정상 혹은 그 이상까지의 범위에 분포되어 있다.(2)자폐증의 원인1) 심인설태어날 때 에는 정상적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잇었지만 양육환경에 문제가 있어서 장애가 생긴다고 하는 견해이다. 즉 유아기의 환경적 영향, 특히 모자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견해이다.
난 보육교사가 되겠다고 생각해 왔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교사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막연히 좋은 보육교사가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딥스'를 읽으면서 액슬린 박사와 딥스의 선생님들은 이렇게 안일한 나의 태도에 경종을 울려 주었고, 좋은 교사가 무엇인지에 대해 가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딥스 라는 아이는 나의 눈에 굉장히 불쌍하게만 비추어 졌었다. 부모님의 무관심함으로 인해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딥스는 말도 하지 않으려 하고, 자기만의 세계 속에 있으려고 하였다. 그런 딥스가 액슬린 선생님과 놀이를 하면서 점차 말도 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결국에는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가‘딥스’의 줄거리 이다.예전에 딥스를 읽었을 때에는 딥스 부모님의 양육태도만을 탓하고, 아이기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놀이를 통해 딥스가 보여주는 행동들을 보면서 아이들의 생각과 감정이 놀이를 하면서 표현되는 것에 대해 신기해하며 읽었었다. 놀이치료 시간에 딥스가 보였던 많은 행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딥스가 아빠를 모래 속에 넣고 꺼내지 않으면서 자신의 분노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던 내용이다. 얼마나 아빠에 대한 미움이 컸으면, 그 작고 여린 아이에게서 그런 행동이 나왔을까? 라고 생각을 했었다.이번엔 과제를 하기 위해 ‘딥스’를 읽었다. 예전에 읽은 경험이 있는 책이여서 편하게 과제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 되었다. 다 읽고 난 후 딥스와 액슬린 선생님의 관계를 통해 내가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느낀 후에 책을 잘 읽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액슬린 선생님을 중점으로 두어 읽게 되었다.액슬린 선생님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딥스의 놀이치료 선생님이다. 딥스가 액슬린 선생님과의 놀이시간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은 책을 읽었다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이야기 이다. 또 딥스가 자신의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딥스가 놀이시간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액슬린 선생님의 기다림과 배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매 놀이시간 마다 액슬린 선생님은 딥스의 행동들을 하나하나 차분하게 바라보며 딥스의 행동을 이해하려 하였던 것과, 또 딥스의 질문과, 상황에 맞는 한마디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한다는 것을 읽게 되었다. 그렇게 하는 목적이 딥스의 치료를 위해서라는 생각에서 그랬겠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가 액슬린 선생님의 행동을 질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액슬린 선생님이 단지 치료를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구나 라고 느끼게 된 것은 선생님과 딥스의 놀이치료 시간이 많이 진행 되었어도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태도로 딥스를 정말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구나 라고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낀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