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과 교육에 관한 국내외 학자들의 정의를 모아 분석해 보고 자기 나름대로 다시 정의해 보시오.사회과교육에 관한 정의는 학자의 수만큼이나 많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과교육은 인간과 사회의 바람직한 관계를 연구하면서 사회문제를 학습하고 사회생활에 필요한 국민의 자질을 형성하는 교육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학습의 한 영역이며, 여러 가지 사회과학의 연합체이며, 또 교육과정의 한 영역에 속한다. 사회과교육에 대해서 국내외 학자들은 아래와 같이 정의하였다.벵크스 : “사회과는 지역사회, 국가, 세계의 시민생활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지식, 기능, 태도 가치관을 교수하는 초. 중등학교의 교육과정이다”울에버와 스컷 : “사회과 교육은 과학적 방법으로 얻어진 지식과 체계적으로 형성된 개인적 가치관을 기초로 하여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경험의 총체이다”마토렐라 : “시민성 교육을 위하여 응용된 사회과학적 정보와 탐구방식 및 개인, 집단, 사회의 이해를 위하여 관련된 정보와 탐구 방식”서재천(공주교대 교수) : 사회과는 시민성을 기르는 교육과정이다.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는 물론이며 그에 따른 의무를 교육함에 있어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이러한 시민성 교육은 학교교육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이들을 종합해본다면 웨슬리의 정의를 빌려볼 수 있는데, 그는“사회과는 사회과학이 교육적 목적으로 간략화된 것”(Wesley, 1950: 34)이라고 정의했다. 이 이후에도 1977년에 바르 등이 사회과에서 시민성교육을 강조하였는데, 결국 오늘날의 학자들을 대부분이 이들 시민교육을 사회과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요 본질이라고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주사회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시민성 교육에 초점을 둔 사회과 교육에 대해서 내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민주적 자질을 갖춘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이다.”2. 현행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 한 단원을 선정하여6학년 중에서 1단원 선택)교육과정 영역별 목표5학년 단원목표5학년 학습목표가. 지식 (영역의 통합)? 사회의 여러 현상과 특성을 그 사회의 지리적 환경, 역사적 발전,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제도 등과 관련지어 이해한다.- 지식ㆍ이해① 사실적 지식목표② 개념적 지식목표③ 일반화 지식목표5-1-2. 우리가 사는 지역? 사실적 지식목표ㆍ도시와 촌락의 생활 모습 비교를 통해 도시의 특징을 찾아 낼 수 있다.ㆍ촌락지역의 생활 모습에 관련된 사실, 현상,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ㆍ촌락 지역의 생활 모습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개념적 지식목표ㆍ도시 지역에 발달하는 여러 가지 기능을 파악할 수 있다.-ㆍ도시화과정에서 드러나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다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ㆍ촌락의 문제와 도시 문제와의 상호 관련성을 파악할 수 있다.?일반화 지식목표ㆍ우리나라의 도시발달 과정에서 드러나는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ㆍ다양한 인구 이동의 모습과 오늘날 우리나라 인구 이동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나. 지식 (사회 생활 영역)?사회 생활에 관한 기본적지식과 정치,경제,사회,문화현상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현대사회의 성격 및 민주적 사회생활을 위하여 해결해야 할 여러문제를파악한다..다. 지식 (역사 영역)? 우리의 전통과 문화의 특성 파악할 수 있고, 우리 문화와 민족사의 발전상 이해할 수 있으며, 인류 생활의 발달 과정과 각 시대의 문화적 특색 파악한다.라. 기능?능력?사회 현상과 문제를 파악하는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획득, 분석, 조직, 활용하는 능력을 기르며 사회생활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탐구 능력, 의사 결정 능력 및 사회 참여 능력을 기른다.- 기능①정보획득 및 활용 기능목표②탐구 및 의사결정 기능 목표③인간관계 및 사회참여 기능 목표?정보획득?활용 기능목표ㆍ조사 활동을 통해 도시로의 인구 집중 원인을 알 수 있다.-ㆍ주어진 자료를 활용하여 인구 집중에 의해 파생된 도시 문제의 해결 방안을 창의적으로 제시한다.ㆍ촌락립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다.ㆍ설문 조사를 통해 지역의 문제점을 안다.ㆍ촌락의 발전 사례를 찾아 다양한 방법으로 발표할 수 있다.?인간관계및사회참여기능목표ㆍ촌락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알 수 있다.ㆍ촌락을 발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마. 가치?태도? 민주적인 생활 태도? 사회 문제들에 관심? 민족 문화 및 민주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태도.- 가치·태도① 바람직한 가치·태도 목표② 합리적인 가치·태도 목표?바람직한 가치·태도 목표ㆍ인구 이동 원인에 대한 조사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ㆍ촌락 지역의 문제점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합리적인 가치,태도 목표ㆍ도시 문제 해결 방법 탐구와 관련하여 다양한 창의적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다.3. 2007년 개정 사회과 교육과정 학년별(3~6학년) 내용 주제 중에서 2개를 선택(역사영역 주제 제외)하여 그 주제 내용요소의 학년별(3~6학년) 연계관계를 체계화하고 연계된 학년별 주제의 내용요소를 분석하여 주제구성의 특징을 파악하시오.지리부분3학년4학년6학년(1) 우리가 살아가는 곳(1) 우리 지역의 자연환경과 생활 모습(1) 아름다운 우리 국토(4) 사람들이 모이는 곳(3) 우리 지역과 관계 깊은 곳들(5) 여러 지역의 생활(2) 환경을 생각하는 국토 가꾸기(5) 세계 여러 지역의 자연과 문화일반사회부분3학년4학년6학년사람들이 모이는 곳경제생활과 바람직한 선택우리 경제의 성장과 과제안 내 글핵심요소수단적 요소가치요소발전적 요소3학년(1) 우리가 살아가는 곳우리가 사는 고장의 위치와 자연 환경, 인문 환경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것들이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는지 이해한다. 다양한 종류의 지도를 활용하여 고장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기른다. 또한 고장에 있는 다양한 공공 기관들과 우리 생활과의 관계를 이해한다.우리 고장의 위치와 자연 환경, 인문 환경의 특성 파악다양한 종류의 지도우리 고장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안목 신장우리 고장의 위치, 자연환와 영역을 확인하고 국토의 자연적, 인문적 특성을 파악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자연 환경과 인구, 교통, 산업, 문화 등에 관한 주요 사실과 현상을 파악하고, 사람들이 지형과 기후에 어울리는 의식주 생활을 하고 있음을 이해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자연적, 인문적 특성을 사례 지역을 통해 확인하면서 지도, 그래프, 도표로 나타내고, 주제도와 일반도 등 여러 가지 자료에서 각 지역에 대한 정보를 읽어 내는 도해 기능을 기른다. 아울러 앞으로 다가올 통일에 대비하여 북한의 자연 ? 인문 지리적인 특성을 이해한다.세계 속에서 우리나라의 위치와 영역 확인, 국토의 자연적, 인문적 특성 파악지도(주제도와 일반도), 그래프, 도표세계 속에서 존재하는 한국에 대한 관심 갖기, 도해 기능 신장통일에 대비하여 북한의 자연·인문 지리적인 특성 이해4. 사회과 탐구기법을 활용한 수업안을 제시하시오.(자원인사초빙,조사학습)단 원 명2.문화재와 박물관박물관 견학일시2007. 9.13. 3 교시장소4학년 1반 교실학 습 문 제박물관의 종류와 하는 일을 이해한다.교과서쪽25-27차 시8/18사회과탐구20-25학 습 목 표박물관의 종류와 하는 일을 조사하여 설명할 수 있다.학 습과 정교 수 ? 학 습 활 동시간(분)자 료 및유 의 점도 움 교 수 활 동체 험 학 습 활 동문제인식동기 유발학습문제♧전시 학습확인◎ 옛 도읍지-옛 도읍지는 어디인가?◎ 옛 도읍지의 특징-옛 도읍지가 있었던 도시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학습문제 제시♧전시학습 상기◎ 옛 도읍지가 있던 곳- 신라: 경주 -백제:공부, 부여-고려:개성. 조선: 평양, 서울◎ 옛 도읍지의 공통점 말하기-큰 강이 있다. -산을 끼고 있다.-넓은 터가 있다.? 학습문제 확인53◇사회책◇사회과 탐구◇사회과 부도박물관의 종류와 하는 일을 설명할 수 있다.-가장 알고 싶은 조상들의 생활 모습은 무 엇인가?- 농사짓는 데 사용한 도구- 인쇄술의 발달 모습- 김치의 종류- 주택의 발달 모습과 특징문제탐색문제탐구정리학습안내문제해결평가선택학습학습정물관의 종류와 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한다.♧순회하며 발표용지 작성 지도하기- 조사 내용 발표하기◎박물관의 종류는?◎ 박물관의 하는 일은?◎ 미래의 박물관 꾸미기◎ 보충학습지 해결◎ 학습 결과 정리-여러 분야의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은?-특정분야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은 무엇있는가?-농사의 변화돈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박물관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학습과제 제시♧학습 활동 및 방법 확인-박물관의 종류는?- 박물관의 하는일은?등 질문사항을 박물관 안내인에게 질의한다.♧질의 응답 결과 전지에 작성-종합 박물관 : 2분야 이상의 자료를 전시- 전문 박물관 : 역사, 과학 , 산업, 민속, 화폐등.-자료의 발굴, 수집, 조사, 연구,보존처리, 분류, 전시, 문화 교류, 교환 전시, 문화 행사, 홍보-‘나도 박물관장’ 꾸미기- 보충학습지 해결하기-종합 박물관(국립 민속 박물관, 지방 박물관)-고인쇄 박물관, 과학 박물관 , 철도 박물관, 향토 사료 박물관 박물관, 농업박물관,산림 박물관, 화폐박물관, 석탄 박물관 등-농업 박물관-자료의 발굴 및 수집, 자료조사 및 연구, 자료의 보존 처리, 자료으 분류 및 전시, 문화 교류와 국위 선양을 위한 교환 전시-문화 및 박물관 홍보○ 차시 과제 확인하기-우리 고장의 박물관 조사하기-가보고 싶은 박물관 조사하기315482기본학습지보충학습지심화학습지보충학습지단 원 명2. 근대 사회로 가는 길교과서쪽사회 71~73사탐 72~77학습문제실학 운동에 앞장선 실학자들의 주장을 조사 발표하기차 시5/16학습목표실학 운동에 앞장선 실학자들의 주장을 조사?발표하고 근대화를 위한 우리 조상들의 노력에긍지를 가질 수 있다.학습 단계주 요학습내용교수 - 학습 활동시간교 수 활 동학 습 활 동문제파악동기유발주제선정♧ 학습 분위기 조성 및 동기유발? 스피드 게임하기- 조선시대 위인 맞추기- 위인 카드를 사용하기- 박지원, 정약용, 김정호 등 실학자를 한 명 씩 꼭 넣는다.학습 문제 안내하기♧ 동기유발? 스피드 게임하기- 짝꿍 중 한 ?발표
과거, 현재, 미래. 우리는 일반적으로 시간을 이 세 단계로 구분한다. 세 가지 시간의 이름. 이것은 과연 단순한 ‘순서’ 에 따른 나열일 뿐일까? 우리는 보통, 이 셋 중에서도 현재에 가장 큰 의미를 둔다. 하지만, ‘지금’ 이 전부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어제는 과거의 오늘이다. 수많은 ‘오늘’ 이 모여 과거가 된 것이고 그것은 지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내일은 미래의 오늘이다. 이 오늘은 지금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현재, 미래 이 셋은 서로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단단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영향이라 함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에 좋은 영향만을 받기 위하여 과거를 성찰해 보고, 또한 미래를 예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는 과거를 성찰하는 것. 즉, 역사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고자 한다.우리는 보통, 어떠한 것을 알려고 할 때-즉, 본질을 알아보고자 할 때-그것의 ‘방법’을 연구한다. 우리도 또한 역사를 알기 전에 먼저 역사의 ‘방법’ 에 대해 고찰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풍경』에서 저자는 역사의 방법을 밝혀내면서 궁극적으로 역사의 가치와 본질을 독자에게 일깨워 준다. 그리고 나아가, 역사가의 바람직한 역할까지 제시한다.내 생각에 과학, 역사, 예술의 공통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것들은 모두 은유, 패턴의 인식, 그리고 어떤 것이 다른 것과 ‘같다’ 는 인식에 의존한다는 것이다.)여기서 저자는 역사를 묘사하는 행위와 같다고 주장한다. 재반복이 불가하기 때문에, 역사는 묘사일 수밖에 없으며, 묘사여야만 하는 것이다. 묘사, 그림그리기는 그리는 사람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감상자에게 자연스레 그린사람의 인식의 틀을 강요하게 된다. 여기서 역사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고 필연적인 제약이라고 할 수도 있는 ‘역사는 사실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드러난다. 사람이 쓰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역사를 쓴다 하여도 것은 당연한 것이다.즉, 우리의 상상력이 즉각적인 감각 이상으로 확대되지 못하기 때문에 직접 체험하는 것이 꼭 그것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근에서 살아남거나, 도적 떼로부터 도망치거나, 또는 갑옷을 입고 싸우려 할 때 역사가로서의 능력은 결여된다. 따라서 여기서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역사가는 ‘좀더 높은’ 위치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아야 한다. 즉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역사의 주관성이 드러난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끌어들였다. 타임머신 소설 속 인물들은 오감으로 그 시대를 ‘가장 가깝게’ 체험하지만 그 경험들은 단지, 말 그대로 오감의 만족 또는 경험에 그친다. 좀 더 관조적인 시각으로 시대를 조망할 수가 없는 것이다.또한 저자는 사회과학과 역사학을 비교함으로써 역사학의 성격에 대해 좀더 명확한 지침서를 제공한다.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독립변수의 인정여부이다. 사회과학은 종속변수와 독립변수의 존재를 인정하고 종속변수로부터 독립변수를 걸러내는 데 연구의 초점을 맞춘다. 반면, 역사학은 독립변수의 존재자체를 애초에 부정한다. 즉, 모든 변인을 상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다른 학문과 ‘비교’ 함으로써 얻는 세 가지를 제시하는데, 그 세 가지는 첫째, 역사가 존재의 필요성을 정당화한다. 둘째, 역사와 다른 학문간의 관계를 입증한다. 마지막으로 역사가의 자신감을 고양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역사학의 우월을 입증하고자 한 것 같지만, 사회과학 방법론의 안좋은 점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궁극적으로 역사학의 방법론을 무조건 우위에 세운 것은 학문연구자의 태도에 어긋나는 듯 하다. 저자도 역사학자이기에, 이는 역사학자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반추하게 하는데, 그것은 바로 ‘열린 사고’ 이다. 다른 학문의 가치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다시, 여기서 말하는 역사학이라는 것은 우연성과 상호 연관성을 존중하는 학문인 것이다. 하지만 사회과성 위에 간결성이라는 가치를 둔다. 즉, 우연성과 상호 연관성이 무시되더라도 우선 일반화하여 간결하게 만들고 보는 것이다.당신이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을 현실과 분리하는 것 뿐이라면, 즉 그것이 전달하는 내용보다 일반화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17~18세기 과학혁명 이전의 사고를 답습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즉, 눈에 뻔히 보이는 반대 증거들이 있는데도 아리스토텔레스나 갈렌, 프톨레마이오스의 연구가 정설로 여겨지던 시대 말이다. 나의 전 예일 대학 동료인 로저스 스미스가 표현한 바와 같이, “우아함을 얻기 위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단지 우아함을 얻기 위해 억지 단순화를 할 필요는 없다. 즉 사회과학에서의 연구방향이 일반화된 특정화라면, 역사학에서의 연구방향은 특정화된 일반화인 것이다. 후자가 더 발전된 연구방식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또, 저자는 카오스와 복잡성의 이론을 들어 역사의 본질을 재해석하고, 따라서 역사가에게 새로운 시사점을 제시했으며 나아가 역사가의 위상까지 재정립했다. 카오스와 복잡성 이론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이런 통찰력의 확장을 가져왔다. 우선, 예측 가능한 상태가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옮겨가는 데 따른 환경적 효과를 지적했다. 둘째,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모종의 패턴이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셋째, 이런 패턴들은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누가 거기에 그려 넣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런 결과들은 모두 선형적 관계와 비선형적 관계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향상시켜준다. 즉, 질서를 가진 시스템이 무질서하거나 또는 그 외의 모습으로 전이하는 경로를 보여준다. 이런 결과는 늘 그와 같은 문제와 씨름해야 하는 역사가에게 유용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저자는 역사의 패턴의 성격에 대해 언급했다. 즉, 역사의 패턴은 혼란하고 복잡하게 보이는데, 실제로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즉, 역사의 패턴은 우연적이며 예측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이며, 어느 하나의 조그만 요인에도 후에 벌어질 상황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카오스와 복잡성 이론에서 어떻게 그 무수한 변인들을 다루는지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첫 번째, 카오스 이론에서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은 서술적 역사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테이프를 재생하듯 과거의 과정을 재실행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언제나 다른 결과를 얻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유일하게 역사적 고찰만이 실제로 일어난 일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합한 방법은 역사적 서술이지, 우리가 생각해온 그런 실험이 아니다.”고 굴드는 주장했다.)’ 둘 째, 프랙탈은 예측 불가능 한 것과 예측 가능한 것이 합쳐진 현재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고유한 하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 ‘산의 모양이 시각에 따라 달라 보인다고 해서, 보편적인 모양이 아예 없다거나 모양의 개수가 무한대라고 얘기할 수 는 없다. )’ 셋째, 눈에 보이는 복잡성은 사실 ‘가짜 복잡성’이고 단순한 패턴으로 생각해야한다는 것은 자기조직화와 일맥상통한다. ‘새롭고 놀랄 만한 집단적 행동 양상은 자발적으로 증가하는 복잡성처럼 보이는 것 때문에 나타난다. 또한 물리학적, 화학적, 생물학적, 또는 상징적 수준에서도 나타난다.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세계에 대해 아는 것, 또는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관류하는 가장 주된 통합적 주제다.) ’역사적 사실들의 관계는 무한히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한 바탕을 깔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보는 복잡성은 ‘가짜 복잡성’ 인 것이다.또한 역사가의 위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서 역사가의 위치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중간자 위치이다. 그러나 역사가의 위치를 파악하기에 앞서 학문의 바다에서 의 ‘역사학’의 위치를 재고해 보기를 권하고 있다. 즉, 역사학은 학문의 영역에서 가장 폭넓은 지식과 방대한 정보량을 필요로 하는 ‘만학’의 학문인 것이다. 이 때 역사가의 위치도 전략적 위치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을 하고 태도를 지니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위에 언급한 역사가의 중요한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역사가의 적절한 역할과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역사가 자신도 다른 역사를 대할 때는 독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독자의 바람직한 태도도 고찰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역사가는 자신의 위치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의식에는 과거라는 풍경으로부터의 초연함 또는 그 풍경 위로의 상승을 요구하는 것만큼 어느 정도의 위치 이동, 즉 겸손과 지배력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능력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그의 유명한 저서 군주론 서문에서 이 점을 명확히 했다. 그는 자신의 후견인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신분이 미천한 자가 감히 군주의 정치에 대해 논술하거나 규범을 정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마키아벨리는 그답게 질문에 스스로 답했다. “이는 지형도를 그리려는 사람은 산이나 고지의 특성을 관찰하기 위해 평지에도 내려가 봐야 하고 평지의 풍경을 알기 위해 산위에도 올라가 봐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백성을 이해하려는 이는 군주의 입장이 되어 봐야 하듯이 군주의 본질을 잘 알려면 백성의 지위에 서 봐야만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둘째, 역사가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사이의 균형을 취할 줄 알아야 한다. 셋째, 역사가는 역사학 그 자체를 연구하는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역사가는 감정과 직관이 일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면서 견실하고 공정한 사건의 기록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또는 관습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배워왔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런 것들이 역사를 한다는 것에 가져올 흥분과 경이감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이 분야가 의미하는 많은 것들을 잃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 셰익스피어가 바이올라를 통해 말한 지성, 호기심, 그리고 약간의 공포심으로 가득 찬 첫 대사는 역사의 풍경을 관찰하는 어떤 역사가에게도 시발점이 되기에 충분하다. “친구들이여,?”)
서‘미래를 여는 역사’독후감 쓰기과 목 명:역사의 이해학 과:성명/학번:제 출 일:2008년 3월 30일담당교수:오인택 교수님처음 이 책을 접한 순간, “미래를 여는 역사”라는 제목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역사가들은 오로지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역사를 서술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나는 “왜 역사가 미래를 열 수 있다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먼저 과거의 일부인 역사적 사실들과 현재의 사람들인 역사가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역사는 서술되고, 그 해석과, 과거의 사실들을 선택하는 기준도 새로운 목표가 나타남에 따라서 발전하기 때문에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인 동시에 과거와 곧 출현하게 될, 미래와의 대화라고 여겨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제일 처음, 프롤로그를 읽으며 이 책은 편협한 국수주의에서 벗어나 19세기 중엽 이후 전쟁과 침략으로 얼룩진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고, 미래 지향적인 역사의식을 지닌 책이란걸 느낄 수 있었다. 또한 3국의 학자들이 모여서 격렬한 논쟁 끝에 낸 책이라는 점에서 과거를 잊지 않고, 함께 역사 인식의 공유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책들에 비해서 역사 서술이 비교적 객관적인 과정에서 이루어져서 저자의 생각을 파악하는데 힘이 들었다. 과거 사실 그 자체는 보존되지 않고 소멸되기 때문에 남아 있는 사료를 해석함으로써 과거 사실을 우리는 이해하고 알아나가야 하기 때문에 역사학에서 사료가 가지는 의미는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 레포트를 쓸 때 사료 해석에 많은 중점을 두고 정확하게 해석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먼저 19세기에 들어서, 3국의 개항과정은 자의가 아닌 타국의 강한 압력을 받으면서 전개되었다. 먼저 중국은 “아편전쟁으로 인한 난징 조약으로 중국은 영국에 홍콩을 할양하는 동시에 광저우, 푸저우, 샤먼, 닝보, 상하이 등 다섯 항구를 개방하였습니다. 중국은 자주적으로 관세를 매기지 못하고 영국과 협상을 거쳐야 했습니다.” ) 청의 아편 의 패배에 따라 청은 불평등 조약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일본은 청의 패배와, 미국의 개항요구에 따라 “막부는 이듬해에 200년 이상 지속된 쇄국을 포기하고 개국하였습니다. 이어서 영국, 러시아, 프랑스, 네덜란드와 조약을 맺고 정식으로 서양 열강과 교류,무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군함의 개국 요구와, 미국의 포함외교 속에서 결국 일본도 시대적 흐름에 따라 개국을 하게 되었다. 한국 또한 “당시 열강들은 일본이 조선을 개항시킬 것을 은근히 바라고 있었고, 중국도 조선 정부에 될 수 있으면 일본과 무력 충돌을 피하라고 권고하고 있었습니다”)라는 점에서 조선 정부 역시 개항을 결정하고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고 문호를 개방했다. 흥선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의해 외국과의 교류를 피하고 있었지만,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주장하던 흥선 대원군의 퇴위에 따라 그 흐름은 바뀌게 되었으며, 그 당시 북학파나 청의 양무 운동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통상 개화파의 영향에 의해서 개항하게 되었다. 19세기의 서양은 이미 산업 혁명을 거치고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한 시장과 원료 공급지를 찾아 나서던, 제국주의가 성숙기에 접어들던 시기였다. 하지만 아직 아시아는 서양에 비해서 기술이나 정책적인 측면에서 약했기 때문에 서양의 제국주의에 당해낼 수 없었다. 또한 개항세력과 보수세력의 반발과, 통치자들과 국민들 또한 다른 나라와의 관계속에서 잘 살아나가야한다는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를 반복하였으며, 결국 자의가 아닌 타국의 강한 압력을 받으며 개항을 하게 되었다. 만약 조선이 쇄국 정책을 취하지 않고 조금 더 빨리 국제 정세를 읽고 개국을 하게 되었다면 ‘과연 강화도 조약이라는 불평등한 조약을 맺고 수탈을 당하였을까’라는 의문을 가지며, 조금 더 빨리 개항을 했으면 조선의 발전 또한 빨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아시아에서도 자주적인 민족 운동의 흐름이 나타나게 되었다. 반봉건·반외세라는 주제 속에서 즉 근대화와 민족 자주성의 확립을 실행하 나타나게 된 것이다. 조선의 1894년 농민 전쟁에서 보듯 “농민군은 스스로 전라도와 충청도 일대에 집강소를 설치하였습니다. 여기서 농민군은 부패한 관리와 악명 높은 양반을 처벌하고 천민을 해방시켰으며, 불공평한 조세를 바로잡았습니다.”) 집강소는 일종의 농민 자치 조직이라고 알려져 있다. 농민들은 각각의 군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각종 개혁을 실시하고 농민들을 심하게 수탈했던 지주들을 처벌하였다. 봉건적 토지 관계를 폐지하고 신분 질서를 해체하면서 봉건 사회에서 근대화로 나아가는 반봉건적 성격을 보여준다. 또한 농민 전쟁 과정에서의 “이에 농민군은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 다시 일어섰습니다. 이번에는 경상, 강원, 황해도 등 전국 각지에서 봉기를 일으켰으며, 동학 교단도 가세했습니다.”)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 농민군이 봉기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반외세 운동 또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민중들의 운동이 사회를 바꾸는 기반이 된다. 농민 전쟁 또한 비록 실패했지만, 동학이라는 종교 운동이 아니라 민중 전체가 쓰러져 가는 나라와 함께 자기 삶을 개혁하고 외세를 몰아낸 민족운동이라고 생각된다. 갑오개혁에서 이들의 요구가 일부분 실현되었고 농민군의 이런 경험 또한 이후의 항일 민족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후의 독립협회에 관한 부분에서 “1898년에 독립 협회와 서울 시민들은 여러 차례 집회를 열어, 외세의 이권 침탈을 규탄하고 정부에 재정 개혁과 인민의 기본권 신장을 요구했습니다. 이들은 의회를 만들어 정치에 참여하려고 했습니다.”)라는 부분에서도 민중들의 개혁 요구와 그 참여도가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여러 차례의 집회로 민중들이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단 것을 깨닫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독립협회의 의회 정치의 시도에 따라 조선도 점점 민주적인 나라로 발전하고 있단 것 또한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민중들의 개혁 시도를 나는 높게 평가하고 싶다.교육에 대한 열망 또한 한국에서도 근대식 학교 설립과 민간인들의 학교 설립이 이어졌고, 중국 또한 전국 각지에 신식 학교의 설립 근대적인 국민 교육 체제를 확립시켰으며, 일본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동네에 배우지 않는 집이 없도록 하고, 집안에 배우지 않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부모는 반드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배우게 해야 한다.”) 라는 정부의 명령 아래 교육 제도가 정비되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동등한 교육을 받게 해준 것과 수업료를 무료로 해서 취학률을 90%를 넘기게 함으로써 교육의 중요성을 한 번 더 깨닫게 해주었다. 학교를 통해 근대 학문을 교육받으면서 새로운 지식과 사고방식을 습득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국민 전체의 수준을 높이므로 교육의 실천이 나라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이어진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에서 “학자들은 1905년의 조약 체결이 강제성을 가졌다고 거의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병합’ 이후 36년간에 이르는 식민지 지배가 국제법의 관점에서 보아 합법적인 상태인가 아닌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릅니다. 한국의 학자들은 불법이라고 보지만, 일본의 학자들 사이에서는 아직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라는 부분에 있어서, 일본은 그들의 태도를 확실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합법적인 절차로써 이루어진 조약이 아닌, 왕궁을 제압하고 황제를 위협해서 얻은 조약은 명백하게 불법이다.명백한 불법을 저질렀다면 그 잘못을 덮어둘 것이 아니라 들춰내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일제 강점기 시기에서 “조선 총독부는 1922년에 조선사 편수회를 조선사 편찬 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고, 1932년부터 방대한 분량의 『조선사』를 편찬했습니다. 『조선사』에서는 ‘한국 사람은 단결보다 분열을 일삼는다’, ‘한국 사회는 썩은 물처럼 고여 발전할 수 없다’, ‘한국 역사는 자율이 아닌 타율로 이어져 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라는 부분에서도 일본은 한국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의 의식을 바꾸려는 태도를 보인다.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열등한 여기려는 이런 태도는 명백하게 잘못되었다. 역사는 다음 세대와 현재 세대를 이어주는 한 연결고리인데, 한 나라의 역사를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왜곡하고 그 나라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고 낮추어 보는 행위 또한 잘못되었으므로 일본은 이에 대해서 확실한 입장을 표하고 사과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일본의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우리 민족은 전쟁터에 억지로 동원되었다. 일본의 침략 전쟁에 동원 된 것은 물자만이 아니였다. 군인, 노동자, 위안부로 강제로 전쟁에 내몰고, 조국을 빼앗은 적인 일본을 위해 목숨을 내걸으라고 강요했다.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약 20만 명이 넘는 한국 청년들이 조국이 아니라 ‘침략국’ 일본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워야 했습니다.”), “군 ‘위안소’는 일본 국내는 물론 일본군이 주둔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존재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전쟁의 가해자라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이들에게 보상을 해주길 바란다.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정신대 할머니들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위가 열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고 그 책임을 회피하지만, 피해자들의 증언과 그 증거가 들어나고 있다. 대다수의 원고들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고, 일본은 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일본이 국제 사회에서 신뢰받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사건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전쟁 배상 소송을 대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루 빨리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을 일본 정부가 표하기를 바란다. 또한 “일본의 전쟁 목적은 자존자위와 아시아를 서양의 지배에서 해방시키고 ‘대동아 공영권’을 건설하는 것에 있다고 선언했다. - 일본의 후소샤 교과서(2001) ”)라는 부분에서도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과거의 부끄러운 부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눈을 가린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 비참한 과거가 다시 반복 되지 않도록 사실을 마주하고, 그 사실이 왜곡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