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자강회의 애국계몽운동유영렬, 1992, 『1900년대의 애국계몽운동연구』, 아세아문화사.Ⅰ. 머리말Ⅱ. 대한자강회의 창립과 조직Ⅲ. 대한자강회의 자강독립논의Ⅳ. 대한자강회의 자강구국운동Ⅴ. 맺음말Ⅰ. 머리말- 1905년 11월 을 통하여 한국은 일제의 반식민지체제에 편입됨. 이로 인 해 국권회복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한국의 민족운동은 '애국계몽운동'과 '항일의병 운동'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전개1. 애국계몽운동1) 근대체제를 갖춤으로써 개화기의 당면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음.2) 개화지식층들이 주축3) 한국의 국권상실은 한국이 자강치 못했기 때문이라는 자가반성론적인 입장에서 전개한 국권회복을 위한 실력양성운동2. 항일의병운동1) 유교적 전통체제를 재정비·강화함으로써 개화기의 당면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음.2) 수구지식층이 주축3) 한국의 국권상실은 일본이 침탈했기 때문이라는 외침배격론적인 입장에서 전개한 국권 회복을 위한 무력항쟁운동- 학계에서는 한말의 민족운동연구에 있어서 항일의병운동을 적극적인 민족운동으로서 과 대평가하고, 애국계몽운동을 소극적인 민족운동으로서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음.→ 장기간의 식민통치 때문에 민족운동은 곧 독립운동이며, 무력에 의한 독립운동만이 적 극적이고 올바른 민족운동이라고 주장- But, 무력에 의한 독립운동만이 적극적이고 올바른 민족운동이라는 평가는 지양되어야 함.- 따라서 민족운동의 방법에 있어 폭력적인 강경노선이 옳은가, 비폭력적인 온건노선이 옳 은가는 주어진 역사 상황에 관련하여 평가되어야 함.-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기본적 입장을 가지고 애국계몽운동의 대표적 단체인 '대한자강회' 를 살펴보고 있음.Ⅱ. 대한자강회의 창립과 조직1. 시대적 배경1) 대외적 :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경쟁→ 대한자강회는 열강의 공동승인 하에 일본에 의한 보호국체제가 이루어진 상황 속에 서 창립2) 대내적 : 개화자강계열의 민족운동→ 독립협회가 수구세력의 외국세력의 야합으로 강제해체됨. 그 후 많은 애국단체들이 설립됨. 이 중 한 실력양성을 목표로 하여 창립→ 일본에 대항하여 즉각적으로 실력을 행사하는 것은 실력의 양성만으로 가능하다는 생 각에서 국권회복을 전제로 한 실력양성론을 주장- 대한자강회 창립의 주역 : 윤효정, 장지연, 일인 大垣丈夫→ 일인 고문의 존재는 대한자강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요인이 됨.- 사회의 의혹 : 일인들이 반일운동을 무마하기 위해 大垣을 조종하여 만든 단체- 왜 사회의 의혹을 무릅쓰고 일인과 제휴하여 대한자강회를 조직하였나?ⅰ) 당시 일본의 보호국체제 하에서 일인 고문의 존재가 대한자강회의 설립과 그 활동에 도움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 같음.ⅱ) 일인 大垣丈夫가 자신들과 시국관에 있어 일치한다고 믿었던 것 같음.- But, 대한자강회의 창립에 일인 大垣丈夫가 관여했고 일제가 반일운동을 무마하기 위해 대한자강회를 이용하고자 했다고 해서, 대한자강회가 일제의 조종 하에 창립되고 일제의 조종을 받은 단체라고 보는 것은 무리∴ 대한자강회는 일제의 보호국체제라는 상황 속에서 자강독립의 의지를 집결하여 창립된 구국운동의 중심단체였고, 독립협회와 그 이후의 애국단체들이 전개한 민족운동의 맥락 을 이은 애국단체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3. 조직과 운영- 대한자강회는 본회와 25개 이상의 지회, 그리고 개화자강계열의 인사들과 개신유학적 인 사들로 구성된 1,500여 명의 회원을 가진 전국적인 규모의 단체- 대한자강회의 운영은 주로 통상회와 평의회에서 이루어짐.- 대한자강회 활동을 주도한 인물들은 대부분 과거 독립협회의 주도 회원→ 이는 대한자강회가 독립협회의 맥락을 이은 단체였음을 입증Ⅲ. 대한자강회의 자강독립논의1. 사회진화론에 기초한 자강독립론- 대한자강회는 한말의 시대 상황을 기본적으로 사회진화론적인 시각에서 파악- 또한 사회진화론을 생존경쟁의 원리 곧, 개인 대 개인, 국가 대 국가의 모든 경우에 적용 되는 원리로 인식- But, 사회진화론적인 시각에서 국제적 사회현상을 설명할 때는 우승열패?약육강식의 시대 임을 강조했고, 국내적 사회현상을 설명할 때는 냉혹한 국제사회에성에 있다고 믿었음. 즉, 국권회복의 논리는 국 권회복을 전제로 한 실력양성론, 사회진화론에 기초한 자강독립론(先자강後독립)의 논리→ But, 대한자강회의 자강독립론은 외세의존을 배격하는 자주적 자강독립론- 대한자강회 회원들은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모든 열강을 일본 과 동일한 침략 국가로 간주하여, 외세의존적인 외교독립론을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배 제하고, 자력에 의한 자주적 자강독립의 논리를 주장- 자강독립론은 급진적 폭력행사를 배격하고 점진적 실력양성을 추구- 대한자강회 회원들은 의병의 무력투쟁을 비판→ 약육강식?열국경쟁의 시대에 막강한 일본군을 의병의 힘으로는 도저히 격퇴할 수 없으 므로, 의병투쟁에 의한 국권회복은 전혀 실현가능성×- 의병투쟁은 일본의 對韓强硬策(대한강경책)을 유발시키고 일본군에게 점령지 확대의 구실 만을 주게 되어, 일본의 한국 지배를 더욱 강화시켜 현상의 약화를 초래ⅰ) 의병은 일본군에게 타격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한국 민중에게 심한 고통을 주고 일본군 도 의병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 민중을 괴롭히게 되어, 의병은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일반 민중의 고통만을 가중ⅱ) 의병투쟁은 시세와 국력을 헤아리지 않은 무모한 행동이며, 실력의 격차가 현저한 상 황에서의 의병투쟁은 결국 민족의 실력 소모만을 초래∴ 자국의 독립은 자력에 의한 자주적 자강독립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자력에 의한 자 주적 방법이라 해도 의병투쟁과 같은 무력투쟁의 방법은 지양하고 점진적 실력양성을 주 장함. 이는 일제와 일진회와의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한일합방론에 대응하는 동양평화론 을 주장한 사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음.2. 자강실현을 위한 3개 방법론1) 교육자강론- 교육과 식산에 의한 국민의 지적, 경제적 향상이 유일한 자강책이라 하여, 교육을 식산 과 더불어 자강 실현의 양대 지주로 간주하고 교육자강론을 주장- 대한자강회는 자강 실현의 방법으로,ⅰ) 문명교육을 강조ⅱ) 문명교육과 더불어 실업교육을 강조ⅲ) 문명교육?실업교육과 더불어 애국교육을 강반영2) 식산자강론- 교육과 식산에 의한 국민의 지적, 경제적 향상이 유일한 자강책이라 하여, 교육을 식산 과 더불어 자강 실현의 양대 지주로 간주하고 식산자강론을 주장- 대한자강회 회원들이 본 자국의 식산부진과 국가빈약의 기본요인ⅰ) 인민의 근로정신의 결여와 생산기술의 부족ⅱ) 전제국의 重士主義(중사주의)와 농상공인에 대한 천대와 수탈ⅲ) 정치의 결과 : 수백 년간의 압제정치와 가렴주구, 의무를 외면하고 사리만을 추구하 는 탐관오리와 양반관리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자들 多, 놀고 먹으며 재물을 소모하는 사람들 多- 대한자강회가 제시한 식산진흥책ⅰ) 전제국의 산물인 중사주의와 관존민비·직업존비의 폐습을 타파하여, 관직에서 물러 난 士人(사인)도 실업에 종사케 하고, 국민들의 노동을 천시하는 관념을 불식시킴으 로써, 놀고 먹으며 재물을 소모하는 사람들을 없애고 모든 국민이 자력이 의한 자립 생활을 영위하도록 해야 함.ⅱ) 농상공업에 종사하는 인민에게 자유, 평등의 권리를 부여하고 특히 탐관오리들의 부 당한 압제와 수탈로부터 인민의 재산권을 보장함으로써 근로정신과 생산의욕을 고취 시켜야 함.ⅲ) 각종 산업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그 기술과 기계를 개량·발전시킴으로써 생산성을 증대시켜야 함.- 이 같은 방법을 통해,ⅰ) 궁극적 : 국부를 증진시켜 자강에 의한 국권회복의 기초가 된다고 봄.ⅱ) 현실적 : 일인들의 한반도 이주를 통한 한국의 각종 산업에의 침투, 곧 경제적 식민 지화를 막는 대응책이 된다고 생각했음. 또한 완전한 학교의 시설과 올바 른 교과서의 편찬 및 유능한 교사의 양성 등의 필요한 재원, 곧 신교육 진 흥의 경제적 토대가 된다고 믿었음.3) 정신자강론- 교육과 식산을 자강 실현의 양대 지주로 생각함과 동시에, 조국정신을 자강 실현의 원 동력으로 간주하고 정신자강론을 주장- 조국정신을 교육과 식산을 통한 자강 실현(실력양성)의 활력소로 보았고, 동시에 실 현된 자강을 독립회복(국권회복)으로 연결시키는 연결고리로 간주- 국권회복의 급선무인 조국정신을 배양하 국민국가론1) 대한자강회의 국가관- 국가를 토지에 중점을 두어 군주의 사유물시하는 전통적인 국가관을 부정하고, 국가를 인간에 중점을 두어 국민집단과 동일시하는 근대적인 국가관- 국민과 국가의 관계: 국민을 ‘통치권=주권의 근원 또는 주권의 위임자 그리고 국가 흥망의 1차적 책임자’로 보고 국민의 국정 감독권과 국권참정권을 주장함. 통치자와 정부를 주권의 수임자로 인 식했으며, 주권의 수임자인 정부는 결국 인민보호를 목적으로 설치된 것으로 파악(국민참정권의식은 국민주권의식을 전제로 하여 발생함. 이것으로 볼 때, 국민참정권을 주장했던 대한자강회는 국민을 주권의 근원 또는 주권의 위임자로서 뿐만 아니라 사실상 주권의 소유자로 인식)2) 대한자강회가 구상한 정치체제- 공화정체가 국민국가의 이상에 가장 부합되는 정치체제라고 알고 있었음. 하지만 당시 전제군주체제 하에서 비폭력적 점진적 개혁을 추구했던 그들은 공화정체가 당시 한국사 회에 실현가능한 정치체제로는 보이지 않았음.→ 그리하여 전제군주에 대한 대안으로 '입헌정체'를 구상- 입헌대의제에 기초한 국민국가가 수립되어야 진정한 자강독립이 실현될 수 있으므로, 자 강독립의 전제로서 국민국가의 수립을 추구- 국가의 자강독립은 결국 국민의 권리보장을 위한 것이며 국민의 권리보장은 입헌대의제 에 기초한 국민국가의 수립을 통하여 가능하다고 보아, 자강독립의 목표로서 국민국가의 수립을 추구Ⅳ. 대한자강회의 자강구국운동1. 교육구국운동: 대한자강회가 전개한 민족운동 중 가장 중점을 둔 사업은 교육진흥1) 『월보』와 연설을 통한 교육계몽활동- 교육자강론을 펴고 교육진흥의 중요성을 계몽함으로서 교육구국운동을 추진- 논설과 연설을 통하여, 서양 문명국가의 근대적 교육이념과 교육내용, 교육제도와 교육 방법 등을 소개하고, 신교육에 의한 신학문과 신사상 보급의 중요성을 계몽→ 대한자강회의 언론을 통한 교육계몽활동은 당시 사회일반의 교육열을 일으키는데 크 게 기여2) 정부에 대한 교육관계의 건의활동: 대한자강회의 교육에 관한 건의는 의무
< 영화 '아편전쟁' >중국의 명, 청 시대에는 조선시대와 같이 쇄국정책을 하였다. 중국에서는 이를 '해금정책'이라 하였다. 단지 광동의 광주항만 개방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곳에서 얻는 재원 때문에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었다. 이곳의 교역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공행'이었다. 이들은 청나라에서 지정한 특허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무역을 관할하면서 개인 상업도 경영하는 자산가로 성장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그리고 청나라에서는 자신들과 교역을 원하는 나라들에게 공행을 통한 교역 허가와 천자의 은혜로 교역을 허락한다는 형식 문서들을 강요하였다. 부당한 요구임에도 그들은 청나라와의 교역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까지 청나라와의 교역을 원했던 것일까? 이는 차 때문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생활수준이 올라가자 차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때문에 차의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청나라에서의 차 수입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그러나 이런 차 수입으로 인해 많은 외화가 유출된 영국은 자신들이 만든 모직, 면직 제품들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청나라에서는 모직과 면직 제품이 자국 안에서 해결이 되기 때문에 굳이 영국에서 수입하려 들지 않게 되자 영국은 다른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아편이었다. 영국은 동인도 회사에 아편을 재배하고 가공하도록 만든다. 이때 청나라는 인두세로 없앨 만큼 평화스런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인구가 4억 5천으로 늘어났다. 농업도 부진하고 생산력도 늘지 않아 많은 이들이 생계 걱정으로 불완전한 삶을 살던 시기이기도 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영국에서는 인도와 중국을 오가는 상인들을 통해 아편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이들은 기근과의 투쟁 속에서 삶을 포기하고 빈부를 가리지 않고 아편의 유혹에 넘어가기 시작했다.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아편으로 인해 청나라는 정부의 재정도 줄어들고, 전쟁이 발발할 시 백성들을 동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문제가 대두 되었다. 그래서 청나라에서는 18세기에 아편의 판매·소지를 전면금지하고 이를 발견할 시 엄한 처벌을 내렸다. 하지만 그 이익이 매우 컸기 때문에 이는 쉽게 근절 되지 못했다. 나중에는 정부의 대신들이 차라리 아편을 허가하고 그 수입세를 걷으면 어떻겠냐고 하면서 현실을 인정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임칙서는 반드시 아편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도광제는 그에게 모든 아편 문제를 맡기게 된다.그는 광주로 내려가 모든 상인들에게 아편 대신에 차를 주겠다며 모든 아편을 내 줄 것을 요구한다. 결국 외국 상인들은 오랜 상의 끝에 이 요구를 받아들이고 아편을 내놓는다. 그리고 임칙서는 그 아편을 바닷물에 모조리 버리게 된다. 이것으로 아편에 대한 문제는 마무리가 된 듯싶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이를 빌미로 삼아 영국 상인들의 재산권과 생명을 위협했다며 전쟁을 준비한다. 하지만 이 전쟁은 단순히 '아편의 폐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영국은 과잉생산으로 인해 공황의 조짐이 보였던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나라라는 대규모 시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전쟁은 시작되었고, 청나라는 패하고 만다. 그리고 영국은 청나라에 광주와 상해를 포함한 5개의 항구개방을 요구했고, 홍콩을 빌려줄 것을 요구한다. 청나라에서는 들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남경조약'(난징조약)으로 중국은 근대가 시작되었고, 중국은 영국의 식민지가 된 셈이 되었다. 즉, 중국은 반식민지화가 된 것이다. 또한 2차 대전이 있기 전에도 약 100년 동안 열강들에 의해 모든 자원을 침탈당했다.
< 영화 '마지막 황제' >내가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꽤나 오래전 일이다. 거의 10여 년도 훨씬 전쯤에 TV에서 '주말의 명화'에서 방영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아주 어린 어린아이가 청나라 황제의 옷을 입고 드넓은 궁궐에 서있는 그 장면과, 중국풍의 독특한 음악이 나에게는 꽤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었다. 그리고 그 후에 어찌어찌하여 시청하였는데 영화의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 중간에 잠들어버려서 아쉽게도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했다. 그 후 '동양 근대사의 탐구'시간에 이를 시청함으로써 비로소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다.영화 ‘마지막 황제’는 청나라의 12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 부위의 일생을 다룬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영화의 주인공인 부위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자 조사를 했는데, 이 영화가 부위의 자서전인 ‘나의 전반생(前半生)’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황제’는 제3자의 입장에서 부위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부위가 자신의 과거의 삶을 회상하는 방식을 통해 그의 일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영화는 전범들을 수송하는 기차가 역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그 전범 중에는 일본의 괴뢰정권이라 평가되는 만주국의 황제였던 부위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차에서 내린 부위의 눈은 두려움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의 미래가 어찌 될지 모르는 데서 비롯된 두려움일까? 결국 그는 화장실에서 자살을 택하지만, 자살은 미수에 그치고 그는 전범 수용소로 끌려가 10여 년 간 사상의 재교육을 받게 된다. 이 재교육의 시간 동안 부위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통해 나 또한 그의 삶을 알아 갈 수 있었다.1908년 어느 날 서태후가 보낸 사람들이 부위의 집에 도착해 부위를 자금성으로 데려간다. 그 곳에서 본 서태후는 몹시 괴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보통 노인에게서 볼 수 있는 후덕하고 인자한 모습이 아닌, 마치 마귀와 같은 흉한 몰골이었다. 이를 보고 나는 감독이 서태후를 중국을 망친 주범으로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부위는 서태후에 의해 광서제의 뒤를 잇는 황제로 선택되고, 곧 12대이자 마지막 청의 황제인 선통제로 즉위를 하게 된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신해혁명이 발발해 청은 멸망하게 된다. 그 결과 부위는 황제라는 명칭의 사용과 자금성에서 거주할 권리, 그리고 사유재산만을 인정받고 퇴위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자금성 밖으로는 나갈 수 없는 일종의 가택연금 생활이었고(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가볼 수 없는), 즉 자금성 안에서만 여전히 황제일 뿐이었다.그 후 1919년 부위가 14세 되던 때에 영국인 레지노 존스턴이 황제의 새로운 가정교사로 오게 된다. 부위는 그를 통해서 새로운 서구의 사조에 점점 눈을 뜨게 되고,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전통을 구습으로 여기며 배척하게 된다. 그리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날 꿈을 꾸게 되지만, 몇 년 후에 발발한 군사혁명으로 부위는 자금성에서 쫓겨나 일본 대사관이 있는 텐진으로 도피를 하게 되면서 유학의 꿈도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그곳에서 부위는 지독한 사치를 일삼게 되는데, 이는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에서 온 무력감과 상실감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첩이었던 문수가 신사조에 눈을 뜨면서, 부위에게 항상 두 번째가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위치에 회의를 느끼고 부위의 곁을 떠나게 되고, 가정교사였던 존스턴도 영국으로 떠난다.그리고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일본은 만주국을 세울 준비를 진행한다. 1932년 만주국이 성립되고 부위는 집정의 자리에 앉는다. 그로부터 2년 후, 부위는 만주국의 초대 황제가 된다. 하지만 만주국의 황제라는 이름만이 있었을 뿐, 실제 권력은 일본 관동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부위는 만주국이 일본과 대등한 국가로서 협력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국무회의자리에서 그의 뜻을 말하지만, 관동군과 심지어 중국인 관료들까지도 그의 의견을 무시하였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때의 그의 상실감이 어떠했을지 쉽게 상상이 간다. 그 후 만주국은 일종의 일본의 식민지로서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게 되었다.하지만 1945년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고 만주국도 멸망을 하게 된다. 부위는 일본으로 피신을 하고자 하나, 도중에 소련군에게 잡혀 소련의 전범 수용소에 잡혀 들어가게 되고 1950년에는 중국으로 소환되어 사상 재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10여 년의 재교육 이후 출소해 평범한 정원사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그의 삶의 마지막 부분에 또다시 역사의 큰 소용돌이를 겪게 되는데, 바로 문화대혁명이었다. 그 속에서 부위는 수용소 생활 시절 그에게 인격적으로 좋게 대했던 수용소장이 반동분자로 몰려 홍위병에게 잡혀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영화가 인간의 처지가 순식간에 변할 수도 있다는 일종의 허무함을 부위의 일생뿐 아니라, 그를 통해서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마지막은 부위가 자금성에 들어가 자신이 앉았던 옥좌에서 숨겨두었던 귀뚜라미를 찾는 장면과 현재 관광객들이 자금성을 구경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장면을 보면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청나라라는 나라가 한 순간에 허무해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마지막 황제’는 부위라는 인물의 개인적인 일생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부위에 대해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게끔 애처로운 인물로 그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위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모진 인생을 살았고,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면서 그는 가장 소중한 가족을 잃었고, 결국은 나라가 멸망하며 권력을 잃었으며, 아내들도 모두 잃게 되었다. 결국 아무런 힘이 없는 과거의 황제 주변에는 그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교육에 대하여 열의가 무척 높은 편으로 교육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물론 이 교육열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면 다행이지만 지금 한국교육은 그릇된 교육열로 인한 교육에 대한 문제점들이 파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교육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으로 우리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학벌이라는 점에서 교육열의 심화가 더욱 초래되고 있다는 점에서 교육열은 비단 학부모와 학생, 교사 등 교육에 관련된 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걸친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겠다. 잘못된 교육제도로 교육받고 자라나는 한국의 청소년들의 의식구조에서 앞으로 펼쳐질 한국의 미래는 결코 밝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교육의 문제점의 결정적 요인인 우리나라 시험제도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해 봄과 동시에 나 자신이 평소에 생각해오던 해결방안도 제시하고자 한다.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사교육 위주의 교육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기 싫은 이유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학원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원에 가야하고, 학원이 끝나면 학원 숙제를 해야 한다. 또한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학원비를 대느라 허리가 휠테니, 표면적으로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교육'이라고 보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사교육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교육이 문제점도 아니다.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시험제도' 즉, 학교수업과 수능과의 괴리에 있다. 학교가 '전인교육의 실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대학입학을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과연 전인교육의 실현 유무를 평가하는가? 아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철저하게 지식 측정이 그 목적인 시험이다.이러한 시험체제는 당연히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남을 깎아내려 자신을 높여보이게 하는 악의의 경쟁이고, 지금 우리나라 교육은 그것을 강요하는 교육일 뿐이다. 아직 인격조차 형성되지 않은 초등학생 때부터, 남을 깎아내리는 경쟁을 하지 않으면 당장 자신이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도 모른 채 '경쟁'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이 경쟁구도는 심지어 선생님들까지도 경쟁하도록 만들어버린다. 일제고사가 그러한 맥락 중 하나이다. 자신의 학교에서 경쟁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다른 학교의 학생들과도 경쟁함을 넘어서, 학교끼리 하는 경쟁에서 그 우스움은 배가 된다.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일제고사 점수'를 높이기 위해 압박을 줄 것이고, 심지어 '다른 학교를 깎아 내리기 위해' 부정행위를 저지르기도 할 것이다. 학교 뿐 만 아니라, '지역'에서까지 그러한 악의적인 경쟁을 계속 할 것이다. 이번에 터진 임실군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교육은 자연스레 성장하게 될 것이다.결국 이러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하나둘씩 학원에 다니게 되고,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서 나머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불안 심리로 학원에 다니게 된다. 학생들이 모두 학원에 다니게 되니까 학교에서도 자연히 학원에 다니는 학생에 맞춰서 교육과정을 진행하게 된다. 여기서 '공교육의 부실'이 나타나게 되고, 학생들은 공교육이 부실하다고 오해하게 되고 더욱 학원 공부에 열중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교육 철폐, 공교육 강화'를 아무리 외쳐 봐도,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까지 다다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교육 과학 기술부에서 내세운 방법이 '내신 강화'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도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취지에서 만든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학교에서 시험 문제를 찍어주거나, 문제를 가르쳐줌으로써 자신의 학교의 등급을 높이려 한 것이다. 각 대학교의 입학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불신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는 자연히 공교육이 썩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 꼴이다. 내신을 강화하면 공교육이 살아날 줄 알았는데, 각 고등학교들의 부정으로 인해 대학교에서는 대신을 믿지 못하고 수능만을 제일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여기면서 여기에 또 다른 평가기준으로 논술이나 적성검사 등을 시행하니, 수능 뿐 만 아니라 이들을 대비하는 학원이 또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학생들은 불안한 마음에 논술학원이나 적성검사 학원을 안다닐 수 도 없는 상황이고, 또 다른 학원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는 사교육의 팽창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사교육 자체의 문제로 팽창이 일어나게 되는 것인가. 아니다. 사교육 팽창의 원인을 살펴보기 위해 자꾸 거슬러 가다보면, 그 시초에는 '시험제도'가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사교육의 만연과 공교육의 폐해는 시험제도의 부수적인 문제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이러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 우리나라 교육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이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제안한 다양한 방안들을 살펴볼 수 있다.첫째,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학력, 학벌 만능주의 사회의 의식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즉, 학력보다는 능력이 중시되는 사회가 조성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구조 개혁은 개인적 차원은 물론이거니와 국가적 차원에서의 법적 제도와 정비가 필요할 것이며 사회·문화적으로도 언론에서나 강연, 행사를 통한 지속적인 홍보를 하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학벌주의를 뿌리 채 뽑아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도 완화해야만 한다. 학력으로 한 개인의 실력이나 능력 전체로 간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학력이 좋지 않더라도 실무에 따른 경력이나 실력이 있는 사람들도 있기에 이를 평가하여 그에 따른 소득을 갖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둘째, 교육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일 것이다. 입시위주의 이다. 또한 여러 가지 직업교육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발, 활용하거나 예체능 적성교육의 실시 등이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교육재정의 확보가 필요하지만, 현재 쓸데없는 곳에 낭비되고 있는 예산이나 사교육비 등을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평생 교육의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 사회적 풍토에 의한 진학을 지양하고, 순수하게 학업을 이어가고자 한다면 연령에 상관없이 본인이 원하는 만큼 기회를 제공하여 평생 교육을 지원해 주는 것이다. 더불어 대학의 역할도 각 대학 스스로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졸업장 획득을 위해 진학하는 대학이 아니라 다양한 능력을 지닌 인재의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의 역할을 대학들 스스로가 깨닫고 이를 정립시키는 것이다.셋째, 입시제도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각 대학 간의 경쟁력보다는 특수성을 살려 입시 경쟁을 완화시켜야 하고, 입시제도도 각 대학에 따라 다양성과 복수성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 계속적인 노력과 대학에서 신뢰할 수 있는 평가척도가 국가 수준의 기관에 의해 개발되고 공급되어야 할 것이다.위의 세 가지 측면을 살펴보았는데, 이 세 가지 외에 가장 중요한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교사의 역할'이다. 교사는 자신이 맡고 있는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해야만 한다. 과도한 대학입시경쟁으로 인하여 과외 등 입시 위주의 사교육의 비중이 점점 커감에 따라 최근에 이르러 공교육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경시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육의 중심에서 교육을 행하는 자로서 교사의 역할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입시 위주 교육의 문제점을 대처하며 올바른 교육을 지향하는 교사로서의 역할은 무궁무진하다.우선 첫째로는, 중·고등학교 교사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은 학생들의 지식, 가치관, 세계관을 심어주는 등 정신적 성장을 위한 종합교육의 담당자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따을 길러주기 위한 교육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학교교육에서 생활지도는 거의 대부분이 입시 위주로 생활하기 때문에 생활지도라기보다는 분위기 지도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입시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생활지도를 할 시간도 없을 뿐 더러 생활지도의 존재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교사뿐 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더 나아가 국가적인 측면에서 더 넓게 생각한다면 입시교육보다 생활교육(교육지도 성격지도 사회성지도 건강지도 등)이 청소년을 더 크게 나아가 나라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셋째, 교사는 열린 마음으로 학생의 창의성을 인정해야 한다. 학생의 재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피드백과 격려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음악이나 미술에 소질을 보이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재능을 신장 시킬 수 있는 공간과 도구들을 마련해 주는 것 또한 교사의 역할이며, 아이들을 위해서 교사는 부모들에게 그들의 능력을 정확히 알려줄 의무가 있다. 다시 말해서 학생의 개성을 존중하고 신장시키기 위한 교사의 역할은 바로 다름 아닌 따뜻한 애정이 담긴 사랑과 관심 그리고 학생과의 열린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는 위에서 잘못된 시험제도로 인한 문제점과 그 개선방안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위의 개선방안은 왠지 수박 겉 핥기라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험제도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것인가. 나의 입장에서는 교육 과학 기술부에서 내세운 '내신 강화'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공교육을 살리기에는 그만한 정책이 딱히 없다는 사실도 감안하면 말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가 내가 생각한 해결방안의 출발점이었다.내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각 학교의 중간, 기말고사를 한 날 한 시에 치루는 것이다. 그리고 시험문제는 전국 모의고사 형식으로 보는 것이다. 평가원에서 주관하는 6월·9월 평가원 모의고사처럼 말이다. 그럼 또 학교차원에서 미리 답을 가르쳐줄 수 있다는 문제점이 대두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