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온 형제일지라도, 결혼한 지 수십 년 된 부부일지라도, 독심술을 쓰지 않는 이상은 그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싸우며 상처받는 일이 많다. 특히나 이성 관계에 있어서 이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힘든 일에 도전하고 있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마치 소설과 같은 제목을 선택한 이 책은 나조차도 깨닫지 못했지만 공감할 수 있는 ‘여자’를 말하고 있었고, 나에게 있어서 미지에 세계와 다름없었던 ‘남자’를 이야기하고 있었다.책을 읽어가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이 책의 저자가 비유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저자가 첫 장에서 풀어낸 비유는 남녀 사이 차이점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잇듯이 남자는 화성에서 오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들은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욕구, 기호, 행동양식 등 다른 점이 많았지만 처음에는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다름조차 사랑하며 지구에 뿌리를 때렸다. 하지만 어떠한 특수 기억상실증 때문에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지 잊어버리고 서로의 차이점 때문에 점차 다툼이 많아지게 된다. 참으로 기발한 발상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첫 장부터 나를 흥미롭게 만들었다.스트레스를 받을 때, 화성인과 금성인은 스트레스 해소 방식이 다르다. 남자는 고민거리가 생기면 자신만의 마음 속 동굴에 들어가 해결책을 찾고 나서야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반면 여자의 경우 다른 사람과 수다를 떤다. 자신이 처한 어려움 등을 말하면서 기분이 홀가분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차이점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남자가 동굴 속에 들어가 있는 동안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낀 여자는 그가 자신에게 무관심해졌다고 비난을 하기 시작한다. 남자들 또한 편하게 들어만 줘도 좋을 이야기에 대해 굳이 해결책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쌓여 제대로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든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가령 내가 누군가에게 상담을 요청할 때의 일이다. 상대방이 남성이었을 경우, 고민거리가 생겨난 원인부터 분석해서 결국 어떻게 되었고 그 일을 해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준다. 단지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마음이 편하고 말을 꺼냈지만 심한 경우에는 나의 사고방식까지도 바꾸려들어 오히려 피곤해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에 반해 나와 같은 여성에게 상담을 했을 때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흔히 말하는 ‘맞장구’를 치는 일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 경우가 나에게 있어서 더욱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그러나 나에게도 한 가지 모순이 있었다. 내가 상담할 때에는 그저 받아주기만 해도 편했던 것을 상기시키지 못하고, 다른 이들이 상담을 요청할 때마다 경청하지 않고 나의 의견을 내세우기 바빴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나의 모순점을 찾았고, 다른 이들의 말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화성인들은 상대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을 느낄 때 마음이 움직이고, 금성인은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 의욕을 갖게 된다고 서술된 부분이 있다. 즉, 남자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하고, 여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여자이기에, 더군다나 천성이 챙겨주기를 좋아하고 사랑받고 싶어 해서 조금만 친밀감을 느끼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 주고 싶어 하는 나이기에 금성인의 마음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화성인들의 경우도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친한 오빠가 교회에서 큰 행사를 준비하는데 중심이 되는 역할을 맡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는 나에게 자신 없다며 앓는 소리를 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해 “나도 그 일이 오빠에겐 무리라고 생각해. 힘들 것 같으면 아직 준비 단계니까 그만두는 게 어때?”라고 말해주었다. 그것에 대해 자신 없어 하던 오빠는 내 말에 화를 내며 하나씩 일을 해결해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그 일은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문득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그 오빠를 움직인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사람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다른 이들에게 더욱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 서로 더 배려하고 사랑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해 준다면 더욱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화성과 금성은 비록 같은 말을 쓰고 있지만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또 한 가지의 차이점을 두고 있다. 화성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내뱉어버리는 직설적 표현을 쓰고 있고, 금성인은 조금 더 자신의 심정을 세밀하게 표현하기 위해 감성적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이러한 표현의 차이는 또 다른 오해를 불러오기 쉽다. 여자가 조금 돌려서 말한 것에 대해 남자는 그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듣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사소한 말 한 마디로 인해 싸움이 될 때가 허다하다. 그러나 여기서 남성은 상대방의 말을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 들어 그 숨은 뜻을 이해하고, 여성은 중요한 이야기의 경우 핵심을 집어서 이야기한다면 큰 논쟁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남자는 고무줄과 같고 여자는 파도와 같다. 비유를 좋아하는 저자가 또 하나의 재미있는 비유를 들었다. 화성인들은 길게 늘어났다가 어느 순간 제자리로 돌아오는 습성을 가졌다. 이러한 습성은 자신의 독립과 자율에 대한 욕구와 친밀감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키기 위함이라고 한다. 즉, 친밀감의 욕구가 채워지면 독립에 대한 욕구를 갈망하고 찾아갔다가 다시 친밀감을 느끼기 위해 돌아온다는 것이다. 반면, 금성인들은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 그들의 감정은 최고조에 이르지만 기분이 갑자기 바뀌면 하염없이 무너지게 된다. 그 파도가 밑바닥에 있을 때 그녀는 더욱 사랑받기를 갈구하게 된다. 이 책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이 부분을 보면서 어른들이 불륜 드라마를 보며 자주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남자는 바람이 나도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있지만, 여자는 한번 바람이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 말 속에서는 두 가지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남자는 자신의 독립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아내를 떠나 자신의 자율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또 다른 여인과의 로맨스를 꿈꾸었다가도 다시 아내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다음으로 여자는 자신의 감정이 파도의 밑바닥을 치고 있어 사랑을 갈구하고 있을 때 자신을 봐주지 않는 남편보다 자신의 슬픔을 같이 느껴주는 다른 누군가에게 끌리게 된다. 이런 구도 속에서 외도를 꿈꾼 사람들만이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물론 그들에게 더 많은 잘못이 있지만 그들의 배우자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설명한 남자와 여자의 습성은 일시적이고 주기적이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심리상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상황들이었다고 생각한다.화성인과 금성인은 서로에게 점수를 주는 채점 방식도 다르다. 여자에게 있어서 선물의 그고 작음은 소용이 없다. 단지 그 선물에 담겨져 있는 정성과 배려를 볼 뿐이다. 반면 남자들은 자신이 준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그녀가 보이는 반응이 채점의 기준이 된다. 나의 경우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을 때 선물 자체도 기분이 좋지만, 그 사람이 그 선물을 고를 때 나를 생각하면서 골랐겠구나 라는 생각이 나를 더욱 기쁘게 만든다. 하지만 내가 상대방에게 선물을 받았을 때 그에 따른 표현으로 상대방 또한 기쁘게 해주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님들과 나의 이야기 ?우리나라의 속담 중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우리 생활 속에서는 말 한마디가 중요하다. 그것은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라 해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기에 생각 없이 상대방을 상처 입히는 말을 내뱉고는 한다.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가족 간의 대화를 할 때에 조금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말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우리 부모님은 가끔 “나는 널 이렇게 키운 적 없다. 나는 올바르게 가르쳤는데, 네가 그렇게 큰 것뿐이지.”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이 말에 의문을 품어본다. 정말로 내가 이렇게 혼자 커버린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부모님의 양육방식, 행동양식 등이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배어있고, 그것은 부모님께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지 그분들에게 배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부모는 자녀를 먼저 이해하고 가르치기 전에 부모가 되는 방법부터 배워야한다고 말한다.저자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쯤에 어머니에게 물동이를 사달라고 해서 새로 물동이를 장만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을 길러 오다가 물동이를 깨뜨려 버린 것이다. 어머니께 혼날 생각에 아픈 것도 잊고 가슴조리며 집에 슬그머니 들어갔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야단치기보다 넘어져 흙투성이가 된 글쓴이를 먼저 챙기셨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떠한 고민에 빠졌을 때에 세상에 그보다 큰일은 없는 듯이 느끼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그보다 더 작은 일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일들에 있어서 부모는 어른의 관점에서가 아닌 자녀의 상황에서 함께 생각해주고 격려해줄 수 있는 격려자가 되어야한다. 유치원 다닐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유치원이 끝나고 친구가 없다며 내가 울면서 집에 갔던 적이 있었다. 당시의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어린 나는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었는데 그 때도 엄마는 웃어넘기고 말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을 읽고 문득 그 때의 일이 생각났다. 만약 그 때 엄마가 진지하게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유도해주었으면 지금과는 또 다른 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지금의 나도 좋지만 말이다.아이들과 이야기 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사촌동생들이 4살부터 8살까지 아직 어린아이들이 많다. 동생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제대로 된 대화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직 말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 말들을 하나하나 모두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욱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한다. 그것은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혼낼 때는 더 심해진다. 아이들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행동을 하지만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면 대화를 통해 무엇을 잘못했는지, 또한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해야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홀로서기의 연습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고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그것을 위해 부모들은 아이들의 행동만 보고 무작정 혼낼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대화로써 도와주어야 한다.일반적인 부모들이 자녀의 행동에 대해 반응하는 두 가지 종류의 오류가 있다. 그 첫 번째는 무작정 소리부터 지르는 것. 아이들을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양 내가 원하는 대로 ‘명령’하는 것이 그것이다. 두 번째 오류는 무턱대고 참는 것이다. 화가 난 감정을 참으면서 속으로 쌓아둔다면 자녀보다 먼저 부모가 아이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참는 것만이 답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고 제대로 대화를 하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책에서는 자신을 상대방에게 표현해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야 자녀가 부모의 생각이나 구체적 상황을 파악하여 도와주는 일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나’를 표현하기 위해 우선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녀의 행동과 그에 따른 감정을 정리하고 상대방이 기분 상하지 않도록 그 말을 해야하는 시기를 잘 생각해 보고 표현해야한다. 자신의 지금 상태와 생각을 전한 후에는 아이의 행동이 변화될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이것은 부모와 자녀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자신이 말하고 싶은대로 바로 내뱉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나서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린다면 더욱 좋은 관계가 유지될 것이다. 사실 이론적으로는 이해를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책 속의 어떤 어머니는 ‘쓸개가 녹아내리는 인내의 쓴 잔’이라는 표현까지 쓰지 않았겠는가?중학교 1학년인 지윤이는 혼자서 공부하는 법이 없다. 평소 너무 닦달해서 더 그런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지윤이 어머니는 조금씩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빈둥거리는 아이를 보며 화가 난 그녀는 급기야 아이를 내쫓기까지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 밖에 없어진 지윤이가 걱정되어 찾아나선지 한참 후에야 아파트 정원에서 비를 맞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리고 와 그제서야 지윤이와 제대로 대화를 하게 된다. 나도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다. 나의 경우는 한참은 더 어렸을 때이긴 하지만 말이다. 7살 때 나는 항상 엄마는 나만 미워한다고 이야기했다. 한번은 “그러면 너 나가!” 라는 엄마의 말에 나갈테니 짐 싸달라고 한 적이 있다. 가방을 싸들고 나가서 겨우 한 층 내려가 계단에서 3시간동안 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은 책에서와 같이 엄마가 동생을 시켜 나를 집으로 데리고 왔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매를 맞았다.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엄마의 눈물을 봤다. 내가 혼나는 동안 방에서 혼자 우시는 엄마의 모습이 13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어이없고 속상한 일이었다. 이 사례가 쓰여져있는 소제목처럼 부모역할도 너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부모가 제대로 아이들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면 사회 어느 곳에서든지 그 아이들은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 그만큼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딸은 엄마를 닮는다고 했던가? 나는 엄마와 성격이 똑같다. 생각해보면 결코 좋은 성격은 아니다. 흥분 잘하고, 더군다나 흥분하면 목소리도 커지고, 성격 급하고, 다혈질에... 그렇게 성격이 같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엄마를 잘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해는 되지만, 사랑하지만, 가끔은 엄마의 행동들이 너무나도 싫고 미울 때가 있다. 책은 부모가 자녀들의 모범이 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나도 동감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미래의 나는 모범이 되는, 사랑받는 어머니가 되고싶다. 그렇기에 지금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하는 이 시간이, 또한 부모교육을 받는 그 시간들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장 27절의 구절이다. 여기서 창조된 ‘사람’이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담과 이브가 아닌 아담과 릴리스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릴리스. 내가 교회를 다닌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다. 그래서 나는 그 ‘릴리스’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으로 처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태초에 아담과 동등하게 흙으로 빚어진 존재. 그래서 그 동등함을 주장하다가 해결을 내지 못하고 에덴동산에서 도망친 인류 최초의 여자. 그것이 바로 릴리스라고 한다. 에덴동산에서 도망친 이후 릴리스는 신에게 벌을 받게 되었고, 가부장제가 주를 이뤄오던 인류 내에서 릴리스는 창녀의 수호신, 금지된 쾌락으로 유혹하는 악녀 등 사람들 사이에서 좋지 않은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그런 릴리스에 반대되는 사람이 바로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이브’이다. 그녀는 한 남자 곁에 오래 머물러 복종하고 고독하게 살지 않으려 아담에게 사랑을 갈구한다. 남자와 동등해지고 싶은 릴리스와 같은 내면의 소리는 억누른 채 말이다.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 나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이브의 논리 보다는 릴리스의 생각에 더욱 동감이 갔다. 아무튼 이 책에 의하면 우리는 아담과 이브, 그리고 릴리스의 후예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이브와 릴리스의 심리가 숨겨져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심리들이 우리의 자녀들을 좋은 방향으로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도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한다.릴리스 콤플렉스. 이 책의 제목이 ‘릴리스 콤플렉스 극복하기’인 만큼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릴리스 콤플렉스란, 릴리스가 가지고 있던 심리, 즉 ‘남성과 동등한 여성, 성적으로 적극적인 여자, 아이를 원하지 않는 여자.’ 이들을 억압하려는 심리를 말한다고 한다. 여성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이러한 심리들은 이후에 모성애의 약점이 되고,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전달된다. 또한 아이가 그것으로부터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면, 그 감정으로 인해 아이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야기 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나는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우리에게 드러내놓고 눈물을 보이시지는 않지만 가끔 어머니가 숨어서 우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어머니가 아무리 내 앞에서는 티내지 않으려 애써도 그분이 느끼는 속상함 쯤은 어렴풋이 느끼곤 한다. 그럴 때면 괜히 나 때문인 것 같은 기분에 조용히 자리를 피해드리곤 했다. 완전한 성인은 아니지만 꽤 성장한 나도 그러한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는 하는데 그런 것을 어릴 때라면 더욱 강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한다.사람 사이에서는 해도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이 존재한다. 일반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그런 것들을 지키는 것이 예의인데, 하물며 부모와 자녀 간에는 더욱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부모가 어린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미래가 달라지고, 그 아이들이 만들어 나갈 사회적 분위기 또한 그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 야 할 일들은 아이들의 요구사항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그 첫째로는 ‘곁에 있어주기’이다. 이 부분을 읽어 내려가는데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났다. 애착의 형성에 있어서는 엄마와 얼마나 함께 있느냐의 시간적 문제보다 함께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랜 시간 함께 있다 하더라도 서로 감정적 교감이 되지 않는다면, 함께 보낸 시간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아이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식량의 문제에 있어서 아이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피난처를 제공해주는 것. 그것 또한 아이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한계를 지어주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아이가 어떠한 일을 성취하려 하는데 있어서 미리 한계를 지어주는 것은 문에 부모들은 아이들의 요구 중에 거절하여 한계를 지어주어야 할 때와 승낙해주어야 할 때를 잘 구분해야 할 것이다.얼마 전 나는 어떤 TV 시사프로그램에서 ‘공부가 즐겁지 아니한 家’라는 주제로 방송하는 것을 보았다. 한 모자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그것은 우리의 주변에서도 많이 접할 수 있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무조건 대학을 가라고 강요하고, 아들은 대학을 가지 않고 옷가게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취재진은 그 모자를 데리고 가서 어머니는 부모유형검사를, 아들은 적성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어머니는 구체적 사항은 자세히 알려주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관철시키려는 ‘정치가형’이 나왔고, 아들은 비교적 자유분방한 ‘예술가형’의 소질이 발견되었다. 정반대의 유형이기에 그들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어머니가 아들에게 눈물을 보이며 화해를 요청했고, 아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며 서로의 의견을 조금씩 양보하며 결론이 났다. 이와 같이 현실 속에서의 부모들 중 자녀에게 자신의 의견만을 관철시키고 강요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그야말로 ‘거짓 모성애’에 사로잡혀있는 것이다. 단지 부모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신의 의견은 아이를 위한 일이고,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를 향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도 그것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하지 마!” “힘들게 하지 말고 설치지 마!”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이 세 가지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이러한 말들을 릴리스 콤플렉스와 현실의 스트레스에 의하여 무자비하게 아이들에게 내뱉고는 한다. 많은 부모들은 무의식적으로나 또는 그때의 형편이 좋지 않았다는 핑계로 앞의 언급했던 말들로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알아야만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에게 내뱉었던 상처들로 인해 자녀들이 평생을 아파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사회는 개인으로 이루어진다. 잘못된 모성애로부터 자라난 개인들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면 그곳의 병폐는 이자는 릴리스 콤플렉스로 불완전한 어머니에게 자란 아이들이 초기장애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어머니가 아이를 거부하거나 충분히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아이가 스스로를 무시하게 되는데서 생겨난 수치심, 어머니의 아이에 대한 d해가 부족하고 그것을 아이가 느낌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이나 귀속감을 찾지 못하게 되어 일어나는 고독감, 어머니의 애정이 약하고 아이의 욕구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나타나는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이나 애정결핍 등 이러한 초기 장애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사회가 구성될 수 있다. 그러한 사회 내에서의 범죄자들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당한 피해자였고, 자신의 존재감에 상처를 입은 그들은 다른 누군가에게 이를 해소하려 하다가 범죄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올 해 초 ‘히트’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연쇄살인범 또한 그러한 경우이다. 그 연쇄살인범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피해자’였다. 그가 자라서 자신이 당한 만큼, 아니 그보다 더한 범죄를 일으키고 다니는 것이다. 또한 재미를 위주로 한 사회도 초기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것에서부터 일어난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는데 이 때 어떠한 ‘수단’이 등장하게 되고 그것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때때로 그 강도를 높여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 수단은 술이나 마약 등을 들 수 있는데, 이것들이 심해지면 중독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욕구를 포기하는 방법도 배워야하며 또 다른 욕구만족의 방법을 찾아내는 법도 알아내야 한다. 이 되에도 저자는 독일의 ‘나치즘’이나 ‘냉전’ 등 독일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던 잘못된 모성애로부터 나온 병폐들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하였다. 하지만 독일의 문화나 역사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 부분에 있어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웠다.지금까지 릴리스 콤플렉스가 가져오는 부정적 측면을 이야기 했다면, 이제는 그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의 중반까지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물론 이 책의 곳곳에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어서도 그랬지만, 더 큰 이유는 모성애의 잘못된 모습과 그 결과만을 초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아동교육에 대한 책을 많이 접해보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로 극단적인 사례들을 이야기하며 부정적인 견해를 강하게 내세운 책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책의 뒤쪽으로 읽어가면서 그 해결책들과 모성애에 대한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저자는 훌륭한 모성애에 대한 중요한 3가지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첫째로는 ‘임신과 출산’이다. 임신은 했지만 어머니가 되고 싶지 않아하는 여성들이 많다고 한다. 나에게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여성이 어머니, 즉 모성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로 하여금 여성이 어머니가 되도록 배운다는 것이었다. 실질적으로도 아이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더욱 관심을 갖는 여성에게서는 그녀가 아무리 나이가 많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아이에게 온갖 애정과 관심을 쏟아내는 여성은 그녀가 아무리 어리다 할지라도 어머니의 모습이 자연스레 나타나곤 한다. 다음으로는 ‘수유와 영양공급’이다. 갓난아기인 사촌동생들이 숙모나 고모에게 매달려 식사, 곧 모유수유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 평안한 모습을 아이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책에서는 이러한 모유수유를 통하여 영양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아이에 대한 애정까지도 공급된다고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는 ‘보살피고 베풀기’가 있다. 여기서 보살핌과 베풀기란 아이에게의 ‘강요’가 아닌 아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택하고 그것을 행하는 것을 ‘후원’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저자는 아주 좋은 비유를 하고 있다. “좋은 어머니란 ‘항구’와 같아야 한다.” 비록 이때의 어머니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남자를 ‘배’의 역할로 삼는 것이 아닌, 아이를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 비유에 따르면 어머니는 아이가 그녀의 곁에 머물 때에는 아낌없이 보살펴야하지만 아이가 떠날 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