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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옥마을 답사 보고서
    운현궁, 북촌 한옥마을 답사기6월 13일, 우리는 지하철 안국역에서 하차하여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운현궁 앞 매표소에서 집결하였다. 자율적으로 운현궁을 둘러보며 궁에 대한 설명을 읽고 사진도 촬영하였다. 운현궁은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생부(生父)인 흥선군(興善君)이하응(李昰應)의 저택으로서, 고종이 탄생하여 즉위하기 전 12살까지 살았던 잠저(潛邸)이기도 하다. 원래 조선시대 일반 상류주택이었던 이 건물은 고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영역이 크게 넓혀지고 건물들도 새로 더 들어서며 흥선대원군이 10여년간 집정하며 정치를 하는 곳으로 변모하였다. 실제로 고종이 살았던 집은 운현궁 동북쪽 뒤에 있었는데, 1966년 헐리고 그 자리에 중앙문화센터가 세워졌다. 현재의 건물은 대원군이 섭정을 행하던 1863∼1873년 사이에 지어진 것이 대부분인데, 노락당과 노안당은 1964년 9월, 이로당은 1870년 준공되었다. '운현궁' 이름은 서운관(書雲觀, 관상감의 별칭)이 있는 앞의 고개라 하여 '운현(雲峴)'이라 불렸다.원래 운현궁은 현재의 덕성여자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양관(洋館), 일본문화원, 중앙문화센터, 운현초등학교 일대까지 포함된 넓은 지역이었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다. 지금은 1996년 새로 중수하여 개방한 노안당(老安堂), 노락당(老樂堂), 이로당(二老堂)의 세 건물과 부속 행랑채를 운현궁이라고 부른다.현재의 운현궁 터는 복원하면서 대지를 동서로 크게 양분하여, 동편에는 세 건물들이 들어섰고, 서편은 빈 마당으로 남겨 도로와 접하고 있다. 동편에 있는 세 건물들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대원군의 사랑채였던 노안당, 안채인 노락당, 그리고 별당인 이로당(二老堂) 순서로 자리잡고 있다. 노안당 남쪽에 원래 아재당(我在堂)이 있었으나 없어졌고, 이로당 북쪽에 있던 영로당(永老堂)도 원래 운현궁의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개인 소유의 건물(김승현 가옥,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19호)로 되어 운형궁 경역과는 담으로 구분되어 있다.노안넣은 것이 시선을 끈다.노안당의 '老安'은 《논어》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오는 "노인들을 편안하게 하여준다(老者安之)"에서 따왔으며, 영화루는 대원군이 손님을 맞아 접대하던 곳이다.몸채는 장대석의 세벌대이고, 영화루는 장대석 두벌대로 되어있다. 기둥은 평주, 고주 모두 사각기둥이고 약간의 민흘림이 있으며, 쌍사모를 한 기둥을 세워 기둥머리에는 초익공을 결구하였다. 가구(架構)는 2고주 5량이고, 뒤쪽으로 내민 부분은 1고주 5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마에는 송판으로 만든 차양(遮陽)을 달았는데 처마 끝에 각목을 길게 대어 단 차양은 고전적 수법이다.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노락당은 운현궁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전체적으로 자 모양을 취하고 있으며, 정면 3칸은 앞퇴를 개방했고, 좌협간 2칸 중에서 한 칸 부분이 개방되어 좌측 날개 부분의 통로 역할을 한다. 좌우 각 2칸은 온돌, 중앙 3칸은 대청이다. 좌우측의 날개 부분 즉 안채의 몸채에서 직각으로 꺾여 있는 부분은 돌출부가 각 2칸이며 부엌과 창고로 쓰였다. 노락당은 초익공 7량 건물로 사대부가의 건축미를 느낄 수 있는 기법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아름다운 창살 문양이 남아있다.노락당 남쪽의 남행각은 자 모양의 평면을 하여 자 모양의 평면을 한 노락당과 함께 자 모양의 안마당을 형성하였다. 이곳은 명성황후 민씨가 삼간택을 마친 후 왕비수업을 받았던 곳이고, 고종 3년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의 가례가 있었던 곳이다.별당인 이로당은 바깥으로 출입문을 내지 않은 지극히 폐쇄적인 口자형 건물이다. 노락당과 복도로 연결되어 오로지 안채에서만 드나들 수 있었던 비밀스럽고 은밀한 건물이었다. 이로당은 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府大夫人) 민씨가 거처하던 곳이다.정면 7칸, 측면 7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기단은 정방형주초(正方形柱礎)이고 기둥은 평주, 고주 모두 사각기둥으로 약간의 민흘림이 있다. 마루는 우물마루이나 툇마루는 장마루이고 가구는 입구자형 평면에서 남쪽은 1고주 5량, 서쪽과 북쪽은 1고주 전용문인 공근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운현궁을 지나 우리는 한옥마을 골목을 누비다가 중앙고등학교로 향했다. 중앙고등학교는 고려대학교 재단에서 설립한 사립 고등학교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 건물들이 대학 건물 이상으로 수려하고 웅장했다. 이 고등학교가 유명세를 타게 된 이유는 이 외에 따로 있는데, 한류열풍의 주역인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알려지게 되면서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 앞에 유명 연예인들 관련 상품들을 즐비하게 판매하고 있었고 일본인으로 보이는 관광객들도 꽤 있었다.남산골은 현재의 이태원 부근의 옛 이름으로써 예전에, 가난한 선비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다고 한다. 과거 가난하면서도 자존심만 강한 선비를 놀림조로 이르는 말로 남산골샌님, 옛날 서울 남산골에 살던 선비들이 가난하여 맑은 날에도 나막신을 신고 다닌 데서 유래된 남산골딸깍발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남산골은 가난한 동네였다. 그런 남산골 한옥마을을 1989년 남산골의 제 모습 찾기 사업에 의해서 그동안 수도방위사령부의 부지였던 곳을 인수하여 한옥 5채를 이전 복원하고 전통 공원으로 꾸몄다.이전 복원한 한옥은 변형이 없는 순수한 전통가옥을 선정하였다. 순정효황후 윤 씨 친가는 종로구 옥인동에 있는데 너무 낡아 옮기지 못하고 건축양식 그대로를 본떠 복원하였다. 해풍부원군 윤택영 댁 재실은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던 것을 이전하였고,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은 종로구 관훈동에 있던 것을, 오위장 김춘영 가옥은 종로구 삼청동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하였다. 경복궁 중건 시 도편수였던 이승업 가옥은 이승업이 1860년에 지은 집으로 중구 삼각동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하였다.남산골 한옥 마을에는 여러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기에 그들을 위한 공연과 행사가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고,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되어있다. 겨울철을 맞이해서 김장을 직접 해 볼 수 있는 행사도 있고, 우리의 전통 놀이인 투호나 씨름, 널뛰기 등이 마련 양반들의 모습이 되어 보는 그러한 행사이다. 그런데 단지 배경을 제공하고 몇 가지 행위를 하는 것에서 일정한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전통 체험에 앞서서 내?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시각으로 비춰질 수 있다.공연의 경우에도 약간은 남산골 한옥 마을과 어울리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비록 우리가 답사를 간 날에는 공연이 없었지만,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바 여러 가지 행사가 있었다. 11월 8,9일에 열린 2008 남산골 월동문화 큰잔치에서는 타악의 향연, 예천 통명 농요, 전통 공예 체험 등 다양한 전통관련 행사가 열려 우리의 전통을 여러 관광객들에게 소개했고, 9월과 10월에는 남산골 달빛 풍류, 한옥의 저녁풍경, 선비의 소리, 장이야!멍이야! 등의 행사가 열려 우리의 전통을 소개 했다. 이러한 행사들은 우리의 전통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전통을 소개 할 수 있는 소중한 행사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사들 중 단순히 전통이라는 것만 강조하여 남산골 한옥마을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열리는 행사들이 있다. 지난 7월 25일부터 8월 25일부터 열렸던 ‘우리 민화 이야기’라는 전통 민화 전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민화란 일반 서민들이 애호하던 그림으로 생활공간을 장식한다거나 일반 대중의 집단 사고가 스며있는 전통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일반적으로 상위 계층이 그리기 보다는 일반 평민들이 그리던 그림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그림들을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전시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타자화’ 했다고 할 수 있다. 남산골 한옥마을의 경우에는 순정효황후 윤씨의 친가와 해풍부원국 윤택영 댁 재실 등 비교적 5개의 상위 층의 한옥을 옮겨서 만든 마을이다. 이러한 곳에서 민화 전시회를 여는 것은 남산골 한옥 마을 그 원래 모습과는 다르게 단지 ‘전통’이라는 것만 강조해서 본래 남산골 문화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남산골 한옥마을 근처에는 정부 산하의 ‘한국의 집’을 필두로 필동 식당가들이 들어서있다. 한국의 옛 모 역시 타자화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도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분위기 좋은 고급레스토랑, 횟집 같이 서양음식을 팔 수도 있지만 그러한 음식점보다 전통 백반류, 한정식 위주의 음식점이 월등히 많은 이유는 이 장소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기호를 맞춰 전통음식을 판매하기 때문이다.이전 복원한 한옥은 그 동안 변형이 없었던 순수한 전통가옥을 선정하였다.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는 종로구 옥인동에 있는데 너무 낡아 옮기지 못하고 건축양식 그대로를 본떠 복원하였다. 해풍부원군 윤택영댁 재실은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던 것을 이전하였고,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은 종로구 관훈동에 있던 것을, 오위장 김춘영 가옥은 종로구 삼청동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하였다. 경복궁 중건시 도편수였던 이승업 가옥은 이승업이 1860년에 지은 집으로 중구 삼각동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하였다.즉, 남산골 복원이라는 명목이었지만 실상은 이런 전통가옥을 이전하려고 다른 곳에 있던 한옥까지 이전해왔다. 또한 남산골 본래의 모습이 아닌 외국인에게 관광명소로써 보여주기 위한 복원을 함으로써 타자화의 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뿐만 아니라 남산골 한옥마을의 복원 자체도 제대로 복원되지 않음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남산골 한옥마을은 그 원형 그대로 복원되지 않았다. 남산골 한옥마을에 있는 고택들은 모두가 다른 장소에 있던 한옥이기 때문에 각각 원래 있었던 공간에 따른 맥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남산골 한옥마을이라는 한 공간으로 오게 되면서 그 공간적 맥락이 새로운 맥락으로 변하게 되었다. 정형화된 한 공간 안에 고택들이 나뉘어 들어서게 되면서 고택 주변의 골목길과의 관계, 또한 한옥 건축에서 중요시 하는 향(向)이 변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한옥들은 서로 다른 시대의 한옥들이기 때문에 각각 가지고 있는 시대적 양식이 생략되었다. 더구나 현재 이승업 가옥에서는 전통차와 막걸리와 같은 음식을 파는 식당으로 쓰이고 있어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이 한옥을 경험하는 데 방해가 되거나 많은 돈을 쓰게 만든것이다.
    사회과학| 2009.12.23| 5페이지| 1,000원| 조회(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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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으며 새로운 세계경제, 정치권을 형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문명과 새로운 변형의 생활방식과 경제현상이 빠르게 우리를 엄습하고 있다. 한편 국내적 상황은 지금까지 수출에만 의존하던 성장 패턴에서 내수혁명 수출균형성장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지역간 불균형 성장에 따른 지역감정의 해소와 지역균형개발의 요구가 증대됨으로써 지방화시대에 부응한 계획 및 개발에 있어서 주민참여의 문제가 대두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내외적 새로운 여건은 지역개발에 있어서도 새로운 발상과 개발계획을 요하게 되면서 나타난 것이 지역감정 문제 해소란 과제로 우리 앞에 가시화 되었다. 새로운 지역개발과 국민통합을 위해서 유념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첫째, 각 지역은 더 이상 공장이나 유치해야 되겠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지역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둘째, 지금처럼 개발형태가 전국적인 총량 경제개발 형태인 사업과 도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적인 배분이 아니라 지역의 특성중심개발과 지역주의가 존중되어야 한다. 셋째, 지방화 시대가 되었으므로 지금까지의 중앙정부의 지시나 받고 위임사항을 처리하는 입장을 떠나 지방 스스로 개발을 주도할 수 있도록 중앙의 권력을 대폭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여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넷째, 각 지역의 개발은 통과적인 역할만 수행할 것이 아니라 개발의 종착지가 되어 주민생활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해야 되겠다. 다섯째, 유권자들의 의식수준의 변화이다. 도덕정신이 한 차원 높아지지 않고는 지역감정을 해소할 수 없다. 사류 정치인이 있다는 것은 사류 유권자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의식수준과 건전한 도덕관이 자리를 잡을 수 있게끔 사회지도층 및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시민교육을 시켜야 되겠다. 여섯째, 이제는 무엇인가 새로 만들어 내는 창조적 능력을 겸비한 사람이 남의 행적을 감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는 관행을 적립시켜야겠다. 지난 수백년간 체질화 되다시피 한 창작보다 심사비평, 행정보다 사법이 앞서는 사회가 청산되어 사회발전에 공헌하는 사람이 대우받는 사회로 변화될 때 지역감정도 해소될 것으로 믿는다. 일곱째, 간판만능주의, 학연만능주의, 혈연만능주의, 지연만능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본위의 사회를 정착시켜야 되겠다.여성 정치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성차별은 뿌리 깊은 편견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민관합동으로 사업을 전개시켜가야 하지만, 이익집약 및 표출의 옴부즈맨 활동은 시민단체가 담당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소외계층의 한 축을 이루는 여성들의 참여욕구는 급증하고 있다. 여성문제를 의식하고 있는가의 여부를 차치하고라도 여성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자아실현의 욕구를 분출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고 할 정도로 표면화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여성 개인의 삶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개개인의 정치적 의식을 결집하여 이익 집단화하려는 노력이 효과적으로 연계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직 여성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은 남성들에 비하여 소극적이며 여성정치지망생들의 수나 의지도 남성에 비하여 미약한점 역시 성차별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민주주의를 신장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경제통합, 기술발전, 정보지식의 공유라는 긍정적인 요소가 우리사회를 지배해왔다. 이와 같은 긍정적인 요소가 사회를 압도하고 있는데도 종교적 분쟁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사회정치학자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을 예견하기도 했다. 이념이 아닌 문명의 차이에 의해 국가간, 사회간 이합집산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우리나라는 다종교 국가이다. 그간 종교 간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도 보수종단에서는 완강하게 타종교를 경원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통합이나 참여 배분이 많은 제약을 받아왔다. 그러나 종교가 배타적이어서는 평화로운 사회의 건설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늘날처럼 삭막하고 혼탁한 세상에서는 종교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사회의 목탁이 되고 빛과 소금이 되어서 무너진 윤리도덕을 바로 세우는 일도 종교의 몫이다. 이 종교간의 갈등이나 종파간의 대립은 서로의 힘을 약화시키고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그렇게 볼 때 종교간의 대화가 그 어느때 보다도 절실하다는 결론을 얻었다.불교방송에서 스님과 신부가 서로 얘기를 나누는 프로를 본 적이 있다. 종교간의 닫힌 문을 열고 인류와 사회를 구원해야 한다는 대담을 마친 후 신부는 스님에게 '성불하십시오' 라고 인사를 하면 스님은 '찬미 예수'라고 합장을 했다 한다.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갈등관계에 있는 종교간의 장벽을 허물고 사랑과 자비로 신도들이 하나가 될 때 한국사회는 한 차원 높은 인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천주교인이나 불교인이나 가릴 것 없이 모두 참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진리를 실현할 때 민주주의 이념이 온 사회에 뿌리 내리리라 본다.민주주의는 국민들이 정치 자체를 불신하고 외면하는 환경에서는 발전할 수 없다. 이제까지의 정치는 헌법과 공약을 무시한 장기집권, 특수층의 권력남용, 강자의 횡포에 대한 규제 및 약자에 대한 보호노력의 미흡, 일부 행정과정에서의 사회정의 결여 등에 의해 국민들에게 외면과 불신을 당하였다. 특히 한국처럼 민주주의의 전통이 오래되지 않은 국가에서는 정치 불신을 해소하여 안정된 정치를 함으로써 민주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정치지도자들의 양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신생 독립국에 있어서 민주정치의 발전은 상당한 정도로 정치지도자의 역할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지도자의 지나친 영웅주의는 소수지배의 법칙으로 전락, 독재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한국의 정치지도자는 인간의 본능적인 명예욕과 권력욕을 자제하는 양식을 가짐으로써, 자기 스스로 권력을 다수인의 손에 분산시켜 1인 지배나 소수지배를 불식하고 다수지배를 제도화하여 정치제도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튼튼히 다져야 한다.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지역감정의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지역감정의 뿌리는 우리 나라 역사만큼이나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민주주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지역감정의 직접적인 원인을 지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을 가진 일부 정치인들이 정략적으로 국민의 여론을 지역적으로 분열시키고 이를 집권의 기반으로 이용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지역감정이 민주주의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국민들이 정치인을 선택함에 있어 정책보다는 지역 본위의 선택을 함으로써 시민 각자가 합리적인 판단에 바탕 해서 정치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민주주의적 원칙에 역행하고 또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전 국민적 화합에 거스르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정당이란 보다 합리적인 정책과 정책수행 능력을 국민 앞에 보여 줌으로써 집권을 위해 정당 상호간에 떳떳이 경쟁할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함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 이래로 집권층은 특정지역을 고립시키거나 특정 지역을 자신의 절대적인 지지기반으로 삼아 지역주민의 비합리적인 정서를 조장해온 측면이 다분히 있다. 지역감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간의 균형 있는 개발은 물론이고 그 동안 특정지역에 치우쳐왔던 인재등용의 잘못된 관행을 고쳐 능력본위로 요직에 발탁하는 과감한 인사정책의 쇄신이 요구된다.민주주의는 국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들을 효과적으로 정치과정에 흡수할 수 있는 투입구조가 제도화될 때 발전할 수 있다. 국민의 요구들을 정치과정에 반영하는 통로로서 먼저 이익집단들의 중요성을 들 수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표출하는 이익집단이 잘 조직되고 적극적인 활동이 보장될 때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여론과 이익집단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렴하는 이익결집의 기능을 수행하는 정당이다.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대체로 당내 민주화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정책중심의 정당이 아니라 인물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하고 이익들을 결집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민간조직이나 행정이 근대화되어 가고 있는 데 반해 정당의 조직과 운영이 전근대성을 탈피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정당의 본질적 기능을 원만히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국회는 민의수렴의 중추적 기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회는 '행정부의 시녀'로서 행정부의 결정에 대한 '거수기'의 역할을 수행 해왔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입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우위 현상은 한국 민주주의에만 특유한 문제가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가 공통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국회 기능의 활성화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청회의 활용, 전문위원제의 보강, 상설연구자문기구의 설치 등의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그 제도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며 국회위원들의 자질 향상을 통해 국회 기능의 전문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회과학| 2009.12.23| 3페이지| 1,000원| 조회(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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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 눈에 내린 신령 감상문
    《푸른 눈에 내린 신령》감상얼마 전 이슬람 사원을 다녀오고 나서 이슬람에 대한 편견이나 우리 사회에서 종교에 대한 포용력 등에 대해 이래저래 많은 생각이 들었고 잘 알지 못하면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내 자신을 반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나도 알게 모르게 나쁜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예부터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무속 신앙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종교가 없는데 주변에서 좋지 못한 사례만 접해서 그런지 서로의 종교에 대해 배타적으로 여긴다고 생각했던 종교인들에 대한 인식도 어느 정도 좋아졌다.이 프로그램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히 서양인에게 신내림이 일어났고 그에 따라 내림굿을 받는 과정이나 그 사람의 주변 상황의 변화 등에 대해 알려주기보다는 이 사실을 토대로 종교는 국경이 없으며 무엇을 믿느냐보다는 얼마나 열심히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서로의 종교 간에 포용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인 것 같다. 이 방송을 보고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져서 프로그램의 시청자게시판에 들어가 보았는데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의 종교적 개방성에 대해 실망했다. 물론 방송을 통해 깨달은 점이 많았고 좋은 방송이었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기독교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무속 신앙을 깔아내리며 모독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안타까웠다.사실 따지고 보면 원래 오래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종교는 무속신앙이었는데 우리나라가 근대화되면서 서양의 종교인 천주교(혹은 기독교)도 들어오게 된 것을 생각하면 무속신앙이 사이비 종교 취급을 받는 것은 우리 조상들의 종교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요즘의 무속신앙은 부패된 모습들이 언론에 많이 보도되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나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무속인이 그런 것은 아니고 속담에도 있듯이 ‘선무당이 사람 잡는’행태인 것을 마치 무속신앙 전체가 그런 것 마냥 지탄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방송에서 무속인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동안 매스컴에서 다뤄왔던 이상하게 귀신이 쓰인 듯한 무속인의 모습들만 생각해 와서 그런지 무속인도 그냥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으며 단지 직업으로 무속에 종사한다는 것 밖에는 다른 점이 없었다. 실제로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로 있어서 신내림을 받고 그로 인해 포기해야했던 삶을 생각하면 무속인도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독일 여성 안드레아가 신내림 때문에 고통을 받았고 그로 인해 한국에서 내림굿을 받는 과정도 인상 깊었지만 그 이후에 독일로 돌아가서 원래 믿었던 종교인 가톨릭의 신부님에게 찾아가서 그 동안의 자초지종을 설명했을 때 신부님이 보여준 태도가 가슴에 와닿았다. 어떤 신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며 방식이 다를 뿐이지 가톨릭이나 무속이나 모두 신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통로이고 그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 신부님과 안드레아가 할 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런 것이야말로 종교적 관용이 아닐까 싶었다.
    독후감/창작| 2009.12.23| 2페이지| 1,000원| 조회(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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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학교 수학 이렇게 가르쳐라 서평
    [ 초등학교 수학 이렇게 가르쳐라 ] 를 읽고‘제5장 교사들의 교과지식’에서는 앞서 논의한 네 장의 주제를 통틀어서, 중국과 미국 교사들의 이해를 대조했다. 두 나라 교사들의 반응은 초등수학이 중국과 미국에서 아주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미국 교사들은 개념적 이해를 가르치는 데 관심은 있었지만,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견해가 반영된 반응을 보였다. 초등수학은 기본적인 것으로 사실과 규칙을 임의적으로 모아놓은 것이며, 그 울타리 안에서 수학을 한다는 것은 답에 이르는 단계별 절차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중국 교사들은 계산법을 수행하는 방법을 알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이치에 맞는 이유를 아는 데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들의 태도는 연구 중인 수학자의 태도와 비슷했다. 그들은 등식을 유도해서 설명을 정당화하고, 한 문제를 여러 방법으로 해결하고, 네 가지 기본 연산들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내 경험을 돌이켜 생각을 해보자면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까지는 수학 학습에 대한 당위성을 납득하지 못해 공부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수학에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흔히 우리는 수학을 학습할 때 대수, 기하, 확률 등 여러 영역으로 나누어 배우게 되는데 그 영역들이 서로 별개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수학은 배울 내용이 너무 많다고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각 영역들이 서로 별개가 아니고 모두 연결고리가 있어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깨닫고 그를 통해 재미를 느꼈던 것이 아닐까 싶다.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생 또는 그 이전부터 수학을 배울 때 흔히 계산 기술로 수학 능력을 평가받곤 한다. 그래서 수학 학습에 대한 당위성이나 흥미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단순히 수학에 대해 기계적으로 계산을 잘 해야 하는 과목으로 인지되는 것이다.중국에서는 수학을 교육하는데 있어 수학자가 하는 방식과 비슷하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수학을 느끼게 되고 소위 말하는 수학의 지식의 구조를 탐색하고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초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칠 때는 입시 위주의 딱딱한 계산이나 풀이를 암기하는 방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수학 자체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환경이나 교육과정이 필요한데 현실상 우리나라에서는 도입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 않아도 수학이나 영어, 국어와 같은 주요과목이라고 불리는 과목들은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향이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도 증가할 추세라고 하는데 공교육에서 수학 문제풀이보다는 수학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방식으로 교육과정이 구성된다고 하면 우리나라 교육 시장에서 수학을 사교육에 더더욱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커질 것 같다.
    독후감/창작| 2009.12.23| 1페이지| 1,000원| 조회(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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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파르타의 여성교육
    스파르타는 정복자로서의 최강국의 영예를 유지하기 위한 군국주의적인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었고 교육도 자연히 이러한 사회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교육의 기본 목적도 국방을 담당할 이상적인 군인의 양성에 있었다. 스파르타의 교육은 지적 교육을 경시한 육체훈련 위주의 교육으로 그리스의 전체적 이상인 조화로운 인간성과는 거리가 다소 멀었다. 무용도 자기를 방어하고 적을 공격하는 전투무용이 행해졌으며 음악 역시 용기를 고무하고 애국의 정조를 높이기 위해서만 교수되었고 독(讀), 서(書), 산(算)과 같은 교육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것만을 가르쳤다.스파르타 교육은 7세부터 20세까지 아고게(Agoge)라는 공교육 기관의 집단생활에서 이루어진다. 아고게 교육의 목적은 단 하나로 용감한 전사를 만드는 일이었다. 인내와 충성, 겸손을 얻기 위해 아이들은 머리를 깎지 않고 옷도 입지 않았으며 식사는 극히 소량만 하며 야수처럼 길러졌다. 아고게를 졸업하고 나서도 30세까지는 중앙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30세가 되면 완전시민의 자격이 갖추어 지게 되고 다시 60세까지는 궁동식사제도 등을 통해 국가의 통합을 유지했다.스파르타 교육의 특징으로는 어른들이 남의 아들도 자기 아들과 똑같이 훈계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말은 아주 짧고 의미심장하고 아름답게 하도록 가르쳤으며 고학년이 되면 명예는 용기에서 생기고 용기의 보상은 행복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교육기간 중 잘못을 했을 경우의 벌은 채찍질과 굶기기였는데 이런 엄격한 분위기에서도 특이하게 용서받는 두 가지가 있었다. 음식물 훔치기와 동성애였는데 훔치기를 용인한 것은 극한 상황에 대비한 생존 훈련이었기 때문이고 동성애는‘동성애도 바람직한 인품에 반해 사귀면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였다고 한다.이런 사회에서 여성 교육의 중요한 목적은 국가의 군인이 될 건강한 남아를 낳는 일이었으며, 노예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육체 훈련이었다. 그들도 소년들과 같이 분대로 편성되어 뛰기, 달리기, 레슬링, 창던지기, 행진, 노래 등을 배웠지만 소년들과 다른 점은 공공기관에서 훈련하지 않고 가정에서 훈련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웃 아테네의 여성들과 같이 방직과 길쌈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으나, 가정에서 그들의 지위는 아테네의 여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꽤 높았다고 한다. 또한 모든 가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스파르타 여성의 영향력은 매우 컸으며 교육이 국가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같았으나, 아테네의 교육은 국가의 통제가 없었고 학교가 모두 사립이었다는 점에서 스파르타와 달랐다. 집안에서 궂은 일 하지 않고 얌전하게 지내는 아테네의 소녀와 달리 스파르타의 소녀들은 운동을 했고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며 종교 축제 행사에도 참가했다고 한다. 종교 축제 행사 때에는 튼튼한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소녀들이 나체로 참석했는데 이를 통해 여성은 이 당시 스파르타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의무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덕분에 스파르타의 남자들이 군인으로서 명성을 떨쳤던 것과 동일한 정도로 스파르타의 부녀자들이 희랍의 다른 도시국가 사람들 사이에서 어머니로서 명성을 떨쳤던 것은 바로 그러한 훈련 덕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현재 고액권 화폐에 여성을 도안으로 하자는 의견이 반영되어 신사임당이 5만원권 도안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논란이 많다. 여성단체들은 5만원권 초상 인물로 선정된 신사임당에 대해 ‘가부장적 사회가 만들어낸 현모양처 여성상을 선정한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신사임당이 살았던 시대는 여성의 활동 범위에 제약이 많았고 현명한 어머니, 그리고 좋은 아내라는 ‘현모양처’가 모든 여성들의 모토가 되는 시대였다. 그 시대의 시각으로 본다면 신사임당은 모두가 존경했던 최고의 여성상이었던 것이다. 역사는 변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도 변하므로 과거에 있었던 일을 현재의 기준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이 논란은 쉽게 잠재워지지 않을 듯하다. 지금 이 현실을 비교했을 때 그리스에서 새로운 지폐를 도입해서 도안을 고대 희랍 시대의 유명했던 스파르타 여성으로 정한다고 한다면 그곳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하다. 과연 그 당시의 여성을 훌륭한 여성으로 인정을 할 것인지 아닌지는 그리스 사람들의 정서가 우리나라와 다르기 때문에 딱히 어떨 것이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하지만 그 당시 스파르타 사회의 여성에 대한 교육방식을 우리의 조선시대와 비교해 본다면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이 든다. 스파르타의 여성들도 정식 학교가 아닌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고,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나라를 지킬 건강한 사내를 생산하는 도구였기 때문에 교육(특히나 신체적인 단련)을 받은 것이다. 조선시대의 여성들도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그 대상이 양반집 규수에 한정되어 있었고 왕실에서조차 여성을 왕실을 이어나가야 할(혹은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할) 심하게 말하면 수단으로 치부되었던 점에서 스파르타 여성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스파르타에서는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조선의 여성들은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다만 스파르타는 용맹한 사내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여성도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어야 했고 조선은 문(文)을 중요시했던 사회였기 때문에 다소 여성이 위축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스파르타의 여성교육은 진취적이고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반면 조선시대의 여성 교육은 보수적이라는 평을 받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된다.또 스파르타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남자들은 국가를 지키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했고 여자는 남자가 밖의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집안을 잘 돌보고 훌륭한 군인이 될 아이를 낳는 일에만 전념하면 되었다. 비단 스파르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녀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었다. 남학생들은 ‘교련’이라는 과목을 배우고 여학생들은 그 시간에 현재 가정에 해당되는 과목을 배웠던 것이다. 국가 상황이 안정됨에 따라 교련은 없어지긴 했지만 그 자리는 현 ‘기술’과목에 해당되는 것을 배우게 되었는데 이는 성역할을 국가에서 정하고 그를 따라야 했던 상황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점점 여성의 권익 신장에 대한 요구가 커짐에 따라 기술과 가정 과목은 ‘기술·가정’이라는 과목으로 통합되었고 현재는 남학생과 여학생 모두가 그 과목을 배우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여자와 남자가 학습하는 것에 대한 차이가 없고 고의적으로 성 역할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항상 가치판단을 할 때 그 당시 사회가 처한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스파르타의 교육 방식을 ‘옳다’와 ‘그르다’의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스파르타는 국민 수가 적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라를 존속시켜야 했다. 그래서 자신의 나라를 부강해지기 위해 선택한 최선의 방책이 집단 교육을 통해 덕을 겸비한 용감한 전사를 배출해냈던 것이었다. 여성의 의무는 그런 용사를 생산해내기 위해 전념을 다하는 것이었고 전장에 나간 남편에게 뒷일을 걱정시키지 않아야 했다. 스파르타의 여성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매우 당당한 여성이 될 수도 있고 불쌍한 여성이 될 수도 있다. 그 시대는 남성도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국가에 모든 것을 바쳐야 했기 때문에 비단 여성만이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반면 용감한 전사를 배출해 내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친 힘들게 산 여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교육학| 2009.12.23| 3페이지| 1,000원| 조회(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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