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20074389 이수나파랑.가시(可視) 스펙트럼에서는 465∼482 까지가 파랑으로 보인다. 표준적인 파랑은 먼셀 표색계에서 대체로 2 ·5 PB4/12 정도에 상당한다. 빨강 ·초록과 함께 빛의 3원색으로서 보색은 노랑이며, 빨강보다 멀리 작게 보인다.여성의 색파랑은 보통 남성의 색이라고 하지만 예로부터 내려오는 상징체계에서는 수동적이고 조용하여, 적극적이고 강한 빨강의 반대색이다. 서양의 여성 이름 '첼리스티스, 첼리나, 셀리나' 등은 하늘색을 뜻하는 라틴어 '첼레스티스'에서 나왔으며 '아이리스'도 파란 꽃 이름이다.안정의 색파랑은 부드러운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파랑은 수동적이고 안정된 색으로 수면제와 안정제의 포장에 많이 사용된다. 또한 파랑은 이불보와 잠옷에도 많이 쓰인다. 파랑-흰색으로 포장된 제품으로 니베아 크림은 피부를 부드럽게 안정시켜준다. 정신병원에서 발광하는 환자를 파란 방으로 데려 갔더니 즉시 안정을 되찾았다고 한다. 진정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진한 하늘색은 모든 색 중에서 가장 사람을 안정시키는 색이다. 파랑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상징성, 즉 파랑이 연상시키는 감정에서 나타난다. 파랑은 단순한 열정이 아니라 상호간의 이해를 중요한 미덕으로 삼는 색이다.신뢰의 색파랑은 신뢰의 색이기 때문에 홈페이지, 포장, 제품이나 CI 디자인 등에 적합하다. 많은 은행과 금융기관들은 광고나 카탈로그 등에서 파랑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신의 색신은 하늘에 산다. 파랑은 신을 둘러싸고 있는 색이다. 그래서 파랑은 인도에서 신의색으로 쓴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썼던 금색마스크도 파란머리카락과 파란수염을 달고 있다. 이집트의 신'아문'은 눈에 띄지않게 하늘을 날수 있도록 피부가 파란색이었다. 인도의 신'비슈누'도 인간의 형상을 한 '크리슈나' 신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이 하늘임을 나타내는 파란색 피부를가졌다. 라마신도 파란피부색이다.그리움의 색그리움의 파랑은 음악에서 불루스를 만든다. 불루스는 파랑이라는 뜻이며 대개 '우울한 맬랑꼴리'등으로 해석된다. 대부분의 청색을 주로 사용하는 작가들은 청색에서 깊은 정신성을 찾으려고 한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다른 색상들은 배제하고 청색을 주조색 으로 하는 단조로운 토운으로 화면을 이끌어간다. 뭉크의 작품이나, 르동, 프란츠 마르크 등이 그렇다. 이들이 표현하려는 것들은 인간의 불안, 고통, 슬픔, 부조리, 좌절된 희망등이다.{nameOfApplication=Show}
태초의 색빨강은 사람이 이름 붙인 첫 번째 색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색 이름이다. '색'과 '빨강'이 같은 단어로 쓰이는 언어도 있다. 스페인어로 '콜로라도 colorado'는 붉은 색의 강이란 뜻 .재미있는 실험생각나는 대로 색 이름을 말해보라고 하고 그 다음에는 악기, 공구 이름을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빨강, 바이올린, 망치 라고 대답한다.열정, 사랑에서 증오까지빨강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모든 종류의 열정을 나타내는 색.열정, 사랑에서 증오까지사랑- 빨강 75%,분홍 7% 증오- 빨강 38%,검정 35%, 노랑15% 증오의 빨강은 사랑의 빨강 보다 어둡다.불의 상징따스함 – 빨강 47%,노랑26%,주황17% 에너지- 빨강38%,노랑20%,주황12% 불꽃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빨강이 떠오른다. 하지만 불꽃의 실제 색깔은 노랑이거나 파랑이다.불의 상징성냥개비는 머리가 늘 빨간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상상 속에는 성냥개비 머리가 언제나 빨간색이다.남성적인 빨강빨강은 남성적인 색으로 빨강의 남성적 특성의 여러 의미에서 나타난다. 괴테는 빨강을 '색의 여왕'이 아니라 '색의 왕'이라고 불렀다. 빨강은 힘과 적극성,공격성의 색으로 남성적이다.남성적인 빨강불-남성적 물-여성적 빨강-그리스도 파랑-마리아남성적인 빨강이집트의 프레스코 벽화를 보면, 여자의 피부는 노랗고 남자의 피부는 빨갛다.남성적인 빨강그런데도 남성적인 색을 '빨강'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베이비 컬러인 하늘색과 분홍색 때문이다. 여자아이가 입는 분홍색이 빨강에서 나온 색이라고 생각하는 것.광고의 색광고에는 어디에나 빨강이 들어간다. 1950년경까지 빨강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 전쟁이 끝난 뒤 새로 시작된 삶의 기쁨을 상징.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모두 빨갛게 인쇄하여 빨강이 넘쳐나자 빨강을 싫어하는 사람이 늘었다.광고의 색빨강으로 인쇄된 정보는 검정으로 인쇄된 정보보다 시각적으로 더 큰 관심을 일깨우기는 하지만 '광고' 같다는 인상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읽지 않고 외면한다.광고의 색인지심리학적으로 빨간 글씨는 읽기가 힘들다. 결국 빨강의 강조 효과론은 현실에서 참담하게 패배 문자 디자인에 색이 많이 들어가면 정보 전달은 뒷전으로 물러난다.멀고 무한한 색색들도 원근법을 만들 수 있다. 따뜻한 색일수록 가깝게 느껴지고 차가운 색일수록 멀게 느껴지는 것이 원칙. 강한 파랑에서 약한 파랑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원근 효과를 나타낸다.멀고 무한한 색물과 공기는 실제로 파란색이 아니지만 파랑으로 느껴진다. 깊은 바다는 파랗게 보인다. 공간이 깊어지면서 모든 색이 파랑 속으로 사라진다. 제일 먼저 사라지는 색은 빨강.여성의 색파랑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원칙을 상징한다. 파랑은 조용하고 수동적이며 내향적이다. 상징학에서 파랑은 물을 나타내는데 물 역시 여성을 상징한다.여성의 색라틴어 '첼레스티스 caelestis'는 '하늘색'이라는 뜻. 여기서 첼레스티나, 첼리나, 셀리나 등의 여자이름이 나왔다. 아이리스도 파란 꽃 이름인 동시에 여자이름이다.신성한 파랑신은 하늘에 산다. 파랑은 신을 둘러싸고 있는 색이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썼던 금색마스크도 파란머리카락과 파란수염을 달고 있다.신성한 파랑인도의 신 '비슈누'도 인간의 형상을 한 '크리슈나' 신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이 하늘임을 나타내는 파란색 피부를 가졌다. 라마신도 파란피부색이다.가장 차가운 색파랑을 차갑게 느끼는 이유는 추울 때 파랗게 변하는 피부와 입술 등 우리의 경험에 근거한다. 얼음과 눈도 푸른빛 파랑은 흰색보다 더 차갑다. 흰색=빛, 파랑=그늘안정의 색파랑은 부드러운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파랑은 수동적이고 안정된 색으로 수면제와 안정제의 포장에 많이 사용된다. 파랑-흰색으로 포장된 제품으로 니베아 크림은 피부를 부드럽게 안정시켜준다.신뢰의 색파랑은 신뢰의 색이기 때문에 홈페이지, 포장, 제품이나 CI 디자인 등에 적합하다. 많은 은행과 금융기관들은 광고나 카탈로그 등에서 파랑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nameOfApplication=Show}
나의 교육적 신념만화 애니메이션학부 20074389 이수나어렸을 때부터 나의 꿈은 소박하면서도 따듯한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한 선생님에 대한 풋풋한 기억 때문이기도 합니다.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반 학생들 한명 한명에 대해 세심하게 알고 계셨고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편애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 부자 살림은 아닌 것 같았는데도 배고프면 언제든지 댁에 와서 밥 먹고 가라고 하셨고, 놀러가고 갈 때 마다 항상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커서 꼭 저렇게 멋진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 했습니다.힘든 미대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까닭은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그 분에 대한 향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미술대학에 와서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물론 좋았던 점도 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미술수업이 많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수업시간에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해야 하는 수업이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습니다.그러나 싫었던 점은 대학 친구들은 수업만 받고 다들 집에 가버리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만 만나게 되고, 고등학교 때 친구들처럼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아닌 지극히 개인주의라는 점에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교수님들께서는 담당 수업 학생들 이름과 얼굴조차 모르셨고, 교수님들을 가까이 대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점 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내가 바라고 생각해 왔던 대학 생활과 지금의 생활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지난 일 년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사실 새로운 애들과 친해지고 학교행사도 많아서 대학 생활은 정말 재미있고 낭만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행사는 학기 초에만 있다가 금세 지루한 학교생활이 되고 말았습니다.그래서 마음속으로 다짐한 바가 있었습니다. 내가 앞으로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최선을 다해 학점관리를 하고 미술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열정을 갖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에 다니면서 초등부 선생님을 맡고 있는데 미래에 진짜 선생님을 할 때를 위한 예행연습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덕이란 무엇인가미술대학 만화, 애니메이션 학과20074389 이수나프로타고라스는 철학 및 문명 사이에서 소피스트라는 이름으로 손꼽히는 사상가이다. 소피스트란 말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프로타고라스는 사상가 이면서도 뛰어난 교육자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유명한 소피스트들의 존재는 지금의 고액 논술 강사, 변호사 등을 합쳐 놓은 것과 같았다. 일종의 에듀테이너(edutainer)인 셈이다. 그는 자신이 덕스러움을 가르치는 데에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액의 수업료를 받는 것이 정당한 가르침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대학 입시에서 논술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만큼 말 잘하는 법 또한 중요하다. 교육 정책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교육비가 치솟는 요즘 현실에서, 돈을 받지 않고 철학을 가르쳤던 소크라테스와 비교 했을 때 피타고라스는 고액의 돈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리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 교육자인 것 같다.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에서 주인공은 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이다. 이 책에서 둘은 논쟁을 펼치게 되는데 논쟁의 주된 테마는 교육이다. 처음 시작은 히포크라테스라는 젊은이가 흥분해서 소크라테스를 찾아온다. 소크라테스가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하자 히포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가 아테네에 와있으니 지금 당장 히포크라테스 자신을 프로타고라스에게 데려가 그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이 부분에서 소크라테스도 우리에게는 유명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는데 프로타고라스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가겠다는 내용을 보면 그 당시 프로타고라스가 얼마나 유명한 소피스트였는지를 느낄 수 있다. 흥분한 히포크라테스에게 소크라테스는 몇 가지 질문과 소피스트들은 육신의 양식을 파는 장사꾼처럼 자신을 선전하고 다닌다고 말하면서 히포크라테스를 진정시킨다. 그리고 나서 소크라테스와 히포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가 있는 부자 칼리아스의 집으로 향한다.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냐는 질문을 하자 프로타고라스는 명쾌하게 나랏일이나 집안을 다스리는 기술과 덕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의회를 예로 들면서 정치 기술은 선박제조나 건축 일처럼 전문적인 가르침을 받아서 생기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 제 아무리 뛰어난 정치가라 해도 자신이 갖춘 덕을 자신의 아들에게 조차도 가르질 수 없다고 반문을 던졌다. 소크라테스의 반문에 프로타고라스는 노련하게 답변을 한다. 예컨대 추한 얼굴을 하고 있다든지 난장이라든지 하면 오직 가엾다고만 생각하지만 부정이나 경건치 못한 행동을 할 경우에 사람들이 노여워하거나 책망하는 것은 분명히 덕성이 마음가짐과 배움으로 얻어 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처음 소크라테스의 반문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프로타고라스의 답변을 읽으니 덕스러움은 너무나 당연히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명쾌한 답변을 한 프로타고라스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프로타고라스의 명확한 답을 듣고는 소크라테스는 사소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대체 덕이란 하나이면서도 동시에 덕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부분이 있어, 정의라든지 절제라든지 경건이라는 것이 제각기 구분되어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모든 덕은 오직 하나이지만 여러 가지 이름이 붙게 되는 것인지 이 점에 대해 프로타고라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해 프로타고라스는 덕이란 것은 본래 하나로서 정의, 절제, 경건 등은 그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 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의 길고 긴 논리 싸움이 시작된다. 이 논리 싸움은 사실 읽으면서 지루하기도 하고 이해가 금방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두 고수들의 논리 싸움이어서 그런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이 논쟁에서 소크라테스는 참된 지식과 절제, 용기, 정의 , 경건은 실은 모두 같은 것이라는 결론은 내린다. 프로타고라스는 처음에는 덕이라는 것은 하나라고 했었으나 결론은 모두 다르다고 주장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아주 상반된 견해가 아닐 수 없다. 결말에 이른 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는 어느새 서로의 입장을 버렸음을 알고서 충격을 받는다. 절제, 용기, 정의, 경건이 지식과 같다면 이것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은 당연히 교육의 대상이고 배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절제, 용기, 정의, 경건이 모두 지식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라면 각각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결국 이 논쟁에서 프로타고라스는 처음에 덕스러움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고 너무나도 명확하게 답변했다가 덕은 가르질 수 없다고 주장하게 되어버리고 한편, 소크라테스는 덕성은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고 프로타고라스에게 반문했었으나 나중에는 덕성을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한 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루한 논쟁이었으나 마지막에 두 사람의 논리가 뒤바뀐 결말을 보면서 나는 매우 흥미로웠다. 이 논쟁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