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TOC o "1-3" h z u HYPERLINK l "_Toc187066544" 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PAGEREF _Toc187066544 h - 1 - HYPERLINK l "_Toc187066545" Ⅱ. 우리는 한 배를 탔다 PAGEREF _Toc187066545 h - 1 - HYPERLINK l "_Toc187066546" 1. 열린 경영(Open Book Management) PAGEREF _Toc187066546 h - 1 - HYPERLINK l "_Toc187066547" 2. 변화하는 노조 PAGEREF _Toc187066547 h - 3 - HYPERLINK l "_Toc187066548" Ⅲ. 하나되는 기업 PAGEREF _Toc187066548 h - 4 - HYPERLINK l "_Toc187066549" Ⅳ 참고자료 PAGEREF _Toc187066549 h - 5 -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인간은 사회라는 굴레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회의 굴레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이러한 인간의 굴레를 실체화 한 것이 바로 기업이기 때문에 사회가 무너지면 기업도 견뎌낼 수 없다. 즉, 기업의 흥망성쇠는 기업 자체만의 능력 혹은 문제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속한 사회화 밀접하게 관련된다. 사회는 크게 보면 지구촌 전체가 되며, 작게 보면 한 지역 내 사사로운 모임 된다. 최근의 기업들이 글로벌화 전략을 추진하는 것은 사회의 영향력 즉, 국가의 영향력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기업의 글로벌화는 장기적으로 현명한 전략이지만, 한국의 많은 기업은 기업 내부의 문제를 채 해결하지 않은 채 성급한 글로벌화에 도전한다. 한국의 사업자들이 가장 골머리를 썩고 있는 한국기업의 문제는 바로 노사분규이다. 잘 나가던 사업이 파업으로 인해 장기적 손실을 보는 현상은 한국의 사회에서 비일비재하다. 노사분규해지는 것뿐 아니라, 상대를 이해시키고 내 편으로 만드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기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 대화의 기법을 아는 것은, 기업의 가치를 극한으로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반면, 경영진이 대화의 기법을 익히고 있지 않으면 그것은 언제나 노사분규로 나타난다. 이러한 점에서 서두칠 사장이 이룩해 낸 ‘신 노사문화’는 경영진과 노동자가 이룩해야 할 바람직한 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서두칠 사장은 대화의 기법을 경영에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기업의 위기를 타파하고, 기업을 성공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신화적 모습을 담아낸 책이 바로『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이다.Ⅱ. 우리는 한 배를 탔다1. 열린 경영(Open Book Management)우리의 삶은 ‘너’와 ‘내’가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너와 내가 서로를 알아간다는 것은 서로가 ‘말’을 사용하여 ‘얘기’를 나눔으로써 가능하다. 우리는 주고 받는 얘기를 통하여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고, 이해하면서 세계에 대한 의미를 키워 나간다.서두칠은 한국형 인사관리의 중요성을 주장한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이론이라도 그 이론과 문화가 맞지 않으면 전혀 소용이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언제나 협동심이었다. 그렇기에 독단적으로 회사를 이끌어가기 보다는 사장실을 열어 직급이 낮은 직원과 대화를 원했다. 협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서두칠 부임 이전의 한국전기초자는 97년 77일간의 파업으로 노사분규의 극을 보여준 회사였다. 하지만 노와 사의 갈등은 서두칠 사장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제로 베이스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모든 것을 처음으로 돌리는 것은 옳은 결정이었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신뢰는 처음부터 다시 쌓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한번 서두칠 사장의 ‘대화의 기법’이 빛을 발한다. 혁신 초기에는 귀찮았을 법도 하다. 지친 몸을 쉴 새도 없이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해 사장의서두칠은 자신이 솔선수범한 후 간부 및 직원에게 혁신에 대한 참여를 요구하였다. 또한, 참여요구의 방법은 강요가 아닌 진솔한 대화였다.“열린 경영은 사원들에게 최고 경영자 수준의 정보를 제공하고 생산업무와 관련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이 경영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경영혁신방안”으로, 주요과정은 ‘정보공개’, ‘사원교육’, ‘자율권 부여’, ‘동기부여’ 등이다. 서두칠 사장은 이러한 과정을 차근히 밟아나갔다. 그는 우선 사장실을 개방했다. 이전까지 ‘사장’이란 직함의 이미지는 어렵고 높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장실을 개방하고, 사장실에 원탁을 들여놓음으로써 부하직원과의 벽을 허문다. 마음을 연 대화가 혁신의 중요한 도구라는 것이다.이러한 그의 열린 경영의 장점은 노사간 양방향 의사소통으로 극대화된다. 한국전기초자의 총무팀은 소식지 ‘열린 대화방’을 통해 회사의 정보를 노동자에게 공개했다. 서두칠 사장이 공개한 정보는 기업의 재무제표부터 고객의 접대비까지 다양했다. 닫힌 경영은 노동자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하물며 한국전기초자같이 위기에 봉착해 있는 기업은, 주위의 불안한 소문에 노동자가 동요할 위험이 크다. 하지만 기업의 모든 정보가 노동자에게 공개되면서 그들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정보공개는 사원이 연중무휴로 일할 동기를 마련했고, 사장에 대한 큰 신뢰감을 가져왔다.우리는 항상 상급자의 솔선수범을 요구하지만 그것을 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행동에 진실이 담겨 있지 않는 한 ‘억지 솔선수범’은 언제나 금방 들통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회갑마저 일과 함께 보내버린 서두칠 사장의 노고는 진실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누구나 진실을 겪으면 감동하기 마련이다. 감동이 쌓여 큰 흐름을 형성하면 그것은 언제나 기적을 낳는다. 솔선수범은 몸으로 나누는 대화이며, 서두칠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총 부채 4700억원. 퇴출대상 1호의 기업을 살린 것은, 노사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노동자의 협조모습은, 회사의 업무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었으나, 솔선수범으로써의 가치가 있었다. 그는 사람을 얻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경영인이었다. 기업에서 인력은 곧 재산이 된다. 서론에 언급한 바와 같이 기업은 곧 하나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역사 속 현군은 언제나 인복이 있었다. 그들이 가진 인복은 타고난 운에 의한 것도 있었으나,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왕 자신의 행실이었다. 서두칠 사장은 기업의 현군이었다.2. 변화하는 노조서두칠 사장의 열린 경영은 전투적이던 강성 노조마저 변화시켰다. 변화의 핵심은 경영진일지라도 변화를 수행하는 것은 모든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던 무수한 경영진은 항상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 리더는 구성원을 힘으로 밀거나 당기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사람인 것이다. 서두칠 사장의 열린경영이 큰 신뢰를 얻게 되자 노조는 노조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서두칠의 열린 경영을 모방하려 한다. 열린 노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도 경쟁력이 있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서두칠 사장의 지론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는 바람직한 것이었고, 실제로 노조는 이전의 단순전투적인 성향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었다.그들은 협력의 미학을 깨달았다. ”오직 고객만족의 경영과 생산성의 향상에서 얻어지는 경쟁력만이 항구적으로 일터를 보장해 줄 수 있다는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일터를 단순히 돈을 버는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원해 주는 터전이라는 의식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량기업의 노조가 가지고 있는 기업에 대한 인식이다. 그들의 노고는 단순한 희생이 아니기에 아름답다. 한국전기초자의 노조는 수동적인 노조가 아니라 능동적 노조였다. 그들은 이제 투쟁보다는 대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문제해결에 대한 현명한 대처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쉴 틈 없이 노동력을 착취하는 모습. 서두칠과 전기초자 사람들의 끈끈한 신뢰관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연중무휴로 일하는 그들을 보며 그러한 생은 그들의 단단한 그들만의 협동심을 회사를 향하게 만들었다. 장기 농성을 감수할 만큼 그들은 강인했다. 그들은 이제 ‘정신노동’을 제공하는 경영진을 믿으며 ‘육체노동’을 한다. 이전에 경영진이 단지 ‘신선놀음’을 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차별’을 없애고 ‘차이’를 인정하는 문화를 이룩하는 것. 그것은 서두칠과 전기초자사람들이 이룩한 성과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Ⅲ. 하나되는 기업혁신98 도약99 성공2000 재도약2001 변혁2002 성취2003한국 전기초자는 해마다의 목표를 모두 이룩해 냈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성공이라불리운다. 모두들 한국전기초자의 성공을 기적이라 말한다. 하지만 한국전기초자사람들에게 회사의 회생은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일 뿐 기적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노력은 부하직원의 인격을 존중하고 모든 정보를 공개하여 합심을 이끌어 낸 서두칠의 힘이 없었다면 얻기 힘든 일이었다.2001년 5월 1주 주간 베스트셀러 경제/경영 6위2001년 4월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 경제.경영 2위2001년 4월 4주 인터넷서점 베스트셀러 : 7위2001년 4월 3주 주간 베스트셀러 경제/경영 7위2001년 4월 1주 주간 베스트셀러 종합 11위『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는 위와 같은 성과를 이룩해 냈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된 원인은 한국전기초자의 성공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성공의 바탕에는 믿음이 있었다.한국전기초자 회생의 모든 과정은 단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관리직과 노동직의 신뢰가 쌓여야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쌓인 신뢰는 점차 견고해져 ‘언론’의 영향권에서도 멀어지게 된다. 실제로 그들은, 한국전기초자의 인수와 관련된 수많은 언급에도 서로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흔들리지 않고 업무에 열중할 수 있었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서두칠 사장이 있었다. 그가 성공한 CEO로 추앙받을 수 있던 이유는 모두들 쉽게 이룩하지 못한 ‘신 노사문화’에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의 ‘대화의 기법’5 -
운영관리(계절학기)경영진의 핵심역량, “융통성”- 『the Goal』을 읽고Contents TOC o "1-2" h z u HYPERLINK l "_Toc186476277" Ⅰ. 들어가는 말 PAGEREF _Toc186476277 h 2 HYPERLINK l "_Toc186476278" Ⅱ. ‘로고’의 꾸준한 인식 변화 PAGEREF _Toc186476278 h 4 HYPERLINK l "_Toc186476279" 1. 기업은 돈을 버는 곳이다 PAGEREF _Toc186476279 h 4 HYPERLINK l "_Toc186476280" 2. 낡은 사고방식을 타파하라 PAGEREF _Toc186476280 h 6 HYPERLINK l "_Toc186476281" 3. 발상의 전환을 이룩하라 PAGEREF _Toc186476281 h 8 HYPERLINK l "_Toc186476282" Ⅲ. 시장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PAGEREF _Toc186476282 h 10 HYPERLINK l "_Toc186476283" Ⅳ. 참고자료 PAGEREF _Toc186476283 h 12Ⅰ. 들어가는 말경영자는 기업을 운영할 때 여러 가지 오류에 빠질 위험을 갖는다. 기업 목적의 상실, 시장 수요의 오해, 과거 방식의 답습 등이 그것이다.『the Goal』은 경영자가 이러한 여러 가지 오류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은 “세계 경제의 패권을 쥐고 있던 미국 경제가 일본 시장에 밀려 휘청거렸던 1980년대 후반, 미국 내 제조업에 새로운 혁신을 불어넣은 스테디셀러”1) 로, 소설 속 경영위기의 타파과정은 배경이 공장인 만큼 생산관리에 관한 내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공장설비의 첨단시설화가 진행될수록 오히려 침체되는 사업부의 모습에서 모순을 발견하고 첨단시설을 진정한 효율성의 메카로 발전시켜가는 과정은 생산운영관리의 중요성과 생산운영관리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시사한다.“이 책은 세계경제의 패권을 쥐고 있던 미국 경제 활용하라’에 해당하는 내용이며, 제5단계는 ‘7. 병목을 넘어서’, ‘8. 새로운 척도’에 해당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위의 다섯 단계의 성장과정을 거쳐 경영인들에게 놀라운 가치를 제공한다.‘로고’가 융통성을 발휘해 가는 과정은 위의 다섯 단계로 구분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로고’의 융통성의 크기보다는 인식의 변화차원에서『the Goal』을 분석하는 것이 경영인의 융통성을 이야기하기에 수월하므로, 이하에서는 ‘로고’로 대표되는 경영진이 갖추어야 할 인식에 대해『the Goal』의 내용을 살펴보며 이해하기로 한다.Ⅱ. ‘로고’의 꾸준한 인식 변화1. 기업은 돈을 버는 곳이다유니코사의 유니웨어 사업부 공장인 베어링톤 공장은 초기에 기업목표의 오류에 봉착해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공장의 첨단기기를 끊임없이 돌리는 것이었으며, 인부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노동력을 얻는 일이었다. 판매보다는 생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에 공장의 흐름은 시장의 욕구와 변화를 무시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이익을 저해한 이유였다. 공장은 다른 어느 공장보다 최첨단이었고, 중간관리자의 능력도 탁월했다. 인부의 작업능력은 최상이었고, 공장 내 환경도 좋은 편이었으며, 노사간의 관계도 원만했다. 하지만 공장은 손실이 늘어만 갔고 끝내는 3개월이라는 회생시한을 선고 받기에 이르렀다.이 책의 주인공 ‘로고’는 이러한 위기에 직면한 베어링톤 공장의 대표이다. 임명 당시에는 지역사회의 큰 이슈가 되었던 그이지만, 점차 하향세를 기록하는 공장 성장률 탓에 그는 강제파산위기에 직면한다. 그리고 그 때 만난 이가 ‘요나교수’ 였다. ‘요나교수’는 저자의 페르소나이다. 이스라엘 물리학자라는 점, 그리고 그가 주창한 이론인TOC를 ‘로고’에게서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해 진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통해 주인공에게 전달하는 ‘요나교수’의 지식은 곧 저자 엘리 골드렛의 지식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요나교수의 입을 빌려서, 그리고 ‘로고’의 행동을 빌어서 무엇을 ’를 앞세워 행군하게 되고, 그것은 의외의 상승효과를 갖는다. 가장 느린 이를 앞세움으로써 뒤따르는 이들의 속도관리의 중요성이 낮아진 것이다. 잠시 뒤처지게 되더라고 ‘허비’를 뒤따르는 이는 ‘허비’보다 빠른 속도를 지녔으므로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다. 즉, 현금창츌률의 결정은 일정 기간 동안 누가 느린 속도를 냈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로고’는 공장에서 ‘허비’를 찾아야 했다.‘허비’는 곧 ‘요나교수’가 말하던 병목자원이다. 병목자원이란 어떤 자원의 가공능력이 부품에 대한 수요와 같거나 적은 자원이다. 이에 대응하는 개념이 비병목자원이며 이것은 가공능력이 수요보다 큰 자원을 지칭한다. 병목자원과 비병목자원은 각각 제약자원과 비제약자원으로 칭할 수도 있다. “한 공장의 완제품 생산능력은 병목자원의 생산능력과 일치”13)하므로, ‘로고’의 공장은 병목자원을 기준으로 재구성해야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재구성이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허비’와 같은 아이를 앞장세우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산공정의 앞부분은 생산능력을 낮추고, 한 단계씩 뒤로 갈 때마다 생산능력을 늘리는 것을 말한다. 병목자원이 전체 공정의 시간을 결정하므로 병목자원의 실제운영비는 병목자원을 거치는 제품의 운영비를 병목자원의 총 가동시간으로 나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엄청난 수치였다. 기존의 것과 다른 운영비 산출법은 공장장인 ‘로고’ 뿐 아니라 회계사인 ‘루이스’조차 인정해야 했다. 그것이 진실이었으니 말이다. 실질적 목표달성 즉, 돈을 벌기 위해서는 ‘요나교수’가 제시한 계산법이 현실적용에 적절한 것이었다.소중한 진리를 생활 속에서 찾은 예는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가장 큰 예는 ‘유레카’로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의 일화이다. 목욕을 하며 자신이 들어간 탕 안의 물이 넘치는 모습을 보고 금과 은의 부피 차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그의 모습을 빌어 우리는 종종 창의력을 이야기한다. 창의력은 융통성의 또 다른 모습이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며 단지 목욕만을 생각했의 지침은 다음과 같다.1. 현금창출에 도움되는 것만 작업2. 병목자원의 부하량을 덜어내 비병목 자원으로 옮김 ex)아웃소싱1번 지침은 위에 언급한 기업목표와 연결된다. ‘로고’일행은 2번 지침을 실행하기 위한 노력을 가한다. 병목자원의 지목과 공정의 변화는 전체 프로세스의 개선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프로세스가 만족할 만한 성능을 보이지 않는다고 무조건으로 자원을 투하해도 성능은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분적인 병목지점의 개선은 눈에 보이는 성공을 가져온다.생산관리 컨설팅과 리엔지니어링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보다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서 제약이나 장애물이 되는 생산병목에 자원을 더 공급하자는 것이다.”15) 이러한 차원에서 낡은 즈메그마의 도입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상식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른 공장이 최첨단으로 달릴 때 베어링톤 공장은 기술의 역전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적절한 조치였다. 즈메그마는 NCX-10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감의 처리를 도왔다. 열처리공정 역시 영리한 인부의 아이디어로 인해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온 상태였다. 같은 온도를 요하는 작업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순차적 작업을 강요당하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기업이 해야 할 일 중에 아마 가장 어려운 일은 전통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Wickham Skinner는 관리자는 대개 현재의 시스템에 안주한다고 주장했다.”16) 과거로부터 이어온 것은 옳기 때문이라는 편견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업경영이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하지만 실질적인 기업경영을 이룩하는 경영진은 흔치 않다. 오랜 기간 누적해 온 지식은 옳을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영에서는 상식보다는 변수가 더욱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안전한 것이라는 편견 아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CEO는 더 이상 CEO가 아니다. 마쓰시다가 고심 끝에 젊은 CEO 모리시다를 채용한 것도 젊은이의 융통성을 높이 산 더 이상 시스템의 성과를 제약하지 않게 되면다시 제 1단계로 돌아간다.※ 경고! 그러나 관성이 시스템의 제약요인이 되지 않도록 한다.‘로고’의 공장, ‘밥’의 공장은 위의 시스템을 통해 이제 더 이상 위험에 처할 일이 없게 되었다. 행여 위험에 처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지금까지와 같이 놀라운 아이디어와 융통성을 발휘하여 이겨낼 것이 분명하다. 베어링톤 공장의 스태프들은 이전과 같이 효율성의 그늘에 속지 않을 것이며, 시대가 변하여 위의 과정을 따랐음에도 문제가 발생할 경우, 훌륭하게 새로운 대처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지금까지 그래왔으며, 경험은 값진 무형의 자원이 되어 그들을 도울 것이다. 또한 그들이 위기를 해쳐가며 겪은 모든 일들은 앞으로 그들의 경영철학이 흔들림 없이 유지될 수 있게끔 도울 것이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생산관리자였다. 이들의 융통성은 그들의 상사인 ‘로고’가 일깨운 것이다. 경영자의 융통성은 중간관리의 융통성의 발전을 도와 조직의 잠재능력을 키워주기도 한다.Ⅲ. 시장은 끊임없이 변화한다이제 만들면 팔리던 시대는 끝났다. 현대의 성공은, 끊임없는 변화의 흐름을 제어하는 이에게 돌아간다. ‘로고’가 이룬 성공은 곧 변화의 흐름을 제어할 시스템의 개발로 초점이 맞추어진다. “조직의 학습능력, 그리고 그것을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이 기업의 경쟁우위를 결정한다.”17) 조직에서 시시때때로 당면하는 위기에 대해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조직문화를 필요에 따라 변화시켜야 한다. 물론 잦은 변화는 그것을 수용하는 입장에서 거부감을 가지게 하겠지만, 필요하다면 바뀌어야 한다. 변화에 대한 거부감은 운영자뿐 아니라 노동자도 가지는 일반적 현상이다. 따라서, 변화의 기본에는 직원들에 대한 이해심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해가 바탕이 된 변화라면 잦은 변화라 하여도 큰 충돌 없이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융통성의 발휘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뒤따른다는 것이다.또한 시장이 변화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변화를 추구-
김영하, 「전태일과 쇼걸」목차Ⅰ. 서론Ⅱ. 작가 김영하1. 작가 소개2. 작품 경향Ⅲ. 작품분석1. 주제 분석2. 기법 분석Ⅳ. 결론Ⅰ. 서론"리비도와 분노, 불안과 자기 연민 등이 복잡하게 뒤섞인 이 소설집이야말로 황폐했던 젊은 날의 내 영혼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 같은 책이었다."1997년『호출』초판이 나온 지 근 10년 만에 개정판을 낸 김영하 작가의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개를 받은 책 속에 단편 「전태일과 쇼걸」이 있다.「전태일과 쇼걸」. 아이러니한 제목에 마음이 한 번 혹하고, 소설을 풀어내는 작가의 실력에 다시 마음이 혹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 비주얼한 이미지를 끌어들여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우연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전적으로 우연한 일이란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필연적인 설득력을 발휘한다.창작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독자를 설득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그를 이 작품을 통해 소개하고, 「전태일과 쇼걸」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주제 분석을 통해 알아 본 후 작가가 글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기법에 대해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Ⅱ. 작가 김영하1. 작가소개(1) 전기적 고찰a. 유년기)아버지가 장교로 임관한 후, 8년 만인 1968년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경상북도 고령에서 살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군인이셨기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에는 1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다녔다. 그는 이외에는 유년에 대한 기억은 별로 가지고 있지 않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연탄가스를 마셔서 죽을 뻔하고 나서부터 기억의 부재를 겪게 된 것이다.b. 소년기)그는 한 때 수도사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는 그가 한 가정의 가장이,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두려워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수도사의 길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수도원에서 나오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혼자 도서관에서 소설을 읽던 그에게 국어 선생님이 고갱을 모델로 한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를 건네주었다. 그는 이 소설에 매료되었고, 이터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그의 소설 중,『검은꽃』은 ‘제35회 동인문학상’을, 「보물선」은 ‘제4회 황순원문학상’을, 「오빠가 돌아왔다」는 ‘제16회 이산문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1999년에는 『당신의 나무』는 ‘제44회 현대문학상’을 받기도 했다.2003년에는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한국·프랑스 합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사진관 살인사건」과 「거울에 대한 명상」, 그리고 「호출」은 영화 ‘주홍글씨’로 재탄생되었으며 『검은 꽃』도 영화화할 예정이다.(2) 심리적 고찰a. 기억의 부재, 그리고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그의 소설에서는 과거 혹은 시스템,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잊히고 버려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전기적 고찰에 언급한 바와 같이, 김영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연탄가스를 마시는 사고를 겪은 후 그 이전의 기억을 잊는 경험을 했다. 즉, 그는 기억의 부재 때문에 버림받는다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소재나 모티프에 끌리는 것이다.b. 유랑의 기억, 그리고 소통에 대한 집착.김영하는 아버지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이사를 자주 다녔다. 계속해서 이사를 다니면서 매번 그 지방의 방언, 규칙 등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이사 간 곳의 아이들과 매번 어울려서 지내기보다는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을 즐겼다. 그에게 이야기는 곧 ‘소통’이었다. 그는 소설 속에서 각종 소통의 수단을 활용한다. 김영하의 대표적인 작품성향이라고 나타나는 나르시시즘도 어떤 의미에서의 소통이며, 삐삐나 컴퓨터 같은 기계를 통해 소통이 나타나기도 한다.2. 작품경향(1) 단절과 보호에서 오는 나르시시즘90년대 한국 문학 대부분이 그러하듯, 김영하의 소설 역시 글쓰기의 주체로서의‘나’, 서사 인물로서의 ‘나’라는 개인존재의 부각이 두드러진다. 이 ‘나’라는 개인존재의 강조는 이전의 소설들과는 달리 인물이 맺는 사회적 관계들을 외면하거나 혹은 그 의미를 축는 성적인 즐거움이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의미 있는 쾌락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일상적인 무의미와 절망적인 환멸을 확인시키는 행위이다. 인물들은 감정 없이도 섹스를 행할 수 있고, 순간적인 발작처럼 쉽게 섹스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상대방과의 상호성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섹스는 자위행위에 가깝게 된다. 이러한 고립적인 섹스는 나르시시즘과 통한다. 인물들은 자신의 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려 애 쓴다. 소설 속 인물들의 섹스는 결핍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이것마저 일상의 환멸을 극복해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해주는 섹스조차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이들의 섹스가 소통의 단절 위에 존재하는데서 기인한다. 인물들은 상호간의 근원적인 분리감을 가진 채 섹스하고, 이는 일상적인 무의미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욕망이 아니라 새롭게 자신의 존재성을 재정립할 수 있는 복제를 통한 그림자 되기의 욕망을 내재화한 허구적 세계의 진짜 같은 이야기인 것이다.(3) 냉소와 열정「오빠가 돌아왔다」전체를 관류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상이한 태도 사이의 긴장이다. 바로 열정과 냉소 사이의 긴장이라고 할 수 있다. 예로「보물선」에서 광적인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이순신 장군 동상에 테러를 저지르는 이형식이 열정의 극단에 서 있는 인물이라면, 그의 대학동창으로 컨설팅 회사에 취직한 재만과 「오빠가 돌아왔다」의 경순은 냉소주의를 대변한다. 이렇게 인물들은 열정과 냉소의 양극 구도 속에 자리 잡고 있다.냉소주의는 자본주의적 현실을 배경으로 신념과 믿음, 사랑을 비롯한 모든 인간적 가치의 매수가능성을 가정한다. 반면에 열정이란 자본주의에도 불구하고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신봉하거나 가치파괴적인 자본주의의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인간의 일상적 의식은 열정과 냉소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현실을 인정하고 이에 순응하면서도, 막연하게나마 화폐로 환원되지 않는 소중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믿를 넘어서’를 이용해서 김영하다운 냉소를 흘린다. 80년대와 90년대의 경계를 넘고, 이념의 경계를 넘고, 예술적인 매체의 경계를 넘어서 바로 90년대로 들어왔지만 남은 것은 외로운 사람들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대의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섹스에 대한 여자의 달라져버린 발언에서 볼 수 있다. 공동체 주의적 이데아의 환상을 버리고 등장한 90년대는 광고가 넘쳐 흐르고 상품이 주를 이루는 지극히 현실적인 세계이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80년대를 거쳐 온 인간들은 ‘누구 없소’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개인주의적인 외로움을 홀로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김영하는 한 극장에서 함께 개봉한 쇼걸과 전태일의 간판을 보고 그 간판 사이에 남아 있는 것은 외로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러한 이미지의 상충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혼자 보기에 좋은 영화’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전태일’과 ‘쇼걸’은, 그 자체로 외롭기도 하다. 연대를 통한 변혁의 꿈이 되지 못하고, 개별화된 각각의 외로운 인간들이, 혹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은밀한 시선을 번뜩이며 뜨거운 욕망을 다독거리는 쓸쓸한 개별자들)이 그저 “누구 없소”라는 노래를 들으며 말 걸 대상을 외롭게 찾는 것)처럼, 영화를 보러 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1990년대 김영하 소설의 특징을 냉소라고 한다면, 뒷모습은 외로움이라고 말하게 된다. 냉소란, 이를테면, 개인이 타락한 세계를 경멸하며 외로움을 견디는 장치였던 셈이다.(2) 80년대와 90년대의 충돌현재 사회에서는 근로자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전태일도 쇼걸과 별 다를 바 없다. 전태일의 숭고했던 이념과는 관계없이 쇼걸과 나란히 그저 하나의 문화적 상품으로 팔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90년대의 상업주의를 드러낸다. 소설 속에서 그들이 광주와 비엔날레의 관계를 어색해하는 것, 영화를 위해 광주 시민들이 교통을 통제하고 엑스트라로 자진하여 참여하는 것은 바로 80년대와 자본주의의 한 모습인 90년대의 상업주의가 부딪히고 있는 모습을 람들의 문제인 것이다. 이 소설은 그것을 비난하거나 개선하라는 요구를 하지는 않는다.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그 사실을 드러내고 있기만 한다.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인지 이 소설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2. 기법 분석(1) 광고 문구의 삽입‘전태일과 쇼걸’의 소설은 충격적으로 MBC의 광고 문구를 앞에 두고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 소설 중간 중간에는 MBC 말고도 많은 광고의 문구들이 본문에 삽입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태일과 쇼걸’의 작가인 김영하는 왜 이런 광고 문구들을 여과 없이 소설에 활용 한 것일까?그 이유는 소설의 이미지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김영하가 광고 문구를 한 문단으로 활용하면서 본문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광고 이미지를 삽입함으로써 그 자체로 이미지가 완성되는 것이다. 실제로 소설에 이용된 광고 문구의 문단은 각 문단과 문단 사이에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문단 사이의 빈 공간에 삽입되게 된다. 본문과는 다른 글씨체와 다른 글자 크기를 사용함으로써 독자의 눈에 보이는 그 활자 자체를 낯선 이미지로 만들어 소설 전체에 시각적 효과를 불어 넣어 주었다고 볼 수 있다.그렇다면 굳이 이러한 광고 문구를 이용하여 시각적 효과를 높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소설이 배경이 되는 90년대를 중심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90년대는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이 끝나고 개인주의와 상업주의가 세상을 채우는 시대이다. 결국 90년대를 사는 사람들은 80년대의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적 환상성을 가지고 그 이상이 꺾인 채 90년대라는 새로운 세계로 던져진 것이다. 본문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광고 문구들과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적나라한 상표들은 이러한 90년대의 상황을 냉소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주인공이 추억하는 80년대의 과거와 광고, 상표의 이미지들은 작품 전체에서 상충하며 그 이미지즘을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미지의 충돌은 제목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전태일과 쇼걸’로 대표되는 ‘80년대와 90년대’의 이미지다.
고전문학사 정리3.3 셋째 시대(중세전기문학)제2기-고려전기창업과 쟁패의 신화적 표현신라 말에 국가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통치력이 약해지자, 항거하는 세력이 여러 형태로 도처에서 나타났다. 도적이나 지방호족의 독자적 통치력 구축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신라를 부정하는 세력으로 후자의 경우 원종, 애노, 기훤, 양길, 견훤, 궁예등이 그러한 세력의 대표격이다. 이러한 봉기들은 후삼국시대를 열었고, 이 시대는 936년에 왕건이 고려를 세울때까지 반세기동안 지속되었다.모든 것이 혼란한 시대일수록 바람직한 질서를 창조하는 역량이 통치자에게 요구되었으며, 그때에 중요성이 대두된 것이 바로 건국신화였다. 백성을 상대로 한 선전방법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설화였으며, 건국의 유래와 정당성을 입증하려면 민간영웅 전설의 설화가 아닌 건국신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상황과 권력다툼은 그야말로 고대적인 상황의 재현이었고, 때문에 건국신화가 문학사에서 다시금 큰 구실을 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미 신화의 시대는 끝이 난 상태였으므로 당시의 건국신화는 고대에 볼 수 있었던 신화의 양상과는 사뭇 다른것이었다. 이 때의 건국신화는 민간영웅의 전설과 건국신화 사이의 중간적 성격을 가진 이야기가 주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견훤이나 궁예의 경우 신화에 기대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려고 했고, 그것은 백성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반면 왕건은 자신의 위 삼대를 추종해 대왕이라고 일컬어 그들을 위한 신화를 만들었을 뿐 자신을 신격화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세한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선조의 행적을 신화적인 상징을 통해서 돋보이도록 만들고, 왕건의 투쟁과 승리는 경헙적 세계를 서술하는 역사의 영역에 속하도록 해서, 건국신화의 위광과 합리적 통치의 설득력을 아울러 갖추었다. 이러한 것은 「고려사」의 서두에 잘 나타나 있다.이「고려사」의 경우 건국신화로 시작해 망국신화로 끝난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이것은 계속해서 혈통을 문제삼는다. 왕건의 선조들이 혼인한 내력을 말하는 데서는 혈통이 신성하다는 것을겸의 사촌인 이자현과도 친해지려 하였으나, 그는 예종을 만나주지 않았다. 그는 이자겸 집안의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청평산에 들어가 노장사상을 숭배한 사람이다. 이러한 그의 문학세계는 「낙도음」에 잘 나타나 있다. 이자현의 문학세계는 은거와 도피의 문학으로서, 조선시대에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맥락이 이어진다.현실도피의 성향이 짙은 예종에게는 동조자와 비판자도 존재했는데, 동조자의 대표격으로는 박호를 들 수 있으며, 그의 동조하는 문학은 「동문선」시 2편과 문 19편에 잘 나타난다. 비판자로는 최약을 들 수 있다. 그는 예종에게 위기를 인식하라고 여러번 간구했다. 그런 그의 행적은 「보한집」에 잘 소개되어 있다.3.4 넷째 시대(중세후기 문학)제1기 고려후기무신란, 몽고란과 문학 시대변화의 추이1770년 무신란이 일어나고, 그 뒤 1258년까지 한 세기동안 무신정권이 지속되었다. 무신란이 일어난 다음에 문학활동은 침체되지 않고 히려활기를 띠었다. 왕성한 창작의욕과 날카로운 비평의식을 가지고 문학을 새롭게 했으며, 그 결과 문학사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어려운 시기가 되면 문학에서 현실도피의 경향이 벌어지기 마련인데, 이 시기의 문학은 현실도피의 성향을 띠지 않았으며 이규보 이하의 문인들은 물론 이인로까지도 무신정권에서 벼슬까지 하였다.이에 대해 무신정권의 성격변화에서 문제해결의 단서 찾는 견해가 있다. 이것은 최충헌과 후계자들은 서방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문신들을 등용하고 포용했으므로 문학이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신정권이 문신을 등용하고 포섭한 데 힘입어 문학이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면, 다시 일어난 문학은 무신란 이전의 문학보다 미약해야 하므로 이 주장에는 재검토가 필요하다.무신란 이전의 문인과 무신란 이후의 문인은 동질적인 문인이 아니다. 한 시대의 문학이 파괴되면 새로운 문인층이 등장해서 다음 시대의 문학을 이룩하는 것이 문학사의 당연한 과정이며 무신란은 그러한 결정적 계기가 된다. 물벌귀족이 몰락하면서, 문벌귀족이 국권을 장르러서 처음 보이자 바로 양상이 다양해졌으며, 작품 수도 대단해져 조선 전기가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동문선」에 전이라고 해서 수록된 작품은 모두 28편인데, 19편은 고려 후기에만 산 사람이, 여덟 편이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걸쳐서 산 사람이 지은 것인 점만 보아도 그러한 사정을 알 수 있다.속악가사와 소악부의 세계삼국시대에도 이미 그랬지만, 「고려사」악지에 소개되어 있는 고려의 악은 예사 음악과 다르다. 기층문화와는 기능이나 수준에서 구별되는 상층문화를 별도로 이룩하면서 다스리는 쪽과 다스림을 받는 쪽의 관계를 적절한 이념에 따라 체계화하고 제도화하고자 했다. 지배체제가 정비될 때에는 상층의 음악문화 복합체가 규범적인 성격을 뚜렷하게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시기가 되면 그동안 다져온 질서가 무너져 민간전승이 궁중으로까지 대거 진출할 수 있었다.「고려사」 악지에서는 악을 아악, 당악, 속악으로 나누었다. 이 세 가지가 병존하는 현상은 이미 삼국시대에 시작되었으며,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려에 이르러서는 셋을 구분하는 체계가 더욱 뚜렷하게 이루어졌고, 시기에 따라서 그 가운데 어느 쪽에서 두드러진 변화가 일어났는가도 확인할 수 있다.고려 전기의 속악이 어떤 것이었던가 찾아보자면, 고려사 악지에 소개한 삼국 속악을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국 속악을 궁중에서 공연하며 즐겼으니, 그 가운데 「정읍사」는 조선시대에까지 전해져서 국문 사설이 기록될 수 있었다. 「처용가」는 신라 때 노래의 전승이며, 「한송정곡」이나 「유구곡」은 고려 전기에 이미 속악으로 채택되었을 것이다. 향가계통의 노래가 고려의 속악으로 들어온 더욱 좋은 예는「정과정곡」이다. 속악에는 노래말이 한문으로 된 것도 있다.그런데 문제는 「고려사」 악지에 소개되어있거나 「악장가사」, 「시용향악보」 등에서 자료를 얻을 수 있는 국문으로 된 속악가사, 그 가운데서도 조선조에 들어와서 이른바 남녀상열지사라 해서 배격된 것들이 언제, 어떤 이유에서 채택되었으며, 그 성격이 무엇인가 하는데 있진다. 훈민정음이 사용되자 문학사의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나, 그 점을 처음부터 지나치게 강조할 것은 아니다. 훈민정음은 한문을 대신하는 글이고, 한자에 의한 국어 차자표기를 대신하는 국문이라는 두 가지 의의가 있으며, 기록문학의 성장에서 한문학의 등장, 차자표기문학의 시작에 이어 세 번째로 국문문학의 시대를 여는 구실을 했다.사대부는 한문을 계속 사용했으며, 한문을 쓰느냐 아니면 언문을 쓰느냐에 따라서 문화적인 자격에 의한 지체 판가름이 지속되었다. 중세적인 사회관계와 사고방식이 이어지는 한 한문을 버릴 수 없었다.훈민정음은 우선 다스림을 받는 백성의 뜻을 위로 전하는 데 쓰이도록 창안한 문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기능은 위의 뜻을 아래로 펴는 데 있다. 「삼강행실」의 반포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조선왕조는 백성을 통치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새롭게 모색하는 것을 역사적인 임무로 깊이 작가해야만 했다. 새 왕조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나마 민중에게 양보를 해서 생업을 안정시키는 한편, 민중을 이념적으로 순화시켜 지배질서에 순응하도록 하는 방침을 택했는데, 그러한 방침이 훈민이고, 훈민을 위한 무자가 바로 훈민정음이었다.서리들이 이두 대신에 훈민정음을 사용하게 하자는 뜻은 그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서리는 한문과 언문 사이에서 이두라는 또 하나의 표기수단이 계속 쓰여야만 자기네의 배타적인 구실을 유지할 수 있었다.훈민정음으로 국문문학의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이 창제 직후에 이루어진 것을 보아도 처음부터 의도했던 바라고 할 수 있다.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시민을 위시한 하층 민중이 문자생활을 국문으로 하고 현실 인식과 흥미를 아울러 갖춘 문학을 요구하게 되자, 국문문학이 한문학과 맞서서 크게 성장했다. 그러다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가 끝나자 국문만 사용하고, 문학은 국문문학이라고 하는 데 이르렀다. 국문문학이 자리를 잡자 구비문학을 기록문학으로 발전시키는 데서도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으며, 내용이 더욱 풍부해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은 단계였다.척불의 시련에 놓인 불교문학불교를 배척하자는 척불론은 고려 후기에 신흥 사대부가 신유학을 이념으로 택하는 과정에서 이미 대두했으나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다가, 왕조교체를 겪고 조선왕조의 국책으로 채택되어 마침내 불교와 유학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데 이르렀다. 태종에 이어 세종은 불교의 종파, 승려, 토지, 노비 등을 모두 감축했으며, 승려의 서울 도성 출입마저 금했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 신앙이 사라진 것은 아니며, 유학의 종교적인 기능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불교에 닥친 곤경은 정치적인 탄압만이 아니고, 사상적인 비판이 더욱 심각한 타격을 미쳤다. 불교와 유학이 공존하는 오랜 기간 동안 천지만물과 인간 운명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은 불교가 맡아서 풀이하고, 유학은 현실정치나 실천윤리의 한정된 범위 안에서 한층 구체적인 과제를 다루는 것을 관례로 삼았었는데, 이제 유학이 그 자체로서의 쇄신을 거쳐서 반격을 하고 나섰다. 예로 정도전의 「불씨잡변」을 들 수 있다.신유학은 이미 중국에서부터 근본 이치를 불교에 맡겨둘 수 없다 하고, 불교와 맞설 수 있는 철학적인 체계를 다지면서 성장했다. 그러는 동안에, 불교는 신유학이 지닌 장점을 일단 인정하고서 대응책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이처럼 어려운 과제가 닥쳐왔을 때 불교의 이론적인 능력이 적지 않게 퇴화되어 있었다. 불교는 선종과 교중 두 갈래였다고 하지만, 교종은 거의 이름만 남았고, 선종이 주도적인 구실을 할 따름이었다.조선 전기로 들어서자, 선종에서의 새로웠던 시도도 참신한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울 만큼 관습화되기 시작했으며, 교종의 재흥은 더욱 기대하기 어려웠다. 선승의 문학과 사대부의 문학은 고려 전기 귀족문학에 반발하는 과업을 함께 수행하면서 서로 상당한 관련을 가졌었는데 한 쪽은 같은 상태에 머무르려다가 빛을 잃고, 또 한 쪽은 역사의 방향을 주도하면서 계속 뻗어나면서 내부적인 분열을 겪었다. 그 결과로 재편성된 문학의판도 안에서 승려의 문학은 지배체제를 장악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