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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영화 `키스나(비욘드러브)`와 `화이어(fire)에 투영된 인도의 신화
    Ⅰ. 동성애를 다룬 영화 ‘fire'와 동성애에 대한 인도사회의 인식.1996년 9월6일부터 14일까지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20회 국제영화제가 있었으며, 여기에 출품한 인도 여성 감독인 디파 메타(Deepa Metha)의 ‘Fire’는 여성동성애자의 소재를 다룬 것으로서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는 남성지배적인 인도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두 여성이 어떻게 자아를 적극적으로 발견해가고 있는가를 강조한다. 영화의 인도 국내 상영을 두고 1996년 당시에 많은 논란이 야기되었다. 수업시간에 감상했던 영상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은 폭동자들에 의해 파손되었고 영화관은 초토화되었다. 또 당시 디파 메타 감독은 항상 경호원과 동행해야할 정도로 테러의 위협을 많이 받았다. 현재까지도 동성애에 대한 인도 사회의 반응은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렇다면 인도 내에서 전개되고 있는 동성애 운동은 어떠할까? 인도의 동성애 운동은 먼저 미국과 영국내의 남아시아 출신의 남성동성애자와 레즈비언들이 1980년 중반 이래 출판 모임과 자신들의 권리주장을 위한 모임을 가지면서 구체적으로 시작되었다. 인도 내에서는 소위 동성애자공포(Homophobia)가 있기 때문에 경찰과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을 물리적으로 난폭하게 공격한다. 1994년 전인도 여성연합은 동성애 공포를 나타내면서 뭄바이의 남아시아 게이연합을 비난하였다. 이들은 게이단체를 서구문화에 의한 인도의 침탈이라 규정하고 그것은 서구의 부도덕한 성적타락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이유로 동성애자들을 비난한다. 특히 이 여성단체는 게이연맹이 동성애를 증진시키고 합법화시킴으로써 서구문화에 쉽게 노출되기 쉬운 인도의 젊은 세대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개방적으로 변화하고 있다지만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인도인의 가치관은 여전하다.Ⅱ.영화 ‘Fire'의 내용과 라마야나(Ramayana)의 관계영화 속 주인공 ‘라다’는 종교적인 금욕주의를 신봉하는 남편아래에서 살아가는 인도의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트라우마를 종교적인 수행의 이유로 이용하려는 남편에게서 억압을 느낀다. 그녀에게 새로 ‘시타’ 라는 동서가 생기는데, 시타는 중국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 바람을 피우는 남편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성이다. 이 두 사람의 탈출구는 동성애이다. 인도식 관점으로라면 두 여성의 일탈은 사형에 처해도 마땅할 일이다. 디파 메타 감독은 힌두교적 방법으로 영화 속에서 그들의 동성애를 심판한다. 영화 ‘Fire’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장면이 있는데, TV드라마로 방영되는 인도 최고의 서사시인 라마야나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영화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라마야나의 내용을 간결하게 언급하자면, 라마라는 왕의 부인 시타가 괴물에게 잡혀가고 결국 라마는 괴물과 싸워 괴물을 죽이고 시타를 다시 데려온다. 하지만 백성들은 시타가 순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로 그녀를 왕비로 용납하지 않는다. 시타는 불 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순결을 증명하고자 한다.)영화 속에서 TV드라마의 라마야나의 장면, 라다의 남편이 연극으로 진행되는 라마야나를 관람하는 모습 등 여러 번 라마야나와 관련된 장면들을 보여주고, 마지막 부분에 라다의 몸에 불이 붙게 하고 시타를 찾아가는 라다에게 비를 내려 두 여성의 동성애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라마야나 속 시타가 불에 뛰어들고도 살아남은 점과 유사한데, 몸에 불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서 시타를 찾아간 라다를 일종의 순결한 여성, 즉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다는 감독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인도사회에서 불이 갖는 의미는 우리가 갖는 불의 의미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인도사회에서의 불의 의미는 정화와 순결의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도 볼 수 있는데, 과부의 화형제도인 사띠(Sati)를 행하는 것에서도 불의 의미가 정화, 순결의 의미라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디파 메타 감독은 이처럼 ‘불’에 담긴 순결과 정화라는 긍정적인 의미의 이면에 숨겨진의 잔인한 의식을 내포한 모순적인 상징인 '불'을 인도사회 내에서 여성 억압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영화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 인도에서 여성들에게 남편은 하늘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영화 ‘fire'는 인도의 전통적인 생각에 반기를 들고 억압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을 옹호하고, 인도사회의 정신적인 근본을 이루는 라마야나에 대한 비유적인 비판을 함으로써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라마야나가 여성에게 심어준 가부장적 가치관을 비판하는 의미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Ⅲ. 영화 ‘Kisna(키스나)'의 내용과 마하바라타영화 ‘키스나(Kisna)’에는 마하바라타의 내용이 반영되어있다. 영화 속 어머니가 키스나에게 했던 이야기 중 “정의를 위해 싸워야한다. 그것이 형제나 주인일 지라도.” 라는 내용을 언급하면서 정의를 위해서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지 간에 실현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부분이 마하바라타의 일부를 반영한 부분으로, 마하바라타)는 힌두교의 대성전인 인도의 고대국가의 형성을 언급하고 있는 인도의 대서사시중 하나이다. 마하바라타에서는 라마야나와 다르게 여성의 모습이 독립적이고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인도에서는 어머니로서의 여성과 아내로서의 여성은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아내로서의 여성은 순종을 강요받지만 어머니로의 여성은 독립적이고 아들에게 있어서 권위를 갖는 존재이다. 이러한 어머니의 독립적인 여성관과 마하바라타의 여성관이 맞물려 영화 속에 등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주인공 키스나는 어머니의 당부로 자신의 살인과 폭력을 정당화 하는데, 영화의 표면적인 내용만을 보았을 때는 그러한 행동이 잘 납득이 가지 않으나 마하바라타의 독립적 여성관, 인도인이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이중적 가치관등을 고려해보면 인도에서 ‘어머니’라는 존재가 가진 엄청난 권위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상황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주인공 키스나(Kisna)의 이름은 ‘크리슈나’라는 마하바라타 속에 등장하는 영웅의 이름을 딴 속의 크리슈나는 전쟁이 일어나면 지혜로운 태도를 보여주는 모습으로 그려진다.Ⅳ. 영화 ‘Kisna(키스나)’ 속에 등장한 카스트와 인도인의 가치관영화 속에서 카스트 제도에 상관없이 우정을 나누고 사랑하는 키스나와 캐서린의 모습은 일반적인 인도인들의 가치관과는 다른 차이를 보인다. 지난 2006년 9월 14일, 인도정부는 카스트 간 결혼을 하는 가정에 5만 루피(한화 약100만원) 의 격려금을 지급하겠다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발표했다.) 3천 년간 이어져온 카스트제도의 전통에 비하자면 파격적인 정책이었다. 계급 간 결혼을 했을 때 가족 간의 살인과 같은 큰 후한을 감당해야하는 것이 인도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러한 사건은 매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릴 정도로 인도사회에서는 빈번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키스나와 캐서린의 우정과 사랑은 현실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최근에는 카스트간 결혼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지만 긴 세월동안 인도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던 카스트제도가 쉽게 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Ⅴ. 영화 ‘Kisna(키스나)’ 속에 등장한 종교 갈등영화 ‘키스나’의 중후반부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은 왜 발생하고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인도에서는 무갈 제국 때부터 힌두와 무슬림에 대한 정책이 시작되었다. 무갈 제국은 티무르의 후손 바부르에 의해서 건설되었는데 그는 파니파트 전투에서 승리하여 로디왕조를 무너트리고 무갈 제국을 시작하였다. 침략왕조에서 인도에 뿌리를 내릴 왕조를 준비한 그는 사망 전 아들에게 힌두를 자극하지 말고 힌두에서 어머니로 상징하는 소를 존중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이후 현명했던 왕 아크바는 힌두교 도를 왕비로 맞이하며 힌두와 무슬림의 융화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힌두 왕비를 맞이한 것 뿐 아니라 그는 지즈야를 폐지하였는데 지즈야란 세금의 한 종류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이슬람교도는 지즈야를 내지 않아도 되었고 병이 있거나 가난한 자 또한 안내도 됐다. 이슬람으 금지하였고 우상숭배 또한 금지하였다. 아크바는 이러한 정책으로 힌두와 무슬림의 융화를 꾀하였지만 인도내의 종교 갈등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현대사회에서 힌두와 무슬림의 갈등이 확대된 이유로는 카슈미르 분쟁과 아요디야 분쟁이 있다. 1947년 8월 15일 인도와 파키스탄은 2개의 나라로 독립되었다. 그러나 힌두와 무슬림의 갈등은 두 국가의 향후 방향 문제로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분리 독립의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무슬림 주민이 다수인 지역은 파키스탄으로 하고 힌두가 다수인 지역은 인도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정은 1990년대 이후 카슈미르의 인도 지배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항쟁을 불러왔다. 친 파키스탄 파와 파키스탄과 인도 어느 쪽에도 속하고 싶지 않은 카슈미르 독립파로 분리되어 갈등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갈등은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의 저개발과 빈곤을 초래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인구의 절반이 빈곤에 허덕이는 가운데 어마어마한 병력이 파견되고 있으며 매년 100억불이 넘는 군사비의 상당 부분이 카슈미르 분쟁과 관련된 것이다. 1994년 이래 인도와 파키스탄은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나 2001년 12월 13일 국회의사당 테러사건으로 긴장이 고조되었고 테러는 계속되었다. 또 하나는 아요디야 성지를 둘러싼 분쟁이다. 2002년 일주일 동안 무려 7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의 내용은 이러했다. 아요디아 지역에 힌두교 사원을 짓기 위해서 집회에 참석한 힌두 수백여 명은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열차 안에는 무슬림도 타고 있었고 힌두들이 무슬림 여성을 괴롭히거나 먹을 것을 파는 무슬림 소년들에게 돈도 안주고 음식을 가져가는 등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다. 이에 분노한 무슬림들은 열차에 불을 질러 열차 안에 있던 힌두 아녀자 등 58명이 불에 타거나 질식해 숨졌고 이 소식을 들은 힌두들이 주요 도시의 이슬람 사원에 돌을 던지고 무슬림을 폭행하거나 불을 지르는 등 폭동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자신들의 종교만을 중시하는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엄
    예체능| 2009.07.21| 4페이지| 3,700원| 조회(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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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 카스트제도를 통한 인도문화
    Ⅰ. 인도문화와 카스트(Caste)인도문화는 ‘다양성’, ‘포용성’, ‘이중성’이라는 속성을 가진다.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 ‘다양성 속의 통일’ 이라는 원칙 아래 인도는 고대의 인도원주민과 아리안의 베다문화의 융합, 무굴제국, 이슬람과 힌두문화의 조화 등 고유하면서도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왔다.고대의 초기 인도의 종교형태는 자연에 대한 숭배형태였다. 고대 인도인들은 거대한 인도대륙에서 갖가지 종류의 열악한 자연환경(자연재해 등)을 겪으며 자연을 숭배하고 그 자연현상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서 이것이 점차 종교의 형태로 발전하고 변모해나갔다. 이러한 인도 토착의 민간 신앙과 아리안 문화가 결합되면서 고대 인도사회는 형성되어 나갔다. 인도의 토착문화는 여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모권을 중요시하고 여성을 숭배하는 문화였다. 한편, 아리안문화는 남성우월적인 가부장적 문화로, 대가족문화를 중요시 했다. 이러한 아리안의 가부장적문화는 베다(Veda) 문화에 정착되었다. 여기서 베다 문화는 배타적이고 카스트를 엄격히 지키는 속성을 가진 문화로, 아리안과 아리안이 아닌 계통으로 기득권을 나누고 여성을 남성보다 우월하지 않은 존재로 인식하였다. 힌두문화의 이중성은 이런 여성적 토착문화와 남성 우월적 문화의 결합에서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힌두교는 아리안 문화와 토착문화가 결합하고, 불교 등 여러 문화와 종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현대 인도의 종교로 그 형태를 점차 갖추게 되었다. 힌두교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특정한 체계를 갖고 있지는 않고 다양한 신화와 전설, 의례, 관습 등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다양성을 하나의 종교로서 기능하도록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카스트(Caste)제도이다. 카스트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이렇게 4개의 계급으로 사회시스템을 나누는데 실제로는 이 카스트 제도에 포함되지 못하는 아웃카스트(Out Caste))에 속한 사람의 수도 많다. 카스트 제도는 역사가 흐르면서 다양하게 변화해왔지만 현재까지도 인도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카스트에는 종족과 직업, 종교적인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인도인들은 이러한 카스트 제도를 부조리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카르마(Karma))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즉, 카스트를 숙명과 업(業)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숙명론적 관점은 슈라마나의 순세파들이 카르마를 잘못해석 하는 경우와도 연결될 수 있는데, 카스트를 자신의 죄가 아니라 전생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극단적인 경우로 발전할 수 있다. 카스트에 대한 숙명론적인 태도는 브라만 계급이 사회 전반에 교묘하게 유포시킨 이념으로, 현재까지도 이런 카르마에 대한 인도인들의 의식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카스트 제도는 현대 인도에 뿌리 깊게 남아 인도의 각종 사회문제와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Ⅱ. 카스트(Caste)제도의 특성인도에서 힌두교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회 계층의 형식인 카스트 제도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도 문화에 깊숙이 박힌 카스트 제도는 “모든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기본 계율을 따른다. 힌두교 사회에서의 계급은 ‘바로나'라는 주요 집단이 어느 원초적인 것으로부터 나왔다는 전설에서 왔다. 원초적인 것의 입으로부터 승려 계급인 브라만이 나왔고, 팔에서 나온 통치자와 군인 계급인 크샤트리아, 넓적다리에서 농민과 상민인 바이샤스가 나왔고, 발에서 노동자 계급인 수드라가 나왔다. 각 바로나에는 각각의 서열에 따라 세습되는 수백 개의 카스트와 하위 카스트가 있다. 다섯 번째 집단은 “아츄타 ”즉, 불가촉천민이라 묘사한다. 원초적인 것은 그들을 포함하지 않는다.)불가촉천민(Out Caste)은 버림받은 자들이다. 위에 언급했듯 카스트 내에 포함될 수 없는 Out Caste 들이다. 인도 인구의 거의 3/4 이 사는 시골 지역에서 특히 불가촉천민이 많다. 불가촉천민은 피하거나 격리하고 사원과 상층 카스트로부터 접근 금지되고, 공공장소에서는 별도의 식기로 먹거나 마셔야 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강간, 방화, 폭행, 총살을 당한다. 불가촉천민을 만들어낸 고대 신앙 체계가 현행법보다 더욱 힘이 있다. 인도 헌법은 카스트제도의 특히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을 금지했지만, 인도 인구의 80%가 믿는 종교인 힌두교에서는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것이 힌두교의 계급 질서와 엄격한 사회 규범이다.Ⅲ. 불교에서 바라본 카스트(Caste)제도붓다(Buddah)는 현상세계를 고(苦)로 바라보았다. 여기서 ‘고’의 본질은 집착이라고 칭하였는데 이러한 고는 멸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또 불교의 중요한 정신에는 중도(中道)와 연기(緣起)사상이 있다. ‘중도(中道)’는 모든 것이 극단에 치달으면 괴롭다는 뜻으로 항상 중용의 길을 걸을 것을 뜻한다. 한편 ‘연기(緣起)’는 모든 것은 서로 상대적이고, 우연적이며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다.붓다는 카스트에 상관없이 제자를 받아주었는데 이는 당시 인도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해탈가능성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며 바라문의 계급 범주든 불교의 계급범주는 상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붓다는 주장하였다.) 이는 중도와 연기의 정신 때문에 사회의 악습을 타파하고 전복하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완전히 카스트 제도를 무시한 것은 아니며, 문화와 현실적 상황에 따라 당시의 카스트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부분도 있었다. 또한 붓다는 제자를 받는데 있어서는 카스트를 고려하지 않았지만, 카르마에 대한 개념은 그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붓다는 ‘업(業)’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업’ 또한 일종의 고(苦)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기면 바로 멸해야 하는 것으로 바라보았다. ‘업’에 대한 사상은 불교뿐만 아니라 자이나교, 힌두교 등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이 ‘업설(業說)’은 힌두교에서 가장 강조 되었다. 인도인들은 이 ‘업’을 전생과 연관시켜 특정 카스트에 태어나는 것이 그에 상응하는 전생의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는 불교에서의 윤회사상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존재한다.Ⅳ. 인도에서 바라본 ‘나’불교의 윤회사상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업’ 혹은 ‘업보’라고 하는 말과 생각들이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고대의 인도 문화가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도인들이 카스트제도를 단순한 카르마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순응적인 태도의 그들의 모습이 답답하기만 하였다. 카스트를 받아들이는 인도인들을 보면서,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불평등과 불합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다.
    인문/어학| 2009.05.21| 3페이지| 3,000원| 조회(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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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디어의 차단이 일상생활에 끼치는 영향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차단이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우리는 각종 미디어에 둘러싸여 있다. 신문, TV, 라디오 인터넷 등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는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TV와 휴대폰, 인터넷은 의식주이외에 새로운 생활의 필수 요건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미디어와 너무 친숙한 나머지 미디어와 접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미디어가 마치 삶에 없어서 안 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미디어가 없는 세상은 이제 상상할 수조차 없다. TV도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면,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달라질지 가늠할 수가 없다. 3일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차단을 통해 우리의 일상생활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알아보자.우리가 매스 미디어에 수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주된 이유는 즐겁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검색을 하고 TV앞에 모여 앉는 원인은 그런 미디어 행위가 즐겁고 여유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TV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자신과 비교되는 이미지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은 TV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결국, 미디어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즐겁게 할 수 있는지 다양한 선택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차단이 가져오는 첫 번째 변화는 엔터테인먼트 수단이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통한 각종 동영상과 드라마 등을 접하기 어려워지고 신문이나 TV를 통해 살고 있는 지역과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알기 어려워지면서 즐길 거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이용해 엔터테인먼트를 찾는 대신에 독서 혹은 글쓰기 등과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늘릴 수 있다. 자신의 일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신변잡기적인 대화를 나누며, 일상생활에서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는 빈도가 늘어나는 변화를 초래한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차단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나 교류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TV는 우리에게 많은 대화를 이끌어 낸다. 또한 많은 잡담을 늘어놓게 만든다. 우리가 TV 이외에도 다른 형태의 미디어에 대해서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일종의 집단적인 해석행위에 개입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디어는 이제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 개인에게 이것이 차단된다면 집단적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TV나 인터넷 등 미디어의 이용이 개인적인 행위로 시작하면서 점점 사회적 관계의 일부로 확대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접한 미디어의 내용을 친구 또는 가족과 읽은 신문기사나 TV 프로그램 등에 대해서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된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미디어를 볼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차단된 상황에 있는 사람은 사람들과의 접촉은 늘 수 있지만, 흥미로운 대화와 교류를 하기는 조금 힘들어 진다. 또한 인터넷 사용의 차단도 커뮤니케이션에 문제를 발생시킨다. 인터넷이 가지는 장점중 하나는 텍스트, 그래픽, 사진, 오디오, 동영상 등을 기술적인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터넷 중에서도 인터넷 언론은 멀티미디어적 속성을 가지며 신문과 방송 두 매체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일상생활에 많은 편리함을 가져주었다. 또 인터넷 저널리즘의 멀티미디어적 소통성은 일반적인 매스미디어와는 전혀 다른 뉴스의 확산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인터넷 언론과의 차단은 단순히 언론, 뉴스와의 차단이 아니라 각종 공개게시판과 블로그, 커뮤니티와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네티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의제와 토론장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 역시도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쳐 사람들과의 집단적 의사소통에 불편을 주게 된다. 그리고 매스 미디어는 개인적, 국내적, 국제적인 관심사와 광범위한 사회 활동사이의 격차를 좁혀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차단되면 초기에는 단순한 불편과 즐길 거리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다가 점점 시간이 경과할수록 심리적인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비유하자면, 이것은 이제 막 군대에 입대한 청년들이 사회와의 단절을 통해 괴리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미디어는 시간과 공간의 체계를 허물어뜨렸고, 우리들에게 다른 사람의 관심사를 끊임없이 쏟아 붓는다. 이런 것들이 차단된다면 그동안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해 느껴왔던 자유로운 시공간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갇혀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또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차단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심한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점점 이질감을 느끼게 되고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약간의 위축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또 핸드폰 사용의 차단은 전화나 메시지의 수신은 가능하되, 발신은 하지 않는 방향으로 실행했다. 이는 조금 색다른 영향을 주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불편함을 느끼다가 점차 이것이 익숙해지면서 전화나 메시지를 수신하는 일이 꽤나 귀찮고 타인에게 피해가 되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할 수 있다. 특히 전화통화의 경우 그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전화통화는 항상 전화를 거는 사람에게 주도권이 있다. 전화를 거는 사람은 상대방의 시간을 빼앗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수신자는 어찌 보면 기꺼이 발신자에게 봉사하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어쩌면 전화 통화라는 숨겨진 무기를 통해 타인이 자신에게 시간을 소비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휴대폰 사용을 차단한 기간 동안 사람들은 휴대폰의 사용이 타인의 정보를 확인 하고 일종의 감시를 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문자 메세지의 답장이 없거나 자신에게 전화를 걸지 않으면 상대방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사람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를 통해 핸드폰이 개인을 어떤 기제와 규칙에 얽매이게 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고 확장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핸드폰의 차단은 오히려 일상생활에 자유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동안 귀찮은 안부 묻기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려는 사람들에게 지쳐있었다면 핸드폰사용의 차단은 그 해답이 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차단은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휴대폰 액정 화면 속에 글자를 담고, TV속 드라마의 가족과 연인을 바라보는 대신에 사람들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범위는 더 넓어졌다. 매스미디어의 공급이 이제 가족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범위를 넘어섰다. 즉, 이제 매스미디어가 가족구성원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검색과 TV를 뒤로하고 가족의 얼굴을 보라. 물론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야기 거리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미디어를 통한 정보 이외에도 공유할 내용이 많지 않은가. 전자회로가 뿜어내는 화면을 뒤로하고 가족의 얼굴을 보자.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조금은 여유를 갖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과학| 2008.12.30| 3페이지| 1,500원| 조회(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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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씨인사이드(The sea inside)`감상문
    1. 실존적 문제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는 영화 얼핏 보아 는 ‘안락사’ 라는 화두를 또 다시 한번 달구는 논쟁의 여지가 다분한 영화로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다. 주인공 라몬은 젊은 시절 해변에서 다이빙하다가 목이 꺾이는 사고를 당했다. 그래서 28년이나 움직이지 못하는 육체 속에 갇혀 살게 되었다. 그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해야 아직 신경이 살아있는 입으로 얘기하고, 막대를 물어 글을 쓰고,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눈빛을 보내는 일뿐이었다. 그 오랜 세월동안 그가 가진 관심의 방향은 영화 속에 등장한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과 낡은 턴테이블로 듣는 여러 교향곡으로 추측해 볼 수 있는데, 28년 먼지가 쌓여 있는 공간에서 그는 그러한 것들을 자양분으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인간을 인식하는 법을 배운 듯하다. 바그너를 비롯한 낭만주의 음악과 고전이라 짐작되는 하드커버의 책을 계속해서 접했기 때문일까? 그는 고고한 자신의 이성을 통해 스스로 삶을 포기할 권리를 갖길 원하고, 그 비극적인 희망을 이루기 위한 강한 의지를 갖추게 된다. 그러한 주인공의 결심은 보이는 그대로 매우 단순하고 명쾌한 것이다. ‘삶을 부여받은 것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그 삶을 반납하는 건 개인의 선택이어야 하지 않나?’ 라는 질문은 굉장히 그럴듯해 보이며, 누려야 할 자유의 대상에 죽음을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은 심지어 조금 용기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실제로 영화 안에서 그는 매우 이성적, 혹은 낭만적으로 세상과 인간을 대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시를 쓰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의 선구자적인 판단은 당연하게도 주변에서 그를 도우며 살아온 가족들에게 엄청난 무게로 다가간다. 결국, 그의 결정을 암묵적으로 돕기로 한 상태지만, 너무나 아이러니한 전제 속에서 바동거리는 상황들이 연결되면서 진한 슬픔으로 변화하는 그 과정 자체가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가장 큰 힘이 된다. 죽고 싶어 하는 아들을 돕는 아버지와 죽고 싶어 하는 동생을 돕는 형과 죽고 싶어 하는 시동생을 돕는 형수와 죽고 싶어 하는 삼촌을 돕는 조카, 그들로 이루어진 가족은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운명의 짐을 떠안고 있다. 그렇게 그 비극은 영화의 시작 이전에 이미 방향이 정해져 있고, 그들이 사는 집은 마치 봉안당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이 영화는 단지 '안락사를 허용해야 하는가?' 라는 사회적인 물음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자유가 과연 어디까지 허용되어야만 하는가?' 라는 윤리적인 문제로 전환되고, 이어서 '인간의 존재와 삶과 죽음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실존적인 문제까지 확장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안락사와 죽음에 대한 고찰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영화였다.2. 내가 영화 속 주인공 ‘라몬’의 입장이었을 경우, 나의 선택과 그 이유는?영화에서는 라몬의 삶을 미화하거나 동정하는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 라몬을 보면서 더 나은 삶의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살아가는 것의 가치가 죽음보다 더 쓸모없는 것이라면 나는 그 누군가에게 계속 삶을 살아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또한 내가 만약 라몬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라몬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삶이 지독하게도 재수 없는 일상의 연속이고, 무의미한 시간반복의 연속이라고 할지라도 만약 내가 라몬과 같은 처지였다면, 나 또한 죽음을 통해 그런 삶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자유에 대한 열망에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의미를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 자유를 얻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이기적인 발상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내 삶이 무의미한 시간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가족과 친구 등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떠나보내야 할 슬픔을 견뎌야 하는데 말이다. 주변에 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육체가 묶여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무의미한 삶이 아니라고 본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나를 떠나보내는 짐을 지워주고 싶지 않고, 내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 그들을 떠나는 뒷모습과 슬픔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이 나를 속박하고 부조리와 허무에 허덕이게 한다 할지라도 말이다.그리고 종반부 라몬이 청산가리를 마시고 자살하는 장면에서 너무나 끔찍하고 처절한 고통을 동반하게 하는 장면에서는 과연 그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해 묻기보다는 숭엄함과 그 고통의 자유의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엄습했다. 어쩌면 내가 라몬처럼 죽음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이유는 죽음의 육체적 고통이 두려워서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후감/창작| 2008.12.23| 2페이지| 2,000원| 조회(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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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락프로그램의 방송자막사용의 문제점과 극복방안
    우리는 각종 미디어에 둘러싸여 있다. 신문, TV, 라디오 인터넷 등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는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미디어는 의식주이외에 새로운 생활의 필수 요건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미디어와 너무 친숙한 나머지 미디어와 접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특히 TV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내게 하고 최근까지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매체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최근 TV오락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출연자의 대화내용을 여과 없이 그대로 내보내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TV방송화면의 문자자막에 비속어, 외국어남용과 오기(誤記) 등이 잦고 자막의 남용이 많아져 방송자막에 대한 문제점이 계속해서 지적 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자막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프로그램의 이해를 돕는 수준을 넘어 기발한 한 줄의 자막으로 시청자의 웃음을 책임지기도 한다. 그러나 프로그램별로 회당 엄청난 자막이 쏟아지는 자막의 홍수시대에 지나치게 재미를 쫓다보면 거짓 정보를 강조하고 맞춤법이 잘못된 언어가 그대로 전파를 타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이런 쇼 오락프로그램의 자막사용은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애니메이션이 일반화된 일본사회의 문화적 특성과 맞물려 다양한 자막으로 만화적 화면 디자인을 제공해 시청자의 흡인력을 높여왔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방식을 이용하여 많은 양의 자막을 방송에 사용하고 있다. 노래방이나 영화 등의 자막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자막이 있는 오락프로가 웃음과 재미를 유발하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런 흡인력을 높이는 자막의 효과 때문에 더욱 더 올바른 자막사용이 중요한 것이다. 아무리 국어교육제도와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올바른 언어사용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려고 노력해도 방송의 잘못된 언어사용 관행이 고쳐지지 않으면 우리말의 황폐화는 피할 수 없다.쇼 오락프로그램의 경우 뉴스나 드라마와 달리 재미를 노리고 출연자들의 말은 그대로 자막 처리하는데, 단순히 출연자의 음성을 그대로 인용한 ‘음성인용’ 자막의 비율도 만만치 않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화면의 상황에 대한 제작진의 말이나 생각을 제시하는 ‘시청자 사고제한’ 자막 비율 또한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이런 ‘시청자 사고제한’ 자막은 최근 많은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KBS의 1박2일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각 캐릭터의 행위를 더 코믹하게 표현하기 위한 제작진의 생각을 제시하는 자막이 많이 등장한다.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오래 기억되는 만큼 자막이 시청자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큰 만큼, 시청자는 소리보다 글에 시선이 먼저 가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소리의 전달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진행자와 출연자 등의 음성언어를 과도하게 자막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시청 방해 행위에 가까우며,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한다.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쇼 오락프로그램의 자막사용은 시청자 서비스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항변하기도 한다. 말의 속도가 빠른데다 여러 명이 등장에서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흐름을 놓치기 쉬운 만큼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장점을 부각시키기엔 최근 자막오류의 사례는 제작진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는 것 같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한글날을 맞아 지상파 주말 오락프로그램의 자막사용 현황을 파악한 결과, ‘극비에 부치다.’라는 표현을 ‘극비에 붙인’이라는 잘못된 맞춤법의 자막이 반복적으로 방송됐다. 이는 일반인들이 자주 틀리는 표현으로, 방송사가 맞춤법을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내는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어로 순화 가능한 외국어를 불필요하게 사용해 지적된 사례는 ‘1박2일’ 42건, ‘우리 결혼 했어요’ 25건, ‘패밀리가 떴다’ 13건이었다. 띄어쓰기 오기는 ‘1박2일’ 12건, ‘우리 결혼 했어요’ 38건, ‘패밀리가 떴다’ 34건이다. 비문법적 오류는 ‘1박2일’ 4건, ‘우리 결혼 했어요’ 12건, ‘패밀리가 떴다’ 9건이었다. 이런 사례는 지속적으로 지적되어온 방송자막에 대한 문제점이 전혀 시정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이미 휴대폰의 문자메세지나 인터넷을 통한 메신저 등 정보사회에서 문자의 사용과 역할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또한 앞으로도 방송언어에서 자막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질 것이 분명한데, 방송에서 자막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속적인 자막의 오류는 방송사가 자막언어를 제대로 처리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방송에서는 순발력 있게 자막을 만들어 내야하는 상황이 적지 않으므로 자막을 내보내는 언어를 사전을 찾으며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초보적인 수준의 맞춤법을 틀린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말들을 계속 틀리는 것은 방송의 신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자막을 쓰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아나운서와 같이 훈련을 거쳐야 하듯이 문자로 방송을 진행한다고 할 수 있는 자막을 만드는 제작진도 철저한 훈련이 필요하다. 또 쉽게 누구나 참고할 수 있는 방송자막언어에 대한 지침을 만들어 방송자막의 오류를 줄여가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인력과 지침을 준비하는데 방송사는 시간과 노력, 금전적인 비용을 투자해야 하지만 한 글자의 잘못으로 방송에 대한 신뢰가 없어지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이러한 제도적 준비는 소홀히 다룰 일이 아니다. 또한 자막에 쓰이는 문자 언어에 대한 전문적이고 실질적인 지침을 마련하는 일은 방송 언어의 질적인 발전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사회과학| 2008.12.03| 2페이지| 2,000원| 조회(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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