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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마트. 슈퍼마켓 하나로 세계유통을 지배하기까지를 읽고
    한사람의 이름을 전 세계 50억의 인구가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게다가, 그 이름이 빈손으로 시작하여 이룩한 업적(業績)으로써 드러나게 될 경우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의 이목(耳目)을 오랫동안 집중시킬 수 있다.월마트의 창시자인 샘 월튼의 경우가 위와 같다. 샘 월튼은 맨손으로 이 모든 일을 이룩하였다. 때문에 아직까지 그는 유통업계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불리워지고 있으며, 그의 뒤를 이은 월마트의 새로운 경영진들조차도 회사의 운명이 걸린 큰 결정을 앞두고, “샘 월튼이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통하여 일의 해답(解答)을 찾고 있다.이 책은 특히 나에게 흥미를 끌었다. 평소, 나는 책을 빌려서 읽는 것을 선호하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친구에게 빌려 잠시 살펴본 후, 바로 서점에서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였다. 왜냐하면 좀 더 되새겨가며 많은 지식을 습득해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책의 구성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1장에서는, 월마트가 현재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있는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으며, 2~ 4장까지는 샘 월튼의 가치관과 경영방식을 상세히 펼쳐놓았다. 또한 5~ 6장은 샘 월튼의 뒤를 이은 새로운 경영진의 경영방식과 추구하는 목표를 설명해놓았으며, 7~ 10장은 월마트의 새로운 해외사업방식으로 채워놓았다. 11~ 13장은 새로운 경영진과 리더인 “리 스콧“의 리더십에 대해서 적어놓았으며, 14장에서는 앞으로의 월마트, 나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한 월마트의 자세에 관해서 서술(敍述)해 놓았다.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초기 샘 월튼의 경영방식을 새로운 경영진에서 매우 존경하였으며 그의 경영본질을 기본으로 사업을 영위(營爲)하였다고 서술하였지만, 책의 구석구석에는 샘 월튼의 미약한 오점(汚點)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놓았다는 점이다. 5장의 한 부분을 예로 들어보면 “새 경영진은 월마트의 성장을 위해 법인(法認)조직의 면모를 강화시키는데 뜻을 모았다. 그것은 샘 월튼이 완강하게 거부하던 일이었다” 라고 서술해놓았다. 또한 같은 부분에서 샘 월튼은 “미디어 홍보팀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라 주장하였고, 그 결정을 새로운 경영진에게까지 파급(波及)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의 생각은 미디어의 기습인 ”데이트라인“사건을 발생시키게 되었다.나는 이러한 부분들을 통해 이 책이 “교과서와 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샘 월튼의 경영방식이 “고객중심주의”와 “상시(常時) 저가 정책”을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그의 경영방식이 이미 서비스마케팅이론과 접목(接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며, “일몰의 규칙“또는 ”열 걸음 규칙“등은 현대사회의 이론적 체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있는 법칙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이론들을 지난 서비스마케팅 과목에서 배운 경험이 있으며, ”Southwest Airline”이라는 항공회사의 사훈(社訓)과도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책에서 나는 경영학과 유통관리의 많은 부분을 새롭게 살펴본듯 하다.이 책의 주인공인 샘 월튼과 그의 후계자들은 가장 기본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이 말은 샘 월튼과 후계자들이, 결코 거대기업을 일으킨 리더들만의 엄청난 비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이것은 나 역시도 알고 있었지만 미처 실천하지 못한 사소한 경험과 지식들을, 샘 월튼을 비롯한 경영자들은 거리낌 없이 실행하였고 그 작은 것들이 모여서 월마트가《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 순위에서 최초로 1위로 등극하는 대업(大業)을 만들어내었다는 것이다.책의 내용가운데 몇가지 중요한 측면(側面)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월마트의 창시자인 샘 월튼은, 좋은상품을 싸게 사서, 고객들에게 정중하게 파는 것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만족스러운 거래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고객과 최일선에서 마주치는 직원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으며, 이 때문에 샘 월튼은 자신이 가진 많은 시간을, 현장에서 직원들을 독려(督勵)하며 보냈던 것이다.또한 샘 월튼은 매우 검소한 사람이었다. 이 말은 개인적으로도 절약하는 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크게 보면, 그의 사업체는 결코 낭비하는 풍토(風土)를 만들지 않았다는 말이다.싸고 좋은 전화기를 두고 비서가 화려하게 장식된 전화기를 들여 놓았을 때, 샘 월튼의 부정적인 반응을 살펴보면 이러한 점을 잘 알수있다. 그는 회사의 운영비용을 줄이면 줄일수록 고객 몫으로 돌아가는 돈이 많아지게 되며, 이것이 월마트 문화의 기본신념(信念 )인 “고객봉사”를 만족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8.03.21| 2페이지| 1,000원| 조회(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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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감정(영남과 호남)의 지역감정의 역사와 화해, 그리고 해결방법에 관한 레포트
    영?호남 의 화해과 목:교수님:이 름:학 번:제출일:목 차1. 지역감정이란?2. 지역감정의 역사3. 지역감정의 발생원인1-인사의 불공정2-경제. 개발의 격차와 지역감정4. 지역감정의 화해방법5. 맺음말1. 지역감정이란?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어떤 집단이든 그 집단의구성원들 간에는 다양성과 차별성이 존재하고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입니다. 이러한 차별성이나다양성은 표출형태에 따라서 그 집단의 발전을 촉진하기도 하고 저해하기도 합니다.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지역감정이라는 것도 이 시대 이 국가라는 집단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다양성이나 차별성의 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감정이 구조화된 편견적 문제로서 국민통합과 국가의 조화적 발전에 막대한 상처를 입히며, 수없이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분석 점검되고 해소, 극복 방법론이 제기되었으나, 여전히 한국 사회의 망국병으로 지적되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다양성과 차별성과는 다른 문제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지역감정이 사회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정치와 연결될 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기준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입니다.새천년의 문이 열린 지금도 지역감정은 여전히 우리 정치의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연구에 따르면 탈 지역주의는 지역간 정권교체를 통해서 가능하리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지역주의 심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특정 지역주의의 장기집권에 있고, 물론 지역주의 정권 자체에 문제가 있지만 그것을 고정화된 지역균열의 구도로 재생산하고 강화하였던 것은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특정 지역주의 정권이 패권을 장악해 오면서 지역 격차와 균열의 체제를 심화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정치사상 최초의 지역간 정권교체를 이룬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지역감정 문제는 여전히 한국 현대사의 불치병으로 남아있습니다. 지난 4월에 치러진 16대 총선에서도 역대 선거와 마찬가지로 영남, 호남의 지역분할 구도는 재연되었다고 볼수 있는 것입니다.지역감정은 “다른 지역 주민끼리 서로 경쟁의식을 갖고 심한 경우에는 서로 반목하는 일. 한국의 정치를 좌우하는 요인의 하나로서, 지역주의라고도 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등 역대 대통령을 배출한 영남지방과 개발 및 주요 인사(人事) 등용에서 소외되어 온 호남지방과의 지역대립을 특히 가리킨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지역감정은 이렇게 민족공조의 역기능만을 담당하고 있고, 한국의 바른 정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2. 지역감정의 역사지역감정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지역균열의 구도로 한국사회를 좀먹고 있는 지역감정이라도, 그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론적으로 지역감정은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완화시키고 권력엘리트와 대중간의 격차를 줄이는 순기능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지역감정이 사회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정치와 연결될 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기준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역감정이 정치의 지배적 변수가 된 것은 채 30년이 되지 않았으며, 그 배경에는 1960년대 이래 박정희 정권의 호남지역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차별정책이 자리잡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영?호남 지역감정의 원인을 정치?경제적 차원에서 다루어보고자 한다.3. 지역감정의 발생원인1-인사의 불공정영?호남의 지역감정의 원인에서 첫 번째로는 인사의 불공정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인사의 불공정 문제의 이유로써,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이 자기방위를 위해 정치?행정적 측면의 편파적 인사행정을 실시함에 따라 지역격차와 더불어 영?호남 지역감정을 유발시키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권위주의체제하에서 정치엘리트의 충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일인독재가 유신체제의 성립과 더불어 강화되어감에 따라 최고통치자에 대한 충성심과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엘리트구조는 그 폐쇄성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이것은 특히 전라도 지역 출신의 배제와 짝을 이루면서 진행되었습니다. 동일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일부가 관계나 경제계, 또는 군, 경찰 등의 인사에서구조적으로 배제되고 소외되는데, 그 원인으로 ‘지역적 연고성’이란 변수가 지적된다면 그것으로 인한 소외의식과 차별의식은 심화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2-경제. 개발의 격차와 지역감정두 번째로 경제, 개발의 격차와 지역감정을 들 수 있습니다.1971년의 대통령 선거의 양상은 이미 일정 부분 지역갈등의 반영으로 볼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라도의 유권자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인 경상도에 국가발전의 우선권이 부여된 것에 가장 심하게 반발하였다. 전라도 사람은 경상도 출신 정권에 의한 고의적인 차별대우에 광범한 불만을 나타냈었습니다. 그러한 불만들은 일정 부분 현실적인 근거를 갖고 있었습니다. 즉 정부 주도하의 경제발전이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특정지역을 우선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은 개발계획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지역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근거’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여당의 선거전략이 지역간의 갈등과 감정의 골을 깊게 했습니다. 즉 비민주적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 지역주의가 동원된 것이 오늘날의 지역갈등을 심화시킨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군사정부 시절이 지역주의를 동원하기 시작한 시대라면, 그 이후 제5공화국 정권은 지역감정의 골을 더욱 심화시켰던 시기였습니다. 게다가 제5공화국의 출범시기에 발생한 ‘광주민주화운동’은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폭력적 대응으로 지역감정을 심화시켰고 광주의 한으로 남아있습니다.이렇게 지역감정은 영. 호남의 경제적 상황과 생각의 틀을 바꾸어 놓았고, 이것은 상당부분 정치적 이유가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4. 지역감정의 화해방법그렇다면 이러한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화해하는 방법은 없을까?일반적으로 지역감정의 많은 부분은 가정에서의 간접 경험을 통해 어렸을 때 획득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올바른 의식 확립을 위해서는 학교에서의 교과 과정을 통해서라도 각 지역민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배우도록 해야 하고, 또한 각 지역민과의 조화와 화목한 관계를 학습하도록 해야 합니다. 옛 정치의 폐단에 묶이지 않은, 올바른 교육의 실현이 지역감정의 화해에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두 번째로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경제적?정치적 불공평에의 시정뿐만 아니라 대중매체를 이용한 올바른 대중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앞의 연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청소년의 타지역민에 대한 경험이 주로 매스컴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고려해 볼 때 성인들이라도 대중매체에 의한 여러 가지 쇠뇌교육은 청소년 못지않게 쉽게 지역감정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그리고 방송사 차원에서, 지역감정의 해소에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이를 일반시민들에게 제대로 풀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과, 대중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과학| 2008.02.11| 5페이지| 1,000원| 조회(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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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혈인의 생애와 차별실태
    혼혈인의 생애와 차별실태과 목:교수님:이 름:학 번:제출일:목 차서 론-혼혈인의 추이와 현황본 론-혼혈인의 생애와 차별(1) 출생과 차별(2) 청소년기와 학교생활(3) 병역(4) 직업과 노동(5) 결혼과 가족구성(6) 자녀 출산 이후의 생활종 합-맺 음 말1. 혼혈인의 추이와 현황혼혈인의 현황은 현재 정확한 수치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국정부에 의한 혼혈인 집계는 보건사회통계연보에서는 1974년까지, 보건복지백서에서는 1984년까지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혼혈인 집계는 정부 외에 혼혈인 지원단체인 펄벅 재단에서 수집되었다.펄벅재단의 자료에 의해서 파악된 바에 의하면, 1999년도 혼혈인 집계 수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혼혈인들의 자조모임인 한국혼혈인협회도 두차례 전국적의 조사를 통한 자료를 수집하였고, 이 자료를 활용할 수 있었다. 첫번째 자료는 1973년에 이루어졌고, 두번째 조사는 1999년에 다시 이루어졌다. 이들의 자료를 종합하여 표로 제시하였다.(기지촌 혼혈인 인권실태조사 50장 표 참고)정부의 보건사회통계연보에 따르면, 혼혈인의 수는 1950년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었다. 단 1957년에 잠시 집계수치가 감소하였는데, 이 당시 혼혈아동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입양이 이루어졌던 시기였기 때문에 집계된 수가 감소하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1957년 이후로는 계속하여 혼혈인의 수는 증가하였다. 1960년대에도 혼혈인의 증가추세는 여전하였고, 1968년을 정점으로 하여 감소하였다. 정부집계에 의해 가장 많은 혼혈인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된 1968년 혼혈인의 수는 1623명이었다. 그리고 감소추세에 따라 1974년까지 1134명으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혼혈인의 수는 1981년 680명으로 줄었고 1984년 829명으로 추산되었다.정부와, 펄벅재단, 혼혈인협회는 시기별로 각기 다르게 혼혈인 수를 집계하였지만 혼혈인 수의 증감에서는 일치한다. 모두 1970년대 이후로 혼혈인들이 꾸준히 감소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는 기지촌에 종사하는 성매매 여 겪게 되는지를 그들의 삶 속에서 살펴보도록 하자.(1)출생과 차별-출생배경: 혼혈인들은 대부분 기지촌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혼혈인들의 출생은 세대별로 차이가 있는데, 혼혈인 1세대의 경우는 상당수 미군의 강간에 의해 태어났다. 해방 이후 미군이 치안 유지군으로 한국에 들어왔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군의 주둔은 합법적으로 장기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혼혈인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그러나 1950년대 중반 이후, 미군주둔지를 중심으로 기지촌이 형성되고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이 생겨났다. 따라서 강간에 의해 생겨난 혼혈인보다는 성매매, 계약동거, 결혼 등 미군과 기지촌 여성들 간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혼혈인들이 태어났다. 기지촌 지역 성매매는 성매매 집결지역의 성매매와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상당수의 여성들이 미군과 계약동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군은 대체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연령의 미혼 남성이 주를 이루었다. 설사 기혼 남성이라 할지라도, 부인과 동행을 금지하였다.따라서 미군은 기지촌 여성과의 안정적인 관계, 즉 결혼과 유사한 형태의 생활을 희망했으며, 이때 일정그액의 화대를 생활비로 제공하였다. 따라서 여성들은 미군의 근무기간동안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이상 동거를 하게 되었다. 동거기간 중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임신을 하게 되었고 아이를 지우지 못하면 낳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군은 한국체류기간이 만료되면서 떠나게 되었으며,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혼혈인이 출생할 즈음 미군인 아버지가 떠나게 되자, 법적으로 혼인신고도 되어 있지 않은 미혼인 기지촌 여성이 어머니가 되었다. 결국 혼혈아동이 태어나면 미혼인 어머니와 함께 미혼모자 가족을 이루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미군과의 동거기간중 생활비 형식으로 지급받던 돈을 받지 못하게 되었으며, 생활을 위해 다시 성매매를 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혼혈자녀의 어머니는 자녀를 입양 보내라는 주위의 권유를 받게 된다. 어 속에 힉교 생활을 지속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학교생활은 1세대 혼혈인만이 겪는 어려움은 아니었다. 전쟁 이후에 기지촌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혼혈인도 마찬가지로 학교는 놀림과 따돌림의 장소였다. 대부분의 혼혈인들은 유아기를 거쳐 처음 학교에 입학하면서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지게 된다. 학교에 입학하기 이전에는 외국인도 많고 또래의 다른 혼혈아이들도 있는 기지촌 내에서 유모나 기지촌 클럽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에 의해 보호받으며 성장하지만, 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기지촌 지역 외의 사람들과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혼혈아들은 비혼혈아들로부터 심한 놀림과 따돌림의 대상이 되면서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놀림은 혼혈인들의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왔다. 혼혈아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이 한국사회에서 살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하면서도 피부색과 출생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외국인 취급을 받게 된다. 이러한 학교에서의 차별경험은 혼혈인의 세대와 무관하게 동일하게 겪게 된다.세대와 상관없이 혼혈인들은 학교 생활 도중 교사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받거나 폭력과 폭언을 경험하는 경우에도 여지없이 학교생활을 포기하였다. 학교친구들에게 받는 놀림과 차별의 심각성 외에 교사에 의한 불합리한 대우는 혼혈 청소년들이 학업을 유지하기 힘든 결정적인 사유가 되기도 했다.이 외에도 생계문제로 인해 학업을 중간에서 포기해야 하는 사례도 있었다. 어머니가 가출을 하거나 버려진 경우와 비슷하게 이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노동시장에 뛰어들어 스스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구두닦이, 일용직 노동, 중국집 배달 등의 일을 하거나 쪽방, 목용탕 등의 주거가 확실치 않는 곳에서 일을 하면서 생활을 했다. 이러한 경우는 고아원 등의 수용시설을 오가면서 동네 불량배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그러나 여성 혼혈인의 경우는 학업을 포기하기보다 되도록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치는 경향이 있었다. 여성더욱 심하였다.학교생활은 혼혈청소년들이 비행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1세대 혼혈인들은 고아원과 시설에서 만난 혼혈아들끼리 모이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은 당시 맺었던 관계를 바탕으로 자족적인 모임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현재 한국혼혈인협외의 전신인 HAPA클럽이 그것이다.이렇게 혼혈인 1세대는 혼혈인들만 모이는 경향이 있었다. 외부 차별과 편견이 심할수록 숨어살거나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었다.3세대 혼혈인들의 경우, 청소년기를 겪으면서 학교에서 싸움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면, 다른 비혼혈인 청소년과 어울릴 기회를 얻게 된다. 이때부터 혼혈청소년들은 혼혈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에게 다가온 비혼혈 청소년과 거리낌없이 어울리게 된다. 그들은, 혼혈의 문제를 떠나 비행력으로 동일한 또래문화를 형성하며 어울리게 된다. 1세대가 비행을 하더라도 자신들만의 관계를 유지하였던 반면, 3세대로 내려오면서 이들은 비혼혈 청소년들과도 어렵지 않게 어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의 놀림과 따돌림의 정도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 또한 학교에 진입하면서 심각한 놀림과 차별을 겪었다. 단지 또래의 혼혈인 청소년들끼리 시설에서 모이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갖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을 친구로 대우해주는 비혼혈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리게 되었다.혼혈인들은 성장하면서 출생에 대한 배경을 안고 이에 대한 차별을 반복적으로 겪게 된다. 성장과정에서 겪는 불합리한 대우는 자아정체감 형성에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 혼혈인들은 자신의 학교생활을 불행했던 과거로 기억하고 있다. 혼혈인들은 누구나 학교생활을 할 수 있지만, 차별로 인해 전부 학교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며, 이후 노동시장 또는 각종 사회제도에 진입하는데 결정적인 장애로 작용하였다.(3) 병역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은 나이가 들면서 신체검사를 받고 군대를 가게 된다. 그러나 남성 혼혈인들은 신체검사를 끝내고 혼혈인임을 증빙하는 서류를 각지방 병무청에 제출하면 면제판정을 받게 된다.한국사회에서 혼혈인들에 대한 병역면제가 이루어진 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4) 직업과 노동혼혈인들이 구할 수 있는 직업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 이유는 출생배경과 피부색 때문이기도 하였고, 유아기와 성장기에 겪었던 차별로 인해 학교를 중도에 포기했기 때문에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는 학력조건을 갖추지 못했기때문이기도 하다. 사회로부터의 철저한 따돌림과 냉대의 경험으로 취업을 시도해 보기도 전에 스스로 취업을 포기하기도 하였다.이러한 원인들에 의해서 혼혈인들은 노동시장 진입 자체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므로 혼혈인들이 일이 필요할 때는 공식적인 노동시장 진입은 포기한 채 최대한 자신의 사적인 관계망을 이용하는 것에 의지한다.대체로 혼혈인들의 취업은 친구, 가족, 친척 등의 사적 관계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대개 혼혈인들의 직업은 남성의 경우 운동선수, 연예인, 일용직 건설노동, 유흥업소 관리자 등이 있었고, 여성의 경우 운동선수, 성매매여성, 유흥업소 직원 등이었다. 일반적으로 남성 혼혈인이 단순노동을 하거나 유흥업소 관리업무를 주로 한다면, 여성 혼혈인은 해외로 입양을 가지 않으면,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하거나 이태원 ? 송탄지역의 유흥업소의 서빙, 밴드활동, 청소와 같은 잡일을 한다.자신의 관계망을 이용하여 취직이 되었다 해도, 이미 차별과 놀림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혼혈인들은 직장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였다. 사소한 놀림이 직장생활을 포기하게 하였다. 기지촌 지역 내에서 일자리가 아니라 기지촌 밖에서 구한 일자리의 경우, 적응은 더 어려웠다. 직장생활은 다분히 본인 의지에 따라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보인다. 참아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직장생활의 지속여부를 결정짓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는 성장기서부터 시작된 차별경험이 반복되고 누적된 영향으로 볼 수있다. 즉 사소해 보이는 농담과 놀림일지라도 평생 그런 정체성을 확인해야 하는 입장에선 심각한 차별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대부분의 혼혈인들은 높은 이직률을 보였고, 전문기술직 보다는 단순노동직에 많이 종사하고 있었다.
    사회과학| 2008.02.11| 7페이지| 1,000원| 조회(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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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고속철 통과 방안에 대한 최적안 도출
    대구 고속철 통과 방안에 대한 최적안 도출과 목:교수님:이 름:학 번:제출일: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현대사회에서 자동차, 기차를 비롯한 고속철도와 같은 교통시설의 역활은 우리 생활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교통시설의 발달로 인해서 우리는 우리가 가고싶어하는 곳을 쉽게 갈 수 있게 되었으며, 산업의 발달과 전파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대구 고속철 통과 방안에 대한 최적안 도출”에서 저는 먼저 고속철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고 레포트를 전개하려 합니다. 고속철이란“시속 약 200㎞ 이상으로 운행하는 철도. 즉 재래식의 연장선상인 고속열차와 자기부상식 고속열차가 이에 해당됩니다.고속철도의 정의는 시대적 시간가치와 사회적 여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1950년대 초반까지는 최고속도 100km/h 이상이면 고속철도라 했는데, 이는 당시 철도 최고속도가 약 160km/h일 때를 기술적 한계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60년 이후 자동차?항공기?열차 등 교통수단의 속도가 급격히 향상되어, 오늘날 바퀴식 철도 최고속도가 350km/h 이상까지 가능한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열차 최고속도 200km/h 이상으로 달리는 철도를 고속철도라 한다.한국의 고속철도 건설규칙에서도 "고속철도라 함은 열차가 주요 구간을 200km/h 이상 속도로 주행하는 철도로서 건설교통부 장관이 지정, 고시하는 철도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다른 교통기관과 다른 점은 빠르고 대량수송이 가능하며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정확한 운행성과 편리한 이용성, 환경보호 측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속도면에서는 현재 실용화된 교통기관 중 비행기 다음이고 대량 수송면에서는 선박 다음이나, 안전성은 비행기와 선박보다 뛰어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대구 고속철 통과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점의 도출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KTX 대구도심통과방안심의위원회는 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그리고 2004년 10월 22일, 대구시내구간의 고속철 통과방식의 보완과정에서 고속철의 지상화로 최종결정되었다.지상화의 여러 가지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지하화의 문제점을 좀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행까지 유지되어온 고속철의 지하화의 문제점을 살펴보려 합니다.첫 번째로 승무원과 이용객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화재, 수재 등 재해에 취약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몇 년전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도 알수 있었듯이, 지하철에서는 화재가 일어나면 시민들의 신속한 대피도 매우 어렵고, 또한 구조가 복잡하여 사고의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하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물질의 영향으로 시민들의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도 있고, 환기가 어려운 구조로 인해 많은 유해물질이 지하철을 가득 메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역학적 문제는 지하철에서 반드시 고쳐져야 할 문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두 번째로 고속철과 경부선, 지선을 바꿔타는 이용객에게 시간,품으로 불편을 끼치고 있습니다. 몇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시설적인 문제 때문에 시민들은 고속철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고, 또한 다리품을 팔아야 하는 불편을 안고 있습니다. 물론 자금적인 면에서는 손해가 없지만, 시간과 약속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의 특성상 이러한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또한 기존에 존재하던 많은 수의 터널구간을 고려해 볼 때, 대구 시내의 터널화 역시도 까다로운 문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지하철간의 혼선이 빚어질수도 있고, 터널의 쾌적화 문제에서도 좋은 점수를 얻을수 없습니다. 또한 기존의 터널에서 다양한 정차역이 추가되는 방식이므로, 기존의 시민들의 기억했던 역과 구간을 혼동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이러한 다양한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시민단체와 KTX 대구도심통과방안심의위원회의 결정은 우리를 비롯한 대구시민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회의에서 결정난 고속철의 지상화는 이러한 대구 고속철의 상황에 대비해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또한 기존 경부선 구간의 보완 역시도 지상화와 더불어 지켜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그렇다면 고속철의 지상화는 우리가 살고있는 대구에 어떤 혜택을 가져다줄까요?고속철 지상화 공사는 대구의 도심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칠곡군 지천면~대구역~동대구역~경산 압량면을 잇는 대구도심 구간(22.5km)에는 거액의 예산(1조~1조2천억원)이 투입돼 대대적인 철도변 정비사업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먼저 철도변에는 입체교차시설, 연결도로 3km 등이 신설되거나 확장됩니다. 5개의 입체교차시설이 새로 만들어지고 5개의 지하차도가 4차로에서 6차로로 확장되며, 3개의 지하차도(6차로)가 개량된다. 3개의 통로박스(box)도 만들어집니다. 또 철도를 따라 양쪽에는 완충녹지(길이 14km, 폭10m)와 측면도로(길이 16km, 폭10m)가 새로 만들어지고 방음벽(길이 20km)이 설치됩니다. 이로 인해 현재 철도변에 접해 있는 건물 1천475동은 모두 공사 부지로 편입돼 헐리게 되지요. 김돈희 대구시 도시건설국장은 "경부선 주변 동네의 경우 주거환경이 좋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레 지역개발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특히 시가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부분은 오랜 숙원이었던 동대구역 역세권 개발입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의견서의 부대조건으로 실시설계와 동시에 역세권 개발 용역을 맡긴 것도 이때문입니다. 지상화 공사로 고속철 정거장인 동대구역 확장이 뒤따라야 하는 탓에 동대구역 역세권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호기를 잡은 셈이지요. 시는 고속철 지상화에 대비해 지난 6월 광역도시계획에 역사 및 역지구 9만7천평, 역세권 12만6천평을 반영해 놓고 향후 신도심으로 육성키로 하였습니다. 현재 시는 제2의 전시컨벤션센터, 특급호텔, 비즈니스빌딩 건립 등 개발계획의 골격을 짜고 있다.또한 기존에 있었던 여러 가지 문제,(터널증가,재해취약, 갈아타는 문제)들을 어느정도 해결할수 있다는 것에 대해 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재해와 같은 경우네는 지상화로 인해서 어느정도 개방적인 환경을 택할수 있을 것이며, 갈아타는 문제 역시도 어느정도 시설의 확충과 다양한 노선의 확보로 큰 불편없이 이루어질수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이러한 고속철의 지상화 방안 역시도 몇가지 과제를 해결해야만 이루어질수 이루어질수 있는 문제가 되었습니다.제일 먼저 지난 7월 대구시의회에 지하화 고수를 위해 청원서를 낸 시민 2만1천927명에 대한 설득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도심의 남북 분단으로 인한 발전 저해, 소음 진동 전자파 피해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대구시가 체계적인 설득작업과 홍보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과학| 2008.02.11| 4페이지| 1,000원| 조회(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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