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ur major rivers restoration project.Currently in South Korea, Ministry of Land, Transport and Maritime Affairs and Ministry of Environment focus on the four major rivers restoration project which is associated with aquatic environmental problem.The total amount of water by the average annual precipitation is 126.7 billion of which approximately 45 percent is lost to evaporation and flooding. Rainfall per person is less than 10 percent of the world average. More than 60 percent of Korea’s annual precipitation is concentrated in summer is the most flood spill. Because 330-580 in coefficient of river regime are high, water management is disadvantage for the Korea water resources corporation. The annual water demand will increase by 2.1 percent due to improvement of living standard and industrial production increasing. In case of Korea, the slope of the river is more urgent compared to other countries. For this reason, after the rainy season until February next year, river purification capacity and dilution effects are reduced and river pollution is intensified.Background of The four major rivers restoration project are as follows:1) It requires a fundamental preparedness because of frequent drought and floods by climate change.2) By pollutants entering watershed and water shortage in the dry season, water quality and ecosystem are necessary to prevent continuously.3) Doing not take advantage of the waterfront is necessary to development and maintenance by systematically creating a pleasant and beautiful land space, and composition of high-need urban infrastructure.As with all project or plans, this project also has problem. Such as water pollution, ecosystems and so on it has many problems. They are as follows.If water is locked a reservoir for irrigation river, water, ecosystems and the natural environment are affected to adverse effects. The weirs increase the hydraulic retention time (HRT). In the section of constructing weirs, the flow fluctuation is reduced significantly and periodic flow steady is changed. Additionally erosion, transport and sedimentation of rivers are changed by blocking of water flow. Sediments don’t flow to downstream anymore; sediments are accumulated in bottom of artificial river by constructing weirs. For this reason, sediments will require dredging on a regular basis.In the floodplain of constructing weirs, floodplain is always placed inundation status due to decreasing of water fluctuation and the mud is deposited in around river. Even a low-flow period, a little flap of the river cause overflows of mud to riparian.When the dynamics of river floodplains weakness, the unique flora and fauna will be extinct. By disappearing of flora and fauna habitat such as shallow rivers, the settled species is extinction and around of river will be changed and new environment place. In such an environment, the new species will settle and ecosystems will be changed.To the submerging weirs, large amounts of aggregate are gathered for constructing. Aggregate collection causes suspended solids and those are flowed toward downstream. Thus, overall water quality will be low and much murkier than before. Additionally the increasing hydraulic retention time (HRT) lead to eutrophication. The submerge weirs prolong time of flow from the upper stream to downstream. For this reason, constructing the submerge weirs cause water pollution. Because water flow is blocked, the flow of water temperature is rises and dissolved oxygen is reduced. By water flow is blocking and reducing, the movement of sediments and nutrients is hindered and natural purification is degradation. Additionally, the movement of fish and aquatic organisms are interfered by submerge weirs, constructing the submerge weirs give the adverse effects to aquatic ecosystem. In conclusion, the submerge weirs affect to aquatic organisms negatively.
나는 이 책을 읽기 전부터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단순히 프랑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문화의 나라이며 앞서나가고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었을까? 여하튼 프랑스는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큰 나라라고 생각된다. 프랑스에 비해 대한민국은 어디쯤 와 있는 것인가? 실로 나는 보수주의인가 진보주의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 보수주의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직은 어린만큼 ‘박정희 시대’, ‘극우파’에 대해선 잘은 알지 못한다. 이러한 나에게 이 책은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한국의 사회에 대해서 제 3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해주었으며, 나를 비롯한 한국인들의 잘못된 인식을 가르쳐주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또 곱씹고 곱씹어야만 할 것이다.‘그도 대한민국이야’라는 말을 대한민국의 어느 정치가나 소위 말하는 윗선에서 나올 수 있을법한가? 프랑스는 그러한 나라이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개인주의를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개인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제 1부에서 프랑스는 유행을 따르는 우리나라의 여성들과 달리 자신의 개성을 창조하는 프랑스 여성들을 비교하였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기연예인이 하고 나오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더 나아가 얼굴 성형까지 판치는 시대이다. 나 또한 이렇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 본인 스스로 조차 남들이 입는 옷이며 가방이며 모두 그들을 쫓아가고 있다. 이것은 한국사회가 낳은 잘못된 점이라 작가는 이야기한다. 상류층 사람들이 자신들과 ‘구별짓기’를 하기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누군가 백만원 짜리 가방을 들었다면 어느 누군가는 그 가방보다 훨씬 더 비싼 가방을 살 것이다. 이는 ‘난 너보다 더 잘나가니까’라는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것은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좋은 방법은 아니다. 전통이 있는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개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의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가문의 전통적인 방법, 즉 기부를 한다거나 사회에 공헌하는 일 왕따’를 비정상으로 보는 것 같다. 또 잘못된 대한민국의 극우반공주의와 지역주의를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의 극우반공주의는 이제는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듯하나, 지역주의는 점점 심화되어가고 있다. 매번 대선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직도 호남권, 영남권을 운운하는 사람들은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저질적인 지역주의는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을 나누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고소영’이란 이야기는 끊이질 않았다. 개인의 역량을 판단하여 투표권을 행사해야 하는 대한민국이 아닌, 그 사람의 출신 지방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대한민국은 언제쯤이면 변화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선 다음 세대를 이어갈 내 나이의 학생들이 이제는 깨달아야할 문제 이다. 그리고 나라는 개인의 존재를 알고 각각 개인을 존중하는 그러한 대한민국민이 되어야할 차례이다. 그리고 한 건축물에 빗댄 우리나라의 실정을 보여주었다.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상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우리나라도 이에 포함되는 나라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받는 사람을 위한 상이 아닌 주는 사람을 위한 상이다. 즉,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상이라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숱한 상이 있다. 어차피 ‘상’이라는 명분이 중요한 것이지 어떠한 ‘상’인지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위 있는 자들이 만든 자신의 권위를 위한 상은 없어져야 진정한 상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제 2부는 프랑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난 프랑스라 하면 사람들 보다는 그들이 이루어놓은 문화와 그들의 음식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을 우월시하였다. 내가 알던 프랑스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이번 장을 읽으면서 정말 난 프랑스인이 아닌 것을 후회하게 되었을 정도이다. 우선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 사회에 의해 만들어졌다. 즉 그들은 어느 민족이든 간에 중요하지 않다. 우리나라와는 반대이다.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많은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토론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난 그렇기 때문에 반대적인 입장을 갖는 절친한 친구와도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만을 크게 떠들어 댈 뿐이지 도무지 다른 입장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다. 이런 토론 문화가 없는 것이 개인뿐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는 정치인들이 토론을 하는 모습은 ’100분토론‘ 등 에서만 종종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올바른 토론을 하는 정치인은 보기 드물다. 다른 입장을 듣지도 않는데 그것이 무슨 토론인가 싶다. 난 꼭 나중에 프랑스에 갈 것이다. 이는 이 책을 읽기 전부터 꿈꿔왔던 것이다. 그리고 꼭 난 프랑스의 어느 한적한 카페에 앉아 누군가와 토론을 즐기고 싶다. ’삶의 다양한 풍경‘ 부분에는 그들의 다양한 점을 설명하고 있다. 이 중 난 ’사회를 풍자하는 샹송‘이라는 글이 재미도 있겠거니와 대한민국 사람들도 풍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능력보다는 ’어떤 줄‘을 잡느냐가 중요하다. ’이 줄‘이 별로라면 ’저 줄‘로 잘 바꾸어 타면 될 뿐이다.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미테랑 대통령은 자신이 어릴 적 경향과 달리 나중엔 정반대의 경향을 나타내었다. 이들과 우리나라 사람들과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이 우선하다는 것이나, 우리나라는 자신의 신념보다는 자신이 옮겨질 ’줄‘이 우선이라는 점이다.)만약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줄‘을 바꾸어 타면서 자신의 신념이 바뀐 것인 마냥 이야기를 한다면 대다수 사람들은 ’배신, 배반,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이러한 국민 생각이 진정한 신념을 짓밟는 것은 아닌가 싶다. 프랑스 인들은 여유를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름 한 달 동안 바캉스를 즐긴다. 이러한 점이 부럽다. 아마 한국이라는 땅에서는 죽을 때까지 겪어 보지 못할 일이다. 일할 때는 일하고 쉴 때는 쉴 수 있는 그러한 여유를 갖는 것은 프랑스의 경제력이 이미 탄탄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물질보단 삶의 질을 우선으 시간이 없겠는가. 너무 멀리 보지 않아도 이렇게 가까운 사람에게도 난 소홀히 하고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 이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예전에는 이웃의 수저 개수도 알만큼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는 이웃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에 대해 관심조차 없다. 종종 이웃의 할머니가 돌아 가신지도 모르고 몇 일씩 이나 시신을 방치해 두었다는 기사를 접하곤 한다. 안타깝다. 이런 말라가는 우리들의 친절과 관심을 찾아야 할 때이다. 내가 관심을 둔 또 다른 이야기는 ‘프렌치 지골로’의 이야기이다. 이는 프랑스 젊은 남성들이 프랑스로 유학을 간 한국인이나, 일본인 여학생에게 고의적으로 접근하여 경제적으로 여학생에게 의존 하고 용돈을 얻기 까지도 한다는 내용이다. 수요가 있기 때문에 공급이 있는 것이다.) 타국에 가서 얼마나 외로움을 탔겠으며 우선적으로 언어를 배워한다는 생각에 그들의 곱상한 외모와 듣기 좋은 말에 넘어갔을 것이다. 한국 여학생들은 지골로에게 용돈을 주고 함께 살며 결국 그들의 뒷바라지를 한다. 한국에서 힘들게 돈을 부치는 부모님들은 생각도 않한다. 결국 헤어짐을 당하게 되는 것은 한국 여학생이다. 외국인을 등쳐먹는 곱상한 외모의 지골로도 잘 못은 있겠지만, 거기에 넘어가는 사람이 더 어리석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대로 공원에 앉아있는 외로워 보이나 젊은 사람들을 좋아하는 할머니들에게 말을 건네 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제3부에서는 대게 한국사회와 프랑스사회를 함께 보았다. 한국 교육현실에는 ‘회색돈’과 ‘검은돈’이 있다. ‘회색돈’은 보충수업을 통하여 교사에게 돌아가는 돈이며, ‘검은돈’은 보충수업으로 거둬들이는 돈 중 일부로서 교장, 교감에게 돌아가는 돈이다. 직접수당이든 간접수당이든 간에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돈관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스승인가, 노동자인가?)라는 질문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퇴색되어버린 교육 현장에서 ‘본질적인 스승’은 이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들은 이미 돈을 요구생각은 없고 단순히 ‘받아쓰기’만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살아온 나로서는 당연히 기자들이 그렇게만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그러한 ‘보고’식의 이야기는 필요가 없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토론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토론을 하지 않는 이유는 솔직히 토론을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다른 사람들의 ‘거리’에서 분석되는 것을 원치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단순히 자신의 동향을 보고하는 것을 원한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기자들이나 아나운서가 정치인들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이야기를 한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일이 생겼다면 그 기자나 아나운서는 정치인으로부터 압력을 받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정치가 투명해지고 또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이제는 프랑스와 같이 제3자의 입장에서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어 져야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국어 보다 영어교육에 더 몰두 하고 있다. 자국어가 있는 나라는 얼마 없다. 특히 한글은 과학적인 언어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영어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인가. 세계화가 되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자국어를 업신여기고 세계화란 이유 때문에 영어를 우월 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잘 하기 위해 어학연수며 조기 유학을 많이 간다. 참으로 웃긴 일이다. 외국으로 조기 유학을 간 아이가 평생 동안 외국에서 영어를 써가면서 살아가진 않는다. 다수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서 한국에서 살아 갈 것이다. 그러한 한국어는 못하는 한국인이 되어버린 그 아이는 한국인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요즘 ‘영어공용화’ 주장이 나오는데 말도 않된다. 지금부터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 한다 해도 족히 백년은 지나야 국민 모두가 영어를 공용어로 쓸 수 있을 텐데 그럼 영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낙오자가 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맞추어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한국어를 제쳐두고 영어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한국어에 대해서
존 듀이교육철학 및 교육사고 미 숙 교수님식품영양학과 2학년20070871안 세 진1. 서론‘프래그머티즘’ 처음 듣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들어봄직 하더라도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 나 또한 교육철학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한번이라도 내 생에서 들어보았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프래그머티즘은 미국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많이 미친 철학의 한 분야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래그머티즘에 관한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특히, 교육철학부분에서의 프래그머티즘은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많은 프래그머티스트가 있지만, 그중 존 듀이는 프래그머티즘을 교육철학분야에 적용하여 정리한 프래그머티스트이다. 이러한 점에서 ‘프래그머티즘이란 무엇인가?’, ‘존 듀이는 누구인가?’ ‘듀이의 프래그머티즘 사상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 ‘듀이의 프래그머티즘이 현재에 영향을 끼친 부분은 어디인가?’의 의문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2. 프래그머티즘.2.1 프래그머티즘의 발생프래그머티즘은 한 시대에서 한사람에 의해 발생되어진 것이 아니다. 프래그머티즘은 미국에서 발생된 철학이다. 프래그머티즘의 탄생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에는 지성인들이 모여서 서로 토론하는 모임이 유행했던 것 같다. 그러한 모임 중 퍼스, 제임스, 홈스 등이 함께 모인 ‘형이상학 클럽’에서 퍼스가 처음으로 프래그머티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퍼스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었으나, 재혼의 문제에 있어서 도의적으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교수직뿐 아니라, 연구원, 철학자로서의 명예를 잃게 된다. 그가 프래그머티즘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증거는 그의 친구인 제임스에 의해서 이야기 되어졌다. 제임스가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에서 강연을 했는데, 그때 프래그머티즘의 원리를 소개하면서 그것이 퍼스의 아이디어 였다고 밝혔다. 그 이후 프래그머티즘은 하나의 철학적 입장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프래그머티즘이 탄생하게 되는 시가는 사회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프래그머티즘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미리 특정한 관점을 정해 놓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상황의 문제에 대하여 여러 가지 대안을 생각하고 그러한 대안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래그머티즘이 미국인의 실용적인 생활 태도와 잘 맞고, 또 미국이 공업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적인 갈등을 해결해 주는 방안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과 미국인의 특성에 맞게 고안된 프래그머티즘은 변화해가는 사회에 맞추어나가는 철학이라고 생각한다.2.2 프래그머티즘이란?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의 프라그마(Pragma)에서 왔으며 ‘실제’, ‘실천’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프래그머티즘을 실용주의라고도 번역한다. 그러나 실용주의라는 번역은 자칫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래그머티즘은 실용주의 이다.’라는 정의는 잘못된 생각이다. 또한 프래그머티스트들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때 ‘도구주이’, ‘실험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많은 부정적인 오해들을 불러일으킨다.프래그머티즘은 인간의 지적활동이 의심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 하나의 철학 운동이다. 의심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설을 생각해내고 그 가설을 실제로 검증해봄으로써 문제 해결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래그머티즘에서 ‘실생활에 유용하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것만이 진리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래그머티즘을 실용주의라고도 일컫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효용성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속적인 태도를 지닌 것은 아니다. 또 ‘도구주의’라는 단어는 마치 프래그머티즘이 모든 것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을 때 지식이 문제해결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식이 문제해결을 위한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이러한 용어관이 있다. 예를 들면 과거에 우리는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 A, B라는 가설을 설정하고 A라는 가설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되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시대가 흐르고 사회가 변화하였을 때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그 시기에서도 A라는 가설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는 않다. 이렇듯이 예전에는 우리가 문제를 해결 하는데에 있어서 A라는 가설을 지식으로서 받아드렸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이를 통한 문제 해결이 되지 않으므로 지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프래그마티즘 에서는 실천적인 유용성을 중시하는 태도이기 때문에 지식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상황에 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지식으로 여긴다. 프래그마티즘은 지식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지식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본다. 지식의 속성은 시간에 의해, 사회에 의해, 인식자의 관점에 의해 변하기 때문에 영원불변한 진리는 없다. 이를 지식의 상대성이라 일컫는다. 또 프래그머티스트는 더 나은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고, 어떤 지식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예상하지 못한 다른 문제를 낳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프래그마티즘에서 ‘100% 확실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확률이 높을 뿐이지 절대불변을 보장하진 않는다.’라고 하였다. 예를 들면 ‘내일은 해가 뜬다.’라는 진리는 경험세계에서 해가 뜬다는 확률이 높을 뿐이지 무조건 내일은 해가 뜬다라는 것은 아니다 라는 얘기이다.프래그머티즘은 자연주의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이다. 프래그머티스트들은 세계는 우연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세계이며, 인간도 기본적으로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는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의 경험도 자연에 포함된다고 생각 하였다. 이 세계는 항상 변화하고 있으며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계는 인간의 활동에 따라 진보할 수 있고 인간 자신도 노력을 통해 스스로 개선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관점을 자연주의라고 한다.) 우리가 끊육자, 저술가, 사회비평가로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다.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강연을 하였다. 일본, 중국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그는 사회 참여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철학자 인 것 같다. 다른 철학자들은 자신의 대학에서 철학에 관한 연구와 강의에만 집중했던 것에 비해서 듀이는 사회적으로 이러한 철학을 널리 알리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점에서 다른 철학자와 다르게 현실 참여 철학자라고 일컬을 만 하다. 그리고 듀이는 미국의 ‘교원조합’과 ‘미국대학교수협회’를 조직하기도 했고, 진보적인 정책을 내세우는 정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주장 하였으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사회민주주의’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듀이의 입장은 민주주의적 방법을 통하여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을 일컫는다.듀이는 다방면에서 자신의 철학적 영역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적용한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듀이의 이러한 노력이 미국의 전반적인 사상의 토대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퍼스가 만들고 제임스에 의해서 알려진 프래그머티즘은 완벽한 미국 철학이 아니다. 이들은 미국 동북부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에 미국 요구를 반영한 완벽한 실용주의를 만족시키진 못하였다. 듀이는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의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미국을 알았고 그에 따른 프래그머티즘을 완성 시켰다. 그러한 점에서 듀이에 의해 프래그머티즘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 그렇기 때문에 프래그머티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존 듀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는 프래그머티스트로서 많은 행적을 남겼으며, 프래그머티즘의 진정한 실천을 하였다.3.2 존 듀이의 프래그머티즘.듀이는 자신의 사상을 도구주의 또는 실험주의라고 했는데 이는 다윈에게서 영향을 받은 자연주의적인 관점을 뜻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는 많은 문제들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또 사회는 빠르게 발전해 간다. 어제까지만 해도 농업사회 되는 것이 나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전공이 식품영양학이라고 해서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사용될 유용한 과목만 수강한다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너무 실용적인 교육에만 치우치게 될 것 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필요한 학문이 있고, 필요하지 않는 학문이 있진 않는다. 듀이도 필요하지 않는 학문이 있다 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지나치게 효용성을 중시하지 않았나 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존 듀이의 프래그마티즘의 특징이다.또 듀이는 실험주의를 강조하였다. 이성의 작용으로 우리가 어떤 결론을 얻으려면, 우선 전제가 필요 하다. 이 전제를 위해 이성은 가설을 세운다. 이때 우리는 소위 말하는 사고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 사실과 직면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탐구, 검토, 관찰, 실험 등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제해결을 하기 때문에 실험주의라고 한다. 문제해결을 위해 과학적 사고를 하는데 과학적 사고는 일정한 틀을 지니고 있다. ‘문제확인-방향모색-정보수집과 관찰-가설설정-가설검정’ 의 5단계를 거쳐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는 과학적 실험과 같은 단계이다. 이러한 듀이의 실험주의 프래그머티즘 입장은 우리가 실생활에서 문제를 해결 하는 데에 거치는 일련의 과정으로서 잘 설명해준다. 듀이는 이러한 실험주의도 경험세계에서의 경험을 중시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서 내가 오늘 저녁에 손님을 초대하기로 하였다. 그러면 나는 첫째로 ‘무엇을 준비해야하는가’의 문제를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직접 요리를 한다.’ 또는 ‘음식을 배달시킨다.’의 방향을 모색하게 된다. 그리고 두 가지 방안에 대해서 나에게 돌아올 이점을 각각 생각하게 된다. ‘직접 요리를 한다.’라고 하면 손님의 먹는 모습에 나의 만족감이 채워질 것이다. 그러나 나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된다. 그러나 ‘음식을 배달시킨다.’라고 하면 나의 노력과 시간은 투자되지 않지만, 그만큼의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정보수집과 관찰을 하게 된다. ‘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