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계승론의 문화전략1. 들어가는 말중국 근현대사에서 ‘문화’문제는 1919년 이래 5.2신‘문화’운동, 신중국 성립 이후 사회주의 신‘문화’로의 개조, ‘문화’대혁명 등의 역사적 사건에서 전개된 사상관념의 변혁운동과 관련된 개념으로, 각각의 사건이 다른 시간, 공간 속에서 전개되었음에도 ‘문화’라고 하는 중심축을 가지고 진행되었다.? 왜 하필 문화열인가?이제까지 중국 변화과정에 관한 연구는 주로 정치, 경제를 다뤘지만 이는 사상문화와 같은 상부구조의 변화가 지역적 특수문제 및 민족문화 문제와 어떤 관련을 갖는지 규명하는 문제를 간과하고 있었다.2. 비판계승론의 연원과 문화열에서의 위치1) 비판계승론의 성립과정 : 중국철학사 방법론 논쟁사? 1957년의 ‘제1차 중국철학사 방법론토론’중국 해방 이후 경제, 정치구조의 변혁을 어느정도 완료한 시점에서 개최, 계급투쟁의 양군대전(兩軍對戰 : 유물론과 관념론 두 대립계급 간의 전투)적 정서로부터 보다 개방된 철학사논의를 과학성 위에 정초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1979년의 ‘중국철학사 방법론 토론회’문화대혁명이 완료되고 등소평의 개혁, 개방정책이 당의 공식입장으로 확정된 뒤 개최, 당파성에 대하여 과학성의 지위가 제고되어야 전통철학의 연구가 정당하게 전개될 수 있다는 견해가 철학계의 주요의견으로 채택 ? ‘비판계승’ 개념 정식화? 두 논쟁의 두 가지 주요논점? 철학에서 관념론, 그리고 관념론과 유물론의 관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지다노프)와 레닌)의 철학사 정의를 중국철학사 연구에 적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 1957년에는 임계유와 석준, 1979년에는 이전명과 이신이 대표논자이다.지다노프의 정의를 옹호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둘러싸고 전개 :옹호하는 측반대하는 측철학사는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사인식발전사임을 더 강조? 대표적 비판계승론 주장자들의 견해가 점차 인식발전사론으로 기울고 있는 추세이다.- 등소평 “철학사를 학습하는 것은 이론사유 능력을 제고시킬 수 있고, 이론사유 능력의 제고 이중적인 지양의 과정으로 정식화된 비판계승론은 모택동이 강조한 ‘민주성, 과학성, 인민성’을 기준으로 철학유산을 비판계승하여 “눈앞의 위대한 운동(4개 현대화)을 지도”할 수 있도록 ‘설득력’과 ‘감염력’을 갖추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철학유산에 대한 이러한 방법론은 중국 문화전통 전체에 대한 연구태도로 발전하여 문화열에서 동일한 사상관점으로 전개되고 있다.2) 문화열 중에서 비판계승론의 타유파 평가? 비판계승론의 기본태도 : 자신들의 버릴 수 없는 두 개의 축, 민족과 사회주의를 어떻게 잘 조화하여 현실국정의 전략을 이끄는 데 봉사할 것인가? → 다른 유파와의 차별성(1) 철저재건론과 서체중용론에 대한 평가김관도, 감양으로 대표되는 철저재건론과 이택후로 대표되는 서체중용론은 약간의 차별성을 드러내고 있지만 비판계승론의 입장에서 보면 동일한 ‘전반서화론’)으로 평가된다.- 비판계승론의 입장에서 본 전반서화론 :반(反)전통의 입장. 철저한 전통부정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반대하고 중국이 사회주의의 길로 가는 것을 반대하며 “서양 자본주의의 상품경제와 전체 상부구조를 통째로 중국으로 옮겨올 것을” 주장한다.- 전반서화론에 대한 비판점 :전반서화론은 시대성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이 서양에 비해 낙후되어 있다는 심리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는 이들이 보는 중국의 현단계가 사회주의 초급단계도, 자본주의단계도 아닌 봉건제단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은 중국공산당의 국정전략 전반에 대한 부정이다.(2) 유학부흥론에 대한 평가- 비판계승론의 입장에서 본 유학부흥론 :변화된 모습의 국수주의로 민족성을 핵심에 놓는 주장. 시대의 발전과 중국의 현실을 따라 전통을 반성하지 않고 정확하게 전통을 대하지 못하여 복고주의에 이른 것이라 주장- 유학부흥론의 부정점? 유학핵심론) ? 문화결정론) ? 5.4운동에 대한 부정) ? 중국현실에 부합하지 않음)- 유학부흥론의 긍정점? 전통을 답습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민족문화의 적극적인 정신을 보존한다는 전제? 개혁개방의 현실에리매김된다. 민족의식으로 경제발전에서의 부작용들을 처리하는 것이다.3. 비판계승론자들의 현대사 평가1) 5.4신‘문화’운동 시기 - 위대한 비판계승의 역사경험? 유학부흥론의 평가 : 전통의 전면적 부활 주장? 철저재건론의 평가 : 전통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파괴 주장? 비판계승론의 평가 :‘역사발전의 긍정적 단계’로서의 시대적 의의를 인정하면서 부분적 오류를 수정하는 범위에서 그 입장을 수용, 5.4운동은 역사적 계기로서의 의미가 크며 그 속에서 나온 과학과 민주는 오늘날에도 유용한 구호라는 주장2) ‘문화’대혁명 시기 - 인류사회의 대실험? 문화대혁명 - ‘5.4운동의 잘못된 발전’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대부분? 전통에 대한 전면부정을 반대하는 입장? 문화대혁명의 기저에 깔려 작용했던 불량전통에 대한 비판)?비판계승론자들이 볼 때 문화대혁명은 5.4에서 현 중국에 이르기까지 전통과 서구문화가 만날 대 버려져야 할 부분만이 결합하여 현실로 나타난 역사현상3) 1980년대 이후 현정세 평가문화혁명이 종언을 고하고 1989년 개혁개방 정책 이후 본격적으로 문화건설의 욕구가 크게 오르기 시작했고, 깊숙이 들어온 개혁과 개방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상문화 관념을 추구하고 세우도록 추동했다. 따라서 근대 이후의 문화충돌이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비판계승론자들의 현실인식 :“중국은 현재 사회주의면서 발전도상 국가에 속하는 것은 모순이고, 따라서 개혁을 통해 모순을 해결하려한다. 선진국이 문화를 침투시키는 형세에서 선진국의 과학기술은 압도적으로 우세하여 항거하기 어렵다. 모방과 추종만으로는 민족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없고 중국도 현재 광범위한 서양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 정세에서 사회주의와 민족을 유지하면서 ‘사회주의 신문화’를 건설해낼 수 있을 것인가가 중심 고민이다.? 현실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혹하게 인정하면서도 중화민족의 우량전통을 살리기 위해 전통문화를 분석해내고, 서구문화 가운데 유용한 것만 끌어오기 위해 부패한 부분을 떼어내고 과학과 민주만을 들여오려점 적용, 확대해석하여 ‘다른 계급이 공동으로 창조한 문화’라고 규정하였다. 가장 기본이 되는 사상, 의식, 관념/공동의 요구인 가치관념과 공동의 인식인 사유방식/구체적으로 표출된 민족관계, 가정관계 등으로 문화를 3층으로 나누었다.- 레닌의 ‘양종문화’론“각각의 민족문화에는 모두 양종의 민족문화가 있다”고 하며 이들은 서로 대립, 투쟁의 관계에 있으며, 보수반동의 문화와 진보혁명의 문화로 나타난다고 파악하였다.- 비판계승론자들의 이론 :레닌의 이론을 전통문화, 중국의 현실, 서양문화에 적용하며 논의를 중국화하였다.? 전통문화에의 적용봉건시대 문화의 주종이 지주계급의 문화이고 그것이 농민과 기타계급에 많은 영향을 주었긴 하지만 일치하는 것은 아니므로 지주계급의 문화만이 유일한 중국전통 문화는 아니며 따라서 이는 계급분석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정통과 非정통이 양종문화를 나누는 표준이 될 수는 없고 이 점에서 전통에 대한 비판과 계승이라는 관점이 마르크스주의 문화학을 토대로 삼게 된다.? 중국현실로의 적용사회주의화한 현대중국에 기본적으로 계급대결은 사라졌지만 계급과 계급모순은 존재한다고 본다. 따라서 현재에도 여러 계급과 그에 따른 여러 문화형태가 있으며, 서로 다른 계급의 문화형태 사이에 공동의 표현양식과 차이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본다.? 서양문화에의 적용중국의 현대화를 위해 서양문화를 받아들일 때에도 그 속에 자산계급의 문화와 무산계급의 문화가 함께 담겨있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서양문화는 자산계급의 문화로 규정하지만, 마르크스 이후 서양의 무산계급은 안정된 문화형태를 지니고 서양문화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서양문화의 유입에도 비판과 계승 관점 적용(2) 사회심리구조 논쟁 : 철학과 표충의 사회심리사회심리는 사람들의 현실 사회정치생활에 대한 직접반영 형식이며 초급의 사회의식에 속하고, 철학은 모든 인류 역사의 경험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고급의 사회의식에 속한다.- 양자의 관계 : “고급의 사회의식인 철학이 항상 사산사회에 적용불가능하며, 여기에서 전통문화 개조와 같은 전통문화에 대한 반성문제가 제기된다.? 전통문화를 정확히 인식하기 위한 방법론 :? 전통문화의 진행에 대한 전면적 고찰? 전통문화의 핵심인 전통철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전통문화의 차별성과 공통성에 대한 전면적인 이해? 중국문화의 핵심으로서의 중국 고대철학의 특징 :? 윤리를 본위로 한다.? 현실정치에 관심이 높다.? 주체의식을 고양한다.)? 변증사유가 풍부하다.)? 정체(整體)관념)이 강조된다.? 그 외 : 직각(直覺)사유에의 편중, 경학태도에 치우침, 인간관계 중시, 무신론의 전통 등? 올바른 민족정신은 무엇인가?광범위한 영향을 줄 수 있고, 사회발전을 추동하는 작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강불식(自彊不息)과 후덕재물(厚德載物)광대한 노동인민들이 분발하고 노력하는 전통과 계속적인 발전의 무한성, 포용성을 나타낸다. 중화민족의 자립정신과 압박에 반항하는 정신을 길러준 것이 분투정신으로서의 자강불식과 포용정신으로서의 후덕재물로써, 개혁과 개방, 민족문제를 상징하는 언명이다.- ‘중용(中庸)’, ‘정도직행(正道直行)’), ‘이도제욕(以道制欲)’)? 비판계승론자들의 전통철학에 대한 입장 :어떠한 것이든 모순적인 양면이 있듯이 중국문화에도 소극과 적극, 알맹이와 찌꺼기가 존재한다. 중국의 오늘은 사회주의로 들어갔지만 경제가 뒤떨어진 모순이 나타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혁과 개방을 실행하더라도 반드시 민족의 뛰어난 전통을 정확히 알아야 하며 또한 전통문화의 결함을 각성하고 극복해야 한다. 만약 민족의 뛰어난 전통을 부인하고 과거의 역사를 모두 찌꺼기라 한다면 전진의 기초를 잃게 된다.3) 비판계승론이 바라보는 과학에 대한 기본시각? 중국의 과학기술이 낙후하게 된 원인 :? 2000여년간의 중농억상 정책? 성리학에서 나타난 윤리도덕의 절대화와 군권신수 관념에 의한 천문역법 연구 금지? 경험의 단계에 머무른 과학기술 자체의 원인→ 실용기술에의 치중은 전문과학으로 이론화, 계통화 되지 못하여 근대충돌
오리엔탈리즘과 미국의 패권주의 : 미국의 중동觀을 중심으로Ⅰ. 머리말기원전 페르시아 시대 때부터 존재해왔던 동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오리엔탈리즘이란 단어로 정의되었고, 그 의미와 범위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거쳐 현재 우리가 흔히 일컫는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방식)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18, 19세기의 초기 오리엔탈리즘은 유럽, 그 중에서도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 아래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는데, 이들은 식민지 영토의 효율적인 통치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써 오리엔탈리즘을 이용하였다. 이렇게 초기 유럽의 오리엔탈리즘이 영토적 제국주의의 바탕에서 그 수단이 되어 쓰였다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주도권을 쥐게 된 미국은 이를 계승, 발전시켜 현대의 문화적 제국주의 개념을 함께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을 주도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오리엔탈리즘은 미국이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초강대국으로 발전함에 따라 현재 패권주의라는 형태로 진화, 쌍방향적 소통이 요구되는 현대 사회에서 커다란 반발과 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이 글의 목적은 미국이 ‘동양’으로 특히 중요하게 규정짓는 중동에 대한 그들의 지배 혹은 침략의 합리화 도구로 이용되는 패권주의적 오리엔탈리즘을 파악하는 데에 있다. 또한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이 어떠한 형태로 우리의 삶에 기생하고 우리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그들과 같은 시선을 강요하는 지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미국식 패권주의에 대한 중동의 다양한 대응을 통해 강제적인 일방주의 지배 담론의 오류를 밝혀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본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20세기 중동에 대한 미국의 오리엔탈리즘적 성향에 대해 조명한 후 그로부터 파생된 21세기 진화된 오리엔탈리즘과 패권주의에 대한 성격을 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 패권주의의 전개와 그 양상을 파악한 후 이를 바탕으로 미국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Ⅱ. 20세기 미국의 오리엔탈리즘 : 를 맞았다. 뒤이어 일어난 1979년 호메이니의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그동안 미국의 ‘이슬람 원리주의’의 우려를 증폭시키게 되었고, 이슬람하면 테러를 연상시키는 각인을 미국인들에게 새겨 넣게 되었다.미국 내에서는 중동에 대한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이 지속되었다. 강경파들은 이슬람과 민주주의를 대립되는 사상으로 간주했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본래 비민주적이고, 반서구 적이며, 모든 서구를 공격 목표로 삼고 있는 야만적 집단이라고 주장하면서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방식을 드러냈던 반면, 온건파들은 중동 세력을 무조건 서구의 모델에 맞출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이슬람 세계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 전환을 촉구하기도 했다. 20세기 당시 미국에게 있어 중동은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온건파들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미국은 이 시기까지만 해도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 중동의 이슬람 무장 저항 세력들을 지원하기도 했다.Ⅲ. 21세기 미국의 패권주의 : 문명의 충돌20세기 말 소련의 해체와 냉전의 종식은 미국의 정체성에 급격한 변화를 가지고 왔다. 미국인들은 이러한 갑작스러운 변화를 기독교적인 요소를 이용하여 극복하고자 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국은 곧 중동을 ‘서구 문명의 적’, ‘악의 축’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1980년대 말 공산 세계가 무너지면서 시작된 탈냉전 시대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념이나 정치. 경제가 아니라 바로 문화가 되었다. 민족과 국민은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부심한 결과 자기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대상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전통적인 방법을 택했다. 사람들은 조상, 종교, 언어, 역사 가치관 관습 제도를 가지고 스스로를 규정하고, 그들은 부족, 민족 집단, 신앙 공동체, 국민. 가장 포괄적인 차원에서는 문명이라고 하는 문화적 집단에 자신을 귀속시킨다.) 사람들은 자신의 적수가 누구인지를 알 때만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고, 이를 위해 부흥주의 세력을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그러한 두려움을 전적으로 나타낸 알제리 내전은 이슬람 원리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한 부시 행정부의 피할 수 없던 개입이었다. 냉전 시기 소련을 대체하는 적으로써 이슬람을 파악하는 부시 행정부의 중동관은 이슬람과 필연적인 대립을 유발하게 되었다.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확산을 극도로 두려워하던 미국에게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합병은 미국에게 커다란 충격과 위협을 주는 사건이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UN다국적군의 개입으로 걸프전이 일어났고, 이에 이라크는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 아랍 국가들의 협력을 꾀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고립정책으로 실패하였고, 전쟁 역시 압도적인 미국의 첨단무기와 정보기술로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걸프전은 단지 이슬람 원리주의의 확산에 대한 미국의 두려움만이 원인은 아니었다.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67%를 차지하고 있는 중동에 대한 세력 확장은 미국에게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걸프전의 발발로 중동은 전통적인 이슬람과 이스라엘 형태의 대결에서 아랍인 간의 갈등이라는 내전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이 속에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식민주의가 내재하고 있었다. 전쟁 중 발생한 영토 문제, 종교 문제, 이념적 갈등 문제, 석유자원 배분 문제 역시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이슬람 내부적 갈등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를 자국 중심의 새로운 체제로 개편하려 했던 미국의 의도가 깔려있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등 일부 국가들을 핵무기를 개발하여 미국 중심의 체제 구축을 방해하는 방해물로 인식하였다.뒤이어 집권한 클린턴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 때보다 정치적 이슬람에 대해 더 자유로운 해석을 제시했는데, 이슬람 세계의 전통적인 가치를 새로이 강조하는 것은 서구 세계 또는 민주주의 이상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클린턴은 이슬람의 전통적 가치들이 서구 세계의 가치와 잘 부합된다고 하면서 미국 내의 이슬람 세계와 서구 기독교 세계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문명충돌론적 시각을 없애려고 노표되는 악이 존재한다는 미국식 이분법적 오리엔탈리즘 구도와 미국 주도의 세계평화정책에 반발을 품은 극단적 이슬람 테러 세력은 미국인과 이슬람에 대한 성전을 수행한다는 명분으로 뉴욕세계무역 센터에 9월 11일 역사에 그 유래가 없는 사상 최대의 테러를 일으켰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가장 중심부인 뉴욕에서 벌어진 이 테러는 미국의 반격으로 인해 이라크 전쟁으로 연결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미국의 對중동관에 큰 변화를 주게 되었다.9.11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는 두 가지 이데올로기적 반응을 보였다. 첫째로 미국이 전시라고 선언하며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었다. 두 번째로 부시 정부는 이라크 전쟁이라는 상황을 이분법적으로 설명하며 “이 전쟁은 선과 악 사이의 결정적 전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선이 이긴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이슬람을 ‘절대적 악’, 미국은 ‘절대적 선’으로 규정하는 지극히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부시는 “모든 지역의 모든 국가는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우리와 함께 하거나, 아니면 테러리스트와 함께 하거나 판단을 내려야 한다”라고 강력히 언급하며 새로운 냉전체제의 구축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석유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수확을 얻었는데 미국이 단지 이를 위해서 전쟁을 일으켰다고 보기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오히려 석유는 패권주의의 수단으로써 이용될 수 있는데, 석유에 대한 지배권을 확장함으로써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가공할 만한 군사력을 선보이며 다른 중동 국가에 무언의 협박을 한다는 목적에 성공했다. 일방주의 외교노선의 정당성을 공고히 하는 데에도 전쟁은 이바지하였다.한편 전쟁 이후 공산주의와 자유세계의 갈등으로 대표되던 냉전시대 미국의 지배적인 세계 인식이 탈냉전시대에 들어와서는 서양권 중심의 ‘문명’개념과 비서양권의 ‘反문명’의 대립이라는 구조로 변형되었으며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적 인식은 이라크전쟁을 전후해서 미국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지배적인 지적 풍토아들이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패권주의적 안보담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으로써 그 토대를 이루게 되었고 또한 현실주의적 정치가들의 집권으로 인한 무력의 원리로의 흐름은 이러한 안보담론에게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미국의 세계주의적 안보담론은 탈냉전 이후 더욱 강화되어 ‘글로벌안보’라는 이름으로 강조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세계 38개국에서 725개의 군사기지를 보유하면서 그곳에 대략 25만 명의 병력과 3만여 명의 군속을 유지하고 있다. 찰머스 존슨은 그의 저서 『제국의 슬픔』에서 미국을 ‘기지의 제국’이라 규정하며 전 세계에 퍼져있는 미국의 군사기지들은 식민지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미국이 주둔 국가에서 “군대 지위에 관한 협정”을 통해 19세기처럼 치외법권을 확보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찰머스의 주장은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에서의 미국의 국방비 비율과 그 변화 추세를 통해 미국은 이미 과거부터 매우 착실하게 군사적 패권주의를 위한 기틀을 준비해 왔고 현재 이를 실행시켜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미국의 문화적 패권주의는 엔터테인먼트의 형태로 세계에 뿌리 깊게 파고들어 미국식 오리엔탈리즘을 세뇌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무의식적 침투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때문에 군사적 패권주의의 형태보다 훨씬 쉽게, 그리고 저항 없이 미국제일주의를 확산시킬 수 있다. 미국은 경제적, 정치적 범주를 넘어서 문화적으로 세계인들의 정신을 획일화 시킨다. 또한 미국은 오리엔탈리즘적 성향을 바탕으로 한 문화의 우월성을 전면적으로 내세워 다른 문화권이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심을 갖도록 유발하고 그들에게 독창적인 창조 활동 대신 맹목적인 미국 문화의 복제만을 강요한다. 현대 사회 엔터테인먼트의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만 봐도 미국 헐리우드 시장의 공세에 이미 세계는 전복당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은 최소한의 자국 문화 산업 보호 장치로 스크린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불량국가’-미국의 세계 지배와 힘의 논리세계를 들썩이게 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시도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다. 미국은 북한이 “핵 야욕을 가진 무책임한 국가”이고, “스스로 더 깊은 무덤을 파고 있다”고 비난하며 “도발적 행동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미 관계의 이러한 극단적 악화는 단지 북한의 탓만이 아니라,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배타적 시각으로 그들을 대한 미국의 태도에도 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는 여러 전쟁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많은 분쟁의 계기를 제공하기도 하였다.이러한 미국의 본질을 누구보다 깊게 통찰하여 독자의 시야를 한 차원 더 넓혀주는 책이 있으니 바로 노암 촘스키의 ‘불량국가’이다. 노암 촘스키는 미국 대외정책의 부당성과 횡포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는 세계적인 학자로서 ‘세계의 양심’, ‘살아있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으로 대변된다. 이 책에서 촘스키는 세계 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는 미국의 이중성과 폭력성을 이라크 위기, 코소보 사태,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략, 콜롬비아 플랜, 쿠바 사태와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등을 들어 폭로하고, 세계에 유래 없는 초강대국 미국이 세계기구와 유엔의 결의안들과 국제법들을 얼마나 편의대로 무시하고 위반해 왔는지를 밝히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국제 질서 위에 군림, 정의를 스스로 붕괴시키는 미국이야말로 진정한 ‘불량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다.촘스키는 ‘불량국가’라는 의미를 첫째, 선별된 적국들에 대해 적용하는 프로파간다로서의 용법과 둘째, 스스로를 국제질서에 구속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국가들에 적용하는 용법, 이 두 가지로 정의하며 미국은 두 번째 의미의 불량국가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1999년 미국 국제법 학회 3월호의 “오늘날 국제법은 미국에서 금세기 어느 시기보다 무시당하고 있다.”라는 언급과, 딘 애치슨의 1963년 “미국의 힘, 지위, 특권에 대한 도전에 대응하는 것이 적절한 가의 여부는 국제법적 쟁점이 아니다.”(p.8)라는 주장, 그리고 레이건 행정부의 국무장관을 역임했던 슐츠의 “강력한 힘의 그림자가 협상 테이블에 드리워지지 않는다면 협상이란 용어는 그저 미사여구에 불과”하며 “국제사회의 역학 관계를 무시하고 유엔이나 국제사법재판소와 같은 중재 기관에 호소하는 유토피아적, 법률 주의적 수단을 옹호하는 사람은 어리석다.”(p.34)라는 발언이 명확히 뒷받침하고 있다.불량국가의 ‘기본적 개념은 냉전이 끝났지만 미국은 아직도 세계를 보호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소련이라는 주적이 붕괴하자 이라크, 리비아, 쿠바, 북한 등 불량국가들로 ‘악의 축’을 전환시키며 스스로를 비이성적인 국가로 묘사하는 닉슨의 ‘미치광이 이론(mad man theory)’를 부활시키고 있다.미국에게 있어 불량국가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수많은 시민들을 학살하던 당시에도 ‘사랑받는 미국의 친구이자 무역상의 파트너’였지만, 미국의 의지를 잘못 해석한 탓에 졸지에 ‘대량 파괴 무기를 사용한 끔찍한 범죄자’로 전락하게 되었고 이라크 역시 불량국가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상원의원 존 케리는 “사담 후세인이 계속해서 완고하게 유엔 결의안을 위반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위협이 된다”면, 유엔안보리가 어떤 판결을 내리든 상관없이 미국이 이라크를 확실하게 단죄하는 것이 “합법적”일 것이며 미국의 일방적 행동은 “국제법의 테두리 안에” 포함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p.29), 이는 ‘모든 국가가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규정한 안보리의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p.33)한 미국의 이중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 사람’에서 ‘불량국가’로 전락한 이라크의 경우를 통해 우리는 불량국가의 기준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불량국가는 단순히 범죄를 저지른 나라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다. 강대국의 명령을 거부한 나라이다.’(p.55)미국은 정의의 구현, 인도주의의 실현이라는 명목으로 제3세계에 개입, 이권을 챙기고 진보 ‘바이러스’를 진압한다. 이러한 성향은 1999년 세르비아의 인종 청소를 막고 동유럽의 안정과 정의의 회복을 꾀한다는 이른 바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코소보 사태에서 역시 나타난다. 강력한 무력으로 세르비아를 진압하려 했던 미국은 그들의 테러와 폭력이 더욱 극심해질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선언했으면서도 폭격을 감행했는데, 이는 국가안보 고문인 새뮤얼 버거의 주장처럼 “나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었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말처럼 “행동을 회피하는 것은 나토의 ‘신뢰성’을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폭력은 실패할지도 모르고 또 효과가 비록 일시적이지만 그 시도가 계속되는 이유는 폭력의 부산물이 가져다주는 무기의 생산, 판매의 증진이라는 이익 때문이었다. 촘스키는 ‘국가는 무기의 생산과 판매를 통해 수년 동안 첨단기술 경제 분야를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고, “폭력은 우리의 지도자들 뒤에서 미국인들을 통합시킨다.”고 강조하였다.(p.72)끔찍한 르완다식 학살을 자행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장군은 미국에게 ‘우리 사람’이라고 불리며 혹독한 IMF의 명령을 실행하지 못해 미국으로부터 은총을 잃고 “민주적 정권 이양”을 하기 전까지 전례가 없는 지원을 받으며 동티모르를 침략하였다. ‘이러한 만행이 마지막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자카르타의 한 고위 외교관은 “인도네시아는 중요하지만, 동티모르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아시아-태평양 정책연구소 소장인 더글라스 파알의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를 다루는 데 있어 도로 위에 불거져 나온 감속요철(speed bump)과 같은 것”이며 “인도네시아는 너무나 큰 나라이므로 주변 지역의 안정에 매우 종요하다.”는 말’(p.100)로 더 적나라하게 의도가 드러난다. 여기서 안정이란 말은 일반 국민들이 아닌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정되어지는 용어였다. 인도네시아 침공에 미국이 동티모르의 손을 들어주지 않은 것은 그들이 미국의 ‘이익’에 있어 인도네시아만큼의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이 잔학한 범죄의 희생자들을 돕기 위한 미세한 노력조차 하지 않았으며 이는 호주의 베테랑 외교관인 리처드 버틀러의 “동맹의 실상은 미국이 주로 그 자신의 이익과 위협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그에 비례하여 대응한다는 것”(p.110)이라는 언급에서 명확히 알 수 있다.최악의 인권 유린 기록을 갈아치운 콜롬비아는 한편으로는 미국의 군사원조를 가장 많이 받는 최대 수혜국이기도 하다. 촘스키는 ‘미국의 군사원조와 원조 수혜국에서의 인권 유린 사이에는 잘 확립되고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상호 연관성이 있다’(p.116)고 주장하며 미국 또한 콜롬비아의 준군사조직들이 세계적으로 극악무도한 세력임을 인식하고 있지만 테러 집단 리스트에 넣기엔 “법적 절차로서 매우 미묘한 문제”(p.117)라고 얼버무리는 미국의 이중성을 비판하고 있다. 미국이 이처럼 너무나 관용적으로 콜롬비아를 대하는 본질적 이유는 콜롬비아가 그들의 “경제 개혁과 남미의 경제적 통합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취하여 1991년 ‘신자유주의 개혁’을 단행, “경악할 만한 수준의 빈곤과 불평등”(p.120)을 가져온 대신 스스로 미국의 속국으로 변모했기 때문이었다.앞의 여러 국가와 달리 쿠바와 미국의 관계는 미국이 쿠바에게 4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공격해왔던 좀 독특한 관계라 할 수 있다. 또한, 1960년 ‘자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바이러스 같은 카스트로 사상’(p.154)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시도했던 아이젠하워 정부의 쿠바 전복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미국만이 고립적으로 취하고 있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이한데, 이러한 성향은 매우 광신적이어서 현재까지도 WTO 조항을 위반하면서까지-늘 법적 제재권을 거부해왔던 미국에 경우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경제제재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라틴아메리카의 과테말라 정부의 1944년 자체적으로 시도한 민주주의 실험은 아이젠하워 정부에 의해 종지부를 찍고 1954년 미국이 군사 쿠데타를 통해 수립한 정부가 등장, 지금까지 점점 더 광적으로 만행을 저지르면서 미국에 의해 강력하게 유지되어 왔다.’(p.159) 여기서 쿠데타란 ‘민주주의라는 바이러스를 전복시키고 파기할 수 있는 군사 쿠데타’(p.166)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미국 정부와 민간 기업들은 “과테말라의 고질적이고 불공정한 사회 경제적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압력을 가했고 또한 테러와 잔학 행위가 있는 곳에는 예외 없이 미국의 압력이 핵심에 있었다.
니시오카 나가오의 『국민이라는 괴물을 읽고』1부 1. 전후 50년과 어느 비국민의 중얼거림· 전쟁에 대한 반성과 행동 → 일본이라는 국가의 국민임을 그만두는 것· 국민국가론(국민국가 비판)- 국가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필연적이며 항상 국민을 끌어들임(전쟁 중에 ‘비국민’은 사회적 말살, 신체적인 죽음을 의미)- 전쟁의 책임을 진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가를 지탱하는 국민이기를 그만둔다는 것2. 1995년 8월의 환영, 혹은 ‘국민’이라는 괴물에 대하여· 국민화된 사람들, 즉 국민을 괴물로 표현- 국민화 : ‘문명화’의 형태를 띰. 학교와 군대, 공장, 종교, 문학 등 모든 제도와 국가장치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원리를 체현한 국민을 만듦ex)옴진리교 사건, ‘사죄’에 관한 문제3. ‘국가이성’에 관한 일고찰 - 바이츠제커 비판→ 나치즘의 유태인 학살도 국민의 범죄로 생각할 필요가 있음바이츠제커 강연의 요점· 독일역사에서의 나치즘의 예외성↔ 나치즘은 현재적 문제라 지적①국민국가의 일원인 ‘국민’인 독일인들 자신이 어느 정도 나치적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에 비로소 나치즘으로부터 탈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됨②나치즘은 국민국가에 내재하는 모순의 한 측면이 과격하게 표현된 것③현재도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민족 문제는 과거의 나치즘을 연상시키는 면이두드러짐 (②로 설명될 수 있음)· 조국애↔ 우리들의 조국애는 국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강제된 것이며, 국민이란 국가에 의해 조국애를 강요당하는 존재(조국애라는 이름으로 전쟁에서 국민을 살인자로 만드는 것은 바로 국민국가)· 국가이성↔ ‘독일은 세계의 신뢰를 얻었다’는 말에서의 신뢰는 역사적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님바이츠제커가 말하는 신뢰는 국가 공통의 룰, 즉 국가이성을 따르는 정치적인 의미4. 국민화와 시간병· 국민국가론의 동향과 의의- 80년대의 역사적 격동을 통해 국가가 숙명적 존재로부터 탈자연화→ 국민국가가 분석 개념으로 주목받기 시작- 변화하는 세계와 국가 속에서 변질되어가고 있는 국가를 바라보는 시각과 화된 다언어주의는 낡은 국가 이데올로기의 굴레로부터 해방되고, 비국민적인 문학을 재평가하게 됨과 동시에 국민적 문학에 숨겨져 있는 언어적·문화적 다양성을 재발견2부 1. 한자 문화권에서의 문화연구1) 유럽에서의 국민국가 형성과 문명·문화 개념· 문명과 문화 : 18세기 프랑스에서 生, 국민국가 형성시기 각국으로 전파· 문명은 상대적으로 선진국 ex) 프랑스 / 문화는 후발국에서 채택 ex) 독일→ 이후 문명과 문화 사이에 투쟁의 역사 / 프랑스의 르낭『국민이란 무엇인가』 독일의 피히테『독일국민에게 고함』은 문명과 문화를 국민개념과 결부시켜 강조.· 국민(nation) : 원래 의미는 공통 출생지 사람들을 의미→ 프랑스R 시기 유행하면서 현재 의 의미로 사용 → 일본에서 '국민'으로 번역 (출생지주의) /after 1880년 독일의 Volk개념이 유입→ '민족'이란 단어 등장 (혈통주의)2) 한자 문화권의 문명·문화 개념과 국민국가의 형성 (일본)· civilisation 의 번역어 선택에서 문명or 문화 중에 고민 → '문명'으로 채택· '문명개화'의 슬로건 유행 : 문명화된 국가로서 요구되는 상황/ 국민국가 형성 = 문명화'문명-반개-미개'의 척도를 도입→ 식민지용인 논리와 연결· '문화'의 등장 : 문명에 대한 반대로서 국수주의자 · 일본주의자 사이에서 등장,문화는 곧 '국민문화'라는 것 인식, 국민주의적 입장에서 문화를 이해 ex)구가 가츠난이러한 시선이 국내로 향하면서 제국주의 지지자로 변모: 일본 특유의 문화를 타국민에게 강요, 일본에 국한되는 국민주의3) 2-1부 맺으며 - 국민문화와 문화연구· 문화와 민족의 개념 : 교류와 변용의 상호관계 속에서 형성So, 순수하고 고유한 민족이나 문화의 개념은 존재X, 국민국가 시대가 만든 환상에 불과· 새로운 문화 연구를 위하여? 국민국가에 대해 밝히고 그 안에서의 문화 연구의 역할 고찰? 국민국가를 국제관계 속에서 위치 지움? 동태적 문화모델 구상 ex) 정태적 문화모델의 실패 : 문화 상대주의2. 국민국가와 국가 이데올로기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객관적으로 시대 변화를 관찰하려는 노력과 여기서 발견된 착취, 차별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세 필요3. 국민국가의 형성과 자유민권운동- 자유민권운동 : 입헌정체의 자립을 목적으로 메이지 전반기에 전개되었던 정치운동- 일본의 자유민권운동 연구 : 메이지 유신에 반대한 부르주아 혁명으로 보는 견해 → 근대 국가 성립과정에서의 대립과 경합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1)민권운동과 프랑스 혁명 연구· 프랑스 혁명 연구 상황 변화 : 대표적인 부르주아 시민혁명으로 인식했던 프랑스 정통파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바처럼 하부구조의 혁명이 아니었음이 실증적으로 밝혀지면서 혁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 시바타 미치오, 치즈카 다다미 : 부르주아 혁명설 취하, "문화혁명" 주장'문화혁명'의 전제조건- 지도층과 인민 대중의 동맹 성립 / 새로운 정치문화 창출→ 프랑스 R과 메이지 유신의 본질적 차이· 문제시하던 혁명 관점 변화(경제→정치→문화), 이 과정에서 민중문제와 정치문제가 부각민권연구에서도 동일한 방향성이 감지됨2) 반체제 운동은 왜 체제화 되는가 ―세계체제론적 관점에서· 국민국가 비교 연구에 관한 필자의 시각: 월러스틴의 세계체제(국가 간의 시스템)의 관점에서 민권 문제를 바라보고자- "반 시스템 운동만큼 모순된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why? 반체제운동은 진행되면서 체제화 되고 점차 국가 간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향이 됨)그렇다면 반체제 운동은 왜 체제화 되는가? 의 의문을 민권문제에 대입⇒ 자유민권운동은 왜 국권, 네셔널리즘에 사로잡히는가?- "우리들은 개별국가의 발전을 희구해서는 안 된다. 이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덫이다. 그러 므로 시스템 전체의 변혁을 희구해야한다"·야스마루 : 민권운동의 새로운 동향 제시,- 근대 민족국가 형성의 동력 :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매개로 사람들의 능동성과 활력 동원 (이것을 '민권=국권'형 정치사상이라고 함)- 자유민권운동은 언론수단을 통해 실현, 신문·연설 등을 통해 정치적 공공성 창출200주년은 한 시대의 끝과 다음 시대의 시작을 이어주는 마디⇒ 그러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온 국가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 국민국가를 이같은 결말로 이끌게 된 원인이 대혁명 속에 어떻게 내포되어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 저자는 프랑스 혁명 200주년에서 소멸이 아닌 가능성을 봄2) 몬트리올, 미래도시의 꿈캐나다의 작은 프랑스, 퀘벡주· 1543년 자크 카르티에 일행이 퀘벡주 카스페 반도에 도착했고, 프랑스인의 입식은 17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 → 북미 식민지를 둘러싼 영·프간의 항쟁, 영국의 승리 → 퀘벡주와 프랑스 본국의 교류가 단절, 프랑스의 옛 문화가 고립된 형태로 남게됨흰 흑인· 퀘백의 프랑스계 20~30대 주민들: 1960년대의 ‘조용한 혁명’,퀘벡 독립운동의 여파 속에 살고 있는 반미·반프랑스 내셔널리스트 (그들의 아버지는 농민 혹은 노동자)?영미계의 자본, 프랑스계의 교회와 영주들의 오랜 압제를 끊은 후 처음으로 자유스러운 세대· 굴욕의 기억: 농민인 아버지가 백화점에서 프랑스어로 주문했을 때, 판매원이 ‘백인의 말을 사용하세요’라고 심한 질책· 백인 속 제3세계 체험과 흰 흑인의 굴욕적 경험을 통해 다문화주의 실현가능성을 엿봄· 내셔널리즘과 문화적 다원주의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국민이라는 아이덴터티를 파괴해야함· 이를 통해 에스니시티가 네셔널리즘을 대체할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음3) 일본 회귀와 네오 내셔널리즘일본 회귀· 일본은 구화주의(歐化主義)와 일본회귀의 상극과 긴장관계가 계속 해서 반복· 구화의 시대 후에는 그 반동으로 내셔널리즘과 일본회귀를 수반네오 네셔널리즘· 개인생활의 쾌락·안전이라는 대중사회 상황의 이데올로기와 일본회귀의 결합2. 일본에서의 프랑스 혁명: 전후 역사학에서의 국민국가와 그 이데올로기 문제를 중심으로프랑스 혁명이 일본에 끼친 영향· 일본 역사에서 프랑스 혁명에 관심을 가지는 시기는 국민국가 재편성이 문제되었던 시기- 메이지유신 후 : 1889년 메이지 헌법과 천황제 / 전후시대: 1946 onal'이 붙여짐 :국민의회(Assemblee nationale), 국민기장(cocarde nationale), 국경일(fete nationale)②국민공회시기 (왕의 체포로 공화정이 선포 후~몽테뉴파의 독재에서 테르미도르 반동)- 1793년 1월 21일 왕의 처형은 새로운 국민(Nation)의 탄생을 결정적으로 각인시킨 의식- 대내(방데의 난)·대외전쟁의 위기로 애국심이 고양되고, 그것이 배타적 내셔널리즘으로 전화되는 양상- 세계 최초로 징병제가 실시되며 근대적 군대의 원형이 확립- 문화혁명 : 언어의 통일, 공교육에 관한 시안과 법령이 공포·시행, 이공과학교, 도량형의 통일(미터법), 루브르 미술관의 개관, 혁명력의 채용, 비그리스도 교화운동(호적 세속화법, 이성의 제전, 최고 존재의 제전)- 왕과 왕비의 처형(1793.10.16)이 가지는 의미 차이: 왕의 처형=열린 혁명의 정점, 왕비의 처형=닫힌 혁명으로의 전환 ←왕비의 처형은 여성과 외국인의 배제를 의미③나폴레옹 독재시대- 프랑스 혁명이 갖고 있던 다양한 가능성, 혹은 'Nation'이라는 말에 남겨 있던 다양한 내용이 국가(Etat)개념, 혹은 국가라는 용기 속으로 정리·회수-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국민국가를 확립하고 국민통합을 결정적인 단계로까지 진행2) 국민통합의 이데올로기_ 천황제와 국가종교· 메이지유신과 프랑스 혁명의 유사점- 근대 국민국가 형성을 위한 충족 항목: 헌법, 의회, 중앙 집권적 통치기구, 징병제와 군대, 교육제도, 박물관, 역(曆), 화폐 및 도량형의 통일, 언어의 통일- 폐불훼석(廢?毁釋)과 비그리스도교 운동: 성물파괴의 공통점- 프랑스 혁명의 ‘호적 세속화법’과 메이지 유신의‘호적법[壬申戶籍]’: 교회(교회부)와 절(宗門改帳)의 관리에서 국가에 의한 관리로 이행- 새로운 국민국가 형성에는 국민통합의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수 불가결→ 국민국가 공통적인 이론 속에서 해석: 메이지유신과 프랑스 혁명 사이에 유사점이 나타나는 것은, 프랑스 혁명이 영국과 미국 혁명보다 늦은 제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