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의 현지화 전략은 각 나라에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느냐를 판가름 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이다. 도브 또한 이러한 현지화 전략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현지화 전략에 너무 많은 힘을 쏟은 까닭에 경영성과가 저하되는 현상을 겪게 되었다. 가장 일상적인 제품들에 대해서 조차 지나치게 다양한 패키징과 마케팅 방법을 진행하고, 비슷한 문화를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성분의 제품을 개발하는 등 사업 수행에 있어서 복잡성이 증가하였다.이러한 성과를 거두고 나서 유니레버는 글로벌 통합을 강조하는 기업으로 탈바꿈하였다. 세계 시장이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점점 더 단일화 되가는 상황 속에서 진행된 도브의 글로벌화 전략은 성공적일 수 있었다. 도브는 이러한 유니레버의현지화 전략으로부터 변화하는 선두자 역할이었다. 도브는 단지 다른시장에서 다른 방식으로 판매되는 비누의 상표에서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신을 매일매일 더 아름답다고 느끼고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고취시키는 브랜드로 변화하였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광고였다. 도브의 광고의 바탕은 전세계의 여성 중 단 2%만이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반은 자신이 너무 뚱뚱하다고 생각한다는 리서치에 기초해있다.“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슬로건을 토대로 하여 도브는 몸이 마른 전문 모델들을 광고에 이용하지 않고 평범하고 다양한 외모, 체형, 연령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광고를 만들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공감을 끌어낸 광고는 그 파급효과가 무척 컸고, 도브는 그 여세를 몰아 2004년에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위한 도브 캠페인”을 전세계적으로 시작하였다. 이러한 캠페인은 각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어느 정도의 현지화 전략은 가미되면서 그 효과는 더욱 커졌다.캐나다와 미국에서 도브의 캠페인이 대중적 인기를 끌자 그 기회를 잡아 유니레버는도브의 제품라인을 피부크림, 샴푸, 샤워용 젤로 확대할 수 있었다. 단일 브랜드 단일 제품의 도브에서 이제 도브라는 브랜드 안에 “진정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게 해주는 여러 제품을 출시한 것이다. 이후에도 도브는“자부심 펀드”라는 캠페인을 계속적으로 진행하였으며, 온라인 동영상을 이용해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인 마케팅을 실시하였다.유니레버는 도브를브랜딩 할 때에 제품의 타겟층이 세계적으로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가치를 잡아내어 글로벌화에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계속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세계의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고, 정치적 캠페인이라고 까지 평가 되는 사회적 이슈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도브
스카이팀의 시작은 델타항공과 에어프랑스의 전략적 제휴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 아에로멕시코와 대한항공이 참여하게 되면서 2000년에 발족된 항공운송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이다. 아에로멕시코와 대한항공의 참여에 뒤이어 2001년에는 체코항공과 알이탈리아도회원사가 되어 현재는 총 6개의 회원사로 구성되어 있다. 스카이팀은 여객 부문에서 기존에 존재하던 얼라이언스, 원월드와는 다르게 화물 부문에서도 회원사 간에 글로벌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알아 볼 수 있다. 또한 대서양과 태평양 노선 모두에서 반독점면제를 승인 받은 유일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판매와 마케팅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을 개발하고 상호간 협정을 확장할 수 있었다. 또한 스카이팀은 글로벌 네트워크의 비젼 및 목표를 추진하기 위하여 조직구조를 세 구조로 나누었는데, 각 사의 최고경영층으로 구성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집행위원회, 이 집행위원회의 지시를 수행하고 정책과 절차를 결정하며 활동을 지도 감독하는 ASC, 실제 현장업무를 책임지며 과제를 수행하는 Working group으로 되어있다.스카이팀은 다른 네트워크들과는 다르게 단지 외형의 확대보다 후발진입자들이 선발진입자를 따라잡도록 시스템 통합을 통하여 회원사들이 실질적으로 하나의 항공사처럼 운영하여 외부환경에 빠르게 대처하는 네트워크의 질을 중요시 하고 있다. 미국 내 3, 4, 5위의 항공사와 유럽의 KLM이 스카이팀에 합류할 전망으로 스카이팀은 얼라이언스 네트워크와 대등한 위치에 서게될 것으로 보인다.De la sierra는 전략적 제휴에 있어서 제휴당사자간의 양립가능성, 능력, 몰입 이 세가지가 전략적 제휴 성공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 하였다. 제휴당사자간의 양립가능성은 전략적제휴가 직역적, 기술적, 제품별 중복이 없을수록 성공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스카이팀의 경우에는 항공운송산업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3대 시장인 북미, 유럽, 아시아에 걸쳐 제휴를 형성하였기 때문에 다양한 지역적 분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네트워크 제휴사간 시장의 중복을 피하고, 취약한 시장에 대한 네트워크를 상호 보완하여 주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능력 이라는 것은 강한 기업간의 제휴가 강자와 약자간의 제휴보다 그 성과가 더 높다는 것이다. 쌍방이 건실할 때 성공확률을 67%인 반면에 둘다 약할 경우에는 3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스카이팀의 경우를 살펴보면 스카이팀의 회원사 들은 아에로멕시코를 제외하고는 모두 각 대륙내에서 3위안에 드는 항공사들이다. 지역시장을 주도하며 선도하는 위치에 있는 항공사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스카이팀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강한 기업들이 파트너 기업들의 약점들을 보완해 줌으로써 네트워크의 핵심역량을 보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몰입 이라는 것은 제휴파트너들의 지분율이 동등할 때가 불균등할 때의 제휴보다 더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스카이팀은회원사끼리 상호간 수평적관계를 가지고 있고 규모와 능력에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 각항공사 경영층, 담당중역, 실무자들이 사무국을 구성하고 정기적 모임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등 스카이팀의 구조는 매우 합리적이다.스카이팀
스타벅스의 시초는 프리미엄 로스트 커피를 파는 단일 점포에서 시작되었다. 마케팅 담당이사가 이탈리아의 커피하우스에 착안하여 현재와 같은 비즈니스 방식의 스타벅스를 재탄생 시킨 것이다. 미국 내에서 점포를 늘려가기 시작한 스타벅스의 전략은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맛좋고 신선한 커피와 빵, 커피관련 액세서리 등과 같은 제품들을 함께 파는 복합적인 공간으로의 스타벅스이고, 둘째는 종업원들의 자발적인 최상의 고객서비스로 종업원의 채용과 교육에 많은 노력을 했다.미국 내에서 성공을 거둔 스타벅스는 해외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스타벅스의 해외 진출 형태를 전체적으로 보자면 합작투자가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타벅스는 북미에서 프랜차이즈 전략을 하지 않고 본사가 모든 점포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직영점 형태를 띠었다. 첫 해외 진출의 대상이었던 일본에서는 초기에 프랜차이즈 형태로 나갔지만 결국 일본 현지 회사와의 합작투자로 스타벅스를 확장해 나갔다. 또한 운영방식을 전수하기 위해 미국의 직원들을 일본으로 파견 하였으며, 미국의 종업원들과 같은 교육 내용을 수료하고 전 종업원들을 위한 스톡옵션제도 또한 도입하였다.일본 진출 후 영국의 시애틀 커피를 인수하고, 대만, 중국, 싱가포르 태국, 한국 등 아시아 쪽의 여러나라에 진출하였다. 스타벅스는 아시아의 국가들에게 상표와 영업방식 라이선스, 계약 수수료, 로열티 등을 수취하는 경영 전략을 시행하였지만 이것들 만으로는 스타벅스의 경영방식을 해외시장에 이전시키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진출한 태국에서는 5년내에 20개의 점포를 열지 못하자 스타벅스는 계약을 맺었던 이 회사를 인수하여 태국 내의 스타벅스 경영에 보다 강력한 지배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렇게 스타벅스는 몇 개의 프렌차이즈 점포를 합작투자회사, 완전소유자회사로 전환하였다.아시아 시장에 진출 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스타벅스는 유럽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첫번째로 진출을 시도한 국가는 스위스로 역시 합작투자를 통해 점포를 열었으며 다른 여러 유럽 국가들에도 합작투자를 통하여 진출하였다.스타벅스의 해외직접투자 형태를 보면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합작투자의 형태가 두드러진다. 위험을 줄이면서 자사의 경영 방식을 해외 시장에 좀 더 수월하게 적용시키려는 의도에서 그런 것 이다. 스타벅스가 진출한 국가마다 합작투자의 지분을 보면 더 많이 가진 국가도 있고, 같은 지분 그리고 더 적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지분에 상관없이 경영방식을 라이센싱 하는 것은 공통된 점으로 스타벅스의 성공은 스타벅스 특유의 경영 방식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스타벅스의 해외직접투자
/ 그들의 종전은 언제인가?한국전쟁, 나는 6.25 전쟁으로 더 잘 알고 있었다. 초, 중, 고등학교 시절 매년 6월이 되면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한국전쟁을 주제로 백일장이 벌어지곤 했다. 나는 그 당시 또래보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여 자주 상을 타곤 하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뭘 알고 썼나 싶다. 그때 당시 한국전쟁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북한이 새벽을 틈타 남침했다는 것, 남북한 할 것 없이 수많은 군인들이 희생 되었으며 부산까지 점령당한 후 미국의 도움으로 점차 위로 올라가게 되고 휴전 협정으로 지금의 38선이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마을로 간 한국전쟁’에서도 첫머리에서 언급 되었듯이 나는 또 대다수의 내 또래 학생들은 한국전쟁에 대한 거시적인 사실들 만을 알고 있는 것이 사실 일 것이다. 그도 그런 것이 한국전쟁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모두 군복을 입은 군인들만이 나오며 그들의 죽음으로 그려지는 안타까운 삶만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중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인데, 여기서 등장하는 주인공의 부인은 남편을 전쟁터로 떠나 보냈다. 그 후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하게 되었고, 삶이 궁핍하였던 부인은 인민군이 마을 사람들에게 배분한 음식을 받았다. 남한이 다시 서울을 수복한 후 이것이 화근이 되어 좌우익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순진한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전쟁이 남긴 내부적인 좌우익 사상의 아픔은 여기까지였다. 나 또한 ‘마을로 간 한국전쟁’과 ‘할매꽃’을 보기 전까지 과거와 마찬가지로 한국전쟁 이라 하면 남북한, 총, 군인, 피난민 등의 단어들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나는 책을 먼저 읽고 난 후 영화를 보았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몰랐었던 새로운 사실들에 대해 놀랍기도 하고, 이런 사례들을 일일이 다 조사하며, 특히 직접 발로 뛰어 그 시대를 겪으셨던 분들을 설득하여 인터뷰를 했다는 것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아직도 과거를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초반에 등장하는 이념으로 인한 ‘피해자’인 것이다.상대, 중대 동네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좌익 사상이 지배적 이었으며, 풍동 동네는 100년전 세워진 교회의 영향으로 우익 사상이 자리잡았다. 책에서 양반마을과 평민마을의 충돌의 사례로 소개 된 부여군의 두 동족마을과는 다르게 반촌에 좌익사상이, 민촌에 우익사상이 자리 잡았지만 그들의 갈등이 계급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에서 유사함을 느낄 수 있다.다큐멘터리에서 각 마을의 인터뷰를 보게 되면 서로의 잔인함을 말하고 있다. 풍동 마을의 사람들은 인민군을 적대시하거나 경찰과 그의 가족들을 대창으로 찔러 죽였다고 하였으며, 상대와 중대 마을 사람들은 우익 쪽의 사람들이 집을 불지르고 인민군에게 밥을 지어준 사람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고 하였다. 이렇게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진 세 마을은 서로가 당했던 ‘피해’만을 기억하며 오늘날까지도 그 적대감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을 그들의 표정과 말투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내가 조금 답답한 마음으로 보게 된 것은 상대, 중대마을 사람들이 풍동 마을에 대하여 말할 때 ‘과거에 가마를 들고 다녔다, 어깨도 제대로 못피고 걸어다녔다,지금까지도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라며 아직도 계급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풍동 마을을 천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풍동 마을 사람들도 상대, 중대 마을에 대한 피해의식이 굉장히 컸고, 과거 그들의 양반답지 못했던 행동들과 현재 출세한 자손들의 이야기를 하며 깎아 내리기 바빴다. 물론 다른 시대를 살아오셨고, 그 시대를 직접 겪었던 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계급화 되어 있는 생각들이 아직도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직접 그런 것들을 이야기 하는 모습이 처음이기에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사실 계급화적인 이런 태도들이 지금까지 강하게 남아있는 것은 그들의 고정관념이나 태도를 변화하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런 의식들이 한국전쟁 때문에 생겨 난 깊은 갈등 때문에 더 고착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어서 다큐멘터리는 제작자의 여러 가족사의동을 했던 사람들이 자수를 하여도 우리 사회에서 자리 잡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수한 후에 당한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갈 곳이 없어진 상황에서 그 화를 어느 곳에도 풀 곳이 없자 자신의 가족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픔은 번지고 번져 자신이 가장 사랑해야 할 가족들에게 미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자수를 하고,구명운동을 하기 위해 재산인 전답을 다 팔고 난 뒤에 제작자의 외할머니가 새벽에 전답을맨발로 돌아다녔다는 것에서 그 억울함과 슬픔이 느껴졌다.책에서도 읽었듯이 가장 잔인하게 느껴진 것이 연좌제이다. 그 당시 연좌제라 하면 좌익, 우익활동을 한 사람들의 가족과 친인척까지 모두 목숨을 빼앗거나 마을에서 추방하는 것 이었는데, 그것이 현대에 와서는 모습은 다르지만 여전히 그들을 ‘사회’에서 옭아매고 있다. 교직을 박탈당하고, 회사에서의 신원조회는 물론이며결혼에서 까지도 그 영향이 미쳤다. 이렇게 그들의 삶에서 연좌제의 굴레는 아직도 벗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이런 연좌제가 6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 사이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의견이 나뉘는 것을 보았다. 어떤 이야기를 함으로써 또 그로 인한 피해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에게 과거 가족의 좌익활동은 지금까지도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내가 ‘할매꽃’의 가족사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일본으로 갔던 제작자의 외할머니의 남동생의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외할머니의 오빠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여 그 가족들이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 남동생은 일본으로 떠났지만 귀국을 준비하던 중 자신의 형의 총살소식을 듣고 귀국을 포기하며 동경에서 조총련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던 중 박정희 정권시절 대대적인 체제홍보를 하기 위해 조총련 재일동포들의 한국 방문을 추진했고, 이 때 제작자의 외할머니의 남동생도 입국하였다. 하지만 그는 조총련 간부로 동경 지부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고정을 맺은 그날 끝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전쟁은 아직까지도 우리주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그 갈등의 끝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제작자의 가족사를 하나하나 들여다보게 되면서 어떤 사건들의 중심 인물은 있지만 사실 그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중심 인물뿐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특히 가족이라는 끈에 묶여있는 사람들의 고통은 짐작하기 힘들었다. 최초의 원인, 그것에서 모든 것들이 가지를 쳐 나가게 되고 나비효과처럼 엄청난 파장들이 생기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갈등과 슬픔의 최초의 원인은 무엇일까? 한국전쟁? 아니면 신분제도? 이념갈등? 어느 것이 먼저라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한 시대에 공존했기 때문에 붉어진 비극. 그리고 이 비극들은 우리 삶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죽고, 고통 받은 일들의 아주 가까이에 서있던 제작자 조차도 다큐멘터리를 시작하며 그 진상을 알게 되었다는 것에서 사건의 당사자들이 과거의 일을 피해의식에 묻혀 쉬쉬하고 두려움에 묻어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또한 끝부분에 제작자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터뷰 장면에서 나는 조금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제작자는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우리 사회는 절대 민주적인 사회가 될 수 없으며, 제도가 개인의 양심과 사상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의 어머니 또한 국가보안법 폐지를 찬성하였는데 내 입장에서는 적절한 안보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느껴져 마음이 불편해졌다. 사실 국가보안법의 적용이 굉장히 불분명하고, 위헌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만 나는 그 법을 실행하는 측면을 보기보다는 그런 법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이념으로 갈라진 휴전국으로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작자의 어머니께서 하신 북한과 김정일에 대한 발언 ‘국민을 더 잘살게 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는 자존심이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들은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을 때 마음속으로 잘했다라고 자행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다큐멘터리는 그 시대를 그리고 지금을 좌익활동을 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마을로 간 한국전쟁’ 책을 읽은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기대하고 보았기 때문에 양쪽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어떤 특정 인물들이 ‘피해자’가 된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있지만 그 또한 피해자이고, 피해자는 있지만 그 또한 가해자였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다큐멘터리를 봤기 때문에 활자로만 읽었던 그 시대의 아픔과 현재까지도 내려오는 마을 간의, 사람간의 갈등을 직접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들의 표정을 보며 나에게와 닿을 수 있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내가 어릴 적 자주 가던 시골과 비슷했고,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나의 이모와 할머니, 할아버지와 비슷하였다. 어딘가 정말 존재하는, 그리고 아직도 과거의일을 가지고 적대감으로 서로를 대하는 마을간,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실제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시대의 어른으로 살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것이 대대로 내려와 그 자손들에게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 또한 느껴졌다. 계급과 이념이 뒤섞여 뿌리 깊게 내린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그것의 가지들에게까지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자손들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었다.또한 그 사람들의 실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과거에 대한 어떤 생각 때문에 지금 어떠한 태도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보면서 정말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에서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고, 그들을 변화시켰다는 사실이,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에게 한국전쟁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전혀 없는 나로서는 굉장히 놀라웠다.나는 죽음과 그로 인한 증오, 갈등의 겉잡을 수 없는 불의 ‘작은 불씨’는 신분제도는 없어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에는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계급의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작은 불씨의 입김은 한국전쟁이었으며, 불을 타오르게.
인도는 아직 사회주의적 지배체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국가 전반에 대한 통제와 개입도 매우 강하였기 때문에 100% 지분 투자로 인도 시장에 직접 진출하려 하는 현대자동차에게 계속해서 합작투자를 제안했다. 인도는 내부 산업에 대한 보호와 인도인들의 국가적 자부심이 강했으며 그만큼 외국 기업에 대한 불신이 컸다. 따라서 현대자동차는 인도인들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인도 진출을 시작하였다. 다른 외국 자동차 회사들이 자사의 기존 모델을 그대로 인도에 들여오는 것과는 달리 현대자동차는 인도인들을 위한 신차를 개발하였으며 부픔 업체도 인도에 세우고 인도에서 직접 완제품을 생산하였다. 단순한 판매시장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특성과 문화를 이해하는 것에서 현대자동차의 차별화를 엿볼 수 있다.인도 시장은 주요 산업이 대부분 국유화되어 있고, 정부의 통제가 많으며 정부는 산업의 자국화 정책을 강력히 시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도는 내부적으로는 대규모의 중산층을 가졌고, 외부적으로는 서남아시아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또한 저렴한 노동력과 풍부한 천연자원은 인도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할 만한 이유들이다. 또한 인도 시장 내에서 한국 제품은 품질 대비 가격경쟁력에서 우수하며 국내 가전제품의 성공적인 인도진출로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인도는 점차적으로 정부의 규제를 완화하면서 자동차 시장에 자유화가 가속되었다. 현대자동차가 인도에 진출할 당시 인도 정부와 일본 스즈키가 합작하여 설립한 마루티가 98년에 80%가 넘는 점유율로 독점적인 시장 지배 형태를 가지고 있었고, 공급 부족의 판매자 중심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마루티와의 경쟁에서의 승리가 곧 시장 주도권과 확보된다는 생각으로 마루티의 단점을 보완한 상트로를 출시했다. 상트로는 저가 정책으로 volume car 로 내세워 마루티보다 5% 정도 싼 가격을 책정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루티 이상의 마진을 확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품의 현지화를 통해 단가를 낮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현대자동차는 상트로를 통해 상승한 현대의 인지도와 고객충성도를 바탕으로 수익성 보강을 목표로 한 액센트를 출시하였다. 가격 설정에서도 경쟁 상대인 마루티의이스팀보다 같거나, 약간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조금 높은 가격이라도 기능과 품질면에서액센트가 훨씬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에 총력을 기울였다. 또한 그 후에 중형급의 차량을 소유하고 있으나 보다 상위 수준 차량의 구매를 원하는 소비자층, 그리고 최고급 이상의 차를 소유하고 있으나 그와 비슷한 수준의 차를 한 대 더 장만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소비자 층을 대상으로 하여 소나타를 출시하였다. 고급차들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저가를 유지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마케팅 노력을 많이 하였다.이렇게 현대자동차는 인도 시장에서 현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존심이 강한 인도인들에 맞춰 소비자 지향적 접근을 하였으며, 기후, 운행습관, 도로상황, 승차형태, 고유의 디자인 등의 현지지향적 접근을 하였다. 이러한 그들에게 맞는 전략을 통해 인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현대자동차의 인도 진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