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川) 이병연(李秉淵)Ⅰ. 서론1. 경화사족18세기에 오면 전대의 사대부와는 다른 생활 반경과 의식을 가진 시조 창작층이 사족 계층에서도 등장한다. 그들은 계층적 면에서 경화사족으로 구분되고 그들의 작품은 주로 서울의 문화적 산물인 가집에서 나타난다. 경화사족은 17세기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18세기에 오면 지방의 재지 향유들과는 구분되는 자의식을 갖게 된다. 정치적 의미에서 출발한 경화사족들은 곧 문화적인면에서도 향촌과는 뚜렷하게 다른 학문, 사상적 경향과 문화적 분위기를 서울과 근기 지역에서 형성하기 시작한다. 경화사족은 교육과 학문적 성장 과정이 향촌 사족이나 전대의 사대부들과는 달랐다. 이들은 쇠미의 기로에 놓였던 산림 유학자로부터 전통 주자학풍을 계승하기보다는 이제는 겨화사족적 처지를 갖게 된 서울과 그 부근의 학자를 찾아 수업하거나 가내에서 기초를 닦고 가학을 계승하는 것을 일반화시켜 가고 있었다. 경화자속의 학문적, 사상적 경향성은 서울 지역에 거주하며 시조 창작 활동을 벌였던 사대부 시조 작가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시조 작가들은 일반적으로 당색으로 볼 때 노론에 해당한다. 노론계의 작가들은 송시열로부터 비롯되는 산림처사적인 학통에서 벗어나서 주롷 낙론계의 학맥과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리고 이 학샘에서 가장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농암(農巖) 김창협(李秉淵)과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형제가 서울 학계의 구심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농암과 삼연의 문하에서는 많은 시조 작가들이 그 문도로서 있었거나 아니면 다른 학통 관계에 있더라도 서로 교유하고 있었다.)2. 사천(?川) 이병연(李秉淵) 생애이병연은 1671년에 태어나 1751년에 돌아갔다. 자는 일원(一源). 호는 사천(?川) 또는 백악하(白嶽下), 악하(嶽下), 백하(白下))를 사용하였다. 사천을 제외한 다른 호는 그가 서울의 백악 아래에 살았음을 말해준다. 그에게 백악이 주거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지녔음을 뜻한다. 사천은 관직생활을 오래 하지는 않았다. 그는 1699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으나 문과는 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 지방의 수령을 주로 역임하면서 그는 주목할 만한 많은 시를 남겼다. 사천은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으로부터 시를 배웠다. 삼연은 과거 시문의 병폐를 혁신하고 새로운 시를 창작하자는 기치를 올림으로써 당시 시단에 신풍조를 열고 있었다. 농암(農巖) 김창협(李秉淵)과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형제의 문하에 많은 동료, 제자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문예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구성원의 대부분이 노론이었던 이들은 인간관계에서 절친한 친분관계를 유지한 동일집단으로서 창작의 정신도 공유하였다.시의 화신인 사천은 다작의 시인이었다. 사천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새벽에 일어나 율시 몇 수를 지었다고 할 정도로 창작을 생활화 하였다. 80세를 살아 장수하면서 그는 많은 시를 지었는데 그가 남긴 시가 1만 3천 수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시집은 겨우 두 종류의 조촐한 선집이 간행되었을 뿐 제대로 간행되지 못하는 불행을 겪었다.사천의 시는 평이하고 자연스러운 시상의 전개가 특징이고 한편의 시를 쓰는데 많은 노력을 경주하기도 하였지만 시를 많이 지어봄으로써 시에 대한 솜씨를 향상시키고자 하였다. )Ⅱ. 본론1. 이병연 시의 창작방법과 미학)사천은 17세기 후반기에 젊은 시절을 보내고 인생의 대부분을 18세기 전기에서 보냈다. 17세기는 왜란과 호란이라는 국난을 극복하고 민족적 굴욕을 회복하는 것을 시대의 사명으로 여긴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가 문학에 끼친 영향은 엄청난 것으로 그것이 산문에서는 의협심을 숭상하는 사조로, 시에서는 비장미와 격정을 중시하는 낭만적 풍조로 나타났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전기의 조선사회는 전란의 상흔을 극복하고 사회적 안정을 회복하였으며,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회복되어 안정을 구가하였다. 이런 분위기하에 경화사족은 새로운 문화를 생성시킬 수 있는 역량을 키웠다.사천은 이와 같이 안정된 사회의 선택받은 계층에서 태어나 17세기의 위기감과 울분, 흥분과 격정을 가라앉히고 경화사족의 미의식을 담은 시를 창작해 내였다. 사천이 시를 통해 드러내려고 했던 미의식을 세 가지로 정리하여 보고자 한다.1) 일상적 소재의 진솔한 표현사천의 시집을 들춰보면 그의 시에는 의고제(擬古題)가 한 수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옛사람의 시에 구애받지 않고 눈에 뜨인 주변의 사물을 직접 대면하려 했던 것이다. 그가 직접 경험하고 보고 느낀 내용을 시로 씀으로써 사천은 17세기 시단의 한 병폐라고 평가되는 조작된 감정이나 허황된 소재의 남발로부터 벗어난 동시에 18세기 조선 사회와 자연풍광, 인간 풍정을 자기가 본 그대로 그려내는 기본적인 조건을 만들 수 있었다.화원(花園)제 2수,『시초』, 권상 장 33林雀蹴仍墜 숲의 새 새끼는 앉으려다 떨어지고池魚吹却還 못의 물고기는 뻐끔하다 들어가네落花無個力 지는 꽃 아무런 힘 없이顚倒魚鳥間 고기와 새 사이에 뒹구네이 시에서는 소재에서 특이함을 발견하기 어렵다. 일상사의 구체적 사건에서 소재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하지 않은 사소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시를 한편 한편 읽어 보면 어떤 메시지가 있다. 일상의 작은 사건을 아무 작위가 없는 자연스러운 그 상태대로 독자에게 전하려고 하는 시인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무작위의 정신이 담긴 시를 사천의 독특한 시세계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감정을 굳이 담으려하지 않고 사소한 것들을 의미있게 다루는 것, 그리고 작가의 목소리를 먼저 찾지 않고 묘사한 대상의 움직임이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 사천의 시인적 역량이 드러나는 부분이다.시덕노요수(示德老要酬) 제 2수 )『시초』, 권하喫?休沽酒 밥이나 먹고 술을 받아오지 말 것이며論文不賦詩 글이나 논하고 시를 짓지는 말아야지玆爲眞率會 이것이 진솔한 모임이니何用簡書期 편지 보내 청할 필요 어디 있나燕子數三語 제비는 몇 바디 말을 건네고杏花高下枝 살구꽃은 높고 낮은 가지에 피어있네深深春自別 봄날은 깊어갈수록 나날이 좋아지네只恐俗人知 속인들이 알까봐 그게 걱정이네친구들이 찾아와도 애써 예의 염치 꾸미지 않고 평소 살던 대로 지내고 싶다는 작자의 소망이 그려져 있다. 그것을 진솔한 모임이라는 말로 간명하게 요약하였다. 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생활모습을 시로 얾기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시가 정서적 면에서 차분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강렬한 감정이나 긴장미 넘치는 사연이 엇는 대신 차분하고 넉넉한 여유, 절제된 감흥이 있다.2) 산수경물과 사물의 자연스러운 묘사사천은 우리의 자연과 풍경을 그리되 그에 대한 과장이나 상상을 통해 허상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사천은 그것을 상식적 차원에서 관찰하고 자연스럽게 묘사하려고 했다. 그는 여러곳을 탐방하여 그곳의 아름다운 산수나 민심, 풍물등을 소재로 한 시를 많이 남겼다. 다른 말로 하면 실경산수를 시의 소재로 삼은 시를 지었다. 이와 같은 조선의 산수탐방과 그를 소재로 한 사실적인 시의 창작은 정선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와 늘 비교되어 진경시로 칭해질 정도였다.곡운잡영(谷雲雜詠)『시초』, 권상 장 43峽口初霜木葉飛 골짜기에 첫서리 내려 나뭇잎 날리는데山田平處有柴扉 산골밭 너른 곳에 사립문이 나타나네隔屋五更人逐虎 이웃집에 오경 넘어 법을 쫒아간 사람은直過深壑奪牛歸 깊은 골짜기를 내질러 소를 뺏아 돌아왔다지남에게서 들은 산골마을의 한 사건을 적음으로써 독자에게 실감을 전해준다. 이러한 그의 여타 다른시들은 모두 자연과 어울려 사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실제 존재하는 경물을 묘사했을 뿐 상상이나 연상에 의해 변형을 가하지 않았다.3) 호쾌한 멋과 시원스러움시 사조의 큰 변화가 발생했다 해도 17세기적 정서가 일시에 완전하게 탈바꿈된 것은 아니었다. 김창협이나 김창흡에게서도 그러한 정서가 일정하게 표현되고 있다. 다만 그러한 변화는 과동한 격정을 자제하면서도 근거가 있는 호쾌하고 웅장한 시의 창작으로 나타났다. 조선의 웅장한 산천, 특히 북관 등지의 장대한 국토산하를 예찬한 시에서 그러한 정서의 표출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소재의 개발과 정서의 표출은 조선의 산하에 대한 새로은 안목의 개척이라고 할 만하다. 사천은 주로 청장년 시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품에서 호쾌한 기분의 정서를 표현하였다.
형암(炯菴) 이덕무《목 차》Ⅰ. 이덕무의 시문학 배경1. 이덕무의 생애2.학문의 성격Ⅱ. 백탑(白塔)시파1. 시파의 형성과 이덕무의 활동2. 시파의 발전과 쇠퇴Ⅲ. 문예이론의 양상과 의미1.의고(擬古)와 창신(?新)의 통합2. 진심(眞心)과 진상(眞象)의 강조Ⅳ. 작품 내용의 실질1.순수자아의 추구2. 이우보인(以友輔仁)의 실천3.농촌과 생활문화의 진실 탐구가. 농촌 실경을 통한 이상향의 발견나.생활문화에 대한 가치인식Ⅴ. 결론Ⅰ. 이덕무의 시문학 배경1. 이덕무의 생애이 덕무(1741~1793)는 종실 무림군(정종의 아들로 이름은 선생(善生))의 후예인 성호의 아들로 자(字)는 무관(懋官), 호(號)는 아정(雅亭)인데 이 밖에 형암(炯菴), 청장관(靑莊館), 또는 동방일사(東方一士)라고도 하였다. 이 이름들은 대부분 형암이 자신의 삶의 지향 의지를 인간 본연의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는 차원으로 추구하거나 그의 학문적 분위기를 반영한 성격을 갖고 있다.) 형암은 전형적인 선비로서 인간의 특징이 도덕적인 성품을 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유학에서 제시한 덕목을 삶의 참된 가치로 인식하고, 자기 수양을 동반하며 도덕적인 덕목을 끊임 없이 실천함으로써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했다. 형암은 특별한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않고 오직 곧고 청빈한 정신생활을 추구하며 일생동안 독서와 방대한 저술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진실을 지속적으로 탐구했다. ) 형암은 그의 나이 39세 때에 비로소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정조가 즉위하던 해(1776)에 궐내에 규장각(奎章閣)을 건설한 후 준재를 뽑아 쓸 때에 특히 이 덕무는 최초로 선발되어 유득공, 박제가, 서이수와 함께 검서관(檢書官)에 임명되니, 세상에서 이른바 사검서가 그들이였다. 검서관이 된 형암은 이 생활을 통해 궁중의 수많은 전적을 열람하면서 이를 자신의 학문을 심화시키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틀로 삼았다.) 이덕무는 원래 약한 체질을 갖고 태어난 데다가 격무에 시달리는 공직생활을 계속했다. 형암은게 실현하려고 했다. 이덕무는 한 개인의 속성만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대의 모습 또한 점차 순박함을 잃어 간다고 생각했다.상고시대에는 5일이나 10일 만에 바람과 비가 한 번씩 잘 내려서 모든 사람과 만물이 화락하여 모든 사람은 선할 수 있었고 오래 살 수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소인이 있어 악한 일을 하면 조정이 물리치고 고을에서 그를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자신에게 조금이나 악이라도 있을까 두려워하여, 목욕하는 그릇이나 음식의 그릇에도 악을 경계하는 글을 새기고 부드러운 가죽과 활시위로 스스로 경계했으니, 이것이 이른바 ‘봉옥(封屋)의 다스림’입니다.이를 통해 형암은 상고시대에 자연이 질서정연하고 조화로운 운행을 하는 중에 인간이 순연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본연의 진실되고 선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간 본연의 보편적인 가치를 자신의 학문관과 문예론, 그리고 시세계를 일관하는 내용으로 추구했다는 점에서 그의 특성이 부각된다고 할 수 있다. 이덕무의 근대적인 학문성향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가치인식을 발현시킨 점과 함께 고증에 입각한 실사구시적인 태도로 논의대상에 접근한 측면에 있다고 하겠다. 이상과 같이 그의 학문 성격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실학의 범주 안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형암은 ‘實’을 명목에 대한 실질, ‘不實’에 대한 성실 등으로 인식했고 또한 허망에 대한 진실과 외적 허식에 대한 내적 ‘독실(篤實)‘로 인식함으로써, 주로 인격적 내실에 치중했다고 하겠다.)Ⅱ. 백탑(白塔)시파1.시파의 형성과 이덕무의 활동이덕무, 유득공, 박제가,가 주동이 된 백탑시파는 견고한 동인적 결속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백탑시파의 형성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1) 이들이 유파활동을 집중적으로 한 것은 2~30대 였다. 이덕무 등이 검서가 된 뒤로는 활동할 겨를이 없어 부진했다.2) 주요한 활동장소는 서울의 중부 백탑의 서쪽지역이었다.3)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가 핵심인물이다. 이 세 이였다. 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시를 지어 울분을 토했다. )이덕무는 대사동으로 이사오면서 여러 교유를 바탕으로 서상수, 유금, 유득공, 박제가, 김용행 등의 서얼지식인과 박지원, 홍대용, 이서구 등의 사대부로 교유의 폭을 넓혔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의 교유범위는 넓어져 많은 서얼지식인들이 이들과 교유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이 서로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큰 문화사적인 집단을 형성시켰다. 백탑시사는 중인들의 시사처럼 그 존재를 대외적으로 널리 표방하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덕무 등의 시가 외부에 알려지면서 그 존재 또한 크게 부각된다. 이 동인들은 1766년경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창작이념을 확산시킨 듯 하다. )2. 시파의 발전과 쇠퇴백탑시파의 활발한 활동은 대개 영조말엽인 1766년에서 1779년까지 진행되었다. 이들의 활발한 시사활동은 영조말년에 끝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활동이 소강상태를 보이게 된 원인은 이,유,박 이 규장각 검서관으로 선발되면서 이전과 같은 시회를 자주 열 수 없었던 데 있었다. 또, 정조 2년 이덕무, 박제가가 연행에서 돌아오고, 정치적 변동에 의하여 연암이 연암협으로 피신하는 등 사회적, 개인적인 상황의 변동으로 예전과 같이 문묵(文墨)에만 자오(自娛)하지 못할 상황으로 유도하였다. 관직에 전전하면서부터 이들 시는 생기가 떨어지고 매너리즘에 빠져든 느낌마저 들게한다. 다만 박제가는 검서관이 된 뒤로 급진적 사상으로 변모하여 경세가로서 조선의 낙후된 실정을 비판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여 경국치민(經國治民)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1766년부터 젊은 나이에 서얼문사들이 모여 새로운 시를 창작하자고 하던 운동은 대체적으로 보아 1779년경을 고비로 쇠퇴하기 시작하여 각자가 세웠던 창작경향을 그대로 인습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Ⅲ. 문예이론의 양상과 의미1. 의고(擬古))와 창신(?新))의 통합명나라의 홍치, 정덕 시기에 당시 문단에서 풍미하던 대각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순수한 문학정신을거나 인위적인 문장술에 얽매여, 그 천연의 문학정신이 가리워지거나 문학 자체의 원리에 입각해 개성적일 수 밖에 없는 작품의 다양성을 추구하지 못해서는 않된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창신의 경우 시인이 올바른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내용으로 그가 본연의 순수한 시 정신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자유롭게 발현시켜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개성있게 창조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시인이 천연의 정서를 무시한 채 재능만을 마음껏 발휘해 새롭고도 기이한 표현만을 한결같이 따르려고 한다면, 그것은 작품의 다양성을 상실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발달한 인위적인 기교로 말미암아, 시의 바른 길을 이탈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이와 같이 그는 의고와 창신의 어느 한 편을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문학생위를 넘어, 현재의 시인이 인간 본연의 진정한 시정신을 유지하고 이를 스스로 터득한 묘해투오법(妙解透 悟法))을 통해 독창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참다운 작품을 독창적으로 창조할 것을 역설 하였다.)2. 진심(眞心)과 진상(眞象)의 강조형암은 시인의 순수한 정서를 현재의 대상화 교융시켜 진정한 개성적인 작품을 창조하기 위한 창작론으로, 진심과 진상론을 주장했다. 진심은 각시인에게 부여된 인간 본연의 순수하고 참다운 내면정서를 의미하며, 진상은 시인이 각 대상으로부터 포착한 본직적 형상을 의미한다. 형암은 시인이 시적 진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사물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그 정신을 올바르게 포착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사물의 전체에 두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활발한 동작을 통해 그 어느 한 극점으로 집약된다고 보았다. 형암이 생동하는 부분을 시인이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할 때 사물의 본질이 객관화 된다고 했다. 즉, 사물의 진상을 형상하는 일은 시인이 방치된 상태의 사물을 재해석하고 재결합하는 가운데 그 본질을 시어와 일치시킨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그곳에는 시인의 주관적인 예술정신을 반영하면서 시적 상황에 따른 각 사물의 정신이 독특하게 제시된다고 하겠다. )Ⅳ. 작품 내용리고 후반부에서 그는 이런 관조적인 자세를 객관화시켜 존재의 보편적 원리로 삶의 현상들에 바르게 대응하며 인간 본연의 소박하고 진실한 덕목인 ‘古’를 추구하려는 의지를 서술에 가까운 시어로 밝힌다. 그런데 형암의 이러한 태도는 삶의 허위적인 형식을 배제하고 자신의 내적 자율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올바른 자아실현을 도모하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추야음(秋夜吟)』,『영처시고1』)一夜新?生 하룻밤 산들바람 갑자기 일자寒?入戶鳴 귀뚜라미 문에 들어 싸늘히 우네野泉穿竹響 들 샘은 대숲 뚫어 메아리치고村火隔林明 마을 등불 또렷또렷 숲 사이로 밝네山月三更吐 삼경이 되자 봉우리 달을 뱉고江風十里淸 십 리라 긴 강 바람도 맑네夜?星斗燦 밤이 깊어라 뭇별 찬란도 한데玉宇雁群橫 기러기 떼 창공에 비끼었구나이 작품은 가을 어느날의 저녁에서부터 한밤중에 이르는 시간을 배경으로, 변화하는 계절의 현상에서 비롯된 형암의 외로움이 자아인식의 계기가 되면서 어떤 정신적 높이의 차원에까지 도달하는 내용을 전한다. 이덕무는 어느새 자신 앞으로 다가선 가을을 평범하면서도 빠른 변화를 느끼게 하는 짧은 시간감으로 등장시킨다. 이런 분위기에서 형암은 가을을 대표하는 의상물인 귀뚜라미에 자신의 정서를 투영시켜 작은 생명체의 울음소리로 외로운 마음의 상태를 응집시킨다. 이 외로움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등불로 상징되듯이 자아를 자각하는 계기가 되어 그는 현상적 시간을 초월할 수 있는 삶의 보편적 가치를 자연에서 구하고자 한다. )2. 이우보인(以友輔仁)의 실천이덕무는 우의(友誼)가 의로움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았다. 이는 선비들에게 발견되는 전형적인 가치관으로, 인간의 기본윤리인 우의가 각 사람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상대방의 자아실현을 도모케하는 덕목으로 인식했던 태도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그는 “사우는 현재의 경서이며 경서는 과거의 경서이다. 오로지 나의 마음이 생명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면서 이 두 가지에 의지하면 그 본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여 스승으로 삼을 만한 벗이 얼마나)
200854028 한문교육학과 최혜림《서 론》한글이 창제되기 이전에 우리 선조들은 한자(漢字)와 한문(漢文)을 사용하여 문자생활을 영위하였다. 한문은 고전(古典) 문언(文言)문으로서 일종의 표기 수단이였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수천 년 동안 사용해 온 한자와 한문이 남의 나라 글자나 글로 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한글 또는 누구나 가져다가 자기 나라의 글자나 글로 사용하여 그것이 전통이 된다면 곧 그 나라의 글자나 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한문 과목은 한자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었던 고전 문언문인 한문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익혀 한문 독해와 언어생활에 활용하는데 필요한 도구 교과이다. 하지만 요새 한문과목에 대해 교과로서 존재 여부에 대한 논의가 되면서 한문 교과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먼 미래를 내려다 보기보다는 현재 학생들의 입시위주의 실용적 교과만 중요시하는 가까운 모습만 보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초래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근본적으로 사회 교육과정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는 변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문 자체에 대한 학습자들의 생각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점에서 한문 교과에 흥미를 불어 일으킬 수 있는 교사들의 능력이 중요하다.본 보고서에는 한문 교과의 흥미와 학습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교수학습 방법이나 매체 활용 등을 논의 하여 수업 지도안을 작성해보고자 한다.《본 론》Ⅰ. 학습이론1. 행동주의 학습이론학습에 관한 행동주의적 접근은 학습의 결과로 나타나는 외현적인 행동 변화에 관심을 가지며, 학습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나 행동 수정 등 인간의 학습에 관한 포괄적인 내용을 연구한다. 행동주의 관점의 주요 가정은 학생의 행동에 초점을 두어야 하며, 다른 행동과 마찬가지로 학습은 외적인 환경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행동주의 관점에서 보면, 학습은 어떤 사람이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확률에서의 변화라고 기술된다. 행동주의자들이 학습 과정을 어떻게 보는 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A→B→C 모형을 사용할 수 있다 시간이 매우 짧으므로 적절하지 못하다. 교사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므로 사전에 충분히 수업 계획이 없거나 설명력이 부족한 경우에는 그 영향이 직접적으로 학습자에게 미치게 된다. 마지막으로 학습자들의 개별화나 사회화를 기대하기 어렵다.?한문교과에 적용한문교과는 학습자들의 흥미유발과 참여가 필요한 교과이기 때문에 강의법이 주(主)가 되는 것은 옳지 못한 수업 방식이나 완전히 배제 시킬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문교과에서 강의법이 필요한 부분은 문법부분을 배울 때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한문의 수식구조에 대해 배워본다는 문법부분이나 혹은 한자의 형성원리를 배우는 부분의 경우는 주로 교사가 개념을 설명해야하기 때문에 강의법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2.문제중심학습문제중심학습은 종전의 강의법을 지양하고 제기된 문제를 중심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학습이 이루어지는 방법이다. 즉, 학습자가 현실에서 당면하고 있거나 당면하게 될 수 있는 맥락적인 문제나 사계를 개인적인 학습활동보다는 다른 학습자와 소집단 협동학습을 통해 해결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지식의 습득과 형성이 개인의 사회적 배경에 따른 인지적 활동의 결과라는 구성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g나는 교수학습 환경에서 실천하는 학습 방법이다.?장점: 문제중심학습은 이해와 기억을 증가시킨다. 이는 학생들이 일상의 문제를 가지고 학습하고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차원의 학습에 참여한다. 이는 학생이 단순한 기억과 반복만의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독립적으로 사고하도록 학습함으로써 책임감을 개발한다.?단점: 교육내용의 양이 제한된다. 즉, 시간이 소모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효과적인 교육적 문제의 선택, 변경, 설계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또한 학생에게 ‘정담’을 제공하지 않고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사의 훌륭한 관리기술이 요구된다.?한문교과에 적용문제중심 학습은 한문교과에서 다양하게 응용되어 쓰일 수 있다. 그 중에서기여하는 과목이다. 또, 한문 과목은 한자 문화권의 문화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익힘으로써,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한자 문화권 내에서의 상호 이해와 교류를 증진시키는데에 기여하는 과목이기도 하다. 특히, 한자 문화권의 특수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 아래 형성된 한자 문화권의 문화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에 대한 이해는 한자 문화권에 공통된 문화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한문 독해 능력의 향상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기도 한다. 일반적인 외국어 교과는 가치중립적인 문법의 학습만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한문에서는 그 문장에 쓰인 단어 자체가 가지는 전고성, 곧, 그 단어 내지 용어가 가지는 특정한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문법적 요소에 대한 이해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여러 점을 고려하여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한문 과목의 일반적 성격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한문은 한자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었던 고전 문언문인 한문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익혀 한문 독해와 언어생활에 활용하는 데 필요한 도구 교과이며, 한문의 학습을 통하여 다양한 유형의 한문 자료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심미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과목이다. 한문은 다양한 유형의 한문 자료에 담긴 선인들의 삶과 지혜, 사상과 감정을 이해하여 건전한 가치관과 바람직한 인성을 함양하며, 우리 생활 전반에 면면히 이어 온 전통문화를 바르게 계승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는 과목이다. 한문은 한자 문화권의 문화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익혀 과거와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한자 문화권 내에서의 상호 이해와 교류를 증진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과목이다.나. 한문‘Ⅰ’의 과목의 성격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제 7차 교육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한문 과목의 학교급별에 따라 구별되는 특수적 성격을 학교급별로 정해진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에 의거하여 규정하였다. 따라서 중학교 ‘한문’은 중학교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900자에 의거하여, 그리고 고등학교 ‘한문I’과 ‘한문Ⅱ’는 중 학습 하되, 그 한자어의 짜임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문장 속에서 활용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한자의 음과 뜻을 전달하고 한자어 짜임의 원리 한자어의 활용 등의 내용에 있어서 주된 교수 방법은 ‘강의법’을 택하지만 그 중에서도 한자 한자어를 교수하는데 있어서는 ‘구조분석법’, ‘비교학습법’ ‘시범’ ‘개별학습’ ‘반복연습’을 사용하기로 한다. 또한 한문 교수학습의 경우 ‘문제 해결중심 단문 모형’을 사용하여 제시하지만 모둠할동을 제외하고 개인활동으로 재구성 하여 제시하였다1. 지도할 학습 내용 선정교재: 7학년 비유와 상징 교과서 1-1 漢文교재의 구성 : 전체 5개 대단원 21개의 소단원으로 구성소단원의 첫머리에 학습목표 제시와 본문을 제시. 이외에 문법 활동, 학습활동, 단원마무리로 구성되어 있다.차시: 총 2차시로 수업할 부분은 그중 첫 번째 수업인 1차시단원차시지도내용자료 및 관련사항13. 이웃과 함께하며1/2 차시?단문의 읽기와 풀이?한자의 특징?한자의 짜임?칠판(강의법)?한자카드?학습활동 인쇄물2/2 차시?산문의 읽기와 풀이?전통문화의 이해?한자의 짜임?칠판(강의법)?한자카드?ppt(전통문화 영상)?학습활동 인쇄물본시학습 수업 부분: 소단원 13단원 본문 중에서 ‘한문 단문의 읽기와 풀이’ 지도내용에 걸맞는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과 상부상조(相扶相助)를 배운다. 이를 통해 학습목표 달성하고자 한다.학습목표: 1. 於의 ‘~에서’쓰임을 알고 문장 풀이에 적용할 수 있다.2. 앞에서 뒤를 수식하는 수식구조를 알고 설명 할 수 있다.3. 이웃을 사랑하는 태도를 기르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다.2.앞서 제시한 모든 것을 바탕으로 수업 약안 지도안을 작성하였다.대단원3. 넓고 깊게 세상보기실시월일월 일소단원13. 이웃과 함께하며차시1/2 차시본시학습 목표1. 於의 ‘~에서’쓰임을 알고 문장 풀이에 적용할 수 있다.2. 앞에서 뒤를 수식하는 수식구조를 알고 설명 할 수 있다.3. 이웃을 사랑하는 태도를 기르고 생활에 적용할 수. 그래서 같이 체육시간에 축구도하고 피구도 하게 되면 어떨 거 같아요? 그래요, 자기 일처럼 친구가 병이 나은 거에 대해서 굉장히 기쁘겠죠?3. 자, 이처럼 우리 이웃 혹은 친구들이 겪을 수 있는 나쁜 일과 좋은 일들이 있을 때 서로 도와주고 또는 같이 기뻐해주고 그러죠? 옛날 우리 선조들도 이웃들이 처한 상황에 같이 도와주고 기뻐해주고 그랬어요. 그래서 오늘은 이웃과 관련된 한자성어와 한문문장을 한번 배워 볼게요.※예시를 통해 이번 학습의 주제에 대해 이해를 돕는다.1.우리 집에서 며칠 같이 살 거 같아요(등 여러 의견 제시)1‘.집수리 하는거 도와줄거 같아요.2. 기쁠 거 같아요.1분30초학습목표 확인※학습목표를 함께 읽으며 학생들이 본시에 학습할 내용에 대해 전체적인 틀을 잡을 수 있도록 한다.1. 그럼 우리 제목한번 볼까요? 역시나 오늘 배울 것과 관련된 이웃과 함께하는 한자성어와 한문문장 이라고 쓰여져 있네요.2, 그럼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우는지 칠판 왼쪽에 있는 학습목표 한번 같이 읽어 볼게요. 일번, 이번,삼번, 잘 읽었어요. 자, 다. 일번 於의 쓰임을 알고 문장 풀이에 적용할 수 있다. 이번 수식구조를 알고 설명할 수 있다. 삼번,이웃을 사랑하는 태도를 기르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다. 어때요 학습목표 어려워요? 저게 뭐야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여러분들 얼굴을보니까 (於가리키며) 이렇게 생긴 한자가 뭐고 수식구조가 뭔지 모르는거 같네요.. 다음 삼번 이웃을 사랑하는 태도를 기르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다만 아는 것 같네요. 그래도 걱정할 필요 없어요. 오늘 선생님이랑 같이 하나씩 알아나가 볼꺼니까요. 그리고 오늘 배울 내용 중 삼번 학습목표는 따로 설명하기 보다는 한문문장을 통해서 같이 이해해 보도록 해요.※학습목표 따라읽기2. 따라 읽는다.칠판에제시된학습목표 보면서읽기1분수업활동본시학습1※교사는 於자의 쓰임에 대해서 안다.1. 자, 그럼 차근차근 학습목표를 배워 보도록 해요. 일번 학습목표 볼까요? 於자의 쓰임에 대해서 안다이네요. 이
중학교때 이 영화를 처음 보았다. 그 때는 감동만 있었지 이 영화를 보고 현재의 나와 비교해서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과제로 인해 다시 보게 된 ‘천국의 아이들’은 현재의 내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 같아 더 가슴 찡하고 감동있게 보았다.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슬람 문화 수업을 듣고 이란 영화를 보니 영화 내용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나온 배경들이나 문화에 대해서도 주의깊게 보게 되었다.‘천국의 아이들’은 형제간의 우애를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로 보는 이로 하여금 누구나 여운이 오래남는 영화일 것이다. 오누이중 오빠인 알리는 부모님의 경제사정이 좋지 못한 것을 알고 동생과 운동화를 함께 신자고 말한 내용, 처음엔 이런 의도를 몰랐어도 흔쾌히 오빠와 같이 오빠의 낡은 운동화를 신는 동생 자라의 모습, 그리고 동생 자라를 위해 꼭 운동화를 상품으로 받기위한 알리의 마음씨를 보면서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할 정도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여지껏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한번도 쉰적이 있다. 원래 나는 영화를 한번 보면 한번에 다 보는 편인데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보는내내 불편했기 때문이다. 군대간 동생이 있지만 군대가기 전에 사이가 썩 좋지 못하였다. 그래서 잘다녀 오라는 따뜻한 말한마디 못해줬고 면회도 가지 못했다. 제대를 앞둔 시점에서 그점이 가장 미안하다. 누나로서 먼저 다가가고 배려하고 해야하는데 내 이기심으로 늘 동생을 라이벌로 생각해 이길려고 해왔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선 오히려 동생이 나에게 먼저 말을 붙이고 살갑게 굴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늘 죄책감을 느끼고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그런던차에 이 영화를 보게 되니 마음이 불편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시 보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다. 내 행동이 창피해하고 부끄러워할 일이긴 한데 피한다고 될 일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주인공 알리를 보면서 나도 저런 든든한 누나가 되야겠는 마음을 먹고 다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영화를 보는내내 영화안에서 펼쳐진 배경들 여자들의 의상 등등 주위깊게 보지 않으려해도 눈이 저절로 갔다. ‘아, 저게 차도르 인가?’ ‘모로코 양식 건물은 어디 없나’등을 생각 하면서 봤다. 영화 상영 년도를 보니 2001년이였다. 우리나라 시골의 2001년과 비교를 해보면 이란도 많이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문화가 달라서 낯설게 느껴지는 것 뿐이지 주거생활이나 경제생활 학교생활등이 비슷하였다. 특히 동생 자라가 시험치는 장면에서는 잠깐 영화를 멈추고 시험지 내용을 보았다. 아랍어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수학문제이기에 대충 어떤 내용인지는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아이들 수준의 내용이여서 이란도 교육에 있어서는 체계적일 것이라고 예상을 하였다. 이슬람 문화 수업에서 이슬람 문화 여성들의 옷차림에 대한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주인공 자라와 영화에 나온 여성들의 옷차림도 주의깊게 보았다. 교복역시 머리를 덮는 차도르였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옷을 걸쳤다. 학생뿐만아니라 선생님도 그렇게 입으셔서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단정하며 옷 하나로 단결을 이끌어 낼 수 있을 정도의 동질성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이슬람 문화수업을 듣기 전까지 아랍국가들에서 여성들이 차도르를 입는 것에 반대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문화중 하나이며 기후와 관련된 것임을 알고 내가 지나치게 서구지향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획일적 문화만 고집하였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 뒤 차도르에 대해 다른 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영화를 보니 오히려 그들만의 문화를 잘 지켜 나가고 있는 것이 더 부러워 보이고 끝까지 지켜나갔음 하는 응원도 하게 되었다. 점점 그들도 서구화 되고 있다고 하는데 서구화도 좋지만 자신들의 문화 주체성가 정체성을 바탕으로 서구의 것을 받아들여 전통과 외래문화가 어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잘 조화를 이루었으면 좋겠다.영화를 보면서 감동받은 부분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오빠 알 리가 마라톤에서 친구의 방해로 쓰러지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 결국 일등으로 들어온 장면이다. 마라톤에서 꾸준히 달리는 것도 힘든데 방해로 인해 중간에 넘어졌으니 앞서 가던 친구들과 차이도 많이 났을 것이다. 나였다면 넘어져서 아프기도 할 것이고 앞서간 친구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으로 더 이상 전력질주를 하지 못하고 그냥 걸어서 가거나 여유를 가지고 갔을 것이다. 아무리 운동화를 받아야 한다고 해도 그들을 다시 따라잡기란 무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되돌아 가지 않고 결승선 까지 가겠다는 생각은 여지껏 달려온 길이 아깝기 때문이거나 다시 되돌아갈 용기가 않나기 때문이다. 결국 용감하게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힘차게 나아가지도 못한채 무기력하게 가야하니까 간다라는 마음으로 길을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알리는 절박하였고 나를 위해서가 아닌 동생에게 운동화를 선물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넘어지지만 바로 일어나 더 힘차게 나아갔다. 이 장면에서 단순히 나도 알리처럼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추상적인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아마 과거 중학교때 영화를 봤다면 막연한 생각만 했거나 아님 반성이 아니라 그저 감동만 받았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어제 나는 중등임용고시를 보았다. 처음 치는 것이지만 장수생들 못지않게 과거 1년동안 열심히 하였다고 나 스스로 자부할 수 있을 만큼 노력하였다. 1년동안의 노력에 보상받기 위해 어제 하루 4시간 가까이 시험을 보았다. 자신만만해서 시험장에 갔던 내가 시험장을 나오면서는 우울했다. 시험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게 나왔고 그래서 당황하기도 했으며 충분히 실력발휘를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 때문이였다. 집에와 채점을 해보는데 내 노력에 비해 점수가 낮게 나오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나는 이제 뭘해야 하지라는 자괴감에 빠져 계속 울면서 멍하니 있기만 하였다. 그만큼 내가 열심히 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스스로의 기대도 내심 컸었다. 그 기대가 한순간에 좌절되자 내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솔직히 임용고시는 한번에 붙기란 어렵다고들 많이 이야기한다. 장수생들에 비하면 아직 나는 가능성이 많고 기회도 많은데 너무 일찍 좌절했다는 생각이 영화를 보면서 퍼뜩 들었다. 알 리가 운동화라는 간절한 목표가 있기에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나역시 선생님이라는 간절한 꿈이 있기에 지금 이렇게 좌절하지만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다짐했다. 어찌보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인데도 주위에서 격려할때는 깨닫지 못했었다. 와닿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한편의 영화로 현재의 나를 반성 할 수 있고 힘을 주었다. 그래서 영화를 본 후 앞으로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의 눈물을 조금 흘렸다. 물론 완전히 어제의 상처가 치유되진 못하겠지만 이영화로 인해 많이 위로받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영화를 다시한번 접하게 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김시습이 살았던 당대 사회문화적 맥락과 집필 상황맥락을 바탕으로 이해하기2011년 11월 24일목 차Ⅰ. 서 론Ⅱ. 작품 분석1.만복사저포기2.이생규장전3.용궁부연록4.남염부주지5.취유부벽정기Ⅲ. 김시습이 살았던 15세기 사회 문화적 상황과 의 관련성1. 사회적 상황과의 관련성2. 사회적 사상과의 관련성Ⅳ. 김시습이 의도한 상황맥락으로 금오신화 이해1. 예상독자 분석2. 의 주제와 궁극적인 목적 분석3. 의 서사방식Ⅴ. 결론참 고 문 헌Ⅰ. 서론작문은 문자를 통한 표현 활동이다. 따라서 작문이라는 것은 문자의 사용을 전제로 한다. 우리 민족 최초의 문자는 기원전 2세기 경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한자로 알려져 있다. 한자가 도입된 이래 세상사에 대한 기록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끼리의 의사소통이 한문으로 이루어졌을 것을 생각하면, 당시에도 작문은 지금처럼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소설을 쓰는 것도 한편의 작문을 하는 것이다. 작문을 한다는 것은 특정 목적을 가지고 특정 예상독자들에게 특정 주제를 알리기 위함이다. 그것이 보고문이든지, 논설문이든지 아님 시 소설 수필 희곡 같은 문학작품도 마찬가지다.작문을 하는데 관여하는 요소로 ‘언어’,‘심리’,‘생활’의 세 가지 범주를 설정한다. 작문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 체계가 동원되어야 한다. 작문은 언어로 된 구성물을 만드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작문을 하는 과정에는 또한 글을 쓰는 주체의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하게 된다. 글을 쓰는 과정에는 필자의 지식이나 경험, 신념뿐 아니라 문제 사태들을 해결해 나가는 인지적인 사고가 동원되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작문에 대한 정의적인 태도도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으로 작문 행위는 일정한 사회문화적인 생활 맥락 속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작문은 그러한 맥락에 어울리는 기증을 수행해야하고 그 관습에 부응해야 한다. 이처럼 작문은 사회 문화적인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언어로 된 구성물을 만들어 내는 필자의 심리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가 쓰여진 15세기는 한글이 보편화 되지 하고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고 한 것은 세상의 평가가 잘못되었다는 반증이다. 꿈에서 깨자 용궁에서 받은 선물이 그대로 있었다는 것은 평가를 다시 격하할 수 없다는 말이다. 명리에 생각을 두지 않고 명산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결말은 다른 작품에도 보이는데, 패배자가 되어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세상의 횡포를 거부하는 자세를 나타낸 것이다.)4. 남염부주지의 줄거리는 이렇다. 경주에 사는 박생(朴生)은 일찍이 불교, 무당, 귀신 등에 대해 의혹을 품었다. 어느 날 박생은 주역을 읽다가 조는 사이에 염라국으로 들어갔다. 지옥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놀란 박생은 수문장의 안내를 받아 염라대왕 앞에 가서 후한 대접을 받았다. 거기서 염라대왕과 염라, 귀신, 천당, 지옥, 윤회설 등에 대해 문답하다가 염왕을 탄복시켜 후에 염왕의 자리를 물려받기로 하고 꿈을 깼다. 그가 꿈을 깬 지 두어 달 후에 병이 들어 조용히 숨을 거둔다. 그가 죽던 날 이웃의 꿈에 신인이 나타나 고하기를 '그대 이웃이 장차 염라왕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주의깊게 볼 부분은 염왕이 박생의 지론에 동조해 인간을 심판하는 저승을 부정하고, 제왕의 횡포를 함께 비판하고, 박생에게 자기 자리를 물려준다고 한 점이다. 이는 현신의 군주를 상대로 해서는 펼 수 없는 주장을 염왕에게 토로했다고 할 것은 아니다. 염왕이 군주의 횡포를 비판하는데 동조하고 저승의 심판을 스스로 부정했다고 하는 불가능한 사건을 꾸며, 세속과 초세속 양쪽의 권위를 모두 거부했다. 꿈에 저승에 갔다는 상투적인 설정을 이용해 철저한 비판정신을 관철시켰다.)5. 취유부벽정기의 줄거리는 이렇다. 송도 부호의 아들 홍생(洪生)이 평양을 찾아가 친구집 잔치에 가서 취해 놀다가 배를 저어 부벽정으로 갔다. 거기서 여러 수의 시를 읊조리고 있었다. 어느새 밤이 깊어 돌아오려 하자 환상 중에 여인이 나타났다. 아름다운 그 여인은 다름아닌 죽은 지 오래 된 옛 조선 때의 기자(箕子)의 딸이었다. 그녀와 노래를 주고 받으며 나라가 망한 사연을 듣고에도 불구하고 주희(朱熹)의 성리학이 이(理)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이학이라 부르고 육구연(陸九淵)·왕수인(王守仁)의 학문은 상대적으로 마음(心)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심학(心學)이라 부른다. 성리학은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혈연 공동체와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 공동체의 윤리 규범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의 중심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에 나오는 팔조목(八條目)인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를 개인의 수양과 국가의 통치를 위한 행위 규범으로 삼았다. 성리학은 주로 사회적 인간 관계와 개인의 수양이라는 두 측면에서 그 사상을 심화시켰다. 를 중시함으로써 사회 윤리인 예(禮)를 강조함과 동시에 우주 본체, 인간 심성과 같은 형이상학적 탐구를 심화시킴으로써 도교나 불교를 형이상학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성리학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조선조를 개창하였던 당시 역성혁명의 주체는 대내적으로는 왕씨 정통의 문란을 비판하고 대외적으로는 배원친명의 외교 정책을 추구하였는데 여기에서 성리학의 춘추대의적 의리관(義理觀)을 엿볼 수 있다. 정도전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조선조의 기틀을 확립해 나가면서 철저히 불교를 배척하였다. 일찍이 고려 초의 최승로(崔承老)나 고려 말의 이제현·이색 등도 불교를 배척하였지만, 그것은 사원의 폐해와 승려들의 비행에 근거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정도전은 <불씨잡변 佛氏雜辨>·<심기리편 心氣理篇>을 저술하여 불교신앙의 허구성·미신성 및 불교이론 자체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불교를 비판하였다. 또한 불교에서 윤회를 주장하여 현실을 벗어나 사후 세계를 논의하는 것도 비판하였다. 성리학이야말로 이러한 불교의 폐단을 시정하여 사회 윤리를 강화하고 국가에 이로움을 줄 수 있는 참된 학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뜻에서 그는 성리학을 가리켜 “옛사람들의 덕을 밝히고 국민을 새롭게 하는 실학이다”고 하였다.한국 성리학의 특징은 정주학의 절대 우위였다. 정주해 사회 윤리를 정비하려는 것에 반기를 든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나 은 앞서 사상에서 언급했다시피 비유교적인 내용이 상당히 많다. 이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기 위한 김시습의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대부들에게 이것을 읽혀 인간의 본성은 이것인데 사회는 이것을 반하려고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함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두작품에는 성적인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품에 드러난 주인공들의 사랑은 결코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결실을 맺기 위해 귀신이 되어서도 같이 있고자 하였으나 이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결과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자면 두 남녀 주인공의 신분적 차이가 있었다. 즉, 그들의 사랑이 부모의 허락여부를 초월 할 만큼이였지만 결국 신분적 차이는 극복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김시습역시 계급의식을 벗어버리지 못했으며 민중들에게도 이것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작품을 읽은 독자들 역시 사랑에도 계급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의 경우 주인공 박연은 현실세계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쓰이지 못하였다. 그러나 용궁에서는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자신의 재능을 유용하게 쓰여졌다. 이는 김시습 자신을 그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시습은 한미한 무반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무력이 뛰어나서 무반인 것은 아니다. 사대부에 겨우 속하기만 하고 지체가 낮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재능이 놀라워 기대를 모았다. 글하는 재주가 뛰어난 인재가 무반에게 허용되는 위치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부조화였다. 절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세조가 왕위를 찬탈했다는 말을 듣고 책을 불살라버리고 세상을 등진 채 방랑의 길에 올랐으며 오랫동안 승려 노릇을 했다.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꼽혔지만 단종에 대한 충절이 그런 행동을 한 기본 동기라고 할 수는 없다. 왕위찬탈 사건 같은 것이 없었다 하더라도 자기 재능에 상응하는 인정을 받기 어려운 처지였고, 정신적인 안정을 찾기 어려운 성격 또한 문제 거리였다. 기이한 행동을 하면서 일생어졌지만, 남자 쪽에서 보면 그렇지 못하다. 남자가 비일상의 여인을 원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여자와 남자의 바람 가운데 여자 쪽에 비중이 두어진 만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양생이 서사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부분은 처음가 끝이고 하씨녀가 출현하고 나서 사라지기 전까지는 하씨녀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 양생은 일상의 인물로서 기이한 인물인 하씨녀를 관찰하고 보고하는 입장에 놓인다. 서술자는 이야기 외부에서 전지적 입장을 취하면서 주로 양생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 양생과 하씨녀 이외에 등장하는 인물로는 하씨녀의 시비, 행인들, 하씨녀와 이웃하고 있는 네명의 처자, 하씨녀의 가족과 노복, 그리고 승려 등이다. 주변인물들은 서사 진행에 일회적인 역할을 담당할 뿐 둘의 만남에 대해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남녀 주인공에게만 관심을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전반부의 형상화한 방향은 욕망에 놓여 있고 여기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건 최씨녀이다.) 최씨녀와 이생 둘이 공모하여 욕망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둘의 역할은 또한 구분된다. 즉, 상보적 대립관계가 여기서도 성립하는 것이다. 최씨녀는 담장을 엿보는 이생을 향해 춘정을 담은 시를 읊어 이생의 행위를 추동하며 머뭇거리면서도 만나길 원하는 이생의 시를 받고는 만날 방법을 일러준다. 둘의 만남이 성사되고서도 이생이 앞일을 걱정하자 최씨녀는 자신이 감당하겠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 다시말해 최씨녀의 성격은 적극적이고 이생의 성격은 소극적임을 분명하게 대립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생이 머뭇거리는 대목은 삽입 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좋은 인연인가 나쁜 인연인가공연히 근심하며 하루가 일년 같네(이생이 최씨녀에게 처음 준 시)언젠가 봄소식이 누설되면비바람 무정하리니 가엾어라(담 안에 들어가서 읊은 2구)동풍이 꼭지 나란한 꽃으 꺾었으니많은 가지들 풍우에 떨도록 하지 마시라에서 홍생과 기씨녀의 만남은 기씨녀의 접근으로 이루어진다. 기씨녀는 홍생이 시를 읊조리는 것을 듣고 홍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그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