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O년 O학기과목명신자유주의 경제 흐름에 반대하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사회변혁운동OOO대학교 OO학과학번OOOOOOOOOO 이름OOOⅠ. 서론오늘날 라틴아메리카를 생각할 때 흔히 연상할 수 있는 단어들은 빈곤, 불평등, 마약, 범죄 등의 부정적인 단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라틴아메리카는 높은 경제 성장률과 수출 경쟁력을 보이며 발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세계화의 흐름과 더불어 라틴아메리카에 들이닥친 미국 중심의 경제적 자유화 경향은 라틴아메리카를 저성장과 불평등의 굴레에 가둬버렸다.경제적 자유화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으며, 간단히 말하여 국가 간의 무역 장벽을 철폐하고 자유무역을 장려하는 것이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제적 자유화의 흐름에 발맞춰 경제 강대국들은 소위 말하는 개발도상국들에게 경제 성장에 '바람직한' 그들의 정책과 제도를 채택하도록 압박하고 있으며, 여기에 더불어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에서 권력을 쥐고 있던 독재정권들은 국가 발전의 명목 하에 외국 자본 유치와 공기업 민영화 등을 추진하면서 정경 유착 등의 불합리한 방법으로 본인들의 이익만 챙기고 사회는 소득 불평등과 빈곤 속에 밀어 넣게 된다.외국 자본 유치와 공기업 민영화 등은 산업의 외채의존도만 높이고 이후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 투자 자본들이 급속도로 빠져나가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게 된다. 게다가 농산물이나 광물 등의 1차 상품들의 수출이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를 대상으로 제조품의 무역 장벽 철폐를 강요할 경우 생산 경쟁력의 측면에서 국내 제조업은 밀리게 되고 그로 인해 경제의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게 된다. 또한 제조업의 침체는 필연적으로 자본 축적의 부진으로 이어져 국가가 저성장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재미있는 점은 현재 경제 성장에 있어서 경제적 자유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경제 강대국들이 정작 자신들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는 수입 관세나 수출 보조금 등의 강력한 보호무역정책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본인들의 목표 성장 정도를 달성하고 나서 그 후발 주자들에게는 교묘하게 경제적 자유화를 주입·강요하는 경제 강대국의 태도가 '자신들이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올라간 후 다음 주자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와 같다는 장하준 교수의 비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사회변혁운동을 ‘사회의 변화나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집단으로서 지속적으로 행하는 행동’이라 정의할 때,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다양한 목적으로 새로운 계층에 의해 주도된 사회변혁운동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21세기에 들어 더욱 활발해진 세계화와 경제적 자유화의 흐름에 맞서는 비주류계층 ─예를 들면 원주민이나 농민들─ 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혁명, 볼리비아의 물 전쟁과 가스전쟁, 브라질의 무토지농민운동, 아르헨티나의 실직노동자항의, 칠레 아옌데의 사회주의정권 등은 모두 위에서 설명한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에 반대하며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움직임들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들 중 수업 시간에 다룬 사파티스타혁명과 아옌데의 사회주의정권, 그리고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정권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며 이 움직임들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이며 그 가능성은 얼마나 되고 한계점은 무엇이 있는지를 본 글을 통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Ⅱ. 본론멕시코 혁명 당시 남부 원주민 출신의 농민들을 이끌고 토지와 자유를 위한 민중 혁명을 주도했던 사파타의 혁명 정신이 1994년 1월 1일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라는 이름으로 멕시코 내에서 다시 부활했다. 멕시코 치아파스주의 밀림에서 시작된 사파티스타혁명은 살리나스 정부가 추구한 신자유주의 농업정책의 폐해로 인하여 500여 년간 지속되어 온 원주민에 대한 차별·수탈의 역사가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원주민의 생존이 더욱 위협받게 되자 이에 대한 반발과 저항으로 발발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겨냥하여 살리나스 정부는 공유 토지를 민영화하는 농정개혁을 단행하였는데 그것이 지금껏 생계농업으로 겨우 생존을 이어가던 원주민 출신 농민들에게 적자생존을 강요함으로써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원주민들이 더욱 도태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에 의한 사파티스타혁명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NAFTA의 체결일과 같은 날에 발맞추어 일어났다는 것은 사파티스타혁명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와 인간성의 옹호를 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사파티스타혁명은 마르크스식의 혁명과는 전혀 다른 독창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 탈공산주의 혁명이다. 사파티스타혁명은 사회적 소수자의 권력 쟁취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민중의 윤택한 삶의 보장'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곳에 목적을 두고 있다. 투쟁의 방식 또한 무기를 이용한 전쟁이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하여 전 지구적인 관심과 행동을 촉구하고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힘없는 소수자 세력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사용하면서 혁명의 효과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한편 이보다 앞선 1970년 칠레에서는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최초로 마르크스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되게 된다. 그는 '칠레의 길'이라는 사회주의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는데 구리 산업과 민간 은행 등의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의학이라는 자신의 대학시절 전공을 살려 국민 건강을 위한 사회 복지 시스템을 정비하였으며 주거, 교육, 보건 등의 사회분야에 많은 지출을 하였다. 그리고 물가를 동결하고 임금 인상을 추진하면서 단기간동안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꾀했으며 토지개혁법을 80헥타르 이상의 모든 관개농지에 일률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대토지 소유자들의 지배체제를 약화시키려고도 하였다.)아옌데 중심의 사회주의정권 또한 미국 정부와 다국적 기업들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며 관계에 있어서 긴장을 높였고 그 대신 소련이나 쿠바 등을 경제적 파트너로 삼는 태도를 보였다. 그의 취임연설에는 '경제적 착취와 사회적 불평등과 정치적 억압이 없는 날이 드디어 왔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여기에는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흐름에 반대하는 그의 신념이 잘 반영되어 있다.멕시코의 사파티스타혁명과 마찬가지로 아옌데 역시 마르크스식의 혁명적 계급투쟁이 아니라 사회주의로의 평화적인 이행을 추구하였다. 그의 정치는 포퓰리스트들의 대중 선동과는 달랐으며 언제나 조용히 자본주의와 미 제국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할 뿐이었다. 또한 그는 언행일치의 정치가로서 인민연합의 강령을 체계적으로 실행하려했다. 비록 이러한 비폭력 원칙으로 인해 개혁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아옌데의 행보는 이후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좌파가 집권하여 신자유주의 노선의 폐기나 수정을 주도하는 것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에 휘둘리지 않고자하는 또 다른 움직임으로 볼리비아의 '모랄레스식 혁명'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광물자원 수출을 국가의 중심 사업으로 삼고 있는 볼리비아는 1980년대 IMF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광산이 폐쇄되었고 1995년에는 국가 기간사업인 전력사업마저 미국의 회사에 넘겨버렸다. 게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동안 미국의 압력으로 볼리비아 농민들의 삶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코카 잎의 재배지역을 초토화시켰고 수자원과 가스자원마저 미국 및 기타 외국자본들에게 팔아버리면서 물가상승과 소득불평등으로 온 나라가 고통을 겪게 되었다.)에보 모랄레스는 볼리비아의 코카재배 농민을 대표하는 원주민 출신의 대통령으로 미국의 정치·경제적 간섭과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을 해온 인물이다. 그가 당선됨으로써 집권여당이 된 사회주의 운동당은 제헌의회를 소집하여 신헌법을 제정하며 '모랄레스식 혁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선 그는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나서 각종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농지 개혁과 천연가스 자원 수입의 재분배를 통하여 자국 내의 원주민과 빈곤층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코카재배나 천연가스 등의 주요 산업들을 국영화하고 미국 보다는 중국이나 유럽으로부터 산업에 대한 투자를 받고 있다. 동시에 그는 원주민 출신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잘 활용하여 수많은 지역 언어 사용층, 즉 원주민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이러한 '신헌법'의 내용에 미국과 볼리비아 내의 기득권 세력들이 반발하고 나서면서 에보 모랄레스의 집권 초기에는 신헌법 제정을 둘러싼 국정 혼란이 계속되었지만 2009년에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침으로써 민주적 방법으로 신헌법을 승인하고 국정 혼란을 극복하였다. 2010년의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에보 모랄레스는 여야간, 지역간 대결 정국을 청산하고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자고 주장하면서 오늘날까지도 화합적 정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Ⅲ. 결론지금까지 멕시코의 사파티스타혁명, 칠레의 아옌데 사회주의정권,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정권 모두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국민 경제를 저성장의 굴레에 빠뜨리는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에 반하는 사회변혁운동이라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들 움직임에 대하여 단순히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좌파적 행보라고 평가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라틴아메리카의 이러한 사회변혁운동에 대하여 한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라틴아메리카의 사회변혁운동은 서구의 '신사회운동'과 구별하여 '대안사회운동'이라 표현할 수 있다. 60년대 말 서구의 신사회운동이 사회민주주의체계를 바탕으로 한 중산층 시민의 운동이었다면 9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은 정치적 민주화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이중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치의 중심에서 밀려난 사회적 소수자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201O년 O학기과목명멕시코 혁명정부의 인디헤니스모와 벽화운동의 혁명성에 관한 고찰OOO대학교 OO학과학번OOOOOOOOOO 이름OOOⅠ. 서론기존 정권의 독재와 부패, 장기집권 등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에 의해서 체제가 전복되고 새로운 정권이 수립되는 과정을 민주화라고 할 때, 민주화를 향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바로 시민에 의한 혁명을 바탕으로 한 아래로부터의 민주화와 권위주의 세력과의 타협을 통한 위로부터의 민주화이다. 그 중에서도 ‘시민에 의한 민주화 혁명’은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에 있어서 가히 필수적이다. 권위주의 세력과의 타협을 통한 위로부터의 민주화는, 기존 기득권층의 체제를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함으로써 시민의 민주화를 향한 열망과 지지를 기만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민이 주도하는 아래로부터의 혁명, 즉 민주화 운동을 통해 정권이 퇴진한다 하더라도 단지 명목적인 역할만을 하는 민주 정부가 수립되고 기존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이 암묵적으로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이는 불완전한 민주화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하지만 아래로부터의 혁명과 위로부터의 개혁이 서로 상호작용하고 타협하며 민주화를 이룩하는 경우도 있다. 민주화를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그리고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면, 위로부터의 개혁은 그러한 혁명에 발맞추어 시민의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함께 관철하고자 할 때에만 그 의의가 있다. 하지만 몇몇 특수한 사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위로부터의 개혁을 보았을 때, 그것은 그것 자체로 결코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시민의 의지를 일차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기존 세력이 가시적으로 내보일 수 있는 형식적인 민주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는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멕시코 혁명은 그 전후 사정을 고려해 보았을 때 단순한 민주화 혁명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실제로 혁명 이후 멕시코 사회가 주요 과제로 삼았던 것은 정치에 있어서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보다는 여태껏 스페인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고 독립 후에도 잦은 외침 및 간섭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대외상황을 개선하고 주권을 가진 일국으로서의 자존감을 공고히하며 국민들로 하여금 멕시코인으로서의 국민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멕시코 혁명 이후 수립된 오브레곤 중심의 혁명정부가 사회 통합을 목적으로 실시했던 인디헤니스모 역시 민주화를 직접적인 목표로 한 정책은 아니다. 하지만 토지노동자의 하나로서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원주민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포용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사회 질서 재편을 도모하였다는 ‘위로부터의 개혁’적 성격을 강조하여 앞으로의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인디헤니스모 역시 그 혁명성에 있어서 여타의 위로부터의 개혁이 흔히 보이게 되는 한계를 가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필자는 본 글을 통해 멕시코 혁명 정부의 사회 통합 정책으로써의 인디헤니스모와 이를 공론화하는 데에 일조한 벽화운동에 대해 설명함과 동시에 이러한 움직임들이 가지는 혁명성의 측면에서 이들이 가지는 정책적 한계성을 짚어보고자 한다.Ⅱ. 본론35년에 걸쳐 이루어졌던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장기 독재정치를 종식시키고 최종적으로 오브레곤이 1920년 대통령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체제 전복 과정을 멕시코 혁명이라 부를 때, 이 혁명은 분명히 그 과정에서 농민에 의한 민중 혁명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 비적 출신인 비야와 농민군 출신인 사파타를 중심으로 한 민중 혁명군이 각각 멕시코 북부와 남부에서 정부군에 대항하며 멕시코 일부 지역을 점령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민중 세력이 여태껏 한편이 되어 함께 정부군에 대항해 왔던 부르주아 보수 세력 까란사 진영에 의해 결국은 와해되고 결국 까란사 진영이 다음 정권을 장악하는 것으로 혁명이 마무리 되면서 혁명은 민중의 승리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또한 혁명의 결과 집권한 오브레곤 정권의 정책이 사파타 등이 주장했던 것에 비해 온건하스고 타협적인 성격을 지님에 따라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측면에서 본다면 멕시코 혁명은 결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그러나 오브레곤이 혁명 과정에서 민중 세력을 진압하면서 집권의 발판을 마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집권 후에도 기대했던 것에 비해 혁명적 색채를 상당히 잃어버린 정책 기조를 보였다 하더라도, 혁명 직후 새로운 멕시코 사회의 건설을 주장하며 수장의 자리에 오른 이상 결코 농민과 노동자 등의 소외되고 가난한 민중을 외면한 채 그 자리를 이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혁명 직후 혼란과 무질서로 가득한 사회를 통합하는 일은 멕시코 사회의 안정은 물론 자신의 집권을 유지하는 데에도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멕시코 혁명 이후 혼란한 사회를 민족을 중심으로 통합하고 국민들에게 멕시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하여 오브레곤을 위시한 혁명정부가 행했던 교육·문화적 개혁이 바로 원주민주의, 즉 인디헤니스모이다.300여년의 긴 스페인 식민 지배를 거치면서 멕시코는 멕시코만의 자긍심이나 자존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여느 식민통치에서도 으레 볼 수 있듯이 역사·문화 등 사회 전반에 대해 지배계층 위주의 서술과 해석이 당연하게 이루어졌고, 그 결과 멕시코의 역사는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를 그 시초로 삼게 되었고 유럽인과 원주민 사이의 지배-피지배 관계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으며 멕시코의 토착 문화나 생활방식 등은 미개한 것으로 여겨져 배척되었다. 독립 이후에도 디아스 집권 시기에 토지 등의 생산수단, 교육기회, 의료혜택 등이 모두 소수 유럽계에 집중되면서 사회 내에 양극화가 극심해져) 멕시코인들이 설 자리를 잃은 상황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이러한 상황에서 혁명 정부에게 사회의 통합은 곧 통치의 안정을 의미했다. 그들은 인종적 공통점도 사라지고 국민으로서의 심리적 유대감도 없으며 계층간 양극화는 심화되어 가는 현 상황을 극복하여 하루 빨리 확고한 단일국가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수단으로 원주민을 이용했다. 아즈텍 문화를 그들의 역사적 기원으로 삼고 숭배하였으며 원주민의 문화를 민족문화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특히 메스티소를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으로 설정함으로써 유럽계 가문과 원주민을 모두 포용하여 정체성 확립과 사회 통합을 달성하려고 하였다.)그들은 구체적으로 원주민 문화에 대한 인류학·고고학적 연구·검증 및 복원을 시도하였으며 원주민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의료혜택을 지원하는 등 그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갖은 노력을 하였다.) 이것이 바로 멕시코 혁명 정부의 사회 통합 수단 '인디헤니스모' 즉 원주민주의이다. 인디헤니스모는 이전까지 멸시의 대상에 불과했던 원주민들을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 편입시키고 사회 복지 측면에서 지원을 함으로써 혁명 이전과 혁명 이후의 멕시코 사회가 확실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으며 거기에는 혁명 정부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에 적합한 정책 수단이었다. 즉 인디헤니스모는 혁명 이후의 사회 질서를 재편하고 자신들의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개혁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그런데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이러한 정책적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전파수단이 필요했다. 인디헤니스모의 확산과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 바로 벽화이다. 혁명 정부의 수립 이후에 멕시코의 공공건물에는 혁명 정부의 과업과 원주민주의 등을 내용으로 하는 벽화가 많이 그려지게 된다. 주로 혁명 당시의 상황과 아즈텍에서 이어진 멕시코의 전통 모습 등이 그려진 이러한 벽화들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띨 수 있게 그려져 있었으며 배우지 못한 사람도 혁명의 내용과 멕시코의 역사성 및 정체성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되어 있었다. 후에는 이러한 벽화들이 애초에 혁명 정부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욱 혁명적인 색채를 띠기도 하면서 정치적인 의사표현의 창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모든 움직임을 '벽화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벽화운동은 미술을 비롯한 대중문화 예술이 정치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고 멕시코뿐만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전역과 미주 등지로 파급되어 정치 선전 및 홍보, 그리고 개인적 신념의 표현 수단 등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의의를 가진다.인디헤니스모가 벽화운동이라는 날개를 달고 혁명 정부의 사회 통합 의지를 널리 알리면서 지금껏 외면당해왔던 원주민 문화에 대한 범국민적 관심을 환기시키고 멕시코 사회의 통합과 안정을 추구했다는 점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로부터의 개혁 이면에는 분명히 혁명성의 측면에서 그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 또한 주목해야 한다. 간단히 말하여 인디헤니스모가 지니는 혁명적 특징은 원주민에 대한 인식을 가난하고 소외받은 미개한 사회계층에서 민족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는 국민 정체성 모델로 변화시켰다는 것 밖에 없다.) 인디헤니스모는 원주민 문화의 가치에 대한 진정한 재평가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혁명 과업과 관련하여 짧은 시간 내에 가시적 성과를 얻어내기 위한 정치적 방편으로 사용되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원주민주의로 인하여 원주민의 문화가 탐구되고 집중 조명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원주민 집단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생존권을 확보하는 실질적인 방향으로 이어지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혁명정부의 온건하고 타협적인 행보를 감추고 혁명성을 띤 그럴듯한 모양새로 포장하여) 혁명을 염원했던 민중의 신임을 얻고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는 도구로 이용되었다는 지적도 할 수 있다.
영화 ‘장미의 이름’을 보고부제: 웃음과 여성에 대한 중세 기독교적 태도에 대하여kjwkor영화 ‘장미의 이름’을 보고부제: 웃음과 여성에 대한 중세 기독교적 태도에 대하여Ⅰ. 머리말영화 ‘장미의 이름’을 통해 중세 말기의 기독교와 관련된 여러 사실을 알 수 있다. 중세의 생활상이나 가치관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여러 교파의 성격과 그들간의 갈등, 이단에 관한 논쟁과 종교재판 등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고, 나아가 교황과 국왕 사이의 관계도 약간이나마 엿볼 수 있다. 삭발례(tonsure)라고 하는 중세 수도원의 수도사 특유의 머리 모양과, 현재에 실제로 전해지지 않으면서 ‘웃음은 예술이며 식자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다’라는 내용을 다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 2권 『희극』에 관한 에피소드, 각각 베네딕트파와 프란체스코파로 대변되는 교황과 황제의 대립, 여성의 가치를 종족보존에만 둔 중세의 기독교적 여성관 등 이 영화 안에서 흥미를 유발하는 부분은 많이 있다.종교를 믿지 않는 필자의 입장에서 기독교의 교리, 심지어 중세의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생소한 내용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몇 가지 인상 깊었던 내용들이 있는데 ①웃음에 대한 중세 성직자의 태도와 ②현재에 비교하면 다분히 여성비하적인 중세의 기독교적 여성관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 보고서에서 위의 두 가지 내용에 대해 영화 내용과 더불어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Ⅱ. 웃음에 대한 중세 성직자의 태도이 영화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연쇄살인사건은 한 금서와 관련이 되어있다. 피살자들은 모두 존재하지조차 않는다고 여겨졌던 금서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 2권 『희극』에 접근했거나 접근하려고 했던 이들이다. 첫 번째 피살자 아델모는 금서의 위치를 얻기 위한 대가로 베렝가리오와 동성애 관계에 있었는데 그 죄책감을 못 이겨 수도원의 탑에서 떨어져 자살했고, 그가 탑에 올라가기 직전 그로부터 금서의 위치가 적힌 쪽지를 건네 받은 베난티오는 금서를 찾아내어 읽다가 죽게 된다. 세 번째 피살자인 베렝가리오도 베난티오의 책상 위에 있던 그 책을 읽다가 죽어서 발견되고, 주인공인 윌리엄과 아드소의 살인사건 수사를 돕던 세베리노 역시 금서를 발견했다가 말라키아에 의해 천구의로 가격당해 죽게 된다. 마지막 피살자인 말라키아도 세베리노를 죽이고 그로부터 그 책을 빼앗아 읽다가 죽게 된다. 아직 책을 읽기 전이었던 아델모와 세베리노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피살자들은 모두 손 끝과 혀 끝이 검게 변한 채로 발견되었고, 이후 웃음을 두려워했던 호르헤 신부가 금서에 묻혀놓은 독에 의해 독살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진다.호르헤 신부는 영화의 초반부터 수도원 내에서 웃음소리가 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인물로 나온다. 이는 욕구충족이나 행복과 즐거움의 추구를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고 금욕생활을 강조한 엄숙주의(rigorism) 또는 경건주의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수도원의 생활도 엄격한 도덕적·종교적 규칙에 따라야만 했던 금욕주의의 대표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르헤 신부는 더욱 나아가 웃음이 두려움을 없애 신과 성직자에 대한 의존과 믿음을 소홀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결국 웃음을 없애 일반 민중들의 삶을 절망적으로 만듦으로써 그들이 더욱 신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끔 하여 성직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유지하려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당시 교회가 더 이상 신앙의 중심지가 아니라 하나의 세속적 권력 추구 세력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이러한 사실은 교회의 청빈을 둘러싼 교황 측과 황제 측의 회담 모습에서도 어느 정도 뒷받침되고 있다. 또한 웃음과 재치를 담은 책을 영원히 없애서 중세의 기독교적 질서를 끝까지 수호하기 위해 결국 장서관에 불을 지르기까지 한 호르헤 신부를 보며 ‘신앙과 광신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윌리엄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Ⅲ. 중세의 기독교적 여성관영화를 보다 보면 또 하나 신경 쓰이는 점이 있는데 바로 영화의 초반부터 후반까지 일관되게 드러나는 성직자들의 여성비하적인 태도이다. 윌리엄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지상의 미덕으로서 언급한 사랑은 신에 대한 사랑을 의미할 뿐 여자를 사랑하는 일은 가치가 없으며, 여자는 남자의 혼을 빼앗을뿐더러 죽음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라는 아퀴나스의 표현을 함께 이야기한다. 이단 심판관 베르나르 드 귀는 수도원을 흉흉하게 만든 악마의 존재는 바로 수도사를 유혹하여 신성한 장소에서 악마 소행을 자행한 마녀, 즉 여자라고 주장하며 마녀재판을 자행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장면들만으로 중세의 기독교적 여성관이 굉장히 부정적이었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 예로 영화 초반 우베르티노 신부의 대사를 보면 여자는 원래 사악한 것이지만 성모 마리아만은 성령으로 성스럽게 만들었으며 아름다운 성모의 가슴은 세상에 비할 것이 없다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여성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중세의 여러 신학자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었던 현상이다. 부정적 여성관의 근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우선 원죄의 측면에서 이브가 여성을 부정적으로 상징화한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학은 여성을 ‘불완전하게 태어나 장애와 결함을 지닌 남성’으로 간주하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를 이어받아 여성이 신체적으로 나약할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취약하다는 주장으로까지 연결시킨다.반면 중세의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남기면서 긍정적 여성관을 내보이기도 한다. 흐라바누스 마우루스는 ‘여성은 창조신화의 완벽성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연대기 작가 아도는 ‘이브는 모든 창조물의 어머니로서, 그녀의 도움이 없이는 인류가 번성할 수 없다’고 보았다. 성 보나벤투라는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도움을 받듯이 남성도 여성의 은혜를 입는다’고 이야기 하였으며, 토마스 아퀴나스는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신의 창조물로서 완전한 존재로 만들어졌고, 남녀 모두 구원의 대상이 되며, 부부는 남녀 평등한 우정공동체로서 서로 동반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이렇듯 중세의 신학자들이 여성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그리고 통상적인 일반인의 생각에서도 왜 그렇게 중세시대에 부정적인 여성관만 존재했던 것처럼 강조되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아마도 당시의 학문과 연구가 주로 ‘남성’ 성직자에 의해 이루어졌고, 성직자들이 수도원에서의 금욕생활을 강조하면서 여성과의 접촉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부정적 여성관을 내세웠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믿는 예수라는 존재가 성모 마리아라는 여성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종족보존 등의 현실적인 이유에서도 여성의 가치는 꼭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를 인식한 학자로서의 당시 성직자들이 여성을 바라보는 데에 있어서 혼란과 자기모순으로 괴로워했을 수도 있다는 상상도 감히 해본다.Ⅳ. 맺음말‘장미의 이름’은 한때 호화롭고 찬란했던 중세 수도원이 결국 작품 후반부에서 모두 불에 타 폐허가 되는 모습을 통해, 중세 말기 기독교적 질서가 무너지고 있던 때의 교회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본 감상문에서는 기독교의 엄숙주의에서 비롯된 웃음에 대한 성직자의 두려움과, 성직자들의 다소 이중적인 여성관에 대하여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분석해보았다. 강의를 들으면서 접했던 내용들—교황권과 왕권읟 대립 등—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갈등양상을 영상을 통해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작성하면서 중세시대를 이끌었던 교회와 성직자라는 계급이 당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생각의 바탕은 무엇이고, 또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실제로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세 서양사에 대한 더욱 심층적인 학습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다리 걷어차기」를 읽고Ⅰ. 서론최근 국회에서 비준된 한·미FTA와 관련하여, 한·미FTA가 양국의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후생수준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주장과 경제규모에 있어서 큰 차이가 존재하는 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이 결국 상대적으로 경제수준이 미약한 한국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하준 교수의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읽으니, 현재 미국 등의 경제 강국이 주장하는 자유무역주의의 흐름이 과연 어떠한 의도를 숨기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어떠한 문제의식을 내보이고 있는지에 대해 간단히 살펴본 후, 이와 관련하여 현재 한국의 경제적 대외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Ⅱ. 본론1. 「사다리 걷어차기」가 다루고 있는 문제의식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한 국가의 경제적 성장과정은 간단하게 산업의 발달 등으로 경제력을 만족할만한 어느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려놓고 그 이후에는 끌어올려놓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다른 국가와의 경제적 격차를 유지하거나 또는 더욱 심하게 벌리는 방향으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이 책에서는 경제력을 키우는 시기를 '따라잡기' 시기, 다른 국가와의 격차를 벌리는 시기를 '앞서가기' 시기로 표현하고 있다.오늘날 흔히 경제 강국이라 불리는 미국, 영국, 독일 등의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이 경제적인 빈곤에서 벗어나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역장벽을 없애 세계적인 무대로 뻗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경제 성장에 있어서 자유무역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실례를 분석해 보았을 때, 이들 선진국들이 오늘날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적극적인 산업·무역·기술정책(이하 ITT정책)을 이용한 보호주의 혹은 개입주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저자는 선진국들이 현재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경제적 우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보호주의라는 자신들의 과거 성장배경을 자유무역주의로 교묘하게 바꾸고, 이를 지속적으로 권고함으로써 개발도상국으로 하여이전 오랜 기간 동안 높은 관세장벽을 유지하며 자국의 기술력을 선진화하고 산업을 육성한 것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영국의 자유 무역 체제는 1세기도 존속되지 못하고 약 80여 년 만에 보호주의로 회귀했다는 사실도 주목해볼만 하다.미국 또한 유치산업 보호 논리를 최초로 체계화하고 몇몇 주요 산업분야에 강력한 보호관세를 적용하였으며 동시에 농업 연구·공교육 투자·교통시설 확충 등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지원함으로써 오늘날에 이르는 경제 성장을 이룩한 국가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비로소 무역 자유화를 실시하고 자유 무역의 정당성을 지지했지만 그 정도는 영국에 비하면 굉장히 미비한 수준에 불과했다.19세기 독일은 당시 다른 국가들에 비해 자유 무역 체제를 갖추고 있던 편이지만, 역시 관세 적용·관민 합작·정부 지원금 등을 통해 유치산업을 육성하였으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정부가 직접적인 개입에서 안내자 역할로 전환하여 국가의 경제 발전을 꾀했다. 프랑스는 자유방임주의로 인해 산업 및 기술적 침체기를 겪다가 2차 대전 이후 명백한 개입주의 정책을 통해 성공적인 경제 구조 개편을 이룩하며 현재의 간섭주의 국가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고, 스웨덴은 19세기 말 보호 관세·관민 합작을 통한 기술력 축적·정부 보조금 등의 정책을 바탕으로 보호주의로 전환하면서 눈에 띄는 경제 성장을 이룩한 국가이다.현 선진국 각국의 당시 상황에 따라 그 정책의 구체적인 양상은 서로 다르게 전개되었지만, 그들의 성공적 경제 발전에는 보호·개입주의적 ITT정책이 공통의 배경으로 깔려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선진국들은 그들이 과거 사용했던 보호관세의 역할을 무시하거나, 당시와 현재의 생산성 차이를 무시한 채 현재 개발도상국의 관세율이 자신들의 과거 관세율과 비교해서 높은 편에 속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과거 보호주의 강도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에는 보호주의를 통한 개발도상국의 경제 성장을 방지하여 지금의 권력구조를 계속 유지하고자를 읽고 나는 세계의 다른 여러 국가와 한국이 맺고 있는 경제적 대외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한·미 FTA의 비준을 둘러싸고 대립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전에 한국이 체결했던 한·칠레, 한·싱가포르, 한·EU FTA 등과는 달리 왜 유독 한·미 FTA에서 유난히 많은 마찰이 생기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자유무역협정에 찬성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 모두 그들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때그때의 사안에 따라 더욱 설득력 있고 타당한 한 쪽을 선택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데, 오늘날의 언론이나 기타 미디어들은 한 쪽에 무조건적으로 편향되어 있거나 감정적인 주장만을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본 글의 작성 과정에서 이에 대해 나 나름대로 조사를 해보고 「사다리 걷어차기」의 내용도 떠올려보며, 나 스스로의 의견을 수립하는 동시에 앞으로 경제학을 계속 전공해나갈 신입 경제학도로서 이후의 한국 경제에 대한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그 출발점을 닦아보고자 했다.①한·칠레 FTA, 7년이 지난 지금 그 경제적 파급효과를 중심으로우선 한·칠레 FTA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발효된 자유무역협정이다. 발효된 지 7년이 지난 지금 한·칠레 FTA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애초에 목표했던 수출 증대 효과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듯하다. 대칠레 수출은 FTA체결 이전과 비교해 오늘날 약 6배로 증가하였으며, 수입은 약 4배 증가함으로써 수출에 비해서는 그 증가폭이 약간 작은 모습을 보였다.애초에 한국이 FTA의 첫 파트너로서 칠레를 선택한 데에는 한국이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지닌 데에 반하여 칠레는 농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지님으로써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에 따라 FTA 체결 당시 국내의 농업생산자들은 값싼 수입농산물로 인해 자신들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주장을 격렬하게 펼친바 있으나, 최근 농산물의 전체 수입증가액에 대한 FTA의 기여도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한·칠레 FTA를 평가함에 있어서 단순히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칠레의 경제규모는 한국과 비교해 약 1/7로 미약한 수준이었고, 칠레의 산업 구조 또한 한국의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밖에 없는 농업 중심이었다는 점에서 자유무역에 있어서 한국이 상대적 우위를 가지고 출발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레산 포도·삼겹살·포도주 등의 가격이 당초 저관세 적용과 함께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유통업자의 폭리 등으로 거품이 생겨 오히려 더 비싸게 수입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물가 안정 효과 등의 측면에서 FTA는 기대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도 있는 것이다.②한·미 FTA를 둘러싼 논쟁을 알아보며한·칠레 FTA를 살펴본 결과 자유무역체제가 국가의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볼 수 있으나, 동시에 현 선진국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알 수 있다. 한·칠레 FTA가 체결될 당시 경쟁보다는 '무역을 통한 보완성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논쟁의 중심에 있는 한·미 FTA는 그 성격이 한·칠레 FTA의 그것과는 매우 상이하며 그 결과 이후에 몰고 올 후폭풍 역시 더욱 어마어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현 시점에서 예측할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과연 FTA가 현 선진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가의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양국의 후생 수준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후진국이 경제 강국인 선진국의 경제에 종속되어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될 것인지에 대해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며 만약 미래에 닥칠 수도 있는 국가 경제의 총체적 위기상황을 어떻게 방지하고 대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사전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한·미 FTA 체결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자동차, 포도주, 화장품 등 미국산 수입상품과 국내 상품한 간접수출을 포함하여 전반적인 대미수출 증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반면 한·미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음을 주장의 근거로 들고 있다. 투자자-국가분쟁(ISD) 제도는 제 3국의 중재인이 개입한다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강자인 미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경제자유구역과 제주특별자치도에는 보건의료서비스 등이 포함된 유보항목이 적용되지 않음으로써 영리병원의 설립과 의료비 폭등을 막을 수 없게 된다. 또한 도시가스와 같이 이미 민간에 개방된 공공서비스 분야에서는 ISD를 통한 미국의 제소로 요금 폭등이 우려되고, 지적재산권의 강화에 따라 복제약을 주로 만들고 있는 국내의 제약회사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자유무역협정은 양국 간의 협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어느 한 국가에게 절대적으로 혹은 일방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체결될 수는 없다. 한·미 FTA의 체결로 국내의 소비자들은 혜택을 누리고 기업들은 높은 구매력을 가진 넓은 수출시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전 세계 GDP의 약 20%를 차지하는 세계경제규모 1위의 미국과 한국이 교역을 할 때 한국이 상대적으로 후진국의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관세로 자유무역을 할 경우 한국이 감수해야 할 위험성은 미국에 비해 훨씬 큼을 인식하고, 자칫 잘못하면 애초에 목표했던 경제적 성장은커녕 미국이라는 선진국에 종속되어버리는 신세가 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고려를 바탕으로 양국에게 모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FTA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한·미 FTA는 바람직한 모양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Ⅲ. 결론「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서 지금껏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경제성장에의 자유무역체제의 중요성이 경제적 우위를 지속하기 위한 현 선진국들의 철저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그러한 선진국들의 주장이 그들의 과거 행적과 비교하여 얼마나 위선적인지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논의를 조금 더 확장것이다.
「거울에 비친 유럽」을 읽고Ⅰ. 서론서양의 역사와 문명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 알게 된 ‘블랙 아테나(마틴 버낼 저)’라는 책은 분명히 필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껏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서양사의 내용들이 사실 유럽을 비롯한 서구세계를 남들보다 우월한 것으로 포장하려는 서구의 역사가들에 의해 다분히 의도된 정보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러던 중 「거울에 비친 유럽」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본래 거울이라 함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문학 등에서 자기 성찰의 매개체로 자주 사용되어 온 도구인데, 지금껏 자신들의 역사적 우월성과 우수성을 체계화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공고화 해왔던 서구인들이 기준이 되는 9개의 거울을 가지고 스스로를 어떻게 성찰하고 비판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객관적으로 비판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히 지금까지는 그들이 그러한 시도조차 하려 한 적이 별로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거울에 비친 유럽」이라는 유럽사에 대한 자기 성찰적 접근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필자는 본 글을 통해 서구인들이 그들 스스로 밝히는 유럽사의 역사적 왜곡과 그 의도를 간략히 살피는 동시에, 오늘날까지도 비공식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서구 사회의 자문화 우월주의적 태도가 모두 이러한 역사적 왜곡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Ⅱ. 본론「거울에 비친 유럽」의 저자 조셉 폰타나는 지금까지 지배적으로 알려져 있는 서양 중심의, 특히 유럽 중심의 역사 해석에 회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유럽사에 대한 지금까지의 관점을 왜곡된 거울들로 이루어진 유령의 집에 비유하고, 유럽인들이 이 유령의 집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가 역사를 왜곡시키는 거울로써 제시한 것은 다음의 9가지이다. 야만의 거울, 기독교의 거울, 봉건제의 거울, 악마의 거울, 촌뜨기의 거울, 궁정의 거울, 미개의 거울, 진보의 거울, 대중의 거울. 그 중에서 필자는 오늘날에도 몇몇 서구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자문화 우월주의적인 태도와 관련이 있는 몇 가지 거울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보고자 한다.첫 번째 야만의 거울은 현재 유럽인들이 믿고 있는 유럽 역사의 정통성과 우월성이 실제로는 허구에 가깝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유럽인의 기원이 기원전 먼 옛날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건너온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유럽 문명의 근간이라 부르는 농업이나 문자 발달 그리고 도시 형성 등은 유럽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됐기 보다는 모두 근동에서 출현해 유럽 쪽으로 확산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자신들을 하나로 묶어줄 '유럽‘이라는 정체성 개념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야만인’이라는 비교대상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상대적으로 자신들은 그들보다 우월하고 위대하고 옳으며 근본적으로 확연히 다른 존재라는 의식을 키워왔던 것이다.야만인을 설정함으로써 스스로를 문명인으로 규정하는 이러한 의식은 일곱 번째 미개의 거울과 여덟 번째 진보의 거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만 약간씩 달라질 뿐 이후의 역사적 과정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네 번째 악마의 거울은 유럽이 중세 시대의 사회적·종교적 혼란 속에서 대내외적인 경계를 형성하여 유럽사회를 재조정할 때, 꼭 물리쳐야만 하는 ‘악마’의 존재를 설정하여 폐쇄적 사회 재조정 과정에 박차를 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대외적으로 유럽은 십자군 전쟁 과정에서 이슬람교뿐만 아니라 동방의 기독교까지도 포용의 대상이 아닌 약탈과 탄압의 대상으로 보았는데, 동방의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고 유럽 자신들 만으로 구성된 보이지 않는 경계를 설정하는 이러한 태도는 이후 유럽 스스로가 동양에 진출하는 데에 장애물로 작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악마’의 존재 설정은 대외적인 경계형성 보다는 대내적인 경계 형성과정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대내적으로 유럽은 로마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교리들을 이단으로 간주하고 그들에게 ‘악마’라는 이미지를 씌움으로써 그들을 박해할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유럽사회는 이렇게 악마를 설정함으로써 자신들의 체제가 저항하는 사람 하나 없이 견고하게 유지되기를 원했고, 그것은 동시에 유럽사회가 비유럽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를 합리화하는 도구로써 ‘악마’를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가지의 거울은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의 상당부분이 야만인·이단·악마 등의 부정적인 비교대상의 설정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영국 지하철 막말녀 동영상을 보면 아직까지도 상당수의 유럽인들에게서 인종차별적인 사고가 존재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식민지배나 유대인 학살 등과 같은 일들 모두가 스스로 다른 인종·국가·문화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자부하는 자문화 우월주의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자문화 우월주의는 「거울에 비친 유럽」에도 나와 있듯이 아주 교묘한 방법에 의해 의도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의 강점을 더욱 증진시켜 다른 인종이나 국가와 격차를 벌이는 방식이 아니라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스스로 우수하다 자부하며 다른 인종·국가·문화를 멸시하고 무시하는 태도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하나의 열등한 비교대상을 창조해내서 자신들을 그에 비추어보는 방식이었던 것이다.그나마 현대에 들어 자문화 우월주의적인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제국주의적인 태도나 인종 차별적인 발언 등을 수면위로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은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영국 지하철 동영상처럼 경기침체 상황 속에서 이주민만 계속 늘어나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것이 바로 인종 차별적인 발언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당연한 것으로 주입되어온 사고방식이 짧은 기간 동안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역사가들의 역사해석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가히 엄청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세계화를 통해 국가 간의 관계가 매우 중요해진 현대 사회에서 자문화 우월주의적인 태도는 특히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외부의 적을 계속 만들어 결국 스스로에게만 고립되어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적인 우위의 자리에서 내려와 정체와 퇴보의 길을 걷게 되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시점에 와서 그 문제점을 알리고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눈을 가리고 왜곡된 상만을 비춰주던 거울들을 박차고 나올 것을 주장하는 것은 적어도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의 두 측면을 모두 들어봄으로써 스스로 의견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Ⅲ. 결론오랜 기간에 걸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온 일종의 패러다임의 이면을 파헤쳐 그 실상을 분석하려는 시도는 쉽지 않다. 역사가 됐든 사상이 됐든 그 무엇이든 간에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사람은 기존에 그것을 믿고 있던 많은 이들의 비판과 질타를 감수해야 하고, 하나의 질서로 자리 잡은 기존의 흐름 속에서 자연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거나 의도적으로 외면되어온 자료와 사례들을 찾아 헤매느라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그러한 점에서 자신들의 역사적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가 지금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역사의 이면을 과거의 문학작품을 비롯한 다양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드러내고, 편향적이며 의도적인 지금까지의 역사해석 태도를 비판하려는 저자의 시도는 매우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 책을 읽음으로써 필자 또한 우리 역사에서도 의도적으로 왜곡된 해석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그리고 그러한 해석이 지금까지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는 경우는 없는지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져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