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은 연못’을 보고영화를 보고 역사의 사건을 더 쉽게 알 수 있어 좋았지만 짧은 글솜씨로 감상문을 쓰는 것은 귀한것을 가볍게 그리게 될까하는 생각이어서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고 여러번 볼 필요성을 느껴 감상문이 늦어지게 되었다. 아픈 한국사에서 또 그러한 일이 발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살펴보고,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 하는 문제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시간 이었다. 우선은 이 사건에 대해 더 알아 보게 되었다.영화 ‘작은 연못’은 한국전쟁 중 실제로 있었던 미군의 민간인학살 사건, 노근리 사건을 그린 영화다. 노근리 사건은 1950년 피난을 가던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의 일반 주민을 미군이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사건이다.영화의 초반부는 잔잔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풍경이 정겹고, 그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만큼 평화롭고 고즈넉한 마을 이었다. 남자아이들은 논, 밭, 강 등 자연 속을 뛰어다니며 놀고 여자아이들은 그런 남자아이들과 티격태격 싸움을 한다. 예쁘고 다정한 학교 선생님은 합창을 가르쳐서 아이들과 합창대회를 나가려고 한다. 어르신들은 나무그늘에서 부채를 부치며 바둑 두기에 여념이 없으시고 매일 도박만 하는 남편은 아이들까지 데리고 집을 나가려는 부인을 잡기위해 애를 쓴다.잠시 친정집에 온 가족들도 있고 부인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새 부인을 들여 구설수에 오르는 가족도 있다. 풋풋한 연애를 하고 있는 학생 커플도 있고 전할 수 없는 짝사랑을 하고 있는 마름아저씨도 있다. 사사건건 귀찮게만 하는 여동생도 있고 든든한 오빠도 있다.이렇게 평화롭기 그지없던 마을에 갑자기 위기가 닥쳐온다. 전쟁이 바로 그 것이다. 트럭 한 대가 돌아다니면서 영어와 일본어로 곧 이 땅에서 전쟁이 시작될 테니 빨리 이 마을에서 나가라고 외친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주민을 통해 이야기를 들은 노근리 주민들은 일단 임진왜란 때도 사용했다던 마을 꼭대기 바위숲 속으로 피난을 간다. 주민들은 식량과 가재도구 등을 챙기고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님은 지게위에 태워서 바위 숲으로 간다. 하지만 미군들은 그것조차도 용납하지 않고 남쪽으로 떠나라고 한다.내려가면 미군의 트럭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고 그 트럭을 타고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면 된다고 생각한 주민들은 남쪽으로 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계신 강씨네는 내려가면 다 죽는다는 할머님의 말을 따라 내려가지 않기로 결정한다.하지만 트럭은 나타나지 않았다. 주민들은 그저 땡볕에서 계속 남쪽으로 걸어 갈 뿐이다. 미군들이 길을 막고 위협적인 행동을 해도 주민들은 우리 편인 미군들이 우리를 쏘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그러나 어디에선가 비행기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주민들이 걸어가던 철길에 엄청난 폭격이 가해졌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뛰어다니고 철길은 아수라장 바로 그 자체였다. 잘려나간 팔, 다리 그리고 시체와 겨우 숨을 이어가는 사람,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람, 이러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울고 있는 아이들, 미친 듯이 뛰는 어른들, 이불 속으로 숨는 사람들 이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굴다리 밑으로 도망쳤다.그러나 거기서 기다리는 것 또한 미군의 무차별 사격이었다. 미군들에게 결백한 일반 시민이라는 주민들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 미군 또한 저들이 적이 아닌 일반 시민임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사격을 멈추지는 않았다.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온 남매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는 것이 그들의 마지막 양심이었다. 여기에서 소통의 문제가 참 중요하다는 것을 보게된다.말이 통했다면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굴다리 밑에서 미군의 총소리만 듣던 사람들은 점점 공포, 혼란에 빠지게 된다. 누가? 왜? 어째서? 자신들을 죽이려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을 뿐이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남자들은 온 몸에 진흙을 바르고 탈출하려 하고 아기가 자꾸 울어서 총을 쏜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걷지도 못하는 아기를 애지중지하던 자기 아들을 자기 손으로 물에 빠뜨려 죽인다. 노근리 사건이 얼마나 끔찍했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전쟁이란 얼마나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걸까! 어떻게 자기 자식을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있는 걸까! 이 영화를 보면서 큰 충격을 받은 장면은 이 장면이었다. 무차별 사격으로 사람이 쓰러져 죽는 장면도 아닌 자기 아들은 자기 손으로 물속에 넣어 숨을 못쉬게하여 죽이는 아버지의 모습. 그 장면은 다른 어떤 장면보다도 슬프고 무섭고 소름끼쳤다. 어떻게 그런일이 인간에게 있을 수 있나 눈물이났다.며칠 후 결국 폭격은 끝이 났다. 하지만 수많은 아픔 잔해가 남아있다. 살아남은 사람도 그 잔인한 기억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을, 노을이 아름다운 해질 무렵에 미군의 마지막 양심으로 살아남았던 남매는 목에 도시락 통을 매고 오빠가 여동생을 업은 채로 엄마를 찾아 바윗골로 다시 돌아왔다.미군은 자기들이 죽여야 하는 위험한 대상,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했다. 자기 자신이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포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따랐다.상황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상황이 그랬다는 이유로 인간은 참으로 무서운 짓을 많이도 저지른다. 혼자가 아니라 무리 속에 있을 때에는 도덕성도 약해지고 이성도 약해지는 것인가!내가 만약 그 상황 속에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혼란스럽고 무서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영화 후반부를 보면 학교로 떠나는 마을의 청년에게 어르신들이 당부하시는 말씀이 있다. ‘나서지마’ 보통의 사람들은 그저 보통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아마 나도 공포에 질려 굴다리 밑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웅크려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살고 운이 나쁘면 총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바보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학 과 :학 번 :성 명 :이 책을 읽기 전 “바보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 라는 제목을 알고 나도 모르는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왜 그랬었는지 알게 되었고 이 책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시대 사람들에게 꼭 전해 주시고 싶은 내용이 있는 중요한 책 이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역사에 뭍혀있는 이책의 주인공 작은 예수로 살다간 사랑의 사도 서서평 선교사님을 자랑하고 싶다.조선으로 오게 된 과정과 이유는 이렇다. 뉴욕에서 공립학교를 졸업한 후 뉴욕 시 병원에서 간호사 훈련을 받고 있던 어느 주일 저녁 동료 간호사의 권유로 개신교 교회에서 예배에 함께 참석하게 되었고 자신의 행위나 다른 어떤 사람의 수고로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그때 예수그리스도께 완전히 항복했고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기독교로 개종 했다는 고백을 들은 카톨릭 신자인 어머니는 의절을 했고 그녀는 집 밖으로 쫒겨난다. 마지막 안식년 그리움으로 찾아간 어머니는 “거지꼴로 나타난 네가 내 딸이라고 하면서 모양이 창피하니 내 눈엔 보이지 말고 어서가라”는 문전 박대를 받는다. 운명하기 며칠 전 성장의 아픔, 어머니에게 거절당한 슬픈 이야기를 임종직전 양 딸 곽애례에게 털어놓은 일이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와 거절감이 너무도 컸을 것이다. 감춘상처를 마지막에야 내어놓는 한 인간으로서의 선교사님 마음이 전해져 마음이 먹먹해졌다. 아픈상처를 싸메고 남의 아픈 상처를 돌보아 주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 아름답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어떠한 삶이 였을까!? 그의 대답은 행복하다 였다.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던 근거는 이세상에서의 성공이 목표가 아닌 하나님 나라 확장과 , 하나님 영광을 위한 삶 섬김의 삶이 목표였기 때문이였을 것이다.선교사님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에 대한 사회사업시설 에서 일했고 그 후에 유대인 요양원에서 일했으나 성경을 더 알고 싶은 서평은 화잇박사의 뉴욕성경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때 “저에게 영적 세상이 열리고 마치 새로운 포도주가 제 혈관을 가득 채운 것처럼 새로운 인생이 열렸 답니다” 라고 말한다. 어느날 조선에 있는 병원으로부터 정식간호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한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 말이 곧 바로 서평의 마음에 닿아 재능을 하나님의 도를 위해 사용될 수 있어서 행복 했다고 한다. 다른 친구 몇 명과 지원을 하게 되고 1912년 조선에 오게 된다. 광주 제중원에서 하는 일과 조선어를 배우는 것이 첫 임무였다.2년후 군산으로 전출 그후에 서울에 있는 세브란스연합병원에서 일했고, 그녀는 “인생이란 게 무엇이든 이루고 싶은 거야 많았지만 그게 제 한계였습니다!” 라고 말한다. 앓고 있는 병으로(Spru, 스프루) 병원일과 간호사 훈련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 건강을 되찾으려는 오랜 수고가 있었지만 완치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았고 광주에서 총명한 소녀들이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찾아왔고 누운 채로 가르치기 시작하며 이를 통해 이일 성경학교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이일 성경학교 건축을 할 수 있도록 돈을 보내주는 플로리다 여성 로이스닐은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이 여인의 열정은 이곳 모래 바닥에 앉아, 심지어 지금 찢어지고 부러진 날개로 더 거대한 도약을 꿈꾸고 있다니 이 얼마나 봉사와 정복의 고상한 비전이란 말인가! 놀랍고 용맹스러운 영웅적 행동입니다!” 라고 말이다.서서평선교사는 스스로 순교자의 길을 간다고 여겼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의 의미였다..가서 모든 민족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따라 1930년 19명의 학생으로 학교를 열었고, 일본정부로부터 15~40세까지의 소녀들과 여인들을 가르치는 4등급 사립학교를 열 수 있는 허가를 받는다.성경학과와 보통과가 있었다. 보통과는 일반상식과 역사를 다루었다.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라는 말씀따라 서평선교사님이 조선 선교사로 부임했던 때는 1910년 한일병탄 직후라 모든 면에서 뒤숭숭하기 그지 없었다. 브루클린의 유대인 결핵환자 요양소와 이탈리아 이민자 수용소에서 자원봉사도 하고 맨해튼 펜실베이니아 정거장에서 ‘여행객을 돕는 선교회’에서 자원봉사를 했다.1912년, 궁핍한 조선땅에서 꽁보리밥에 고무신 신고 조선인으로 사시며 모든삶을 바친 서평선교사님의 삶은 땅에 떨어진 밀알의 삶이였습니다. 잊혀진 과거의 유산이 되었지만 많은 열매들로 현재 우리가 그 은혜를 값없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서평선교사님께서 점박이 조랑말을 타고 천지가 비좁도록 다니시던 너릿재를 지나 담양으로, 보성 더욱이 애양원을 찾으시고 나병 환우들을 돌보았다. 22년동안 많은 업적을 남기셨다. 이땅에서 여성으로, 평신도로, 간호사로 암흑같던 조선에서 눈물로 사셨던 믿음의 선배가 조선을 섬기며 행복해 하셨던 눈물없인 읽을 수 없는 이야기들 이었다.채플후 동영상으로 뵐때는 고우신 모습에 고상하게 선교를 하셨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결혼도 않하시고 모진 고난의 세월을 보내며 섬겨주셨다. 그 사랑은 작은예수라 칭함 받아도 무색하지 않다.천국만을 바라보며 달려갔던 사도바울 처럼 서서평선교사님 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섬김의 삶을 사셨다. 천국보화의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영생의 삶은 이땅의 그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한한 가치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성공을 위해 열심을 다하고 있는 스펙쌓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이시대 사람들,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책을 통해 바보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라고 말씀해 주신다. 선택과,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성공의 대열에 서기위해 온힘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섬김은 이시대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인기있는 아이콘이 아니다 개인 중심적으로 변화 되어가고 있는 때에 남을위한 섬김의 삶이란 세상의 시각은 바보의 삶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공을 목표로한 삶이 아니라 섬김을 목표로 하는 삶을 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앞에 하나님 뜻대로 살기를 소망 한다고 기도는 잘 하지만 실상은 섬기지 못하는 삶이였음을 보게 된다. 좀 더 세워진 모습으로 하나님을 자랑하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