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 서 >들어가며수업지도안1. 교재 및 단원명2. 단원 설정 이유3. 학습목표(이해, 기능, 태도)1) 지식 및 이해의 측면2) 능력 및 기능의 측면3) 가치 및 태도의 측면4. 단원의 구성 및 차시별 교수-학습 과정의 계획5. 지도 유의점1) 교과서가 기본이 된 다양한 수업매체 활용2) 학습자의 흥미 유발6. 본시 학습 계획7. 판서 계획, 교수-학습 자료붙임: 1. 판서 계획 사진(익지)붙임: 2. PPT 자료(ICT 활용 출력본)붙임: 3. 프린터 물(요약정리 유인물)들어가며교생실습 하는 동안 사대부고 1학년을 대상으로 2차례의 수업을 시연했다. 사대부고는 한국사 과목을 집중이수제로 일주일에 5단위로 운영되고 있고, 현재 남자반(1~5반)만 한국사를 이수과정에 있다. 그 중에 역사과 선생님 2분께서 2개반·3개반씩으로 교수한다. 그리고 1차시 수업을 각 반에 한 번씩하게 되면, 하루에 3번을 할 수가 있었다.6 -사대부고는 국립대의 부설고등학교로 일명 교생실습 이수과정의 역할하고 있는 학교다. 학생들의 분위기는 타 학교보다는 심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엇나가는 일이 없었다. 몇 명의 학생 때문에 면학분위기가 흐트러진 것을 볼 수가 있었고, 남학생들이 집중이수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고, 일찍이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상당하지만, 부산지역이 자사고와 특목고가 입지적으로 생겨난 탓에 학생의 전반적인 질이 떨어졌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아직 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고, 생활이 안정되지 않고 어수선한 분위기에 종종 싸움이 일어나 연루되었던 학생에 대해서 처분이 있었다. 여러 가지 인성교육을 힘을 쓰지만, 이 또한 종종 소수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여러 가지 학교분위기를 직접보고 돌아가는 사정과 각자 맡고 있는 역할을 가진 계원 및 기타 업무자의 이야기도 들었다. 이를 통해서 나름대로 판단이 세웠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수업을 잘하는 것이 주요한 일이지만, 그 이전에 흥미가 없거나 태도가 불량인 학생들도 일단 수업에 끌어들이는 것이 필요했다. 세웠으며, 교과서의 지문을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한 유인물로 복습효과를 이룰 수 있게 하는 점이 주된 요소였다.지도 선생님은 교과서와 더불어 직접 제작한 학습자료와 PPT로 수업을 진행하며, 한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이루도록 학생들을 독려하셨다. 중요한 내용은 직접 필기하도록 판서를 하고, 그림이나 도표로 깔끔하게 정리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와 같은 효과를 보기 위해서 PPT와 학습자료 중심으로 수업을 구성해보았다.수업지도안1. 교재 및 단원명교재: 고등학교 한국사저자 및 출판사: 한철호, 김기승, 김인기 조왕호, 권나리, 박지숙, (주)미래엔 컬처그룹대단원 Ⅵ.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민족 운동의 전개중단원 4. 나라 안에서 다양한 민족 운동을 전개하다소단원 4-4 일어서는 농민·노동자들 / 4-6 차별 없는 사회를 꿈꾸며2. 단원 설정 이유? 3·1운동 이후 소작 쟁의와 노동 쟁의가 치열하게 일어난 배경을 이해하고 1920년대 소작·노동 쟁의의 성격을 파악한다. 이와 더불어 1920년대의 사회적인 구습과 악습 등 사회적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여성 운동, 소년 운동, 형평 운동 등의 모습을 통해서 알아보고 이는 반제항일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이러한 단원을 설정을 하였다.3. 학습목표(이해, 기능, 태도))2009 개정교육과정의 한국사교과서 집필기준에서의 학습목표는 ‘일제 강점기의 사회·경제적 변동에 따른 사회 모습의 변화를 파악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사교과서는 크게 '지식 및 이해의 측면', '능력 및 기능의 측면', '가치 및 태도의 측면'의 세부목표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서술되어 있다.1) 지식 및 이해의 측면일본의 독점 자본이 진출하면서 한국인의 경제활동에 큰 타격을 입었고 우리 민족의 대부분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았음을 설명한다. 일제의 경제적 수탈 속에서 자작농이 소작농으로 전락했고, 만주나 연해주, 일본으로 이주하는 농민들이 증가했음을 알 수가 있고, 사회적 차별에 대해서 어떤 운동이 일어났고, 전개되었해서 추체험(追體驗)을 할 수 있도록 하여, 과거의 사실이지만, 현재의 상황과 견주어서, 노동자의 삶과 농민의 삶, 그리고 사회적 차별에 대한 극복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며, 역지사지를 통해서, 입장차를 통해서, 좁은 시각에서 넓은 시각으로 바라본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깊이 공감할 수 있고, 사회에서 수많은 알 수 없는 일들 속에서 조금은 자신만의 기준(시각)을 가질 수 있는 능력과 기능을 가진다.3) 가치 및 태도의 측면민족적인 시각에서도 바라보는 것이지만, 사회적 약자를 통해서 본 우리 역사를 다시금 확인하여, 역사가 가지고 있는 키워드인 소통(현재와 과거와의 대화 - E.H. Carr)과 부합하는 계기가 되어, 역사라는 것이 결국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현실과 비교하여, 나아갈 길과 과제를 제시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바로, 시대정신에 대해서 은유적으로 내포할 수 있도록 이러한 태도와 가치를 키우는 것이다.4. 단원의 구성 및 차시별 교수-학습 과정의 계획단원명Ⅵ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민족 운동의 전개중단원명1. 팽창하는 제국주의와 민중의 저항2. 일제의 억압과 수탈은 어떻게 전개되었나?3.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4. 나라 안에서 다양한 민족 운동을 전개하다수업주제팽창하는 제국주의와 민중의 저항무단 통치와 민족 분열 통치식민지 경제 침탈1910년대 국내외 민족 운동3.1 운동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수립과 활동실력 양성 운동6.10 만세 운동과 광주 학생 항일 운동농민ㆍ노동 운동, 사회 운동민족 유일당 운동과 신간회시간1234교과서 쪽수212~219220~223224~227228~233234~237238~241242~246247~249`250~253/256~257253~255중단원명차시주제명지도 내용비고4.나라 안에서 다양한 민족 운동을 전개하다.1/44-1,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었나?4-2 실력을 길러야만 독립을 이룰 수 있다.? 민족 운동의 다양한 노선? 민족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차이점 광주 학생 항일 운동? 탐구 활동: 6·10 만세 운동과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의 의의3/44-4 일어서는 농민·노동자들4-6 차별 없는 사회를 꿈꾸며? 농민 운동? 노동 운동? 여성, 소년, 형평 운동? 탐구 활동: 농민·노동 운동의 전개4/44-5 신간회, 항일투쟁의 유일 전선을 형성하다? 민족 유일당 운동의 배경과 전개? 신간회의 창립과 활동? 신간회 해소? 탐구 활동: 민족 유일당 운동의 전개와 신간회5. 지도 유의점1) 교과서가 기본이 된 다양한 수업매체 활용교과서위주로 공부한다는 말은 사회군 교과에서는 절대적이다. 그래서 따라서 요약정리나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교과서만큼 좋은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과서를 주교재로 삼고 그에 대해서 읽고, 부수적인 것은 다양한 수업 매체로 활용한다.역사적 해석 능력과 분석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전개 과정에서 사료를 인용한다면 내용의 사실성을 높일 수 있다. 짧은 사료를 문장의 일부로 포함시키거나 긴 사료를 독립적으로 인용하는 두 가지 방식이 주로 사용되는데, 독립적 인용은 학생들의 예상 수준에 따라 심화학습으로 편성할 수도 있다.텍스트 자료 뿐 아니라 사진이나 그림, 지도 등 시각자료를 적절히 활용하여 학습 내용을 다면적으로 구성하고 내용의 흥미를 높이는 방식은 이전부터 효과가 입증된 교수 전략이다. 자료를 구하기 어렵다면 만화, 삽화 등 학생들에게 친숙한 방법으로 제시할 수 있다. 또 각국의 영토 확장 과정에 따라 이전의 영역과 비교하도록 돕는 역사 지도도 활용할 수 있다.또 학생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시각적으로 재구성한 사극이나 역사 교양물 등도 있다. 물론 이러한 자료는 역사적 사료라기보다 작가적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허구의 측면이 크다는 점에서 교사가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고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설명해야 한다.2) 학습자의 흥미 유발국가교육과정의 교육목표는 지식?이해, 기능, 가치?태도 등 영역별로 구분되어 있다. 이러한 분류는 대개 교사가 학습자에게 학습을 통해 내면화하길 바라는 목표로서, 학습자의 려 없이 나열되고 있어 기본적인 내용을 숙지하는 것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학습자의 흥미를 유발하기는 요원한 일이다. 다만 교사가 능동적으로 학습자의 심층적 이해를 이끌어 냄으로써 자발적인 학습과 내용의 구조화를 도울 수는 있을 것이다.교과서가 학습자의 흥미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여러 조건 중에서 이 단원은 학습자의 선수지식 수준에 따라 두 가지로 단순화하여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중학교 때 이미 유사내용을 학습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 지식이라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는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학습할 내용이 너무 포괄적이거나 장황하여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감을 잡지 못할 경우'이다.)각각의 동기 유발 전략으로, 학습 내용이 너무 자명한 경우에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의심하게 하는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미 머릿속에 있는 지식의 구성을 해체하고 재구조화함으로써 의외성을 느끼고 더 깊은 이해로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학습해야 할 내용이 많아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학생에게는 생활 경험이나 인간 본성과 연결시키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서술방식으로 학습의 이해를 높이고 수업 내용이 개인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교과한국사차시1지도대상사대부고 1학년지도교사박영경수업실연박찬혁단원명대Ⅵ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민족 운동의 전개학습장소교실중4. 나라 안에서 다양한 민족 운동을 전개하다소4-4 농민ㆍ노동 운동, 4-6 사회 운동 (250~253 /256~257)학습목표*3·1운동 이후 소작 쟁의와 노동 쟁의가 치열하게 일어난 배경 이해*1920년대 소작·노동 쟁의의 성격을 파악한다.*사회적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여성 운동, 소년 운동, 형평 운동 등 모습 파악학습자료 및 도구교사학생수업모형강의식문답식교과서, 유인물, ppt교과서, 유인물, 필기도구학습단계지도중점교수-학습활동시간학습자료 및 유의점교사활동학생활동도입학습분위기조성? 반가운 인사? 함께 인사한다.시작전수업 분위기를 조성한다.? 전시학습과서
3 -학급 경영관? 학급 경영에 대한 개설? 학급 경영은 전적으로 연좌제, 책임제로 실시? 학급 경영에 관한 사항(1)- 교사의 권위: 권위를 유지하는 수단, 소통창구 마련? 학급 경영에 관한 사항(2)- 각 학급 구성원들의 실지적 지혜(자발적 참여, 주인의식)? 학급 경영관에 대한 정리학급 경영에 대한 개설학급 경영관에 대해서는 예절은 다소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학급의 의결은 다소 개방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먼저 밝힌다. 우선, 학급 경영은 학급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인적 자원과 비인적 자원을 활용하여 계획, 조직, 지도 통제하는 과정을 통해서 학급조직의 과업을 수행하는 활동이라고 명시되어있다.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교사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학급 구성원들의 역할도 또한 가볍지 않게 무겁다.만약 교사의 판단으로 수행한다면, 손쉽고 정확하게 그리고 빠르게 과업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급 구성원들이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므로, 효율성은 있으나, 잠재적 인격상승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방관적인 시각으로 보이지만, 교사는 그 문제에 대해서 해결책을 줄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면, 학급 구성원들도 생각을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고 생각한다.학급 경영은 전적으로 연좌제, 책임제로 실시물론, 반장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1반장, 2부반장, 각 분단(前) 책임자, 각 분단(後), 3감찰관 제도로 책임자로 구성하여, 이와 맞게 학급 조직을 구성하여, 유기적인 체제를 꾀하게 한다. 이는 삼권분립을 차용한 것이다.반장에게는 큰 의무와 권리가 주어진다. 하지만, 교사가 독단적으로 하는 것이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런 사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모여서 과업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업을 통해서 토론을 한다. 형식적인 토론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토론이 될 수 있도록, 교사는 학급의 주장의 맹점을 공격하여, 그들의 보완점을 개선하도록 유도하고, 또한 학생들도 교사의 맹점을 논리적으로 지적하며, 자신의 소신과 의견을 피력할 수 있도록 한다. (단, 이 방법은 교사의 인내심이 충분했을 때에 가능하다는 점을 먼저 언급한다.)그러한 사항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은 바로 아래에 있는 그림과 같다.後1분단(後)책임자後1분단(後)책임자後1분단(後)책임자後2後3後2後3後2後3後4後5後4後5後4後5감찰관부반장감찰관반장감찰관부반장前1前2前1前2前1前2前3前4前3前4前3前4분단(前)책임자前5분단(前)책임자前5분단(前)책임자前5학급 담임 / 교과 교사 자리 및 (반장·학급의결자리)학급 구성 책임과 학급 자리 배치도(사대부고 1-5 기준으로 예시 안)학급 경영에 관한 사항(1) - 교사의 권위: 권위를 유지하는 수단, 소통창구 마련그리고 오늘날의 교사와 학급구성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권위(權威)이다.이 권위란 말은 참 부정적인 의미로 내포된 것은 지난 군사정권시절 폐해의 역할이 큰 것으로 보인다.과업을 위해, 의사결정을 무시하고, 소수집단이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나머지는 그러한 의결에 따르는 시스템으로 획일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를 만들었다. 그리고 권위라는 단어는 모든 세대가 참 좋아하지 않는 단어고 개념이다.하지만, 권위의 참 뜻을 본다면, 다른 사람이 나를 따를 수 있고, 신뢰하며, 이러한 과업을 달성을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과 힘을 뜻한다. 이러한 학급 경영 시스템에 대해서 획일적이라고 비판을 받을 수가 있다. 바로 매뉴얼대로 하는 것인데, 매뉴얼대로 한다면, 일은 잘 돌아갈 것 같지만, 실상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자 지론이다. 이런 권위를 유지하려면, 학급 구성원(학생)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창구가 필요하다.개 념내 용학급 구성원 간의 소통교사 권위의 유지 목적학급 구성원 간의 소통 수단비밀쪽지나, 비밀 메신저 제도:(청나라 강건성세, 건륭제의 비밀상소를 차용을 함)학급 구성원 간의 소통 수단 효과-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복을 방지하기 위한 창구- 학급 내부 사정과 소식의 흐름을 파악 목적- 교사의 학급 경영권의 행정적인 편의- 단, 책임감과 보안에 강해야한다.(사명감과 책임감에 투철하고, 고지식한 학생을 선발)학급 구성원 소통에 대한 내용학급 경영에 관한 사항(2) - 각 학급 구성원들의 실지적 지혜(능동적인 행동, 주인의식)매뉴얼대로 하면 좋은 점은 분명히 있다.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만큼 좋다는 것도 알고 있고, 나도 동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교생실습 1주차에 있었던 일을 언급하자면, 청소시간에 자기가 맡은 부분만 청소하고 나서 놀려나가고 할 일을 다 했지만, 마무리는 1-5 부반장인 철진이가 마지막 분리수거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다들 외면하고 자기 할 일과 놀고만 있었다. 당시에 쓰레기가 혼자서 처리하기엔 너무 많아서 조금 치우라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5번을 지시를 해도 듣지 않아서, 결국 교육계에서 쓸 수 있는 충격요법을 쓰고 임계점 가깝게 위험하게 처신을 했다. 그 중에서도 이런 말을 주길 위해서 “너희 반이고, 너희가 주인인 공간이다. 또한 어려우면 외면하지마라,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 때는 괜찮지만, 그렇게 못할 정도의 많은 쓰레기를 분리수거 한다면, 너나 할 것 없이 도와주어야 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는 교실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흔한 현상이다. 따라서 요즘 사회나 기업체에서는 실지적 지혜(Practical Wisdom)를 가진 인재를 원한다고 한다. 바로 일의 본질을 보는 것이다. 주어진 매뉴얼에 따라서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본질을 보면 매뉴얼대로 해야 할지 하지 않아야 할지를 다소 쉽게 판단할 수가 있다. 그래서 학급 경영을 하려면, 능동적인 행동과 주인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과제-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중국사의 대가, 수호전을 역사로 읽다. 감상문 -- 중국사의 대가, 수호전을 역사로 읽다.삼국지연의와 함께 수호전은 역사를 기초로 한 소설로 유명한데 이 책은 수호전의 역사적 사실 부분을 증명해 주는 책이다.송대의 양산박은 이야기 그대로 도적과 비밀결사의 은신처였고, 송강과 휘종을 비롯한 많은 등장인물의 실제 행적이 예상보다 역사적 사실과 더 가까이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수호전은 제70회를 전후한 부분이 분수령이다. 70회까지는 108명의 호걸이 이런저런 경로로 양산박의 수중 요새에 집결한 후 세력을 정비하고 임무를 분담하는 내용으로 일단락된다. 그리고 70회 이후부터는 송강 등, 108명이 조정에 귀순해서 정부군으로서 활약하는 내용으로 이어지는데, 그 중 최대의 공적은 방랍이 이끄는 반군과의 싸움이다. 여기서 송강은 적군을 격파하고 방랍을 포로로 잡아 수도로 개선하지만, 송강도 결국 조정의 의심을 받은 끝에 독주를 받고 죽음에 이른다.수호전에서 송강의 활동은 북송(960~1127)의 제8대 천자 휘종(徽宗) 황제(1101~1125, 재위)의 선화(宣和) 연간(1119~1125)에 시작된다. 휘종은 재위기간 동안 여섯 번 연호를 바꿨는데, 선화는 치세 만년의 연호다. 당시 수도 개봉의 인구는 100만 전후로 세계 최대였으며, 경제면에서도 풍요로웠다. 개봉으로는 전국의 물산이 유입되었고, 서아시아 지방의 대상들도 자주 왕래하여 금은보화나 비단, 도자기, 그 밖의 모든 상품들이 거래되는 곳이었다. 따라서 당시 개봉의 상류사회에서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듯한 진귀한 물품을 소유하지 않고서는 행세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개봉의 인심이 호경기에 취해 있는 사이, 지방은 조세 부담으로 고통 받았고 백성의 경제생활은 파탄에 직면했다. 그 결과 일어난 사건이 수호전에도 등장하는 ‘방랍의 반란’이며, 이어서 여진족의 신흥국가인 금의 침입을 받게 된다.수호전에서는 송강이 적을 상대할 때 적군에 의해서도 마법이 많이 펼쳐진다. 당대 말엽에서 송에 걸친 시기, 민간에서는 마법의 가능성을 믿었던 듯하다. 때로는 이것이 반란의 도구로 이용되어 민심을 선동하는 무기가 되었다. 일례로 북송 때 일어난 ‘왕측의 반란’을 들 수 있다. 왕측은 신분이 낮은 일개 졸병에 지나지 않았으나 요술을 부릴 줄 안다고 동료들을 속여서 군사를 모으고 모반을 꾀했다. 이런 송대의 민간신앙이 후세에 전해져 공손승 같은 마법사가 수호전에서 활개 치게 된 것이다.수호전은 이야기꾼들의 공연, 즉 설화 등이 모여 만들어진 민중소설이다. 따라서 수호전의 등장인물은 주로 서민과 가장 가까운 인물들, 곧 하급군인과 서리, 농민과 암거래상 등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하급군인이 많이 출현했는데, 그중 활발하고 의협심이 강한 노지심이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노지심의 본명은 노달로, 온몸에 화려한 문신을 새겨 화화상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다. 노달은 한때 군대의 소대장이었으나 우연히 사기를 당한 부녀를 도와주려다가 살인을 하게 되었다. 그길로 오대산으로 도망친 그는 불교에 귀의하여 지심이란 법명을 얻었다. 하지만 경솔하고 단순한 성격 탓에 어딜 가나 말썽을 피웠다.노지심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다가 오대산에서 쫓겨나게 된다. 오대산에서 추방당한 노지심은 그길로 대상국사라는 절로 갔다. 그 무렵 노지심은 62근(37킬로그램)이나 되는 철선장을 마련해 길을 떠나는데, 이것은 그의 필생의 무기가 되었다. 대상국사에서도 노지심은 말썽을 피워, 그 처벌로 채마밭지기를 하게 되었다. 채소밭을 관리하던 어느 날, 노지심은 부근의 파락호들이 시비를 걸자 이 무거운 철봉을 휘둘렀다. 그때 지나가던 교두임충이 이를 칭찬하여 인연을 맺게 된다. 노지심은 나중에 임충이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가던 중 죽을 뻔한 것을 도와준다. 그러나 그 때문에 당국의 미움을 사게 되자 절에서 도망쳐서 도적 두목이 되고, 후에는 양산박으로 들어가 송강과 합류한다.송대의 기록을 보면 사찰이 종종 범법자의 은신처가 되어 치안을 어지럽히는 원천이 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정부에서는 등록되지 않은 사찰들을 모조리 혁파하는 등 승려들을 단속하는 조칙을 엄격히 했다. 노지심은 송강과 합류한 후 방랍군 토벌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운다. 그리고 개선하는 도중에 항주 육화사에 들렀는데, 우연히 절강의 파도 소리를 듣고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 노지심은 그길로 선정에 들어가 앉은 채로 입적했다.수호전에 여실히 묘사된 서리의 생태는 생생한 역사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서리는 정부의 모든 관청의 말단에 둥지를 틀고 있는 하급 아전을 가리킨다. 백성들이 정부와 접촉하려면 언제든지 서리의 손을 거쳐야 했다. 서리는 반드시 정부의 명령대로만 움직인다고는 볼 수 없었으며 정부와 백성 사이에서 일종의 독립왕국을 형성한 듯한 존재였다. 수호전은 어떤 면에서는 서리가 얼마나 정부의 명령을 듣지 않는 자들인지 그 실태를 기록한 논픽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인공 송강이 그렇고 인기 조연으로 활약한 대종과 이규 역시 마찬가지다. 송강은 현의 서리이고 대종과 이규는 주의 서리라는 차이가 있지만 서리로서의 생태는 공통적이다.중국에서 이른바 군현정치가 시작된 이래, 행정구획의 최소 단위는 ‘현’이었다. 송대에는 전국에 대략 1,300개의 현이 있었으며, 현의 중심은 이른바 ‘육방’으로 이ㆍ호ㆍ예ㆍ병ㆍ형ㆍ공 6부를 두어 행정사무를 보았다. 이들 각 방에서 근무하는 서기가 바로 서리였고 각 방의 서리의 우두머리를 압사라 하였는데 수호전의 주인공인 송강은 운성현 형방의 압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서리의 세계에서도 한 단계 높은 명칭으로 부르는 게 관례였으므로 송강 역시 평범한 서리였을 듯하다.송강은 운성현 송가촌의 대지주 송태공의 장남이었는데, 장남 후계권을 아우에게 물려주고 현성에 나가 서리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대지주들이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정권과 결탁해야 했기 때문에 송강이 일족을 대표하여 현의 서리가 된 듯하다. 그런데 일개 현 서리인 송강이 수호전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건 대체 무슨 까닭일까? 수호전은 애초에 대중에게 상연된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대중의 공감을 얻어야 했다. 당시 일반 대중이 정치권력을 접할 때는 반드시 서리의 손을 거쳐야 했다. 따라서 실제 민중의 눈에 비친 서리는 아마도 욕심 많고 부도덕한 부류였을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송강처럼 훌륭한 서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역설이 오히려 대중에게 환영을 받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소설 수호전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로 존경받는 사람은 천자나 대신, 장군 등이 아니라 실제로 도교의 교주라고 할 수 있는 장천사다. 장천사야말로 천자가 절대 권력을 가지고서도 행할 수 없는 기적을 일으켜 백성을 도탄에서 구원해주는 법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도교에서 천사 집안은 단순히 상징적인 존재일 뿐 도교의 신을 모시는 전국의 도관이나 여기서 사는 도사들은 정부의 사부로부터 감독과 통제를 받았다.정부는 도교가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서도 장천사를 존중해주어야 했다. 처음에 휘종은 도교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으나, 아들이 생기지 않아서 도사를 불러 기도를 시켰다. 그 후 과연 연달아 아들을 얻자 휘종은 도교가 정말로 이익을 가져다주는 종교라고 믿게 되어 도교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 후 휘종은 도사들을 궁중으로 불러들였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도관을 짓기도 했는데, 이것은 재정문란의 한 가지 원인이 되었다. 종교는 정권과 결탁하면 타락하는 법이므로, 당시 궁중에 출입하던 도사들 중에는 부패한 속물들이 많았다.수호전은 작자 한 사람의 손으로 창작된 것이 아니라 완성되기까지 많은 부류의 민중들이 참가했다. 부분적인 창작자, 비평가, 개정과 가필자 등 무수한 대중의 손을 거쳐 재료가 준비되었고 이것이 마지막에 100회본으로 정리되었다. 수호전이 대중과 함께 보조를 맞춰왔던 까닭에 최종 정리단계에서 작자의 개인적 이상과 기호가 보태졌다 하더라도 그 바탕에는 중국 땅에 살았던 민중의 신앙과 사상이 깔려 있었다.수호전의 사상은 전체적으로 도교적이다. 도교의 본래 취지는 ‘욕심이 없는 고요한 마음’을 추구하는 것이었지만, 당시 도교는 현세의 이익을 추구하고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는 등 사교적 색채를 띠었다. 이런 이유로 일반 백성들은 도교를 좋아했다. 따라서 도교는 도사들이 지도하는 종교라기보다는 오히려 민중의 풍습이었기에 이유를 불문하고 민중들에게 무조건 존중되었다.송대의 도장, 즉 도교와 관련된 일체의 경전을 편찬할 무렵, 임세장이라는 부호가 뇌물을 써서 마니교의 경전을 그 속에 수록했다고 한다. 마니교는 이란에 기원을 둔 배화교의 한 분파로 중국에서는 마교로 취급되었고, 마교는 종종 반정부적인 비밀결사의 단원을 결합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비밀결사들은 마교를 통해 결집되었는데, 그들은 소금 밀매 등의 암거래를 하였다. 비밀결사 쪽에서 보자면 민중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고객이었으므로 그들을 침해하는 일을 하지 않았고, 때에 따라 정부 관료의 횡포에 맞서 민중을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맡기도 했다. 곧 비밀결사는 사회의 필요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양산박 집단도 이런 비밀결사의 하나로 묘사된다.수호전의 작자는 이러한 마교적 도교를 무조건 용인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행위는 마로 인정할 따름이며, 마는 결국 정도에 의해 구제되어야 한다는 작자의 의중이 도교관을 통해 실려 있다. 이를테면 송강의 결말은 단지 그 공명을 역사에 영구히 남겼다는 식의 공허한 유교관념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수호전 말미에 보면, 초주 백성들이 송강을 기리는 사당을 건립하고 사철 제사를 받들었는데, 백성들이 제사를 모신 것은 송강이 생전의 마업을 씻는 의미에서 죽어서는 민중의 괴로움에 귀를 기울이고 널리 이익을 줘야 한다는 도교적 이상이 실려 있다.
스위스 - 오스트리아바로 옆에 붙어 있어도, 먼 나라.1. 간략한 두나라 소개1) 오스트리아2) 스위스2. 국명 비교1)오스트리아 공화국(Republic of Austria)7 -2)스위스 연방(Swiss Confederation)3. 수도 이름의 유래1) 비엔나2) 베른4. 국가의 풍토1) 오스트리아(1)산의 나라, 강의 나라 오스트리아의 지형(2)두 기후의 점이지대, 오스트리아의 기후2) 스위스(1) 울창한 산과 깊은 호수의 나라, 스위스의 지형(2)국토가 좁은데 비해, 복잡한 스위스의 기후5. 국가 형성 역사1)오스트리아 역사가 독일의 역사였던, 오스트리아2)오스트리아의 영토확장 반대 연합한 주들의 나라, 스위스6. 연방공화국, 영세중립국, 정치체제, 공식어 / 통화, 요들송 비교7. 관광산업테마1) 스위스의 관광테마: 자연2) 오스트리아 관광테마: 스토리텔링스위스 / 오스트리아 지도1.간략한 두나라 소개1) 오스트리아? 국명 : 오스트리아 공화국(Republic of Austria)? 수도 : 빈(Vienna, 약 167만명)? 인구 : 약 823만명(2012.2월)? 면적 : 83,872㎢(한반도의 약 2/5)? 언어 : 독일어(공식어)? 민족 : 오스트리아계(91%), 터키계(1.6%), 독일계(1%), 구유고연방 출신(2.7%)? 종교 : 가톨릭(74%), 개신교(4.6%), 이슬람교(4.3%), 무교(12%), 기타(5%)2) 스위스? 국명 : 스위스 연방(Swiss Confederation)? 수도 : 베른(Bern, 13만명)? 인구 : 약 764만명(2011)? 면적 : 41,293㎢(한반도의 약 1/5)? 언어 : 독일어(63.7%), 불어(20.4%), 이탈리아어(6.5%), 로망슈어(0.5%), 기타(8.9%)? 종교 : 가톨릭(41.8%), 개신교(35.3%),이슬람교(4.3%), 무교·기타(18.6%)2. 국명 비교1)오스트리아 공화국(Republic of Austria)독일어로 오스트리아를 뜻하는 Osterreich는'동쪽 왕국'을 뜻하는 고대 독일어 Ostarrichi에서 기원한다. 많은 언어에서 쓰이고 있는 Austria는 이를 라틴어화한 이름이다2)스위스 연방(Swiss Confederation)스위스라는 명칭은 스위스가 건국되는데 중심 역할을 한 슈비츠(Schwyz) 주에서 유래한 것으로 슈비츠는 고대 독일어로 낙농장(우유를 생산하는 농장)을 의미하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3. 수도 이름의 유래오스트리아의 빈(비엔나)1) 비엔나오스트리아 수도인 비엔나, Wien(독일어), Vienne(프랑스어)원래는 도나우 강 연안 고대 로마의 요새로 빈도본나(Windobona)라 불렀다. 중세에는 881년 비로소 빈이라는 이름이 나타나고 12세기에 이르러 도시가 형성되었다스위스의 베른 구 시가지2) 베른스위스의 수도 및 주도인 베른 Bern은 독일어인 곰(Bar)에서 유래한다. 1191년에 체링겐가 베르히톨트 5세(Berchtold V of Zahringen)가 아래(Aare) 강가에 지은 성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가문이 곰 사냥을 즐겨서 사냥감의 이름을 도시의 이름으로 지었다는 말이 있다.(참고로 베를린의 어원도, 곰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4.국가의 풍토1) 오스트리아(1)산의 나라, 강의 나라 오스트리아의 지형오스트리아는 국토의 2/3가 동알프스의 산지이며, 도나우강과 그 지류인 인강 무르강 드라바강등이 동서로 흐르면서 이루어 놓은 골짜기가 산지를 삼분한다.(2)두 기후의 점이지대, 오스트리아의 기후오스트리아는 중부 유럽에 있으므로 동쪽에서는 대륙성 기후, 서쪽에서는 해양성 기후가 나타나는 두 기후의 점이지대이다. 지중해의 영향은 적어 남쪽 지방에 국한된다. 바람은 북부지방에서는 서풍이, 알프스 동부지방에서는 북서풍 또는 북풍이 강하며 지형적인 조건에 따라 국지적(局地的)인 풍계(風系)가 형성되어 있다. 강수량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감소되고,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증가한다2) 스위스(1) 울창한 산과 깊은 호수의 나라, 스위스의 지형스위스는 국토를 지형에 따라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쥐라산맥 지역, 중앙저지(스위스고원) 지역, 알프스산맥 지역의 3지역으로 나뉜다. 쥐라산맥은 남쪽의 알프스산맥에 비해 해발고도가 낮으며, 주로 중생대의 석회암으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습곡산지이다. 또한 U자곡의 영향으로 생긴 많은 깊은 호수가 분포하고 있다.(2)국토가 좁은데 비해, 복잡한 스위스의 기후스위스의 기후는 국토가 좁은 데 비해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동서로 뻗은 알프스산맥 남쪽은 비교적 온난한 지중해성기후의 영향을 받으나, 북쪽은 기온차가 적은 온난다우의 서안해양성기후와, 기온차가 큰 건조한 대륙성기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변덕스러운 중간형 기후이다. 이처럼 3개의 기후형을 가진 스위스에서는 날씨 변화가 몹시 심하다. 스위스 북쪽에 저기압이 발생하여 알프스 양쪽에 극단의 기압차가 생기면 푄현상이 일어난다. 푄현상이 일어나면 알프스 북쪽에서는 기온이 급격히 상승하여 봄이나 여름이면 눈이 급속히 녹아버린다5. 국가 형성 역사1)오스트리아 역사가 독일의 역사였던, 오스트리아1871년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독일이 통일(소독일)되어 오스트리아가 분리되어 나올 때까지 오스트리아는 1440년부터 1806년까지 독일제국의 핵심국가였다. (합스부르크가의 통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전성기를 이루다가 패전하여 지금의 영토로 남게 되었다. 1918년 이후에 제1공화정이 성립 후 나치독일과 합병되고, 2차 대전에 제2공화정으로 독립하여 영세 중립국으로 유지하고 있다.2)오스트리아의 영토확장 반대 연합한 주들의 나라, 스위스9세기부터 신성로마제국의 통치, 13세기에야 오스트리아의 영토확장 방어 동맹 결성, 스위스 독립의 역사가 시작됨. 슈비츠 주의 독립을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방어 동맹들이 계속 결성되고 마침내 1499년 오스트리아 막시밀리안 1세와 벌인 슈바벤 전투에서의 승리로 스위스는 신성로마제국에서 완전히 독립하게 된다. 1515년 중립을 발표. 신교와 구교 대립, 칼뱅이 있는 제네바가 신교의 중심지, 1798년 프랑스 침공으로 스위스 동맹이 몰락, 1803년 나폴레옹이 스뷔처란트 연방국가 구성하나 그가 몰락하자 다시 스위스 공화국 탄생된다. 이후 영세 중립국으로서 유지하고 있다.6. 연방공화국, 영세중립국, 정치체제, 공식어 / 통화, 요들송 비교오스트리아스위스연방공화국여러 주들이 연방을 이루지만,중앙정부의 체제에서 발전지방자치에 가까운 연방제여러 칸톤(주)들이 동맹해서 탄생한 탓에 주들의 자치권이 강함육군은 각 칸톤들이 담당영세중립국2차 대전 이후 분단의 위기에서좌우 합작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스위스 동맹 탄생부터 계속 이어온 전통적 국가기조정치체제의회 민주주의(다당제)대통령을 선거로 선출내각총리가 대연정으로 국정주도직접 민주주의(정당이 없음)대통령 (1년 윤임제)연방평의회가 국정 주도공식어 / 통화독일어만 공식어 / 유로화독일어 외 3개국 공식어 / 스위스프랑요들송 특징오스트리아 요들은 보편적 좀 더 다이나믹, 요들이 주가 되기 보다는 민요의 후렴으로 많이 쓰이는 경향이 있음. 요들의 본향은 스위스 이지만 요들을 세계적으로 알린 나라, 오스트리아는 워낙 음악이 발달한 나라여서 요들도 여기저기에서 민요의 후렴으로 자주 불리나, 오스트리아에서도 특히 요들이 성한 곳은 알프스 지방인 티롤 지방이다..스위스 요들은 알파인 스타일의 요들을 대표하며 상대적으로 요들이 정적이며 쓰이는 발성도 아주 깊지만, 반면 너무 고지식하고 다이나믹하지 못한 편. 그리고 보수적이라 전통을 아주 중시 스위스는 국가적으로 요들을 보존하려는 것이 완고해서 지역적으로도 서로 다른 스타일의 요들이 불리고, 일반인이 듣기에는 아주 많은 인내를 요하는 곡이 많음7. 관광산업테마1) 스위스의 관광테마: 자연스위스의 마터호른풀밭의 소도 미끄러져 낙상할 정도의 가파른 산비탈에서 생활하며 어떻게 세계 상위권의 부를 가진 나라를 이루었는지를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지리조건은 흔히 ‘스위스’하면 풍광 좋은 알프스 산의 준령과 경사지의 초지를 떠올리지만, 1,450개나 되는 크고 작은 호수로 이루어진 호수국가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범어사 외부, 등잔 밑이 어두울 정도로 숨어있는 매력을 찾아서1. 동래부사와 절의 관계 - 동래부사공덕비흔히 범어사를 보면 가람의 위치라든지, 가람의 특성에 대해서 바라보게 된다.그것은 흔히 안내표에 있고, 인터넷에 있는 내용이다.생각해보면, 흔히 알고 있는 지식보다는 사람들이 흔히 잘 보지 못하는 스쳐 지난 곳을 바라보고자 한다. 불교 사찰이라는 것 보다는 숨어있는 이야기를 바라본다는 기분으로 시작해볼려고 한다.범어사 매표소 입구 어산교 건너기전 오른쪽에 가보면 출입금지라는 푯말과 함께 작은 오솔길이 보인다. 그길을 따라 가보면 비석들이 있다.동래부사 공덕비 가는 길동래부사 공덕비 (가운데 고구마 처음으로 전래한 조엄 부사 공덕비)보통 비석을 보면 탁본의 흔적이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비석들은 상태가 양호하며 심지어 글씨까지 알 수가 있다.바로 조엄이다. 조엄은 동래부사인데, 이 사람은 조선통신사로 왕래한 후에 고구마를 들어온 장본인이다. 그래서 부산에서는 유명한 인물이고, 이 곳 말고 영도에서는 그에 관한 축제 및 공덕비가 있다. 그것도 가람주변에 우리가 무심결에 지나간 역사로서, 그리고 문화적으로 숨어 있는 1인치와 같다고 할 수 있다.역대 동래부사 공덕비가 세워져 있는 이 곳은 범어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관인이었던 동래부사 공덕비가 있는 이유는 절과 인연이 깊다고 보여진다..이안눌 시가 새진 바위이러한 이유는 바로 낭백스님과 조엄의 이야기 때문인데, 숭유정책이 강한 조선시대, 비구(승려)는 엄청난 잡역을 하였다. 낭백은 내세에는 관인이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고, 훗날 조엄은 범어사 근처가 왜이리 익숙하고, 편안한 기운을 느꼈는데,, 바로 낭백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전생에 낭백인 것으로 여기고 많은 불사를 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편안한 기분을 느꼈던 것도 조엄의 이유와 다르지 않을까 생각했다.이외에 지장전 옆에 바위에 동래부사 이안눌이 지은 시를 새겨 넣었다고 한다. 틈이 좁고 천막으로 덮여져 있어 잘 볼 수가 없고, 사진찍기가 힘들다.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다.이처럼 범어사가 불교의 색을 띄지만, 유교 정신에 입각한 관인과의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배척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며 상생해가는 모습, 차이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하지만, 세상사는 점점 그런 모습을 가지기가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2.범어사 부도밭 - Healing place바위 사이로 흐르는 냇물에 지나다 보면, 여름에는 대나무 숲, 나무들로 이루어져 보이지 않는 고요한 공간이 있다. 등나무 군락지보다 더 좋고 자연스러은 바로 부도밭이다.부도는 승려의 사리를 담은 조각상인데, 하나 같이 비슷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고요한 정적을 감돌지만, 아무럼 없이 새소리를 들고, 시냇물 소리를 듣는다면, 금정산의 품격을 느낄 수가 있다. 그리고 고요한 영혼들이 스스럼없이 중생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 간결함은 마치 선(禪)이라는 정신에 대해서 물음을 답해주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