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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예배와 예전-예배관찰 보고서
    예배와 예전-예배관찰 보고서
    “예배관찰 보고서”예배 관찰 대상2020년 10월 31일, 가산00교회, 주일예배, 오전11시, 주보가 존재함설교자 : 한00 목사님설교본문/설교제목 : 시편 107편 1-9절, “여호와께 감사하라”예배의 구조1) 예배준비 (10시 50분, 부교역자의 찬양인도로 회중과 함께, 찬송가 2곡)2) 예배로의 초청 (복음성가-> 시편 낭독-> 묵상기도의 순서로 진행)? 예배 인도자가 모든 회중을 일으켜 세우고 찬양 시작,(“예수 우리 왕이여”사용)? 시편 117편 낭독3) 찬양(찬송가) (부교역자, 성도 3명으로 구성된 찬양대가 마이크를 잡고 앞에서 찬양함)4) 교독문 (예배인도자와 회중이 번갈아가면서)5) 신앙고백 (교독문 이후 특별한 언급 없이 진행, 오른손을 들고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6) 찬양(찬송가) (반주가 시작되면 회중들은 특별한 언급 없이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음)7) 대표기도 (사회적 이슈, 교회 공동체, 설교자를 위해 기도함)8) 헌금 (예배당에 입장 시 비치된 헌금함에 드리는 방식, 찬양을 부르며 헌금위원이 예배인도자에게 전달, 찬양 후 멘트 후 예배인도자의 봉헌기도로 마무리; 봉헌기도 시 찬양대 퇴장)9) 광고 (프로젝터 사용, 예배인도자의 세부안내)10) 성경읽기 (예배인도자와 회중이 번갈아가면서 읽음)11) 특별연주 (피아노, 트럼본 사용,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choir를 대체함)12) 설교 (인용구절에 대해 프로젝터 사용, 설교자의 기도로 마무리)13) 파송 (예배인도자의 손짓으로 회중을 일으켜 세움, 기존에는 복음성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찬양 후 축도로 진행되었으나, 이 날은 “날 구원하신 주 감사”로 진행되었다.)14) 마무리 (피아노 음악지원, 교회공동체 구성원의 교제 및 퇴장)예배의 특징필자가 관찰한 “가산00교회”의 예배는 오늘 날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예배의 구조를 가진 예배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예배시작 시간 전 부교역자의 찬양인도를 통한 예배음악의 사용, 공동체 구성원들의 신앙고백, 따로 구별된 찬양대의 찬양, 그리고 설교자의 말씀선포는 한국의 장로교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예배의 모습이다.특별히 이 예배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구성요소는 예배에 참여한 공동체들의 신앙고백과 설교자의 설교이다. 예배에 참여한 모든 회중들은 자신들이 믿는 바가 무엇인지를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한다. 하나님과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들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엄숙한 자세로 오른손을 들고 자신을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모두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이 예배 가운데 중요하게 여겨지는 구성요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가산00교회”의 예배는 그 날의 설교주제에 맞춰 다른 순서들이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다. 아마도 이런 아쉬움은 다른 한국교회에서도 나타나는 아쉬움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날 부르는 찬양, 대표기도자의 기도내용 등은 설교의 내용을 보조하기 위한 것으로 구성되었던 경향이 있었다. 기존에 설교 후 파송을 위해 부르던 찬양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를 이 날 설교 주제에 따라 “날 구원하신 주 감사”로 변경된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배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인식도 마찬가지로 다른 예배의 구성요소는 가볍게 여기고, 설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가산00교회”의 예배는 찬송가와 현대음악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예배로의 초청과 파송에 있어서는 복음성가를 사용하고, 그 외에는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다. 예배인도자는 부교역자와 성도 3명으로 구성된 찬양대의 보조를 받아 회중들과 함께 찬양을 드리며, 피아노와 신디사이저를 사용한다. 그런 점에서 전통적과 현대의 음악이 혼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예배라 할 수 있다. 예배음악에 있어서 아쉬운 점은 예배음악의 웅장함을 위해 마이크의 음량, 전자악기의 음량이 과도하게 높다는 것이다. 예배의 구성원들은 과도한 볼륨으로 인해 서로의 찬양 소리를 들으며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가 없다.“가산제일교회” 예배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으로 인해 현재 choir의 찬양을 특별연주로 대체하고 있다. 복음성가 또는 찬송가를 매주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프로젝터를 활용하여 가사를 띄워주고 있다. 연주가 끝나면 몇몇의 성도들은 박수를 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특별연주의 예배음악 사용은 ‘예배자들이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라는 인식보다는 ‘하나의 음악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예배의 갱신을 위한 발전 방향과 과제필자는 “가산00교회”의 예배를 분석하고 그 특징들을 살펴보면서 아쉬운 점들을 발견했다. 이러한 아쉬움은 각각의 예배 구성요소들의 적합한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현실에 맞는 적합한 과제를 발견함을 통해 변화를 실천해나감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가산00교회”의 예배에 있어서 발견해야 할 적합한 원리와 과제는 무엇인가?
    인문/어학| 2022.12.01| 2페이지| 2,000원| 조회(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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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선교역사-언더우드 생애와 사역 소논문
    선교역사-언더우드 생애와 사역 소논문
    [선교역사 소논문]“언더우드의 생애와 사역에 관하여”I. 서론1II. 호러스 G. 언더우드의 생애11. 호러스 G. 언더우드의 성장배경12. 호러스 G. 언더우드의 미국이민33. 호러스 G. 언더우드의 복음선포의 열정44. 호러스 G. 언더우드의 한국에 대한 열정4III. 호러스 G. 언더우드의 선교사역51. 복음선포와 교회설립 52. 한글성경번역과 문서선교63. 복음주의 교회 연합운동 74. 교육선교8IV. 결론9Ⅴ. 참고문헌11Ⅰ. 서론2021년 4월 23일 인터넷의 한 신문 기사는 “진격의 K-편의점”이라는 제목으로 말레이시아에 열린 CU편의점 오픈 사건을 아주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기사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지난 1일 문을 연 CU의 말레이시아 현지 1호점에서는 대기줄이 100m가 넘으며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열흘간 1만1000여명이 다녀갔다고 하니 하루 꼴로 1000명이 넘게 다녀간 셈이다. K-POP 등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말레이시아 젊은이들이 코로나19 시국에서 한국을 간접체험하기 위해 몰려들었다는 분석이다.”한국에 대해 알고,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진 이들이 그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한국 편의점에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2021년 한국은 세계 여러 나라에 많이 알려지게 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불과 140여년 전 조선은 ‘은자의 나라’, ‘고요한 아침의 땅’이라고 불리며 그 누구도 잘 알지 못하던 나라였다.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지고, 복음 전파의 대한 필요성을 외쳤으나, 오려고 했던 이들이 극소수였던 그런 나라였다. 그런 나라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쳤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호러스 G. 언더우드 선교사(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이다.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쳤던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의 사역은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교회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복음 전파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치, 문화, 교육, 복지 등 한국 사회 전반에 놀라운 업적을 진 자선가 조지 뮬러(George Muller, 1805~1898)와 가깝게 지내며 최선을 다해 그를 도왔다. 그는 “불가능을 일소에 부치고 무엇이든 반드시 될 수 잇다고 말하라.”라고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삶을 살라는 신앙인의 자세를 자신의 자녀들에게 전수하였다. 그런 그의 삶의 자세로 인해 훗날 언더우드는 선교지 한국에서 어떤 환경에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며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언더우드의 어머니 역시 여러 남매를 기르면서도 화를 내거나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지른적이 없던 온유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자식 양육에 정성을 들였고 믿음으로 자식들을 길러내었다. 그러던 중 1865년에 뜻하지 않게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양육하던 어머니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때 언더우드의 나이는 다섯 살이었다. 언더우드의 집안에 어려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내를 잃은 큰 슬픔 속에서 아버지 존은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파산하게 된다.아버지가 파산하여 생활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언더우드의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교육을 시켰다. 1869년 언더우드와 형 프레데릭은 프랑스 불로뉴 쉬르 메르(Boulogne-sur-Mer)의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기숙학교에서 2년동안 유학했다. 유학생활동안 프랑스인 학생들이 개신교 신앙을 가진 언더우드 형제를 조롱하고 야유하며 힘들게 했지만, 그들은 가정에서 받은 경건한 신앙을 꿋꿋하게 지켜나갔다. 어린시절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유학생활을 경험한 것은 언더우드가 타국에서 선교사 생활을 감당할 수 있는 굳은 마음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후에 언더우드는 이 사건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커다란 기숙사에는 수 많은 영국아이, 프랑스 아이들이 가득차 있었다...우리 어린 두 언더우드는 낯선 이곳에 아무 소리 없이 들어왔다. 그리고 정하여준 침대 곁에 가서 옷을 벗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전에 없던 행동을 보던 소년들은 일시에 조소하는 고함과 힐난하는 야유를 터트도 “늘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미칠 것이다”라는 심정으로 신학교에서의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를 가르친 교수들은 “어떤 목적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집념”, “헌신적인 표정”, “영성과 지적인 힘”라는 말들로 언더우드를 평가내린다. 매일 5시간의 수면과 19시간의 학업을 감당하면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현장에 나가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다. 이 같은 그의 열정은 신학교 교수들이 그의 학업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다.언더우드는 신학교 시절 이스튼 박사가 시무하는 교회에 부목사로 시무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영적인 불이 지펴지는 것과 같은 삶을 살았다. 그의 부인 릴리아스는 이 때의 삶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영혼에 대한 정열로 불타오르던 이스턴 목사는 냉랭했던 낡은 교회에 영적인 불을 질렀고, 계속적인 부흥, 놀라운 회심들, 새벽기도와 저녁기도, 예배 후의 모임 등으로 모든 이웃교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과정 속에서 언더우드는 부목사가 감당할 만한 역할을 감당해냈다. 그는 그 기간 동안에 주일 하루 내내 일곱 여덟 번의 집회에 참석했다.”그는 특별히 섬기던 교회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않았다. 그저 복음에 대한 열정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곳을 섬겼다. 이스튼 박사의 목회와 설교를 통해 재충전을 받고, 그것을 나누기 위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는 복음전도사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언더우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그곳이 어디든 상관하지 않고 달려가는, 또 당시 보수적인 교회가 인정하지 않던 구세군 교회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뜨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언더우드는 갈라디아서 3장 28절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는 말씀을 몸으로 실천했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선교사로서 지성과 영성을 모두 준비하는 중요한 훈련과정을 지나고 있었다.4. 호러스 G. 언더우드의 한국에 대한 열정언더우드가 한국에 관해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해 세례 집례가 언더우드를 통해 일어난다. 서울 근방에 살던 노춘경은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는 것이 국법을 어기고,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임을 알면서도 세례받기를 원하게 된다. 이듬해 봄에 서경조, 최명오, 정공빈에게도 세례를 집례했다.이후에 언더우드는 1887년 10월 의주까지 홀로 제 1차 전도여행을, 1888년 봄 한국에 함께 들어온 아펜젤러(Appenzeller)와 제 2차 전도여행을, 1888년 11월에 제 3차 전도여행을, 1889년 3월 신혼여행을 겸한 제 4차 전도여행을, 그리고 1895년 여름 제 5차 전도여행을 다니며 한국의 선교 사역지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예수님과 같이 뜨겁게 복음을 선포하였다.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등 넓은 지역을 순회하면서, 전도, 예배인도, 성경공부, 세례, 성찬등 다양한 선교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1887년 9월 27일 언더우드의 집 사랑방에서 14명의 세례교인들 가운데 두 명의 장로를 선출한 후 소래교회에 이어 두 번째 한국개신교회 정동교회가 창립되었고, 이듬해 12월 23일엔 그곳에서 한국 장로교 최초의 성찬예배가 드려지게 되었다. 이 교회는 후에 새문 안쪽으로 장소를 옮겨서 그 이름이 “새문안교회”가 되었다. 새문안교회가 창립되던 날 언더우드는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에게 선교의 열망을 더욱 강하게 해주었던 피어슨에게 이렇게 편지했다고 박용규박사는 소개한다. “거의 2년 동안 진리를 찾는 이들의 수가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오늘 우리는 12명 이상의 내국인들과 장로교회를 조직했습니다.”언더우드의 복음선포의 사역의 결실은 정동교회 외에도 많은 교회가 설립으로 나타났다. 1893년 문화군 사평동교회, 고양군 잔다리교회, 1894년 곡산군 무릉리교회, 곡산읍교회, 1895년 장연군 의동교회, 1897년 고양군 행주교회, 토당리교회, 김포읍교회, 도리동교회, 1898년 곡산군 화천리교회, 은율읍교회, 1901년 김원을 호소하였다. 그의 열정 어린 호소로 어느 정도 재정지원을 받는데 성공한 그는 1889년 10월 자신의 집에서 한국셩교서회(Korean Religious Track Society)를 창설하기 위해 모임을 가졌고, 1890년 6월 25일에 정식으로 한국셩교서회를 결성하였다. 한국셩교서회는 교파를 뛰어넘어 한국의 복음화와 기독교문화 창달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언더우드는 여기서 서기를 맡아 기독교문서의 보급에 힘쓰는 역할을 했다.문서선교에 있어서 그들이 실시한 일은 사전의 편찬이었다. 언더우드는 한국어를 습득하면서 한글사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1890년 다양한 책들을 발간하게 된다. 셩교촬리, 한영문법, 한영자전, 영한자전, 그리고 한국에 처음 오는 선교사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 한국어 교본인 한국어회화입문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언더우드가 출판한 한국어회화입문 책은 한국에 오게되는 후배 선교사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 중 영한자전은 언더우드가 죽기전 개정작업을 시작하여 그의 아들 원한경(H. H. Underwood)에 의해 1916년에 완성되어 1925년에 개정판이 나왔다.언더우드는 1897년에 그리스도신문(The Christian News)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그가 발간한 그리스도신문은 1897년 일년간 교회 통신 74개, 공업 진흥에 관한 논설 100개, 농사법 개량 99개, 세계 소식과 일반교양 105개, 많은 교회 통신등을 보도하였다고 한다. 신문의 독자는 신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사람들로써 조선 정부도 계몽지로 활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언더우드의 문서사역은 복음의 확장 뿐만 아니라 기독교문화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으며, 또 국민들의 지식을 계몽하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3. 복음주의 교회 연합운동한국의 선교사로 입국한 언더우드는 한국의 교회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되도록 복음주의 연합 사역을 담당했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먼저 장로교 안에서 교회가 하나 되도록 연합운동을 전개해
    인문/어학| 2022.12.01| 12페이지| 2,500원| 조회(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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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반틸-기독교윤리 요약본
    반틸-기독교윤리 요약본
    반틸의 “기독교 윤리”제 1장 기독교 윤리학의 자료일반적으로 윤리학은 우리가 의지라고 지칭하고 있는 인격성의 측만을 다루고 있는데 이런 측면은 윤리학을 다른 과학들과 구별하게 만든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윤리학은 타 과학과 따로 떨어질 수 없다. 윤리학은 오히려 인간의 의지를 다루고 2차적으로만 인간의 지성과 감정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문제인 것이다.반틸은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의 지성과 의지와 감정이 무엇인가?’의 해답을 논의하는 대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 의지의 본성에 관해 묻는 것은 윤리학의 가장 근본문제다. ‘인간의 행동을 조정하는 동기란 무엇인가?’, ‘이 동기는 선한가, 악한가?’, ‘인간의 선은 습관인가, 학습된 것인가?’의 주제는 동기라는 주제로 다양한 윤리학의 저서들에서 논의되고 있다.인간의 의지에 관한 문제는 표준이나 기준의 문제이다. 일반적인 윤리학은 어떤 기준이나 표준을 세워두고 그것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문제들 다루고 있다. 기준이나 표준의 문제는 대개 법칙이나 의무의 표제하에 윤리학의 저서들에서 논의되고 있다. 반틸은 만약 이런 문제들이 직관적인 원리라면 그러한 직관은 하나님에 의해 심어지는가, 아니면 인생의 경험의 산물인가, 아니면 양자 모두인가?에 대한 문제들을 제 2부에서 다루고 있음을 소개하고 있다.인간의 의지에 대해 질문할 수 있거나 질문해야하는 중요한 문제는 그 행동의 목표나 목적에 관한 것이다. 윤리학서들 중에는 인간 행위의 목적에 관한 문제가 대개 최고선이란 표제 아래서 논의되고 있다.반틸은 모든 윤리학에서 다루고 있는 세 가지의 문제들을 정리하고 소개하면서 “만약 의지의 본성을 알지 못한다면 의지의 기준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결국 이 모든 문제들은 일부분일 뿐이며, 우리가 윤리학의 바른 이해를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인간의 의지를 위해 설정해 놓은 목표를 생각해야한다. 그는 이런 방식을 일종의 천로역적으의 접촉점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인간의 도덕의식이 도움이 되려면 거듭나야만 한다.반틸은 도덕의식이 무제약적으로 상서보다 하위에 있다는 입장에 따른 난점들에 대해서 서술한다. ‘성서의 권위는 무엇에 대해서 말해진 것인가?’ 스미스는 어떤 절대적인 하나님도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완전한 권위를 가지지 못했다는 주장에 이른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 윤리학의 인식론적 전제에서 본다면 절대적인 하나님과 절대적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절대적인 성서의 신학적인 개념은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다른 것들을 거부하면서 그 중 하나만 수락할 수는 없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은 어중간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그들은 형이상학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들을 혼동하며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들과 똑같은 동기를 이루는 것들에서부터 행동하게 만들었다.우리들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선택의 여지는 단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들 사이의 선택이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들만이 윤리학의 참된 원리를 갖고 있다.제 4장 기독교 윤리학의 형이상학적 전제비기독교 윤리학은 인간이 결국 혼자 힘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윤리 생활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데, 윤리생활의 형이상학적 전제는 인간의 궁극적인 환경의 관점에서부터 인간의 의지를 다루고 있다.인간은 하나의 인격체로 창조되었다. 아담은 하나의 인격체로서 창조된 것이며, 그렇기에 윤리적인 대속이 가능하다. 그러나 비기독교윤리에서는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고 본다.하나님은 절대적인 합리성인 동시에 절대적인 의지이다. 그분은 선해지는 것이 아니며, 영원히 선하다. 그분은 결국 자아결정적이며, 절대 자유로운 존재이다. 기독교인들은 모든 인간의 행위의 필연적인 전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 그러나 비기독교 윤리는 기독교적 신 개념은 모든 윤리 행위의 죽음으로 간주한다. 그들에겐 그저 한가지의 환경일 뿐이다. 결국 기독교 윤리학과 비기독교 윤리학 사이를 구분하는 근본적인 차마 가톨릭은 이것에 대해 ‘개성화의 원리’라는 비합리적인 의견을 주장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입장에서의 자아실현이 항상 하나님 나라의 보편적인 과정과 사회적인 의마저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어떤 구성원도 다른 구성원을 필요없는 것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그 어떤 누구도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자신의 인격성을 개발할 수 없으며, 각자는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도덕적인 탁월성을 더 많이 실행하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고행주의는 하나님 나라의 이상이 아니다. 아퀴나스의 윤리학은 우리가 다시 질료 속에 내재하는 이교도의 악의 원리는 실제로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만든다. 아퀴나스의 생각은 낙원의 최초 상태가 윤리생활의 규범이 되게 할 수 없다는 비기독교 원리이론에 사용되는 제한개념들과 유사한 제한 개념을 주장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인간이 행복을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아실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더욱 더 행복해지도록 행복하게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행복은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물들로 의가 퍼지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행복하시다는 것이다. 인간이 의를 원치 않는다면 행복을 원할 수 없다.인간은 죄를 지음으로 이런 개념을 분리해서 생각하게 된다. 현대의 비기독교 관점은 행복을 비이성적인 원리로 보고, 인간 실재의 본성 때문에 사회는 결코 행복해줄 수 없다고 말한다. 합리주의자들은 개인이 자기 의지를 영원하고 불변한 법칙에 완전히 복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자족적인 하나님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면 영원히 불가능한 주장일 뿐이다.로마가톨릭은 이 문제에 대해 중간의 입장을 택하고 있다. 아퀴나스는 순수한 비합리주의와 순수한 합리주의 사이의 멋진 균형을 추구했지만, 인공적인 은총부여에 의해 추상적인 합리성과 추상적인 개성화 사이의 비기독교적인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윤리학의 역사는 행복을 인간이 추구해야할 정당한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의 논쟁으로 가득차 왔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유의 지고선이라고 말할 때와 같은 똑같은 문제점들 낳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도, 우리가 받은 은사를 감사하는 뜻으로 추구해야 할 목적은 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추구 자체도 은사인 것이다.인간 안과 주위에 있는 도덕적이고 물리적인 악을 파괴하는 것이 인간의 윤리적인 이상의 일부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성서 윤리학이 유일하다. 온갖 곳의 모든 악을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모든 구성원이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인간은 인간 자신들이 야기시킨 도덕성의 저급성에서 인간을 점차 인도하여서,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겸손한 은총의 위대성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를 완전히 근절하라는 명령은 구약과 신약 성서 둘 다 근본적으로 일치된다. 악을 파괴하는 것은 항상 하나님 백성의 임무의 일부이다.우리가 지고선을 생각할 때 본 것과 같이 전 인류의 행동에 의해 실현되어질 수 있는 것이며, 그 정도로 희망의 윤리학이다.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것과 그 나라를 소유하는 것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서의 윤리는 절대적인 이상을 제시한다.제 9장 구약성서의 지고선구약성서는 일반적인 구속적인 지고선의 한 특수한 형태다.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 역사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인간이 자신의 직접적인 목적물을 하나님으로 지향하도록 하는 것을 반틸은 어린이의 정상적인 성장에 비교하고 있다. 윤리이상의 단계는 어린이의 성장 초기의 재화의 가치보다 20년 후의 재화의 가치가 더 큰 것과 유사하다. 구약성서의 윤리학의 윤리이상은 신약성서의 윤리이상만큼 절대적이며, 그 법칙을 모두 수행하지 앉거나, 전심전력으로 수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벌을 받는다.구속적인 계시의 과정은 회복기의 어린이와도 같다. 어린이는 성장하는 동시에 병과 싸워야 하며, 때때로 병마와 싸우느라 그 성장이 약화될 수 있다. 죄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도 필연적인 것과 그 죄의 결과 때문에 필연적인 것 사이를 구별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다.윤리적인 지고선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신정정치리의 관심은 선과 의무의 관계에 집중한다. 그러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것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다.‘인간의 도덕의식은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답은 그것이 인간의 의식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인류 전체의 공통의식 속에는 그의 행동을 인도해줄 기준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공통의식이란 언제나 그렇게 ‘공통적’이지는 않다. 윤리학적 기준에 대한 이런 견해는 비신학적 개념에 입각한 것이며, 따라서 절대적인 윤리기준도 없게 된다.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목적을 분명히 정했기 때문에 그 목적은 하나님에게는 알려져있다. 사람들은 이에 대해 공동의식이 윤리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공동의식이란 것은 신학체계의 출발점이 되어왔으며 너무나 많이 주장되어왔다. 그러나 깊게 살펴보면 빈약한 논리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기독교적 이상주의 윤리는 인간의 의식이 신과는 독립하여 작용한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의 도덕의식은 하나님과 떨어져서는 독자적으로 작용하는 일은 결코 없다.기독교 윤리에 의하면 인간 행동의 윤리 기준은 하나님의 뜻에 계시이지만, 다른 윤리체계는 인간 스스로의 독자적인 도덕의식이 바로 행동기준이 된다. 전자는 그 기준의 근원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반면에, 후자는 그 기준의 근원이 인간 자신이나 우주 전체라고 믿는 것이다.하나님께서는 애초부터 인간에게 그의 의무, 즉 윤리기준에 대해 내적인 계시 이외에도 외적인 계시를 주셨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의 의식이 악에 의해 손상되었고, 더 이상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로 인해 그 의식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인간은 ‘신 의식’ 없이는 그 의식이 무의미한 개별성일 뿐인 것이다.칸트는 “우리는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의 감각에 따라야 하며, 또 세계가 우리의 행동에 우호적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하등의 신경도 써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어 그를 따르는 이들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인간이 생활함에 있어서 직관적으로 발견하게 된 도덕원리들도 하나님다.
    인문/어학| 2022.12.01| 18페이지| 2,000원| 조회(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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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백동조-당신의 교회는 행복합니까 서평
    백동조-당신의 교회는 행복합니까 서평
    『당신의 교회는 행복합니까?』 Book review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질병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가운데 한국 교회는 사회의 비난을 받는 존재들이 되고 말았다. 각종 언론은 교회가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힘쓰는 집단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하는 집단인 것 처럼 몰아갔고, 그 가운데에서 잘못된 목회자와 교회의 모습은 그런 현상을 더 가속화 시켰다. 예수의 가르침을 온전하게 전하는 이들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주목받게 되었으며, 건강한 목회자들보다 건강하지 않은 목회자들이 더 부각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전도사로서 사역의 현장 가운데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 교회에 존경받는 목회자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한국 교회에 건강한 교회를 찾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요즘 피부로 느끼고 있다.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사역의 현장 가운데 뛰어든다. 소명에 대한 열정으로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지만 현실은 열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목회자란 어떤 이들인지, 건강한 목회를 하려면 나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다 보면 나 자신이 어느샌가 건강하지 못한 목회자가 되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이 책은 바른 목회자, 건강한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나 자신이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 어떤 부분을 신경 써야 하는지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건강한 목회자가 존재해야 교회도 건강해질 수 있다. 목회자가 행복 해야 교회가 행복해질 수 있다. 교회가 다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온전하게 감당하기 위해서, 사역을 담당하는 목회자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이 책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저자는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을 만들어 낸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한 가지다. 바로 죄로 무너져 내린 행복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사역의 목적을 잃어버린 행복을 회복시키는 것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고, 그들에게 행복을 주셨다. 신명기 10장 13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가 행복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동산에서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행복하게 사는 삶의 모습이 하나님의 기쁨이며, 행복인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그 선물을 잘 누리며 살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교회를 섬기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기쁘다고 말하는 사역자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드는 모습을 본다. 피곤해하는 모습으로 인해 그들의 얼굴에 행복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행복 할 수 있는 것은 그분 안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이해하고 독자들이 자신의 마음에 와닿을 수 있게 쉽게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저자는 데살로니가 전서 5장에 기록된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는 이 구절에 대해 저자는 한 가지 공식을 정리한다. “항상 기뻐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 = 항상, 범사에 행복하라.” 쉬지말고 하나님과 기도를 통해 소통하고 교제를 나누다보면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며, 하나님께 가장 큰 기쁨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이 발전하여 풍요롭게 누릴 수 있는 현대 시대에, 감사를 잃어버리고 만족함을 느낄 줄 모르는 시대에 이 행복 공식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불 수 있는 눈을 준다는 점에서 성도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행복은 오직 복음 안에만 있는, 성령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저자는 사도 바울의 사례를 소개한다. 바울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었다. 선교 여행 중에는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했다. 참으로 힘든 환난을 당하는 삶을 살았던 자였다. 그런 그가 기쁨과 감사를 말한다. 그가 그 힘든 상황들을 이겨내는 삶을 산다. 이런 고통을 이겨내고 불타는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던 것은 바울이 예수님의 복음을 한 영혼에게라도 더 전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던, 예수님 안의 기쁨을 누릴 줄 알던 행복목회자였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흘러넘치는 행복이 많은 영혼들에게 흘러들어갔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그 행복이 흘러 나와 천국이 임한 것이다. 행복 목회만이 우리의 교회와 주변 예배 신자들을 살릴 수 있다. 저자는 행복 목회만이 교회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설명한다. 괴로운 상황을 겪고 있는 사역자, 성도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바로 ????와 ???????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이것을 온 일류에게 주고자 지금도 애쓰신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목회의 방향은, 목회의 철학은 바로 이것이 되어야 한다. 행복과 평안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이 땅에 비전을 이루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 분께서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과 평안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사명을 가지고 오셨다. 성령께서는 거듭나게 하시는 일, 천국을 누리게 하시는 일, 하나님의 비전을 이룰 영향력 있는 자로 회복시키는 일, 하나님의 비전을 이룰 증인으로 세워가시는 일을 하신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영광스러운 구원 사역을 함께 하시기 위해 증언하는 자로 교회를 세우셨다. 땅의 모든 이들에게 예수의 생명, 행복과 평안을 주는 역할, 행복을 설파하는 사명 선언서를 모두에게 전하는 자 가 바로 교회다.
    독후감/창작| 2022.12.01| 3페이지| 2,000원| 조회(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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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안은찬-교회 분쟁의 이해와 해결 서평
    안은찬-교회 분쟁의 이해와 해결 서평
    『교회분쟁의 이해와 해결』 서평필자는 어릴 적부터 늘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모인 교회에서 “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는지”, “왜 여러 회의들 속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얼굴을 붉히는 일들이 생기는지” 늘 마음 속으로 “꼭 그렇게 까지 해야하나?”라는 질문을 하곤 했다. 예수님을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모인 이들이 서로를 더 돌보아주고, 서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가운데에 그 모습들이 풍성하게 넘쳐나지 않는 모습들은 마음에 큰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었다.이전 과제를 통해 필자의 교회정치를 대하는 인식이 바뀌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 과제를 준비하면서도 마음에 큰 기대감이 들었다. 『교회 분쟁의 이해와 해결』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책의 주요 내용들이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을지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책 표지에 써있는 “교회의 갈등으로 인해 고통받는 성도들을 위한 삶의 지침서”라는 말을 보았다. 그 말을 읽는 순간 이 책이 내 마음 한 켠에 있었던 교회의 모습에 대한 아쉬움을 해결해줄 수 있는 책일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번 기회를 통해 무엇인가 새로운 지식을 쌓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교회 분쟁의 이해와 해결』의 저자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실천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계신 안은찬 교수님이다. 저자는 목회신학, 교회 정치 행정, 교회법 등을 후학들을 가르치며 앞으로 목회자의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하고있는 후학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계시다.이 책의 가장 첫 구절 “목회 사역에는 본질적으로 전쟁을 내포하고 있다”은 앞으로 저자가 어떤 주제로 이 책의 내용들을 구성하고 서술해 나갈 것인지 독자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교회 분쟁의 이해와 해결』을 통해 교회 내에 있는 갈등, 분쟁의 의미들을 살펴보고, 그것의 구체적인 예를 통해 목회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들로 책을 구성하고 있다.저자는 “교회가 싸우면 사람들은 이해하기보다는 비난 의미를 잘 모르고 판단하고, 실망했던 것이다. 교회 안에 생기는 갈등과 분쟁은 매우 전문적인 부분으로 그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었다.목회 사역은 목회자와 모든 교인들의 사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 사역에는 본질적으로 전쟁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목회자들의 목회 사역을 통해 구체화 되었고, 이 실천 과정에는 반드시 영적 전쟁과 인간적인 육적인 갈등과 싸움이 수반된다. 목회에는 반드시 싸움이 있는데, 이것이 목회의 전투적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교회의 갈등은 세상의 분쟁과 갈등의 예표론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교회의 갈등은 신학적 의미와 더불어 현실적으로 목회적 차원에서도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교회 내에 갈등은 피할 수 없는,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그 갈등 중 평신도가 느끼는 갈등의 대부분은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깊은 관계성들이 그들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때 경험하게 된다.저자의 설명을 보면서 교회를 떠나가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떠올랐다. 그들 대부분은 교회에 관심이 없던 성도들이 아니라, 교회 일을 열정적으로 하던, 열심을 가졌던 성도들이었다. 저자는 그들이 그렇게 떠나가게 되었던 그 근본적인 원인을 설명해주고 있다. 저자의 그 설명은 교회 내의 갈등을 비난하던 나의 인식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교회 내의 갈등은 언제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갈등을 비난만 하는 자세는 어쩌면 목회 사역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사역자로서 내가 그 갈등을 대하는 자세는 그 갈등의 원인을 찾아내고,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아가서는 앞으로 그런 문제들을 미리 예방 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저자의 교회 갈등론의 의의는 필자에게 큰 도전을 주는 것이었다.교회 내의 갈등은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일까? 저자는 “교회 갈등에는 당파의 핵심 정체성이 위함헌 상태로 존재하째, 갈등은 깨어진 관계이다. 깨어진 관계는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이 가능하다. 둘째, 갈등은 영적인 충돌이다. 셋째,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넷째, 갈등은 필요하다. 갈등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데 필요하다. 다섯째 갈등은 하나의 기회이다. 갈등은 적극적 변화와 평화 창조를 위한 하나님을 신뢰할 기회이다.갈등을 또 다른 기회로 바라보는 것이 성경적인 관점이라는 저자의 설명은 갈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마치 죄악인 것처럼 비난하는 이들의 인식을 바꾸어줄 수 있는 탁월한 통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등이 하나님의 구속적 계획에 따라, 항상 선을 위하여 하나님의 목적하에 있다는 성경적 관점은 갈등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 입은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고, 교회의 갈등으로 신앙생활에 회의감이 든 성도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준다. 더 나아가서 갈등을 통해 더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느끼게 해주었다.교회 갈등의 원인에는 참으로 다양한 원인들이 존재한다. 저자는 그것을 영적원인, 신학적 원인, 심리학적 문화적 원인, 정치 행정적 원인, 법적 원인으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다. 특별히 교회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 영적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우리는 집중해봐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공동체이므로 그 갈등에는 깨어진 인간관계를 넘어 영적인 차원이 있다. 영적인 전쟁은 언제든지 실제로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 “왜곡된 영성은 초기에는 경도된 쪽에서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신앙 공동체가 이끌려가지만 어느 지점에 오게 되면 교회의 거룩성은 사라지게 되고 영적으로 침체된다. 이것은 어느 지점에 이르면 영적으로 교회를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갈 수 있다”라는 저자의 말은 이 원인이 가져오는 심각성에 대해서 분명하게 경고있는 듯하다.이 사실을 이해하고 인식하여 분쟁을 바라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사역을 감당하면서 교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표면적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자와 같이 외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였을 것이다. 저자의 설명을 통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영적인 측면과 외적인 측면 모두 성경적으로 올바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교회의 갈등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과 내부에 잠복해있는 잠재적 갈등으로 이루어져있다. 저자는 이러한 모습을 4가지의 구조로 분류해 교회 갈등을 설명한다. 첫 번째는 언어 행동적 표현이다. 갈등의 처음은 언어와 행동으로 드러나는데 상대방을 평가 절하하여 말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점점 확산되고 증폭된다. 그 과정 중에 언어는 폭력적이고 공격적이게 변하게 된다. 두 번째는 표면적 이슈이다. 언어적 행동은 어떤 표면적 이슈나 계기적 사건을 중심으로 폭발한다. 세 번째는 내면적 동이기다. 표면적 이슈들은 내면적 동기가 장기적으로 구조화 되어왔기 때문에 발생한다. 네 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교회 갈등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기에 성도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왜 이런 갈등을 허락하셨는지 고민해보아야 한다.저자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반대에 부딪힌다고 설명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책은 그 예로 앤태거니스트(Antagonists)라 불리는 이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비본질적인 증거에 기초하여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일을 공격하고 부적절한 요구를 고의적인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앤터거니스트라는 용어는 필자에게 있어서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이들에 대해 오우츠는 뒷전에서 험담하는 자, 세력을 가진 권위주의자, 경쟁적으로 이간질하는 자, 거머리 같은 자, 공주병에 걸린 자라고 다섯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런 분류는 교회의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해결 방안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을 준다. 저자가 소개하고있는 5부류의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실제로 교회 현장에서 적용시켜 볼 수 있다. 자신의 편을 만들려고 하고, 권위를 내세우고 싶어하는 사람, 누군가를 험담하고 깍아내리는 사람거니스트의 환경을 만들고, 확고한 목회 정책, 환류 시스템, 적절한 직무 설계, 책임의 넓은 기초의 구축을 시행해야한다는 실제적인 방법 제시는 실제 목회 현장에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필자에게 큰 유익이 되었다.예전에 신문을 통해서 교회에 관한 분쟁이 국가의 법원에 넘겨져 판결을 기다린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 때 필자는 교회가 얼마나 문제가 많으면 그 안에서 해결을 못하고 국가의 법에 의해 해결하려 하는가? 저렇게 해서 교회가 사회적으로 비난의 손가락을 받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늘 교회의 문제는 교회 안에서, 교회의 법과 교회 안의 권징을 통해서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국가의 법이 교회 안에 적용되는 것 자체가 교회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교회에 법이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목회자 후보생들이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경험담에 등장하는 목회자 후보생이 바로 나 자신과 같이 느껴졌다.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교회 분쟁시 국가법이 필요한 이유는 실제적인 목회의 현장에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며, 목회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다. 책을 읽으면서 모르고 지났갔다면 나중에 목회 사역을 감당하면서 큰 후회를 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교회 분쟁시에 교회의 법만 고려하는 것은 큰 낭패를 볼 수 있는 것이며, 법원이 교단 내부 관계가 아닌 법률 관계에 있어서는 지교회 정관과 교단 헌법 혹은 교단 총회의 결의 등이 충돌할 때 정관이 우선된다는 입장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국가법을 통한 분쟁 해결을 시도할 수 있다.바울은 국가법에 호소하는 것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과도한 소송으로 인하여 복음이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을 경고하였다. 교회에 분쟁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는 교회법의 범주 안에서 해결해야 하며,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에는 국가법에 호소할 수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법에 대해서 생소하고, 어렵게 느끼던 필자에게 가이드를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법에 대한 새로운주었다.
    독후감/창작| 2022.12.01| 5페이지| 2,000원| 조회(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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