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중심주의 사관과 이에 입각한 우리의 역사 교육 -Ⅰ.서론2Ⅱ.본론1.유럽중심주의 사관의 의미22.유럽중심주의 사관에 입각한 우리의 역사 교육2.1.문제점 혹은 한계32.2.대안 혹은 대체 방안4Ⅲ.결론4Ⅳ.참고문헌5Ⅰ. 서론요즘 같은 교통, 통신이 발달한 글로벌 시대에 우리는 한번쯤은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TV, 인터넷, 책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서구 즉, 유럽이라는 곳에 대한 정보를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럽이라고 하면 무조건적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가치 있는, 동양이나 그 밖의 유럽 외 지역의 것보다도 더욱 그 가치를 높게 보고 세계의 중심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당장 나 자신이나 주변의 사람들을 보아도 그렇다. 유럽인들은 동양인들보다 키도 크고 하얗기에 더 잘생기고 이쁘게 보이며 유럽의 자연이나 유럽의 문화라고 하면 처음 접했을 때 절반은 긍정적으로 보고 생각하게 된다.이러한 경향이 개인적인 문제라고만은 할 수 없다. 이러한 경향은 교육, 정치 등 우리나라의 여러 분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세계사의 역사 교육을 하는데 있어서 유럽, 서구는 단연 세계의 중심이며, 그 다음은 중국, 그 외 지역들 심지어 우리나라조차도 우리가 중심이 아닌 주변국으로 보고 있다. 모두가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다.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유럽중심주의 사관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입각한 역사 교육의 문제점 혹은 한계, 그리고 더 나아가 대안 혹은 대체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Ⅱ. 본론1. 유럽중심주의 사관의 의미‘유럽중심주의’란 eurocentrism의 번역어로, 통상‘서구중심주의’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이는 유럽 혹은 서구를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의 중심에 놓는 태도를 지칭하는 것이다. ‘유럽중심주의’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민(Amin)이라고 한다. 그는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1989)라는 책에서 가능한 모든 세계의 시장, 민주주의 등에 대하여 최상책은 이미 서구에 의해 발견되었기 때문에 서구적 모델을 따르는 것이 우리 시대가 직면한 여러 도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나아가 그는 유럽중심주의(서구중심주의)는 근대 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적 부산물이라고 본다. 이에 비해 쇼핫과 스탐(Shohat / Stam)은 그들의 저서 『경솔한 유럽중심주의(Unthinking Eurocentrism)』에서 유럽중심주의가 유럽을 특권화 시키는 일종의 허구적 세계관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는 유럽중심주의가 서구의 역사는 신성화시키는 반면 비서구 세계(예를들어 아시아, 아프리카 등)을 일방적으로 낯선 타자로 간주하며 심지어 악마화하는 자기중심적 세계관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또한, 강정인이라는 학자는 논문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시론적 고찰」(『한국과 국제정치』제 19권 3호 2003년 겨울 통권 41호)에서 유럽중심주의(서구중심주의)가 "헤겔적인 역사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고 유럽이 발전시킨 보편 주의적 정치이념인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관통하고 있으며,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보급된 '근대화' 이론의 핵심적 가정으로도 깔려"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그는 저서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아카넷, 2004)에서 역사적으로 유럽중심주의는 "근대 서구의 식민주의, 제국주의 및 인종주의를 정당화하는데 기여해 왔다"고 지적하며 유럽중심주의는 세 개의 명제 즉 "'서구우월주의', '서구보편주의/역사주의', '문명화/근대화/지구화'"로 압축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결국, 유럽중심주의(서구중심주의)는 서구의 근대적 발전 경로를 보편적 역사 발전의 경로로 간주하고 그 경로 상에 서구의 타자들을 편입시키려는 기획의 일환으로 설명될 수 있다.2. 유럽중심주의 사관에 입각한 우리의 역사 교육2.1. 문제점 혹은 한계우리의 역사 교육에 있어 유럽중심주의 사관에 얼마나 치중하여 있는지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세계사 교과서를 통해 그 정도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즉, 세계사 교과서에서의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과 서술하는 경향을 통해 확인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다음의 기존 조사되어 있던 자료를 참고하여 그 문제점과 한계를 파악해 볼 수 있었다.먼저 교과서에서의 분량을 통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파악해 보았다. 교과서 내에서 분량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양의 많고 적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중요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학생들에게 역사상 중요한 사실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한다. 따라서 전체 교과서의 서술 양에 있어 서양에 대한 서술의 정도·비중 등은 유럽중심주의를 판단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을 통해 전체 교과서의 단원별 분량 및 시대별 비중을 살펴볼 수 있다.시대 구분단원명출판사금성교학사지학사단원쪽수시대별(%)단원쪽수시대별(%)단원쪽수시대별(%)고대Ⅱ. 문명의 새벽과 고대 문명5016.87019.15616.8중세Ⅲ. 아시아 세계의 확대와 동서교류4424.846234625.7Ⅳ. 유럽의 봉건 사회303840근대Ⅴ. 아시아 사회의 성숙3034.93633.92837.1Ⅵ. 유럽 근대 사회의 성장과확대445468Ⅶ. 아시아 세계의 근대적 발전303428현대Ⅷ. 제국주의와 두 차례의 세계대전3223.536243620.4Ⅸ. 전후 세계의 발전385232계*************34100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단원별 분량 및 시대별 비중 출처 : 논문, 심유리, “세계사 교과서 속 서구 중심주의 분석과 극복방안 -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를 중심으로”, 일반 사회 교육, 2011위의 을 통해 유럽 중심성과 관련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Ⅱ~Ⅸ단원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서술 분량이 아시아사에 비해 유럽사가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중세와 근대에 해당하는 Ⅲ~Ⅶ단원 사이의 아시아사에 해당하는 대단원이 1개 더 많지만 실질적으로 유럽사는 하나의 대단원으로 형성되는 데 반해 아시아사는 동남아시아, 인도, 서아시아, 동아시아 등이 모두 하나의 대단원 속에서 다루어진다.둘째, 시대별 분량에서 알 수 있듯이 근대에 관해서는 특히 유럽 중심으로 서술한 것을 알 수 있다. 모두 근대 시기가 전체 서술의 30%를 넘는 높은 비중으로 제시되고 있다. 근대 시기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유럽이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발전시킨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비유럽권에 대한 유럽의 약탈과 식민지가 자행되었던 근대 시기의 그림자를 바르게 서술하지 않고 근대 유럽의 발전상만을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제시하는 것은 유럽중심주의를 반영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또한, 분량뿐만 아니라 서술적인 면에 있어서도 고대 그리스, 십자군 전쟁, 신항로 개척, 산업 혁명, 프랑스 혁명 등에 있어서 긍정적인 면만을 강조하며 부각 시키고 있었다.예를 들어 기존 세계사 교과서는 산업혁명과 함께 영국과 프랑스의 시민혁명은 서양 민주주의의 근원으로써 그 가치를 높게 부여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 혁명은 그 의미를 부풀려 근대 세계사의 저점에 놓여지고, 그 곳으로부터 모든 진보적이고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고 서술하면서 가장 전형적인 시민 혁명이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시민의 개념에 여성, 농민, 노동자, 장애인, 유태인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음으로써 근대 국민 국가 형성 과정에서 나타났던‘차별과 배제’의 메커니즘을 숨기고 있다. 즉 시민혁명이 가져 온 성과를 높이 평가하려다 보니, 시민 혁명이 가져온 부정적인 측면은 거의 서술하지 않은 것이다.이렇게 우리의 역사 교육은 유럽을 설명하는데 있어 분량이나 서술하는 경향에 있어서 너무나도 유럽중심주의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2.2. 대안 혹은 대체 방안위의 문제점들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금이나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먼저 우리는 세계사라고 하여 여러 나라를 각각으로 보고 유럽을 중심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제는 각각의 나라가 아닌 글로벌화에 맞추어 지구 위의 하나로 보고 생각하는 시각이 필요하다.또한, 긍정적인 면을 서술하는 것도 좋지만 긍정적인 것에만 치중하지 않고 부정적인 면도 균형적으로 서술하여 비판적이고 문제를 인식하고 대안을 생각해보려는 것이 필요하며 이러한 습관을 기를 수 있는 역사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이 가져온 사회 변화의 부정적인 측면을 반성적으로 분석하고, 경쟁과 성공지상주의에 대한 대안적인 삶의 방안을 성찰할 수 없는 역사를 찾아보며 여성, 청소년, 아동의 관점, 인권과 평화, 환경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서술하는 것 이 필요하다.
국제경영론 과제- (주)오리온의 중국 진출 사례 -Ⅰ.서론1.기업 선정 이유?????????????????????????????????????????????2Ⅱ.본론1.(주)오리온 기업 소개1.1.기업 소개?????????????????????????????????????????????21.2.주요 사업(취급 품목)?????????????????????????????????????????????32.(주)오리온의 해외 진출2.1.진입 시장?????????????????????????????????????????????32.2.진입 방법 & 분야별 구축 방법(1)수출?????????????????????????????????????????????4(2)현지화 전략?????????????????????????????????????????????5(3)해외직접투자①업계현황?????????????????????????????????????????????5②중국 제과시장 현황?????????????????????????????????????????????6③투자 결정?????????????????????????????????????????????7Ⅲ.결론?????????????????????????????????????????????9Ⅳ.참고문헌?????????????????????????????????????????????10Ⅰ. 서론1. 기업 선정 이유전 세계가 글로벌화 되고 지구촌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동네가 되는 흐름 속에서 기업들은 이러한 세계의 흐름에 맞추어 서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 수 많은 해외 진출 기업들 중 성공적으로 글로벌 기업이 되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며 많은 기업들이 잘못된 전략으로 인하여 실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살아남기 어려운 무한 경쟁 속에서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이제는 세계 최고의 글로벌 기업을 꿈꾸는 기업이 있다. 바로년 2월 중국 북경사무소를 개설했다. 1994년에는 영상 사업(케이블) 분야에 진출했으며 1995년 11월 1천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고 12월에는 중국 Orion Food Co., Ltd.를 세웠다. 1996년 11월과 1997년 9월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사무소와 베트남 호찌민사무소를 각각 개설했다. 1999년 영화 사업을 위한 기업인 미디어플렉스, 2000년 종합 엔터테인먼트사 (주)제미로, 2001년 복합영상관 메가 박스를 설립했다.2001년 9월 동양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하여 오리온 그룹을 출범시켰다. 2002년 1월 영화 제작투자 배급회사 쇼박스를 세우고, 2월에는 미디어 지주회사인 (주)온미디어를 설립했다. 2003년 1월 베트남 하노이사무소를 열었다. 같은 해 8월 (주)오리온으로 상호를 변경했다.2003년 초코파이가 제과업계 최초 단일품목 매출액 1조 원을 돌파했다. 1974년 4월 최초 출시 이후 초코파이는 세계 40여 나라에 수출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140억 개가 판매되는 등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가장 한국적 제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2004년 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사무소와 노보시비르스크사무소, 2005년 4월 러시아 로스토프사무소, 12월 사마라사무소를 열었다. 2006년 6월 일본 동경지점, 2008년 5월 중동사무소를 세웠다. 2009년 4월 제과업계 최초로 오리온의 모든 공장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정청 HACCP 인증을 받았다.1.2. 주요 사업(취급 품목)(주)오리온은 오리온 그룹에서 제과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으로서 (주)오리온의 주요 사업은 제과 사업이다.(주)오리온은 대표적 제품인 초코파이를 비롯한 파이류와 껌, 비스킷, 캔디, 스낵류를 청주, 익산, 이천 등지의 5개의 생산 공장을 통해 생산하고 있다. 2002년에는 오리온 초코파이와 오뜨, 초코칩 쿠키 등 핵심 제품에 대한 매그림 2. (주)오리온의 대표 제품, 초코파이출향상과 자일리톨 껌, 고소미, 와클 등 신제품들의 시장 진출 성공, 영업차별화 전략이 성공하면서한 고성장이 멈추고 불황이 찾아들자 업계는 해외 시장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고, 해외 시장에 대한 전략적인 진출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당시 동양제과(현, 오리온)가 수출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세계를 무대로 눈을 돌린 것은 부산을 중심으로 한 중국과 러시아 보따리 상인들의 초코파이 구매 붐을 인지하면서 부터이다. 그 당시 부산 지역의 매출이 133억 원으로 대구 32억, 대전 21억 원의 4배를 넘어서는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이에 동양제과는 수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전까지의 수동적 수출 전략에서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수출 마스트 플랜을 수립했다.그 첫째가 수익 우선의 단기적 수출 전략에서 투자 개념의 장기적 수출 정책으로의 전환이었다. 먼저, 중국의 시장 조사를 통해 중국인들이 어떤 과자를 좋아하는지 파악했고, 주력 상품을 정하여 수출 유통망을 구축하는데 집중했다. 이러한 시장 조사를 통해 초코파이가 수출 주력 상품으로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를 통해 초코파이 수출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결정하였고 초코파이를 전략 상품으로 선정하여 본격적인 초코파이 수출 강화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의 중국 시장은 12억의 잠재구매력을 가지고 있고 경쟁자가 많지 않았기에 우선 무리한 투자보다는 시장 조사를 통해 경기 변동과 상품 동향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한명의 직원을 파견하는 것으로 중국 진출을 시작하였고 파견 임무는 중간 도매상들을 찾아다니며 초코파이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중국시장에서의 초기 선점이 중요했기 때문이다.(2) 현지화 전략- 마케팅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한국에서는 종합 마케팅 계획이 세워졌다. 동양제과는 오랜 고민 끝에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붉은색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칼라 마케팅을 사용하였다. 그 결과 20년 동안 푸른 포장지 색을 사용하던 초코파이는 중국시장 진출을 위해 1993년 포장지 색을 붉은색으로 변경하였고 1994년 상품명을 좋은 친구라는 의미의 '호리우'로 변경하였다.한편, 1995년 2월 중국 북경에방부제를 넣을 수 없었기에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포장지를 바꾸는 방법을 택했다. 추가로 밀폐포장의 접착력을 높이는데 주력하였다.1995년 12월, 곧바로 이어진 포장지 교체작업에 들어갔고 결국 포장을 바꾸기 위해서는 250%가 넘는 원가상승률까지 감내해야했다. 그 결과 중국의 기후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그러나 부패사건을 마무리 시킨 마케팅팀은 신뢰도가 바닥으로 실추된 상태에서 그것을 되살리는 일이 쉽지 않았고,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초코파이의 생산라인은 멈추고 말았다. 사태가 쉽게 수습되지 않자 동양제과는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결국 중국 현지에서의 생산을 앞당기자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3) 해외직접투자- 생산 및 R&D① 업계현황동양제과가 중국에 초코파이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을 때 이미 중국에는 롯데제과와 일본 롯데, 중국 사통집단공사 등이 합작으로 설립한 베이징의 '낙천사통식품유한공사'가 초코파이를 생산하고 있었다. 또한 해태제과도 중국 불산가화식품과 합작으로 '해태불산가화식품유한공사'를 설립, 연간 2,500톤의 껌을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해태의 현지공장은 껌 생산 라인이기 때문에 동양제과의 초코파이 투자와는 직접경쟁대상이 아니었다. 또한 롯데 측의 초코파이 생산도 '오리온초코파이'의 중국내 인지도가 워낙 높아 동양제과에서는 크게 걱정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② 중국 제과시장 현황중국 제과시장은 계획경제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이미 시장이 개방되어 모든 경쟁기업들이 동일한 출반선상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12억 인구를 가진 중국제과시장은 개혁?개방 덕분에 세계 글로벌 기업들에게 엄청난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동시에 세계 모든 글로벌 기업의 경쟁을 각축장이 되었으며, 현지 브랜드의 성장기 없이 단숨에 가장 치열한 경쟁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놀랍게도 전 세계 30여 개 국에서 중국시장 외에 진출하여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품목별로 앞선 브랜드현지 환경 변화에 대한 빠른 정보수집과 생산단계에서의 수정보완이 필요하게 되었다. 유통경쟁력 유지와 브랜드 파워의 강화를 이끌어 내는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현지투자가 대안으로 제시될 수밖에 없었다.③ 투자 결정1995년 드디어 그동안 준비해온 중국프로젝트에 관한 투자 타당성 검토 보고가 발표되었다. 여기서 중점적으로 보고된 것은 껌의 현지투자와 초코파이의 현지투자 두 가지였다. 결론적으로 껌 타당성이 별로 없는 반면 초코파이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초코파이로 진출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이러한 결정은 1, 2년 후에 진출할 경우 업종제한이나 세제상의 규제, 정치 불안 등이 악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 예상되었다. 또한 직접투자를 통해 이미 세계적인 제품으로 인지돼 가고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통해 고급과자에 대한 잠재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고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도 가능하리라고 판단되었다.1995년 12월, 타당성 발표 4개월 후 동양제과는 곧바로 중국시장에 대한 직접투자에 들어갔다. 1천 4백만 불을 투자하여 중국 하북성 랑팡경제기술개발구에 오리온식품유한공 사(OFC)라는 현지법인을 설립하였다. 합 작사로는 그룹사인 동양시멘트, 동양글로 벌, 홍콩의 AGH(Asia Global Holding Limited) 사 등이 각각 10%의 지분을 참 여하고, 지분의 70%를 참여한 동양제과 가 경영, 생산기술 도입 및 마케팅, 영업, 수출에 대한 실권을 행사하는 외에 1%의 로열티를 받는 것이었다.그림 3. 하북성의 랑팡경제기술개발구위기를 기회로 삼아 결국 중국에서의 생 산을 앞당기자는 시도로 이루어진 랑팡에 서의 직접투자는 그렇게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공장을 짓고 생산 라인을 세우는 것만이 아니라 30여종의 재료를 현지에서 조달해서 한국에서와 똑같은 맛을 내는 게 중요했다. 랑팡경제기술개발구는 인구 2천 3백만 명의 북경과 천진의 중간에 위치한 지역으로 제품 공급이 용이하고, 북경, 천진이라는 고소득 대형 소비 시장을 근거리에 두고 있어
《스무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부제 :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 -스무 살이라는 나이, 20대라는 인생의 한 기간. 무엇을 하던지 두려움이 없는, 혹은 사소한 일 한 가지를 하더라도 걱정하고 두려움에 휩싸이는 이 나이 대는 인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이 아닌가 싶다. 이 기간에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60년, 70년 정도의 인생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티나 실리그’의 《스무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라는 책은 이러한 스무 살이라는 나이에 꼭 알아야 할 것들, 인생에 있어서 뼈가되고 살이 될 만한 말들을 이 책은 해주고 있다. 이 책은 읽는 내내 내가 이 책을 좀 더 빨리 읽었더라면, 왜 아무도 나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과 왜 나는 이런 책에 관심이 없었을까 하는 후회가 들게 만드는 책이다. 주변의 친구들, 그리고 나와 같은 20대에 있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과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 이제 대학생이 되는 나의 동생 등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이 책 중에서 6장의 제목이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질문.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문장이다. 글쎄,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취업을 앞두고 있는 요즘 내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질문이며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는 질문이다.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원래 나는 원하는 것이 분명 했었다. 경제를 공부하여 금융이라는 업종에 종사하면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돈을 많이 버는 것. 그러한 이유로 지금 속해있는 경영학부에 입학도 했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알 수 없다. 대학교를 다니며 ‘취업’이라는 단어에 홀려 나의 꿈은 흐지부지 해진지 오래다. 학년이 올라가며 이제는 주변에 취업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단지 취업을 빨리 하고 싶을 뿐. 그동안 해놓은 게 없다는 걱정 때문에 매일 고민하고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다.“당신에게 꼭 맞는 역할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세상이 당신에게 보내는 직?간접적인 메시지들을 지혜롭게 선별하며, 아니라고 생각될 때는 과감하게 ‘No’라고 선을 그을 줄 알아야 한다.”책 중에 있는 말이다. 나는 나에게 꼭 맞는 역할을 찾기 위해서 노력은 했으며, 메시지들을 지혜롭게 선별해 냈으며,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하여 과감하게 ‘No’라고 외쳐봤는가? 대답은 ‘아니오’다. 저 셋 중에 제대로 해본 것이 한 가지도 없는 것 같다. 참 슬프다. 한 가지라도 나에게 해당이 되길 바랐는데 아무 것도 없다니....... 이제부터라도 해야겠다고 나는 다짐한다. 꿈이 흐지부지 해지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이 때,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나에게 꼭 맞는 역할을 찾기 위해 많은 가능성을 시험해 보는 것. 사실, 낯을 가리고 소심한 나의 성격 탓에 새로운 환경을 꺼려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무언가를 해보는 것, 만나는 것 들을 꺼려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두려움을 떨쳐버려야만 한다.또한, 세상이 나에게 보낸 직?간접적인 메시지들을 지혜롭게 선별해야만 하는 것. 그리고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하여 과감하게 ‘No’라고 외치는 것. 여기에는 이 책 중에서 “내가 원하는 것 vs. 주변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것”이라는 갈등도 해당되는 것 같다. 위에서 말했듯이 내가 원하는 것은 분명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것. 또는 주변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에 자꾸만 나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는 주변 사람들의 취업부터 친구들과의 게임과 같은 유혹 까지 모든 것이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메시지들에 대해 나는 지혜롭게 선별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과감하게 ‘No'라고 말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 하고 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가로 막고 있는 것일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나의 꿈나의 꿈은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행복하게 사는 것.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나는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참 좋다.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보면 혼자 여행 다니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혼자 여유롭게 여행을 다니기 위해서는 예를 들어 유럽 여행을 간다던지 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을만한 자금과 언어 능력 등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능력이 필요하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이것이 현실적인 이야기인 것 같다. 다시 말해, 지금 나의 현실적인 꿈은 취업을 하는 것이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위해서 말했듯이 내가 원하는 꿈은 내 전공을 열심히 공부하여 금융업계에 종사해서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남이 볼 때는 너무 현실적이고 평범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다 다른 꿈이 있고 나는 이러한 직장을 갖는 것이 꿈이며 이 꿈을 통해 더 큰 꿈을 꾸기를 기대하고 있다.
조직행동론 과제조직행동론 관점으로 분석해 본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차 례1.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소개...........2. 조직행동론 관점으로 본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01. ‘권력’ 그리고 ‘조직정치’로 본 엄석대의 행동02. ‘학습’으로 본 엄석대의 아이들 통제 방법03. ‘강화 이론’으로 본 엄석대의 한병태 포섭 방법04. ‘학습’ 과정으로 본 김 선생이 엄석대를 처벌하는 과정05.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본 한병태의 행동06. ‘공정성 이론’으로 본 한병태의 행동1.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소개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문열 작가의 1987년 출판된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1992년 영화화 되어진 작품이다. 이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1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당시, 서울 공무원이었다가 소도시인 운천까지 전근을 가게 된 아버지를 따라 주인공인 한병태의 가족 모두가 이사 가게 된다. 서울의 명문 초등학교에서 소도시의 운천 초등학교로 전학 온 병태는 화려했던 서울에 비해 소도시의 초등학교가 너무 초라할 뿐이었다. 병태는 자신이 서울에서 왔다는 우월함을 뽐내고 싶었지만 오히려 담임 최 선생이나 반 아이들의 무관심 속에 내팽겨 쳐진다. 또한 반을 휘어잡고 있는 엄석대라는 급장은 병태의 기존 가치관을 뿌리째 흔들어 버리는 존재로 다가온다. 석대는 반 안에서 선생님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며 반 아이들의 절대적인 충성을 받고 있는 권력자이다. 그런 급장이라는 존재는 같은 반 아이면 모두 평등하다고 믿었던 병태에게는 전혀 옳지 못한 존재였다. 병태는 이러한 옳지 못한 존재인 석대를 이겨야만 모든 것이 원상회복 될 것으로 여기며 석대에게 대항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병태의 태도에 대하여 석대의 보이지 않는 권력과 힘의 압력은 병태를 고되고 힘든 시련의 시기로 내몰 뿐이었다. 여러 가지로 대항 하던 중, 최후의 수단인 공부로 석대를 누르려하나 그 역시 석대의 그늘을 벗어나진 것을 느끼면서도 지금까지 자신이 세워온 왕국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결국 김 선생은 석대의 시험지 바꿔 쓰기라는 부정을 발견, 처벌하고, 이에 반 아이들은 모두 석대의 비행을 늘어놓지만 병태만은 모른다고 대답한다. 석대는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뛰쳐나간 뒤, 밤에 교실에 불을 지르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병태는 점점 안정의 길을 걷고 이전의 병태로 돌아오게 된다. 병태는 다시 서울로 전학을 가고, 세월이 지나 대학을 졸업하며 사회에 나온다. 석대는 어디선가 틀림없이 다시 급장이 되서 또 다른 반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어른이 된 병태의 뇌리를 스치며 어른이 된 병태는 그렇게 지난날의 엄석대를 회상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2. 조직행동론 관점으로 본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01. ‘권력’ 그리고 ‘조직정치’로 본 엄석대의 행동먼저 ‘권력’은 “타인의 의지나 저항에 관계없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 또는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자신의 뜻대로 하게 하는 힘” 등으로 말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는 선택권 유무에 따라 강압, 강제력 등이 있는데 엄석대의 권력은 강한 제재 위협을 가해 복종하는 것을 보장 받는 것인 강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또한, 권력의 유형 중 엄석대의 권력은 보상적 권력, 강제적 권력에 해당한다. 석대는 반 아이들이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서커스 구경 등의 긍정적 강화물 등을 통한 보상적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거나 해가 될시 폭력 또는 청소 등의 벌을 줌으로써 불복종에 대한 처벌 능력인 강제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다음으로 ‘조직정치’라는 것은 “개인적 목적을 증진시키기 위해 어떤 임의적 행동으로 다른 사람(집단)에게 영향을 미치는 시도”를 말한다. 이것은 직무수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 않는 행동, 당사자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행동, 자신의 이해관계에 얽힌 의사결정에 아주 당연시하게 보였다. 그러나 석대가 이러한 철저한 독재를 누리기까지 거기에는 복종시키기 위한 과정과 방법이 있었다.석대는 같은 반 아이들보다 2, 3살이 더 많아 등치도 차이가 날만큼 크고, 힘도 세다. 영화 속에서 전체적으로 석대는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 보여 지지만, 그 힘은 직접적이 아닌 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아이들이 복종하는 것은 석대지만, 실로 석대의 힘을 과시하는 것은 석대를 따르는 체육부장 등의 몇몇 아이들이다.석대는 뒤에서 위압적이고 가식적인 존재로 자리 잡으며, 직접 통제하지 않는 대신 자신은 자신을 따르는 몇몇 아이들이 다른 애들을 위협 할 때, 그것을 통제 하고 보호 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알게 한다. 또한, 선생님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담임 대신의 역할을 당연하게 수행함으로써 자신을 넘볼 수 없는 존재로 인식시키려 한다.영화 속에서 처음 전학 온 날 ‘급장에게 신고하라’고 시키는 체육부장을 이해할 수 없어 저항하는 병태를 체육부장은 힘으로 다뤄서 석대 앞에 쓰러지게 만들지만, 거기서 석대는 오히려 손을 내밀며 일으켜 너그럽고 침착한 말과 함께 행동하는 장면이나 물 당번 사건, 또 극장사건으로 선도부한테 끌려가 맞는 병태를 보호해주고 비밀로 해주는 석대는 간접 통제를 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애들이 싸우는 것에 대해 자신이 매를 때리고 벌을 주는 것도 그렇다.또한, 애들끼리 패싸움을 시키는 것은 자신을 따를 서열을 정함과 동시에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인식시키는 것이고,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아이들한테는 서커스 구경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자신을 따름에 있어서 받는 이득에 관한 것이다.이는 자극을 통한 ‘고전적 조건화’와 보상이 주어지는 ‘작동적 조건화’로 설명할 수 있다.우선 ‘고전적 조건화’로 설명하자면, 석대의 힘을 ‘무조건 자극’으로 본다면 ‘무조건 반응’은 반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복종’이 된다. 이후에 무조건 자극(엄석대의 힘)에 석대를 따르는 아이들의 힘이 조건 자극으로 제시되면 무조건 자극(끼지만, 그는 결국 병태를 자신의 수하로 끌어들이게 된다. 병태는 처음에 완강히 거부한다. 그렇지만, 반 아이들은 철저하게 석대의 수하가 되어 있었으므로, 병태는 고독한 저항 끝에 결국 패배하게 된다.석대는 자기가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병태가 알 수 있도록 행동한다. 그 힘은 반 아이들을 어우르는 것과 담임의 자리를 대신 수행하고 또, 학교 전체를 통제하는 것으로써 나타난다. 급장이라서 인사를 받는 것이나 점심시간마다 물을 떠 받쳐야 하는 것 등으로 그의 힘의 위력이 나타나는데, 병태가 저항하는 것에 그의 수하들이 가하는 폭력행위를 제재 하는 것 등에서 그 힘은 더 크게 다가오게 된다.강화의 유형에는 좋은 자극, 나쁜 자극을 추가하느냐 또는 제거하느냐에 따라 긍정적 강화, 소거, 벌, 부정적 강화 등이 있다.여기서 석대의 행동을 ‘부정적 강화’로 설명할 수 있다. 대청소하는 날 창문을 병태의 청소 구역으로 정해주는 것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다. 반 아이들을 한명씩 합격시키고 내기 축구를 시키는데, 병태는 축구가 끝날 때까지 3번의 불합격을 받는다. 애들이 다 나간 텅 빈 교실에서 혼자 남아 엎드려 있는 병태에게 그는 합격이란 말을 하면서 병태의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서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다.이것은 ‘부정적 강화’로 설명할 수 있다. 석대에게 복종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병태의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때까지 계속 ‘나쁜 자극’인 벌을 주고 괴롭히다가 병태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그 ‘벌’을 제거해 줌으로써 병태는 더 많이 복종하게 된다.‘긍정적 강화’로도 설명 할 수 있다. 이것은 석대의 시험을 반 애들이 돌아가면서 대신 치러줬다는 것을 병태가 알고 난 후 나타난다. 석대는 병태가 알게 된 것을 눈치 채고 시험이 끝난 후 ‘미포리’에 데려간다. 거기서 병태가 관심 있어 하던 여자애를 만나고, 그에게 술을 건네면서 석대는 보통 때와는 다른, 더한 호의를 베풀게 된다. 이것은 대리 시험을 모른체 해줄 것(복종)에 대한 보상이었던 것이다. ‘좋은 자극’을 추가해 줌으로, 불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모두 꿇어 앉아 스스로 반성해! 더욱 큰 문제는 너희들 모두에게 있다. 우리 반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잘못된 지난날부터 정리해야 해. 1번부터 일어나 자신이 알고 있는 석대의 잘못이나 석대에게 당했던 괴로운 일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도록 한다! 이미 5학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에도 또 너희들이 입을 다물어 석대를 옹호한다면 이 일을 여기서 끝내겠다. 시험지를 바꾼 벌은 끝났으니 다시 이 반을 석대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좋겠나?”김 선생이 석대를 처벌하는 과정에서 같은 반 아이들은 처음에는 머뭇머뭇 거리지만 나중에는 모두가 석대의 나쁜 짓에 대하여 비난하게 된다. 이 상황은 강화 이론과 인지 이론과 사회학습이론에 의해서 설명할 수 있다.강화 이론은 강화물에 의한 행동 수정을 말한다. 김 선생은 1번부터 석대의 비행에 대해 순서대로 이야기 하라고 했으나 1번은 머뭇거렸다. 이에 김 선생은 매로 손바닥을 때리고, 어서 말하라고 크게 소리를 쳐 말함으로써 일종의 처벌을 가했다. 이에 1번은 석대의 눈치를 보며 작게 이야기를 한다. 처벌이 1번의 행동을 강화시킨 것이다. 처벌에 의한 강화는 김 선생이 석대의 이름을 쓴 학생에게 누구의 이름을 썼는지 말하게 하는데도 이용이 되었다. 첫 번째 아이가 말함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로 갈수록 아이들은 동조를 하며 웅성거린다. 이러한 동조라는 긍정적 강화로 비방의 행동은 강하게 반복되게 된다.인지 이론은 인지 ? 신념의 변화에 의한 행동 수정을 말한다. 반 아이들은 석대가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저항하면 처벌을 받는다는 인지를 가지고 있었다. 최 선생이 반 아이들에게 석대의 비행에 대해 적으라고 했을 때도 적지 않았던 이유는 석대는 두려운 존재이며, 그러한 사실을 쓰게 될 경우 석대에게 처벌을 받게 될 것이란 것과 최 선생은 막아줄 수 없으며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경제원론,「경제사 산책」을 읽고세계 경제사의 변화를 통해본 인간의 욕구와 갈망1. 1-14장 내용요약1장 기계시계와 시간자연의 흐름에 따르던 인간사에 인위적인 시계가 삶에 침투하고 시간 개념이 형성, 발전한 것은 인류사에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장 ? 단기적인 시간측정, 그리고 정확한 시간 탐지능력이 인간의 생활과 일에 침투하고 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기계시계가 최초로 발명된 중세 유럽에서였고 기계시계는 문화적 가치, 기술의 변화, 사회적 ? 정치적 조직, 인간의 성향 등에까지 획기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후로도 기계시계는 사용자가 뜻대로 정확하게 작동시킬 수 있을 정도로 날로 발전해 왔다.최초의 기계시계가 지닌 거대한 기술 잠재력에서 혁명적인 발명이라는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기계시계가 도입되면서 한 문명이 시간의 경과, 나아가 생산성과 성취 등에 관심을 갖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시계는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던 인간의 역할과 노동의 성격을 변질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 기계의 기술은 인간에게 정밀기계의 사용과 노동 분화의 이점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2장 가격혁명과 물가의 역사가격혁명이란 16세기 신대륙에서 귀금속이 대거 유입된 후 유럽의 물가가 장기간 대폭 상승한 것을 말한다. 이는 처음 겪은 인플레이션이니만큼 그 파급효과가 매우 컸다. 물가의 역사를 보면 호황 국면에는 상공업의 번성, 인구증가, 도시화 등으로 인해 상승세였고, 불황 국면에는 인구 정체, 인구이동의 감소, 상공업 침체 등으로 인해 하락세였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기술의 진보로 인해 생산비 하락으로 인한 물가 하락, 여러 제도 변화와 금융시장, 노동시장의 유연성 하락으로 인해 물가가 상승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가상승의 원인에는 금?은 유입, 인구증가 등 여러 원인이 있다. 가격혁명의 결과 중 아직까지도 논란인 가설이 있는데 임금 상승이 물가상승보다 뒤져서 실질임금이 하락했고, 그래서 이윤 몫이 커져 자본축적이 이루어지고, 자본제적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더 부유한가? 그것은 사회적 지식의 총량의 축적과 그 지식을 생산에 효율적으로 배분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적 운동인 계몽주의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계몽주의의 지적 기원은 지식의 목적은 인류의 생활조건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공적 ? 사적으로 과학 탐구를 지원할 것을 역설했던 17세기의 베이컨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기원의 계몽주의는 분명한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계몽주의의 중심 개념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자연과학의 방식이 인간 삶의 모든 면을 탐구하고 이해하는데 사용될 수 있고,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둘째, 인간사회에서도 자연처럼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이로써 사회과학이 탄생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간존재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진보’ 개념으로 이어졌고 인간 스스로 사회를 개선하고 좀 더 나은 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이 믿음은 더욱 강해졌다.과학혁명 이후 지식의 전달 방식과 속도가 도서관, 카페, 서적 등으로 크게 개선되었다. 또한 과학도구 등도 널리 보급 되며 지식은 공공재라는 인식이 싹텄고 보편적으로 지식이 확산되었다. 지식은 실용적으로 발전하였고 ‘사물을 아는 자’와 ‘만드는 자’ 사이의 접근비용은 감소하였다. 서유럽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렇게 지식이 보편화되고 전통적인 권위에 맞서 비판하는 지식이 억압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7장 영국 산업혁명 시기의 기술진보18세기 말 ~ 19세기 초 영국의 산업혁명은 전 세계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쳐 국제정치와 군사적 세력 균형마저도 바꾼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러한 산업혁명은 여러 측면에서 접근해 볼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지만 그 본질 가운데 핵심은 에너지 사용면에서의 혁신, 각종 기계발달, 합성 원자재 등장, 공장제 등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기술 진보이다.이 시기에 영국에서 증기기관이 발명 되었는데 이 증기기관 덕분에 영국 제철공업의 철 생산 능력은 100년간 200배나 벗어난다. 인류가 자동조절 능력을 결여하여 식량 부족을 겪게 되며 결국 질병, 기아, 전쟁이 닥쳐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위기를 초래한다고 말한 맬서스의 덫을 산업혁명이 벗어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산업혁명동안 소비수준과 소득수준은 증가해도, 생활수준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최근에는 연령별 신장 기록 같은 신체적 척도로 생활수준을 측정하기도 한다. 영양 상태를 통해 식생활의 내용, 육체적 노동의 강도, 기후환경, 질병에의 노출정도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연령별 신장과 체중, 신장의 연령별 성장속도, 성인의 신장 등을 측정, 평균 영양 상태를 알 수 있고 이를 척도로 여러 기관에서 이용한다.이를 통해 산업화 이전에 유럽인의 영양 상태와 키 등을 살펴보면 오랫동안 평균 키가 커졌다 작아졌다하는 순환적 부침을 겪었다. 경제가 좋아지더라도 인구가 증가하여 물질적 수준이 낮아지곤 했다. 산업사회가 정착되고 공중위생이 개선된 후에야 평균 키가 계속 성장하긴 했지만 이후에도 평균 신장이 감소, 증가를 순환했다. 결국 종합해보면 실질임금수준, 소비수준, 건강상태 등 어떤 척도로 보더라도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는 쪽으로 쉽게 결론지을 수 없다.12장 미국 동북부의 초기공업화미국은 땅이 넓어 자연조건의 분포가 다양했으므로 지역경제도 그에 상응하여 발전했다. 문화적으로도 달랐는데 동북부의 사람들은 악착같이 돈을 벌려는 성격 때문에 ‘양키’라고 불리기도 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직물이 공업화를 선도했다. 나중에 제철, 기계가 공업화에 가세한다. 영국에서 기술이 도입되면서 면직공장의 성장과 함께 공장의 자금조달방법으로 자본시장에서 주식거래가 시작된다.미국의 남부는 상대적으로 공업화가 느렸다. 노예제 방식으로 면화생산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던 농업경영자들은 농산물 생산, 가공, 유통과 관련되지 않은 투자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공업화도 편향적으로 이루어졌다. 이후 남북전쟁에서 패하고 북부의 정치적 핍박, 경제적 근간인 플랜테이션 농업 산업의 붕괴로 인해 북부와 소득격차를 회변화와 발전이 기대되기도 하고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다. 부디 인간 스스로 어둠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았으면 한다.경제원론,「경제사 산책」을 읽고 - 2현대로 오는 세계 경제사의 변화와그 속에서의 정부 그리고 인간1. 15-27장 내용 요약15장 (대기업의 형성 : 미국)근대적 대기업은 역사적으로 기술의 진보와 시장의 확대로 인한 자원배분의 효율성으로 인해 등장했다. 대량생산과 대량분배를 결합하여 여러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인 이러한 대기업은 19세기 말 미국과 독일에서 일어났고, 이후에 영국, 프랑스, 일본 등에 파급되었다.대기업의 탄생 배경은 시장의 확대, 기술혁신의 진전이었고 이러한 배경에서 기업들의 수직적?수평적 결합을 통해 대기업화가 더욱 진전될 수 있었다.미국의 근대적 대기업을 탄생시킨 산실은 철도 산업 자체였다. 전국적인 철도와 전신망은 시장을 확대시키고 투자금융시장을 발달하게 했다. 이때 발달한 투자은행은 각 산업부문의 기업대형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유통구조의 혁신도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도매상이 직접 구매?판매하고 여러 기능을 갖추면서 대형화하기 시작한다. 여러 기술의 발달을 통해 가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도매상들은 확장된 구매?판매망을 갖추어 유통망을 장악했다. 하지만, 이 대도매상들은 두 유형의 경쟁자로 인해 잠식당한다. 하나는 대소매업자이고, 하나는 제조업자이다.대소매업자는 백화점, 우편판매점, 연쇄점 등이 그 효시였다. 그리고 제조업자를 통해 발달한 산업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연속공정기계를 도입하여 대량생산을 한 산업들이고 다른 하나는 유통에서 특별한 주의나 기술을 요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들이었다. 이러한 산업들은 대량생산과 대량유통을 결합시켜 가격을 낮추고도 높은 이윤을 유지하며 과점적 지위를 확보했었다. 또한, 미국에서 1950년대에는 다품종 기업이 등장하기도 했다.16장 (대기업의 형성 : 독일과 일본)독일의 대기업들도 성장과 조직 면에서 미국의 모델에 가까웠다. 독일 역시 19세기 후반에 미국처럼 철도와 전신산비되어 있지 않았고 국법은행을 설립을 반대했었다. 하지만 ‘제1차 합중국은행’이 설립 되었고 이 은행은 대정부 금융, 통화 안정 등에 기여했으며 산업자본을 육성하는 기초가 되었다. 또한 미국은 주화법을 통해 ‘달러’로 정해지고 독립 후 통화혼란이 수습되고 통일적인 화폐제도가 확립되었고 미국 화폐제도의 기본이 되었다.미국은 20세기 초에야 중앙은행이 생겼는데, 그 이전은 ‘자유은행 시기’와 국법은행 시기‘로 나뉜다. 자유은행 체제란 중앙은행 없이 상업은행들이 경쟁하고 법적으로 느슨하며 통제가 없는 금융구조를 말한다. 이 시기에는 각종 결제 제도와 예금보험이 발달했고 은행의 파산은 적었으며 무분별한 금융행위도 드물었다. 이 후 연방정부의 인가를 받아 국법은행이 설립되었다. 은행의 안정성에 관해서는 자유은행 시기가 국법은행 시기보다 우월했었다.미국 금융제도의 주요 특징으로서 은행의 지점설립을 금지하는 단점은행제도가 있는데 미국은 이 제도가 갖는 결함에서 초래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은행도산, 은행위기 등이 이어졌다. 나중에야 은행이 서로 합병되고 부분적으로 지점이 허용되었다.1990년대 이후 미국은 더욱 광범한 규제완화를 중심으로 금융개혁을 시도하고 있다.일본의 경우에도 미국처럼 다수의 은행들이 은행권을 발행했으나 이 후 일본은행을 설립하여 발권을 독점하게 했다. 이후 보통은행을 중심으로 은행제도가 발달하였다.20장 (전간기(1914~1945))경기순환은 정상적인 현상이지만 불황이 깊고 오래 지속될 경우 자본주의 존속여부 자체에 회의가 들면서 많은 문제를 낳게 되는데 1930년대 대공황이 바로 그랬다. 대공황의 원인은 세계대전 이후 경제구조의 불안전성이 커진 것을 살피는 것부터 시작한다.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관련 인구와 산업생산설비를 ‘정상으로 복귀’하도록 조정해야 하는 문제를 낳았다. 전쟁 이후 기존의 경제관계가 단절되고 새로운 무역장벽이 조성되었다. 또한 복수심에 불탄 연합국들의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하여 경제대국인 독일의 경제를 몰락시키고 오히려 혼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