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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도 버린 사람들의 후기
    이름 : 전민기과목 : 신앙과 학문신도 버린 사람들을 읽고.......저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맨 처음 책을 고를 때 항상 제목을 보고나서 생각을 한번 해보고, 뒤에 적혀있는 사람들의 평가들을 본 다음 작가의 소개와 에필로그를 살펴봅니다. ‘신도 버린 사람들’ 이라는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제목을 보고 굉장히 우울한 책인 줄 알았고 작가도 생소할 뿐만 아니라 에필로그에서는 인도와 현 상황과 카스트제도와 불가촉천민이라는 개념이 나와서 정말 어렵게 느껴졌고, 이 책을 포기하고 다른 책을 고를까도 생각해봤습니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내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단지 주변 동생들이 내용이 알기 쉽고 단순하다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끝까지 읽어본 결론은 이 책은 절대 쉬운 책이 아니며 굉장히 심오하면서도 다양한 주제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던져주고 흥미를 유발시키는 이야깃거리들이 넘쳤습니다. 또 중간 중간 깨알 같은 웃음을 주고 순수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웃게 됩니다. 이런 재미있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행복합니다.일단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대해서 정확하게 개념을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제일 상층에는 사제 ‘브라만’이 존재하고 그 밑에는 군인계층인 ‘크샤트리아’와 상인 계급 ‘바이샤’ 그 아래는 ‘수드라’라는 노예 계층이 존재합니다. 저 또한 ‘사성제’라고 하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 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식으로 알고 있었고, 그것이 끝인 줄 알았지요. 그런데 그 사성제 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아웃카스트인 불가촉천민이 존재한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어디서 많이 본거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 신분제도가 존재 했었습니다. 마치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신분제도와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카스트 제도의 브라만은 양반, 크샤트리아와 바이샤는 중인과 백성들과 상인들, 수드라는 우리의 노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도 들이 펼쳐가는 이야기와 감명 받은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다무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인물입니다. 소누의 관점에서 볼 때 산과 같은 존재이고 정말 온갖 잡역 일을 다 하면서 가족을 부양할 줄 아는 전형적인 가장의 모습을 가졌습니다. 아내에게 강압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그럽고 자상한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바바사헤브를 따르던 인물로 모든 인간이 존엄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든 벌어온 돈을 어머니에게 모두 맡기는 것을 보면 어머니를 온전히 신뢰하는 자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엄지손가락이 잘리는 등 아주 불행한 상황을 맞으면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버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제가 가장 다무에게 도전을 받은 부분은 외부 상황에 상관없이 자신의 신념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입니다. 그 덕분인지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소누보다는 다무의 입장에 더 감정이입이 잘됐던 거 같습니다.소누는 다무의 남편의 모습으로 아주 연약한 존재로 묘사되어 나옵니다.처음에는 남편에게 시집오게 된 것도 여자의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전통을 지키려는 보수적인 성격을 보이지만 남편의 영향을 받아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당당한 여성상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남편과 사수바이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후에는 남편의 뜻을 거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이 생각날 만큼 남편에게 대하는 소누의 태도가 출산 후에 달라짐을 알 수 있습니다.그들이 태어나자마자 얻게 된 신분 불가촉천민 ‘마하르’ 그 의무와 인간의 존엄성을 찾고 자유를 향해 달려가는 부부의 모습이 나온다. 예스카르의 의무를 거부하고 자유를 찾아 떠난 부부의 모습에서 나는 그들의 용기에 감탄이 절로 났다. 가난과 개돼지만도 취급을 받지 못한 마하르의 전통 속에서 굴하지 않고 자신의 세대에서 대물림 하지 않으려는 몸부림! 그것은 마치 우리 집에서 아무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그 저주를 감당해야 했지만 내가 믿고 대답합니다.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주체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 굴복하고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잘못된 것을 고치려는 의식을 가지고 잘못된 처우에 저항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능동적인 인간상을 가져야 한다. 요즘 광화문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값 등록금 집회를 보면 대학생들이 마냥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현실을 바꾸려고 하는 그들의 모습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물론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바라보고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이 그들만의 주체적인 사고를 가지고 운명을 바꿔가려는 모습에 도전을 받는다.현대 사람들은 무엇인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앞이 깜깜할 때 “내 팔자가 뭐 그렇지”, “내 기구한 운명인가 보다”라고 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크리스천인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저는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이세상의 주관자는 하나님 한분인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저는 팔자나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삶을 살아간다면 충분히 현재의 삶보다 나은 삶을 살수 있다고 믿습니다. 비록 세상에서 물질적인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가지 못할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마음의 평안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크리스천입니다.어린 다무와 소누는 불가촉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물을 건드릴 수 없었고 음식이 담긴 쟁반만 건드려도 음식이 더럽혀 진다는 취급을 받았다. 어린 그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아팠다. 내 눈앞에 나와 동일한 형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이 더 높다면서 우리를 조롱하고 멸시한다면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을까? 어쩌면 이들의 자유를 향한 의지는 이런 생각에서부터 나온 것 같습니다.아웃카스트에 속한 불가촉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라 안타까운 점도 많았지만 그들의 문화에서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부러운 모습도 볼 수 있는 친구가 어려워하고 있어도 무관심하고, 심지어는 이웃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있어도 한 달 뒤에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무관심한 사람이 나오는 뉴스를 접하기도 한다. 더 황당한 사실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사생활 침해라고 말하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이런 개인주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과연 지금의 개인주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체 의식을 살아가는 사람보다 행복한가? 난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이야 죽든 말든 자기만 잘살면 되는 개인주의는 반드시 지양해야한다.대한민국은 분명 과거보다 성장했고, 그 어느 때보다 풍요를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동시에 공동체 의식이 흔들리고 있다. 나만 잘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며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의식이다. 이런 사실을 볼 때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사는 지금보다 이웃들과 더불어서 행사를 같이하고 교류하던 때가 더 행복하던 때가 아닐까 조심히 생각해봅니다.우리학교는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이 많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개인주의에 빠져 살아가는 것은 그러려니 합니다. 내가 실망하는 사실은 크리스천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동일하게 남의 삶에 관심이 없고 계산적인 인간관계를 하는 사실이다.내가 알고 있는 크리스천이 살아가야할 자세는 이웃들과 교류하며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인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것을 희생하고 관심을 가지고 이웃을 살펴보는 것이 맞다.145P에 나오는 문장이 있습니다. “옷은 누더기에 신발도 없었지. 외삼촌이 사주었던 슬리퍼는 오래전에 작아졌거든. 하지만 행복한데 무슨 상관이야.” 다무와 판두가 뭄바이를 돌아다니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여기서 무엇을 감명 받았나 싶지만 여기를 읽으면서 느낀 건 그들은 가난했지만 ‘행복’하다고 말하는 다무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옷은 누더기에 신발도 없다는 사실은 집안이 넉넉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고 가난한 상황에서도 행복하다 찾아야만 했습니다. 이곳저곳을 방황하고 행복을 찾아 돌아본 결과 내가 내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나 자신을 치장하고 능력을 쓰는 행위는 잠깐의 허황된 욕구를 채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절대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 사회복지과라는 전공에 오게 된 것입니다. 남을 위해 살겠다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왔지만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추구하는 행복을 찾기 위해 이곳에 온 것입니다.207P에서 다무는 공사장에서 일을 했으나 하청업자와 언쟁이 생겨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때 다무는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내 신념에 따라 행동한 거니까”라는 말을 합니다. 사수바이는 그 돈으로 최소한 두 끼는 먹는다고 화를 냈지만 소누는 “푼돈에 영혼을 파느니 차라리 굶는 편이 나아요.”라고 말합니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그들의 형편이지만 그들의 생각은 정말 놀라웠다. 어떻게 일을 하지 못하면 당장 굶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소누는 일자리를 잃어서 기뻤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 인도에서 불가촉천민 계급이 1950년도에 폐지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런 정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생각합니다.230p에서 소누가 남편을 보고 드는 생각을 적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전적인 신뢰와 사랑을 할 수 있는 그들이 내심 부러웠다. 아직 정식적으로 여자 친구와 교제한 적이 없어서 이런 감정을 이입하기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연애관과 결혼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미래에 배우자를 누구를 맞아 들여야 하는가? 솔직히 22살인 내가 너무 바빠서 여자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한 점도 있지만 딱히 내 마음에 드는 이성이 없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배우자가 지녔으면 하는 생각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고 신실한 사람,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동업자, 명랑하면서도 따뜻한 여자, 솔직하면서도 감정표현에 능숙한 사습니다.
    독후감/창작| 2014.01.18| 7페이지| 1,500원| 조회(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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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주론 - 군주론에 나오는 군주는 현명할까? 평가A좋아요
    Topic : 군주론에 대한 나의 생각부제 : 군주론에서 말하는 군주가 정말 가장 현명할까?학번 : 2011131052이름 : 전민기어느덧 ‘독서와 토론’ 과목이 마지막을 달려갑니다. 수업을 하는 동안 많은 작품을 보고 느꼈지만, 이번에 기말 마지막 과제로 제출하게 된 군주론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책을 읽을 때 내용을 보고 마지막 결론을 내고 필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마련입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파악이 되었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읽으면 읽을수록 헷갈려서 너무 어려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아마 책 자체도 생소한 내용인데다가, 필자가 살았던 환경과 문화와는 너무나도 다른 나머지 이해를 온전히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적어보려고 합니다.마키아벨리가 태어났던 당시 태어난 국가는 이탈리아입니다. 이탈리아는 당시 옛 로마의 부흥을 회상하면서 잊지 못하고, 서로 대립하고 전쟁을 벌이는 일 등의 혼란기가 계속되었습니다. 그에 따른 내부에서는 나라를 이끌어 갈 정치체계에서 많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군주국, 공화국을 외치며 다양한 주장을 펼치자 통일국가 건설이 절실했던 시절입니다.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고 ‘군주론’의 영감을 받았다는 느낌을 들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혼란을 극복해내고자 강력한 왕의 힘으로서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군주론을 읽으면서 제가 읽은 마키아벨리의 집필 의도는 군주는 한 나라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온갖 권모술수를 사용하는 것이 옳으며, 이 과정에서 생기는 도덕성의 문제는 어쩔 수 없음을 전제로 합니다. 권모술수를 통해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여 외세의 압력으로부터 나라를 굳건히 지킬 수 있는 강력한 군주를 원합니다. 책의 내용 중 17장 ‘잔인함과 인자함, 그리고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을.......’의 부분에서 “현명한 군주는 자신의 신민들을 결속시키고 충성스럽게 유지할 수 있다면, 잔인하다는 평판을 받는 것을 걱정해서는 안 된다” 문장을 보면 왠지 강력한 군주를 미화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할까요?약간 다른 관점에서 책을 보자면 마키아벨리는 전형적인 결과주의론적 사고를 지닌 사람입니다. 강력한 나라를 이루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하지만 제 생각은 필자의 의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현명한 군주는 무력과 권모술수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정치의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 도덕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군주는 백성들의 신임을 받지 못합니다.예를 들어보자면,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보고 아는 이문열씨의 삼국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유비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물론 우유부단한 면에 있어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저는 그의 성품과 성향을 보면서 많은 감탄과 배움을 얻었습니다. 유비는 권모술수와 잔인함을 이용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지배한 조조와는 달리 진정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물론 그는 도덕성과 과정을 중요시 여김으로써 수많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략을 시행하는 시기를 놓치기도 했고, 관직에서 물러나 방랑자 생활도 하며 열매를 거두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말 답답할 정도로 도덕성을 지켜가며 정치를 했고, 두려움이 아닌 인정과 자비로 지역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의 신임을 받았고, 그가 가는 관할이나 나라는 백성들이 살기에 좋은 나라라고 평가받았습니다. 훗날 그런 인품덕분에 수많은 유능한 인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제갈공명이라는 날개를 달아 끝내는 천하를 3분하는 영향력 있는 군주로 거듭났습니다.그가 과연 실패한 군주일까요? 군주론을 쓴 필자가 유비를 본다면 그는 분명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군주이고, 어쩌면 실패한 군주라고 평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유비를 보십시오. 유비는 처음엔 실패라고 할 수 있지만, 그는 천하를 움직이는 군주로 거듭났습니다.군주는 한나라의 대표로서 누구보다도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나라는 절대 군주 혼자서 다스려서 운영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옛 속담을 봐도 군주는 제일 윗물입니다. 군주가 윗물로서 맑지 못하다면, 아랫물에는 자연스럽게 충신이 아닌 간신들이 들끓게 될 것입니다. 더 크게는 백성들조차 그를 욕하며 업신여길 것입니다. 한나라의 군주가 도덕성을 무시한 채 권모술수와 잔인함과 두려움으로 나라를 이끌어 간다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정치와 도덕을 별개로 두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독후감/창작| 2014.01.18| 2페이지| 1,000원| 조회(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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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스토 예프스키 - 대심문관을 읽고난 후
    동서양 고전 기말 ReportTopic : 대심문관 - 추기경이 예수님께 반박한 질문 대해서.......과목 : 동서양 고전학번 : 2011131052전공 : 사회복지학부이름 : 전민기정말 어떤 작품을 가지고 기말고사 과제를 할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제가 발표한 ‘대심문관’에 대해서 쓰기로 결심했습니다.대심문관은 발표준비를 하면서 정말 악몽 같았던 책이었어요. 그 당시 동생 승훈이와 제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작품을 보고, 이해를 하고난 뒤 많은 작품에서 대심문관에서 나온 물음이 계속 반복해 나오는 것을 보고 하기를 잘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사실 저는 대심문관을 보면서 많은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작품을 보면서 제가 가진 신앙과 작품의 작가가 묻고자 하는 질문이 서로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분명 작품에서는 대심문관이 혼자 예수님을 향해 질문하고 비판하면서 갈등이 진행이 됩니다. 아마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당시의 기독교와 교회를 대변하는 추기경을 통해 기독교가 가진 모순점들을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저는 이러한 모순점에 대해서 제 나름의 아는 지식으로 반론해보고자 합니다.처음엔 저도 추기경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추기경이 하는 말들이 논리적으로는 틀린 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니 뭔가 이상했습니다. 445쪽의 내용 이후를 보면 추기경이 예수님으로 추정되는 분을 광장에서 체포한 후 감옥으로 끌고 간 뒤 묻습니다.“당신이 그분이요? 당신이? 당신은 어째서 우리를 방해하러 온 거요? 난 당신이 누군지 모르오, 알고 싶지도 않소. 당신은 예전에 이야기한 것 이외에 한 것 외에는 다른 이야기를 덧붙여 설교할 권리가 없소!”예수님의 재림을 거부하는 발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는 것이 인간의 자유를 빼앗아 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추기경은 인본주의적 사고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기독교의 기본교리인 하나님은 창조주 토기장이와 토기가 있습니다. 토기장이는 언제든지 토기에 대한 자유의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토기의 입장에서 보자면 부서지는 것이 억울할 수 있겠지만 토기에 대한 모든 권한은 토기가 아닌 토기장이에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 세상에 언제든지 재림하실 권한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견뎠던 자는 천국에서 자유해질 것이고,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았거나 무시했던 자들은 지옥이라는 무시무시한 곳에서 영원한 속박을 당할 것입니다. 제가 배운 ‘예정론’에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구원의 여부를 미리 정해놓으셨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말 잔인하다고 판단하기도 했었습니다. 말도 안 된다고 믿었던 20살 때 내린 결론은 창조주 하나님의 원칙이니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원칙을 인정하고, 내게 주신 구원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살자는 것이 결론입니다. 대신 하나님을 따름으로 자유를 빼앗겼으므로 저는 하나님께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도 저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해주시겠다는 약속이었어요. 저는 그 사실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뿐입니다.작품을 보면서 여러 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일단 첫 번째로 제가 작품에서 가졌던 물음은 ‘신(하나님)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신이 존재하고, 인간이라는 존재를 만들었다면 왜 지금 빵(생존)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가? 그리스도가 무슨 소용이냐고 묻습니다. 즉 대심문관은 인간에게 빵의 기적을 보여줌을 통해 인간의 삶을 책임져주는 실질적인 구원을 원했던 것입니다.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 정말 많은 의문을 가졌습니다. 대심문관이 쓰였던 시대에도 정말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현재 아직도 아프리카와 수많은 제 3국들을 살펴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갑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신이 구원의 손길을 베풀지 않는 것일까요? 그들은 생존이라는 족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돌이 빵이 되게 하는 기적을 보여주고 살려주지 않았을까? 정말 그들에게는 생존할 권리도 없는 것인가? 라는 물음이 생깁니다.전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한 답변을 모르겠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분명 인간이 지은 ‘원죄’와 ‘자범죄’로부터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같은 경우는 실질적인 구원을 받기도 합니다. 물론 다윗 같은 경우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구원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생존과 기아라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제 마음이 정말 아픕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단지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저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분명 굶주릴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계시(성경, 환상, 예언, 말씀)가 아닌 일반계시를 통해서도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즉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을 보고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굶주려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주신다고 믿어요. 정말 죽는 것으로 사람의 인생이 끝이라면, 굶어서 죽는 것만큼 허무한 것이 있을까요? 작품을 보면서 추기경은 가톨릭과 교회를 대변하는 인물이었지만, 왠지 신앙을 ‘인간의 삶’으로 경계 짓고 이성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신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종교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본다면 이러한 질문은 합리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들을 구원하고, 구원하지 않고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죽어가는 것을 방관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이 조금 더 성장하입니다.두 번째로 기적에 대한 대심문관의 질문이었습니다. 대심문관은 인간의 본성은 기적을 믿기 때문에 신비로 하나님을 따르게 했어야 한다고 반문합니다.“인간의 본성이 기적을 거부하고 그 무서운 생사의 갈림길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고통스러운 정신적 의혹의 순간에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창조되었을 것 같소?”이 질문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해봤습니다. 전적으로 인간의 관점으로 본다면 정말 추기경의 질문이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추기경의 말대로 인간은 정말 약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한없이 약한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들에 흔들립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원래 영적인 구원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인정합니다. 절대 구원은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은 죄로 가득하기 때문에 절대로 이성적인 생각으로는 복음(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하심과 부활하심)을 믿지 못합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특권입니다. 믿음은 본성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못 박히게 두고 싶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가장 치욕적이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형벌로 죽이셨습니다. 만약 인간의 본성이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믿는 얻기 쉬운 구원이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관계회복을 위해서 인간이 가진 죄의 문제를 해결하셔야만 했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가진 죄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셨지만,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는 본성을 뛰어넘는 자유의지에 맡기셨습니다. 인간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존중하시고 인격적으로 대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계적인 믿음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따라올 때 기님과 예수님은 인격적이신 분임을 다시 깨닫고 답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1학기에 제가 발표했던 창세기 3장과도 연결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세 번째로 ‘교권’에 관련된 대심문관의 반박입니다.“왜냐하면 인류의 양심을 지배하고 그들의 빵을 손에 움켜쥔 자가 아니고는 누구도 그들을 지배할 수 없기 때문이오. 시저의 칼을 얻은 사람은 우리들이며, 우리들은 그 칼을 치켜 든 후, 물론 당신을 거부하고 악마를 따랐소!”제 생각엔 이것이 제일 잘못된 추기경의 말입니다. 그는 교회와 예수님을 자신들의 야망을 이루는데 사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33세까지 사시면서 절대 복종을 통한 사회적 통합을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회를 형성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교회가 연약한 인간(인류)의 죄를 용납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탐욕을 이루기 위한 기만에 불과합니다. 적어도 그가 신앙인이라는 전제를 둔다면 교권에 대한 반박은 잘못된 것입니다. 만인을 평화롭게 하는 것은 시저의 칼과 복종이 아닌 사랑입니다.마지막으로 재미있는 것은 결말 부분입니다.예수님은 분명히 추기경이 말한 반박에 대한 부분들을 논리적으로 재반박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침묵을 지키고 추기경의 입술에 입맞춤을 함으로 끝이 납니다.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제가 대심문관을 발표준비 할 때도 이 부분은 독자의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발표한 것이 기억납니다.저는 예수님께서 추기경에게 어떤 중요한 메시지를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말과 논리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님을 입맞춤으로 보여준 것 같아요. 추기경의 생각이 분명 왜곡되어서 지적할 부분이 많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추기경조차 사랑하셨습니다. 때로는 논리의 반박보다 상대의 잘못을 용납하는 것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기 마련입니다.다른 메시지로는 인류를 사랑한다고 하는 그들에게 몸소 입맞춤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사랑이란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다시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
    독후감/창작| 2014.01.18| 5페이지| 1,000원| 조회(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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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세기 3장을 읽고 난후 감상문. 죄, 자유의지, 선악과에 대한 관점
    기말고사 Report창세기 3장을 감상하고…….저는 예수님을 믿는 Christian입니다. 그래서인지 ‘동서양 고전’ 이라는 수업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을 때 눈에 처음 들어오는 주제가 ‘창세기 3장’부분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쉬울 것 같으면서도 발표하기에는 정말 난감한 부분들도 많았습니다. ‘성경’이라는 것이 당시 작가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독자의 해석에 따라 이해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발표를 한다는 것이 무척 어려웠습니다.제가 알고 있으면서도 발표할 때 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이 Report에 담아보려고 합니다.창세기 3장을 통해 생각해볼 주제는 크게 자유의지, 죄, 뱀의 존재, 선악과는 어떤 존재인가?, 선악과를 먹고 난후의 인간의 변화, 범죄의 결과와 죽음입니다.창세기 3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전적인 지식이 필요한데, 앞의 창세기 2장 내용을 알고 있어야 3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나서 최초에 하신 명령이 창세기 2장 15절~17절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라고 인간에게 명령하셨습니다.이 명령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이나 악을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명령이자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신뢰와 순종을 요구하신 명령입니다.“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왜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을까?” 라는 물음에 발표를 했을 때 많은 친구들의 의견이 생각납니다. 기독교를 믿는 친구들은 저와 비슷한 생각들을 지니고 있었고, 그 외에 친구들은 오히려 자유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인간이 악을 행할 수 있었고 그로인해 하나님의 영역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인간이 됨으로 스스로 행동하고 사고 할 수 있는 독립체가 되었다는 긍정적인 면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고 발표한 것이 생각납니다. 물론 저는 조금 의견이 다릅니다. 저는 제 스스로 고민해보고 내린 결론은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로봇처럼 무조건적인 명령만을 듣는 존재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들고자 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발표할 때 토론의 문제에서 언급하지 못했지만, 여기서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한번 생각해볼 문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런 명령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생각해 봄직 합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정말 당연하게 알 수 있는 문제이지요. ‘아이로봇’이라는 영화에서는 인간이 로봇을 만들고 로봇을 지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때 로봇은 자신을 만든 인간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인간이 로봇에게 명령을 하여 임무를 수행합니다. 마찬가지로 창조주인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명령할 권리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인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기 때문에 인간은 창세기 3장에서 뱀에게 유혹당하여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죄를 지었다’라고 하면 인간 사회에서 만들어진 규범이나 도덕적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연상하게 되는데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인간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는 교만함을 의미합니다. 죄의 의미가 단순히 법이나 도덕적 윤리를 어기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우리 인간이 다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죄를 돌이켜보고 용서를 구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우리 인간이 죄를 짓게 된 이유는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아무런 죄가 없는 선한 인격체인 인간이었지만 뱀의 유혹으로 인해 타락하게 됩니다. (창세기 3:1~8)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들 중에 가장 간교하다고 언급 돼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은 하나님께서 직접 명령하신 아담에게 유혹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아담을 통해 듣게 된 하와에게 접근해 유혹을 하는 것을 볼 때 뱀이 얼마나 간교한지 알 수 있습니다. 뱀은 창세기 3장에서 해석을 해볼 때 하나님께서 만드셨지만 타락한 사탄과 마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탄이 뱀의 육체와 지혜를 벌려 인간을 타락하게 하기위한 의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1절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에서 하나님이 하신 명령을 왜곡하고 4절에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와 5절에서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과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속입니다. 뱀은 하나님을 압제하는 분으로 만들고 경고를 어겨도 괜찮다고 하며 하나님의 권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속이고 있습니다.이런 뱀처럼 우리 사회에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교묘하게 속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우리가 토론할 때 했던 질문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허락하셨는가? 이질문은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신가?” 묻는 질문인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악과를 허락하신 것은 분명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제 의견에는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이용해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존재가 아니라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행할 수 있는 모든 자유를 허락하셨고 인간이 모든 것을 누리고 살아가면서 동산중앙의 선악과를 보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신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선악과는 하나님이 창조주이고 인간은 피조물인 것을 인식하는 매개체이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안전장치’ 라고 볼 수 있습니다.뱀의 유혹을 받은 하와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하셨던 명령을 직접 듣지 못하고 아담에게 들었기 때문에 2차 수신자였고 뱀은 이점을 노려 하와를 유혹합니다.이때 하와는 옆에 아담이 없었기 때문에 뱀과의 대화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냅니다.창세기 2:17의 내용과 창세기 3:2-3에 나오는 하와의 답변을 비교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을 뿐 만지지도 말라고 하지 않으셨고,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지만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 라고 대답하여 약속을 약화시켰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재해석함으로 무겁게 만들고 약속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실제로 우리 삶에서도 사탄과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의심이 들게 한 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하는 것이 유익이라고 유혹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본질을 왜곡할 때가 정말 많습니다.만약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아담이 옆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과는 조금 달랐을 것입니다.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이해하지 못했을 때 아담이 옆에서 온전히 알려주었더라면 뱀의 유혹을 이겨내기 쉬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혼자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 것을 알 수 있고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인간은 선악과를 먹은 후 수치심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기피하게 되었습니다.(7-8절)이것을 보면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고 허무함과 후회를 느끼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기피하게 됨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장 아름답고 선한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죄의 결과로 가장 비참한 존재로 전락합니다.인간이 최초의 범죄로 낳은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창세기 3:17-24)
    독후감/창작| 2014.01.18| 4페이지| 1,500원| 조회(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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