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OO학과대 김똘똘입니다.오늘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주신 교수님들과 선배님들 재학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주인공인 졸업하시는 선배님들께도 축하의 인사드립니다.OO대 경찰행정학부에 입학해서 졸업하시기 까지 많은 일들이 있으셨겠지요.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기 위해 유도를 하면서 체력과 동기애를 다졌던 일들, MT나 수련회를 가면서 선배와 후배간의 유대를 쌓았던 일들, 또 다른 대학생들 못지않게 학업에 열중하여 좋은 성적을 거둔 일 등 시간이 지나서도 있지 않을 좋은 추억을 만드셨을 거라 생각됩니다.선배님들께서는 그 동안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대학 생활을 보내심으로써 부족한 저희들에게 항상 모범이 되셨습니다. 또 언제나 후배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저희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마음은 유도장에서, 학교에서, 함께하는 자리마다 항상 앞서 몸에 배었던 그 행동들로 전해지고 전해졌습니다.이제 비록 선배님들께서 OO대 경찰행정학부를 떠나 사회로 나가시지만 언제나 모교를 사랑하고 후배들을 아끼며 계속 저희들에게 격려와 충고를 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저희들이 나아가야할 길에 선배님들이 계신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또 믿음이 생깁니다. 그런 선배님들을 따라 저희도 자기 계발에 집중하면서 선배님들께 멋진 후배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협동조합의 모든 것 ? We Can Do That!교수님이 협동조합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는 협동조합 몇 군데 돌아다니는 것보다 이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 솔직히 나는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위캔두댓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로 이 영화 한 편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쯤에는 ‘아 협동조합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하며 깨달음이 있었다.위캔두댓을 보면서 내가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협동조합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협동조합이 가진 순기능이다. 먼저 이 영화를 보게 되면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가 있다. 1)협동조합이란 경제적으로 약소한 처지에 있는 농민이나 중소 상공업자, 일반 소비대중들이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물자 등의 구매, 생산, 판매, 소비 등의 일부 또는 전부를 협동으로 영위하는 조직이나 단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영화는 협동조합의 정의를 잘 반영하고 있는데, 영화에서는 바자리아 법 때문에 더 이상 정신병원에 있지 못하는 정신질환자들, 즉 사회적인 약자들이 모여서 협동조합에 속해 일을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협동조합의 특징으로 잘 나온 것이 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넬로는 협동조합의 수장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파리의 지하철 건에 관해서 다른 조합원들의 동의가 없었기에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 하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더불어 조합원들이 자신들이 번 돈으로 직접 경제적 참여를 한다든가 하는 점과 조합원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것과 같은 장면들은 협동조합의 7대 원칙에 속하는 것들로서 이 영화가 얼마나 협동조합의 특징들이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리고 또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위에서 말한 협동조합의 순기능 일 것이다. 협동조합은 우리가 계속 강의 내내 배우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거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넬로의 협동조합이 이와 같은 일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정부는 정실질환자에 대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마땅한 대안을 찾을 수 없자 바자리아라는 법을 통해서 정신질환자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 보낸다. 이것은 상당히 무책한 일이다. 정신질환자들은 사회적 약자이며,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을 보호해야할 정부는 그들을 외면한다. 물론 그들을 보살필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비용의 문제라든지 수용시설의 문제라든지, 하지만 어떠한 대안도 없이 갑자기 내 보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위의 영화 속 상황 속에서 넬로의 협동조합은 정신질환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넬로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협동조합을 통해 그들의 질병을 낫게 하는데 도움을 주려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넬로가 그들을 일반사람들처럼 대해주고 권리와 자율성을 부여하고, 욕구를 해결해 주자 정신질환자들의 상태가 나아지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연인을 찾기도 했으며, 2단기어로만 달리던 남자가 더 빠르게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들의 정신상태가 온전치 않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기에 자살에 이르는 장면은 가슴이 아팠다. 이처럼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에 있어서 완벽한 대안이나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더라도, 사회적기업과 마찬가지로 협동조합도 앞서서 나아가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위캔두댓을 보며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 협동조합의 순기능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교사의 착오Ⅱ.요건1. 실행행위의 착오교사자의 교사내용과 피교사자가 현실로 실행한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실행행위의 착오라고 한다.(1) 교사내용보다 적게 실행한 경우피교사자가 교사 받은 것 보다 적게 실행한 경우 교사자는 피교사자가 실행한 범위 안에서 책임을 집니다. 특히 기수를 예상했는데 미수에 그쳤거나 가중구성요건을 실현하도록 교사.그러나 형법해석상 이러한 원칙이 엄격히 관철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특히 양자 사이에 유사성은 있지만 양적 감소, 질적 감소가 발생한 것이 아닐 때에는 실패한 교사와 실행 범죄사이의 상상적 경합이 된다.(2) 교사내용을 초과 하여 실행한 경우(a) 양적 초과의 경우: 실행된 범죄가 교사된 범죄와 공통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정도를 초과한 경우를 양적 초과라고 한다. 교사된 내용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하여 책임을지지 않는다. 하지만 결과적 가중범의 경우 예견 가능성이 있는 때에 한하여 결과적 과중범의 교사범이 성립한다.(형법 15조 2항)(b) 질적 초과의 경우: 전혀다른 범죄의 경우, 교사범이 성립하지 않고 다만, 교사한 범죄의 예비 혹은 음모가 있을 때에는 예비 음모죄로 처벌될 수 있을 뿐이다.하지만 본질적인 상위가 있어야 한다. 본질적 상위가 없으면, 양적초과와 마찬가지.(c) 동일 구성요건 내의 착오: 교사자의 교사내용과 피교사자의 실행이 구체적으로 일치하지 않아도 양자가 동일한 구성요건범위 내에 있을 때, 양자의 불일치로 인하여 교사자의 고의가 조각되지 않는다. 객체의 착오는 의도한 사실의 미수에 대한 교사범, 피교사자의 방법의 착오는 교사자의 방법의 착오.2. 피교사자에 대한 착오피교사자에 대한 책임능력에 대한 인식은 교사자의 고의의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착오는 교사범의 고의를 조각하지 아니한다. 따라서 피교사자를 책임능력자로 알았으나 책임무능력자인 경우 및 반대의 경우에도 교사범의 성립에는 지장이 없다.Ⅰ.결론교사자는 피교사자에 의해 저질러진 범행과 자신의 고의가 일치하는 한에서만 책임을 진다. 착오가 있을 경우 교사자의 책임에 영향을 미친다. 교사의 착오란 일반적으로 피교사자에 대한 교사자의 착오, 피교사자의 실행행위에 대한 교사자의 착오를 내용으로 한다.공범과 신분 형법 33조의 해석론I. 요건신분을 보는 요건은 전통적인 구성적, 가감적 신, 소극적, 형벌조각적 신분으로 나누는 경우, 위법신분, 책임신분으로 나누는 신 견해가 있으나, 우리나라 법질서에서 구성적 위법신분이 나타기 어려우므로 전통적인 견해를 따르는 것이 옳다 형법 33조 해석의 전제가 된다.일정한 신분이 있어야 범죄 성립하는 경우에 신분은 가벌성을 구성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구성적 신분을 필요로 하는 범죄를 진정신분범이다. 신분이 없어도 범죄는 성립하지만 신분에 의하여 형벌이 가중 또는 감경되는 경우이다. 이에 해당하는 경우를 부진정신분범이라고 부른다.Ⅱ. 형법 제33조의 해석론형법 제 33조 본문과 단서의 관계를 논할 때① 다수설: 본문은 진정신분범에 가공한 비신분자에게도 신분의 연대적 작용을 규정/ 단서는 부진정신분범의 공범성립과 그 과형에 대한 규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는 책임의 개별화를 선언한 것으로, 이점은 공범종속설 중 제한적 종속형식의 당연한 귀결이다.②소수설: 본문의 신분의 연대적 작용을 부진정신분범에게 확대적용함으로써, 모순을 없애고자한다. 본문의 신분이 진정, 부진정신분범을 포함한 신분범 일반에 대하여 공범의 성립문제를, 단서는 특히 부진정신분범에 한하여 과형의 문제로 규정한다.본문을 진정신분범에 대해서만 적용하면, 부진정신분범에 대하여 공범성립의 근거규정이 없다. 형법 33조는 부진정신분범의 과형에 대해 규정한 것이 명백한 바 본문을 진정신분범에 제한하여 적용할 수 없다.ex) A 가 미혼모인 B의 영아살해에 가담한 경우 A를 중한 보통살인죄의 공범으로 처벌할 것인가 영아살해죄의 공범으로 처벌할 것인가를 살펴보면, 비신분자는 언제나 경한 죄로 벌해야한다는 견해와, 단서의 책임개별화원칙 취지에 반하므로 감경사유는 언제나 신분자 일신에 한하고, 감경사유는 언제나 신분자 일신에 한하고 공범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으며, 판례의 이방에는 신분요소가 없는 공범에게는 보통 범죄가 적용되어야 한다.Ⅲ. 결론형법 33조 본문은 구성적 신분의 위법연대 및 종속성강화를 규정한 것이다. 형법 33조의 단서는 가감적 위법신분의 연대해제 및 종속성완화의 규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종래 통설은 단서를 개별 책임화 원칙으로 보았으나, 우리 형법상 단서의 책임개별화는 책임가감신분에 한하여 인정하는 것이 좋다3. 결과적 가중범의 미수Ⅰ. 요건기본범죄의 기 미수에 따라 불법과 책임의 양을 구분한 것이 입법론적으로 바람직하며, 이는 결과적 가중범에서 책임원칙을 보다 철저히 관철시키기 위함이다. 따라서 결과적 가중범의 미수를 인정할 것인가, 또 처벌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나누어진다.Ⅱ. 인정범위(a) 진정결과적 가중범에서 중한 결과가 미수인 경우 - 중한결과 발생 X- 결과적 가중범 자체가 성립하지 않음, 결과적 가중범의 미수란 생각할 수 없다. 기수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b) 부진정결과적 가중범에서 중한 결과가 미수인 경우- 결과적 가중범에서 중한 결과에 대해 고의가 있는 경우, 즉 부진정결과적 가중범 중상해죄, 현주건조물방화치사상죄, 현주건조물 일수치사상죄, 교통방해치사상죄의 경우는 결과적 가중범의 미수가 성립가능하다. 미수범처벌규정을 두지는 않지만, 현주건조물 일수치사상죄의 경우에는 미수범처벌규정이 있어서 문제이다. 중한결과의 발생이 핵심요소이므로, 중한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까지 굳이 이를 부진정결과적 가중범으로 처리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기본범죄의 고의와 중한결과 미수의 상상적 경합으로 보는 것이 옳다.(c) 기본범죄가 미수인 경우- 현재 다수설은 기본범죄행위의 미수에 의해 중한 결과가 직접발생한 경우라도 전체로서 결과적 가중범의 기수가 성립하는 것으로 본다. 강도가 재물을 탈취하기도 전에 피해자를 죽이게 되면 이것은 강도행위의 미수이나, 강도치사상죄의 기수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책임원칙에서 벋어나, 가벌성을 확장시킨 것에 불과하다. 강도행위가 미수에 그쳤을 때와 기수에 이르렀을 때를 미수, 기수로 구별하여 달리 취급하는 것이 책임원칙에 적합하다면, 과실로 인해 야기된 중한 결과가 고의적인 기본행위의 미수, 기수에 따라 달리 취급하는 것이 책임원칙에 충실할 터이기 때문이다.결론따라서 기본범죄 행위가 미수이고 중한 결과가 기본범죄의 미수행위로부터 직접 발생한 것으로 인정될 때에는 결과적 가중범의 기수가 아니라 미수를 인정하여 처벌에 차등을 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문제는 현행 법령으로 이러한 유형의 결과적 가중범의 미수처벌이 가능한 지 여부이다. 따라서 강도치상, 강도치사죄의 미수인정은 입법의 오류이다. 기본범죄의 기수 미수의 여부에 따라 전체에 대한 불법의 평가를 달리하자는 취지는 공감이 가지만 그것은 고의범과 과실범에 공통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결과적 가중범의 미수는 부정하는 것이 옳다.
독일 학생들은 어떻게 ‘스스로 생각하기’를 익힌다고 생각합니까?그렇다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독일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독일교육이 지향하는 3가지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첫 번째는 협동이다. 오늘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는 팀플레이를 흔히 볼 수 없다. 입시위주의 공부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노력으로 성적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교육이 말하는 입시위주의 교육은 배운 내용 잘 적용하는 것이긴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은 아니다. 반면 독일교육이 지향하는 것은 협동하여 수업내용을 하나의 문화컨텐츠로 만들거나, 글을 쓰면서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기른다. 바야흐로 스토리텔링의 시대라고 한다. 암기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 한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한다. 이를 위해서 스스로 고민하고 조원들과 이야기하며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두 번째로는 선입견을 줄인 교육이다. 독일교육이 지향하는 바는 함께하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면 특수교육이란 일반 학생들이 받는 교육보다 장애인과 같은 부족한 사람들이 받는 교육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독일은 이와 달리 장애인들에게도 같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편견과 선입견이 소통하고, 능동적인 사고를 방해하고, 사회의 한 단면을 보게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데 이는 장애인들과 우리들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하게 하는 것이다.마지막으로 독일교육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직업의식이다. 직업의식이란 것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는 직업의 귀천이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나 변호사 교사와 같이 안정적이고 고수익인 직업을 선호하고, 기술자나, 환경미화원 같은 직업은 천시 받는다. 물론 독일에도 이러한 차별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삶을 선택한다는 관점에서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 하나의 vocation 천직과 같은 개념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정육점을 보면, 아쭈비나 레어링이라는 제자들을 문하생으로 들여서 교육하고, 그들의 삶의 선택에 대해서 잘 교육해준다. 이는 앞선 자기성찰의 과정에 있어서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여 자신의 직업을 고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과 불교에서 말하는 효행어버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유교문화가 떠오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필자 또한 부모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것이라 하면 유교적인 사상을 생각했다. '만덕(萬德)의 근원이요, 백행(百行)의 원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유교에서 효는 매우 근원적인 부분이고 강조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유교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오던 성리학적 질서 아래 가정을 중시해왔기 때문에 효를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불교에서 만큼은 효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면, 정치적 이용보다는 다른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어버이의 은혜는 불교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화두 중에 하나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왜 불교에서도 효가 중요한 화두가 될 수 있는지,불교적 효에 대해 이야기한 경전, 심청전과 관련된 근원설화를 통하여 살펴보았다불교의 효는 은혜를 갚는다는 개념이 강하다. 즉, 불교와 효의 연관성에 대해 알아보면, 대표적으로는 보시바라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시바라밀은 육바라밀에 속해 있는 것으로 육바라밀은 보살 수행의 6가지 중요한 수행근거가 되는 것이다. 효와 보살이 되기 위한 수행조건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보시바라밀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점에서 부모님의 은혜를 갚는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불교와 효에 대해 설명한 대표적인 경전인 에 가보면 부모님께서 베푸는 10가지 은혜를 찾아 볼 수 있는데, 세부적인 내용에는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 즉 출생을 하시고 더 나아가 보호하여 주는 것, 임산수고운(臨産受苦恩) 출생의 고통을 받으신 것 등과 같은 내용들이 기술되어 있다. 이렇듯 불교에서 효란 부모님이 겪는 고통과 은혜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에 대해 보은하고자 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이에 대해 보은하지 않는 다면 악업을 쌓는 것이다. 한편 부모님이 과오를 저지르거나 잘못 되었을 때, 다시금 잘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효라고 할 수 있다. 과 더불어 효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경전인 에서는 목련의 부모님이 술과 향락에 빠져서 지옥에 떨어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목련이 어머님의 죄를 이해 공양하고 발원함으로 다시금 목련의 어머니가 환생할 수 있었다. 이처럼 불교의 효는 인과적인 개념도 포함되어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악업을 쌓아서 지옥에 간다는 불교적인 개념이 들어있고,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 다면, 이 또한 악업을 쌓는 일이라는 업에 관련된 인식도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불교적 효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육적이 어버이에 대한 보시바라밀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어버이에 대한 것이었다. 즉, 어버이라고 생각하면 보통 육적인 어버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내가 생각하는 불교의 효는 이러한 육전인 어버이에 대한 효에서 나아가 지식을 가르치는 스승도 어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기에 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필자의 사례를 들면, 필자는 명상수업의 과제를 하기 위해 죽림선원이라는 절에 가게 된 적이 있었다. 스님과 면담을 하고 레포트를 쓰기 위함이었는데, 그곳에서 성도들이 스님을 위해서 우유를 냉장고에 넣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물어보았다. “보살님(절에서 할머니들이 서로 보살님이라 불렀기 때문에) 어째서 스님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입니까?”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스님이 불법을 우리에게 전하므로 우리에게 부모님과 같은 존재란다.”라고 대답하였다. 사실 나중에 스님을 만나보니 매우 어려서 놀라웠다. 육적인 나이에서 보았을 때에는 할머니가 스님에게 있어서 40년 차이 일지도 모르지만, 불법, 부처님을 아는 것에 대해서는 어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또한 보시바라밀의 일종으로써, 부모님의 은혜를 알고, 이를 위해 보은하는 것이 깨달아졌다.따라서 앞선 불교의 효를 종합해보면, 불교와 효를 연관시킬 수 있는 사상으로써 보시바라밀과 업, 인과론을 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심청전의 근원설화인 를 살펴보면, 란 원홍장 설화로도 알려져 있는데 부모님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흔히 열녀 모티브라고도 하는데, 유교적인 차원에서 보았을 때 남편이나 시아버지에 대한 희생적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관음사 연기설화에서는 이러한 열녀모티브가 전형적으로 나타나면서도, 극단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부모님을 위해서 희생하고 보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타국의 황후로 채택되어서 간다는 점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에서도 역시 부모님은 무기력하고, 이러한 상황을 타계하려는 딸이 등장하지만, 그 딸은 보살의 환생으로써 중생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관음사 연기설화의 홍장이 이상적인 효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결론에는 수명도 길어지고, 장님을 면한다. 이는 중생들에게 홍장의 이상적인 보살행을 보여줌으로써 얻을 수 있는 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듯 는 효는 물로 관음 설화의 서사적 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관음 설화의 서사구조 중 “대중이 부정적 현실 타개에 대한 기원을 관음이 방편으로써, 성취시켜준다”라는 구조를 띄는 것이다. 나 도 이와 같이 마찬가지로 대중들이 현실 속에서 이룰 수 없는 부정적 현실을 타개하고, 이에 대한 기원을 관음사 연기설화에서는 홍장, 즉 대비관음의 환생으로써 심청전에서도 심청이라는 인물로써 이러한 대중들의 열망을 성취시켜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대중의 열망이 정신적으로 승리하는 것은 문학적 카타르시스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것으로, 효라는 이상을 추구함에 그들이 행복해짐과 동시에 대중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존재가 되므로 관음 설화의 서사구조를 잘 따른 설화와 소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두 설화와 소설을 일고 관음 설화적 서사구조를 파악하면서 생각난 소설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라는 소설이었다. 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대표적인 정신승리 문학인 이 떠올랐었다. 병자호란에서의 패배와 굴욕을 대중을 위한 픽션으로 극복하는 모습에서 아마 그런 점을 찾아냈을 것이다, 에서도 박씨는 기존의 유교질서와는 다른 여성상을 보여준다, 시련을 겪지만, 스스로 부정적 현실에 맞서고,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또한 에서 박씨는 그 당신 민중들이 염원하던 미래불, 즉 미륵 신앙의 영향이 강한 것 같다. 관음보살이 중생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과 같다는 요소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대중들이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을 행함으로 추앙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심청전과 관음사 연기설화와 굉장히 유사한 맥락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우리는 관음사 연기설화에 대해서 관음설화의 서사구조가 적용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마지막으로 심청전에 대해 앞선 내용을 바탕으로 심청전을 살펴 볼 수 있다. 심청전은 관음사 연기설화와 같이, 무기력한 부모님과 가난한 가정형편, 금전적인 부분을 타계하기 위해서 팔려가거나 채택되어감, 다시 부모님과 재회하여 해결됨이라는 서사구조를 보여준다. 심청전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공양미 백미 삼백석이라는 개념인데, 공양을 통해 아버지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교적 보시와 시주의 개념이 드러난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심청에게 있어서 어쩌면 아버지라는 존재는 무능력하기에 보시바라밀을 행해야 할 존재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었는데, 부모은중경에 나와 있는 대로, 태어남에 감사하고, 젖동냥하면서 보호하신 은혜에 감사해야함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불교에서도 유교 못지않게 효도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심청이란 인물에 대해 보면, 헌신적인 부모님에 대한 효도로 통해 인과응보라는 말처럼, 자신이 원하는 부모님의 장애극복으로 이루어졌다. 관음사 연기 설화처럼 노골적으로 보살의 환생이라고 나와 있지는 않지만 심청의 모습은 보살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중생들에게 그녀의 이야기가 중생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이상적인 효의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