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 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을 읽고내가 처음으로 경주 최 부잣집에 관심을 가진 건 KBS에서 본 다큐멘터리에서 이다. 돈을 벌어도 주변의 인망을 잃지 않고, 남에게 대접하는데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최후의 부를 독립운동과 대학설립에 사용한 위대한 부자. 이 책의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존경할만한 부자를 경주 최 부잣집으로 찾고 있다. 나또한 동의하는 바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부자들은 사회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건희의 부와 경영능력을 존경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건희라는 인간을 존경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외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나 기부 문화는 당연시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하면 특이한 사람으로 봤다. 부의 세습은 당연하고 부를 위해 자기보다 약자를 쥐어 짜는건 더 당연했다. 그러나 경주 최 부잣집은 다르다. 지금의 관점으로 봐도 합리적이며 인권적이다. 부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지위만 가지라고 한 최진립. 이는 경주 최 부잣집의 첫 번째 가훈이 되었다.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양반이라는 신분은 부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지위인 “진사” 이 이상은 가지지 말라고하였다. 또한 최 부잣집은 부하를 끔찍이 아꼈으며, 자신의 가문의 역사를 정립한다. 이는 경영학적 의미의 기업 이념 정리라고 한다. 또한 부를 소작농에게 쥐어 짜는게 아니라 상생, 소작을 반씩 나눠 가졌다. 그리고 가거십훈 이라는 구체적인 생활지침을 정하여 행동하였다. 경영을 할 때에는 군림하지 않고 경영하는 중간관리자를 두어 효율성을 높였으며 이앙법(모내기법)을 도입하여 생산성을 높였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사회적 책임을 중요시 하여 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 하였다. 현종 신해년(1671)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 죽을 때 최국선은 과감히 곳간을 헐었다. 또한 흉년 시에는 소작료를 대폭 탕감하였다.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책임감, 역할을 보여준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재물을 불려도 지나치게 불리지 않았다. 재물을 불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좋은 선택은 흉년때 땅을 사는 것이다. 축적한 부로 흉년에 땅을 늘린다면 다른 때에 비해 더 많은 땅을 싸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최 부잣집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존경받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