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철학의 필요성과 그 역할에 대한 논평- 현대사회에서의 철학의 필요성과 그 역할에 대한 나의 견해 -과목 : 교육철학 및 교육사교수명 : 000 교수님학과 : 00학과학번 : 20000000이름 : 홍 길 동당신은 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부분 딱 들어맞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닌 생각을 요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하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학문이라 말할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 즉, 인생과 세계에 대해 배우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철학은 고대부터 현대에 걸쳐 사회적 바탕의 기능으로서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철학이 더욱 부각이 되고 있는데 왜 그런 것인지 생각해보도록 하자.현대사회는 급속도로 빨라진 과학기술의 발달로 무분별한 개발과 자본주의가 판치고 있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도덕적 규율, 자연적 진리 등을 무시한 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비인간화 된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철학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철학을 통해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길러줘야한다. 철학은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성격이 있고, 이에 우리에게 반성을 할 기회를 준다. 또한 이미 알려지고 발견된 사실들을 평가하고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준수해야 할 행위규범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빠른 변화가 이뤄지는 세상 속 철학은 인생의 모든 영역을 가능한 전체적으로 관찰하려고 하며,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사태에서 일관된 통일성을 발견하려고 한다. 그리고 개별적인 경험들 사이의 관계를 포착하려고도 한다. 그리하여 개별적인 편견이나 억측을 극복하여 보편적인 의의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철학이란 어떤 개별적인 사물, 사상, 사태, 경험들의 질서와 체계를 세우려고 하는 학문으로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함을 볼 수 있다. 또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우리의 존재 이유 등을 생각하며 인간 소외 현상 극복에도 도움을 준다.이처럼 철학은 우리가 현대사회에 필수적인 학문이다. 이것을 예비교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교육적인 요소로서 또한 도덕적인 요소로서 크게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철학을 배우지 않는다면 나머지 학문들은 접할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과학, 심리학 등 많은 학문은 철학에서 비롯되었고, 우리는 그것을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의 교육을 한다. 철학을 통한 교육은 미성숙한 학생들의 도덕성을 함양 시키고 바른 길로 인도할 것이다. 또한 여러 학문 속에서 배우는 많은 지식들을 철학적 비판을 통해 무분별적 습득이 아닌 변별력을 가진 학습으로 이뤄질 것이다. 교사는 교육에 대한 문제점과 신념, 방향점을 철학적 연구를 통해 성취할 수도 있다. 그리고 철학은 교사 자신에 대한 반성을 하게 만드는 학문으로 교육에 대한 발전이 더욱 두드리지게 나타나는데 도움을 준다.
부조리한 세상 속 무엇을 생각하는가.-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고 -학과 : 00학과학번 : 20000000이름 : 홍 길 동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마냥 옳은가. 나는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이 사회는 너무 부조리하다. 모두들 물질 만능 주의와 가치 전도 현상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과제로 받은 ‘아주 오래된 농담’ 속 이야기도 그러했다. 그것을 읽고 있자면 화나는 부분이 더 많았다.‘아주 오래된 농담’은 크게 두 부분의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주인공 심영빈의 이야기다. 그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어렸을 적 그의 가족사와 첫사랑일화로 시작한다. 그는 남편을 잃고 두 아들과 딸 하나를 키우며 살아온 어머니에게 큰 희망이었다. 결국 훌륭한 의학박사로 칭송을 받는 자리에 오르는 심영빈, 그러던 와중 첫 사랑 현금을 만나 그녀와 불륜에 빠진다. 불륜을 즐기면서 동생 영묘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는데 그것이 영묘 남편 송경호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을 예상해준다. 금술좋은 영묘 부부, 어느날 남편 송경호의 건강 이상 증세로 영묘는 영빈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우여 곡절 끝에 수술대에 오르지만 이미 암이 전이가 많이 되었음을 알게된다. 이에 경호는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 경호의 가족들과 영묘는 경호에게 그 사실을 숨기며 전전긍긍 살아간다. 특히 영묘는 하루하루 눈에 띄게 무기력해지는 상태는 물론 이거니와 불쌍하기까지 여겨지게 묘사된다. 시댁식구들은 경호를 위해서 병을 숨길려고 하는 줄 알았지만 실상은 유산에 대한 그의 결정권을 배제하기 위한 의도로 드러난다. 후에 경호는 죽고 영묘와 영빈 그리고 그의 가족에겐 많은 변화가 생긴다. 특히 영빈의 어머니는 영묘가 과부가 된 것을 슬퍼하며 자책을 한다. 영빈은 어머니를 미국사는 형에게 보내드리고 형에게 5통의 이메일을 보내지만 답장을 받지 못한다. 그러고 알게되는 아내의 임신, 그리고 성공한 형의 10억 기부 기사, 현금과의 관계 정리 등 그에게도 많은 일이 일어난다. 현금은 고아원에서 봉사를 하는 모습, 큰오빠의 도움을 받아 송씨 일가로부터 홀로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영묘의 새출발로 이야기는 끝을 맺고 있다.이 글을 읽으며 자본주의, 죽음과 탄생, 사랑 이렇게 3개의 키워드를 생각했다. 심영빈 어머니의 자식들에 대한 욕심, 현금의 과거사에서 드러난 그녀의 물질만능적 태도, 영묘의 시댁 묘사, 성공한 영빈의 형을 본 영빈 처의 태도 등 자본주의는 늘 전제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야기는 더욱 현실성이 두드러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돈을 강조하는 풍토, 그것이 와 닿았기 때문이다. 전체적 이야기 속 죽음을 통해 위기를 맞고 자신 스스로 되돌아 봄을 알 수 있는데 과거 심영빈 아버지의 죽음, 영묘 남편 송경호의 죽음, 에필로그에 나타난 치킨박의 자살 등이 그러하다. 한편으로는 탄생의 면모를 볼 수 있는데 아버지 죽음 후 태어난 영묘, 영빈 처에게 찾아온 셋째 아이 등이 이야기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사랑은 두드러 진다. 처음에는 영빈의 현금에 대한 이성적 사랑, 끌림 이런 것이였다면 후에는 영묘와 영묘 남편의 애틋한 마음, 영묘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오빠 영빈의 마음 등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
한국사상사특강 과제- 변법개화파의 근대국가수립론 -학과 : 00학과학번 : 20000000이름 : 홍 길 동목차Ⅰ. 서론Ⅱ. 본론① 개화사상이란?② 변법개화파의 등장③ 변법개화파의 개혁④ 변법개화파의 인물 - 유길준⑤ 변법개화파의 쇠퇴Ⅲ. 결론Ⅰ. 서론고대사, 중세사, 근대사, 근세사, 현대사 등의 연대기적 방식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사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의하는 ‘한국사상사특강’을 듣게 되었다. 3월, 첫 수업 당시 ‘사상사’ 라는 주제 자체가 무겁게 느껴져 많이 어려웠었다. 내가 이것을 잘 들을 수 있을지 많은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재밌었다. 실학은 물론이거니와 개화사상과 동학사상에 걸쳐 배우며 내 지식이 늘어가는 것만 같아 좋았다.이제 최종과제인 ‘변법개화파의 근대국가수립론’을 통해 그것을 정리 하려고한다. 그들이 어떻게 등장했는지부터 그들의 사상과 개혁 그리고 유길준 으로 대표되는 인물과 마지막 쇠퇴까지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본론① 개화사상이란?본 주제에 들어 가기 앞서 개화사상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한다. 개화사상이란 조선 후기에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서구 문물의 수용과 근대적 개혁을 주장했던 정치사상이다. 1850∼60년대에 박규수ㆍ오경석ㆍ유대치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1870년대에 김옥균ㆍ박영효ㆍ홍영식ㆍ유길준 등에 의해 발전되었다.개화(開化)는 사람의 지혜가 열려 새로운 사상이나 풍속이 발달한다는 말로 개명과 비슷한 뜻으로 쓰인다. 불교에서의 교화와 비슷한 의미로 보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에서 영어의 ‘civilization’을 문명개화라는 말로 옮겨 사용하면서 개화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개화라는 말이 언제부터 널리 사용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문헌으로는 1881년 신사유람단의 시찰 결과를 보고한 가운데 박정양이 쓴 글에서 맨 처음 나타난다. 그리고 1882년 임오군란 이후에 유길준 등에 의해 더욱 폭넓게 사용되었는데, 이 시기 개화 사상가들은 인간 사회가 미개ㆍ반개화ㆍ개혁의 방법을 둘러싸고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뉘었다. 김윤식ㆍ김홍집 등은 중체서용을 내세운 청의 양무운동을 모델로 하여 서양의 과학ㆍ기술은 도입하되 정치와 제도 개혁은 민씨 정권과 타협하여 점진적으로 추진하려 했다. 이를 ‘동도서기론 또는 시무 개화론’ 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옥균ㆍ박영효 등은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모델로 하여 서양의 과학ㆍ기술뿐 아니라 사상과 제도까지 도입해야 하며, 이를 위해 명성왕후 민씨의 정권을 무너뜨리는 급진적인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를 우리는 ‘문명개화론, 변법 개화론’ 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변법개화론 (변법개화파)를 중심으로 개혁의 전반적인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겠다.② 변법개화파의 등장19C 후반, 대외적 침략과 대내적 갈등으로 국권상실의 기로에 서있었다. 이에 조선왕조가 해결해야할 절체절명의 최대과제는 자구국권의 수호였다. 따라서 개화사상이 대두했고 앞서 말 한 듯이 시무개화파와 변법개화파로 니뉘어 주장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1880년대 초 해외유학과 견문으로 서구사상을 습득한 변법개화파는 동도서기적 초기개화론으로부터 벗어나 확대된 개화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들의 시각의 변화는 최대관심사를 봉건사회체제를 벗어난 근대화, 근대자주국가의 수립에 두게 되었다. 이는 내적으로 중세 이데올로기의 역사적 사회적 기능수행의 상실에서 오는 사상적 혼란과 봉건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의 갈등으로 인한 봉건왕조체제의 동요를 해결하고, 외적으로는 자본주의열강의 침략에 의한 국권상실의 위기를 극복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따라서 이들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구사상과 서구 법, 제도를 수용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 속 민권신장과 국권확립을 통한 새로운 근대적 정치체제의 수립이 근본적인 목표라 할 수 있다.변법개화파의 출발은 1880년대 초, 문호개방에 의한 만국공법체제로의 유입으로부터 서서히 나타난다. 만국공법의 질서 속에서 열강과의 외교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며 타파하고자 한 것이다.이 같은 인식은 1880년 일본에 2차 수생들이 중심이 된 영남만인소는 전국의 척사운동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어 신사 척사상소운동을 선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당시 고종을 비롯한 집권층·개화파들에게는 큰 영향을 주어 1880년대 이후 정부가 주도적으로 개방정책의 추진 및 서구문물을 수용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변법개화파들 중에서도 유길준은 개화파들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다. 유길준 역시 근대국민국가 건설을 주장하였는데 그것은 근대적 외교관계수립을 통한 대외적 자주국권론이었다. 자세한 유길준의 사상은 ‘④ 변법개화파의 인물 ? 유길준’ 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대외적 자주국권 논리는 1880년 시기의 모든 변법개화파들의 생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③ 변법개화파의 개혁앞서 말했듯이 변법개화파는 민권신장과 자주국가설립이 목적이었다. 그들은 먼저 신분해방을 통해 정치사회개혁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신분제 해방에 의한 민권신장은 부국강병과 국권신장을 실현하기 위한 첫 시작이자 좋은 수단이다. 이에 유길준으로 대표되는 변법개화파인들이 민권신장의 구체적 실천은 각종 봉건적 차별의 타파를 통한 사회제도 개혁방안의 핵심이라 주장한다.김윤식으로 대표되는 시무개화파인들은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관료선발의 문호를 개방하여 능력있는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연좌제와 금고법의 폐지가 곧 신분제 개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는 신분제의 문제점으로 인한 폐해를 시정한다는 차원에서의 개선책이었지 양반신분제도의 변혁한다는 의도는 절대 아니었다. 따라서 자유평등론에 입각하여 봉건시분제의 핵심인 양반과 노비의 철폐 및 남녀차별의 폐지 등을 주장한 변법개화파의 민권신장과는 근본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하지만, 이것이 참정권 부여로까지는 확대되지 못했다. 바로 백성을 계몽의 대상으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유길준이 백성을 무지한 계몽의 대상으로 보았고 그래서 강조되는 논리가 된 것이다.다음으로 입헌군주제의 지향을 들 수 있다. 조선 말, 세도정치와 권세를 떨치는 가문들이 득세하는 정치치주의적 의미의 군주권 설정과 함께 왕권의 안정을 모도한 것이다. 당시 군주권은 훼손, 왜곡된 상태였고 본래의 위상과 권위를 행사하기에는 힘들었다. 때문에 왕권의 회복과 군주제에 대한 정당성이 먼저 확보되어야 했다. 이 같은 변법개화파의 왕권이 유지와 제한이라는 양면적 성향은 갑신정변의 정령 14개 조항에서도 나타난다. 이들 14개 중 정치체제/ 왕권과 직간적으로 관련된 조항은 모두 12개 이다. 분석해보면 왕권을 훼손하는 조항은 없다. 그리고 이것은 군주권 확립이라는 그 자체 보다 왕권과의 협력관계 조성을 위한 방편으로의 하나의 입헌군주제로 나아가는 수단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변법개화파는 근대법치주의적 개념의 군주권 설정으로 왕권의 안정과 입헌군주제의 기반을 조성하고자 한 것이다.끝으로 변법개화파 중 특히 갑신정변 주도세력은 당시의 현실을 생각한 정치체제를 구상함으로써 개혁의 성공적 수행을 위한 군주제와 근대내각제를 혼합한 중간적 형태의 과도기적 정치체제를 주장하였다. 이것은 기존의 세도세력을 타도하고, 원래의 왕권, 국권을 분리함으로써 자신들이 의도한 근대법치국가로의 정치개혁을 추진하려는 의도였다.이처럼 이들은 신분제 타파를 통한 민권신장, 입헌군주제의 지향, 중간적 형태의 과도기적 정치제제의 구상들을 통해 여러 개혁을 시도 하였다.④ 변법개화파의 인물 ? 유길준변법개화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등이 있다. 그 중 유길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한다.유길준은 19C 후반기 봉건사회체제 전반에 대한 제모순의 심화와 서구 이질문명세계의 침략이라는 이중적 모순에 의한 국권상실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를 근대화, 근대자주독립국가 수립에 두었다. 그로 이핸 민권과 국권의 확립을 대단히 중시하였다.그가 말하길 대외적 주권론은 천부국권에 의한 불가침적 권리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천부국권은 원래 천부인권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는데 천부인권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연적으로 가지는 타고난 권리를 뜻한다. 이 천부 필요가 없고 당당히 근대국민국가로 변화하면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이다. 유길준은 대외적 국권수호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근대적 조약의 체결과 준수를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주권국가의 여부를 세 가지 권리의 유무로 생각하였는데 첫째, 수호통상조약체결권의 유무, 둘째, 외교사절파견 및 대외선전포고권의 유무, 셋째, 중립선포권의 유무가 바로 세 가지 권리의 유무이다. 그리고 독립주권국의 제일 필요한 요건은 내외정치의 자주적 결정과 시행이므로 열강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통치하는 경우만이 주권국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같은 내용은 천부국권 논리를 앞세워 근대적 조약체결을 성사시키고 열강으로부터 자주권을 보장받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의 현실에서 열강의 침탈을 우려하여 1883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주사로 재직 할 당시 작성한 상소에서 조선의 지리학적 위치의 중요성과 러시아의 흉포함을 들어 러시아의 침략을 경계하였다. 또한 미국·일본 등의 모든 열강들이 저마다 차이는 있지만 모두 우리를 침략할 소지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라고 경계하였다. 그리고 강대국의 약소국 침략은 국력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기본속성으로 파악하였다. 그는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이후 미국이 지리적으로 먼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조선에게 외교적 후원이나 군사적 원조를 보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미국은 그저 수호통상국 중 하나 일뿐 지원국가로서의 인식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은 보는 시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또한 그는 앞서 말한 듯이 민을 무지한 계몽의 대상으로 교육을 받지 않으면 자칫 국가의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경계의 존재로 이해하였다. 민이 무지할 경우 선악과 시비를 분간할 능력이 없으므로 국가에 소요가 있을 시 법질서조차 거부 파괴함으로 국가의 안녕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앞서보았듯 인간의 기본권을 천부인권으로 규정하면서도 법질서 준수를 전제로 한 법부인권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개개인의 지위의 등급
역사학개론-타키투스의 연대기-00학과20000000홍 길 동목차Ⅰ. 서론Ⅱ. 본론1. 타키투스의 생애2. 『연대기』 소개3. 작품에 나타난 타키투스의 역사관III. 결론역사학개론-타키투스의 연대기-과목명 : 역사학개론교수명 : 홍 길 동 교수님학과명 : 00학과학번 : 20000000이름 : 홍 길 동Ⅰ. 서론제정시기의 로마는 두 사람의 중요한 역사가를 배출했다. 리비우스와 타키투스가 그들이다. 리비우스의 경우 안정된 제국의 궁정에서 카토처럼 애국적이고 교훈적인 의도에서 로마사를 전체적으로 서술했다면, 로마 최대의 역사가로 평가받는 타키투스는 역사평가에 있어서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강하게 제시하는 면을 보여주었다고 한다.역사학개론 수업을 통해 많은 역사가들을 접했지만, 이렇게 한 역사가를 주제로 과제 하는 것은 처음이다. 고대의 역사가라고 하면 투키디데스와 헤로도토스를 아는 것이 전부 였던 필자는 ‘타키투스’라는 인물이 궁금하기만 했다. 그리고 설렘을 안고 도서관에 가서 타키투스의 연대기를 펼쳐들었다.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 또 그가 쓴 연대기가 어떤 책인지 소개하기 이전, 그의 순환론적 역사관이 어떻게 나타나있는지를 중점으로 서술하려고 함을 말한다. 이제 본론에서는 타키투스의 생애와 함께 그의 대표작 연대기의 소개와 연대기에 나타난 타키투스의 역사관에 대해 서술해보겠다.Ⅱ. 본론1. 타키투스의 생애타키투스 (Cornelius Tacitus;ca, 55~120) 는 로마의 신흥 귀족출신으로 가이우스(Gaius)라는 이름으로도 기록에서 발견된다. 그의 출생, 사망 연대 및 가족 계보에 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일찍이 로마에서 유명한 수사학자 마르쿠스 아페르 밑에서 공부하였으며 타고난 글재주로 이름을 떨친 것으로 전해진다.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Gnaeus Julius Agricola)의 사위가 되어 원로원 의원이 되고, 70년대 후반에 로마의 관리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하여 97년에 루키우스 베르귀니우스 루푸스의 죽음으로 보충 집정관(補充출현은 필연적인 것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당대의 제정의 동요하는 정치와 사회혼란에 대해서는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그와 살루스투스는 정치적, 윤리적인 면에서 비관주의를 갖고 있었던 점에서 공통적이었다.타키투스가 언제까지 살았는가 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어떤 확실한 증거도 없다. 하지만 연대기에서 ‘현재는 홍해가지 뻗어 있지만 그 당시는 이 부근까지가 로마의 판도였다.’라는 기술이 발견된다. 이것은 트라야누스 황제가 113년에서 117년에 걸쳐 파르티아 제국을 정복한 다음의 로마제국의 최대의 판도를 언급하고 있다는 설에 의하면 적어도 117년 까지는 살아 있었을 것이다. 혹은 하드리야누스 황제 (재위 117 ? 138)의 통치 초기인 120년경에 세상을 떠났을 지도 모른다. 그 근거를 동시대의 작가인 유베날리스, 수에토니우스의 작품과 연대기 속에서 추측해 본다.2. 『연대기』 소개‘역사’는 100년 경부터 집필하여 109년경에 완성한 것 같음을 추정된다. 그 후 죽을 때까지 몰두하고 아마도 퇴고의 여유도 충분히 갖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연대기’라고 한다. ‘역사’의 제명은 고대 작가들에 의해 인용되고 있어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연대기의 경우 확실한 제명을 알 수 없다. 제 11권부터 제 16권까지의 가장 보존이 잘된 사본인 제2메디치본 (헌재 피렌체의 라우렌치아 도서관에 있음)에는 제명이 없고, 제1권부터 제6권까지의 유일한 사본인 제1메디치본은 각 권의 서두에 ‘신군 아우구스투스의 서거 이후부터’라고만 씌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본제인지 부제인지 알 수 없다. 르프시우스가 연대기라고 제명을 제창한 이래, 학계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여 따르고 있다.안타깝게도 오늘날 그 3분의 1일 유실되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세야누스의 몰락이나 네로의 자살과 같은 타키투스 취향의 주제도 포함되어 있고, 제정 초기의 귀중한 기록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존하는 3분의 2에 의해 우리는 충분히 타키투스의 최상의 기록을 접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연대기의있었다.“ 10. 여성들조차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들은 국가 전복 혐의로 탄핵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들이 흘린 눈물을 책망했다. 그리고 가이우스 푸피우스 게미누스의 늙은 어머니 비티아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여 울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이상과 같은 심리가 모두 원로원에서 이루어졌다. 황제가 있는 곳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황제의 가장 오래된 친구 중 두 사람인 베스쿨라리우스 플라쿠스와 율리우스 마리누스가 서둘러 사형에 처해졌다. 두 사람 다 유서깊은 가문 출신으로 티베리우스를 따라가 로도스 섬에서 지내고, 카프리 섬에서도 함께 살았다. 베르쿨라리우스는 리보 드루수스를 상대로 음모를 꾸밀 때, 황제의 주선인 역할을 하고, 마리누스는 세야누스가 쿠르티우스 아티쿠스를 파멸시킬 때의 공범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 사람이 획책했던 범죄의 응보가 그들 자신에게 되돌아온 것을 더욱더 기뻐했다.이 무렵엔 대제관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가 천수를 다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이것은 그만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그는 자진해서 비굴한 의견을 제안한적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을 때에는 언제나 현명하게 적당히 행동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말했듯이 감찰관이었다. 그는 80세까지 살았다. 트라키아에서의 공적 개선 장군 현장을 수여 받았다. 그렇지만 그의 최대의 영광은 수도 경비대장이라는 직책이 항구적인 것으로 정해진 지 얼마 안 되고 세상 사람들도 거기에 복종하는 데 익숙지 않아 그만큼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직원을 놀랄 만큼 공평하게 행사했다는 데 있었다.“위의 내용은 책의 일부분이다. 티베리우스의 난폭한 성품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했으며 또한 원로원도 부패했음이 드러난다. 이 다음 장에 공포 시대라는 큰 주제 속에 이야기가 전개된다. 계속되는 티베리우스의 폭정과 변태적인 욕망이 드러난다. 그는 죽을 때 까지 악한 황제로 그려진다.타키투스는 이것을 악한 본성이 드러난 것으로 보았다.“단순한 개인이었을 다. 이 처럼 책은 티베리우스의 잔혹함과 악성을 그리고 있다.이제 다른 왕 네로를 살펴보자. 책에 의하면“네로가 그리스에서 월계관에 취해 있을 무렵, 로마에서는 정세가 점차 악화되고 있었다. 물론 그리스인이나 동방 세계 사람들에게는 이 여행이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러나 서방 세계 사람들은 적어도 네로에 의해 최고 사령관의 위엄이 손상되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원로원이나 군대, 민중이 각각 네로에게 반감을 품는 특별한 이유를 찾아내고 있었다. 상류 계급 사람들이 피소의 음모 사건 이후 언제 네로의 표적이 될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던 참에 유명한 장군 3명이 잇따라 그리스로 소환되어 살해되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네로를 두고 볼 수 없게 되었다.다행히 네로 시대가 비교적 평온했다고 하지만 파르티아 제국과의 작은 분쟁, 브리타니아에서의 모반, 그리고 유대의 폭동이 일어났다. 네로는 이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속주에 주둔하고 있는 군단병은 네로에게 정나미가 떨어져 충성심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네로의 장기간에 걸친 여행으로 가장 초조했던 것은 로마의 시민이었다. 그들은 ‘빵과 경기’ 밖에 흥미가 없었다. 게다가 이 두 가지 모두 황제가 배려하는 의무와 권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1년 이상이나 쾌락에 굶주렸고 빵도 부족했다. 이집트에서 정기적으로 오는 곡물선이 유대의 진압 부대에게로 보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이런저런 일로 부재중인 ‘황제’ 직책을 대행하고 있던 헬리우스가 네로에게 편지를 보내 재삼재사 귀국을 재촉했다. 그러나 감감 무소식 이었다. 드물게 오는 답장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내게 빨리 돌아오라고 네가 얼마나 열심히 충고해 주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너는 내가 네로에 적합한 인물이 되어 돌아오도록 격려하고 기원해야 한다’기다림에 지친 헬리우스는 마침내 직접 그리스로 갔다. 67년이 거의 저물어 갈 무렵의 일이었다.“ 라는 구절이 있다.이것은 네로 또한 나라의 정사에는 관심이 없고 여행에 빠져 있는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 부분이다. 네로는의 원인을 그리스도교 신자의 소행이라 하여 그들을 박해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시민의 비난을 모면했다.다음해 65년에는 원로원 의원 피소의 황제 암살 음모가 발각되어 많은 유력인사들이 처형되었다. 그 중에는 네로의 예술 지도자였던 페트로니우스와 예리한 감각을 지녔던 애인 루카누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울러 루카누스의 백부인 세네카에게도 음모 가담의 혐의를 씌워 자결을 명했다. 그는 당시의 자결 방법대로 손발의 혈관을 통해 독약을 흘려 넣은 뒤 한증탕의 열기 속에서 죽어갔다. 이렇게 하여 스토아 철학자로서 네로를 보필해 현실정치에 뛰어 들었을 뿐만 아니라, 해외무역과 고리대금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차지하여 시대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던 세네카까지 죽고 말았다.이러한 네로의 치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68년 갈리아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곧이어 에스파냐에서도 반란이 일어나 갈바를 황제로 추대했다. 그러자 근위대는 네로에 대한 충성을 거부했으며 원로원도 그를 로마의 공적이라고 선언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앞선 구절에서의 정사를 돌보지 않은 부분이 포함 될 것이다.3. 작품에 나타난 타키투스의 역사관지금까지 연대기의 일부분과 함께 타키투스의 서술 형태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의 저작은 로마 제국의 쇠망을 한탄하고 공화정 시대의 기풍을 회복할 것을 호소하는 류가 많다. 이는 타키투스가 당시 로마 본토의 「퇴폐」와는 다소 거리가 먼 속주 출신이자 기사 신분 출신이었던 점, 플라비우스 왕조 치하에서 로마의 풍속이 제재되고 있던 점, 도미티아누스 치하에서 「폭군」을 경험한 점 등이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타키투스의 저작이 자유 언론이 허용되었던 네르바, 트라야누스 치하의 환경에서 서술되어 서술되었다는 점도 지적된다.특히 황제권에 대한 강한 반발심이 내면적인 충동으로서 작용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도미티아누스황제의 독재정치 아래에서 저술했던 역사에서 표면적으로 제국과 황제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도, 제국 초기의 인문들과 사건들에 대해서는 반대감정으로써 서술했다. 이로써 문이다.
5장역사적 사고목차Ⅰ. 역사적 사고의 성격3Ⅱ. 역사적 사고의 이론1. 영역 중립 인지 이론51) 피아제 인지 발달론 2) 피아제-필-할람 모델3) 역사인식의 유형과 발달 4) 분류 능력과 시간 개념2. 영역 고유 인지 이론161) 피아제-필-할람 모델 비판 2) 역사적 사고의 영역적 특성3) 인증적 사고 4) 내러티브적 사고Ⅰ. 역사적 사고의 성격1. 역사적 사고1) 역사적 사고의 변화① 1960년대 이후㉠ 행동 → 마음(mind)로의 심리학 초점 변화컴퓨터 메타포의 관점내러티브적 사고의 관점컴퓨터 정보처리의 과정과 같은 논리적 사고로 인식문화가 마음을 구성한다는 전제 속, 마음의 본질을 의미의 구성으로 인식사고의 보편성사고의 다원성㉡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구의 관점㉢ 사고의 보편성과 다원성보편성다원성인간의 인지과정은 누구나 동일,지각, 기억, 인과분석, 분류, 추론 과정도 동일사람, 사고대상에 따라 인지과정, 추론 과정이 동일하지 않음인간의 사고컴퓨터 정보처리 과정에 비유(컴퓨터 메타포의 관점),사고의 내용과 무관한(content - free) 동일한 사고의 과정사고의 내용에 의존적(content - dependent)역사적 사고일반적 사고와 같음일반적 사고와 본질적으로 다름(Why? 역사는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 와츠(D.G.Watts)의 견해ⓐ 역사적 사고 =의식적인 논리적 사고연상적 사고피아제류의 사고 논리 따름상상, 직관, 창조성 등 설명적 사고 논리 따름의식적인 논리적 사고와 상상 ? 직관에 토대를 둔 연상적 사고의 동시 작동⇒ 대부분의 인지 과정은 이미지와 개념을 동시에 혼합하는 성격을 가진다에근거를 둠ⓑ 지적인 사고 =합리적 사고 + 연상적인 사고의 혼합된 결과※ 성인의 사고 모델 제시- 상상적인 사고와 실재적인 사고를 배타적으로 분리= 사람이 항상 상상적, 실재적 사고를 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점이 문제!예술가, 과학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음ⓒ 역사적 사고 모델- 논리적 합리적 사고, 연상적 사고의 동시적 성격을 보존능력ex. 같은 양의 물, 다른 크기의 컵전조작기 아동 曰 : 물의 양은 같지 않아! → 보존능력이 결여 된 것㉡ 보존 능력이 생기면?ⓐ 자기중심적 사고의 탈피ⓑ 가역적 조작 가능ⓒ 지각과 추론 사이의 갈등 발생 시, 추론을 토대로 판단 가능② 구체적 조작기, 형식적 조작기㉠ 논리적 조작 능력ⓐ 분류 능력 : 가역성을 비롯한 사물을 위계적으로 구성, 포섭관계 이해ⓑ 계열화 능력 : 사물의 변화에 따른 요소 배열 가능ⓒ 변화의 인과관계 파악 능력㉡ 추리ⓐ 구체적 조작기 아동=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구체적 대상으로 직접적인 정보만을 추리한 번의 조작에 하나의 요인만을 고려ⓑ 형식적 조작기 아동= 명제와 가설을 사용한 추리 가능. 활용 가능한 정보를 토대로 가능성 검토한 번의 조작에 주어진 여러 요인을 동시에 고려, 조합 가능∴ 사건, 사물의 군을 다루며 이를 분류, 추상적으로 일반화 가능ⓒ 위 두 단계 아동의 구분= 가설-연역적 추리의 가능성 여부③ 고정적인 발달 계열㉠ 발달은 직선적으로 이루어지며 그 순서는 바뀔 수 없음!㉡ 어느 단계를 뛰어 넘는 경우 없음㉢ 연속성을 지님㉣ 한 단계 =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 단계㉤ 이전 단계를 기반으로 통합하여 새로운 발달단계 제시㉥ 새로운 발달 단계 = 앞 단계의 지식 확대 발전 (X)대치하는 새로운 단계 (O)④ 발달의 개인차 인정㉠ 각 단계의 해당연령에 맞지 않는 발달의 차이를 인정→ 제시된 연령 = 표준적인 나이㉡ 환경적, 유전적 요인에 의한 차이 발생→ 발달이 진행 될수록 유전 < 환경의 역할 커짐㉢ 문화적 경험의 산물에 따라서 각 나이에 특정한 사고 과정이 나타남2) 피아제-필-할람 모델첫째, 피아제의 사고 발달 단계 = 역사적 사고력의 발달에도 적용(전조작기 → 구체적 조작기 → 형식적 조작기)둘째, 전반적으로 피아제 이론에 입각한 분석의 틀= 역사적 사고의 분류, 평가에 적용셋째, 역사적 사고에서의 각 단계= 점진적 발달, 순차적 발생, 그 이상의 지속적인 발달은평형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작용되어야 함.넷째금속 조각을 교환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① 종이나 금속조각을 주고 물건을 가져간다고 현상적으로 파악 = 기술② 화폐 개념을 도입하여 상품의 교역 사태로 파악 = 설명③ 기술적 사고와 설명적 사고기술적 사고설명적 사고사건, 현상의 각 부분들을 서로 연관시킴but. 직접적 내용, 주어진 자료에 근거하는 귀납적 방법에 의존하여 이루어지는 사고직접적 증거 외의 아이디어, 개념, 일반화를 도입하여 그것들이 상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고려하는 연역적 과정을 포함구체적 조작기에 상응형식적 조작기에 상응※ 설명적 사고= 대표적인 사고 양식, 13-15세에 나타남④ 설명자의 문제 해결 과정㉠ 여러 가지 가능한 설명의 상상㉡ 학습 중인 문제 중 하나 이상의 설명 선택㉢ 원치 않는 대안의 체계적인 제거㉣ 문제된 자료와 관련하여 가설로부터의 연역과 추론→ 연역과 추론 = 청소년기 후반에 나타남.안정된 상태를 이루는 모든 요소 파악, 다른 아이디어의 형성= 청소년 중기 이후⑤ 엄격하지 않은 설명과 기술의 구분= 텍스트 자료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 → 외부 개념 없이 기술 불가능∴ 설명의 범위를 크게 설정, 기술과 개념적 지식의 적용이라는 두 극단 설정⑥ 설명과 기술의 구분 이유?= 학교에서의 역사, 텍스트 자료가 포함된 모든 학습을 논의하는데 유용함.(역사적 사고의 분석적인 설명을 위한 방편임)(3) 역사적 사고에서의 구체적 조작과 형식적 조작① 할람㉠ 조사11- 16세 아동 100人에게‘메리 튜더’, ‘노르만의 잉글랜드 정복’, ‘아일랜드 내전’ 제시1 자료당 10문항 씩 총 30문항 질문 후 답변 분석결과) 피아제의 아동 사고 구분 형태가 그대로 나타남연령이 ↑짐에 따라 전 조작적 사고는 점차 감소함12.4 ? 13.2세에 역사적으로 구체적 사고 가능16.2 ? 16.6세에 형식적 사고의 낮은 수준에서의 추리㉡ 전조작기 사고의 특징ⓐ 제공된 정보를 문제에 결부 시키지 못함ⓑ 한 가지 특징에만 고립되어 중심화 함ⓒ 전환적 추론 (= 관련된 모든 요인 고려 없이 한 요소에서 다른 요소전에 대한 이해는 청소년 중기(16-18세)에 가능하다ⓔ 비판점- 역사의식을 정태적, 고정적으로 파악→ 학생들의 현재 발달 수준, 연령 단계의 발달 경향을 기술하는데 그침- 발달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조건, 힘 등을 언급하지 않음- 역사의식과 역사적 사고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 양자의 관계, 다른 쪽으로의 이행이나 발달조건을 고찰하지 못함- 실제 교육활동에 유용한 방법은 제시하지 못함.→ 법칙적 인식 (시대구조 등)과 관련된 추상적 발달문제에 접근한데 그침㉡ 일본 사회과교육연구회의 역사의식 개념ⓐ 심리적 측면의 역사의식- 역사적 흥미, 관심, 시간의식, 인과관계 의식, 시대구조 의식, 발전 의식 등- 초등학교 : 변화의 의식중학교 : 역사적 인과관계 파악고등학교 : 시대구조와 발달을 파악대학교 : 역사적 개성과 역사적 의미를 통찰ⓑ 역사적 사고의 요소? 사물의 변화를 고찰할 수 있는 능력? 사물의 변화는 그 자체의 내적 요인에 의해 불가피하게 일어나는가, 또는 외적인 다른 요인에 의해 일어나는가를 고찰할 수 있는 능력? 사물의 변화가 그 자체로서 완결되어 다른 사물에 영향을 주이 않는가, 또는 그 변화가 다른 사물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가를 구분하고 그 영향을 살펴볼 수 있는 능력? 사물의 변화를 거시적으로, 즉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걸친 하나의 시대라는 범위 속에서 놓고 살펴 볼 수 있는 능력? 사물의 변화를 과거에 한정시켜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 변화의 양상을 참고해서 금후 또는 미래의 장기간에 걸친 전망을 토대로 변화의 방향을 통찰 할 수 있는 능력? 개개 사물의 변화가 아닌 여러 사물들 각각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능력- 역사적 사고 = 역사적 사물, 사건을 보거나 고찰하는 방법으로 규정ⓒ 역사적 문제의식- 학생의 역사적 체험에서 비롯된 생활의식, 시대의식학생의 주체적 문제의식, 역사적 비판의식, 역사 건설에 참여하려는 의욕 등※ 발달 과정= 초 3부터 초보적인 역사교육 가능초 5, 인물사 중심의 역사교육 가능중학교, 역사 존재3) 지속 ? 이념, 종교, 철학 등의 구체적 형태4) 동시성 ? 동시에 발생한 유사한 사건을 인식- 초등학교 상급학년 (11-12세) 때 가장 크게 발달: 개별적인 이해연대기의 중요한 의미 수용 = 고등학교에서야 가능- 대체로 형식적 조작기에서 발생ⓒ 시대 개념- 어떤 시기가 갖는 공통적 속성에 의한 구분- 대체로 형식적 조작기에서 발생- 가장 고차적인 의식∴ 중학생 ? 고등학생 때에 이르러서야 발달2. 영역 고유 인지 이론⇒ 피아제 이론에 대한 반론으로 제기① 학교 교육과의 먼 거리② 특정교과, 영역에 대한 학습 능력 발달에 대한 이론이 아님⇒ 행동주의 심리학, 인지 발달 단계론의 대안으로서 새로운 입장 구축각 지식 영역에 따른 인지 과정의 차이 강조1) 피아제-필-할람 모델 비판① 피아제 이론을 적용한 연구의 과제, 방법적 측면의 비판㉠ 할람의 연구ⓐ 연구에서 사용된 자료가 시기상 동떨어져 있는 별개의 사건을 다룸→ 그 내용이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와 관련성이 없거나 너무 짧고그 시대를 알지 못하는 경우 답변을 할 수 없음ⓑ 연구결과가 아동이 성취할 수 있는 역사적 능력인지역사 학습의 결과로 성취한 것인지 정확하지 않음ⓒ 연구의 양, 연구 대상 학생 수가 적어 일반화하기 어려움② 피아제 단계 개념 적용 문제의 비판㉠ 피아제의 수평적 지체- 같은 인지 양식을 가진 과제를 동일 아동에게 부과 했을 때,과제에 따라 성취연령의 차이가 나타나는 현상- but. 단계 사이의 통합성의 부재, 단계에 이르는 연령 사이의 변수 등으로단계의 개념은 별 의미가 없다고 비판㉡ 형식적 조작의 입장- 영국 학교 교육심의회 역사분과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실험집단 (활용중심수업대상자) > 통제집단 (전통적교수요목수업대상자)⇒ 역사적 자료의 활용 능력이 높고, 활발한 사고를 함.∴ 피아제 이론의 형식적 조작 단계의 설명과는 불합치- 역사적 발전의 개념에 대한 연구구체적 조작기에서도 발달 가능 + 강의식 학습을 통해서도 발달 가능⇒ 중등학생과 역사가들의 차이 = 형식적 조작 사고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