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투스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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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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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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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타키투스의 생애
2. 『연대기』 소개
3. 작품에 나타난 타키투스의 역사관

III. 결론

본문내용

Ⅱ. 본론
1. 타키투스의 생애
타키투스 (Cornelius Tacitus;ca, 55~120) 는 로마의 신흥 귀족출신으로 가이우스(Gaius)라는 이름으로도 기록에서 발견된다. 그의 출생, 사망 연대 및 가족 계보에 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일찍이 로마에서 유명한 수사학자 마르쿠스 아페르 밑에서 공부하였으며 타고난 글재주로 이름을 떨친 것으로 전해진다.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Gnaeus Julius Agricola)의 사위가 되어 원로원 의원이 되고, 70년대 후반에 로마의 관리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하여 97년에 루키우스 베르귀니우스 루푸스의 죽음으로 보충 집정관(補充執政官)에 선출된다. 98년에 장인 아그리콜라에 관한 전기를 씀으로써 문필가로서 타키투스는 첫 발을 디딘다. 그리고 비슷한 무렵에 아마 라인강 북부의 풍토와 그곳에 살던 게르만족에 관한 게르마니아를 쓴 것으로 보인다. 타키투스가 역사가로서 후대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 저서 《타키투스의 역사》와 《타키투스의 연대기》는 110년 혹은 114년을 전후로 출판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정치가이자 연설가였으며, 원로원 의원과 지방총독으로까지 승진했다가 정치적 실패를 겪었던 지배계급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하여 역사를 저술했다. 그는 귀족출신이었으나, 공화정에 대한 애착심을 표명했는데, 공화정부형태가 군주제형태보다는 자유를 위해 더 효과적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날의 로마공화정은 공중도덕의 실추 때문에 몰락했으며, 제국의 출현은 필연적인 것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당대의 제정의 동요하는 정치와 사회혼란에 대해서는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그와 살루스투스는 정치적, 윤리적인 면에서 비관주의를 갖고 있었던 점에서 공통적이었다.
타키투스가 언제까지 살았는가 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어떤 확실한 증거도 없다. 하지만 연대기에서 ‘현재는 홍해가지 뻗어 있지만 그 당시는 이 부근까지가 로마의 판도였다.’라는 기술이 발견된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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