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 신화의 재평가]-대중예술 속 그리스로마신화-그리스로마신화에는 여러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사랑 받는 이야기 중 하나는 아마 트로이 전쟁과 관련한 이야기일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두고 벌어진 이 전쟁은 그 기간만 10년이었으며, 그 이후 연달아 발생하는 흔히 오디세이아라고 불리는 오디세우스의 모험 역시 장장 10년에 걸친 길고 긴 이야기이다.오디세우스는 이타카의 왕으로 트로이 전쟁에 참전했다가 이타카로 돌아오는 길에 수 없이 많고 견디기 힘든 고난을 당한다. 그 고난의 기원은 오디세우스가 종전 후 키클롭스 섬에 잠시 정박했을 때로 돌아간다. 키클롭스 섬에는 폴리페무스라는 키클롭스가 살고 있었는데,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무스 몰래 그의 음식을 훔쳐먹었다. 그 장면을 폴리페무스에게 걸리게 되어 죽을 위기에 놓이자,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우티스(아무도 아니다.)라고 밝힌다. 그 이후 갇혀있던 오디세우스는 기지를 발휘해 폴리페무스의 눈을 찌르고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상황이 역전되자 그제서야 본인의 이름을 밝힌 오디세우스는 다시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에 오른다. 그러나 오디세우스 때문에 실명한 폴리페무스는 사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다. 때문에 오디세우스는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게 되고 고난이 가득한 귀향길에 오르게 된다.오디세우스는 이런 연유로 험난한 여정을 하게 된다. 포세이돈에 의해 ‘못된 바람’, 즉 이타카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바람이 계속해 부는 바람에 이타카로 쉽게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 이때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를 만나게 된다. 아이올로스는 오디세우스를 딱하게 여겨 ‘못된 바람’은 모두 자루에 봉인하고 순풍만을 남겨준다. 순풍에 의해 이타카에 거의 다다르지만 부하 한 명이 자루를 푸는 바람에 다시 아이올로스의 섬으로 되돌아온다.키르케의 섬 아이아이에서는 키르케의 마법에 의해 선원 전원이 돼지로 변하게 된다, 이 때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키르케를 제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오디세우스는우스를 사랑하지만 그가 진정 이타카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온 힘을 다해 도와주어 그를 이타카로 보내는 현명하고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묘사된다.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아내 페넬로페가 수많은 구혼자들에게 둘러 쌓인 것을 본다. 이에 페넬로페에게 자신이 오디세우스인 것을 증명하고 구혼자들을 모두 죽인 후 다시 왕좌에 오르며 이 모험은 끝이 난다.이 내용에 대해 조원과 토론한 결과 두 가지 토론거리를 찾았다. 토론거리는 다음과 같다.오디세우스는 과연 영웅인가?페넬로페를 정숙한 여인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옳은가?1번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 이유는 오디세우스는 흔히 영웅이라 불리지만, 비영웅적 면모를 위 신화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트로이 전쟁이 막 발발했을 때 징병을 당하기 싫어 미친 척을 한적이 있으며, 칼리파를 비롯한 여러 여자들의 유혹에 넘어가 집에 돌아갈 생각마저도 잊고 지냈던 적이 있다.두 번째 토론거리는 현대에서 페넬로페의 평가에 대한 것이다.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 신화에서 지조가 있고 정절이 있는 정숙한 여인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것은 상당히 남성중심적인 시선에서 내린 평가이다. 지조와 정절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대부분 여성에만 해당되는 단어라는 점에서 그 뉘앙스가 남성에 의해 정해졌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대부분 남녀의 성 평등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현대에서 페넬로페는 지조와 정절을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 의해 재평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오디세우스는 영웅인가?텔레마코스가 메넬라오스를 만나기 위해 스파르타에 갔을 때, 메넬라오스는 텔레마코스에게 “너의 아버지는 영웅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말로 오디세우스가 영웅이 맞는가? 적어도 나는 오디세우스가 영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웅의 국어사전 내 정의는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오디세우스는 분명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다. 재치와 기지로 트로이의 목마를 생각해냈고, 트로이 전쟁을 그리스의 승리로 이끌었 우리 말로 번역하면 반-영웅(反-英雄)인데 이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거나 도덕적으로 나빠 전통적인 영웅답지 않은 사람’이다. 여기서 오디세우스는 도덕적으로 나빠 반-영웅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그가 왜 도덕적이지 않은가? 한마디로 간통했기 때문이다. 칼리파와 키르케에게 사랑을 느껴 그들의 섬에서 몇 년 간, 심지어 오기기아에는 여정의 7할인 7년간을 체류했고 두 여인과의 사이에서는 아이도 낳았다. 고향에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것은 명백히 간통이다. 즉, 용맹하지 않고 비도덕적인 오디세우스는 영웅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조원들의 경우 나의 생각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나와는 다른 의견을 냈다. 한 조원은 오디세우스가 도덕적이지 않다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용맹하지 않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분명 오디세우스가 아내 페넬로페를 생각하지 않고 다른 여자들과 지낸 것은 도덕적이지 않다는 증거이지만, 트로이 전쟁에서 세운 공들이 그가 용맹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라고 했다. 따라서 오디세우스가 용맹하지 않다는 것은 오디세우스의 일부만을 보고 섣불리 판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조원은 도덕성과 영웅적 면모는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했다. 영웅이라는 것은 일반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영웅의 구성조건에 도덕성은 포함되지 않는 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근거와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은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오디세우스가 영웅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이에 대한 내용을 발표를 한 후 조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했다. 첫 번 째 토론 거리에 대해 예상 외로 오디세우스가 영웅이라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는데, 재미있게도 이렇게 주장한 사람은 모두 남자였다. 또 오디세우스가 영웅으로 불리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의견도 소수 나왔는데 그 의견의 근거는 오디세우스가 도덕성이 부족하고 영웅의 조건에 도덕성이 포함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이런 주장을 편 사람은 모두 여자였다. 남녀의 시각차이가 두드러지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영웅적 면모를 일부 가진 사람’이다.결국 오디세우스가 영웅적인 면모를 갖췄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으며 그의 재능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영웅의 구성요소에 도덕성이 포함이 되는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갈려, 오디세우스가 영웅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되었다.페넬로페에 대한 재평가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의 협박을 물리치고 남편을 기다린 정조를 지킨, 정숙한 여인으로 묘사된다. 이 점에서 두 번째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그 질문에 대해서 나는 페넬로페가 단순히 정절을 지킨 소위 ‘열녀’라고 평가하기 보다는 ‘불쌍한 여인’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국의 왕비로 권력과 아름다운 미모와 부를 가지고 있는 그녀가 어떻게 불쌍할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여성으로서 매우 불쌍한 삶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남편의 외도와 남편의 부재를 겪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며 남편을 기다려야 하고, 본인에게 구애해오는 사람들을 내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 이유는 그녀가 왕비이기 때문이다. 왕비로서 백성의 눈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 구혼자들이 페넬로페, 그녀만을 보고 구혼한 것도 아닐 것이다. 그녀의 미모, 권력과 부를 노리고 구혼해 온 사람들이 많았을 확률이 크다.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이 보이고 사랑 받는 것 같아 보이는 그녀가 실제로는 외로움 속에서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과연 그녀가 오디세우스의 외도를 몰랐을지도 의문이다. 그리스로마신화는 신과 인간의 교류가 꽤 많은 신화이다. 오디세우스에게도 아테네가 직접 나타나 도움을 주거나 신들이 인간의 전쟁인 트로이 전쟁에 직접 참전하는 등의 상황을 볼 수 있듯, 신과 인간의 교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페넬로페에게 어떤 신이 오디세우스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전해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트로이전쟁 10년, 오디세우스의 모험 10년으로 20년 간 남편의 부재를 겪었던 그녀이다. 그런데 그 경우 그들을 더러운 존재 혹은 불경한 여자로 분류할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결국 페넬로페는 남성주의적 시각에 의해 만들어진, 남자들이 원하는 자신만을 바라보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만을 기다리는 남성들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여인상의 표현일 뿐이다.이에 대한 조원들과의 토론 결과 조원 모두의 의견이 비슷했다. 가장 큰 공통 의견은 페넬로페에 대한 평가에 지조나 정절이라는 단어는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위의 것과 같이 지조와 정절이라는 단어가 현대 사회의 방향과는 맞지 않는 남성중심주의적 시각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불쌍한 여인일 것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신화에서는 오디세우스의 20년간의 부재 중 페넬로페에 대한 20년간의 일을 모두 기술하지 않았다. 그 동안 그녀가 진심으로 오디세우스만을 기다려왔을지 혹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을 지는 확실치 않다. 전승되는 이야기 중에는 사실 페넬로페가 바람을 피운 것을 들켜 쫓겨났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이다. 그녀의 환경을 고려했을 때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확률이 높다는 주장과 함께 만약 그녀가 다른 남자와 사랑을 했다면 불쌍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보였다.조원이 아닌 사람들과 한 토론에서는 그녀는 불쌍하지 않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 이유는 조원들과 같았다. 그녀가 오디세우스가 없는 동안 다른 누군가와 사랑을 했을 확률이 높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즉, 20년간 혼자된 상태 그대로 살기는 어렵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또한 정절과 지조라는 단어가 남성중심적 시각에 의한 것이라는 데에 동의하며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페넬로페가 어떤 남성과 사랑했더라도 지조 없는 여자라며 욕을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페넬로페가 오디세우스만을 기다리며 20년을 보낸 이유가 왕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왕비는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는 여성이기 때문에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동을 쉽사리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이다.오디세우스 신화와 그리스 신화 안의 마초이즘문이다.
전공을 살려 봉사 프로그램을 계획하기사회에는 문화 생활을 누리기에는 어려운 경제적 환경에 놓여 있는 ‘문화적 소외 계층’이 존재한다. 이들은 문화적으로 소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때문에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으로 역시 소외될 수가 있다. 타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 적기 때문에 공감 하는 것과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것에 있어서 한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유행하는 TV프로그램을 보지 못해 급우 간 대화에 끼지 못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학생의 경우가 그렇다. 이처럼 문화 향유의 여부는 생각보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사회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문화적 소외 계층은 문화적인 경험에 대한 욕구가 강할 수 밖에 없다.문화 경험의 종류에는 영화, 연극, 뮤지컬, 전시회 등을 관람하는 것과 공예 체험 등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나의 전공은 독어 독문학이기 때문에 가장 쉽게 연관 지을 수 있는 연극을 컨텐츠로써 이용하기로 했다. 문화적 소외 계층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주어 사회적으로 소외 받지 않게 하기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목적 설정이 필요하다. 그 목적은 다음과 같다.독어 독문학과에서는 독일어 전공과 독문학 전공이 나뉘어 진다. 이 중 독문학 전공을 살릴 예정이다. 특히 독어 독문학과 내에는 Judith라는 학회가 하나 있다. 이 학회는 독일 문학 작품으로 극을 구성해 매년 2회 극을 올린다. 이 프로그램은 Judith를 표방하여 독일 문학 극 공연을 통한 문화 소외 계층을 통한 문화 생활 향유와 문화 수준의 향상을 목표로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극에 직접 문화 소외 계층을 참여 하게 함으로써 자신감과 사회성을 향상시키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이다.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이 설계된다.1. 극에 참여할 인원을 모집한다. 극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배려와 단체 행동 같은 사회성을 심어 준다. 따라서 극 진행을 위한 인원은 주로 사회성의 향상이 필요한 가출 청소년 혹은 따돌림을 경험한 청소년을 위주로 모집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모집된 인원들은 연출, 조연출과 스텝(의상, 소품, 조명, 음향 등), 그리고 배우에 배정될 것이다.2. 다음으로 해야 할 것은 극 작품의 선택이다. 독일 극 작품은 사회 풍자적인 경향의 작품이 다수이기 때문에 작품 선정에 있어서 상당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참여자들이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을 선정할 때에는 단원들의 특성으로 고려하여 사회 비판적인 경향이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상황과는 크게 연관되지 않는 것으로 고르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그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의 비판은 그들의 분노를 더욱 크게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참가자들은 다양한 문학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문화 수준을 향상 시킬 수 있게 된다.3. 다음은 배역을 선정해야 한다. 연극에 있어서 배역 선정에서 중요한 요소는 참가자의 의지와 능력이다. 그러나 이 봉사 프로그램에서는 연기를 잘 하는 능력보다는 그들의 하고자 하는 의지를 더욱 중요하게 두고 배역을 선정해야 한다. 봉사 프로그램의 목적이 연극 참여를 통한 자신감과 사회성 향상에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도 상당히 사회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배역 선정은 이 프로그램 내에서 타인과 자신의 다른 견해가 맞닥뜨리는 첫 과정이기 때문이다.4. 준비 과정으로써의 마지막은 극을 올리는 연습을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실질적으로 이 봉사 프로그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감과 사회성의 향상을 가장 크게 이룰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연습은 약 3개월간 일주일에 2~3회, 극을 올리기 전 일주일 간은 매일 하는 것이 적당하다. 극 연습은 리딩-블로킹-리허설의 과정을 거친다. 리딩은 극본을 보며 대사를 다듬어 가는 과정이며 블로킹은 대사를 외운 상태에서 동선 또는 동작을 다듬는 과정이다. 리허설은 무대를 꾸미고 그 무대 위에서 실전처럼 연습을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는 서로의 호흡과 배려가 상당히 중요하다. 맞지 않는 부분을 고쳐 나가며 배려를 배울 수 있다. 또한 리딩 훈련 중 발성을 통해 더 자신감 있는 말하기를 가능하게 한다. 나 자신을 포함한 Judith 단원들의 경험 상 발성이 크면 자신감이 있어 보이며 실제로 그런 변화는 자신감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이 과정의 또 다른 포인트는 무대를 꾸미는 것에 있다. 소극장을 대여해서 무대를 직접 꾸미는 것이다. 합판, 각목과 같은 자재를 구입하고 직접 색을 입혀 무대를 꾸미는 과정인데, 이 과정은 놀이와 같은 형태로 참가자들을 좀 더 친하고 결속된 관계로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5. 마지막은 극 공연이다. 극 공연에서는 여태까지 극에 참여했던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적 소외 계층들 역시 이 봉사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는다. 저렴한 가격에 문화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1인당 3000원 이하의 가격에 극을 볼 수 있으니 시중의 연극보다는 좀 더 저렴하게 접할 수가 있다. 이 과정을 통해 극 참여자인 문화 소외 계층들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으며 비 참여자들은 문화 생활을 향유할 수 있고 이 과정 자체가 그들의 문화 수준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이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다. 연극을 위한 소품과 의상, 무대 장치에 드는 돈 뿐만 아니라 대본 복사 비용과 식비 역시 고려해야 한다. Judith의 경우에는 ‘독일 연극 제작 실습 캡스톤 디자인’이라는 수업과 연계가 되는데, 이 수업을 듣는 학생수x10만원만큼의 지원금이 나온다. 배우진과 스텝진을 모두 포함해서 약 스무 명 정도가 있으므로 Judith의 기본 예산은 약 200만원이다. 추가로 선배들로부터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드물고 그 자금은 MT 혹은 뒤풀이와 같은 유흥비로 쓰이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따로 고려하지 않아도 무방하다.예산은 크게 연습 비용(식비, 대본 복사 비용)과 극을 올리기 위한 비용(소품, 의상, 무대설비 비용)으로 나눌 수 있다. 식비는 연습할 때 필요한 식사 비용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연습은 약 2개월간 일주일에 2회, 이후 한 달 간은 일주일에 3회, 극을 올리기 전 일주일 간은 매일 하는 것이 적당하다. 밥 값을 6000원이라고 보았을 경우 16x6000+12x6000+7*6000=210000으로 약 21만원 정도가 적당하다. 대본 복사 비용은 대본의 길이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양면 25장 정도의 분량이다. 따라서 20(인원수)x25(장)x100(원)=50000이므로 약 5만원 정도로 예상된다.소품과 의상은 대부분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책이나 지팡이, 원피스 같은 것들인데 혹시 없을 경우에는 아름다운 가게를 이용하면 저렴하게 준비할 수 있다. 지난 Judith 연극 같은 경우에도 아름다운 가게와 주변 물건들을 이용해서 총 6만원 이내로 준비를 마쳤다.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것은 무대 설비 비용이다. 무대 설비를 위해서는 각재와 합판, 못과 망치, 도료가 필요하다. 각재와 합판은 넉넉히 20개씩 구매했을 경우 약 30만원의 비용이 들고 못과 망치는 약 3만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 도료의 경우 3~4색 기준 5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따라서 무대 설비를 하기 위해서는 38만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 또한 무대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소극장을 빌려야 한다. 소극장은 무대 설치와 리허설 시간, 공연 시간을 고려해 10시간 정도 빌리는 것이 적당하다. 대학로 소극장의 대여시간을 알아본 결과 비수기에는 시간 당 3만원의 비용이 필요하므로 소극장 대여 비용으로 3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따라서 해당 봉사 프로그램에서 요하는 총 예산은 약 100만원 정도이다.예산과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웠다면 다음은 프로그램을 실행할 차례이다. 프로그램의 실행은 연극단원들을 모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아래와 같이 전단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자주 접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가출 청소년들이 모이는 쉼터에 홍보를 한다. 약 스무 명 정도를 모집한
전쟁과 욕구, 그리고 인간성에 대하여-붉은 고양이를 읽고붉은 고양이는 루이제 린저의 소설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궁핍한 사회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다. 루이제 린저는 독일의 여류 소설가로 반나치 활동을 했을 정도로 평화주의자였으며 인도주의자였다. 작가는 전쟁 중 반나치 활동으로 실형을 선고 받았었는데, 그 때문인지 그녀의 작품 중에는 전쟁관련 작품이 많다. 예를 들면 《옥중기》가 있는데, 《옥중기》는 투옥생활에 대해 기술한 작품으로 나치에 대한 고발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붉은 고양이는 1981년 작으로 사실상 시기적으로는 전후에 쓰인 작품은 아니지만 전쟁 후의 고난과 가난이 낳은 궁핍한 시대상황을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전후문학의 전형적인 속성을 띠고 있다.붉은 고양이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전쟁으로 폐허가 된 어느 마을에 사는 소년은 어머니와 두 동생과 함께 산다. 그들은 빵 한 조각마저도 아까워 할 정도로 궁핍한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붉은 고양이가 나타난다. 엄마와 두 동생들은 자신들의 배고픔에도 불구하고 그 붉은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나눠준다. 사실 소년은 그런 붉은 고양이가 아니꼬웠다. 그러나 그가 한 번 그 붉은 고양이에게 돌을 던져 내쫓았을 때, 다른 가족들에게 질타를 받게 되자 다시 돌아온 고양이에게 자신의 먹을 것마저도 나누어주게 되고 그 상황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소년은 결국 붉은 고양이에게 참지 못하고 이런 말을 한다.“나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내 동생들은 굶주리는데, 너는 살이 찐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는 그런 모습을 더 이상 가만히 볼 수 없어.”말을 끝마친 소년은 결국 고양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죽이고 집으로 돌아온다. 여태 소년보다는 고양이의 편에 섰던 소년의 어머니는 예상 밖의 반응을 보인다.“엄마는 너를 이해한다. 이제 그 일은 그만 생각해라.”그 날 소년의 동생들은 밤 새 소리죽여 울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소년의 생각을 제시하고 끝난다.‘그리고 나는 지금 그 붉은 짐승을 죽인 것이 과연 잘한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동물은 사실 결코 많은 양을 먹지는 않는데 말이다. “」이 붉은 고양이라는 소설은 사실 소설의 배경이 전후 상황 혹은 매우 궁핍하고 고통스런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이해를 할 수 있는 소설이다. 지금 우리에게 빵 하나는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배고플 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그 정도의 존재이다. 따라서 이 시대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혀 알 수 없다. 우리에게 빵 한 조각은 군것질거리 혹은 가벼운 식사대용이지만 가혹한 시대상황에서 소년은 그 빵 하나를 뺏어먹는 고양이를 증오하고 살해하기에 까지 이른다.이 소설에서 소년에게 이렇듯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며 소년이 그렇게도 아까워하는 빵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은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작품 《빵》에서의 빵의 의미와도 비슷한 점이 많다. 전쟁 후의 빵은 오로지 생명유지의 수단이다. 의식주가 완전히 풍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빵은 식 그 자체이므로 또한 잉여재고가 없는 상태이므로 누구에게도 나눠주기 싫고 나눠줄 수 없는 존재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주인공 소년이 고양이를 죽인 이유는 ‘고작‘ 빵 때문이 아니다. ’대단한 가치를 지닌’ 빵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나의 ‘식’에 위협을 가하는 대상을 제거하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그렇다면 이 소년은 왜 이 고양이에게 빵을 주었는가? 주기 싫다면 주지 않았어도 될 만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소년은 그 고양이를 너무나도 미워했다. 그것은 소년이 고양이를 죽이는 장면만 봐도 알 수 가 있다. 그 장면은 아주 눈앞에 보이듯이 묘사되어 있는데, 소년은 그 붉은 고양이의 뒷다리를 잡아 나무둥치에 내리쳐서 머리를 깨 죽인다.이런 증오심을 가지고도 소년이 그 붉은 고양이에게 자신의 먹을 것을 조금이나마, 억지로나마 나누어 준 것으로 미루어보아 소년은 아마도 붉은 고양이와 자신을 어느 정도 동일시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먹을 것이 없어 먹지 못 하고 굶주리며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일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붉은 고양이는 굶주리면서도 팔아봤자 팔리지도 않는 전후 상황에서는 무가치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불쌍한 존재인 소년은 또 다른 불쌍한 존재인 고양이를 자신과 어느 정도 동일시하고 미워하면서도 안쓰럽게 여겨 먹을 것을 나누어주었다고 생각한다.그렇다면 고양이는 왜 소년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소년을 꼿꼿이 바라보았을까? 이것은 고양이의 의미와 상관이 있다고 본다. 고양이는 이 소설에서 전후 상황에서 조차 인간성을 이끌어내는 매개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고양이를 통해 사람들은 동정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돕고자 한다. 그러나 소년은 기본적 욕구의 충족과 측은지심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이며 심지어 측은지심을 가지는 것보다는 기본적 욕구의 충족을 더욱 더 갈망한다. 이에 따라 고양이에 대한 학대가 이루어지지만 고양이는 그를 꼿꼿이 쳐다보면서 그의 인간성을 자꾸 자극한다. 또한 이러한 고양이의 모습은 소년을 비웃는 듯 하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고양이는 아마도 붉은 고양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소년이 자신의 모습은 모르고 붉은 고양이만을 미워하고 학대하는 모습을 비웃어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중간고사 이후로 여러 가지 작품들, 예를 들면 책상은 책상이다 혹은 빵과 같은 작품들을 배웠지만 직접 발표한 단식광대 이외에 가장 감명 깊었던 작품은 바로 이 붉은 고양이었다. 사실 이 작품을 배우기 직전에 배웠던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빵》이라는 작품도 같은 전후 문학으로써 꽤 감명 깊었지만 사랑과 같은 아름다운 감정보다는 조금 더 전쟁에 어울리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와 내면을 집중 조명한 이 작품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더 자세한 서술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이 작품을 보고서를 내기 위한 작품으로 선정한 것은 이 작품이 전후문학이라는 이유가 크다. 사실 전후문학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에도 수도 없이 많은데 나는 이 전후문학들에 질려가던 중이었다. 그 이유는 전후문학을 교과서에서 주로 배웠다는 점과 그 특유의 암울하고 모든 것이 불에 타는 듯한 느낌이 싫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후문학에서는 그 문학 안의 키워드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기 마련인데, 그것들을 교과서에서 배웠으니 그런 것들에 동그라미, 세모를 쳐가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들을 가려내는 행동에도 상당히 신물이 났다.그러나 다른 나라의 전후작품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그 느낌이 뭔가 색달랐다. 사실 다른 친구들 특히 외고 독일어과를 졸업한 친구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아직 독일은 가까워진지 얼마 안 된 대상이다. 그저 세계대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나 굉장히 반성하고 지금은 유럽의 강대국으로 자리 잡은 나라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도 이미지일 뿐 독일은 독일. 이것이 내가 느끼는 독일이다. 그래서 사실 이 붉은 고양이가 전후문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뒤통수가 띵 할 정도로 멍한 느낌이었다. 전후문학에 질려가던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나라에도 전후문학이 있을 것이라는 그 사실을 잊듯이 하고 살았으니 말이다.
독문학입문『죽은 자는 말이 없다』를 읽고독문학 입문을 수강하면서 여러 가지의 독일 문학 작품을 접했지만, 가장 주인공의 마음이 가까이 와 닿고 쉽게 교감할 수 있는 작품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였다. 작 중 악녀와 같이 표현되는 주인공 엠마를 이해하고 그녀와 교감한다는 것은 마치 나마저도 악녀라고 자칭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느낀 감정과 그녀가 순간순간 한 생각들은 모두 인간의 내면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녀와 같은 상황에 처하면 어느 누구도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라고 쉽게 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이 작품에서 첫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은 엠마의 성격에 대한 것이다. 작품 안에서 그녀가 드러내는 성격을 나는 크게 세가지로 보았다. 비윤리성과 이기성 그리고 비양심적 성격이다. 엠마는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비윤리적이다. 그 비윤리적 행동에 의해 그 다음 성격들이 보여지는데, 불륜에도 불구하고 가정과 사회적인 지위는 포기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또한 그 이기심에 의해 죽은 애인을 배반하고 그 시신을 버리는 비양심적인 행위를 저지른다.그렇지만 이런 그녀의 행동과 생각은 일반적인 사람이 불안감과 죄책감이 증폭될 때를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엠마의 경우, 그녀가 프란츠를 버리지 않았다면 인생이 모두 망가질 각오를 해야만 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현실보다 사랑을 택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그 것으로부터 두 번째 생각해 볼 점을 찾을 수 있다.바로 그녀의 행위가 왜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논의이다. 따지고 보면 프란츠의 죽음은 마부의 실수에 기인한 것이다. 엠마는 그의 죽음에 그다지 연관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왜 엠마가 프란츠의 시신을 버리고 도망간 것이 지탄받을만한 일일까? 그 이유는 인륜적인 것에 있다. 어떤 연고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고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 신고를 하던가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던가 하는 처치를 한다. 사람의 목숨은 소중하다고 모두들배우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착한 사마리아 인 법’ 이라는 것이 있다.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처벌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시행되지 않지만 전세계적으로 적지 않은 수의 국가에서 시행하는 법인 만큼 사람의 양심에 대한 책임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에도 엠마는 본인의 이기심 때문에 프란체를 유기하고 도망간다는 점에서 인륜적이지 못하며 양심적이지 못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비난 받을 만 한 것이다.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문학계의 프로이트라고 불리는 만큼이나 엠마의 심경 변화 추이가 잘 드러나도록 그녀의 마음 속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그녀의 생각을 묘사한 부분의 구성은 나도 모르게 글을 빨리 읽도록 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불안감을 만들어내 그녀와 교감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심리묘사를 쭉 읽고 나면 그녀에게 죄책감이 없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단지 그 묘사에 엠마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크게 드러났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죄책감이 없었다면 불안감마저도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