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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이란 무엇인가 - 교육의 6가지 정의
    2020-2 교육학세미나1주차_교육이란 무엇인가?1. 교육은 학교에 국한되지 않는다.교육이 학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학생이 될 수 있다는 뜻도 되고, 학교 밖에서도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교사도 학생의 위치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고, 학생에겐 학교 밖의 무엇이든 교사가 될 수 있다. 다채로운 경험은 학생에게 가장 값진 밑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 활동이 학교에서만, 교실에서만 일어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전에 한 국어 선생님이 오셔서 특강을 해 주셨는데, 문학 시간에 운동장에 나가 바람과 햇빛을 맛보고 만지게 했더니 학생들에게서 멋진 표현들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가르침과 배움이 학교 밖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학생의 경험을, 나아가서 존재 자체를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2. 교육에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이고 끈질긴 관심이 필요하다.교육에는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뿐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 인간적인 만남과 대화도 포함된다. 이전에 책 읽어주는 선생님 ‘다니엘 페낙(1944~)’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에게 교수(teaching)란 낭독(reading)이었다. 다니엘 자신도 학창시절 열등생이었지만, 그의 글쓰기 과정을 지켜봐주고 독려한 한 선생님 덕분에 다니엘은 교사가 된다.교사는 학생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갖고, 학생은 교사의 그 노력을 먹고 성장한다. 내가 학교에서 무얼 하든 신경 쓰지 않는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가장 절망적이고 우울한 일이다. 학생들은 교사의 무기력감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수업에 완전히 몰두하는 교사의 현존은 교실의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인간은 출력과 입력이 정직한 컴퓨터가 아니기 때문에 노력이 결실을 맺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속도는 모든 학생이 다르게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3. 실패는 포용하고 효율성은 버려야 한다.실패를 통한 학습이 이루어지려면 교육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느리게 흐를 수밖에 없다. 실패학습과 교육의 효율성은 공존할 수 없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기보다 스스로 여러 가지 길을 탐색하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패를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와 한 번의 실수가 중대한 실패로 이어지게끔 만드는 교육 시스템(가령, 일 년에 한 번 뿐인 수능시험과 1-2점의 차이로 대학과 전공이 갈리는 대입)이 교사와 학생으로 하여금 더 효율적인 교육의 방법을 찾게 한다. 갓난아이가 태어나 뒤집고, 걷고, 말하는 모든 성장 과정이 소중한 것처럼 교육의 과정도 그렇다. 무엇이든 시도해 보고 어떤 대답이든 던져볼 수 있도록 허용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고, 실수나 실패를 하더라도 그것이 학생의 자기 인식(난 역시 수학을 못해/내가 원래 그렇지 뭐)과 연결되지 않도록 세심한 피드백이 필요하다.4. 교육은 학생으로 하여금 미래를 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 그 안에서의 나의 위치를 객관적 시선으로 조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물음을 던지는 것에서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와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교육에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 지금은 미래 사회 핵심 역량인 지능정보 역량 함양을 목표로 코딩 교육으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 교육이 정규 교육과정에 편성되었다. 사회가 바뀌며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의 내용은 변화할지 모르나, 결국 그 본질은 ‘나’에 대해 알고 앞으로의 사회를 살아나가는 데에 필요한 사고를 갖추는 것이어야 한다.5. 교육은 나 자신에게서 가치를 찾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초중고 교육과정을 거치다 보면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시험 성적으로 매겨지는 상대적인 등수이다. 그러나 비교를 통한 성취감은 사실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위태롭다. 비교를 통해 성취를 느끼는 학생이 있다는 것은 비교를 통해 좌절을 느끼는 학생도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에 비해 내가 얼마나 앞서나가나 셈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비교의 대상이 없거나 나보다 우월한 경우 길을 잃기도 한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모두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또한 교육은 각자가 자신의 가치를 찾는 과정이어야 한다.
    교육학| 2020.12.05| 2페이지| 1,000원| 조회(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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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기호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서평
    2019-2 교직실무서평 과제B658030 이지원엄기호의 책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에서는 무너진 교실의 모습, 침묵의 공간이 된 교무실, 무기력만 남은 학교 등 다양한 문제 양상들을 통해 학교의 위기 상황을 다룬다. 책의 서두에서는 ‘우리는 학교에 무엇을 기대하는가’하는 물음을 통해 학교의 역할에 대해 고찰한다. 그 역할은 흔히 지식 습득의 장, 계몽의 공간, 신분 상승의 도구,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하는 곳 등으로 이야기되는데 현재 학교는 그중 어떠한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학교는 심지어 다양한 사람을 만나 폭넓은 경험을 하는 ‘성장의 공간’, ‘삶의 공간’으로서의 역할마저 상실하고 있다.이 책은 이러한 곤경에 대한 현장의 교사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을 자세하게 담고 있다. 많은 부분이 실제 현장에서의 인터뷰와 사례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무에 나가보지 않은 나도 그 상황을 그려보고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실제와 밀접하게 서술하고 있다.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많은 문제상황과 사례 중 특히 교실의 붕괴와 학교폭력의 문제에 주안점을 두고 논의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 책의 서론에 제시된 ‘타자성’이라는 개념과 그와 관련된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그들은,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군대에서 처음 알았다고 했다. … 이 학생들은 고등학교까지는 다 고만고만한 친구들하고만 어울려 다녔기 때문에 세상이 그렇게 다양하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 비슷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끼리 모이고 또 그 안에서 역시 비슷한 학생들끼리 몰려다니며 또래집단을 형성한다. … 나와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법을 몰랐는데, 군대에서 그걸 배웠다는 것이다.그들이 군대에서 배웠다는 것이 바로 타자성이다. 타자성은 교육에서 성취되어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 그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현대사회의 다원성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그렇다. 학교는 본질적으로 성장의 공간으로써 기능해야 하는데 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타자이다. 인간은 타자를 통해서야 비로소 본인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자성이 결여된 교육 아래에서 우리는 ‘좀처럼 나와 다른 것을 견디지 못하는’ 학생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나와 다른 것이 나타나면, 같이 잘 지내도록 노력하는 것보다 회피하고 마는 것이다.이러한 학교 현장에서의 타자성의 결여와 동질성에 대한 집착은 서열화와 학교폭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게 된 학생들이 이질적인 존재를 적대시하고, 또 나 자신이 그렇게 될까 두려워 스스로의 이질성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 동질성의 집단에서 도태된 학생들은 어느 축에도 끼지 못하고,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교육집단의 동질성 문제가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더 심해진다는 것 또한 문제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올라갈수록 비슷한 환경과 비슷한 목표를 가진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동질적 집단이 형성된다. 어린 시절 우리와 같은 반이었던 장애를 가진 친구, 형편이 어려운 친구, 다문화 가정 친구들은 학년이 올라가고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 곁에서 사라진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집단들의 이러한 폐쇄적인 동질성 때문에 학교에서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현재 뜨거운 감자인 입시 비리와 관련한 공정성 문제, 세대간 갈등, 성별간 갈등, 학교폭력 문제 등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지금까지 타자성과 동질성이라는 주제어로 학교 현장을 살펴보았다. 학교폭력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이 ‘이질성의 배격’은 또 다른 주제어, ‘공감능력’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교육의 목적이자 교사의 존재가치는 학생들이 타자를 이해하고 관계가 넓고 깊어지게 하는 것이다. 류 교사에 따르면 타자란 원래 공유한 부분이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불편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내해야 한다. … 그런데 학교는 타자를 만나고 이해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권력으로 약자를 괴롭히고 파괴하는 공간이 되었다.학교가 몰이해의 공간으로 전락하여 학교폭력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공감능력의 결여에 기인한다. 그리고 공감능력의 결여는 동질성으로만 뭉치는 교육집단, 이질적인 존재와의 만남 결여와 항상 같이 올 수밖에 없다. 다름에 대한 이해와 인식 부재가 타자에 대한 공감의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때문이다.그럼 한편으로, 이러한 문제 상황 속에서 교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타자성, 이질성에 대한 배척은 교사와 학생 관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교과서나 학교에서 통용되는 용어, 개념, 공식적 용어를 모른다고 하지만, 동시에 교사들이 학생들의 일상생활과 그 안에서의 말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교사가 문제 학생들을 ‘나와는 다른 존재’로 규정짓고 그 생활상을 자세히 살펴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 수업과 만남은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실패가 계속되다 보면 교사와 학생 관계는 배움과 무관해지게 되고, 진정한 관계 맺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독후감/창작| 2019.12.23| 3페이지| 1,000원| 조회(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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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 공간 혁신(학교가 몰이해의 공간으로 전락한 것은 학교 공간에도 원인이 있다.)
    2019-2 교직실무기말과제B658030 이지원논술문:학교는 왜 몰이해의 공간으로 전락했을까?예전에 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 감독이자 주연으로 출연한 마이클 무어는 세계 각국의 장점을 빼앗기 위해 침공을 계획하는데, 그가 계획한 침공 대상 중 노르웨이의 범죄자 수감 시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영상에서 나오는 노르웨이의 감옥 같지 않은 ‘감옥’시설은 그 앞에 넓은 호수가 흐르고, 재소자들에게 개인 방과 개인 화장실을 제공한다. 심지어 최엄정 교도소조차 다양한 휴식 공간을 갖추고 있고, 복도엔 예술 작품들이 걸려 있다. 그 장면이 나에겐 적잖이 충격이었는데, 우리나라의 학교 시설보다 훨씬 좋아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업에서 학교 공간 혁신에 대한 발표를 들으며 생활공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앞서 서평 과제를 위해 라는 책을 읽으며 ‘타자성’과 ‘동질성’, 그리고 ‘몰이해의 공간’이라는 말로 학교를 설명했는데, 학교가 몰이해의 공간으로 전락한 것은 감옥과 같은 학교 공간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일제강점기 일제 지배 체제에 순종하는 학생을 양성하기 위해 감시체제의 학교 공간을 구축한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도록 학교의 형태에는 변화가 없다. 아마 한국 사회에서 100년 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은 학교 건물밖에 없을 것이다. 일과 중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가 이렇게 획일적인 모습을 띄고 있는데, 이런 공간에서 성장기 12년을 보낸 학생들에게 ‘졸업 후 너의 꿈을 펼쳐라’, ‘창의 융합적인 인재가 되어라’라고 하는 것은 평생을 비좁은 닭장에서 보낸 닭에게 독수리처럼 날아 보라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학교는 왜 획일성을 기르는 공간, 몰이해의 공간이 되었을까? 나름의 고찰 결과를 크게 몇 가지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첫째로, 학교는 학생들에게 쉼과 취미활동의 공간으로 운동장만을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장에서 모래먼지를 날리며 신나게 뛰어노는 것 외에 담소를 나눈다거나, 편하게 독서를 한다거나, 사색을 한다거나 하고 싶은 학생들은 교실 외에 갈 수 있는 공간이 없다. 학교 공간의 특성이 행동의 제약을 야기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사색과 독서도 교실 말고 운동장 옆의 벤치나 조회대에서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두 번째 문제점이다. 학교는 보통 4층 건물로 구성되고, 일층엔 교무실과 교장실이, 교실은 주로 고층에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쉬는 시간 10분에 4층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고학년일수록 고층에 교실을 배정했는데, 그 이유인즉슨 3학년은 조용한 공간에서 공부해야 하고, 운동장이나 도서관 등은 갈 일이 적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교실이 꼭대기 4층에 배정되자 밥을 먹으러 1층 급식실에 내려갈 때 빼고는 거의 교실이나 복도에서 공부만 하게 되었다. 외부 자연 환경으로부터 격리된 것이다. 학생은 교실 안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전달받는 지식 외에도 많은 것들을 외부로부터 배운다. 교실을 저층에 배치하고 창턱을 낮추어 날씨 좋은 날에는 창문을 열고 풀내음과 같이 수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상적으로는 전체가 단층으로 구성된 학교 건물, 또는 하나의 거대한 학교가 아닌 여러 개의 건물로 쪼개진 공간을 조성하여 다채로운 풍경이 있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지금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허락하지 않는 학교공간에서 학생들은 나와 다른 것을 낯설어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밖에 없다. 평등은 ‘다른 것을 다르게, 같은 것을 같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공간은 그 평등을 획일화를 통해 이루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획일화된 공간에서 학생들은 나만의 가치를 찾을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이러한 가치 상실은 자존감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글을 쓰며 학생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율적인 활동시간을 보장해주는 참고할만한 학교 공간 혁신 사례를 찾아보았다. 덴마크의 ‘비트라 텔레폰플랜 학교’는 ‘벽이 없는 학교’, ‘칠판 없는 학교’이다. 이 학교는 학교 하면 흔히 떠올리는, 수업 공간을 나누는 벽과 수업에 있어서 필수적인 칠판 없이 모든 수업은 온라인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지며, 교실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학년과 반을 나누는 기준도 없다. 학생들은 ‘랩’, ‘캠프파이어’등의 공간을 이용해 공동작업, 그룹활동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삼삼오오 모여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은 학교 곳곳에 위치해 있어 학생들은 원하는 친구들과 편하게 모여 협력학습을 할 수 있다. 학교 전체가 가로막힌 벽 없이 하나의 큰 공간을 구획으로만 나누어 설계하였기 때문에 학생들이 조용히 쉴 수 있게 마련된 개인 활동 공간인 ‘케이브’도 외부 공간과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는다. ‘케이브’는 어두운 붉은색, 또는 베이지색의 벽으로 이루어져 차분하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외에도 놀이터의 용도를 가진 ‘워터링홀’, 공연장의 용도를 가진 ‘쇼 오프’ 등의 공간이 있다.
    교육학| 2019.12.23| 4페이지| 1,500원| 조회(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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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우 <소인국> 소논문
    2019-2 현대소설강독B658030 이지원김원우, 「소인국」1. 작가 김원우의 소설2. 무의미한 대화들3. 사진과 현미경4. 제목 ‘소인국’의 의미1. 작가 김원우의 소설김원우와 그의 소설을 ‘실험의지’와 ‘비판정신’으로 설명한다면, 실험의지는 소설이 이야기이고 작가가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에서의 탈피이다. 김원우의 소설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바닥을 기승전결로 짜여지는 규격의 상태에서 형상화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타 소설과 차이가 있다. 그리고 작가는 그 형식에 비판정신을 실어 소설을 쓴다.소설 「소인국」또한 전통적 소설 진행방법에서 탈피하여 눈에 띄는 서사 구조 없이 진행된다. 등장인물이 나누는 대화는 무의미하고 무료하며, 그들이 맺는 관계는 피상적이다. 명일규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익명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독자들과도 유의미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2. 무의미한 대화들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는 어딘지 모르게 붕 떠있는 느낌을 준다. 시덥지 않은 말들과 피상적인 소통으로 가득 찬 대화이다. 치통 환자는 치료를 받으러 가서 치과의사와 오만한 소녀에 대해서, 잠을 들지 못하게 만드는 치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내 ‘술이나 실컷 한번 퍼마셔볼까. 심란한 판에.’라는 치통 환자의 대사로 그 대화의 무게는 더욱 가벼워진다. 피상적인 소통의 단면은 ‘우리집은 왜 이렇지? 서로 고집불통에 말을 못 알아듣잖아. 했던 말 또 하게 자꾸 만들잖아.’라고 말하는 소아마비 소녀의 대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치과 치료를 받고 돌아온 치통 환자에게 부장은 그의 안부를 묻지만, ‘대답 따위를 들을 생각은 전혀 없’고 ‘그의 표정이나 심사에도 관심이 없다.’ 또한 부음 전화를 받고 치통 환자가 찾아간 사진사의 사무실에선 그의 조수가 ‘2.5와트용 켄우드 무전기기’로 ‘필요도 없는 정보’를 주고받는다. 치통 환자와 사진 기사가 나누는 대화 또한 무의미하다. 치통 환자는 그 무의미함을 알고 있다.치통 환자는 우물우물하다 말고 입을 봉해 버린다. 자신의 말에 싫증이 나서이기도 하지만, 그 무의미한 말로 스스로 갇혀가고 있는 것이 답답해서이다.치통 환자는 대화의 무의미함을 알고 답답해하기 때문에 ‘도대체 이게 뭐지, 이게 무슨 놈의 세상이지?’라고 마구 묻고 싶은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현실 인식은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일규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일규는 사진을 찍으러 산 속에 들어가 연락두절인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진 기사의 전화를 받고 치통 환자는 주변에 존재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신문 기사를 통해 레바논의 죽음을 전해 듣고, 신문 부음란에 ‘도식처럼 공지화’되어 있는 사람들의 죽음을 본다. 죽음에 대한 목격은 치통환자로 하여금 ‘무의미한 죽음’, ‘지구는 결국 주검의 무덤일 뿐’, ‘주검 앞에서 이제는, 그러니까 과거는 무의미해져 버렸다’ 따위의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무의미한 죽음 뒤에 따라오는 장례 절차는 그에게 ‘의례적인 요식 행위’이며, ‘주검에 대한 산 사람들의 호들갑에 지나지 않는다’.3. 사진과 현미경치통 환자는 신문사에서 사진 기사로 일한다. 작품에서 사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치통 환자와 부장의 대화 중 부장의 대사에서 엿볼 수 있다.사진의 한계야. 내면이 안 드러나고 형상만 곧이곧대로 키우고 줄이는 현상이니 말이야. 그렇잖아? 그것만이라도 중요한 거지만 한계는 엄연한 한계지. 표현의 자유라는 말은 진짜로 말이 되는 소린가? 좀 우습잖아? 표현의 주체가 무슨 자유를 누린다는 얘기야? 객체, 피사체가 보면 좀 우스울 거잖아. 표현의 자유의 배타적 권리는 누구 거야? 엄밀한 의미에서 말이야. 객체가 진짜 주인 아냐? 주체는 사진기라는 매체의 곁다리 겸 감상자 겸 노동자일테고…사진은 실체를 보여주지 못하고 피사체의 형상만 피상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등장인물이 나누는 무의미한 대화와 같다. 이것은 사진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복제 기술의 한계이다. 사진은 단조로운 현실의 복제이고, 대화는 황폐한 현실의 반복이다.치통 환자는 초상집에 가서 상주 모친의 넋두리를 들으며, ‘이건 사진도 아니고, 실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규 아버지의 무정한 죽음은 무의미한 현실의 여러 가지 단면(예를 들면 치통과 같은)을 뒤로한 채 ‘현실도 아니고, 사람의 세계도 아니고, 사진의 피사체도 될 수 없는’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통 환자가 이를 두고 ‘부득부득 우긴다’고 한 것처럼 일규 아버지의 죽음과 무의미한 현실 사이의 관계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치통 환자는 이 죽음과 현실을 그 정도의 차이로 구분하려는 듯 보이지만, 둘 모두 ‘의미 없는 단일 색조의 현실’ 위에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치통 환자의 현실 인식에서 사진과 함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현미경이다. 현미경 밖에는 감시자인 동시에 관찰자인 존재가 있고, 현미경 안에는 관찰 당하는 미물들이 있다. 치통 환자의 눈에 세상은 현미경 속의 미물들이 가득한 곳이며, 자신도 ‘그 속에 작은 세균 한 점을 더 보태는’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사진은 현실의 단면을 관찰하여 담아낸다는 점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관찰자와 닮아 있다. 그렇다면 치통 환자는 사진 기사이며 동시에 현미경 안의 세균이라는 점에서 두 가지 지위를 가진다. 이 이중적인 시각 때문에 그는 소시민의 현실과 죽음의 무의미함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결국 이 세상은 아주 작고 단조로운, 곳곳에 죽음이라는 공동만 널려 있는 돌멩이일 뿐이다. 치통 환자는 그 의미 없는 단일 색조의 현실을 한 장의 흰 종이 위에 담으려고 자신을 숨겨버리고 있는 친구의 실존이 눈발처럼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치통 환자는 이 세상을 작게 축소해 대는 그릇이 담긴 가방을 한쪽 구석에 내려놓는다. 그는 이제 작은 나라의 아주 작은 직분도 내팽개쳐버렸다고 생각한다.‘이 세상을 작게 축소해 대는 그릇’이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에서 사진을 찍는 카메라와 작은 미물을 관찰하는 현미경은 현실의 전형성을 포착해 하나의 장면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가진다.4. 제목 ‘소인국’의 의미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제목인 ‘소인국’의 의미를 알 수 있다. 현실을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본 미물들이 가득한 공간으로 인식하는 치통 환자에게 세상은 하나의 소인국이다. 현미경 밖 존재에게는 관찰의 대상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작은 나라의 아주 작은 직분’을 맡아 생활하는 미물들의 세계인 것이다.그 세계는 다채로움과 유의미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소설의 이야기 거리로 삼을 만큼 현실답지 못하다. 또 그 현실을 소설에 담더라도 아주 객관적일 수는 없다는 작가의 한계도 존재한다. 이렇게 현실과 소설 형식 모두에 한계가 있음을 작가는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반성적 언어’를 모색하게 되는데, 반성적 언어란 기존의 소설언어에 대한 반성의 의미보다는 작가가 인식하는 현실의 국면과 작가의 언어가 만나는 관계에 대한 반성의 의미에 더 가깝다. 작품 「소인국」에서는 이러한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소인국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사진 기사인 ‘치통 환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핀다. 치통 환자의 렌즈에 담긴 소인국의 모습은 무의미함과 죽음, 그리고 ‘돈과 일’에 파묻혀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세계이다.
    인문/어학| 2019.12.23| 4페이지| 1,500원| 조회(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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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완서 <환각의 나비> 소논문
    2019-2 현대소설강독B658030 교육학과 이지원박완서 「환각의 나비」목차1. 작가 소개2. 작품 소개2-1. 돌봄의 가치와 가부장 사회의 통념2-2. 작품 속 공간들2-3. 마금네, 마금이, 그리고 스르르 들어온 이상한 할머니3. 개인적 감상1. 작가 소개박완서는 1931년 경기도 개풍(현 황해북도 개풍군)에서 출생하였다. 1950년 6월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한 지 채 몇 달이 되지 않아 6.25 전쟁이 발발하여 학교를 중퇴한다. 그 후 미군부대 PX에서 근무하며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되어 그에 대한 전기를 쓰던 중 자신은 소설에 더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쓰던 전기를 소설로 바꾸어 단 삼 개월 만에 완성한 작품이 바로 장편소설 「나목」이다. 1970년 「나목」이 『여성동아』 현상모집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이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다가 2011년 1월 22일 7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박완서는 6.25 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전쟁과 관련한 경험들이 자주 등장한다. 첫 작품 「나목」을 비롯해서 「목마른 계절」 등 많은 작품이 그렇다. 또한 전쟁의 경험과 더불어 자본주의와 물질의식에 대한 비판의식, 여성의 어려움과 여성적 삶 등을 담은 작품을 썼다. 1980년대 이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이다.2. 작품 소개1995년 발표된 소설 「환각의 나비」는 두 모녀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그 중심에는 여성의 가사노동이 갖는 돌봄의 가치와 혈연관계를 넘어서는 유대감이 담겨 있다.2-1. 돌봄의 가치와 가부장 사회의 통념영주는 남편, 아들, 딸과 더불어 치매가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작품에서 이 가족의 애정은 매우 특별하고 끈끈한 것으로 묘사된다.이제 그만 데면데면하게 굴어도 될 만큼 머리가 커진 후에도 아이들은 할머니가 만든 반찬이 특별히 맛있다든가, 즈이들이 늦게 들어올 때 안 자고 기다리다가 문 열어주고 먹고 싶은 것까지 챙겨줄 때면 답례처럼 서비스처럼 으레 할머니한테 엉겨붙는 장난을 치곤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계산된 간교함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도 노인에게도 행복한 장난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서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떠오르곤 했다. 남보기에도 여실히 느껴지는 상호간의 그 완벽한 행복감 때문에 슬그머니 샘이 날 적도 있었지만 섣불리 흉내를 내보고 싶어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영주는 낳기만 했지 아이들은 순전히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노인에겐 그 어렵고도 장한 일을 한 이의 특권이랄까, 침범할 수 없는 당당함이 있었고, 아이들하고의 자연스러움은 거의 동물적이었다.이 장면에서 우리는 영주의 어머니와 아이들의 유대를 통해 이 노인이 베푸는 돌봄의 행위가 단순한 뒷바라지 이상의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의 가사노동은 영주네 가족을 결속시키는 힘인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돌봄의 가치와 대척점에 있는 개념으로 자본주의 가부장제를 제시한다. 자본주의 가부장제에서는 여성의 가사노동과 같은 일상의 노동은 평가절하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어머니의 돌봄을 통해 발현된 여성적 원리가 공동체를 유지하는 근본적 힘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 공동체적 유대감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치매로 인해 가출한 장모님을 대하는 영주의 남편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남편이 아주 슬픈 얼굴로 어머니가 신 총각김치 줄거리 넣고 지진 청국장 생각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하필 영숙이가 듣는 데서 한 소리였고, 어머니의 그 솜씨가 천하일품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었다. 남편은 울먹이듯이 비통한 얼굴로 그 소리를 했는데도 영숙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화를 냈다. 부리던 식모가 나갔어도 그보다는 듣기 좋은 소리를 할 거라는 거였다. (중략) 영주는 빨래를 다림질해놓은 것처럼 얌전하게 개키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 그리움이 가장 절절해졌으므로 남편의 진심을 이해하고도 남았다.영주의 남편은 가부장적 사고에 얽매이지 않고 장모님의 가사노동, 돌봄으로 인한 유대를 그리워한다. 이처럼 영주의 가족과 어머니는 공감과 배려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그 관계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의해 곡해되고 만다. ‘노후를 아들에게 의탁하지 못하는 것을 제일 불쌍하고 떳떳지 못하게 여기는 사회적 통념’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적 통념이 어머니에게도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결국 아들네 집을 향해 가출을 한다.2-2. 작품 속 공간들어머니의 반복된 가출로 인해 결국 영주가 모시던 어머니는 영주의 동생 영탁이네로 가게 된다. 영탁과 그의 처는 어머니를 나무랄 데 없이 모시지만 어머니는 그 안에서 ‘하루하루 자신의 의지라는 걸 상실’해간다. 어머니가 아들네에 오게 된 것은 오로지 가부장 사회의 규칙에 의한 것이며, ‘당신 손으로 자식을 벌어먹이기 위해 일생 서서 일하면서 터득한 당당함’과 행복이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공간에서 어머니는 아들네도 딸네도 아닌 과천이라는 ‘완충지대’에 집착한다. 과천은 영주네가 둔촌동으로 오기 전에 살던 곳으로, 어머니가 ‘마당을 가꾸’고 ‘약수터 배드민턴 회원’이었으며 ‘관악 에어로빅 회원’, ‘청계 노인회원’을 겸하고 있던 곳이다. 어머니는 그 공간뿐 아니라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점점 악화되는 어머니를 보다 못한 영주가 어머니를 다시 둔촌동으로 모시고 오자, ‘어머니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전의 모습을 회복해’간다. 어머니는 다시 집안일을 거들기 시작하는데, 영주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서 기쁨과 푸근함, ‘경배하며 입 맞추고 싶은 따뜻한 충동’을 느낀다.그러나 치매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기에 어머니는 둔촌동에서도 또 가출을 하고, 반년 넘게 어머니를 찾는 영주가 우연히 어머니를 발견한 곳은 서울 근교의 ‘구질구질한 마을 어귀’에 있는 ‘외딴집’에서이다. 천개사 포교원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는 이 집에서 어머니는 승복을 입고 한 여자와 도란거리며 더덕 껍질을 벗기고 있다.더할나위없이 화해로운 분위기가 아지랑이처럼 두 여인 둘레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몸집에 비해 큰 승복 때문에 그런지 어머니의 조그만 몸은 날개를 접고 쉬고 있는 큰 나비처럼 보였다. 아니아니 헐렁한 승복 때문만이 아니었다. 살아온 무게나 잔재를 완전히 털어버린 그 가벼움, 그 자유로움 때문이었다.어머니에게서 느껴지는 가벼움과 자유로움은 어머니가 ‘그 집’에서 비로소 가부장적 질서를 벗어나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옛날 ‘당신 손으로 자식을 벌어먹’였던 당당한 시간으로 회귀하여 비로소 행복을 되찾았다. 이러한 행복은 아욱을 다듬고 밥을 안치고 장독에서 된장을 떠다가 국을 끓이는 일상적인 가사노동이 ‘부려먹는’ 것으로 오해받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2-3. 마금네, 마금이, 그리고 스르르 들어온 이상한 할머니작품에서 등장하는 두 번째 모녀관계는 마금이와 마금네의 관계이다. 앞서 살펴본 영주와 영주 어머니와의 관계와는 다르게, 마금이와 마금네의 관계에는 돌봄이 없다.그렇게 음식을 많이 했건만 떡은 신도들한테 나누어주고 반찬은 식구들이 싹쓸어가 먹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딸이 한 번도 뭘 맛있게 먹는 걸 본 적이 없는 마금네는 뭘 먹도록 해줄 생각보다는 두면 썩혀버릴 거, 하면서 뭐든지 가져가려고만 했다.작품에서 마금네는 물질적 욕망으로 가득 찬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마금이의 능력, 상처까지 돈벌이로 이용한다. 가족에게조차 도구적 존재로 이용당하는 마금이는 자본주의적 현실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인물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렇게 여느 날처럼 ‘아무렇게나 굶어죽지 않을 만큼만 해먹’으려 푸성귀를 뜯던 마금이가 살던 외딴집에 치매가 걸린 영주 어머니가 스르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이상한 할머니’를 통해 마금이는 기쁨, 즐거움, 황홀감,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기분까지 맛본다. 돌봄과 배려의 관계를 경험해보지 못한 마금이의 상처를 치유한 것은 결국 영주 어머니의 가사노동을 통한 따뜻한 정서적 교감이었다.
    인문/어학| 2019.12.23| 4페이지| 1,500원| 조회(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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