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입법교착의 특징 분석:18대~20대 국회 비교연구이 연구는 18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의 입법교착의 특징과 원인을 분점정부와 단점정부로 나누어 비교 분석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입법교착은 원내정당간의 갈등이 공식적인 규범이 정한 원칙과 절차에 따라 해결되지 못하고, 국회 파행이나 물리적 충돌, 농성이나 회의장 점거의 양상을 보이다 결국 다수당의 단독 처리 강행으로 마치는 것을 의미한다. 18대 국회와 19대 국회는 단점정부였고 20대 국회는 분점정부였다. 한편 국내 여러 선행연구를 보면 분점정부가 단점정부보다 입법교착을 줄이고 법안 산출에 의미 있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정량적 분석 결과(입법산출, 의회의 대통령 견제, 핵심쟁점법안, 국회의 집회) 분점정부였던 20대 국회가 단점정부였던 18대 국회와 19대 국회보다 입법교착이 더 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점정부가 통치력을 저하시키고 입법교착을 야기한다고 섣부른 결론을 내리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분점정부는 입법교착을 야기하는 수많은 변수 중에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20대 국회의 실패원인을 숙고하고 차기 국회에서는 더욱 선진적인 정치 문화를 조성하는 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Ⅰ.서론분점정부인 20대 국회는 최악의 국회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시작으로 국회의 극한의 갈등은 2019년 중순 패스트트랙과 공수처법, 선거법, 검찰청법을 둘러싸고 계속되었다. 국회 점거, 단식농성, 삭발투쟁, 물리적 충돌, 필리버스터 등 20대 국회는 지난 어느 시기보다 갈등이 첨예했다. 2019년 에서 실시한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국회의 신뢰도는 10점 만점에 2.9점으로 역대 여론 조사 중 최저의 점수를 받았다. 실제로 법안처리, 핵심쟁점법안, 국회의 집회 현황, 의회의 대통령 견제 등 모든 지표에서 20대 국회는 역대 최저 점수를 받고 있다. 20대 국회는 여당과 야당 모두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분점정부였음에해서 반드시 입법교착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타협의 정치를 통해 좀 더 완화된 정책이 수립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책임정치에 큰 해가 될 만큼 심각한 정책마비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점정부는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리는 한국적 상황에서 행정부의 독주를 막고 대화와 타협을 강화하는 기능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정부의 통치력이 단순히 분점점부나 단점점부 여부에 따라 결정되기보다,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할 뿐이다.2. 분리주의분점정부는 미국 헌법의 분리주의 원칙에 부합한 정부유형이다. 미국 헌법제정 과정에서 매디슨(James Madison)을 중심으로 한 분리주의자들은 “의회 다수파의 지배로부터 보호되는 행정부”를 원했다. 왜냐하면 의회의 사악한 파벌들이 공모하여 행정부를 지배할 경우 공화국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 엄격한 권력분리의 원칙에 입각하여 의회의 지배로부터 분리되어 인민에 의해 선출되는 행정부를 구상하게 된다. 미국의 대통령제가 이원적 민주 정통성을 갖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미국은 다수파의 소수파에 대한 전제를 우려하여 ‘분리주의’원칙을 구상했고 이에 가장 적합한 정부유형이 ‘분점정부’라는 사실이다.정통적으로 분점정부 하에서 입법교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의회가 마비되고 정부의 통치력이 저하된다는 관점이 있어왔다. 의회와 정부가 분리되면 서로 제로섬적 경쟁관계에 빠져 입법 활동에 제동이 걸린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최근에 연구에 따르면 분점정부가 정부의 책임정치에 해가 될 만큼 입법 활동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경험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민주화이후를 분석해보면 오히려 단점정부일 때 국회의 입법교착 빈도가 증가하고 국회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국내에서 이루어진 연구에 따르면 1987년 민주화 이후인 13대 국회부터 17대 국회까지 입법교착의 빈도를 분석해본 결과 단점정부가 분점정부보다 소수당의 극렬한 저항에 부딪혀 원내갈등이 심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 172개의 법안이 철회되었다. 의원발의안은 16729개였으며 이중 2414개가 가결되었다.(14.4%) 그리고 14116개 법안이 폐기되고(84.4%) 172개 법안이 폐기되었다. 한편 정부제출안은 총 1093개이고 이중 379개 법안이 가결되고(34.7%) 713개의 법안이 폐기되었다.(65.2%)정부제출안의 가결률은 18대 국회가 40.8%였던 것에 비해 19대 국회는 34.7%로 큰폭 감소 하였다. 한편 의원발의안의 가결률은 18대 국회가 13.4%인 것에 비해 19대 국회는 12.3%로 줄어들었다.또 분점정부였던 20대 국회는 총 24139개의 법안이 발의되었으며 이중 3195개의 법안이 가결되었다.(13.2%) 한편 20729개의 법안이 폐기되었으며(85.9%) 215개 법안이 철회되었다.(0.9%) 의원발의안은 총 23045개 발의되었고 이중 2890개가 가결되었다.(12.3%) 또 19940개의 법안이 폐기 되었고(86.5%) 215개의 법안이 철회 되었다. 한편 정부제출안은 총 1094개 발의 되었으며 이중 433개의 법안이 가결되었다.(27.9%) 그리고 789개의 법안이 폐기 되었다.(72.1)총 법안의 가결률은 18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차례로 16.9%, 15.7%, 13.2%였는데 이처럼 법안의 가결률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의원발의안으로 비교하자면 18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차례로 13.6%, 14.4%, 12.3%였다. 이처럼 20대 국회에서 의원발의법안의 가결률이 가장 낮았다. 또 정부발의안으로 비교하면 18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차례로 40.8%, 34.7%, 27.9%였다. 정부발의안의 가결률은 18대 국회에서 20대 국회로 갈수록 현저하게 저하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18대 국회가 19대 국회보다 의원발의법안 가결률이 낮은 이유는 18대 국회가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쓸만큼 입법교착이 심했기 때문이다. 18대 국회는 개원 초기부터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82일 동안 원구성이 지연되기도 하였다. 275회기와 277회 발의 되었는데, 분점정부 시기였던 20대 국회시기에 공직자 임명동의안이 1회 부결되면서 의회의 대통령 견제기능이 부각 되었다. 한편 단점정부였던 19대 국회 시기에는 임명동의안이 3회 철회되었는데, 모두 인사청문회에서 갖가지 논란으로 인한 여론의 공세로 자진 사퇴한 경우였다.한편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임명 동의안이 부결된 것은 분점정부 상황뿐이었다. 임명동의안 부결 5회인데, 이중 노태우 대통령 시기에 1회, 김대중 대통령 시기에 2회, 노무현 시기에 1회, 문재인 대통령 시기에 1회이며 모두 분점정부 하에서 부결 되었다. 그러나 임명동의안 부결이 대치정국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예를들어 13대 국회에서는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이 부결되면서 협치 정국을 가져오게 되었다. 또 16대 국회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임명동의안이 2번 연속 부결 되면서 의회 다수파에 대항할 의지를 상실하게 한 바가 있다. 이처럼 임명 동의안이 부결 되는 것은 대통령에게 강한 충격을 줌으로서 의회의 대통령 견제가 활발하게 기능하도록 했다. 20대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헌법재판소소장 후보자 김이수 후보의 임명 동의안이 부결되면서, 여당은 야당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를 통해 국민의 당 대표였던 안철수의 존재감이 부각되면서 캐스팅보트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만들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단점정부 시기나 분점정부 시기나 임명 동의안이 발의된 횟수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분점정부 시기인 20대 국회에서 임명 동의안이 부결 되면서 분점정부 상황 하에서 국회의 대통령 견제 기능이 좀 더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그 다음으로 국회의 대통령 견제를 나타내는 지표중 하나는 ‘특별검사 임용’이다. 특별 검사 임용은 18대 국회에서 20대 국회를 거치면서 총 36건이 발의 되었다. 이중 단점정부였던 18대 국회에서는 특별검사 임용이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단점정부였던 19대 국회에서는 9건이 발의 되었고, 분점정부였던 20대 국회에서는 27건이 발의 되었다. 또 특별검찰임선별하였다. 즉, 위에 선별된 쟁점 법안은 언론에 자주 노출 되고, 여야 간 갈등이 첨예했던 법안이다.핵심쟁점법안은 여야 간 치열한 대치국면이 이어지다가 결국 여당의 단독 강행으로 처리되거나, 극한의 대치 끝에 야당의 분열로 처리된 법안을 의미한다. 단독 처리가 이루어 졌다는 것은 여야 간 대치와 입법교착이 발생하였고, 끝내 협상점을 찾지 못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핵심쟁점법안의 빈도는 ‘입법교착’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정량적 자료가 된다. 핵심쟁점법안에 대한 국회의 갈등이 심해질수록 언론에 자주 노출되어 대중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핵심 지지층이 결집되는 경향이 있다. 위의 법안은 언론에 자주 노출 되고 여야 간 갈등이 첨예했던 법안을 선별한 것이다. 선별 은 ‘단독 강행 처리’된 법안 중에서도 언론에 자주 노출된 법안으로 하였다. 언론에 자주 노출되어야 한다는 기준은 주관적인 생각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언론 빅데이터 사이트인 ‘빅카인즈’에서 ‘단독 강행 처리’를 키워드로 한 기사 중에서 상위 500개 기사 중 5번 이상 반복 된 것을 선별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즉 위에 선별된 법안들은 날치기 통과된 법안 중에서도 특히 언론에 자주 보도된 핵심쟁점법안이다. 요컨대 위의 핵심쟁점법안의 빈도가 높을수록 ‘입법교착’의 정도가 심하고 국회에 대한 대중의 평가도 냉소적이라는 의미다. 실례로 핵심쟁점법안의 수가 가장 많은 20대 국회를 대중은 ‘역대 최악의 국회’라고 평가하고 있다.18대 국회는 빈번한 입법교착, 물리적 충돌 등 갈등이 수반된 시기였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타협의 접점을 찾지 못해 국회의 원구성에 이르기 까지 82일을 소요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275회기와 276회 임시회의가 공전하다가 277회기에 와서야 여야간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 전까지는 입법 활동이 마비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만 하는 시기였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이 후에 ‘국회선진화법’을 통과하는 데까지 이르기도 하였다.
세계적 극우 열풍 배후의 러시아프란시스 후쿠야마는 공산주의 진영과 자유민주주의 진영 사이의 냉전이 종언을 고하면서 자유 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권위주의 돌풍과 자유 민주주의의 싸움이 격렬해 지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파시즘 음모의 칼끝에는 트럼프 당선에 있다. 작가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가는 권위주의 열풍을 설명한다. 전체 책 내용의 8할 정도를 할애하여 러시아의 역사와 통치철학과 더불어 러시아가 어떤 방식으로 국내 여론을 조종하고 속이는지 여러 자료를 통해 설명한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러시아가 어떻게 유럽 연합, 영국의 브렉시트, 그리고 미국 여론과 선거에 영향을 미쳤는지 많은 자료를 통해 설명한다.시작 부분에서는 어떻게 러시아가 소련 붕괴 이후 권위주의 국가가 되었는지 그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시간이 지난 뒤 옐친의 후계자로 ‘푸틴’이 부상하게 된다. 그는 제대로 된 민주적 승계 절차 없이 요식 행위에 불과한 선거로 당선 되었다. 푸틴은 권력을 잡은 후에 국민을 통합시킬 통치철학이 필요했는데 그 때 눈에 들어온 인물이 바로 이반 일린이었다. 그는 볼셰비키 혁명에 반대한 ‘기독교 전체주의자’였다. 혁명에 반기를 들어 1922년 추방당한 이래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다 죽었다. 그런 한 명의 철학자에 불과한 이반 일린은 푸틴에 의해 러시아 최고의 사상가로 우뚝 선다. 그는 강한 민족주의자로, 러시아 민족은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민족이라고 생각했고, 세계는 하나님의 적으로서 러시아는 이들을 피의 투쟁으로 ‘대속’해야 했다. 일린은 법치가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고, 과두제를 지지했다. 또 국가는 한 사람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독교 전체주의자’였다.또한 러시아를 지탱하는 사상 중 하나는 ‘유라시아주의’이다. 이는 러시아를 국가로 보기 보다는 하나의 ‘문명’으로 본다. 따라서 러시아에 속한 문명은 하나의 집단으로 통합해야 한다. 러시아에게 있어서 우크라이나는 하나의 독립적 국가가 아닌 러시아를 이루는 집단인 것이다. 러시아는 유라시아라는 이름의 넓은 제국을 원한다. 러시아는 유럽 전체뿐 아니라 세계가 러시아처럼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이런 기독교 전체주의 통치철학 하에서 러시아는 ‘전략적 상대주의’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국제 리더 국가가 되기 위해서 최고가 되기보다는 모두를 약화 시켜 상대적 우위를 점하는 ‘네거티브 썸 게임’을 뜻한다. 그 도구로서 거짓선동, 사이버 공격, 여론 조작 등을 사용한다. 저자는 러시아가 세계를 상대로 어떻게 ‘전략적 상대주의’를 실천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그 첫 번째 희생양은 우크라이나였다. 우크라이나가 혁명으로 정권이 축출되어 약해진 틈을 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한다. 사이버전과 가짜 뉴스를 생산하여 우크라이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동시에 군사력을 투입하여 내전을 일으켰다. 놀라운 것은 러시아의 공영방송에서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선전했고 2016년까지 86%의 국민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는 사실이다.또 러시아는 유럽에 극우정당을 부상시키기 위해 정치공작을 펼치고 있다. 이를테면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50만 의 난민을 수용하기로 결정했을 때 러시아는 시리아를 공격하여 유럽 전역에 난민이 넘쳐나게 하였고, 동시에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양산한 봇과 시민 단체 등을 통해 가짜뉴스를 생산하여 난민에 대한 악의적 여론을 조장하기도 했다.우크라이나에서 사이버전 경험을 쌓은 러시아는 다음으로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겨냥했다. 이를테면 트위터에서 브렉시트에 관해 이루어진 논의의 3분의 1정도가 봇에 의해 작성된 것이었고, 정치적 내용을 트위터에 올리는 봇의 90퍼센트 이상이 영국 바깥에 소재한 것이었다.러시아 음모의 클라이막스는 2016 미국 대선이었다.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부터 러시아의 검은 돈을 받았고, 실제로는 파산한 부동산 개발업자였지만 텔레비전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성공한 사업가라는 가공의 이미지로 변신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여론조작을 힘입어 아슬아슬하게 대선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가 페이스북 페이지 470개를 개설하고서, 이들이 개시한 정치 관련 글들이 총 3억 4000만 번 공유되었다고 한다.이 책이 갖는 함의는 “소셜 미디어 시대에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교란될 수 있는가”에 대한 사고를 돕는다는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가 러시아의 사이버 전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는 모습을 통해 권위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한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요약하자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첫째, 러시아의 권위주의 통치철학. 둘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통치 병합 과정에서의 정치공작. 셋째, 러시아의 유럽 극우화 정치공작. 넷째, 러시아의 미국 정치공작이다. 370쪽에 이르는 책 내용 대부분이 러시아의 정치공작 사례를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거의 모든 사례에 출처를 제시하는데 371-443까지가 모두 각주로 채워져 있다. 이런 방대한 자료를 접한 독자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체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를 통해 저자는 서구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러시아 발 권위주의 돌풍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그러나 저자가 러시아의 정치공작 사례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한 만큼 객관적이고 절제되며 중립적인 문체를 사용했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저자의 정치 편향성은 책의 설득력을 떨어지게 만들고 있다. 이를테면 ‘거짓말쟁이’, ‘도둑 정치인’과 같은 주관적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언어의 남발이 책의 설득력을 저하시킨다.
Ⅰ.중국 개혁개방의 과거1. 마오쩌둥 시대의 퇴보1958~1961년에 마오쩌둥의 주도로 이루어진 대약진 운동이 이루어졌다. 대약진 운동은 국무원(政)이 주축이 아닌 당(黨)주도적으로 이루어진 대중동원 운동이었다. 그러나 당은 이데올로기적 열정이 앞선 채 실무를 보는 기술전문가들의 전문적 분석은 무시했다. 대약진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인민공사’였다. ‘인민공사’는 집단농업 생산체제로서 수십, 수백 가구가 하나의 인민공사가 되어 집단 주거하고 집단 노동하는 공동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대약진 운동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먼저 인민공사는 집단 노동, 집단 분배하는 생산체제였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근로의욕을 저하시켰다. 그리고 지도부들은 실제로는 적게 생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초과 생산을 했다고 ‘허위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분배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이 때 1960~1961년 사이에 아사한 인민만 3천만에 이른다고 추정된다. 이렇게 마오쩌둥은 실권을 잃고 2선으로 후퇴하게 된다.얼마 지나지 않아 마오쩌둥의 지도 아래 참혹한 ‘문화혁명’(1966~1976)이 일어났다. 문화혁명 기간 동안 마오쩌둥은 당-국가 자체가 지나치게 관료화 되었으며 혁명적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중국 인민들에게 당-국가 자체를 공격하라고 부추겼다. 초기 문화혁명 지도부는 린뱌오, 저우언라이 그리고 마오의 부인 장칭이었다. 홍위병들이 상하이의 실질적 권력을 장악했지만, 홍위병들에 의해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통제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때 ‘2월 역류’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2월 역류’는 1967년 2월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황보고회의에서 예젠잉, 쉬샹첸, 녜룽전, 천이, 탄전린 등 인민해방군과 공산당의 원로들인 천보다, 캉성, 4인방 등 문화대혁명 지지파들에게 맹렬한 공격을 퍼붓다가 마오쩌둥의 개입으로 실각한 사건을 말한다. 그렇게 1800만의 홍위병들을 협력 농촌생활인 하방으로 보내면서 1969년에 제9기 전마르크스/레닌주의와 모택동 사상 등을 견지할 것을 말한다. 이렇게 소위 제3의 길이라고 불리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가 탄생하게 된다. 중국의 경제개혁은 독특한 것이었다.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을 주장했다. 즉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서방세계의 보편적 규범을 상당부분 거부하고(일부는 민주주의적 요소를 가미함) 사회주의 일당독재 체제를 견지하되, 공산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우선 경제적인 성장이 필요하므로 시장주의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점진적 개혁 방안은 반대세력과도 충분히 타협할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큰 저항 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덩샤오핑의 개혁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첫째로 농촌 개혁이다. 중국에는 농민의 인구가 가장 많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농업 개혁이 이루어졌다. 수백 가구가 한 공동체를 이루어 공동생산 공동분배하던 ‘농민공사’가 해체되고 ‘농가생산체계’가 도입되었다. ‘농가생산체계’는 개인 사유지가 없었던 ‘농민공사’와 달리 각 농가의 생산 인구에 비례하여 농지를 나눠주고 농가 생산 인구에 비례해서 책임량이 할당되었다. 또 책임량을 초과하는 생산은 농가가 사유로 처분할 수 있게 하였다. 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농업생산이 증대되었다. 초과로 생산되는 농산물을 자율적으로 처분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시장이 생기고 ‘향진기업’(TVE)가 형성 되었다. 향진은 중국 지역 행정 단위 중 가장 작은 단위로서, 마을 시장 같은 것이었다. 향진기업은 초과된 생산물을 가공하여 팔기도 하였다.둘째로는 도시 개혁이 이루어졌다. ‘물건법’이 통과 되는데, ‘물건법’전에는 민간기업을 개인이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부 국유기업이었는데, 물건법 후에는 ‘비국유기업이 허용된다. 따라서 제한적이긴 하지만 계획경제가 축소되고 시장경제가 확대되게 된다.셋째, 지방 정부들 간에 경쟁을 유도했다. 각 지방을 경쟁시켜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둔 지방에게 세금 감면, 승진 과 같은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서로 경쟁이 과열되면서 ‘낙수효과’가 상쇄되어 하는 ‘사회주의 민주정치’였다. 즉 “인치가 아닌 법치의 확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규범에 따르는 자유 민주주의 모델을 따르는 것이 아닌 공산당 일당 독제 체제를 고수하려는 기조는 요지부동하다.덩샤오핑이 정치개혁을 위해 15대 전대 이후로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것은 ‘당정 분리’이다. 서방의 삼권분립처럼 분점 정부 모델은 아니지만, 당이 정부의 권한을 지나치게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이 정부의 역할을 지나치게 침해해서는 정상적인 사회주의 법치국가 확립이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개혁, 개방 이후 여러 다른 계층의 많은 요구를 잘 수렴하여 통치에 반영할 수 있어야 사회 안적을 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하지만 이런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민주화’가 조속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18년 19차 공산당 전당대회를 보면 오히려 총서기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하는 조항을 폐지하며 독재 권위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 이유는 민주화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일당독재 체제로서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소련이 붕괴하는 사례처럼 급진적인 민주화 개혁, 즉 형식적인 민주화는 정치적 민주화도 실패하고 경제적인 성과도 이루지 못하여 국가적 혼란만 일으키고 민심을 분산시키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2) 사회주의 경제개혁중국의 사회주의 경제개혁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로의 개혁이다. 덩샤오핑의 ‘초급단계론’은 공산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생산력의 비약적 증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에 따라 시장경제 체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중국특색의사회주의’경제체제는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모델이면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모델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중국은 시장경제체제를 차용하지만, 국가소유제와 부분적 계획경제를 고수한다는 점에서 서양식의 자유시장경제를 거부한다.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역사는 사회주의의 패배이며 자본주의의 승리”라는 명제를 거부하는 모습소유’개념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계획-시장 경제’로의 전환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덩샤오핑의 이와 같은 개혁방안은 급진적이지 않으면서, 이전 마오쩌둥 체제하의 경제 황폐화를 경험한 중국 지도부의 폭 넓은 공감 속에서 수용되었다. 이렇게 소유권은 국가가 갖고, 경영권은 시장에 맡기는 식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중국특색의사회주의’가 탄생했다.그리고 경제체제의 개혁은 재산권의 소유권이 국가소유에서 사적소유로 이전되어 가는 과정으로서의 ‘사유화’와 재산권의 통제방식이 국가통제(계획경제)에서 시장조절로 이전되어 가는 과정으로서의 ‘시장화’를 구별할 수 있다. 이렇게 구분할 때 ‘중국특색의사회주의’체제는 시장화가 부분적으로 이루어 졌으며, 사유화 또한 부분적으로 이루어 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중국에 사유화가 부분적으로 이루어 졌다는 건 무슨 뜻일까? 중국은 현재 민간기업의 사유화가 부분적으로 허용되어 있는 상태이다. 시장경제를 차용하면서 사유화가 제한하는 것은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자연히 사유화 또한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Ⅲ. 중국 개혁개방의 미래1. 사회주의 정치민주화의 전망첫째, ‘정치적 안정’을 우선시하는 중국 공산당의 속성으로 인해 정치적 민주화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중국은 과거 마오쩌둥 중심의 일당독재체제의 폐해를 경험하면서 사회주의 민주화에 필요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민주화’의 일환으로 ‘당정분리’를 추진하려 하였다. 당이 정부의 영역에 직간접적으로 침해하지 못하도록 분권화 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법치주의’를 확립하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정치적인 안정’을 유지하려는 태도 때문이다. 소련처럼 급진적으로 체제변동이 일어날 때 정치적 민주화도 이루지 못하고 경제적 발전도 이루지 못한 채 국론분열만 일어날까 우려하여 ‘체제안정’에 방점을 두고 있는 모습이다.과거를 돌아보면 중국은 ‘체제안정’을 최우선순위에 두었음을 알 수 서구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적 민주화가 쉽지 않을 거라고 전망한다. 먼저, 중국 인민의 정치의식을 조사하기 위해, 전 사회여론에 주도능력이 있는 ‘중국 신중산층’의 정치의식을 중심으로 연구했던 논문을 인용하고자 한다. 이때 ‘중산층’은 경제적 중산층보다는 직업적 중산층, 즉 화이트칼라 계층을 중심으로 조사하였다.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을 힘입어 함께 성장한 ‘중국 중산층’의 규모는 연구기관마다 편차가 상이하지만 대략 15~25%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 논문의 핵심 질문은 중국의 신중산층이 중국의 정치민주화를 이루어 낼 것인지 아니면 현재 권위주의 체제를 선호하는지에 대한 것이다.결론적으로 중국 중산층은 현정부에 대해 ‘친화성’과 ‘저항성’이라는 이중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친화성’이라는 것은 현 정부의 체제에 대한 매우 높은 신뢰를 가지고 있고 이는 타 계층과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저항성’은 현 정부를 지지하면서도 한편 ‘민주의식’은 여타 다른 계층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주지할 점은, 이들이 바라는 민주주의는 글로벌 규범에 따른 서구식 다당제 민주의식과는 다른 중국 지도부가 구상하는 이른바 ‘사회주의 민주’의식 이라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중국 중산층은 현 권위주의 체제를 지지하면서도 한편 좀 더 많은 민주화를 원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정치체제를 흔들 만큼의 정치의식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실천적 부분에서는 특별히 강한 요구를 보여주고 있지 않았다.최근 2018년 19차 공산당 전당대회를 보면 오히려 총서기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하는 조항을 폐지하며 독재 권위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중국의 민주화는 서구사회가 생각하는 다당제 자유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다른 중국식 ‘사회주의 민주주의’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중산층의 민주화의식은 현 정치체제를 흔들 만큼은 아니고, 현 정부 지도부는 오히려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보인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했다. 냉전 체제 하에서 넘버 원이었던 미국은 넘버 투였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글로벌 자본주의로 끌어들이고자 했다. 이는 71년 ‘핑퐁외교’와 그해 10월 ‘중공’의 유엔 가입, 또 72년 2월 닉슨의 중국 방문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게 러시아를 포위하고 견제하던 미국은 구소련이 붕괴하게 되면서 체제전쟁에서 승리하여 세계의 1인자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미국의 단극체제를 또다시 위협하는 나라로서 일본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GDP 비율이 미국과 비교하여 60%쯤 되자 미국은 다시 일본을 견제하기 시작한다. 그 단례로 1985년 맺어진 플라자 합의를 들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엔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획기적으로 끌어내리게 되면서 일본의 무역경쟁력이 약해짐에 따라 일본은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는다. ‘잃어버린 10년들’ 또는 ‘헤이세이 불황’이라고도 불리는 일본의 장기 불황이 이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2010년부터 지금까지 또다시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새로운 도전자 중국에 대해서 미국은 강한 경계심을 표출하고 있다.‘투키디데스의 함정’이론처럼 과거 미국은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도전자들을 견제하고 제거해왔다. 이를 볼 때 미국의 지도부는 상당부분 현실주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중국은 과연 과거 소련과 일본처럼 미국에게 패배할 것인지 아니면 승리하여 ‘세력전이’를 이뤄낼 것인지에 대해 학계는 지금까지 꾸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최근 코로나 정국을 지나면서 세계의 구조가 크게 변동하는 모습 속에서 과연 미중간의 경쟁이 어떻게 결말을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세계는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미국의 과거 러시아와 일본을 견제하는 행보를 보면 ‘현실주의’이론에 입각하여 패권경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국제사회는 힘의 균형이 평화를 가져다 준다는 세력균형이론보다는 ‘힘의 우위’가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미국은 반세계화와 보호무역이라는 다소 단독적이고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한 차원에서 볼 때 트럼프가 기존의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깨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 먼저’를 내세우며 노골적으로 돈 얘기만을 하는 것, 또 그것도 액수를 갑작스럽게 엄청나게 높이는 것 등은 미국 패권의 쇠락을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이다.반면 중국은 국제적으로 자국의 입지를 넓혀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대응 과정에서 리더십에 상처를 입은 반면, 중국은 그 빈틈을 파고드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를테면 최근 미국이 유럽발 외국인 입국을 제한하자, 중국은 이탈리아에 300명의 의료진을 파견했다. 시진핑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에서 벗어난 사실을 부각시키며 각국 정상과의 통화에서 중국의 방역 성과와 중국 통치 모델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있다. 또 인공호흡기, 마스크, 방호복 등 의료물자 제공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관세청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중국의 의료물자 수출액은 102억위안에 달했다. 이번 기회에 각국을 친중국가로 만들겠다는 노림수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한편 세계 국제기구 사이에서 중국은 영향력을 점점 넓히고 있다. 현재 국제기구 전체의 30%는 중국인이 수장을 맡고 있는 상황이다. 차이나 머니를 앞세워 국제무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우며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는 등 국제기구에서 한발 물러서고 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중국이 파고들어 국제 헤게모니를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 이유는 중국의 취약한 경제구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경제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위험한 상태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높은 수준의 경제 성장률이 사실은 거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그 근거로 첫째, 중국이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참여국가의 디폴트로 중국 경 몬테네그로 정부는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데에 중국으로부터 7억 5000만달러(9120억원)을 빌렸다. 금리는 2%에 불가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환률이 변동하면서 상환비용이 최대 18%까지 늘어난 상태다. 결국 몬테네그로 정부의 공공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80%까지 늘었고, 국가 경제의 핵심축인 관광산업까지 휘청이고 있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중국에 진 빚 때문에 위험에 처한 나라들로 앙골라,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등 상품 의존도가 높은 국가나 라오스, 캄보디아 등 아시아 소국, 그리고 세계 최빈국들이 몰려 있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을 꼽았다.세계 72개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데, 개도국들이 중국으로부터 진 빚이 3800억달러(462조 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익성이 낮은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국들이 채무불이행상태에 이르면 중국은 상대국에 대한 장악력은 높아지겠지만 경제적 부담은 고스란히 중국이 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주요 사업장의 수익성 악화 탓에 사업 차질이 우려되는 가운데 코로나19 충격까지 겹쳐 일대일로 주요 사업들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말이다.”둘째, ‘글로벌 리쇼어링 흐름’ 때문이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차질이 빚어진 것 외에도 ‘글로벌 리쇼어링 흐름’도 중국 경제의 취약성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일찍이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며 세계의 중간재 공급의 허브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중 무역 전쟁에 이어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면서 중국에 있던 해외 기업들이 본국으로 귀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리쇼어링’현상은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보호주의에서 비롯한 신보호주의와 세계화의 후퇴 현상에서 기인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2010년~2019년 사이에 본국으로 회귀한 기업은 미국에서 3327개, 유럽연합에서 160개, 일본에서 724개, 한국에서 52개다.일본 정부는 중국 내 기업들의 공장을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유턴 기업을 대상으로 이전 비용의 3분의 2까지 정부가 대주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문제는 크게 부동산 거품, 부채에 의한 과잉설비/과잉생산를 들 수 있다. 중국 최대 투자은행인 중금공사의 CEO를 지낸 주윈라이(朱云?)는 중국의 전체 부채가 600조 위안(약86조 달러)이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한 회사로 볼 때, 이 회사는 자산이 대략 900조 위안이고 부채가 600조 위안이며 자본이 300조 위안이다. 또 GDP 성장률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부채가 늘고 있어서 큰 위기다.”라고 주장했다. 2017년 중국의 GDP가 12조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중국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큰 금액이라고 볼 수 있다.중국의 부채에 의한 과잉생산/과잉설비 문제 또한 만만치 않다. 중국은 2008년부터 금융위기에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지방정부에 대해서 저금리의 부채로 인프라 건설을 독려한 바 있다. 그 결과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어 냈지만 실제로는 거품성장이다. 중국 기업들이 저금리 부채를 해외에서 들여와 사업을 확장했지만 이제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달러화는 평가절상되고 위안화는 평가절하 되면서 중국 기업의 달러 부채 부담이 증가되고 있다. 인프라 사업같은 경우는 대부분 수익률이 낮은데, 대표적으로 중국의 유령도시를 예로 들 수 있다. ABC뉴스에 따르면 중국에는 전국적으로 6400만개의 빈 아파트가 있다고 한다. 중국의 유령도시들이 바로 엄청난 양의 세금 낭비의 증거라고 지적했다. "전국의 지방 정부는 더 많은 인프라를 구축하고 부동산 시장을 자극함으로써 경제를 자극하려했다. 이처럼 낭비되는 구조는 국유 회사와 민간 회사 쌍방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할 때 만약 미중간의 무역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중국에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넷째, 시진핑 집권 이후 미중 무역 전쟁이 겹치면서 중국 민영기업의 파산이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공산당에 의해 민영기업이 국유화 되는 일이 점차 가속화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덩샤오핑이 펼쳤던 ‘국퇴민진’(국유기업이 퇴보하고 민간기업이 성장함) 정책이 시진핑 이후에 ‘국진민퇴’정 최신 수치를 종합하면, 2018년 1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중국 민영기업의 채권시장 순융자금은 -2,981억이다. 같은 기간 공기업 채권시장의 순융자금은 3조 8,433억 위안이었다. 이는 채권시장이 민영기업에 빌려준 돈 3000억 위안을 회수한 반면, 공기업에는 4조 위안 가까이 빚을 늘려줬다는 말이다. 이 수치는 국영기업은 육성하고 민영기업은 퇴진시키는 ‘국진민퇴(國進民退)’ 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중국 공산당은 주식시장이 크게 폭락해 상장회사의 주식이 헐값이 됐을 때 민영기업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한다. 또, 어려움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중앙에서 지방까지 각급 금융기관과 결탁해 싼값에 민영기업을 인수하고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보고서에서 중국의 채무불이행의 80%를 민영기업이 차지한다고 밝혔다.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시진핑이 집권한 2013년 이후로 중국 민영기업의 적자비율은 2013년에는 9%였지만 2019년에는 17.7%로 큰 폭 증가했다. 또한 민영기업의 순이익률 또한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2015년에는 10%였던 순이익률이 2018년에는 7%로 떨어진 것이다. 반면 국영기업은 2015년 순이익률이 3%였지만 2018년 5%로 늘었다. 이런 자료때문에 시진핑 주석이 ‘국진민퇴’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받는 이유다.더욱이 지난 코로나 이후 중국에서는 1분기에만 46만여개의 민영기업이 파산했다. 중국의 노동인구 총 3억8000만명 중 약 50%에 해당하는 1억 8000명이 실업한 상태다. 이에 따라 한 경제전문가는 1분기 경제 성장률을 -8%에서 -10%까지 예측하고 있다.그렇다면 현재 중국과 미국의 국력 차이는 얼마나 될까? 2018년 기준 인구수는 미국이 3억3100명, 중국이 14억3932명으로 중국이 압도적이다. 그리고 국내총생산(GDP)는 미국이 20조4940억달러, 중국이 13조6081달러로, 중국의 경제규모는 미국의 약65%이다. 그리고 1인당 국내총생산은 미국이 6만2641달러, 중다.
병든 민주주의를 향한 노학자의 따끔한 일침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최장집“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 (중략) 누구나 알 수 있듯이 한국 정치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냉소를 넘어 거의 무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p. 8)1987년, 국민적 열망의 폭발로 권위주의적인 구체제가 무너지고 민주 정부가 등장하면서 한국 정치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더욱 부풀었다. 그러나 저자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의 진보정권을 거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발전했느냐고 반문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역사를 잘 관찰해보면 민주주의를 만들기도 어렵지만 발전시키는 것은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최소주의적 관점에서 민주주의는 안정적으로 정착했을지 모르나 실질주의적 관점에서 민주주의는 오히려 퇴보했다는 것이다. 한국에 성숙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원인은 무엇일까? 에서는 그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대한민국 현대사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추적한다.한국 민주주의는 질적으로 퇴보하고 있다. 저자의 표현으로는 이를 “민주주의의 보수화”라고 하는데, 민주주의의 보수화는 8.15 광복 이후로부터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광복 초 이데올로기의 극심한 대립은 냉전반공주의를 탄생시켰고 이는 국가가 군과 경찰, 검찰과 방첩 기구 등과 같은 기구를 활용하여 타 이데올로기를 억압시키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국가는 중앙 집중화된 관료 국가로 발전해 갔으며 자연스럽게 권위주의 국가가 등장했다.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박정희식 발전모델은 효과적이었다. 립셋과 쉐보르스키의 근대화론에 따르면 경제력의 성장은 민주화를 야기한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박정희의 군사주의와 발전주의식 경제정책의 성공은 민주주의의 탄생에 기여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민주주의 발전에 장애가 되었는데, 왜냐하면 박정희식의 경제성장 모델이 엘리트 중심주의 가치관 확산, 슈퍼재벌의 탄생, 권력과 언론의 유착 등은 민주주의의 가치와 규범 확산에 장애가 되었기 때문이다.또한 국민의 열망을 담은 민주화 운동으로 1987년 민주화가 되었음에도 한국 민주주의는 여전히 보수적 성격을 벗지 못했다. 정당과 대중의 연결고리는 약화 되고 다시 정치 엘리트 중심의 과두적인 정치 현상이 지속하였다. 민주화 이후 민주 정부가 출현했지만 구체제로부터의 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기존의 강한 보수적 헤게모니를 극복하지 못하고 타협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강한 개혁보다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보수적 민주주의가 그렇게 탄생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변화를 향한 국민적 기대를 안고 출범한 정부임에도 국가를 어떻게, 재벌은 어떻게, 노동문제는 어떻게, 시장은 어떻게 개혁할 건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 무능한 정부는 관료에 의존하게 했고, 곧 관료에 포획되는 관계로 바뀌게 되었다. 민주주의하에서 한국의 관료는 복지부동, 무책임, 전문성의 결여, 무능, 부패, 무사안일, 줄 대기 등 거의 모든 요소가 부정적인 것이다. 그 결과 노동의 배제, 재벌과 관료의 결탁,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의 협애성, 초중앙집중화, 다원성의 결여, 시민사회의 약화 등의 문제가 여전히 산재해 있다.3부에서 저자는 우리나라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문제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중에서 저자가 공들여 설득하고 있는 내용은 ‘정당정치의 필요성’이다. 우리나라는 시민사회가 약하다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권위주의 시기에 시민사회는 ‘국가 코포라티즘’형태를 띠었기 때문인데, 다시 말해 시민사회는 권위주의 국가에 의한 통제를 수용하는 대가로 자신들의 특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형태가 민주주의의 걸림돌이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시민사회란 ‘국가와 개인 및 가족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자율적인 결사체의 활동 영역’을 의미한다. 시민사회는 정당과 시민을 밀접하게 연결시켜주는데, 시민사회가 발전하지 못하면 국가는 갈등을 사회화(공론화)하지 않고 사유화하게 된다. 이는 결국 정보의비대칭성을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는 단순히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의 문제를 표면적으로 지적하는 것을 넘어 좀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저자인 최장집 교수는 대한민국 내에서 민주주의에 관해 가장 깊이 있는 이해를 보이는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민주주의가 한국 정치사에서 어떻게 발생하고 성장하고 퇴보해왔는지 함께 살피다 보면 한국 사회 문제에 대한 표면적 진단보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는 한국 민주주의 문제를 진단하는 날카로운 렌즈를 제공하고 있다. 또 단순히 제도적 수준의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인 관점에서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저자의 논리를 찬찬히 따라가면 사회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민주주의의 이상향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이 협애성, 시민사회가 약화, 정부의 무능, 기득권의 시장 지배구조, 정보의 비대칭성과 같은 문제를 인식하게 하고, 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나아가야 할 다음 길을 비춰주고 있다.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모하는 정치지형을 고려하면 2002년에 초판이 발행된 책인 는 2020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금은 뒤처진 느낌을 준다. 물론 그렇다고 책 내용의 본질적인 영양가가 파괴되었다고 할 순 없지만, 몇몇 분석들이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이를테면 저자는 우리 사회가 냉전반공주의의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강력한 보수주의 헤게모니가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미 권력의 중심축이 보수에서 진보로 상당 부분 이동했고,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냉전반공주의 이데올로기는 60대 층에서만 강하게 작동할 뿐이다. 또 점차 낮아지는 투표율 통계를 제시하며 탈정치화되는 사회를 지적했지만 지난 10여 년간 투표율은 매년 상승하고 있다.그리고 책 전체를 흐르는 주요 주제 중 하나는 반재벌 반신자유주인데, 그 주장이 일부 독자들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 저자는 박정희식 발전국가 모델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재벌을 낳았고, 재벌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 강력한 헤게모니를 가졌기 때문에 온전한 민주주의 정신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권위주의 시기에 형성된 정경유착의 고리가 슈퍼재벌을 탄생시켜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기업의 부패를 조장했다는 것이다. “거대한 경제 권력의 출현이 민주주의를 변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중략) 위계적인 자원 배분의 구조가 민주주의의 발전과 양립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별도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p.267) 그러나 이런 논리에 의구심을 품는 독자들을 위해서 별도의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반비례 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이나 영국 같은 경우 한국보다 강한 신자유주의 국가이지만 민주주의에서는 우리나라 보다 발전되어 있다. 미국 같은 경우는 한국보다 노동의 유연성이 더 높기까지 하다. 물론 기업의 공정경쟁과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 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세계 무역 규범은 국가의 시장개입을 부도덕하다고 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세계화 흐름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기업의 투명성 확보에 유익할 수 있다. 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하이에크는 그 저서 에서 오히려 국가의 시장 개입이 자유의 가치를 침해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과연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저해하는지 재고 할 여지가 있다.그렇다 해도 저자의 민주주의 논의는 한국 정치 현실에서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한국은 제도적인 면에서 민주주의에 꾸준한 발전을 이뤄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장집 교수가 추구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제도적인 수준을 넘어 문화와 사회에 뿌리내린 실질적인 민주주의 정신이다. 사회 각 계층이 얼마나 평등한지,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 이념과 사상을 수용할 수 있는지, 사회의 균열이 적절히 표출되고 바람직한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소되고 있는지, 정당과 민중과의 연결고리가 강화되어 국회에 민중의 기대와 요구가 충분히 전달되고 있는지, 노동자들의 권익이 보장되고 있는지, 언론이 투명한지, 기득권의 독점적 시장 지배구조가 개혁되고 있는지 등이 저자가 진정 관심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현실 너머에 있는 민주주의의 이상향을 발견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날카로워진 문제의식은 정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유용한 수술 도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