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요약과학적 객관주의, 형식적 객관주의, 한국형 형식적 객관주의(신문 기사에 사용된 취재원 사용과 직접 인용 분석을 중심으로)객관주의는 저널리즘의 주요 원칙이자 전문직으로서의 규범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관해 객관주의 저널리즘은 미국에서 1830년대 시작되어 1920년대에 직업적 윤리로 정립되었으며 이후 유럽 등으로 전파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Chalaby, 1996; Schiller, 1979; Schudson, 1978, 2001: Streckfuss, 19).20세기 초반, 실증주의는 학계의 주요 패러다임이었다. 실증주의란 인식론적으로 개인의 믿음 가치 등에 영향을 받는 ‘주관’과 그렇지 않은 ‘객관’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며, 연구자는 주관을 배제하고 대상을 관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지식이란, 관찰이나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특정 개인이 관찰이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fact)은 타인도 동일하게 인식한다고 전제하였다. 또한 과학이란,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명확하게 객관적인 기준으로 측정하는 것을 배울 때 시작되며, 이러한 방법을 통해 절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러한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기자들의 취재 방식 및 뉴스의 보도 양식 같은 업무뿐 아니라 직업윤리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검증할 수 없는 의견보다 사실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주어진 뉴스거리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사실을 수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실증주의에 입각한 객관주의 저널리즘은 당시 학계 언론 현장으로부터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는데 첫 번째로, 주관을 배제하는 것이 가능한 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기자가 취재 및 보도에서 사실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기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두 번째로, 객관주의가 사실을 담보하는가의 비판을 받았다.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객관적) 사실의 전달이 반드시 진실을 보장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기자의 주관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취재 방법의 개선이 필요하여 객관적 저널리즘이 도입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초기 학자들은 개인의 주관을 극복할 방법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체계화된 과학적 방법론을 취재 방법에 도입할 것을 주장하였다. 과학이 객관적 연구방법을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기자들도 과학적 객관주의를 통해 진실에 이르는 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에서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하려는 노력은 꾸준히 시도되었다. 탠커드는 저널리즘에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취재원 적시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였고, 코바치와 로젠스틸도 취재 과정에서의 투명성, 특히 투명한 취재원 적시를 중요하게 설명하였다. 취재 과정에서의 투명성은 과학적 객관주의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 중에 하나이다. 국내에서는 주로 실명 취재원과 익명 취재원의 사용빈도에 중점을 둬왔다. 취재 과정의 투명성이 한국 언론과 영미 언론을 비교할 때 과학적 객관주의를 어느 정도로 준수하는 지를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선행 연구에 따라 연구문제가 제기되었다. 취재 과정의 투명성의 기준을 취재원 투명성, 투명 취재원 숫자, 실명의 토대 정보 제공 취재원으로 나누고 각각의 요소들이 영미의 유력 일간지와 비교할 때 어떠한 수준인지를 연구하였다.언제부터 한국 언론에 객관주의 저널리즘이 반영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강명구, 1989) 학계에서는 한국 언론의 객관주의 저널리즘이 진실의 전달과는 무관하게 형식주의를 따르는 데에 머물렀단 비판이 지속되어왔다 (남재일, 2006. 2008. 2017; 박대민. 2015: 송용희, 2007; 유선영. 1996). 객관성을 나타낸다고 보여지는 방식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객관화’의 담론 전략이라는 것이다. (송용회, 2007) 그중 인용은 기사의 사실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건 중 하나이며, 다른 사람의 발언을 전달한 것이라는 점에서 객관주의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국내에서는 직접 인용의 관행 중 일부가 객관주의를 표방하면서 기자의 주관을 담는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즉, 익명의 취재원 발언을 통해 각각 자신의 정파적 입장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또한 취재원의 발언을 직접 인용하면서 주관적 서술어를 선택하는 관행을 보였으며 이 역시 객관화 담론의 전략 중 하나로 비판받았다. 주관적 서술어를 사용하며 기자의 주관을 드러낸 것이어서 객관주의 원칙에 벗어난다는 것이다.
21세기, 의료 기술과 다양한 사회경제적인 발달로 인하여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더욱 안전한 식품, 믿을 수 있는 식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친환경 농산물, 웰빙 등이 유행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오랫동안 삶을 지속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내 몸에 좀 더 건강한 식품과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가 증가했고 이는 곧바로 소비자의 태도를 변화시키는데 일조하였다.최근 10년 사이에 매스컴에서는 같은 재료로 더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 건강과 다이어트에 좋은 음식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건강과 음식의 연관성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지에 대해 가늠해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면서 국경이 무의미할 정도로 수출, 수입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우리는 이제 해당 국가에 가지 않아도 해당 국가에서 생산된 식품을 먹을 수 있고, 완제품의 형태로 수입하지 않았더라도 그와 비슷한 재료로 현지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서비스가 구축이 되었다.
들어가며 정치, 경제, 사회, 스포츠… 그 중에서도 연예 뉴스의 비중은 오늘날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각종 연예인들의 결혼, 범죄, 열애설은 그날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도 하고 심지어 메인 뉴스에서조차 이를 자세히 다루는 코너까지 만들어져 있다. 스포츠와 더불어 그만큼 사람들이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생활은 일거수일투족 알려지고, 보여지고, 찍히고, 밝혀진다. 유명 연예인의 열애설이 일주일 내내 뉴스 앞 쪽에 배치되어 보도 되어 지기도 하고, 숨기고 싶었던 과거의 일들, 범죄들이 낱낱이 밝혀지기도 한다. 이는 국민들의 ‘알 권리’라는 명목 하에 서슴지 않게 이루어지는 것 중 하나인데, ‘과연 연예인이 공인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공적인 일을 수행하느냐에 있어서는 확신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연예인이 ‘공인’이냐? 에 대한 물음을 시작으로, 연예인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원푸드 다이어트, 마녀수프, 제품 칼로리 커트 등 현대 사회에는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각종 다이어트 기법 및 제품이 판을 치고 있다. 헬스 트레이너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다이어트 기법을 소개하고, 기업들은 과장광고와 허위광고로 소비자를 현혹하여 이윤을 챙기기 바쁘다. 이러한 현상이 사회에서 만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여성은 날씬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에 익숙한 사회이다. 전통적인 성 스테레오 타입에 있어서 남성보다 여성에게 적용되는 것이 많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여성들에게 강요하던 것이 많던 우리 사회는, 현대에 와서도 여성들에게 다양한 것을 요구한다.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 중 날씬하고 아름다움에서 여성성을 찾을 수 있다는 편견이 자리 잡아 있고, 여성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비만인 여성들에게 살을 빼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행동인지 깨닫지 못하게 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프리즌>은 감옥에서 시작되는 완전 범죄에 대한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프리즌> 속 죄수들은 교도소 안팎을 자유롭게 오가며 각종 범죄를 일으킨다. 교도소의 실세를 포함한 모두가 준비를 마치면 마침내 감옥 문이 열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로 선발된 죄수들이 작업을 시작한다.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완전 범죄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뺑소니로 전직 경찰인 유건(김래원)이 입소하게 되고 특유의 다혈질 성격으로 익호(한석규)의 눈에 띄게 된다. 유건은 익호의 눈에 들면 감옥 생활이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익호 주변에서 익호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몸을 던져 도와주고 끝내 익호의 신임을 얻게 된다. <프리즌>은 이제까지 교도소를 다룬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르적 공식들을 깨뜨리는 신선한 발상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전제되어 있는 상황 설명이 전반적으로 부족하여 교도소 내에서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점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