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미국사』목차서론본론결론서론이 책은 미국사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다양성과 통합성을 모두 살펴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접했던 책 중에서 가장 두껍고, 내용이 많았지만 그만큼 자세히 미국사를 알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미국은 미국 사회를 형성하는 수많은 집단인 지역과 종교, 계급, 인종, 성, 민종 등 많은 것을 토대로 발전해 온 수많은 분야의 내력을 가진 나라이다. 그만큼 흥미롭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하다. 미국은 모든 국민의 삶에 밀착된, 너무나 안정된 정치제도를 건설했고, 모든 국민의 일과 소비 생활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연계된 거대하면서도 생산성 높은 국가 경제를 발달시켰다. 그리고 대다수의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의 체험과 상상력을 하나로 묶는 대중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런 대단한 역사를 아는 데 있어서 이 책 한 권으로 완벽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미국사를 알게 되는 데는 확실한 도움이 된 것 같다.본론중상주의란, 한 개인이나 나라가 부유해지려면 다른 사람이나 나라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한 국가가 부유해지려면 다른 나라에 가능한 한 많은 물건을 팔고 적게 사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기반한 것이었다. 중상주의 원리는 16세기와 17세기에 유럽에서 만연했고, 그 결과 식민지를 얻기 위한 관심이 점점 증가했다. 유럽의 많은 국가가 식민지를 얻고 싶어 했던 이유는 식민지는 원료를 공급하는 역할은 물론이고 자국의 상품을 파는 시장의 역할도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중상주의 정책은 초기에 유럽 대륙, 특히 앤트워프(Antwerp)의 대규모 의류 시장과 거래가 성행하면서 이것을 기반으로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1550년대에는 공급 과다로 시장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영국 상인들은 해외 교역을 위해 다른 곳을 물색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일부 영국인들은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이 그것에 대한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식민지가 시장 역할을 할 것이며, 과거나 쓸모없는 사람들은 저주를 받았다는 징표이고, 덕망과 근면과 성공은 은혜의 징표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칼뱅의 운명 예정설은 추종자들 사이에 불안감을 심어주기도 했으나, 고결하고 생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한 동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나는 ‘운명 예정설’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운명 예정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세상 모든 일이 시작도 하기 전에 결과가 정해져 있고, 그렇다면 노력을 할 필요도 없고 세상에는 가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때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운명 예정설’에 의하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운명 예정설’을 믿는 것은 ‘운명’을 믿는다는 것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의 모든 것들이 다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서 가끔 정말 우연히 일어난 일을 두고 그것이 너의 ‘운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운명이 아니라 단지 우연일 뿐이다.계약 하인 제도란 남녀를 막론하고 젊은이들이 아메리카로 가는 데 필요한 경비와 식량, 숙소를 제공받는 대신 정해진 기간 동안 일반적으로 4년이나 5년 동안 하인으로 봉사한 제도를 말한다. 관례상, 계약 기간이 끝나면 남자 하인은 의복과 농기구, 때로는 만족스러운 봉사의 대가로 주인에게서 토지를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람이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17세기 말경에는 식민지 인구 중에 계약 하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는데, 이것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계약 기간이 만료된 사람 중 일부는 자영농, 상인으로 성공했고 일부 여성들은 부자와 결혼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땅, 직업, 가족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었다. 1670년대부터 영국의 출생률이 저하되고 경제 상황이 호전되자 노동자들은 이주 압박을 덜 느끼게 되었고, 자연히 식민지 계약 하인의 수도 줄어들었다. 계약 하인으로 온 사람들도 이제 발전의 전망이 별로 없는 남부 식민지를 기피하게 되었다. 따라서 체서피크 식민지의 지주들은 노동력의 대체 자원으로 아프리카 노예 제도에도 받지 못했던 불합리한 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사라졌지만, 훨씬 더 빨리 사라졌어야 할 제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노예들은 일하면서 매질을 당했으며 제대로 된 식사도 대접받지 못하는 등 모든 면에서 불공정함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노예제도가 이미 사라진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식민지에서의 임신한 여성의 높은 사망률은 식민지의 의학 지식과 의료 수준이 매우 낮았음을 보여줬다. 그 당시 의사들은 감염과 소독에 대한 이해가 낮거나 아예 없었다. 그 결과 많은 여성이 아이를 낳거나 수술을 받다가 세균에 감염되어 사망했고 여전히 박테리아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쓰레기나 더러운 물을 통해 전염병에 걸리는 사람이 많았다.옛날 식민지에서는 의학 지식이 저리도 낮을 수 있구나라는 놀라움을 느끼게 해준 장이었다. 지금의 시대에서는 상식적으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매우 비위생적이거나 위험한 행동을 저 당시에는 행하여졌다는 것이 놀라웠고 병균의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소독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 나에게 충격을 안겨줬다.17세기 아메리카 대륙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월등히 많았기 때문에 오래도록 독신으로 남아 있는 여성은 적었다. 식민지 유럽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20세 혹은 21세 정도였다. 이 당시 식민지 여성들은 보통 결혼해서 2년에 한 번씩 임신했고, 나이가 들 때까지 평균적으로 8명의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8명의 아이 중 보통 5명은 유아기나 성장기에 사망했다. 이 당시에는 출산하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자식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사는 여성은 많지 않았다. 설사 산다고 하더라도 남편보다 훨씬 어렸기 때문에 과부로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장에서는 식민지 시대에서 여성들의 힘든 삶이 보인다. 여성들의 평균 결혼 연령이 고작 20세 또는 21세여서 지금의 대학교 1학년 혹은 2학년밖에 안 되는 어린 여성이 결혼했던 상황이다. 그리고 2년에 한 번씩 임신하고 평균적으로 8명의 아이북부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을 정점으로 안정된 정치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북부는 인구도 더 많았고, 산업 경제도 더 발달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 제도도 더 우월했으며 더 나은 철도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1863년 중반, 전쟁의 흐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2년 동안 북군은 점차 남군을 지치게 했고, 1865년 마침내 승리에 도달했다. 전쟁으로 인해 북부는 산업과 철도 발달이 촉진되어 경제가 강화되었다. 반면, 남부는 수백만 달러의 재산이 파괴되고 젊은 남성 인구가 고갈되어 크게 약화하였다. 남부인들이 이 전쟁을 감행한 데에는 점차 커지는 북부의 영향력을 두려워한 까닭도 있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전쟁 그 자체가 북부의 지배력을 확인하고 강화해 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남북 전쟁은 수백만 흑인 노예의 승리였다. 링컨 대통령은 획기적인 노예 해방령을 발포했고, 후에 수정 헌법 제 13조가 제정되어 노예 제도도 폐지되었다. 또한, 수많은 노예가 말 그대로 스스로 해방되어, 주인을 버리고 북부 경계를 넘어서 피난처를 구했으며 때로는 북군이 되어 싸웠다. 해방된 노예들의 미래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지만, 한때 예속에 묶여 있던 350만 명이 전쟁 속에서 자유인이 되었다.미국도 우리나라가 겪었던 6.25전쟁처럼 같은 나라 사람끼리 사이에서 일어난 내전의 아픔을 먼저 겪어봤던 나라인데 이유가 어떻든 간에 모든 전쟁의 결과는 참혹한 것 같다. 미국도 이 남부와 북부 간의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는 아픔을 겪었다. 전쟁을 통해서 이 아픔들을 겪을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도 있지만 정말 가능하다면 전쟁은 절대 일어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미국의 남북전쟁은 전쟁을 통해 노예들에게 ‘노예 해방’이라는 열매를 준 것 같아 나름의 성과가 있었던 전쟁이라고 생각된다.남북 전쟁 이후 40년 동안 미국은 산업화 도상에 있던 나라들 가운데 최전방에 있었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방대한 농업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결과를 둘러싼 갈등이 그 시대의 특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20세기 첫 10년 동안에도 미국은 똑 같은 갈등을 경험했다. 19세기 후반 미국 도시의 놀라운 성장은 커다란 위업과 동시에 엄청난 문제를 가져다 주었다. 도시는 학문과 예술,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기술, 운용, 건축, 통신 분야에서 커다란 진전을 이루었다. 도시민과 방문객들은 도시에서 매우 다양하고 눈부신 경험을 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이주했다. 그러나, 도시는 혼잡스럽고 불결하며 질병과 타락이 만연한 곳이기도 했다. 각종 서비스가 보조를 맞추기 힘들 정도로 인구가 급격하게 팽창하자, 이 시기 미국 대부분의 도시가 상수도 공급, 하수 처리, 도로 건설, 대중 교통 운영, 화재 진압, 범죄 방지,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 등과 같은 기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씨름했다. 그러나, 대개는 입시방편에 불과했다. 상당수의 시 정부가 정치 파벌에 장악당한 채 정치 보스들의 손에 좌지우지되었다. 그래서 종종 비능률과 부패의 온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정부를 가장 필요로 했던 노동 계급과 이민자 출신의 선거구민들에게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실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한, 거대한 공공 사업, 예컨대 대개는 사설 개발업자들과 손을 잡고 공원이나 박물관, 오페라 하우스 극장을 세우는 일을 감독했다. 도시에는 새로운 산업 시대가 낳은 대부호 가문에서 방대한 노동 계급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인종 및 소수 민족 집단, 계급이 뒤섞여 살았다. 특히, 대부분이 이민자였던 노동 계급은 국적에 따라 엄격하게 나뉜 주거 지역에 발 디딜 틈없이 들어찼다. 도시에는 새로운 형태의 대중 문화도 등장했다. 상점과 의상실은 물론, 무엇보다 거대한 백화점과 같은 소비주의의 신전이 들어섰다. 그리고 대중적 레크리에이션과 오락과 광장, 예를 들면 공원, 극장, 운동장, 놀이 공원, 이후에는 영화관도 등장했다. 도시민들만이 아니라 멀리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도시 생활을 염려했다. 그러 같다.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서평목차서론본론결론서론나는 미국에서의 노예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서평 책이 미국노예에 대한 책이어서 책을 읽기전부터 미국노예에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나는 노예문제에 대해 자세히는 몰랐고 그냥 노예의 성립이 되는 주가 있었고 노예들을 착취하는 나쁜 백인이 존재했다 정도만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전 이번에 읽을 서평 책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검색해서 약간의 줄거리와 실제 책의 주인공의 생애를 읽어보고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노예문제에 대해 정말로 무지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본론프레더릭 더글러스는 1817년에서 1818년 즈음 노예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더글러스의 출생년도를 정확히 기재하지 못하고 추정이라고 적은 이유는 대부분의 노예들은 자신의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 그들이 자신의 정확한 나이를 모르는 이유는 노예들의 나이에 관한 확실한 기록 같은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노예 주(主)들은 노예들이 그들의 나이를 모르는 것을 바라는 것 같다. 노예들은 농번기, 수확기, 체리 철, 봄철, 또는 가을철 시기가 언제인지는 알아도, 자신의 생일이 언제인지 모른다. 나이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글라스는 어릴 때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백인 아이들은 제 나이를 알고 있는데 노예인 자신은 왜 이들처럼 나이를 알 수 없는지 몰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인에게 자신의 나이에 관해 물어 볼 수는 없었다. 노예가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그릇되고 건방지다고 간주되었고, 쓸데없이 산만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더글라스는 자신이 스물 일곱이나 스물 여덟에 가까운 정도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것 마저도 1835년 중, 자신이 약 열일곱이라 말하는 주인의 말을 들었기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프레더릭 더글라스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밭일을 할 줄 알지만 노예들에게 매각을 되살렸다. 그것은 사라져버린 자신감을 다시 불러들였고, 나에게 다시 자유를 얻고자하는 결심을 갖도록 고취시켰다. 그것은 노에제의 무덤으로부터 자유의 천국으로 올라가는 영광스러운 부활이었다. 오랫동안 꺾여있던 나의 원기가 솟아올랐고, 겁이 없어졌으며, 대담한 반항적 태도가 대신 자리를 잡았다; 나는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형식적으로 노예 상태로 남아있게 될지는 모르지만, 사실적으로 노예라고 할 수 있는 날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고 단언했다.흑인 노예제의 폐해가 가장 극심했던 남북전쟁 이전에 미국 남부에서 태어난 더글러스의 삶은 보통 사람들과 달랐다. 노예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대부분의 노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 재산으로 취급되고, 죽을 때까지 강제 노동에 시달렸으며, 농장 주인이나 감독관에게 수시로 채찍질이나 체벌을 당하기도 했다. 노예는 재산을 소유하거나 글을 배우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었으며, 법적으로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또한 백인 농장주의 성적 착취로 말미암아 흑인 여성 노예에게 자식이 생기더라도 그녀의 자식들은 노예로 취급될 뿐 백인 농장주의 자식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더글러스의 글공부의 경험은 그의 인생에서 엄청난 사건이었다. 노예면서 고아와 다름없는 유년기를 보낸 더글러스는 12세에 주인집에서 알파벳을 배웠다. 비록 얼마 뒤에 주인의 강력한 반대로 중단되고 말았지만 그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글을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후 더글러스는 길거리에서 만난 가난한 백인 아이들을 통해 글을 익혔고, 휴의 집에 있는 책이나 신문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특히 더글러스가 잔돈을 모아서 직접 구입한 ≪미국의 웅변가≫는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는 더글러스에게 노예제의 실상을 깨닫게 하고 자유를 갈망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더글러스는 인근 농장의 노예들과 함께 주일예배를 하면서 이들에게 신약성경을 통해 글을 가르치려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당시 주인 토머스는 더글러스를 온순하게 만들고자 악명이 더글러스는 임금을 많이 주는 곳을 찾아다니며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번 돈은 일주일에 한 번씩 주인에게 모두 갖다 바쳐야 했다. 볼티모어는 도시였기 때문에 노예 주인 메릴랜드에 있으면서도 자유 흑인들이 비교적 많았다. 이들은 동(東)볼티모어 정신향상협회라는 일종의 교육 모임을 만들었는데, 더글러스는 이 모임에 참석해 애나 머리를 만나 1838년에 약혼했다. 애나는 교육을 받지 못한 수수하고 평범한 자유 흑인 여성이었다. 더글러스는 애나를 만나 사랑에 빠진 뒤 다시 한 번 자유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를 깨닫고 두 번째 탈출을 시도했다. 더글러스는 애나에게 돈을 빌려 필라델피아행 기차표를 구입했으며, 자유 흑인 친구에게 자유 흑인 선원임을 증명하는 선원증을 구해 선원 복장을 하고 북부행 기차에 올랐다. 메릴랜드 주를 넘어 델라웨어 주에 도착한 더글러스는 페리를 이용해 필라델피아까지 갔다. 하지만 이곳 역시 도망 노예를 포획하려는 백인들이 많은 곳이라 그 즉시 기차를 갈아타고 1838년 9월 4일 뉴욕 시에 도착해 꿈에도 그리던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뉴욕에 도착한 더글러스는 흑인을 받아 주는 하숙집을 중심으로 도망 노예 추적자들이 활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며칠간 길거리를 배회한 끝에 어느 흑인 선원의 도움으로 뉴욕자경단위원회의 일원이자 뉴욕 지하철도망을 관리하던 흑인 노예제 폐지 운동가 데이비드 러글스를 만나 잠시 그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그사이 더글러스는 약혼자 애나를 뉴욕으로 불러 1838년 9월에 결혼했다. 더글러스 부부는 러글스의 추천으로 뉴욕보다는 반노예적 정서가 강해 노예 추적자들의 손길이 잘 미치지 않을뿐더러 일자리도 얻기 쉬운 매사추세츠 주의 뉴베드퍼드로 이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노예 시절의 성인 ‘베일리’를 ‘더글러스’로 바꾸었다. 뉴베드퍼드에서의 생활은 더글러스에게 또 다른 전기가 되었다. 우선 그는 조선소에서 숙련공으로 일하고자 했으나 북부 사회에도 만연해 있던 인종차별로 말미암아 일용 노동자로 일해야만 했다. 애나는 볼티모어에기하고 ≪해방자≫를 비롯한 노예제 폐지 운동 관련 신문 구독을 권유하는 것이었다. 이후 더글러스는 10년간 개리슨파의 일원으로 노예제 폐지 운동에 헌신하게 되면서 19세기 미국의 가장 큰 논점 중 하나였던 노예제 폐지와 흑인 인권 향상을 위해 평생토록 일관되게 투쟁했다.이 책에서 백인들은 단순한 표정, 말 또는 동작 예를 들어 실수, 사고, 또는 체력 부족 등의 모든 것이 노예가 언제든 채찍을 맞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고 말한다. ‘어느 노예가 불만족스러운 듯이 보인다고? 그러면 그에게 악령이 들었군, 채찍질로 몰아내야지’ 라고 말한다. 주인이 보기에 자기 노예가 큰 소리로 말한다? 그러면 그는 교만해지고 있기 때문에 억눌러서 잠자코 말을 듣게 만들어 교만한 기를 꺾어 주어야 한다. 노예가 백인이 접근해 오는데 모자를 벗어 인사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러면 그는 존경심이 결여된 것이기에 채찍질을 당해야 한다. 노예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망받을 때, 그것을 감히 옹호하고자 나선다? 그러면 그는 뻔뻔함이라는 죄를 짓게 되는데, 그것은 노예가 범할 수 있는 죄 중에서 가장 커다란 범죄의 하나다. 노예가 주인이 지적해 준 것과 상이한 방식으로 일하자고 과감하게 제안한다? 그는 정말로 주제넘고 자만하고 있기에 매질 이외에는 별다른 약이 없다. 노예가 쟁기질을 하다가 쟁기를 파손하거나 괭이질을 하다가 괭이를 부러뜨렸다? 그것은 노예의 부주의함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는 채찍질을 당할 것임에 틀림없다.당신은 이것을 읽고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저는 이것은 과연 노예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해 본적은 있을까? 이것은 짐승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져본 적은 있을까? 입장을 바꿔서 한 번만 생각해봐도 두 번도 아닌 단, 한 번만 생각해보아도 이렇게까지 노예들을 못살게 굴지는 못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들을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을 채찍질하고 매질하면서 어떻게?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않 반노예제도협회 대변인으로서, 노예제도 폐지론자의 주간신문 의 웅변적인 편집자로서 일했으며 북부의 독자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하지만, 노예폐지론자들이 남부에서 미움을 받았다고 해서 북부에서 환영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는 부유하고 명성 있는 사람들은 노예제 폐지론자의 여론 조성에 냉담했다. 또한, 백인 노동자들은 노예가 해방되면 북부로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미 자유 흑인에 의해 나타나고 있는 일자리 경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그리고 1850년 도망노예단속법이 제정되었는데 이 법은 도망자로 추정되는 자의 증언을 부정하고, 도망자는 무조건 죄가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1854년 이후 의회는 캔자스 .네브래스카법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은 오랫동안 캔자스와 네브래스카주에서 금지한 1820년 미주리협정을 폐지했다. 주민투표로 노예제도의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이 법은 사실상 노예제를 확대하기 위한 남부인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1857년 드레드 스콧 판결로 노예제를 둘러싼 남부와 북부 사이의 갈등은 깊어졌고 결국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결론이 책은 내가 그동안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 노예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되고 노예문제가 이미 지나간 역사이긴 하지만 가볍게 넘길 수 없고 깊게 고민해봐야하는 사안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때 당시의 백인들은 노예를 재산으로 취급하고 그들에게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나쁘다”, “착하다”를 떠나서 자신들과 같은 얼굴이 있고 몸이 있는 사람에게 그 사람이 괴로워하는데 채찍질하면서 아무런 죄책감이 생기지않고 그런 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이해하기 쉽지않다. 요즘 가끔 뉴스나 SNS에 이슈가 되는 “동물학대”에도 이렇게 세상이 시끌벅적해지고 ‘저 사람 미쳤다’라고 하는데 하물며,같은 종족인 인간에게 아무런 생각을 하지않고 단지, 백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채찍질을 한다는 것은 정말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긴 한 것인지도 의문이 생기게 만든다. .
미국과 한반도 평화: 북핵 해결방안주제: 미국과 한반도 평화: 북핵 해결방안한반도는 6.25 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 분단국가가 되었습니다. 남한은 미국이 북한은 소련이 관리했습니다. 북한은 공산주의 체제 국가로서 외부와 교류를 하지 않고 독자적인 생산을 통해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국가적으로 경쟁력을 잃었고 자기가 열심히 일한 만큼 많은 돈을 가져가는 자본주의 체제에 비교해 적게 일하든 많이 일하든 같은 돈을 가져가는 공산주의 체제를 선택함으로 인해서 국민들의 노동 의지가 낮아질 수밖에 없어서 일을 열심히 하지 않게 되고 그것은 국가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수밖에 없고 공산주의인 북한은 자금력 측면에서 남한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에 밀리게 되고 나라의 경제적 측면이 밀려서 위기감을 느끼게 되고 핵을 만들게 됩니다. 북한이 핵을 만든 용도가 핵을 쏘려고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이 핵을 만든 용도와 목적은 다른 나라들과 협상을 할 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함과 남한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핵으로 위협해 식량 및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려고 핵을 만든 것으로 생각됩니다.한반도는 현재 21세기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즉 한반도는 현재 종전이 아닌 휴전상태 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언제든지 전쟁이 다시 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쟁은 그 누구도 언제 일어날지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늘 대비하고 또 대비해야 전쟁이 나는 것에 준비할 수 있고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최소한의 피해로 막을 수 있습니다. 전쟁은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대비해야 전쟁이 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 나지 않아야 평화가 지켜질 수 있습니다.여러분은 평화가 어떻게 해야 지켜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나요? 혹시 북한 기분 나쁘지 않게 비위 맞춰주면서 요구조건 들어주면 평화가 지켜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북한의 요구조건들을 다 평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여러분은 미국과 한반도의 평화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의 생각은 매우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6.25 전쟁이 일어난 계기중 하나가 미국의 애치슨 선언으로 인해 태평양 방어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함으로써 북한은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미국이 한국을 지원해주지 않겠다 생각하고 6.25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6.25전쟁 시작전부터 휴전 이후 더 나아가 현재까지도 남.북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나라입니다. 오늘날에도 한국은 미국과 한미동맹을 통해 국방력을 더 견고하게 하고 있고 북한도 미국의 존재 때문에 남한에 대한 도발을 자제하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한반도와 미국의 관계는 전쟁과 평화라는 말이 나오면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입니다.우리에게 평화라는 말은 곧 통일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 즉, 북한과 남한에 지속적인 평화가 유지되려면 통일은 반드시 그리고 당연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평화를 원하는데 통일은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말입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보면 평화의 뜻은 1. “평온하고 화목함” 2.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라고 2가지로 나와 있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더 나아가 세계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남,북한의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숙제 중 한 가지입니다. 통일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의 연속이고 모든 국민이 북한의 도발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간혹 통일하면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고 통일했을 때 당장 통일비용으로 남한 국민들이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고 말하며 통일의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통일했을 때의 장점이 단점보다 훨씬 많고 당장은 국가 경제에 위기가 올 수도 있지만, 그 위기를 잘 극복하기만 하면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 뿐만 아니라 아주 많은 이점이 있습니다. 남.북한이 통일했을 많은 자원을 채취하지 못하고 있는데 통일이 된다면 북한의 영토에 매장되어 있는 많은 자원을 채취해 팔아서 많은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세 번째 장점은 인구수가 많이 늘어나게 됩니다. 인구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국가 경쟁력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쉬운 예로 중국이 지금과 같이 세계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된 배경에는 10억의 인구수가 없었다면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구가 많으면 같은 제품을 생산해도 수출을 할 때나 국내에 팔더라도 더 적은 값에 팔 수 있어서 길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나라의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매우 큰 이점입니다. 우리나라도 통일이 되어 인구수가 늘어난다면 국가 경쟁력이 강화되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네 번째 장점은 전쟁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어 현재의 병사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거나 적은 수의 병사만 뽑도록 제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통일이 된다면 많은 병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대부분의 건장한 20대 남자들이 군대에 갈 필요가 없게 되어 약 2년의 세월을 군대에서 낭비하는 일이 없게 되므로 국가적으로 써도 청년들이 군대 2년 갈 시간에 졸업하고 취업해서 노동인구가 늘어나는 이점을 얻을 수 있고 남자들의 입장에서도 20대 청춘의 2년을 군대에서 보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다섯 번째 장점은 학생들이 지금과 같은 학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한국은 아무런 자원이 없고 가진 것 이라고는 인적자원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입시전쟁의 늪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천연자원이 풍부해져서 지금과 같이 피 터지게 공부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이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행복지수 저하도 확연히 개선되고 매년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자 수도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생각합니다.여섯 번째 장점은 북한과 통일이 되면 건설시장이 호황을 맞이할 것입니다. 북한에는 아유는 많은 회사가 대부분 서울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대부분 개발이 되어 있지 않은 북한의 땅에 많은 회사와 건물들이 지어질 것이고 이로 인해서 서울 및 수도권 인구 집중화 현상이 완화될 것입니다.이렇게 북한과 남한이 통일 했을 때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한반도를 넘어서 세계 각국의 나라가 전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언하고 남.북한의 통일입니다.“미국”과 “한반도의 평화”는 어찌 보면 뗄 수 없는 두 단어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미국은 6.25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한미동맹을 맺고 한국에 전략무기 지원 및 군사적 지원을 해주고 있고 이것으로 인해 북한이 6.25 전쟁 이후부터 수많은 도발은 해왔지만,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요즘에도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힘을 쏟고 있고 한반도는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전략무기가 능사는 아니지만 제 생각에는 미국의 한미동맹이 없었으면 이미 몇 번의 한국전쟁이 다시 일어났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이것은 단지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 더 나아가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여러분은 평화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평화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그 나라의 군사력입니다. 군사력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국방비와 뛰어난 군사기술 그리고 병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방비에 많은 돈을 쏟기 위해서는 우선 그 나라의 경제능력이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나라가 잘살아야 하고 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결국 국민 개개인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즉, 우리 각자가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 자체가 나라가 잘 살게 하고 강해지게 하는 데에 일조해 평화유지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국민위협해도 우리나라도 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핵에 핵으로 대응할 수 있어 북한에도 적지않은 위협을 줄 수 있는 점이 첫 번째 방법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단점은 우선 미국이 한미동맹을 끊으면서 미군이 철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뿐만 아니라 수출, 수입이 많은 우리나라의 경우 핵을 보유하게 되면 세계 국가들이 교류하지 않아 경제적으로 큰 손실이 생깁니다. 게다가 세계 여러 나라 들로부터 강한 비난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이 방법은 실현할 수 있기도 하고 실제로 전문가들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몇 달 안에 핵을 만들 수 있지만, 우리나라가 핵을 만듦으로써 얻는 이익보다 실기 많기 때문에 핵을 만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두 번째 방법은 핵은 만들지 않되 다른 첨단무기들을 비롯한 국방력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 역시 장단점이 있는데 장점에는 핵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미국과의 한미동맹도 계속 유지되고 세계 여러 국가들과의 교류도 끊기지 않고 세계 여러 나라 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일도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핵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방력 전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인해 북한의 침략위협 가능성을 줄일 수 있고 또한 만약 전쟁이 발발한다 해도 객관적인 전력에서 국군이 북한을 앞서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도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이점이 있습니다.세 번째 방법은 북한과 대화를 지향하면서 평화유지를 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에도 위에 소개된 2가지 방법과 마찬가지로 장.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은 한반도 내에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아서 국민들이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것이고 단점은 북한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줘야 하며 각종 정상급 회담에서 북한의 비위를 맞춰줘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저의 개인적인 견해는 3가지 방법 중 두 번째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방법은 핵을 만듦으로 인해서 세계 여러 국가가 우리나라와 교류를 하지 않음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어 지금의 북한과 같이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이
유산소운동과 무산소운동의 차이점1.건강과 체력과의 관계를 작성 하시오.- 체력이 좋으면 질병에 걸려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빠르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체력이 좋으면 공부, 운동, 및 일상적인 활동과 생활을 하는 데 쉽게 지치지 않고 피로감 없이 하고 싶은 일을 잘 수행할 수 있습니다.- 체력이 약해지면 건강도 나빠져 쉽게 지치고, 모든 일에 의욕을 잃게 됩니다.- 체력이 약해지면 쉽게 질병에 걸려 건강한 생활을 하기가 어려우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나 운동을 하는 데 많은 불편이 따를 수 있습니다.- 건강이 나빠지면 체력도 저하되고 체력이 약해지면 건강도 나빠집니다.따라서 건강을 유지하려면 평소에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을 꾸준히 하여 좋은 체력을 유지해야 합니다.2. 유산소운동과 무산소운동의 차이점과 효과유산소운동과 무산소운동의 차이점:유산소 운동의 장점은 (1)지구력을 증가시키고 심혈관계를 발달시킨다. (2)혈액순환을 촉진시켜 피로물질을 빨리 분해하여 피로도가 낮게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3) 지방을 에너지로 사용하여 성인병 예방 및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4) 비만을 치료하는데 효과적입니다. (5) 장시간 운동이 가능하여 많은 양의 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습니다. (6) 무산소 운동에 비하여 안전합니다. (7)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 많은 점이 유산소 운동의 장점입니다.무산소운동 효과: 무산소 운동을 하게 되면 몸의 근육 량을 키워주고 기초 대사량을 늘려 많은 에너지를 소비시켜 주어 살이 찌지 않는 체질로 만들어 줍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근력향상으로 인해 탄탄하고 건강한 바디라인을 만들어 줍니다. 또한, 혈액순환, 뼈 건강 등으로 관절 손상을 줄일 수 있고, 노화방지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다른 무산소운동의 효과는 일단 운동 능력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힘들었던 운동이 점차 쉽게 되는 결과는 무산소 운동의 영향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노화로 인한 근력의 손실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습니다.3. 도핑의 역사적 배경과 스포츠 선수의 약물 종류와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도핑의 역사적 배경: DOPE의 어원: 남아프리카의 ZULU족 전사들이 전투력을 증대하기 위해 음용한 포도 껍질로 만든 알코올성 음료를 도프(DOPE)라고 합니다.스포츠 선수의 약물 종류: (1) 아나보릭 스테로이드, (2) 암페타민(Amphetamine), (3) 베타차단제, (4) 이뇨제, (5) 혈액 도핑경기력에 미치는 영향: (1) 부상 회복을 목적으로 사용: 상처를 완화, 고통을 완화, 신경을 완화(2) 부가의 목적으로 사용: 근육강화, 체중조절, 심리적 안정4. 중독의 개념과 유형 및 운동중독의 생리적 배경 (수업시간 사진 찍은 것 있음. 참고하기 )중독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마약, 알코올, 니코틴, 인터넷, 같은 외부 물질적인 것에 집착, 습관적으로 의존 하는 것입니다. 즉,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사전적 의미의 중독은 습관적으로 열중하거나 몰두하는 것입니다. 중독은 크게 두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물질중독 이고 이것은 마약, 알코올, 담배, 커피 등 흡입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행위중독 이고 이것은 행동반복 또는 집착하는 것입니다. {행위중독은 중독 되었다는 사실 을 인식 못하며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생리적 배경은 첫째는 격렬한 운동 후 긴장과 스트레스 해소. (우울증, 소심한 사람 뚜렷함. ) 둘째는 장거리 주자에 나타나는데 달리기 시작 30분 후 뇌 생화학적 변화가 생겨 마약을 한 것처럼 행복감이 오는 것입니다. {뇌의 시상하부에서 아편, 모르핀과 같은 B-endorphin 분비 통증 감소}
건강과 스포츠 시험공부1. 비만의 원인과 운동 처방첫 번째비만의 원인으로는 유전적 요인으로 인한 비만이 있습니다. 유전적 요인으로 인한 비만은 30%입니다. 유전적 요인으로 인한 비만은(유전적 요인은)부모 양쪽이 비만일 때 80%비만, 부모 한쪽이 비만일 때 50%비만, 정상적인 부모일 때 10%비만이라는 실험결과가 나왔습니다. 두 번째비만의 원인으로는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비만이 있습니다.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비만은 70%입니다.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비만은(환경적요인은) 가족의 식생활 유형이나 사회, 문화적인 요인으로 인한 비만(의 발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습니다. 세 번째비만의 원인으로는 운동부족으로 인한 비만이 있습니다. 운동부족으로 인한 비만은 운동 부족으로 섭취 열량보다 소비 열량이 적을 때 비만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네 번째비만의 원인으로는 에너지 대사의 불균형에 의한 비만이 올 수도 있습니다. 여러 번 나누어 섭취 하는 것보다 하루에 많은 (양의)에너지를 섭취 하는 경우(에) 체중이 크게 증가합니다. 다섯 번째비만의 원인으로는 심리적 요인으로 인한 비만이 있습니다. 심리적 스트레스는 직장, 가정, 학교에서 사랑이나 관심의 결핍을 느낄 때, 긴장 해소, 불안, 외로움 등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운동 처방: 걷기, 수중 운동, 자전거 타기 등의 유산소 운동을 시행하는 것이 좋고, 적어도 일주일에 3회 이상 꾸준히 운동해야 한다. 본인이 주관적으로 느낄 때 숨 찰 정도의 강도인 중등도 강도로 30분 이상 하여야 하며, 운동 강도와 빈도를 서서히 증가시키는 것이 좋다. 또한, 자동차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대신에 걷기, 자전거 타기, 계단 이용하기를 생활화 하는 등 생활 습관의 변화가 병행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2. 땀의 역할과 스포츠음료의 기능과 효과:땀의 역할:땀은 우리 몸의 자체 냉각 시스템 이다. 기온상승 등 외적인 요인과, 스트레스 및 흥분, 분노 등 내적인 요인으로 인해 체온이 올라가면 우리 몸은 땀을 내어 체온을 유지한다.땀은 더워진 몸을 식히는 역할을 한다. 혈액 속의 물, 소금, 노폐물 등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땀은 혈액에서 땀샘으로 흘러나온 물인데 이 과정에서 소금, 노폐물이 함께 빠져 나온다.운동을 할 때 땀이 많이 나는 이유는 앞서 말하였듯이 체온이 상승하게 되어 우리 몸의 체온을 항상 정상으로 유지하려는 항상성에 의해서 자연스레 땀이 나게 되는 것이다.스포츠 음료의 기능과 효과로는 첫 번째, 땀으로 인해 배출된 체액을 빠르고 안전하게 보충한다.두 번째, 선수들의 운동과정에서 경기력 향상과, 운동 후 선수들의 피로 회복 촉진에 도움을 준다.세 번째, 고온 환경에서 경기를 수행할 때 갈증을 느끼지 않더라도 소량으로 여러 번 마시는 것이 좋으며, 특히 경기 시작되기 10분~15분 전에 400~500ml의 수분을 미리 섭취하는 것이 좋다.네 번째, 차가운 수분 섭취로 체온의 지나친 상승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다섯 번째, 섭취된 차가운 수분은 창자의 온도만큼 따뜻하게 하기 위해 신체내부의 열을 소모 한다.여섯 번째, 차가운 음료가 따뜻한 음료 보다 위에서 비워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이 밝혀 졌다.일곱 번째, 섭취된 3~5도에서의 차가운 음료는 위의 온도를 37도에서 3~5도 정도 냉각 시키지만 복통은 오히려 많은 양을 마셨을 경우에 일어나게 된다.3. 웨이트 트레이닝의 원리와 남녀트레이닝의 차이점첫번째, 과부하의 원리: 트레이닝 시 운동자극은 중간 정도의 자극이나 이를 약간 초과하는 수준 이상의 부하가 주어져야만 운동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두번째, 점증 부하의 원리: 과부하의 원리에 의해 훈련을 하게 되면 자극으로부터 가해진 근육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서 근력과 근지구력의 증가로 초기에 비해 운동효과가 줄어들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적응 현상이 생겨나 낮은 부하가 되기 때문에 점차 운동부하를 높여가야만 합니다.세번째, 고립 훈련의 원리: 각 근육은 주동근과 길항근, 협응근, 안정근 등으로서 각 운동 동작마다 각각 독립되어 작용을 합니다. 때문에 각 동작별로 해당되는 근육이 아닌 엉뚱한 근육을 끌어들여 동작을 수행하면 안됩니다.네번째, 분할 훈련의 원리: 분할 훈련의 원리는 신체 근육 군별로 나누어 특정 부위를 격렬하게 운동하였으면 일정 기간 동안 휴식을 통해 회복할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전신 근육이 균형적으로 발달하기 위해 전신을 골고루 운동해줘야 하는데 같은 부위를 연이어 매일 실시하게 되면 과사용으로 인해 발달이 아닌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훈련과 휴식을 배분하기 위해 전신을 부위별로 나누어 골고루 훈련과 휴식이 이루어지게끔 하는 원리입니다.다섯 번째, 특이성의 원리: 쉽게 생각해 운동 목적에 맞는 운동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호흡 순환계를 위해서는 유산소성 운동을 실시하고, 근육계의 발달을 위해서는 중량운동과 같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실시하는 것입니다.여섯 번째, 가역성의 원리: 운동은 꾸준히 실시하면 운동 수행 능력이 향상되지만, 부상 등으로 인해 트레이닝을 중단하면 운동 수행 능력이 다시 원점으로 저하되는 원리입니다. 때문에 운동선수들의 경우 시즌이 끝나고 비시즌기에 휴가 등을 떠나서도 아주 퍼져 쉬는 것이 아니라 일정 강도 이상의 운동을 해주면서 운동 수행 능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를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4. 건강한 삶과 건강에 대한 실천계획작성건강한 삶이란 몸이 아프지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생활습관면역력은 나쁜 생활습관에 의해 크게 저하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생활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중요하며, 무엇보다 규칙적인 생활을 갖는 것이 좋으며, 운동 또한 필수적인 항목 중 하나입니다. 운동을 하는 경우에는 햇 빛을 통해 비타민D가 합성되어 면역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충분한 휴식적절히 휴식을 취하는 것은 스트레스와 피로 해소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면역강화에도 도움을 줍니다. 편안한 환경에서 충분히 휴식하고 숙면을 취하면 손상된 몸의 세포들이 회복될 수 있으며, 피로가 쌓이고 이유 없이 몸이 좋지 않다면 하루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것도 좋습니다.한식 위주 식습관면역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급적이면 한식 위주의 식습관을 습관화 하는 것이 좋습니다. 면역력을 높이는 음식인 감자, 시금치, 마늘, 현미, 된장 등의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는 요리가 많기 때문입니다. 면역 관리를 위해서는 이러한 음식 위주로 섭취하는 것이 좋으며, 가공식품과 인스턴트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금연을 실천한다.흡연은 주요 암 발생 원인이며, 암에 걸릴 확률을 10배 증가시킨다.음주빈도를 줄인다.기존의 음주 수칙은 ‘하루 2잔’이었으나 최근에는 소량의 음주도 암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패스트푸드 섭취 빈도를 줄인다.패스트푸드가 인체에 해로운 이유는, 높은 열량에 비해 영양소가 적기 때문이다. 이는 체지방 증가와 비만을 유발하고 성인병과 암까지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는 패스트푸드 섭취를 줄이는게 좋다.적정량의 소금만 섭취한다.소금은 비만의 원인이고 하루2g이상의 나트륨 섭취는 체중증가와 만병에 시달릴 위험성, 고혈압과 위암에 걸릴 위험성도 높인다고 한다.근거 없는 건강기능식품 섭취를 줄인다.건강기능식품은 ‘보조’는 해주지만 암 예방 등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없다. 영양소는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으며 혈액 검사 등에서 부족한 영양소가 있다면 검증된 건강기능식품을 섭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