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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데이비드 게일> 속 게일 교수의 선택에 관하여
    영화 을 읽고이 영화는 데이비드 게일의 삶을 통해 신념에 대해 말한다. 영화는 주로 사형제도의 폐지에 주제를 맞춰 전개된다. 게일은 유능하고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교수이자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고 귀여운 아이의 아버지다. 영화 초반부의 게일에게 중요한 것은 사형제의 폐지 여부보다는 본인의 이런 완벽한 삶이다.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창하는 ‘데스워치’의 일원이지만 큰 뜻에 동조할 뿐 적극적이고 열성적으로 활동하지는 않는다. 주지사와의 토론회에서도 사형제도가 범죄억제 효과가 없다는 것을 화려한 언변으로 이야기하지만 사형을 통해 사망한 사람들 중 무고한 사람이 누가 있었냐는 주지사의 반박에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토론회는 후에 그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직까지 게일의 신념은 본인의 완벽한 삶의 유지에 국한돼있었다.빈틈없는 그의 삶은 파티장소에서 여학생과 술김에 관계를 가지게 되면서 뒤틀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게일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하고 게일은 무죄를 받게 되지만 자신의 완벽한 삶에 일부였던 아내와 아이, 직장을 모두 잃게 된다. 무결점의 삶이 무너지자 그의 신념은 크게 뒤엉킨다. 그런 게일에게 ‘데스워치’에서 알고 지내던 콘스탄스가 다가오고 사형제도의 폐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사회운동가로서의 인생 2막이 시작된다. 콘스탄스의 백혈병 투병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의 신념은 견고해진다. 그는 콘스탄스, 더스틴과 모의해 직접 무고한 희생자가 돼 사형제도의 폐지라는 신념을 증명할 슬픈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주지사의 질문에 대한 답을 본인의 죽음으로써 한 것이다.극에 말미에는 ‘데스워치’의 회원인 게일, 콘스탄스, 더스틴이 본인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영화의 표현대로 ‘순교자’의 모습을 보인다. 완벽한 삶의 수호를 자신의 신념으로 여기던 게일은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사형제도의 폐지라는 새로운 신념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게일이 지키고자 했던 신념은 사형제도의 폐지보다는 자신의 완벽했던 삶에 대한 명예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모든 계획은 망가진 자신의 삶을 복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에서 사형제도 폐지보다는 주지사와의 말다툼에 초점을 맞춘 점, 인터뷰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더 드러낸 점, 사형집행 후에야 양육비와 유서를 아내에게 전달한 점 등 극이 진행되는 동안 게일이 사형제도 폐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던 장면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비디오 속에서 콘스탄스가 죽어가는 모습을 덤덤히 바라보던 게일의 모습은 사형제도의 폐지를 이룩하겠다는 신념의 표출보다는 죽음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되찾겠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초반부 게일의 강의에서 다뤘던 라깡 이야기처럼 그는 끝까지 명예로운 자신의 삶에 대한 욕망을 좇기 위해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
    독후감/창작| 2019.01.06| 1페이지| 1,500원| 조회(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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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tin Buber의 '나와 너'의 해제 :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으로
    Martin Buber의 '나와 너'의 해제 :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으로학과:학번:성명:① ‘나와 너’의 해체사람이 취하는 이중적인 태도에 따라서 세계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또한 사람의 태도는 그가 취할 수 있는 두 가지의 근원어로 표현된다. 이 근원어의 하나는 짝말(Wortpaare) ‘나-너’다. 다른 하나의 짝말은 ‘나-그것’이다. 근원어가 두 가지기 때문에 사람인 ‘나’도 두 가지다. 근원어 ‘나-너’에서 ‘나’와 근원어 ‘나-그것’의 ‘나’는 다른 것이다. 두 종류의 ‘나’는 서로 그 속셈을 달리한다.두 종류의 ‘나’를 통해 사람들은 세 가지의 관계를 맺는다. 첫 번째는 ‘나’와 ‘그것’의 관계다. ‘나’는 경험을 통해 세계를 알고자 한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세계는 비인격적인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세계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긴다. 그러나 경험만으로는 세계와 사람이 같은 눈높이에 앉을 수 없다. 경험을 통한 세계는 근원어 ‘나-그것’의 ‘그것’에 불과하다. 당연히 이때 사람은 근원어 ‘나-그것’의 나에 해당한다. 세계와 경험은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독립적인 개체이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서 수단화된 세계를 경험하려는 ‘나’ 역시 수단화될 뿐이다.두 번째 관계는 ‘나’와 ‘사람들’ 사이의 관계다. ‘나’는 내가 속해있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이라는 포함관계를 통해 ‘나’와 ‘너’를 나눈다. 이 관계에서 사람들은 ‘너’라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때 ‘너’는 서로 존중하는 관계일 수도 있지만 서로 미워하는 관계일 수도 있다. ‘나’가 하나의 집단에 속하게 되면 집단 구성원 사이의 소속감을 통해 관계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관계도 시간이 지날수록 구성원들 사이에 소외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구성원들은 서로를 온전한 ‘너’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나’와 다른 누군가를 배제한다. 집단 간 소외가 점점 커져가고 결국 자기를 배제하는 단계에 이른다. 스스로에게 배제된 ‘나’는 더 이상 ‘나-너’의 ‘나’가 아닌 ‘나-그것’의 ‘나’가 된다.마지막 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다. 이 관계는 두 대상이 서로 사랑하면서,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상대를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대하면서 이루어진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서로는 상대방을 상대방으로 가득 찬 존재로 인식한다. ‘너’를 무한한 대상으로 느끼고, 함부로 정의하거나 판단하려고 하지 않고 통제하거나 강요하려고 하지 않는다. ‘너’는 그냥 ‘너’이기 때문에 소중한 존재가 된다. ‘너’와 ‘나’는 함께 길을 걸어가는 사이다. 경험을 통해 이해하려했던 죽은 세계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너’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너’는 ‘나’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너’라는 존재를 통해 ‘나’라는 존재가 정의된다. 이 관계에서 ‘나’는 근원어 ‘나-너’의 ‘나’이다. ‘나’는 ‘너를 경험하려 하지 않고 ’너‘도 ’나‘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사랑이 아닌 노력은 우리 사이에서 불필요한 일이다. 사랑만이 우리를 ’나‘와 ’너의 관계로 만든다. 사랑하는 ’나-너‘는 서로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의미를 뛰어넘을 정도로 소중하다.② ‘나와 너’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마틴 부버가 ‘나와 너’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바라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어떤 판단이나 계산, 노력 없이 사람이기 때문에, 나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소중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부버는 세계를 자신의 마음대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에게 세계를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자신의 잣대를 타인에게 들이미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역설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일 뿐이다. ‘나’가 ‘너-나’의 ‘나’가 되기 위해서는 ‘나’가 아닌 ‘너’가 먼저 존재해야 한다. 내가 아닌 상대를 인정하는 마음, 다른 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나’도 존재할 수 있다.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세계에서 주어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이 자신 내면의 요구에 따라 살 수 있어야한다. 자신의 마음이 하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그 에 따르는,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세계에서 ‘나’를 ‘나’로 존재할 수 없게 만드는 수많은 장애물이 존재한다. 내가 ‘나’일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다. 그들은 그들의 존엄성을 보존하기 위해 ‘나’의 존엄성을 통제하고 변화시키려고 할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나’의 존엄성은 훼손되고 나아가 자기 소외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타인에 의해 잠식되는 ‘나’의 존엄성을 보호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방패가 법이라고 생각한다.
    독후감/창작| 2019.01.06| 2페이지| 2,000원| 조회(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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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교육학적 신조
    나의 교육학적 신조학과:학번:성명:제 1조 나의 교육철학1. 나는 나의 철학을 믿는다. 교육은 학생들이 즐거워야 한다. 나는 학생들이 학교 가는 게 기다려져서 잠도 설치는, 그런 게임 같은 교육을 만들고 싶다. 지금 학생들은 하루하루가 불행하다. 학교를 다녀오면 학원에 가야하고, 학원에 다녀오면 인터넷 강의를 들어야한다. 그렇게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끝이 나고, 학생들은 교육이라는 컨베이어 벨트를 왔다 갔다 하다가 방학을 맞이한다. 학생들은 방학이 끝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방학이 끝나면 다시 지옥 같은 학교로 돌아가야하기 때문이다.2. 지금의 학교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교육들은 학생들의 목을 옥죄고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배움의 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대량생산제품이 만들어지듯이 같은 내용만이 반복된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행복 추구가 사회의 핵심가치로 자리 잡았다.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들이 당당하게 행복할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시대가 찾아왔다.3. 학교교육은 의무교육으로써 모든 교육의 기준이 된다. 즉, 학교교육의 개선을 통해 사회 전반적인 교육의 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제시하는 학교교육의 철학은 간단하다. ‘학생들이 행복한 교실’. 학생들이 학교에 가는 게 행복해진다면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대부분의 교육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확신한다.4. ‘학생들이 행복한 교실’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학교교실의 교사부터 변해야한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교사는 권위에 사로잡혀 학생들의 숨통을 억누르고 있었다.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교사는 독재자가 아니다. 학생에게 고민이 생겼을 때 누구보다 열심히 상담해 줄 수 있는 친구 같은 선생님, 성적에 걱정이 있을 때 옆에서 토닥여주며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듬직한 선생님, 학생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함께 문화를 향유하려는 형제 같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필요하다. 교실에 들어가면 반 친구들도 있지만, 교실의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는 것은 교사다. 그런 교사가 권위를 내려놓고 학생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교실의 분위기도 금세 바뀔 것이다.5. 교육은 학생과 교사가 함께 배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누구 하나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학생은 교사의 지도하에 배움의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학교활동에 임해야 하고, 교사는 학생들이 배움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한다. 지금까지 우리 학교의 교육은 교사 위주로 구성돼있었다. 교사의 카리스마로 학생들이 좌지우지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점점 교사의 권위를 학생들에게 돌려주자는 제도의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취지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제도의 개선은 행복한 학교교육을 위한 과정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교사의 역할 변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학생들이 학교를 가고 싶게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의 의식전환이 필수적이다. 교사와 학생 모두가 행복한 교육을 나는 여전히 꿈꾼다.제 2조 배움과 지식6. 지식은 교사의 가르침뿐 아니라 다양한 수단을 통해 습득될 수 있다. 학생들 개인의 경험 에서 습득한 지식은 교사의 가르침 밖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학생들은 타인을 통해 무언가를 학습한다. 친구, 가족, 이웃 등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다. 지식은 변화하다. 한때는 절대적이라고 여겨졌던 지식이 언젠가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이 세상 그 어느 지식도 영원한 진리라고 할 수는 없다.7. 나는 ‘배움'이 '지식'의 광범위한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배움'은 수동적으로 지식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받아들인 지식을 또 다른 상황에 적용할 수 있게끔 자기화하는 것이다. ’배움‘에 필요한 능력에는 몇 가지의 요소가 있다. 아기들 마다 걷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의 차이가 있다. 어떤 아이는 100일이면 걷지만, 어떤 아이는 7개월, 8개월이 지나도 걷지 못한다. 하지만 학습 능력은 다양한 교육적인 방법으로 향상될 수 있다. 잘 못 걷는 아기에게 부모가 보행기를 타게 하는 등의 도움을 준다면, 시간이 조금 늦었을 뿐 그 아기도 이내 걸을 수 있게 된다.8. '배움'은 학습자가 교수자로부터 받아들인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때 발생한다. 학습자가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능동적으로 습득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지식은 파편화되어 사라진다. 나의 것이 아닌 ‘지식’은 ‘배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학교를 비롯한 모든 교육기관에서는 ‘지식’ 전달에 그치는 수업을 지양해야한다. 학생들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언제든지 꺼내서 원하는 때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배움’이다. 학교는 ‘지식’을 넘어 학생들에게 ‘배움’을 전해줄 수 있어야한다.제 3조 나의 교육방법9. 나는 ‘지식’을 초월한 ‘배움’을 추구한다. 나아가 학생들이 ‘배움’을 스스로 조직하는 교육방법을 추구한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배움’을 조직하는 교육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수동적인 교육만이 학교에 존재해왔다. 이런 학교에서 학생들은 ‘배움’이 무엇인지 모른다. 시험을 보기 위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부모님 또는 선생님이 시켜서, 교육에 있어 학생 본인이 주체가 된 이유는 하나도 없다. 다음에 서술할 명제들은 내가 생각하는 학생들이 주체가 된 학교교육의 방법이다.10. 학교교육의 방법으로 ‘슬로 리딩’을 제안한다. 지금까지 학교교육은 한정된 시간 속에서 최대한 많은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학생들이 정말 이해했는지, 학습하는 동안 어려움은 없었는지,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지, 학교는 이런 요소들에 전혀 관심이 없다. 오직 교육과정 속에 맞춰진 진도를 나가는데 급급할 뿐이다. 이런 학교교육에 있어 정말 필요한 것은 교육의 속도를 늦추는 일이다.11. ‘슬로 리딩’은 일본의 국어교사 하시모토 다케시가 제시한 교수법이다. 다케시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3년 동안 라는 작품 하나로 국어수업을 진행했다. 국어시간 마다 학생들은 교과서 대신 를 꺼낸다. 다케시의 지도 하에 학생들과 함께 책을 강독해 나간다. 이 수업의 목표는 하나다. 학생들이 모르거나 헷갈리는 부분 하나 없이 완벽하게 책을 읽어내는 것.12. 책의 진도는 하루 두 장에서 세 장 정도 밖에 나가지 않는다. 책을 강독하면서 학생들이 모르는 단어나 구절이 생기면 교사에게 질문을 한다. 교사는 강독을 멈추고 질문 받은 그 구절을 설명한다. 특히, 책의 내용을 학생들이 평소 경험할 수 있는 생활 속 요소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경험과 학습내용이 연관성이 있을 때 배움의 의지가 극대화된다. 질문이 많아질수록 진도에서 멀어져 옆길로 새나가지만, 그러면서 학생들은 책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고 학습에 큰 흥미도 가질 수 있다.
    교육학| 2019.01.06| 3페이지| 2,500원| 조회(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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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틴아메리카와 제국주의(영어)
    In <Modern Times> Paul Johnson said that it was around 1900 that the real concept of imperialism began to be expressed in socioeconomics. John Atkinson Hobson said in the 1902 Imperialism that British and the great powers inevitably colonized to find overseas investment due to their excess capital. In 1916, in <Imperialism, the Highest Stage of Capitalism'>, Vladimir Lenin, said that the Western powers claimed the supply of raw materials and food, demand for industrial products, and capital investment. The population increased along with the industrial revolution. As the population grew, cheaper food was needed to meet the increased demand for food. The economic benefits were obtained by receiving cheap industrial materials needed for industrialization from the colonies.
    인문/어학| 2019.01.06| 13페이지| 2,500원| 조회(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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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키아벨리 <군주론> 서평 평가A+최고예요
    마키아벨리 서평1. 서론마키아벨리는 15세기에 피렌체 공화국의 2등 서기관이자 외교관으로 근무한 공직자였다. 메디치 가문이 스페인 군대와 합작해 피렌체 정부를 무너뜨리고 자신들이 직접 지배를 선언하면서 마키아벨리는 정권 교체의 직접적인 희생양이 된다. 불가피한 은퇴 후, 마키아벨리는 급변하는 시대 상황과 불안정한 정국 속에서 진정한 리더는 어떤 가치와 태도로 사람들을 통치해야 하는지를 고민했고, 그 고민의 결과물로 을 저술하게 된다.군주론의 주요 내용은 15세기 이탈리아의 국내적 상황에서 ‘이탈리아의 정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와 관련된다. 이탈리아의 주변 국가들은 다 독립하고 내적으로 단결된 국가로 성장했지만 이탈리아는 여전히 분권화돼 있었다. 다른 국가들은 군주제를 중심으로 민족(Nationality)을 내세운 통치를 했다.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를 문명이 화려하게 꽃피우는 시대라고 정의한 부르카르트의 인식과는 전혀 다르게 시대상을 바라봤다. 마키아벨리가 활동하던 시기에 이탈리아는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항복을 선언한 암울한 시대였다.당시 마키아벨리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은 분권화된 이탈리아의 통일을 꿈꿨다. 역시 군주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의 통일이라는 열망이 작용했다. 애국주의적 열망을 바탕으로 현재는 분열돼 있지만 이탈리아는 본래 하나라는 마음, 이탈리아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공통된 무언가를 가지고 있고, 세계를 호령했던 로마인들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현재는 정치적으로도 쇠락했지만 여전히 자신들은 유럽의 예술을 이끈다는 자신감도 가지고 있었다.이탈리아에 교황청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중요한 요소였다. 당시 교황청은 유럽 종교의 심장과 같은 곳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유럽 전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교황청이 자신들의 국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교황청을 얼마 지나지 않아 힘을 잃게 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도 역시 이런 인식이 드러나는데 마키아벨리는 중세가 아닌 고대의 지식에 관심을 가졌다.를 해결하고자 시대했다. 에서도 ‘신의 힘’이 아닌 ‘인간의 의지’, ‘애국심’ 등의 인본주의적인 측면이 여실히 드러난다.2. 정치와 폭력마키아벨리는 전통적 정치학과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정치현상을 바라봤다. 군주는 항상 권력과 연관지어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하며, 정치와 관련된 권력의 창출과 유지라는 실질적인 목표를 추구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인간의 본성을 직시해야 한다. 고대로부터 온 대부분의 철학적 관점에서는 인간이 추구해야할 것은 도덕과 선함이라고 말한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고대의 관점이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규범’으로부터 ‘현실’로 시선을 돌려야 하며 결코 인간의 본성을 규범적으로 파악해서는 안 되는데, 항상 선만을 바라는 인간은 악한 사람들에게 필연적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군주론 17장에서는 “They are ungrateful(배은망덕한), fickle(변덕스러운), false, cowardly(겁 많은, 비열한), covetous(탐욕스러운)”라고 말하며 인간의 본성을 정의한다. 정치가 존재하는 한,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가 ‘정치를 도덕 외적 영역으로 자율화시켰다’고 많은 학자들에게 평가받는 이유다. 정치는 생존의 영역이므로 인간을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현실은 정해진 구조가 없기 때문에, 어떤 일에서든 보편적, 궁극적인 최선의 방식도 없다. ‘득과 친절함’, ‘잔인함과 부도덕’이라는 정치적 수단들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할 뿐이다. 특정한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 군주는 현실 상황과 시대에 따라 자기 자신의 성격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도덕적으로 인내할 때도 있지만 사기와 기만을 활용하기도 한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군주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계산의 과학을 따르는 사람인 것이다.마키아벨리는 정치를 분석할 때 행위중심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위해 항상 가설적인 상황을 전제한다. 군주는 인간이 악한 이유에 분석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확실하게 하나 알고론적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인간의 악함은 Ambizione(야심, 욕망)로 나타난다. 야심과 욕망의 대상은 늘 부족하기 때문에 현실과의 끊임없는 갈등으로 나타난다.이런 맥락에서 폭력은 군주의 목표 달성을 위한 중요한 하나의 행위 형태다. 폭력이란 정치 세계에서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주머니에 휴대하고 필요할 때 써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현실 인식론에 따르면, 폭력은 허용되는 정도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도구이다. 급격히 변하는 현실에서 폭력이 없는 질서 창출은 이루어질 수 없다.다만 폭력은 하나의 수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폭력을 사용할 때는 항상 효율을 따져야 한다. 폭력을 얼마나 사용할 것인지 신중한 사려가 필요하고 절대로 불필요한 폭력을 사용해선 안 된다. 하지만 폭력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도덕적인 계산은 필요 없다. 목표를 위한 계산의 과학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 군주론 15장의 “It is necessary for a prince who wishes to maintain his position to learn how not to be good, and to use this knowledge or not to use it according to necessity.”라는 구절은 정치에 있어 인간의 도덕성이 정치적 필연성을 넘어설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낸다. 아무리 평화를 사랑하는 양일지라도 늑대들 틈 사이에서 살기 위해 무장하고 선수 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3. 비르투(Virtu)와 포르투나(Fortuna)비르투와 포르투나는 에서 마키아벨리가 세상을 설명하는데 사용하는 표현들이다. 포르투나는 그리스말로 ‘변화의 배후에 있는, 계산할 수 없는 것’이다. 포르투나는 세상의 가변성을 설명하는 표현으로 글에서는 운명의 여신으로 표현된다. 포르투나의 가장 큰 특징은 매우 변덕스러워 인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세상의 유일한 통치자는 아니다.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마키아벨리답게 변덕스러운 포르투나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르투나’가 지배한 상황을 스스로에게 협조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비르투다.군주론 25장의 “나는 포르투나가 우리 행동의 절반에 대해서만 관여하고, 나머지 반이나 그와 비슷한 정도는 우리가 지배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표현에서는 지배자로서의 군주의 역할을 보여주고, “나는 포르투나를 격렬한 강물에 비유한다. 그러나 날씨가 맑을 때 인간이 제방으로 강물을 예방할 수 있다.”는 표현에서는 포르투나를 막아낼 수 있는 인간의 힘, 즉 비르투의 기능이 드러난다. 포르투나는 비르투가 없는 곳에서 현실을 더 강력히 지배하기 때문에 인간은 비르투로 포르투나에 대한 대책을 만들 수 있다. 군주는 가변적인 포르투나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열심히 대처해 상황을 자신한테 유리하도록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의 비르투는 고대의 Virtue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고대의 덕성(Virtue)이 지혜, 용기, 절제, 정의 등을 뜻하고 중세의 덕성이 4주덕에 믿음, 소망, 사랑을 더한 것이라면 마키아벨리의 비르투는 철저하게 정치적인 개념이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 적용하자면 ‘미국에 맞선 우리의 생존 방안.’,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 또는 중국과 미국의 무역 전쟁 속에서 우리가 취해야할 자세’가 비르투라고 할 수 있다. 군주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다.앞서 말한 폭력 역시 비르투의 한 종류이다. 군주가 국가를 세우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능수능란하게 인간을 연기하다가, 사자도 연기하고 여우도 연기한다. 포르투나가 가변적이기 때문에 비르투 역시 가변적이다. 비르투를 지닌 군주는 그때그때 자신에게 필요한 가면을 써야 한다. 그걸 빨리 판단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정치철학의 역할이다. 잔인함과 동정심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도 비르투이다. 잔인함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역설적이게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고, 평화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발생할 잔인함을 사용하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이는 군주가 도덕적으로 어떤 사람인지와는 관련이 없다.4. 현실주의마키아벨리는 에서 현실을 제도도 역시 불안정하다. 사람들은 법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어기기 위해 있는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사람들이 기회만 되면 법을 어기려는 존재로 이해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법을 어기는 것을 종교적으로도 불경이라 생각했지만 마키아벨리가 바라본 현실에서는 종교와 성직자들마저 타락했다. 종교는 고대에서처럼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교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이 중에서도 특히 마키아벨리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시민정신의 타락’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시민들 사이에서 타락한 애국심으로 인한 군사력의 저하를 걱정했다. 시민정신이 타락해서 사람들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으려고 하면 국가의 군대가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 국내적으로 통일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어려운 현실 상황에서 새로운 인간이 나타나 국가를 강력하게 통치해야 하는데 이 인간이 바로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다.더 이상 군주는 가족 같은 모습으로 국가를 통치하지 않는다. 세습 국가 역시 철저하게 지양해야 한다. 새 군주는 혈통이 아니라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갖고 있어야 한다. 끊임없는 권력의 획득과 상실의 과정과 타국에 대한 정복, 수많은 국가들 사이의 군사?경제적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복잡한 현실을 지배해야 하는 군주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 잃을 것도 없는 사람이 더 적합하다. 정치철학자란 이렇게 선정된 사람을 옆에서 도와 진정한 군주가 되게 만드는 사람인 것이다.새로운 군주는 새로운 질서를 창조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이 영광으로 가는 길이 대단히 험난하고 어렵다고 보았다. 이 영광과 명성은 과거의 위대한 정치가들의 모습과는 다른데, 새로운 군주가 가지는 영광의 상당 부분은 사랑과 도덕을 강조한 고대의 군주와는 달리 공포와 폭력이다. 군주는 이런 현실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 정치는 딜레마의 장소로 선과 악이 구분될 수 없이 뒤얽혀있다. 모든 정치적 행위는 어차피 일정한 악을 포함하기 때문에 군주의는다.
    독후감/창작| 2019.01.06| 5페이지| 2,000원| 조회(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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