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INSSOSSO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9
검색어 입력폼
  • 교육방법및공학-네개념관의관계1
    《서론》교수학습이론에 대해서 지금까지 배우면서 여러 가지 개념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시되고, 강조되었던 개념들이 교육, 학습, 수업, 교수이다. 이 네 가지 개념들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먼저 이 네 가지의 개념의 정의 살펴본 후, 이들 네 개념간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본론》1. 교육의 정의교육의 정의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난 여기서 두 번째 유형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알아보려고 한다.첫 번째 유형은 『傳受』에 정의를 두는 유형이다. R.S. Peters는 교육을 일종의 ‘성년식’으로 보고, 교육이란 ‘교육받는 사람이 장차 거기에 헌신할 가치 있는 것을 전수해 주는 일’이라는 정의를 내린다. 이와 같은 기본틀 속에 의도성과 가치지향을 가미하여 Peters는 ‘교육은 바람직한 정신상태를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법으로 의도적으로 실현하는 일’ 이라고 하였다. R.S. Peters는 특히 傳受에 강조를 두며 정의적인 변화보다 인지적 변화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두 번째 유형은 인간행동의 변화에 큰 관심을 가지는 현대 행동과학자들(정범모)이 교육을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 라고 정의하는 것이다.(조작적 정의) 여기서 행동이라고 할 때 그것은 비단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의 기억, 이해, 사고, 창의성, 가치관, 성격, 자아개념 등이 모두 여기의 행동이라는 표현 속에 포함된다. 따라서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라는 정의를 좀더 늘려서 보면 “교육은 없던 지식을 갖게 하고, 미숙했던 사고력을 숙달케 하며, 몰랐던 기술을 습득케 해 주고, 이러했던 관을 저런 관으로 바꾸어 놓으며, 저런 정신을 이런 정신으로 변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라고 하게 된다. 이러한 정의에서는 교육의 의도성과 계획성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세 번째 유형은 “인간의 성장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신장시키도록 돕는 일” 혹은 “최대한의 자기실현을 돕는 일” 로 규정하는 것이다 첫째와 둘째 유형의 정의에서 인간인 피교육자가 지니고 있는 성장 가능성과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성장력, 학습력, 혹은 학습지향성을 결코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의에 나타나는 용어로 보면 교육하는 사람의 의도, 가치 지향성과 계획성의 작용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에 반해서 셋째 유형의 정의에서는 교육자는 하나의 조력자로 머물고 어떤 인간으로 자라는 일과 무엇을 배우는 일에 있어서 주체가 학습자임을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이 정의에는 계획성이 별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그것은 인간의 최대한의 자기실현을 돕는 방식에 있어서 매우 강하게 의도적이고 가치 지향적이고 구체적인계획을 가질 수도 있고 반대로 학습자에게 더 많은 자율을 주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다2. 학습의 정의학습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게 내려지고 있는데 학자마다의 정의를 살펴보겠다.Gate는 “학습은 경험이나 훈련을 통한 행동의 변용이다”라고 했다.Gagne'는 “학습은 상당기간 지속되고, 성장과정에 그 원인을 돌릴 수 없는 인간의 특성 또는 능력의 변화다”라고 했다.Morgan 과 Kingd은 “학습이란 경험이나 연습의 결과로 발생되는 비교적 영속적인 행동의 변화다”라고 했다.Lewin은 “학습은 인식구조의 변화, 즉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으로 이끌려 가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다.Koffa는 “학습은 지각과정과 그 흔적이 복잡한 구조 속에서 조직화되는 재체제화의 과정이다”라고 했다.행동주의 심리학에서는 “학습은 자극과 반응간의 상관관계에서 일어나는 체계적인 변화”라고 했다.인지학습이론에서는 “학습은 인지구조의 변화”라고 했다.이상의 정의로부터 학습의 정의를 이끌어 내어 보면 “학습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영속적이며 안정된 형태의 행동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의 요소 중에서 영속적이며 안정된 형태의 행동변화를 제외한 나머지 두 가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다소 입장과 해석의 차이를 보인다.로크(Loke)의 경험론에 영향을 받은 인식론자들은 학습이란 자극이 되는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되고 이때 학습자가 주어진 자극에 대해 능동적으로 반응하는가 혹은 수동적으로 반응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데카르트(Descartes)의 합리론에 영향을 받은 형태심리학자와 언어획득 이론가(Chomsk 등)은 학습은 인간이 선천적, 지각적으로 조직된 능력을 이용해 사물의 배후에 숨어있는 관계를 새롭게 지각하는 통찰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경험론과 합리론을 종합한 Piaget의 영향을 받은 발생적 구성주의 입장은 인간의 학습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진 원초적인 구조와 환경과의 능동적 상호작용에 의해 자신의 인지구조를 변형시키고 정교화 시켜 간다고 본다. 여기에서 우리는 학습에 포함될 수 없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뽑아 낼 수 있다. 선천적인 것 성질 또는 선천력에 의한 변화와 신체의 성숙에 의한 변화 그리고 피로, 약물 또는 질병, 사고 등에 의한 일시적인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결국 학습이란 경험(훈련이나 연습 등)을 통하여 학습자에게 일어나는 비교적 지속적인 행동이나 인지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3. 수업의 정의Gagne' & Briggs는 “수업이란 학습자의 내적 학습과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마련되는 외적 사상의 한 집합”이라고 정의했다.Corey는 “수업이란 개인으로 하여금 명시된 조건 하에서 명시된 행동을 나타나게 하거나, 일정한 상황?장면에 대한 반응으로 그와 같은 행동을 할 줄 알게 하기 위하여 환경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그 외 수업이란 “특정한 조건 하에서 특정한 행동을 하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학습자의 환경을 의도적 ?계획적으로 조정하는 과정, 목표달성을 위하여 학습자의 내?외적 조건을 의도적 ?계획적으로 조정하는 과정”이라는 정의도 있다.수업(Instruction)은 종종 교수(Teaching)와 혼용되고 있다. 수업과 교수의 관계를 보는 관점에는 첫째, 일반적으로 교수가 수업보다는 포괄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고, 둘째, 수업이 교수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간주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셋째, 교수와 수업의 의미를 같은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근래에는 ‘교수’보다는 ‘수업’이 많이 쓰이고 있다.4. 교수의 정의일반적으로 교수란 ‘가르치는 것’을 뜻한다. 영어의 instruction 또는 teaching을 우리말로 ‘교수’라고 하며, 교수는 학습지도라고도 한다. 교수(teaching)는 교사중심의 지식 전달 위주의 강의가 실시되던 전통사회에서 많이 사용하였는데 반하여 진보주의 교육이론의 대두로 학습자의 능동적인 학습활동과 학습자들의 개인차를 강조하는 보다 새롭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발전하면서부터 ‘학습지도’란 용어를 많이 쓰게 되었다.English는 “교수란 학습자들이 학습하도록 도와주는 예술로서, 가르치는 일에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 적절한 상황 또는 조건을 준비하는 일과 학습을 촉진하도록 계획된 활동들을 포함 한다”고 정의했다.Johnson에 의하면 “교수는 학습자들의 학습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학습자와 상호 작용하는 과정이며, 교수와 학습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교수가 이루어졌어도 학습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으며, 반면 교수가 없어도 학습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Corey는 “교수란 개인으로 하여금 어떤 특정한 조건 하에서 또는 특정한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특정한 행동을 나타내도록 학습하게 하거나 또는 그 특정 행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인을 둘러싼 환경을 계획적으로 조작해 주는 과정이다”라고 정의했다.T. Green은 교수의 개념을 폭넓게 정의했는데, 교수에 수업, 교화, 조건화 및 훈련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본다. 교수활동에는 행동을 형성하는 활동과 지식이나 신념을 형성하는 활동이 있는데, 행동을 형성하는 교수활동에는 훈련과 조건화가 있으며, 지식이나 신념을 형성하는 활동에는 수업과 교화가 있다고 했다.5. 교육ㆍ학습ㆍ수업ㆍ교수의 관계지금까지 교육, 학습, 수업 교수 각각의 개념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먼저 교육은 가장 큰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학자들의 견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육은 지적, 인지적 발달을 비롯하여 자아실현 등의 평생 동안 일어나는 가장 포괄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학습과 교수의 관계는 상반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주체에서부터 상반되는 관계가 드러난다. 학습의 주체는 학생이고, 교수의 주체는 교사이다. 학자들의 견해에서도 상반되는 관계가 드러나는데 Gagne는 교수란 학습자의 내적 능력과 상호 작용하는 학습장면에 대한 외적 조건의 통제라고 했고, 학습이란 새로운 지식, 기능, 태도, 생활양식 등을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작용이라고 했다. 여기서 학습과 교수의 전제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수업과 교수의 관계를 보면, 교수는 수업보다 포괄적?의도적인 것을 포함하며 교사?학생의 상호작용을 전제하고 있다. 수업은 지적?탐구적 특성을 자극하는 내용을 전달하며, 의도적인 것만 포함하고 교사?학생의 인격적 상호작용을 전제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수업과 교수는 비슷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교수가 수업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학습과 수업에 대해 살펴보면, 수업은 어떠한 작용을 나타내고 학습은 그 작용의 결과를 나타낸다. 수업은 학생의 학습을 전제로 하나, 학습은 의도적 수업에서만이 아니라 비의도적 장면에서도 일어난다. 즉, 위의 학습과 교수의 관계처럼 상반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교육학| 2020.11.02| 5페이지| 2,000원| 조회(114)
    미리보기
  • 고전산문론-양반전해석
    兩班傳 (양반전)박지원士?天爵, 士心爲志, 其志如何? 弗謨勢利, 達不離士, 窮不失士, 不飾名節.사내천작, 사심위지, 기지여하? 불모세리, 달불이사, 궁불실사, 불식명절.사(士)는 바로 하늘이 준 벼슬이니, 선비는 마음을 뜻으로 삼는데, 그뜻은 어떠한가? 세력과 이익을 꾀하지 않고 영달하더라도 선비의 도리를 떠나지 않고, 빈궁하더라도 선비자리를 잃지 않고, 명절을 꾸미지 않는다.徒貨門地, ?世德, 商賈何異? 於是術 「兩班」.도화문지, 육세덕, 상고하이? 어시술 「양반」.다만 기운과 지체를 돈(기회, 계기)으로 삼아 조상대대로 남겨온 덕을 팔고, 장사꾼을 하는 것과 어떻게 다르겠는가? 이에 「양반」에 대해 기술한다.兩班者, 士族之尊稱也. 旌善之郡, 有一兩班, 賢而好讀書,양반자, 사족지존칭야. 정선지군, 유일량반, 현이호독서,양반이란 사족(士族)의 존칭이다.정선군(旌善郡)에 한 양반이 있었는데, 어질고 글읽기를 좋아했다.每郡守新至, 必親造其廬而禮之. 然家貧歲食郡 , 積歲至千石.매군수신지, 필친조기려이예지. 연가빈세식군조, 적세지천석.언제나 군수가 새로 오면 반드시 친히 그 집에 가서 인사를 했다. 그러나 집이 가난하여 해마다 군(郡)의 환곡〔米)을 먹어서 해를 거듭하매 천 석에 이르렀다.觀察使巡行郡邑, 閱??, 大怒曰 : “何物兩班, 乃乏軍興?”관찰사순행군읍, 열조적, 대로왈 : “하물량반내핍군흥?”관찰사가 고을을 순행하다가 관곡의 출납부를 보고 크게 노해서 말하기를,「어떤 놈의 양반이 이렇게 군량을 축냈단 말인가?」命囚其兩班, 郡守意哀其兩班, 貧無以爲償, 不忍囚之, 亦無可奈何?명수기량반, 군수의애기량반, 빈무이위상, 불인수지, 역무가내하?그 양반을 가두도록 명하였다. 군수는 마음속으로 그 양반이 가난해서 갚을 수 없는 것을 딱하게 여겨 차마 그를 가두지 못하나 또한 어찌할 수 없었다.兩班日夜泣, 計不知所出. 其妻罵曰 :양반일야읍, 계부지소출. 기처매왈 :“平生子好讀書, 無益縣官, ?兩班, 兩班不値一錢.”“평생자호독서, 무익현관적, 돌량반, 양반불치일전.”양반이 낮갚을 수 없어 바야흐로 크게 군색하여 그 형편이 실로 그 양반을 보전할 수 없게 되었으니, 내가 사서 가지리라.」遂踵門而請償其 , 兩班大喜許諾. 於是, 富人立輸其 於官,수종문이청상기적, 양반대희허낙. 어시, 부인립수기적어관,마침내 친히 그 집에 이르러 관곡을 갚겠다고 하니 양반은 크게 기뻐하고 허락했다. 이에 부자는 곧 그 관곡을 관에 보냈다.郡守大驚異之, 自往勞其兩班, 且問償?狀,군수대경이지, 자왕노기량반, 차문상적장,군수는 크게 놀라서 갚게 된 경위를 묻고자 스스로 그 양반의 집을 찾았다.兩班氈笠衣短衣, 伏塗謁稱小人, 不敢仰視. 郡守大驚, 下扶曰.양반전립의단의, 복도알칭소인, 불감앙시. 군수대경, 하부왈.양반은 벙거지에 잠방이 차림을 하고서 뜰아래 엎드려 뵙고서 소인이라 칭하며 감히 쳐다 보지도 못했다. 군수는 크게 놀라 내려가서 붙들어 일으키며 말하기를 했다.“足下, 何自貶辱若是?” 兩班益恐懼, 頓首俯伏曰.“족하, 하자폄욕약시?” 양반익공구, 돈수부복왈.“선비님 어찌하여 이렇듯 스스로 몸을 낮추어서 욕되게 하심이 이같으십니까?」양반이 더욱 송구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엎드려 말하기를,“惶悚. 小人非敢自辱, 已自賣其兩班以償? , 里之富人方兩班也.“황송. 소인비감자욕, 이자매기량반이상적, 이지부인방량반야.“소인은 오직 황공할 따름입니다. 소인은 감히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스스로 양반을 팔아서 환곡을 갚았나이다. 건넛마을의 부자가 양반이 되었나이다.小人復安敢冒其舊號而自尊乎? 郡守歎曰 :君子哉 富人也, 兩班哉! 富人也.소인복안감모기구호이자존호? 군수탄왈..”군자재 부인야, 양반재 부인야.소인이 다시 어찌 감히 영감을 뵈올 수도 있으며 옛 호칭을 쓰며 스스로 높이겠습니까?”군수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군자로다. 부자가 참으로 양반이로다.”而不吝 義也, 急人之難, 仁也 : 惡卑而慕尊 智也. 此眞兩班.이불린 의야, 급인지난 인야 : 악비이모존 지야. 차진량반.「부자이면서 인색하지 않으니 의가 있고 남의 어려움 돌봐줬으니 인자함이고 비천함을 미워하고 존귀文段, 극賣兩班, 爲償官 ,[건륭십년구월일, 우명문단, 극매량반, 위상관적,「건륭십년 구월 모일에 이 문서를 만드노라. 그 양반을 팔아서 환곡을 갚았는데其直千穀. 維厥兩班, 名謂多端, 讀書曰士, 從政爲大夫, 有德爲君子.기직천곡. 유궐량반, 명위다단, 독서왈사, 종정위대부, 유덕위군자.그 값이 쌀 천석이라. 오직 그 양반은 여러 말로 부르는데 글만 읽는 사람을 선비라 하는데 정사를 하는 사람을 대부라 하고 덕이 높은 양반을 군자라 하느니라.武階列西, 文秩?東, 是爲兩班. 任爾所從, 絶棄鄙事, 希古尙志.무계열서, 문질서동, 시위량반. 임이소종, 절기비사, 희고상지.무관은 계급을 따라서 서반에 늘어서고 문반은 서열을 쫓아서 동반에 차례로 서는데 이것을 양반이라 하느니라. 이제 양반에 사들인자는 제 뜻에 따라 동?서 두반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양반은 비천한 일을 끊고 버려야 할 것이며 옛 사람의 높은 행적을 바라고 뜻을 높여야 하느니라.五更常起, 點硫燃脂, 目視鼻端, 會踵支尻, 東萊博議誦如氷瓢,오경상기, 점류연지, 목시비단, 회종지고, 동래박의송여빙표,날마다 새벽 오경이면 일찍 일어나 등잔불을 밝히고 꿇어 앉아 눈으로 코끝을 내리보면서 얼음위에 조롱박을 굴리듯이 를 술술 읽어야 하느니라.忍饑耐寒, 口不說貧, 叩齒彈腦, 細嗽嚥津, 袖刷?冠,인기내한, 구불설빈, 고치탄뇌, 세수연진, 수쇄취관,拂塵生波, ?無擦拳, 漱口無過,불진생파, 관무찰권, 수구무과,굶주림을 참고 추위를 견디며 가난을 입에 담지말며 할 일 없어 앉아 있을 적에는 아래 위의 잇줄을 마주쳐 딱딱거리고 뒤통수를 탁탁치고 잔기침을 하며 입을 다셔 침을 삼켜야 하느니라. 탕건이나 갓은 소매로 문질러 먼지를 털고 세수를 할 적에는 주먹으로 씻지 아니하고 양치질을 할 적에는 두어번 알맞게 하느니라.長聲喚婢, 緩步曳履. , , ?寫如荏, 一行百字.장성환비, 완보예리. , , 초사여임, 일행백자.긴 목소리로 종을 부르고 걸음은 느릿느릿 걷고 와 를 깨알 같은 글씨로 베끼되 한 줄에 백자씩 들어가게 해야하느니라毋屠牛, 毋賭錢, 凡此百行, 有違兩班, 持此文記, 卞正于官.제불재승. 노불자수, 어불치타, 무도우, 무도전, 범차백행, 유위량반, 지차문기, 변정우관.제사 지낼 때 중을 불러서 재 드리면 아니되며 추워도 화롯불에 손을 쬐지 못하느니라. 말을 할 때 입의 침이 나오면 아니되고 소를 잡아 먹지 못하며 돈 놀음도 못하느니라. 무릇 이와 같은 백가지 행실이 양반과 어긋날 때에는 이 문서를 관가로 가지고 와서 마땅히 관에서 분별하여 바로 잡을 것이다.城主旌善郡守押, 座首別監證署.] 於是通引 印錯落,성주정선군수압, 좌수별감증서.] 어시통인탑인착락,성주인 정선 군수가 문서에 이름을 쓰고 좌수와 별감이 증인이 되어 서명을 하였다. 이에 통인으로 하여금 도장을 찍게하니聲中嚴鼓, 斗縱參橫. 戶長讀旣畢, 富人愴然久之曰..성중엄고, 두종참횡. 호장독기필, 부인창연구지왈..그 소리는 북소리 같이 엄하고 찍혀있는 도장은 북두성이 널려 있는 것 같았다. 호장이 이 증서를 다 읽어주니 부자가 멍해서 오래있다가 말하였다.[兩班只此而已也? 吾聞兩班如神仙, 審如是大乾沒, 願改爲可利.][양반지차이이야? 오문량반여신선, 심여시대건몰, 원개위가리.]양반이 다만 이것 뿐입니까? 내가 듣기에 양반은 신선과 같다고 하더니 진실로 이와 같다면 너무 지나치게 재미없습니다. 원컨데 고쳐서 나에게 더 이롭게 써 주시오.」於是, 乃變作卷曰.어시, 내변작권왈.이에 군수는 다시 고쳐 쓰기로 하여 말하기를,[維天生民, 其民維四, 四民之中, 最貴者士, 稱以兩班, 利莫大矣,[유천생민, 기민유사, 사민지중, 최귀자사, 칭이량반, 이막대의,「오직 하늘이 백성을 네가지로 내었으되 그 백성 네가지 중에 가장 귀한 자는 선비가 되니 양반이라 일컬으며 이로움이 막대하니라.不耕不商, 粗涉文史, 大決文科, 小成進士, 文科紅牌, 不過二尺,불경불상, 조섭문사, 대결문과, 소성진사, 문과홍패, 불과이척,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지 않는다. 대충 글을 읽으면 크게는 문과에 급제하고 작게는 진사가 되고 문과에 급제하면 홍패를 받는데 그 크기는 이며 상투를 잡고 수염을 뽑는다해도 감히 원망도 못하리라.」富人中其券, 而吐舌曰..[已之已之, 孟浪哉! 將使我爲盜耶?]부인중기권, 이토설왈..[이지이지, 맹랑재! 장사아위도야?]그 중서를 반쯤 읽어 내리자 부자 사람이 숨을 토해내며 말하기를 「아이고 맙소사!」하고는 숨을 헐떡이며 하는 말이, 「그만 두시오. 그만 두시오! 양반이란게 참으로 맹랑한 것이로구료! 나으리네들은 나를 장차 도둑놈을 만들려고 하는구료!」掉頭而去, 終身不復言兩班之事.도두이거, 종신불복언량반지사.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달아나 버렸다. 그리하여 그는 죽을 때 까지도 아예 '양반'이란 말을 다시는 입밖에 내지도 않았다고 한다.양반이라는 것은 선비계급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정선(旌善) 고을에 양반이 한 명 살고 있었다. 그는 성품이 어질고 독서를 매우 좋아했으며, 매번 군수(郡守)가 새로 부임하면 반드시 그를 찾아 예의를 표하곤 했다. 그러나 집이 매우 가난해서 해마다 나라 곡식을 꾸어 먹었는데, 해가 거듭되니 꾸어 먹은 것이 천 석(石)에 이르게 되었다.어느 날 관찰사(觀察使)가 여러 고을을 순행(巡行)하다가 정선에 이르러 관곡을 검열(檢閱)하고는 크게 노했다.“그 양반이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물건이건대, 이토록 군량(軍糧)을 축내었단 말이냐.”그리고 그 양반을 잡아 가두라는 명령을 내렸다. 군수는 그 양반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바 아니었지만, 워낙 가난해서 관곡을 갚을 길이 없으니, 가두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둘 수도 없었다.당사자인 양반은 밤낮으로 울기만 할 뿐 어려움에서 벗어날 계책도 세우지 않고 있었다. 그 처는 기가 막혀서 푸념을 했다.“당신은 평생 글읽기만 좋아하더니 관곡을 갚는 데는 전혀 소용이 없구려. 허구한 날 양반, 양반 하더니 그 양반이라는 것이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것이었구려.”그 마을에는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이 일로 인해 의논이 벌어졌다.“양반은 비록 가난하지만 늘 존경받는 신분이야. 나는 비록 부자지만 항상 비천(卑賤)해서 감히 말을 탈 ,
    인문/어학| 2020.11.02| 10페이지| 3,000원| 조회(236)
    미리보기
  • 문학교육론-매체언어 교육의 본질에 대한 소고
    매체언어 교육의 본질에 대한 소고(小考)【차례】Ⅰ. 서론Ⅱ. 국어교육과 매체언어 교육Ⅲ. 매체언어 교육의 성격Ⅳ. 매체언어 교육의 내용Ⅴ. 나오며※ 참고문헌 ※Ⅰ. 서론국어교육의 주요 목표는 국어 능력의 신장이다. 그리고 국어 능력 신장이라는 개념은 언어에 의해 사람과 관계 맺고, 언어를 통해 비판적으로 정보와 지식을 수용 ? 생산하며, 언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소통(communication)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 문명의 발달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소통의 방식이 변화한다. 따라서 국어교육은 우리 시대의 지배적 소통 언어와 소통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는 매체언어(media language)를 통한 국어 능력의 신장을 목표로 함은 물론 매체가 생산하는 다양한 문화적 텍스트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특히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소통 방식인 디지털 매체에서는 고전적인 매체를 소통하던 향유자를 수용자와 생산자로 나누어 구분하였던 2분법이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국어교육 내에서 소통의 개념도 기존의 언어 기능 차원에서 논의되었던 소통에서 언어문화 행위에 대한 문화적 차원의 소통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즉 소통은 언어문화 능력 내지 언어문화 교육의 상위 개념 아래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되어야 하며, 매체언어 교육의 목표 역시 소통과 소통을 통한 문화 능력 신장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이와 같은 현대 사회 발전에 따른 소통 개념의 변화는 초 ? 중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국어교육에서 매체 교육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라는 언어와 문화, 리터러시(literacy)와 소통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 또한 매체 교육의 국어 교육적 수용은 현실적으로는 국어 교사가 갖추어야 할 매체에 관한 지식과 소양, 의사소통 능력(communication competence)을 재고하는 문제 역시 중요하게 제기한다. 이는 교사 교육과 연수를 통한 재교육에 대한 함의를 수반하는 시급한 문제이기도 하다. 본고는 이와 같은 논제들에 대한 체 언어와 정보 사회° 매체 언어와 대중 문화° 매체 언어와 인간 관계매체 언어의 수용과 생산° 매체 자료의 비판적 수용과 심미적 향유° 매체 자료의 창의적 변용과 생산° 매체 언어를 통한 사회적 소통과 문화 참여선택 과목인 '매체 언어'에서는 매체언어와 매체 자료의 성격에 대한 이해, 사회 ? 문화적 맥락에서 매체언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며, 이를 바탕으로 매체 텍스트를 수용하고 생산하는 활동을 교육 내용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위해 정보 전달과 설득, 심미적 정서 표현, 사회적 상호 작용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매체 자료의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이상과 같은 매체에 대한 국어교육 차원의 논의에서 매체는 일차적으로 언어적 작용과 활동이라는 관점에서 탐구되고 있다. 이때 매체는 소통의 자료이자 의미 생산과 유통의 자료이고, 매체언어 교육은 매체의 의미 작용, 소통 원리에 대한 교육이 된다. 즉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매체는 인간의 의사소통에서 인쇄 매체가 담당했던 역할과 기능을 나누어 맡고 있는 것이다.Ⅲ. 매체언어 교육의 성격1. 용어의 규정: 매체언어, 리터러시본고에서는 매체언어 교육에 대한 각론 차원의 본격적인 연구를 전개하기 전, 다음 두 개념에 대한 정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여겨 이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해 두고자 한다.° 매체언어: 생활 속에서 언어의 부분을 가져오는 것이 국어교육이라면, 매체의 부분에서 국어와 관련되는 부분을 가져와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매체언어라는 용어와 국어교육은 상통하여, 실제로 기존의 많은 연구자들은 매체언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매체언어라는 용어는 언뜻 언어와 그 재현에 관련된 부분만을 상기시켜 생산자와 수용자라는 중요한 개념을 빠뜨리는 것처럼 보인다. 나아가 생산자와 수용자의 탈락은 문화적 부분의 탈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국어교육 이외의 영역에서는 매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는 점이 매체언어라는 용어에서는 한계적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 인 할리데이(Halliday,1985)에 따르면 언어는 다음의 3가지 요건, 즉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기호를 통해 표상할 수 있는 기능, 소통 주체 간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 텍스트를 조직하는 기능에 의해 성립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할리데이의 언어 개념은 복합 양식 이론 지지자들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이미지나 영상과 같은 시각 언어 역시 이 3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므로 언어로 볼 수 있다. 가령,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은 문자(자막)와 말(음성), 영상 언어를 포함한 복합 양식의 언어가 의미 작용하는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매체의 이해와 표현 방식은 의미를 드러내고 전달하며 나아가 이에 대한 해석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 언어의 측면에서 초점화하여 접근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신문? 잡지? 영화? 텔레비전? 인터넷 등과 같은 현대 사회의 매체에서 의사소통은 말이나 글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과 글이 그림이나 사진, 동영상 등 다양한 시각적 기호 및 영상 언어와 결합되어 의미를 형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작용에 관여하는 매체언어는 음성과 문자 언어 차원을 넘어서 기호의 차원으로 확대되는 통합적 언어의 형태를 띤다.매체언어는 인간 소통의 역사적 발전 속에서 생겨난 다양한 매체의 의미화 양식들 또는 언어 양식들로서, 기존의 문자 언어와 음성 언어의 영역을 넘어선 보다 넓은 의미의 언어로 재개념화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매체는 다양한 의미화 양식들(언어 양식들)이 특정한 형태의 텍스트로 전환되는 과정에 개입하는 기술적 형식으로서, 넓은 개념의 언어를 담는 형식으로 좁은 개념의 언어와는 구분되는 층위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3. 소통론의 확장인간의 의사소통 역사는 주요 매체의 발달과 관련하여 이해된다. 즉 언어의 발명,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 마르코니의 전신 발명이 그 중요한 계기가 되는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을 기점으로 인간의 의사소통은 문자 언어 등장 이전 시대, 문자 시대, 구텐베르크 시대, 전기 전자 시대로 구분되달하는 사회에서는 성인기와 경계 짓기 모호한, 낯선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체언어 교육이 현제 교육의 주체이자 미래의 소통과 문화 주체인 학습자의 발달 변화를 전제로 접근되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한편 매체를 통한 소통의 양상과 작용은 시대별? 미디어에 따라 다르다. 매체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것처럼 보이는 학습자의 매체 경험 역시 실은 아주 협소하고 제한적이다. 학습자들이 주로 관련을 맺고 있는 매체는 접근이 용이하고 즉각적 흥미를 누릴 수 있는 휴대폰 문자, 인터넷 미니 홈페이지, 컴퓨터 게임 등이고, 이러한 학습자들의 매체 문화는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 속도는 매체로부터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기성세대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다문화가정 학습자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따라서 새로운 교육과정에 따라 매체언어 교육을 공교육의 차원에서 실시하면, 성인과 청소년, 교사와 학습자뿐만 아니라 학습자(다문화가정 학습자를 포함하는) 간의 차이와 갈등을 줄이고 문화 내 소통(intra-cultural communication)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Ⅳ. 매체언어 교육의 내용1. 수용다양한 매체들은 언어, 문화, 국어의 표현 방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이에 따라 기존 매체와 새로운 매체의 기능 분담 또는 역할 재편이 이루어졌다. 이는 새로운 매체로 인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비판적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미이다.가령, 인터넷 내지는 디지털의 경우 비선형적 사고를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모든 사고가 비선형적 사고는 아니며, 인터넷상의 글쓰기 역시 진정한 비선형적 사고는 아니다. 인터넷상의 글쓰기 역시 생각의 논리가 있는 선형성을 가진 글쓰기로 볼 수 있다. 그 글을 읽는 독자는 머릿속에 선형적으로 내용을 재구성하여 글을 이해하게 된다. 인터넷상의 글쓰기는 오히려 기술적 특성을 알고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져야 한다. 결국 매체와 기록 방식 변화로 인해 산출된 글의 스타일 변학습자가 매체 생산물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제작 구조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그 과정에 직접 생산자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무엇을 매체에 담을 것인가를 결정하고 어떤 기술적인 방법을 사용할 것인가를 학습자 스스로 판단하기 때문에 매체와 매체언어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이러한 생산은 학습자 스스로 매체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창의적 제작이되, 사회적? 협동적 측면을 지닌 제작이 될 때 학습에 유의미할 것이다.그러나 매체 제작 교육은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매체의 총체적 이해를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인식이 불분명하게 되면, 제작 교육은 기술적인 측면에만 치중하는 문제가 생긴다. 매체언어 교육에서 기술적인 측면은 그러한 기술적 요건이 전체 매체 생산물에 작용하는 영향이나 수용자에게 주는 효과 때문에 더 중요하다는 점이 부각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제작에는 체계적인 성찰과 자기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매체를 학습자 일상의 삶과 연결시키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3. 매체 간 변환원작과 그것을 다른 매체로 바꾼 작품을 바라볼 때는, 주종관계가 아닌 매체 간 변환의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문학 텍스트, 영화, 드라마, 만화, 광고 등의 영상 텍스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텍스트의 언어적 측면과 문화적 측면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논의될 수 있다. 이때 매체 종류에 따라 표현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주목하여 영상 문법 등을 교수-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매체 간 변환을 바라볼 때 원작과 개작에 대한 학습자 수용 측면뿐만 아니라 창작 동의 차원까지 확장하여 매체 간 변환에 대해 폭넓게 살펴보고, 이를 매체언어 교수-학습 활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본고에서 다루는 매체 간 변환의 문제는 크게 서사와 서정 장르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서사 장르 측면에서는 서사 장르가 매체가 등장함으로써 어떻게 변하는가를 중심으로 서사에서 매체로의 변환뿐만 아니라 매체에서 서사로의 변환이나 서사와 매체의 동시 제작 등의 하다.
    인문/어학| 2020.11.02| 11페이지| 2,000원| 조회(168)
    미리보기
  • 교육방법및공학-교육, 교수, 학습, 수업의개념과그관계[1]
    교육, 교수, 학습, 수업의 개념과 그 관계- 교육학 기본개념들에 대한 이해를 통한 기초 틀 잡기 -Ⅰ. 서론어떠한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어떠한 이론에 대해 밝게 안다거나,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달아 발표하는 것을 물론 중요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앞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와, 체계적인 관계의 정립이 그보다 훨씬 중요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교육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무엇일까? 물론 교육(敎育)이 가장 중요할 것이며, 교수(敎授), 학습(學習), 수업(授業)과 같은 개념이 그 뒤를 이을 것이다. 사실상 이 네 가지 개념은 ‘가르치는 것’으로 일축할 수 있고, 그러한 이유에서 일상에서 종종 혼용되곤 한다. 다음은 2005년 10월 17일 ‘뉴스와이어’를 통해 발표된 기사 중 일부이다.『교총의 전국 교육 자료전은 “좋은 교육, 좋은 선생님”을 실천하기 위한 것으로서 칠판과 교과서만의 단순 교수방식에서 탈피하여 실물제작 자료와 인터넷 등 다양한 학습 자료를 수업에 활용, 교육효과를 높이자는 취지로 선생님들이 직접 제작한 우수 교육 자료를 발굴해 교육현장에 소개하고 보급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고 있다.』이 한 문장에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네 가지 개념이 모두 사용되고 있다. 이 글의 필자는 과연 교육, 교수, 학습, 수업의 개념을 어떻게 분류하여 나타내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을 행위자와, 피행위자를 이용한 분류이며, 그것이 포함하는 내용이나 목적에 대한 고려는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네 가지 개념을 보다 정확하게, 근원적으로 구분하면 무엇이며, 이들 간의 관계는 어떨까? 이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Ⅱ.본론교육, 교수, 학습, 수업. 지금부터 이 네 가지 개념들의 정의를 내려보고, 그것들을 비교?대조하며, 반대의 상황을 고찰해 봄으로써, 이하에서 이 네 가지 개념의 우위를 따지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습이 그 넷 중 가장 큰 개념으로 볼 수 있으며, 그 하위에 교육, 그 하위에 교수, 그 하위에 수업을 둘 수 있겠다.먼저 가장 큰 개념으로 수업, 교수, 교육을 포괄하는 학습과 학습의 바로 하위 개념으로써, 교수와 수업을 포괄하는 교육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자. 학습의 정의가 무엇인가? 학습은 개인과 환경의 상호 작용에 의하여 나타나는 인간행동의 변화이다. 다만 여기에는 제외되는 것이 세 가지 있는데, 그것은 생득적인 반응경향과 성숙, 일시적 상태에 의한 행동의 변화이다. 그렇다면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의 정의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여기서는 교육의 조작적 정의만을 염두하고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조작적 정의로 봤을 때의 교육은 인간을 개별적으로 바람직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의 정의를 살펴봤을 때, 우리는 어렵지 않게 학습이 교육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통적으로 두 개념이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지만, 학습에는 그 배우는 내용에 대한 가치판단은 결여되어 있다. 교육은 분명하게 ‘바람직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라 명시하고 있다. 영화 ‘친구’가 개봉하여 크게 성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부산의 한 중학생이 급우를 칼로 찌르는 잔인한 사건이 있어난 바가 있다. 그 학생은 ‘친구’라는 영화를 보고 모방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 학생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하여 타인을 칼로 찌르는 것을 학습했지만, 이를 교육이라 볼 수는 없다.그러면 나머지 두 개념인 교수와 수업을 비교해 보도록 하자. 역시 그 정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문제점이 있다. 교수를 우리가 딱 한가지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교수는 광의의 측면에서와 협의의 측면에서 이분하여 그 개념을 정의할 수 있다. 광의의 측면에서의 교수는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학습자의 학습목표 달성에 영향을 주려는 포괄적 내용으로서의 의도적?비의도적 자극의 총체이다. 반면 협의의 측면에서의 교수는 수업장면에서 교사가 직접 가르치는 행동 및 행위 그 자체를 일컬을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광의의 측면에서의 교수를 지칭하기로 한다. 다음으로 수업을 정의하여 보자. 수업이란 학습자의 지적 탐구적 특성을 주로 자극하는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개념의 관계가 이제 명료해진다. 교수는 먼저 가르치는 내용이 학습자의 모든 능력을 자극하는 포괄적인 것이다. 이것은 지적 탐구적 특성을 주로 자극하는 내용을 전달하는 수업에 비해 필시 넓은 개념이다. 또한 교수는 학습자가 보인 변화 중에서 교사가 의도했던 것을 비롯하여, 의도하지 않았던 것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수업은 의도적 행동만을 포함하므로 그 목표 면에서도 교수가 수업보다 넓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수는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인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이것은 그러한 전제가 없는 수업보다 더 포괄적이라 할 수 있다.그런데, 어찌하여 전제가 있는 것이 전제가 없는 것 보다 더 포괄적일 수 있는가? 이것은 수학적으로 봤을 때, 논리에 맞지 않다. 어떠한 상황을 전제하지 않을 때, 전제하였을 때보다 그 범위가 더 넓어짐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만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교실상황을 한 번 떠올려 보자. 교사가 학생에게 어떠한 학습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당연히 무언가를 가르치고 있을 것이며, 이것은 아마도 지적인 내용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 학생에게 가르치면 자신의 임무는 끝이 난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수업일 뿐이다. 교수는 수업을 하면서 학생과 인격적인 상호작용까지 더불어 하는 것이다.이로서 우리는 다소 길게나마 학습과 교육, 교수와 수업의 개념을 이용하여 서로의 관계를 알아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교육과 교수의 관계를 살핌으로써 네 가지 개념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앞에서도 말했듯이 교육은 인간을 개별적으로 바람직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며 교수는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학습자의 학습목표 달성에 영향을 주려는 포괄적 내용으로서의 의도적?비의도적 자극의 총체이다. 교육은 학습 내용을 ‘개별적으로 바람직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라 제한하는 반면 교수는 ‘학습자의 학습목표 달성에 영향을 주려는 모든 자극’을 포함하므로 교육이 더 큰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교육, 교수, 학습, 수업의 관계에서 학습이 가장 큰 개념으로, 그 다음이 교육, 그 다음이 교수, 그리고 가장 작은 개념을 수업이라 할 수 있겠다.
    교육학| 2020.11.02| 4페이지| 2,000원| 조회(104)
    미리보기
  • 고전시가-우리 시가에 나타나는 물(水)의 심상 고찰
    우리 시가에 나타나는 물(水)의 심상 고찰- 시조를 중심으로 -차례Ⅰ. 서론Ⅱ. 시가에 내재된 물[水]의 정서1. 경계(境界)의 정서와 사적 영역2. 수신(修身)의 정서와 공적 영역3. 항상(恒常)성의 정서와 사적?공적 영역Ⅲ. 물의 정서와 심상의 표출1. 경계(境界), 만남과 헤어짐의 마주침2. 수신(修身), 군자의 길Ⅳ. 결론? 참고문헌 ?Ⅰ. 서론물은 인간 생명뿐만 아니라 만물 생성의 원수(原水)로, 고대로부터 신성한 것으로 신앙시되어 왔다. 물에 대한 관념은 세계 각 민족들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생명의 근원이라는 데서 출발하여 창조, 정화, 재생 혹은 이와 반대로 장애나 죽음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다. 또한 바다의 경우 모든 생명의 어머니, 무한성, 죽음과 재생, 무시간성과 영원, 새로운 탄생, 무의식을 상징하며 강물은 생의 원한과 전환적 국면, 죽음과 재생(세례)등을 상징한다. 이러한 물(水)은 우리 시가의 몇몇의 자연물과 더불어 전통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주요 제재 중의 하나로 간주되어왔다.따라서 본고의 연구 대상은 우선‘물’이 작품의 제재로 사용된 경우로 한정시킨다. 단순히 물 자체만을 의미하기보다 井(정), 川(천), 溪(계), 河(하), 江(강), 海(해) 등을 모두 포괄하는 공통된 속성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물의 심상을 연구하기 위해 박을수의 『한국시조대사전(아세아문화사,1992)』을 저본으로 삼은 후, 연구와 부합하는 작품들을 13수로 선별하고, 이 작품들을 대상으로 우리 시가에서 나타나는 물의 정서는 어떤 것인지 알아본다. 또한 그것이 우리 시가를 통해 형상화되었을 때 그 심상의 노출은 어떤 양상과 의의를 지니게 되는지 고찰해보도록 한다.Ⅱ. 시가에 내재된 물(水)의 정서1. 경계(境界)의 정서와 사적 영역문학에서 정서는 특정한 매개를 통해 사물의 구체적 비유, 성의 추상적 은유 방식으로 표출된다. 그렇다면 그 매개로서의 물은 어떠한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것일까? 고대 우리 문학의 발원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 에서 사회상이 두 남녀의 이별에 작용하여 더욱 슬픈 감정을 자아내고 있다. ‘羞人(수인)’이라고 하여 남부끄럽다고 하는 것은 그 시대가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하여 아직 개방되어 있지 않아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낼 때조차도 타인의 눈을 의식해야 했기에 아무런 말없이 보내야만 하는 화자의 짙은 슬픔이 내재되어 있는 시어이다. 또한 그런 슬픔은 돌아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조차 소리 내어 마음껏 울지 못하는 한스런 울음으로 대변되고 있다. 이러한 이별의 슬픔과 한은 양쪽으로 갈라버리는‘계(溪)’의 물줄기에 의해 더욱 도드라진다.이러한 경계의 의미를 지니는 물의 심상은 현대시 중 박재삼의 으로 이어진다. 시적화자는 제사를 치르기 위해 고향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마을 앞을 도도히 흐르는 강을 쳐다보며 그에 얽힌 어린 시절의 슬픈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이 시의 강은 시적화자의 인생의 변화와 그 흐름의 경계를 나타내며 사라져가는 모든 것이 지닌 슬픔을 상징하고 있다.... 라구요노래: 강산에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볼 수는 없었지만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건 내 아버지 레파토리그 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고향생각 나실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죽기 전에 꼭 한번 만이라도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내 어머니 레파토리 그 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십팔번이기 때문에 남은인생 남았으면 얼마나 남았겠니 하시고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어머니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번 만이라도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실향민이라도 부르는 세대와 그 실향민인 부모를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현대가요가 강산에의 ‘…라구요’이다. 이 노래는 실제로 실향민 부모를 둔 강산에의 자전적인 노래라고 알려져 있다. 젊은 시절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화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흘러간 후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한 후 만들었다던 이 노래는 강산에의 진심이 잘 느껴크게 두 부류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경계’와 ‘수신’으로 볼 수 있다. 이 개념들은 구별이 다소 명확하지 않은데, 그러한 까닭은 시가 서정적 자아를 대변한다고 볼 때, 정서적으로 상호교섭성이 매우 크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물이 가진 심상은 이 두 가지의 개념 혹은 정서로 대변될 수도 있겠지만 실제 작품의 분석에 있어서는 각 작품이 지닌 ‘서정성’의 발로 유무가 실제적인 분석의 기준이 된다. 왜냐하면 이 두 부류의 개념에서, 작품 내용상‘경계’는 사적 영역, ‘수신’은 공적 영역에 해당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특히, 이러한 서정성은 대개 작품 내에서 물이 가진 ‘항상성’을 주제로 하는 경우에 주로 표출된다. 여기에서 물의 항상성을 언급하는 것은 그 특성이 ‘경계’와‘수신’이라는 두 부류의 작품에 고루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가) 산(山)은 녯 山(산)이로? 물은 녯 물이 아니로다晝夜(주야)에 흐르거든 녯 물이 이실소냐人傑(인걸)도 물과 ?도다 가고 아니 오노?리나) 靑山(청산)은 萬古靑(만고청)이오 流水(유수)난 晝夜流(주야유)라山靑靑(산청청) 水流流(수유유) 그지도 읍슬시고우리도 긋치치 마라 山水(산수) 갓치 하오리라가)는 황진이의 작품이고, 나)는 이라는 작품이다.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물의 부단함,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항상성이다. 우선 가)는 멈추지 않고 흘러가기에 예전의 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만 전체적인 의미를 염두에 둘 때 부단함보다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물의 이미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올바르다. 이 시조는 지난 사랑을 되돌아보면서 그 사랑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과 그로 인해 더욱 간절한 그리움이 녹아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나)에서의 청산은 변함없이 푸르며, 흐르는 물 또한 그치지 않는 형상을 보여준다. 산청(山靑)과 유수(流水)가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부단함의 의미를 넘어서서 언제나 변함없는 본래 모습을 유지한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알맞다. 따라서 ‘우리도 긋치지 마라’는 구절은 우리도된다. 그래서 효와 층이 함께 읽혀지는 작품이 되고, 항상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범위가 특정 영역에 머무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Ⅲ. 물의 정서와 심상의 표출앞장에서 시조에 나타난 물의 정서는 크게 보아 두 부류의 개념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하였다. 경계와 수신이 그것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작품에서 물은 내용상 주로 이별, 그리움 혹은 기다림, 사랑, 성욕에 대한 갈구 등의 제재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후자는 불변성, 부단함, 마음 다스림, 학문의 길 등의 제재로 사용되고 있다.그러나 실제 작품에서 이들 각자의 정서는 개별이지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항상성’에 있어서 그것은 사랑이 그러하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고, 군자의 덕이 그러하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실제 작품의 분석에 있어서는 물의‘내적 의미’와‘외적 형태’를 함께 고려하여 해석을 할 수밖에 없으며, 본고에서는 그 대표적인 심상으로‘경계’와 ‘수신’을 삼고 있음을 밝힌다.1. 경계(境界), 만남과 헤어짐의 마주침경계가 시로 들어오는 순간 모호한 개념이 된다. 상반된 심상들이 서로 맞부딪치게 하는 충돌점이 되면서, 어느 하나를 긍정하거나 혹은 부정하기도 한다. 만남을 마주하는 지점에서 경계는 사랑이 되고, 헤어짐을 마주하는 지점에서 그것은 이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마주침은 그 지점에서 끝나지 않고, 사랑이라면 불변하고자 하고, 이별이라면 기다림 끝에 다시 만나고자 하는 욕망 또는 갈구로 향한다. 그것이 시 속에 보이는 경계의 모습, 즉 물의 심상이다.가) 내 정(情)은 청산(靑山)이오 님의 정(情)은 녹수(綠水) l 로다녹수(綠水) 흘러 간들 청산(靑山)이야 변(變)? 손가녹수(綠水)도 청산(靑山) 못 니저 밤새도록 우러 녠다나) 간 밤에 우던 여흘 슬피 우러 지내여라이제야 각?니 님이 우러 보내도다져 물이 거스리 흐르고져 나도 우러 녜리라시조 가)는 나와 님을 청산(靑山)과 녹수(綠水)에 비유한다. 청산이 한 곳에 머물며 ‘정(靜)’의 이??이 이셔 유수(流水)를 ㅼ?루거늘무정(無情)? 뎌 유수(流水)는 낙화(洛花)를 보?거다낙화(洛花)야 ? 언제 너 홀로 보?더냐 나도 함ㅢ 흐르노라라) 늙지 안는 쳥샨이요 다치 안는 녹슈로다쳥샨이 연분 되고 녹슈가 근원 되면아마도 인간의 이별이란 말리 업셔이 두 작품에서 물은 지고한 사랑의 대상으로 표현되며 그것은 영원을 지향하는 완성된 모습이다. 물은 흘러가는 그 자체로 땅위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에 있어서는 경계가 된다. 그러나 그 흐르는 물에 ‘???’을 가진 꽃잎 하나 떨어짐으로써 그 경계는 이내 사라지게 되고, 이제는 이루어져야 할 두 존재 간의 합일만이 표현될 뿐이다.먼저 김학연의 시조인 다)에서 ‘흘러가는 물[流水]’에 주목해보자. 그저 흘러가기만 하는 물은 그저 무심해 보인다. 보는 이에 따라서 무심한 정도를 넘어 모든 것을 휩쓸어 가는 물결이 무정해 보이기까지 하다. 시조에서 그 물결은 낙화로 표현된 나의 마음마저 속절없이 휩쓸고 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님[流水]은 곧바로 사랑을 확인해 주는 모습이다. 휩쓸고 가는 것이 아닌 함께 흘러가고 있으며, 언제나 함께 하고 있었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이셔’, 다시 말해 사랑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님을 따르고자 ‘나[花]는 님[流水]에게 가서[落] 낙화(洛花)’되었고, 그 님은 언제나 불변하는 마음으로 ‘부단(不斷)’히 나와 함께 하고 있었음을 확인한 것이다.그러나 이세보의 시조인 라)에 보이는 물[綠水]은 영원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원천적 대상이다. 늙지도 않고 영원히 푸르러 청산(靑山)이고자 하며, 끝이 다하지도 않을 연수(緣水)이고자 하기 때문에 이보다 더한 사랑도 없을 것이다. 결국 서로 연분이 되고, 근원이 되면 그 사랑에 이별이란 불가능한 일임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경계란 있을 수 없다. 산이 푸르러 따르는 물이 녹수(綠水)가 되었을 것이니, 물은 이미 경계를 넘어 합일의 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경계가 헤어짐을 마주한 상황이라면 물의 심상은 좀 더 준다.
    인문/어학| 2020.11.02| 10페이지| 2,000원| 조회(432)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7
7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5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1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2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8:08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