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학창 시절 진로 시간에 자신이 희망하는 꿈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그때 저는 문득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주고 이를 통해 큰 성공을 할 수 있는 개발자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하지만 당시에는 수능을 앞둔 수험생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언젠가 개발자가 된다면 지금 나의 머릿속에 있는 참신한 생각들을 실현 해내는 멋진 개발자가 될 수 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담긴 막연한 상상만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1장-1]1. s/w를 개발하기 위해 정의하고 운용, 유지보수 등의 과정을 각 단계별로 나눈 것으로 소프트웨어 수명주기라고도 한다. 2. 소프트웨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연구된 학문3. 보헴이 제안한 모형으로 폭포수 모형과 프로토타입 모형의 장점에 위험 분석 기능을 추가한 모형이다. 점진적 모형이라고도 한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관리하고 최소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유지보수 과정이 필요없다. 4. 나선형 모형의 개발과정 (4단계) 서술5. 요구사항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일정 주기를 반복하면서 개발하는 모형. 고객과의 소통에 초점을 맞춘 방법론. 폭포수 모형과 대조적이며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사용된다. 스크럼, XP, 기능중심개발(FDD)이 대표적인 모형이다.6. 팀이 중심이 되어 개발의 효율성을 높이는 s/w 개발 기법7. 스크럼팀을 구성하는 구성원 3가지. 8. 스크럼 개발 프로세스를 순서대로 서술(5단계)<중 략>[1장-1 정답]1. 소프트웨어 생명주기2. 소프트웨어 공학(SE: Software Engineering)3. 나선형모형4. 계획수립-위험분석-개발 및 검증-고객평가5. 애자일 모형6. 스크럼7. (1) 제품책임자(PO:Product Owner)-백로그 작성주체 (2) 스크럼마스터(SM:Scrum Master)-가이드역할수행 (3) 개발팀(DT:Development Team)8. (1) 스프린트 계획 회의: 단기 일정을 수립하는 회의 (2) 스프린트: 실제 개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 (3) 일일 스크럼 회의: 15분동안 진행상황을 점검하는 회의로 남은 작업시간은 소멸차트에 표시 (4) 스프린트 검토 회의: 부분/전체 완성 제품을 참가자앞에서 테스팅 (5) 스프린트 회고: 개선할점을 확인하고 기록
1. 민속(民俗)이란- 민간의 풍속의 줄임말- folklore 번역한 개념. 영국의 민속학자인 톰스가 1846년 처음 사용folk(민간 또는 대중) + lore(지식, 지혜) - 민간의 지식: 민간에 전해지는 전통적인 신앙과 전설, 풍속, 생활양식, 관습, 종교 의례, 미신, 민요, 속담 등을 포괄하는 말로 사용할 것을 제안.- 1930년대 초 최남선, 송석하, 임석재 등 초기 민속학자들에 의해서 folklore와 같은 개념으로 민속이라는 용어 사용하기 시작- 우리 조상들이 어떤 삶의 양식을 영위하였는지 이해하는 일은 역사학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음. 역사학은 문헌 자료나 고고학적 유물 중심으로 학문 체계를 세웠으며 역사의 기록도 지배층의 산물이라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민족(다수)의 총체적인 생활양식이나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역사학 한계가 있음 -> 지배층(소수)의 산물이기 때문.- 민족의 다수 구성원인 민중들이 향유하는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서 민속학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음.- 역사학: 문헌사료 대상으로 하는 학문- 민속학: 구비(口碑)=언어 와 생활전승으로 전하는 무기록 전승의 자료를 주 대상으로 하는 학문.- 민속학은 사람들과 그들의 민속 문화(행위나 물질, 언어를 통해 전승된 문화) 즉 일상생활 방식과 표현 상징체계를 연구하는 학문.▶ 공통점과 차이점 알아두기2. 문화유산이란- 1993년 출간 이후 역사 유적과 유물 문화유산이라는 말로 표현되기 시작- 문화유산이 포함하는 내용은 매우 광범위함. 역사가 전개되어 온 과정의 소산물 역사적으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 역사적 유물도 모두 그 안에 포함3. 문화재- 국가 차원에서 법률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용어- 폭 넓은 문화유산 가운데 국가가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여 보호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 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것① 유형문화재: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 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과 이은 자연이 제공할 수 있는 온갖 먹을거리를 모으는 활동. 몇 달 동안 동굴주변에서 먹을 것을 구하다 보면 식량은 곧 바닥. 때문에 새로운 식량을 찾아 이동- 동굴이나 바위그늘에서 생활 ex. 제주 생수궤 구석기 바위그늘 유적: 맹수의 위협을 피하기에도 유리하고 집을 짓기 위해 수고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구석기인들에게 좋은 주거 환경 제공. 대개 경사진 산기슭에 있었기 때문에 입구 주위에 불을 피우거나 간단한 시설물만 만들어 놓아도 추위를 막거나 맹수들의 피해를 예방.그러나 이런 곳을 흔히 찾을 수는 없었을 것. 상당수의 구석기인들은 양지바른 곳이나 나무 위에 풀이나 나뭇가지로 거칠게 지은 막집을 만들어 거주. 구석기인들은 주기적인 이동생활을 했기 때문에 깊게 땅을 파고 튼튼하게 지은 움집보다는 간단한 막집 형태가 더 편리하였을 것.4. 구석기 연구사- 일제 강점기 : 1935년 함북 동관진 유적에서 동물 뼈 화석과 석기 2점이 발견되었음에도 일제의 식민사관 때문에 인정되지 않음- 광복 이후 : 함북 웅기 굴포리유적(1962)과 공주 석장리 유적(1964) 발굴되면서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가 존재했음을 인정. 1974년 교과서에서 구석기 시대 가르치기 시작- 1970년대 말 :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아슐리안 형 주먹도끼 발견, 중요! (1978) - 세계 고고학의 통설을 깨는 계기> 아슐리안 주먹도끼: 파리 인근에 있는 생 아슐 지방에서 처음 발견된 구석기 시대 뗀석기의 한 종류.주먹도끼는 인간이 만들어 낸 최초의 규격화 된 도구(이전에는 우연의 산물로 어쩌다가 깨드려서 나온거라면 주먹도끼는 사람이 구성을하고 만들어 냄). 찢고 자르고 찍고 찌르는 등 하나의 석기가 많은 기능을 하도록 고안됨. 이처럼 발달된 석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지능과 인지능력이 요구됨.그때까지만 해도 전기 구석기시대는 유럽 아프리카의 아슐리안 문화전통과 동아시아 지역의 찍개 문화전통으로 나누어진다고 보았음.아시아 일대의 구석기 유적에서는 기술적으로 앞선 주먹도끼가 사용되지 않 비교적 오랫동안 머물면서 생활할 수 있게 됨.3. 신석기인들의 주생활(움 집)- 농경을 하면서부터 사람들이 한 곳에서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 60센티미터 가량 땅을 파서 바닥을 다진 뒤에 나뭇가지나 갈대 등으로 지붕을 엮은 움집 등장.- 바닥은 원형을 이루는 것이 많았음. 지붕은 대개 원뿔형 고깔 지붕. 집안 가운데에는 돌이나 진흙으로 만든 화덕 설치.- 땅속 집은 차가운 바깥 기운을 막아주고 낮 동안 더워진 지열을 밤에 뿜어내 따뜻함. 또 여름에는 바깥보다 시원함. 냉난방을 조절할 줄 몰랐던 신석기인들에게 움집은 합리적인 주거 형태4. 신석기인들의 의생활- 신석기시대에는 섬유를 가공해 실을 잣고 옷감으로 쓰일 천을 짜는 방법이 발명됨.- 신석기시대에 그물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가늘고 긴 실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뜻함. 그물이나 낚싯줄의 재료로 널리 이용된 실은 신석기인에게 매우 요긴한 용품.- 평남 궁산 조개더미에서 경남 통영 상노대도 조개더미에서 뼈 바늘 출토. 신석기시대부터 바느질이 시작되었음을 말해줌- 신석기인이 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식물에 대한 지식이 많아졌기 때문한 곳에 오랫동안 정착생활 → 주위의 풀들 유심히 관찰 → 껍질이 질겨서 끈으로 사용 가능한 식물 발견 →그 껍질을 가늘게 쪼개면 가느다란 줄이 된다는 사실 발견 → 가는 끈들에 꼬임을 주어 서로 이어 가늘고 긴 실 발명 → 옷감을 짜서 옷을 만들어 입고 장신구로 치장- 신석기시대 실의 재료로 인간이 발견해 낸 식물은 삼. 삼의 속 껍질은 가느다란 섬유질로 되어 있어 질기고 튼튼함. 검은 겉껍질을 벗겨내고 하얀 속껍질을 가늘게 쪼개서 짧은 실 뭉치를 한 다발 만든 다음 이 섬유를 가락바퀴로 꼬아서 길게 연결하면 삼실임. 삼실로 옷감을 짜서 옷(삼베)을 만들어 입음- 가락바퀴 : 깨진 토기 조각을 갈아서 만들거나 흙을 빚어서 만드는데 가운데 구멍을 뚫음. 구멍에 축을 꽂아 가락바퀴가 회전하면 실의 원료가 꼬임과 동시에 감기면서 실을 뽑을 수 있음.- 풍부한 먹을거리와 안정된 풍부한 식량의 상징이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청동기시대에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가 행해진 유적으로 보았음.- 그러나 최근 지리학자, 지질학자, 식품영양학자들은 울산만의 지형이 신석기시대에는 고래사냥에 적합한 곳이었음에 주목하면서 반구대 암각화는 물고기를 잡는 어로와 뭍짐승을 사냥하는 수렵을 생활수단으로 삼았던 신석기인들의 유적이라는 학설을 제시. 따라서 암각화에 나오는 망보는 사람, 여러 명을 태운 배, 활, 물, 어책, 작살을 맞은 고래 등은 실제 고래사냥 장면들을 그린 것으로 보고 있음.- 동해안의 신석기시대 조개더미 중 함경도 청진과 부산 동삼동 유적에서 먹고 버린 고래뼈 수습- 동물은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지만 인간은 아주 소략하고 동작을 설명하는 정도만 보여줌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냥감이었음을 의미- 화살에 맞은 고래: 그림 속의 사냥감을 죽임으로써 실제 사냥에서 풍성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삼국시대의 민속과 문화유산Ⅰ. 삼국시대의 식생활1. 철제 농기구의 사용- 삼국시대 초기까지 돌이나 나무로 만든 농기구 많이 사용. 한반도 중남부 지역의 경우 3세기 후반 이후 철제 농기구 널리 보급. 돌이나 나무로 만든 농기구는 만들기는 쉬우나 효율성은 떨어짐.철기시대의 도래와 함께 내구성이 강한 철제 농기구 만들기 시작- 4~6세기 : 따비(사람) 대신 소나 말이 끄는 쟁기 널리 이용.- 소갈이법(우경-말 그대로 소가 가는 것)의 도입으로 노동력 절감.깊이갈이(심경-깊이 가는 것이 가능)를 하게 되면서 지력을 크게 증진시키고 농업생산력도 증대. 밭 표면의 흙과 깊은 곳의 흙을 뒤집어주는 작업. 토양 표면에 있는 잘 풍화된 흙과 토양 표면에 살던 미생물을 흙 속 깊이 넣어 주게 됨. 이때 공기가 토양 깊숙이 들어가 통기성이 좋게 되어 작물이 살기 좋은 부드러운 토양으로 만들어짐 (뒤지개, 따비)- 낫의 사용철기시대에 들어와 농경 면적이 확대되면서 한꺼번에 대량으로 수확할 수 있는 낫 도입. (반달돌칼과의 차이점. 대량생산, 시간절약, 반달돌칼은 열장자리에 다른 색의 천으로 띠처럼 선(?)을 돌렸음. 선 안에 다양한 장식과 무늬를 그려 넣었음.- 저고리와 띠 : 남녀 모두 엉덩이를 덮을 정도로 길었음. 너무 조이지도 않고 헐렁하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허리를 띠로 매어 입음. 띠는 여러 가지 색깔의 천과 가죽 혹은 금속으로 만들어 맴으로써 옷맵시를 아름답고 단정하게 꾸미는 효과.- 바지 : 원래는 북방계 민족의 옷으로 통이 좁았으나 활동에 자유로울 정도로 약간 헐렁하게 변용되어 남녀 모두 즐겨 입었음. 물방울무늬, 마름모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그려져 있어 개성과 멋 표현.- 치마 : 여성들이 바지 위에 덧입었던 치마는 잔주름을 넣어 활동하기 편하게 만들었음. 서민들은 별다른 기교를 더하지 않은 잔주름 치마를 걸쳤지만 고구려 수산리 고분 벽화에 보이듯 귀족부인들은 여러 가지 색 띠를 넣어 멋을 낸 색동주름치마를 입는 경우가 많았음.Ⅵ. 삼국시대의 축제와 놀이1. 축제1) 원시시대- 원시시대 사람들이 속해있는 공동체는 혈연을 매개로 구성. 따라서 공동의 조상신을 숭배하며 일체감을 형성했다.혈통상의 동질성 못지않게 이들을 묶어 준 것이 해마다 반복되면서 주기적으로 열리는 집단축제이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공동체 내의 모든 일을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결정. 이들이 참여하는 정치적 집회는 일정한 의식을 수반하였고 이 의식은 자연스럽게 축제로 이어졌음2) 청동기 시대 이후- 지배계급과 피지배 계급이 나뉘는 계급 발생.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지닌 이들이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일한 운명체라는 의식을 공유하는 것. 여기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것이 축제.- 집단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악과 춤,술 그러나 당시 축제는 단순히 먹고 노는 자리 만은 아님. 축제에는 항상 제사의식이 수반 되었음. 축제는 신에게 제사 지내는 과정을 통해 진행. 그 과정에서 음주와 가무가 집단적으로 시행. 따라서 축제에서 음주가무를 즐긴 것도 신과의 상관관계에서 나온 것.신을 맞이하고, 신을 즐겁게 하고
Report이응노의 문자추상과목 | 한국 미술 문화의 이해교수 |학과 |학번 |이름 |목차1. 문자, 문양, 패턴 이응노의 문자추상2. 문자 추상의 시작3. 문자와 도안4. 판화와 문자5. 군상6. 결론- 미술관: 이응노 미술관- 전시명: 문자, 문양, 패턴 이응노의 문자추상- 감상일:1. 문자, 문양, 패턴 이응노의 문자추상이응노는 한자를 주제로 “문자추상”이라는 장르를 개척해냈다. 이응노는 한자 자체가 자연의 형상을 추상화한 문자라는 점에 주목하여 한자자체를 동양적인 추상이라 생각하였고 이를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 여러 기법을 통해 추상적으로 표현해냈다. 시대별 양식 변화에 따라 창작의 재료도 여러 가지가 사용되었다. 대부분 문자추상은 회화를 중심으로 하였지만 판화, 조각, 가구, 타피스트리 문양으로도 활용되었다. 문자, 문양, 패턴, 이응노의 문자추상 전시는 이응노의 여러 문자 추상을 소개한다.2. 문자 추상의 시작1960년대 문자추상은 아교나 한지 등의 재료를 통해 붓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그림 표면을 구기거나 긁는 등의 기법을 선보였다. 한국적인 재료인 한지와 먹을 활용하여 전통적인 미감의 추상화를 창작하였다. 여러 얼룩과 불규칙한 획, 점들이 자유롭게 흩어져 있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문자 추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추상 미술답게 형태는 모호하고 매우 추상적이었다. 정확히 무엇을 그리고자 하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문자를 강하고 굵게 추상화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어두운 색을 주로 사용하여 심오한 분위기를 내뿜었다.1967년 이응노는 동백림 사건에 연관되어 옥살이를 하였다. 때문에 수감중에 쉽게 얻을 수 있는 밥풀과 간장을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어냈다. 잘 흡수되지 않는 특성을 가진 간장을 안료를 삼아 한지에 먹으로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찍어 바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옥살이에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라면 가리지 않고 사용하여 제작한 노력을 보아 그림에 대한 이응노의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3. 문자와 도안1970년대에 이응노는 문자를 입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형태의 추상화를 제작한다. 그 중 조각은 아주 적합한 형태였다. 또한 천이나 도자, 접시를 문자 추상의 도안으로 사용하여 신선한 미감을 보여주었다.천을 도안으로 사용하였다. 그 위에 문자 구조를 겹쳐 올려 어딘가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이 작품은 작품명 그대로 천위에 솜을 떼어 형상을 만든 후 콜라주 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때가 탄듯한 천위의 솜 형태의 문자들을 왜인지 입체적이며 단정하고 순수한 느낌을 주면서도 어딘가 낡은 듯하며 평면으로 빨려들려갈 것 같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4. 판화와 문자이응노는 판화를 이용한 문자추상 소품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문자 패턴을 판에 새겨 판화처럼 찍거나 탁본처럼 뜨기도 하였다.판화를 이용한 문자추상 작품으로 붉은색, 노란색을 사용하여 강렬하고 전통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붉은색은 인주를 떠올리게 하여 어딘지 모르게 더 동양적인 느낌을 자아낸다.5. 군상이응노는 그동안의 여러 형태의 문자추상을 실험적으로 제작하였고 말년에 들어서는 인물추상을 타계하기 전까지 제작하였는데 바로 군상이다. 군상은 인간처럼 또는 문자처럼 보이는 인간들이 자유로운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팔을 들고 자유롭게 환호하는 모습에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1980년대 초반에 제작된 군상은 당시 반핵 운동의 시위대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시위대가 떠오르는 듯 하다. 이러한 인물형상은 1980년대 한국의 근대역사의 한부분을 표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Report풍속화과목 |교수 |학과 |학번 |이름 |목차1. 풍속화 p.21) 풍속화2) 조선 후기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른 풍속화 형성과 전개양상2. 단원 김홍도 p.2~41) 김홍도2) 단원 풍속 화첩(1) 씨름(2) 무동(3) 벼타작(4) 빨래터, 우물가3. 혜원 신윤복 p.5~71) 신윤복2) 혜원전신첩(1) 월하정인(2) 단오풍정(3) 주유청강(4) 청금상련4. 결론 p.71. 풍속화1) 풍속화풍속화란 당시 조선 사회상을 그림을 통해 기록한 것을 말한다. 초창기에는 속된 그림이라는 뜻인 “속화”라고 불리다가 풍속화로 불리게 되었다. 이전의 풍속화는 처음부터 민간의 풍속, 일상을 중심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었다. 경직도처럼 임금의 정책적인 필요로 인해 타율적으로 제작되었을 뿐이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풍속화는 대부분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담아내게 되었다. 때문에 풍속화를 통해 당시 생활상을 예측이 가능하다. 풍속화는 화려한 색채와 대담한 구도를 사용하여 풍속화가 가지고 있는 해학적이고 익살적이고 소박하지만 풍자가 있는 내용들을 표현한다. 풍속화를 대표하는 작가들은 김홍도, 신윤복 등이 있다. 풍속화는 한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에 대한 표현이고 근대 시민 정신을 나타낸다.2) 조선 후기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른 풍속화 형성과 전개 양상조선 후기에는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쟁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때문에 이를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사변이 아닌 현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일상의 소중함을 재인식하는 분위기가 문화 전반에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서민 지주들은 초기 상업화 과정에서 경제력을 얻게 되고 민중의식이 한 걸음 성장하면서 역시 그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고자 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로 인해 조선 후기 서민 지주들은 전통 사대부와는 다른 취향을 가지고 풍속화의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2. 단원 김홍도1) 김홍도김홍도는 경기도 안산에서 출생하였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 재능을 발전시켜 29세에 영조와 세자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로 발탁된다. 이후 김홍도는 대가로 인정받아 이름을 날리게 되고 정조는 혼란스러운 조선 후기 백성들을 교화하고자 서민들의 일상을 그리게 하였다. 때문에 김홍도의 작품은 서민들의 농촌 생활상을 중심으로 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김홍도는 생애 이름을 떨치며 여러 작품들을 남겼지만 노년은 병마와 싸우며 가난하고 쓸쓸하게 숨을 거두게 된다. 김홍도가 제작한 풍속화를 살펴보면 배경 없이 인물에 집중한다는 특징이 있다. 풍속화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기록적인 성격을 가지는데 김홍도는 이런 특성들에 자신만의 창의성, 개성을 담아 좀 더 활달하고 역동적으로 표현해냈다. 또한 불공평한 신분 계층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도 몰락한 양반들을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2) 단원픙속화첩단원풍속화첩은 김홍도의 풍속화 작품 중 가장 최고작으로 평가되는 작품 모음집이다. 총 25쪽으로 이루어져 씨름, 무동, 서당, 우물가, 빨래터, 주막, 자리 짜기, 벼 타작, 대장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주제를 보면 일반 백성들의 일상을 주 소재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단원풍속화첩은 서민들의 일상을 비롯하여 풍자적, 해학적 미감과 양반에 대한 비판이나 세태를 담고 있다.(1) 씨름씨름은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놀이이면서 신분을 초월한 전 국민의 민속놀이다. 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비록 신분제 사회였어도 놀이를 할 때는 신분을 떠나 그에 맞는 옷차림이 착용되어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가 같이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의 구도 살펴보면 작은 구도에 여러 인물들이 계획되어 배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엑스자형으로 인물들을 배치하여 씨름을 보다 역동적이고 활달하게 표현하였다. 구도는 위에서 밑으로 내려다보는 관찰하는 구도이다. 또한 원형의 통일성 있는 구도에서 쉴 구멍인 틈을 주어 변화를 주었다.(2) 무동의 연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닮아있는 작품이다.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는 무동의 춤사위를 느낄 수 있다. 과 마찬가지로 여러 인물들이 통일성 있게 배치되었고 틈을 주어 무동의 춤사위를 역동적이고 활달하게 표현되었다. 씨름과 많이 닮아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그림의 주인공인 무동이 그림의 정중앙이 아닌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도는 그림의 단조로움을 해소하고 긴장감을 연출하는 구성 방식이 될 수 있으며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시선의 이동까지 생각한 김홍도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3) 벼타작조선시대 남성의 노동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신분 계층과 세태를 풍자한다. 신분 간의 차별과 불평등이 보편화된 사회의 단면을 비판하는 메시지가 내재되어 있다.(4) 조선시대 여성의 노동에서는 여자들이 옷을 걷어매고 빨래를 하고 바위 뒤에는 이들을 훔쳐보는 한량의 모습이 보인다. 에서는 남자는 겉옷을 풀어헤치고 여자는 짧은 저고리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아 남녀 간의 야시시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 당시 빨래터나 우물가는 여인들이 물을 받는 장소이고 빨래를 하는 노동 장소 외에 정보를 교환하는 장이기도 하였다. 당시 여성들은 집 밖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당시의 유교적 전통사회 속에서 이곳에서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으며 남녀의 연애도 가능하게 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3. 혜원 신윤복1) 신윤복신윤복이 제작한 풍속화를 보면 김홍도와 달리 배경과 인물 모두에 집중하여 세밀하게 묘사한다는 특징이 있다. 주제 또한 김홍도와 달리 양반층, 남녀 간의 사랑, 향락적인 생활을 풍자적이고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것이 신윤복이다. 신윤복의 풍속화는 선보다는 색채가 눈에 띄는 원색적인 색으로 감각적인 화면을 만들어낸다. 부드러운 담채 바탕에 빨강, 노랑, 파랑의 산뜻하고 또렷한 원색을 즐겨 사용하고 여리고 유연한 선을 통해 섬세한 주변 묘사로 주제를 부각한다. 때문에 작품 속에서 당시 계절, 시간대 또한 짐작이 가능하다. 신윤복의 작품은 풍속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인 시대적인 것들을 반영하고 있다. 기록적이면서 사실적이라 당시 사람들의 음식문화, 술 문화, 의복 문화 등을 짐작이 가능하다. 당시의 가장 현실적인 서민을 주제로 하다 보니 생업, 삻의 희로애락, 남녀 간 성과 애정, 당시의 풍류와 멋을 실감 나게 다루고 있다. 신윤복이 양반층의 폐쇄적인 체면 문화에서 벗어나 제도권인 도화서에서 쫓겨나면서 더욱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소재에 몰입할 수 있게 된 것은 조선 후기 서민 지주들이 경제력을 얻게 되어 전통 사대부와는 다른 취향을 가지고 풍속화의 후원자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2) 혜원전신첩혜원풍속화첩은 ‘월하정인’, ‘봄나들’, ‘단오풍정’, ‘뱃놀이’ 등 신윤복의 풍속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들로 모두 30여 점으로 구성된다.(1) 월하정인달은 밝아 함경인데라는 문구를 모아 시간대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엔 통금이 있었는데 통금을 어기고 남녀 둘이 은밀히 만나고 있는 남녀 간의 향락적인 모습을 잘 담아냈다.(2) 단오풍정은 단옷날 청포에 몸을 씻고 그네 타는 여인네들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왼쪽의 몸을 씻고 있는 네 명의 여인들이다. 이는 한국 회화사에서 첫 누드 회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두 명의 어린 스님이 훔쳐보고 있다. 풍자 대상으로 양반과 더불어 스님이 추가되었다. 이는 불교계의 타락상을 풍자한 것이다. 또한 그네를 타는 여인들의 치마폭과 저고리를 보면 노랑, 빨강, 파랑 등 화려한 원색을 즐겨 사용한 것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