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와 교육-우리는 ‘교육학교과 논리 및 논술’을 수강하면서, 혹은 다른 강의를 들으면서 교재를 보거나 교수님들께서 말과 글로 설명해 주시는 것을 들으며 교육활동을 한다. 이처럼 교육활동은 문자를 기반으로 하고, 교재나 글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이러한 문자와 교육활동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책의 저자 이홍우는 『교육의 목적과 난점』의 「제4장 문자와 교육」에서 교육과 문자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교육의 매체로서 문자의 성격과 그것이 교육에 제시하는 가능성과 난점에 대해 살펴보고, 이에 대한 생각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우리는 교재나 글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교육의 목적과 난점』의 장자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보면 문자를 읽는 것이 곧 지식을 습득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장자의 「윤편」에서 수레바퀴를 깎는 노인은 이러한 기술을 타인에게 말로써 표현해 낼 수 없어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것처럼 옛 성현들의 말씀을 제대로 전달 할 수 없고 글로 남겨진 것들은 깨달음의 찌꺼기라고 말한다. 노인은 손에 익고 마음에 응하는 것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찌꺼기를 통하여 성현의 깨달음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짐작할 수 있도록 하는 단서로서 문자를 이야기한다. 글을 읽는 독자들은 문자를 통해 저자가 의도하는 것을 완벽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저자가 의도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문자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이와 같이 문자는 교육활동에 있어 한계점과 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장자의 「윤편」에서 찌꺼기를 통하여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해야한다는 문자의 한계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드로스」에서도 문자의 한계점과 가능성이 명백히 드러난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글은 회상시켜주는 일을 할뿐이며 문자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글은 누군가에 의해 산출되면 그 순간부터 공동의 소유물로 될 수 있고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기에 원래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잘 못 사용하더라고 항의할 수 없다며 문자의 위험을 말하며 문자의 한계점에 대해 말한다. 그는 이러한 한계점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이 말을 할 때 문자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로 사용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한다.필자가 『교육의 목적과 난점』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여 작성한 이 글이 바로 브루너가 주장하는 언어의 내면화를 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교육활동을 하며 교육의 매체로서 문자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의 매체로서 문자를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의 해보아야할 것이다. 우리는 앞서 장자의 이야기에서 말한 찌꺼기의 상태에만 머무르며 깨달음에 도달하지 않고 지식을 습득했다고 생각하며 교육의 매체로서 문자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있지는 않았는가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교육의 목적과 난점』의 「제4장 문자와 교육」에서는 앞으로 교육활동을 해 나아갈 미래의 교육자들에게 언어주의 방법의 교육의 위험성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교육은 문자를 기반으로 하지만 이러한 문자로 인하여 실재가 아닌 외양만을 가지게 된다. 교육의 내용을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교과가 요구하는 안목으로 현상을 바라 볼 수 있는 힘을 가져야한다. 이를 위해서 언어를 우리 생활 속의 실재적인 문제의 상황과 연관 지어 가르쳐야할 것이다. 이와 같은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문자를 언어를 근원과 연관 지어 교육활동을 하여 공허한 언어주의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할 것이다.「소크라테스」의 이야기에서 소크라테스는 문자는 누구에 의해선가 일단 산출되면 그 순간부터 공동의 소유물로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문자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말은 ‘살아있는 사람’에 의해서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사람이 말을 할 때 문자 그대로를 읽는 것이 아닌 ‘자신의 말’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문자의 위험’이라는 것은 입으로 하는 말까지도 포함하는 ‘언어의 위험’을 가리킨다. 시험도 언어의 형태를 통해서만 측정할 수 있으므로 학생이 산출하는 그 언어가 과연 학생 자신의 지혜를 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공동의 소유물로 굴러다니는 것을 학생이 되받아내어 놓은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이홍우 「교육의 목적과 난점」 pp(8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