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틴 선생의 문학교육‘죽은 시인의 사회’는 우리에게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를 보지 못했더라도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기라는 뜻의 라틴어는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영화‘죽은 시인의 사회’는 명작으로 평가 받고 있고 특히 교사가 꿈인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하는 영화지만 나는 비교적 늦게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배우인 로빈 윌리엄스가 키틴 선생님 역할을 하여 더욱 몰입하여 보았다. 특히, 마지막에 떠나는 키틴 선생님에 대한 지지로 학생들이 하나 둘 책상위로 올라가는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참 된 국어교사가 어떤 교사인지에 대해 아직 고민 하고 있는 나에게 키틴 선생님은 하나의 롤 모델이 되었다.입시 위주 교육을 지향 하고, 교육 방침이 열심히 헌신하여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인 웰튼 아카데미. 이곳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치닫고 있는 공교육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책이 처음 출판된 지 근 30년이 되었지만 아직 이러한 현실은 변한 것이 없고 오히려 더욱 심화 되고 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공자님의 말씀처럼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하지만 오늘날의 공교육은 이러한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학교는 상품이 되어 좋은 대학교에 몇 명이 진학 했는지 홍보하고 소비자(학부모)의 needs를 충족시키고자 노력한다. 이는‘죽은 시인의 사회’p. 9쪽에 나와있는 노란교장의 연설과 맞닿아 있다.…그리고 그중 75퍼센트의 학생이,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진학한 것이올시다!…이런 업적은 우리학교의 교육방침인 열심히 헌신한 것에 대한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부모님들이 소중한 아이들을 본교에 입학시키는 이유이고, 또한 우리학교가 미국 최고의 대학진학 예비교인 이유이기도 한 것입니다.죽은 시인의 사회, p.9꿈을 품고 학교에 처음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하는 연설이 아니라 교장 선생님은 학부모들에게 대학 진학률을 뽐내며 최고의 학교라고 이야기한다. 열띤 눈빛으로 연설을 듣는 학부모와는 대조적으로 학생들은 ‘마치 암기한 것처럼’억양이 없는 목소리로 교장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한다. 또한 학교 안에서 선생님들은 무뚝뚝하고 엄격하게 학생들을 대하고 학생들은 규율에 따라 군인처럼 소리를 맞추어 대답한다. 철저한 경제성의 원리에 따라 돌아가는 학교가 좋은 학교일까? 최소한 교육에서 만큼은 자본주의 논리를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진정한 배움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웰튼 아카데미라는 시멘트 바닥에서 이를 배척하는 꽃 하나가 피는데 바로 키틴 선생이다. 키틴 선생은 첫 수업부터 웰튼 아카데미의 전형적인 수업과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학생들을 당황 시켰다. 키팅 선생님은 연극조의 태도로 책상 위에 펄쩍 뛰어 올라 학생들과 마주 앉아서 열기 담긴 어조로 시를 암송하고, 교실을 벗어나 기념전시실로 갔다. 기념 전시실에서 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카르페 디엠을 알려준다. 먼저, 키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을지 상상하게 하고 에 있는 사진들을 통해서 카르페 디엠이라는 가르침을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시의 언어는 비유와 상징, 함축의 특성을 지니며 이미지가 중시된다. 언어의 수수께끼를 내는 자와 푸는 자처럼, 시인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비유와 상징, 함축의 언어를 찾는 자이고 독자는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것이 의미하고 드러내는 원관념 및 대상을 알아맞히는 자 또는 그럴 듯하게 해석해내는 자이다. 문학 작품은 작가의 상상력과 독자의 상상력이 만나는 중간 매체이고 개인의 상상력은 각자의 스키마와 상황에 따라 그 방향과 폭이 다르게 발휘된다고 한다. 교사의 역할은 시를 감상 할 때 시적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 시인이 작품을 쓰면서 발휘했던 상상의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키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직접 이 시를 읽게 하였고, 질문을 통해서 시인의 상상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시인의 상상의 세계를 이해한 후에는 시에 담긴 의미를 독자의 상상력으로 이해해야 한다. 키틴 선생님은 카르페 디엠을 알려주기 위해 보조 도구로써 벽에 붙여진 사진 속 젊은이 들을 응시하게 하고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학생들은 사진에 빨려든 채 깊은 생각에 잠기고 ‘이상함’을 느끼게 된다.키틴 선생님의 문학 교육 방식은 다른 수업 때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키틴 선생은 학생들로 하여금 이라는 책을 읽게 하고 시의 위대함의 그래프를 찢어 버린다. 키팅은 기이한 비명을 지르고 소리를 지르면서 휴지통에 교과서에서 위 부분이 나온 페이지를 찢어서 버리게 한다. 키팅은 이를‘전쟁’이라고 표현하면서 학생들의 혼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였다. 또한 학생들이 자신에 집중하고 자신의 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교육을 하고 있다. 학생들 전원이 나름의 시를 써서 수업시간에 낭송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소리를 찾을 수 있게 하였다.7차 교육과정에서는‘학습자 중심 교수-학습 원리’를 강조하는데, 작가 중심의 고정된 문학 이해에서 벗어나 독자의 창조적 재해석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 같은 수용 이론은 독자들에게 보다 적극적이고 자유롭게 시에 다가갈 수 있게 하여 능동적인 독자를 양산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한다. 키틴 선생님의 시 창작 수업은 문학에 대한 지식을 학습했던 제 4차 교육 과정기나 문학 작품의 이해와 감상을 목표로 했던 제5차와 제6차의 교육 과정기와는 다르게 문학 작품의 수용과 창작을 문학 교육의 목표로 하는 제 7차 교육과정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이는 여러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먼저 어려운 말이나 정교하고 심오한 이론을 듣는 것을 싫어하는 학습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자신이 작가의 입장이 되고 표현해 보는 것은 작품 이해를 심화하고 모방을 통해 창조성을 지니게 되는 출구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문학 교육의 본질을 감상과 수용에 두었을 때 오는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독자 스스로 시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키틴 선생님의 수업에서 조금 아쉬웠던 점은 수업의 목표가 무엇이고 키틴 선생님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아무런 주제도 없고, 도움도 없이 시를 지어오는 것은 시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학생들에게 무리한 요구이고 학습 효과도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면 시적 상상력의 기반이 되는 독창성의 훈련을 위해서 일단 짧고 쉬운 단행의 정의시(A는 B이다)를 짓는 활동을 할 것이다. 그 다음 시어 채워 넣기 활동을 통해서 작가의 상상력이 작품 안에 어떻게 작동하였는지 유추하게 할 것이다. 그 후 부분 창작하기를 통해서 시를 변형해보는 활동을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제를 주어서 동일한 주제로 시를 쓰게 한 후에서야 자유 주제로 시를 쓰게 할 것이다.
와 이상적인 문학창작교육 방법는 시에 관한 이야기다. ‘시란 무엇인가?’ 에 대한 추상적이고 어려운 질문에 대해 영화로 명쾌하게 답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배경은 이탈리아의 작은 섬마을 칼로 디소토이다. 영화에는 일상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어부, 주점 아낙, 노동자 등 특별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마리오 루폴로도 우편 배달부이다. 영화는 마리오 루폴로가 파블로 네루다에게 우편을 배달하는 일을 맡게 되면서 시작된다. 파블로 네루다를 만나면서 마리오 루폴로는 시를 느끼게 되고 섬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네루다를 만나기 전 마리오는 무지했다. 아름다운 섬에 살고 있으면서도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고 주체적인 자신의 생각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네루다를 만나면서 점차 변화해 간다. 단순한 질문과 생각만 갖고 있던 백지 같은 마리오는 세상에 대한 시선의 지평을 넓혀간다. 외딴 섬에서 사랑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랑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자신을 둘러싼 주변이 어떤 곳인지 조차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는 마리오. 그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바보 같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와 같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개인은 소외되고 반복되는 일상에 갇히게 된다. 함께 서로 돕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생각을 발달 시켜야 하는 학창시절에 우리는 남을 밟고 위로 올라가는 법을 먼저 배운다. 알게 모르게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공부가 곧 전부라는 의식을 심어주고, 학생들은 그것을 배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엘리트 의식에 빠져 자신은 공부 못하는 애들과는 다르게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패배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온전한 개성을 실현하지 못하고 자아는 억압받는다. 사회에 나와서 대학교에서도 학생들은 취업을 위해서 남들보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노력’을 강요받고 취업을 하면 성공한 사람, 취업을 오래도록 못하면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히게 된다. 취업을 하고 나서도 자신의 생각은 무시 받고 조직의 생활을 강요받으며 회사의 논리, 자본주의의 논리에 부합되는 사람이 되기를 강요받는다. 가장 중요한 자신의 삶의 문제와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은 어느 순간 뒷전이 된다. 또한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당장 자신의 안위와 이익만을 생각하게 된다. “돈. 당신은 돈에 대한 생각 밖에 없어요?” 라는 흥분한 마리오의 말은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꼬집고 있다. 우리는 어느 순간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잃고 ‘돈’,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있지 않나 고민해 봐야할 것이다. 이는 비단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개인을 둘러싼 사회의 문제이며 자본의 문제이다.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국어교사가 되기로 했기에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은 항상 마음속에 담겨있다. 는 그러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가르침을 전해준다. 마리오 루폴로와 파블로 네루다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면 둘 사이의 관계는 친구(amigo)라고 영화에서 자주 언급된다. 분명 마리오 루폴로는 파블로 네루다를 존경하지만 자신의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말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위대한 시인이고 마리오 루폴로보다 아는 것도 훨씬 많기 때문에 마리오 루폴로에게 시에 대해 알려주는 입장이지만 그는 마리오 루폴로를 친구라고 표현한다.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마리오 루폴로는 학생이고 파블로 네루다는 선생님이다. 교육의 최종적인 목적은 학생을 변화시키고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파블로 네루다는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던 학생(마리오)을 시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자신만의 생각을 갖게 해준 것이다. 선생님(네루다)은 마리오에게 시를 동등한 위치에서 알려준다. 마리오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존중된 인격체로 보고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을 친구로 생각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시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인도자 역할을 해준다. 학생은 선생님을 존경하는 동시에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시를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인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문학교육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학생과 동등한 위치에서 학생들에게 단순히 지식의 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 그러면서 자신의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삶과 자신의 문제에 적용하는 것.하지만 나는 이것이 말 그대로 이상적인 문학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학생과 일대일로 알려주는 선생님이 아니기 때문에 수십, 수백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이러한 교육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한 학생들의 인권이 점점 보장 받게 되면서 학생들은 선생님을 친구 보다는 꼰대라고 생각하고 무시한다. 모든 학생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고 학생들의 입장에서 선생님은 자신을 통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시라는 방법을 통해서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는 것은 자칫 학생들에게 무시 받는 선생님이 될 수 도 있다. 이상적인 문학 교육은 이상적인 교육 환경, 이상적인 사회 구조, 이상적인 학생이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상적인 문학교육은 이상적인 선생님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키틴선생님이나 네루다처럼 확고한 철학이 있고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네루다는 마리오에게 위대한 시인이자 선생님, 친구였다. 그에게 마리오는 큰 영향을 받아 자신의 삶이 통째로 바뀌었다. 네루다를 만나지 않았다면 베아트리체 루소의 미소가 나비의 날개짓, 장미, 솟아오르는 물줄기, 땅에서 움트는 새싹이라는 것은 평생 알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사회가 어떻게 잘못되었고 자신을 포함한 노동자들이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평범한 어부로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네루다를 만난 후 마리오는 정치인에게 속지 않고 돈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결국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쓰는 헌정시를 낭독하다가 죽게 된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몰아갈 정도로 ‘생각’의 차이는 행동의 차이를 만들고 행동의 차이는 삶을 변화시킨다. 60억의 사람이 있다는 것은 60억의 생각이 있고 60억명이 느끼는 60억개의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급진 이슬람 주의 사람이 느끼는 세상도 있을 것이고, 사이비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세상도 있을 것이다.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잘못되었다는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그들에게는 없기에 자신의 세상이 옳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쉽게 하는 것이다.이처럼 생각은 매우 중요하고 개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한 번 잘못된 생각을 가진다면 이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분명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준 영향은 긍정적인 것이라 볼 수 있으나 그것 또한 감독의 의도이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그러한 의미를 부여한 것일 수 도 있다. 마리오 개인의 삶을 보면 네루다를 알기 전과 후로 나뉘게 되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도 결혼하고 자신이 쓴 시를 낭독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 일로 인해 죽게 된다. 또한 베아트리체의 생각은 무시하고 자신의 아이의 이름은 무조건 파블로 네루다의 이름을 따 파블리토라는 이름으로 짓자고 한다. 또한 네루다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적인 인식과 의견을 무시하게 된다. 섬사람들을 무지하다고 비판하고 칠레로 가서 사회주의와 호흡하면서 아이에게는 올바른 교육을 시키자고 베아트리체에게 말한다. 이는 베아트리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마리오가 원하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자신의 아내와 자신의 아이에게 강요하려고 하는 것이다.생각의 강요는 곧 폭력이다. 그것이 아무리 옳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이고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오늘 옳은 일이 내일 그른 일 이 될 수 도 있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삶과 세상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지 남이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리오는 자신의 세상이 옳다고 믿고 파블로 네루다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결국 단편적인 지식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마리오는 자신은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며 위대한 시를 쓴 것도 아니기 때문에 네루다가 자신을 기억해 주지 않고,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상할 일이 아니라고 자연스레 말한다. 마리오는 자신의 삶이 변화된 만큼 파블로 네루다를 점점 존경하고 그의 삶을 따라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에 물들게 되고 파블로 네루다에게 헌정시도 쓴다. 하지만 이것이 타자, 파블로 네루다에 의한 것임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파블로 네루다가 마리오의 삶에 깊이 관여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잠시 망명을 온 것뿐이고 그를 스쳐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중 한명에 불과하겠지만 외딴 섬에 사는 마리오에게 그는 엄청난 존재인 것이다. 실제로 파블로 네루다는 바쁘다는 이유로 마리오에게 한 통의 편지도 보내지 않는다. 보낸 것이라고는 비서를 통해서 자신의 물품을 가져와 달라는 편지뿐이다. 네루다에게 편지가 오자 기뻐서 환희하는 것을 억지로 감추고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 하는 마리오의 모습과 실망감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네루다의 편을 대변하는 마리오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너무 안쓰럽다. 그는 네루다의 바람처럼 자신의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고 그의 삶속에 깊이 네루다가 삶의 지침으로 서있다. 자신의 아내나 가정, 현실보다는 네루다의 가르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네루다가 섬을 떠난 이후 마리오는 뚜렷한 자신의 일을 찾지 못한다. 시를 쓰는 것도 아니고 명확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내의 일을 도와 가끔 주방에서 일을 한다. 쉬면서 섬의 아름다움을 파블로 네루다에게 전하기 위해 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채집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다.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허생전은 연암 박지원의 작품이다. 허생전을 처음 접한 것은 아마 고등학교 때로 기억한다. 내 기억 속의 허생전은 초야에 묻혀 사는 ‘허생’이라는 선비가 큰 돈을 꾸어 지혜를 발휘해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다시 모두 버리고 초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는 작품이었는데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을 통해 허생전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허생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 수 있었다.작품은 일기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점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학교에서 있었던 일 중 ‘나’가 의미 있게 느낀 대화나 느낀 점 등을 서술하고 주인공의 내면을 알 수 있어서 작품을 읽는 다는 생각보다는 정말 글 잘 쓰는 학생의 일기를 읽는 듯한 기분이 종종 들었다. 또한 주인공의 생각들을 적고 자신의 심리를 묘사한 부분에서 공감이 정말 많이 돼서 어떤 부분에서는 내 모습을 보는 듯 감정 이입해서 느껴졌다. 또한 작품은 단순히 인물들의 대화, 주인공의 느낀 점만 나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의 깊은 내면까지 들어가서 스스로를 어떻게 느끼는 지, 솔직하게 표현하고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정작 행동에는 잘 나서지 못하는 모습에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서 보였다.이 작품을 읽으면서 주목했던 점은 교사의 교육 방식이었다. 왜냐 선생님은 수업 중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면서 답을 찾아가게 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 이런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어서 생동감 있는 실제 교육 현장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허생전 수업을 같이 듣는 것처럼 선생님의 질문에 속으로 답변하면서 읽었다.선생님은 허생전 수업을 하기 전 학생들에게 허생전을 읽고 줄거리를 잡아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보통 줄거리 이해하기나 줄거리 정리해오기라는 말을 쓰기 때문에 줄거리를 잡아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와 닿지가 않았다. 하지만 ‘나’와 윤수의 대화, 수업 내용을 통해 무슨 의미인 지 알 수 있었다. 수업 전 윤수가 쭈뼛대며 ‘나’에게 허생전 숙제를 봐달라고 한다. 윤수가 쓴 숙제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서 허생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 버렸다.’라고 썼다. 일반적인 줄거리 이해나 줄거리 정리를 넘어서서 윤수만의 해석이 드러난 부분이다. 윤수는 허생을 볼 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바라보고, 그러한 감정을 솔직하게 글로 표현한 것이다. 또한 윤수의 이 문장에 대해 ‘나’는 엉뚱하면서도 그럴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허생전의 내용을 들어서 윤수의 문장을 비판하고 이유를 대야만 말이 된다는 피드백을 해준다. ‘나’와 윤수는 허생전을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내용만 본 것이 아니라 작품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작품을 나름대로 자기 관점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이는 아마도 왜냐 선생님의 문학 교육 방식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작품을 대하는 태도나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여러번의 수업을 받고 나서 변화 된 것으로 생각된다.7월 9일 허생전을 배우는 수업 시간,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고 ‘나’는 말하고 있다. 그만큼 수업에 몰입하였다는 뜻이다. 수업이 시작하고 학생들은 제각기 다른 허생전을 이야기한다. 같은 작품이지만 제각기 다른 허생전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봤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왜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수업 중에 계속해서 질문을 한다. ‘왜 과일과 말총을 죄다 사 모았을까?’, ‘돈을 벌기 위해섭니다.’,‘그럼, 돈은 왜 벌었나요?’,‘허생은 무슨 일을 하건 돈이 있어야 된다는 걸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십만냥을 바다에다 왜 버렸나요?’, ‘오십만 냥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아내를 위해서는 돈을 남겨두지 않았나요?’선생님의 질문과 학생들의 답변을 보면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생각난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들이 무지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산파술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결국 진리로 다가가기 위함이었다. ‘왜?’라는 질문은 계속 할수록 추상적인 본질만 남기고 껍데기들은 다 사라지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학생들은 ‘왜?’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차차 허생전의 본질을 깨닫고 허생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아간다. 답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틀리는 경우도 많고 학생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한다. ‘나’도 일기에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허생 읽기나 나 자신 읽기나 갈피를 못잡겠다.’‘왜?’라는 질문은 이렇게 어려운 것이면서도 작품을 깊이 이해하는데 좋은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학생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고 본질에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은 교사의 역량에 달려있다. 왜냐 선생은 학생들에게 그저 꼬투리 잡는 식의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허생전에서 본질을 파악하려 했고,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면서도 잘못된 점을 말 해주었다. 학생들의 적극적인 반응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지만 이런 점에서 좋은 수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왜냐 선생은‘왜?’라는 질문을 통해서 학생들이 본질에 다가가기를 원했고 고민하는 힘을 갖기를 원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들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질문한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끊임없는 질문이다. 기존의 프레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닌 딴지를 걸고 비판하고 고민하는 힘. 왜냐 선생은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이것을 키워주고자 했던 것 같다.하지만 곧 이런 수업은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억압받는다. 허생이 불만스러운 현실과 그 현실을 지배하는 사람에게 진 것처럼 결국은 왜냐 선생도 잘못된 사회와 이데올로기를 지배하는 권력자에게 지게 된다. 나의 꿈에서 나온 선생님의 모습처럼 선생님은 눈보라가 거세지는 속에서 혼자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선생님에게 이쁨을 받는 모범 학생이고 수업을 잘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 막상 선생님이 세력 있는 자들에 의해 학교를 못 오게 되는 부당한 상황 앞에서는 고민만 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이것이 ‘나’가 가지는 한계라고 할 수 있고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대표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내가 생각했을 때 맞는 생각이 있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싶지만 현실이라는 핑계를 대고 행동을 못하고 머뭇거린 적이 많다. ‘나’의 내면에서도 두 가지 목소리가 충돌하면서 고민한다. 이때 윤수의 모습은 새로운 가르침을 준다. 윤수는 말을 더듬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놀림 받는 학생이다. 선생님께도 그렇게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고 마음 깊이 선생님의 수업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보였던 학생이다. 윤수는 선생님의 빈자리를, 자신의 빈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홀로 땡볕이 쏟아지는 누런 운동장 한가운데 주저 앉았다. 선생님은 거센 눈보라 속을 홀로 뚫고 가고 있다면 윤수는 땡볕이 쏟아지는 학교 운동장에 홀로 서 있는 것이다.
오발탄1. 작가소개(1) 연보이범선 (李範宣 1920 ~ 1980)1920 12월 30일 평남 안주군 신안주면 운학리 19번지에서 아버지 이계하와 어머니 유심건 사이에 5남 4녀 중 차남으로 출생. 호는 학촌(鶴村)1933 신안주 청강보통학교 졸업1938 진남포 공립상공학교 졸업. 이후 평양에서 은행원을 하기도 하고 만주에 가서 회사의 사무직 계통에 근무하기도 함1943 신안주 금융조합에 근무. 11월, 일제의 징용을 피해 처남이 간부로 있던 평북 봉천탄광에서 경리계에 근무1946 연초에 단신 월남1950 6.25동란 발발, 서울서 숨어 지냄.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4월 29일 장남 근종 출생1955 대광고등학교 근무. ≪현대문학≫지에 단편 (4월호), (12월호)로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데뷔1957 를 현대문학 1, 9, 11월호에 각각 발표1958 첫 창작집 ≪학마을 사람들≫(오리문화사) 간행1959 단편 (신문예 3월호), (문예 10월호), (현대문학 10월호), (사상계 10월호) 발표. 제 2창작집 ≪오발탄≫ 간행1960 제 4회 현대문학신인상 수상1961 으로 제5회 동인문학상 후보상 수상1962 5월문예상 장려상 수상1970 제5회 월탄문학상 수상1981 대한민국예술상 수상1982 1월 21일 캐나다 여행. 2월 12일 귀국. 3월 13일 타계.(2) 작품세계전후문학과 비극적 현실인식이범선은 1920년 평안남도 신의주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55년 『현대문학』에 「암표(暗標)」와 「일요일」이 김동리에 의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이후 「수심가」「토정비결」「냉혈동물」「돌무늬」「분수 있는 로타리」「춤추는 선인장」등의 단편소설과 「동트는 하늘 밑에서」「판도라의 후예」「밤에 핀 해바라기」와 같은 장편소설을 잇따라 발표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오발탄」과 「학마을 사람들」이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곤 한다.이범선의 작품세계는 초기에는 낙척한 선비정신의 인물들이 겪는 허무주의적인 휴머니티를 비교적 소박하게 보여 주 구현의지가 구체적으로 형상화 된 작품이 곧 「학마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그가 자신의 분신같이 여겨져 가장 애착을 느낀다는 「愁心歌」(≪현대문학≫,1957. 11)의 경우 해방이후 북한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정면에서 투시하지 않고 외적 상황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인정의 소중함을 강조함으로써 이데올로기나 체제의 비인간적 속성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이범선의 소설적 관심이 이처럼 투쟁과 갈등의 산문적 현실세계 피안의 토속적 인정세계에 집중되는 것은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와 원초적 고향에 대한 동경에 바탕을 둔 것이다.(3) 대표작「암표」(1955), 「학마을 사람들」(1957) 등의 작품에서 자신이 겪은 음울한 현실을 반영하면서 무기력하게 훼손되어 한에 젖은 인간들을 많이 부각시키는 한편, 「이웃」(1956), 「갈매기」(1958) 등과 같이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담담한 필치로 펼쳐 보인다.그 후 단편소설 「피해자」(1958)나 「오발탄」(1959), 장편소설 「춤추는 선인장」(1966~1967) 등에서 고발의식에 투철한 리얼리즘 문학으로 전환하여 약자의 삶과 침울한 사회상, 종교적인 위선, 남녀의 삶의 생태를 묘파하고 있다. 또한 단편소설 「냉혈동물」(1959), 「살모사」(1964), 「정교수의 휴강」(1972), 장편소설 「밤에 핀 해바라기」(1964) 등에서는 인간의 궁극적인 존재론적 의미와 잔잔한 휴머니티를 표현하고 있다.2. 작품 줄거리넉넉한 집안 출신으로 월남한 철호의 어머니는 전쟁으로 인하여 그만 정신 이상자가 되고, 실성한 그녀는 늘 고향을 잊지 못해 헛소리를 해댄다. 주인공 철호는 그런 어머니를 봉양하는 한편으로 E음대 출신의 아내와 두 동생을 거느리고 살아가야 하는 가장이다. 남동생 영호는 제대한 지 2년이 가깝도록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방황을 계속하고 있고, 여동생 명숙 또한 가난 때문에 양공주로 전락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산비탈 해방촌에 위치한 판자집으로 귀가하는 주인공은 가족 구성구성되어 있다. 「오발탄」의 등장인물들은 과거의 삶과 완전히 상반된 삶의 역정을 걷는다. 그런데 부정적인 현실을 대하는 인물들의 현실 대응 방식은 상반되게 나타나기 때문에 두부류로 나누어서 설명하겠다.?체념론자하나는 현실의 질곡과 고통을 숙명으로 감수하면서 인내하는 송철호와 그의 아내, 그리고 명숙 등과 같은 체념론자이다.- 송철호 : 계리사 사무실에서 서기로 근무하는 인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가난하고 열악한 현실 속에서도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성실히 살려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중압과 폭력에도 자신의 양심 지키기에 급급한 무기력한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지금 네 말로는 잘 살자면 꼭 양심이고 윤리고 뭐고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뭐냐?”“천만에요,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이렇다는 것입니다. 즉 양심껏 살아 가면서 잘 살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극히 적다, 거기에 비겨서 그 시시한 것들을 벗어 던지기만 하면 누구나 틀림없이 잘 살 수 있다.”“그것이 바로 억설이다. 마음 한 구석이 어딘지 비틀려서 하는 억지다.”“비틀릴거라면 지금보다 더 전에 비틀려야 했을지 모르죠.”“그렇지만 인생이란 그런게 아니야. 너는 아직 사람이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 것인지조차도 모르고 있어”- 철호의 아내 : 과거 E여대 음악과를 졸업할 정도로 화려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를 잊은 채 아무런 희망도 가지려 하지 않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컴컴한 구석에 앉아있던 철호의 아내가 슬그머니 일어섰다. 담요 바지 무릎을 한 쪽은 꺼멍, 또 한 쪽은 회색으로 기웠다. 만삭이 되어서 꼭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 같은 배를 안은 아내는 몽유병자처럼 철호의 앞을 지나 나갔다. 부엌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분명 벙어리는 아닌데 아내는 말이 없었다.?현실 부정론자다른 한 부류는 어떻게든지 현재의 암흑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보이는 노모와 영호 등 현실부정론자들이다.- 송영호 : 양심이고 윤리고 벗어던지고 사람답게 살아보려는 반항적이고 철저히 현실지향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전락, 아내의 죽음, 영호의 체포 등 여러 사건을 통해 철호 일가족의 온갖 고초와 시련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파탄에 직면하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 모두가 선량한 본성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이범선의 분노의 표적이 되는 것은 사악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성정이 아니라 순박한 성품을 마모시키는 전후의 물신주의 또는 공동체의식의 소멸 같은 것이다.(3) 시점작가는 관찰자적 입장에서 주인공 철호의 행위를 직접 드러낸다. 또한 직접적인 서술이 아닌 대화라는 형식을 차용한 간접처리 방식으로 심리묘사를 표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후의 사회상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여주려는데 작품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계리사(計理士) 사무실 서기 송철호는 여섯 시가 넘도록 사무실 한 구석 자기 자리에 멍청하니 앉아있었다. 무슨 미진한 사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장부는 벌써 접어치운 지 오래고 그야말로 멍청하니 그저 앉아있는 것이었다. ?? “나가야지.” 하품 같은 대답이었다.(4) 서술방식과거 회상 수법 : 허무주의로 치닫을 수밖에 없는 전후의 막막함을 표상하기 위해 시간적 배경도 일상적인 과거 회상 수법을 따르고 있다. 즉, 현재 봉착한 상황을 실감나게 드러내기 위하여 과거를 반추하는 현재/과거/현재의 단순한 순환구조를 지향하고 있다.철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신문지를 바른 맞은편 벽에, 쭈그리고 앉은 아내의 그림자가 커다랗게 비쳐있었다. 꼽추처럼 꼬부리고 앉은 아내의 그림자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괴물스러웠다. 철호는 눈을 감았다. 철호의 감은 눈앞에 십여 년전 아내가 흰 저고리 까만 치마를 입고 선히 나타났다. 무대에 나선 그네는 더욱 예뻤다. 그날 저녁 같이 거리를 거닐던 그네는 정말 싱싱하고 예뻤다. ?? ”가자!“ 철호는 흠칫 놀라 환상에서 깨어났다.보충 설명라이트모티프 ‘가자!’의 의미고향에 대한 극한적 그리움의 절규이고 고향으로 표상되는, 총체적 질서가 온존했던 사회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다. 이러한 열망은 단순한 회상적 취향의 산물이 존재여서 고통을 겪어야할 이유가 없게 된다. 인간의 불행은 신의 실수 때문에 발생한 것이므로 책임 또한 신의 몫이 된다. 아이러니라는 것이 “현실은 본질적으로 역설적인 것이며, 따라서 상반된 감정을 지닌 태도만이 그 모순적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태도”라고 한다면 「오발탄」의 신성에 대한 비판적 태도 역시 역설적 인식을 통해서 인간의 삶과 사회적 현실에 대한 모순적 전체를 이해하는 방식의 서사라 할 수 있다.피의 의미현실에 대한 비극적인 인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의 서두에서 대야에 손을 담그자 손가락에 묻어 있던 잉크가 번져 나가는 것을 보고 「피! 이건 분명히 피다!」라고 엉뚱하게 외쳤지만, 그 것은 작품에 종반부에 가서 실제로 피로 연결된다.입안이 찝질했다. 간간이 길가에 나서서 피를 뱉었다. 그때마다 시뻘건 선지피가 간덩어리처럼 엉겨서 나왔다. ?? 그는 어느 전주 밑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서 침을 뱉었다. 그런데 그건 침이 아니라 진한 피였다.피에 대한 예감으로 시작된 작품이 정말로 맨 마지막에 가서는 피를 흘리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그러나 그 피흘림은 동정은커녕 아무런 주위의 시선도 끌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나 혼자 처절하게 피를 흘리고 있을 뿐이다. 소설의 끝문장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주인공은 혼자 비참하게 피흘려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철호의 입에서 흘러내린 선지피가 흥건히 그의 와이셔츠 가슴을 적시고 있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채 교통 신호 등의 파란불 밑으로 차는 네거리를 지나갔다.철호에게 있어서 이 사회는 피 흘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또 다른 전쟁터인 것이다.충치의 의미철호는 충치가 있지만 돈이 없어 빼러 가지 못한다. 영호는 이러한 철호를 비웃으며 돈을 꼭 써야 될 때에도 쓰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하지만 철호는 묵묵히 그 대답을 들으며 억설이라고 한다. 여기서 충치는 세상을 양심적으로 살아가려는 철호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상징한다.형님 자신만 해도 그렇죠. 밤낮 쑤시는 충치(蟲齒) 하나 처치 못하시다.
민족문학사 강좌(상) 요약 및 감상남북국시대 최치원의 문학과 역사적 성격고운 최치원은 신라 말기에 태어나 그 시대가 자신과 육두품 계층에 부과한 짐들을 감내하면서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간 문인이요 역사가요 철학자이다. 그의 삶의 궤적은 신라 말 육두품 지식인들의 그것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최치원의 사상적 출발은 아무래도 유교라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상태사시중장」과 「하제이부랑별지」 등에서 스스로를 유문의 말학이며 공자의 생도라고 자처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유가사상이 자족적 논리체계를 갖춘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하였기에 그 자체 속에 도가나 불교 사상을 수용하는 경향이었다. 최치원은 일련의 불교 저술을 통하여 문장을 뜻하는 구학 보다는 선법을 뜻하는 심학을 중시하여 심학을 주체로 하여 구학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치원이 도교에 대해 언급한 자료로는 「계원필경집」에 수록되어 있는 「도교재사」와 「사산비명」 및 「난랑비서」의 도교 언급 부분 등이 있다. 최치원이 대체로 일생의 초기와 중기에 유가적 지향을 강하게 가졌다면, 당과 신라 사회에 점차 실망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입점을 상실하는 단계로 접어들면서 불교와 도교 쪽으로 기울어갔다.최치원은 자신의 처지나 세태에 대한 감회를 한시를 통해 피력했다. 그 한시는 대체로 그의 처지에 대응된다. 최치원의 한시는 그의 처지와 생각, 생활감각의 변화를 민감하게 반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그의 개인사만을 염두에 두면 그의 시들은 사실주의의 지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를 포착하는 관점이 속세/초월계(선계·자연), 악/선, 비양심/양심 등으로 도식화되어 객관현실을 섬세하고도 깊이 있게 통찰하여 시화하는 데는 미흡했다. 또 대체로 시적 자아나 시인 자신의 내면 처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그 심정을 일방적으로 토로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점에서 역시 사실주의의 실현에서 한계를 보였다 하겠다. 그러나 그의 시를 통해 우리 한시는 본격적으로 근체시의 단계로 도약하면서 다양한 형식의 체험을 갖게 되었다부분은 그 시대의 일반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치원은 자기 계층의 주?객관적 여건을 바탕으로 하여 이념적?종교적 종합을 꾀했고, 당시 세계 보편문학 중 하나인 한문학을 차원 높게 수용하여 발전시킴으로써 한 시대 문화인의 최대치를 보여주었다. 최치원의 이러한 점은 당시 세계문화 수준을 고려해볼 때 민족문화의 소중한 자산이다.남북국시대 최치원의 문학과 역사적 성격 - 감상‘고운 최치원은 신라 말기에 태어나 그 시대가 자신과 육두품 계층에 부과한 짐들을 감내하면서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간 문인이요 역사가요 철학자이다.’ 라는 짧은 문장에 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단순히 지식적 측면에서만이 아닌 최치원의 삶에 대해 알게 되어서 좋았다. 육두품계층이라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 문자적인 의미 밖에는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최치원에게 있어서 그것은 과업이고 삶의 문제 였을 것이다. 전환기를 살아간 최치원은 그 과업을 소화해내려고 굉장히 애쓴 모습이 느껴졌다. 개인적·계층적 한계 때문에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괜찮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그의 고뇌와 노력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지금까지 전해지고 나에게 감동을 전해준다.가을바람에 홀로 쓰라린 시 읊조리니인생길에 내 노래 알아주는 이 없네창 밖에는 삼경의 비만 내리는데등불 앞의 내 마음은 어느덧 만리 밖에 가 있네최치원은 좌절, 고뇌, 혼란 등을 이와 같은 시를 통해 표현하고 정신적 방황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나는 시가 어떤 메시지를 담든 이러한 모습이 더욱 인간적이게 느껴져서 인간 최치원에 대한 정감이 갔다.17세기 전후 민족현실과 소설의 발전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동아시아의 역사적 판도를 바꾸어놓은 커다란 사건이었다. 두 번의 전쟁이 모두 조선을 무대로 하여 일어난 까닭에 민족 전체가 커다란 고통을 당했고, 그 결과 민족의식이 강화되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17세기는 지배계층인 사대부뿐만 아니라 민중들 역시 자신의다. 이러한 체험은 실상 전란 속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민중의 고난이 전형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동아시아의 전란이라는 커다란 역사적 사건에 평범한 한 개인의 삶이 얼마나 파란만장하게 얽혀 들어갔는가를 현실주의적으로 보여준 것이다.17세기에 나온 것은 아니지만 1세기 정도의 숙성 기간을 거쳐 나온 것으로 작자 미상의 「임진록」 「임경업전」 「박씨전」이 있다. 이들의 존재는 임·병 양란이 두고두고 문학적인 ‘원체험’이 되어 민족적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들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되 ‘군담’적 요소가 많아 흔히 ‘역사군담소설’이라 하기도 한다. 왜적이나 후금에 대항하여 능동적으로 싸우는 형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에서 본 작품들과는 다르다. 「임진록」은 이러한 형상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징비록」등의 역사 기록과 유사한 것도 있고 최일영이라는 허구적 인물을 내세워 구성의 통합도를 높인 것도 있는 등 이본에 따라 차이가 많다. 이 작품은 대외적 인식의 건강함이나 현실에 대한 대응의 적극성에서는 돋보이지만, 주제구현 방식이나 인물형상에서는 약점도 많다. 그러나 의병활동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민중들의 의식 성장을 토대로 하여, 패배감이나 좌절감에 사로잡힌 지배계층과는 달리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임진록」에 비해 「임경업전」과 「박씨전」은 이본의 차이가 크지 않다. 이들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것인데, 「박씨전」의 후반부가 「임경업전」의 영향을 입은 듯하다. 이 두 작품은 역사의 패배자 또는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못했던 여자를 내세우면서 당대 지배계층의 허점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도 상통한다. 「박씨전」은 ‘여성 영웅’을 내세워 병자호란을 새롭게 조명한 것이지만, 당대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드러내지 못한 면도 있다.이상에서 본 작품들은, 대체로 전란을 중심으로 한 민족모순을 폭넓게 인식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문제에 관심을 두었다.만중의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이다. 이 두 작품은 모두 상당한 분량으로 이루어져 다양한 디테일을 담고 있으며 장회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두 작품은 그 구성의 기교나 주제의 구현에서 이전에 우리 소설사에 있어온 어느 작품보다도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구운몽」은 「조신몽」이래 우리 문학사에서 하나의 전통을 이루어온 환몽구조를 받아들여 불도를 닦던 주인공이 인간계의 삶을 꿈속에서 겪은 후 꿈에서 깨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한편, 「사씨남정기」는 선한 처와 악한 첩의 갈등을 통해 봉건시대 가정내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그 소재와 주제에서 두 작품은 현저히 다른 경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두 소설에는 공히 17세기 이래 확대되어가는 가문의식이 견고히 밑받침되어 있으며, 이 두 작품에서 보이는 가문의식은 이후의 장편소설에서 더욱 확대되고 강화되어 일련의 가문소설을 형성하게 된다. 「구운몽」은 16회의 장회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이다. 「구운몽」은 환몽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제가 드러나는 부분은 작품의 후반부이다. 불도가 너무 ‘적막고담’ 한 것에 회의를 느끼고 인간계의 부귀공명에 미혹되었던 성진은, 꿈속에서 인간계의 극진한 부귀공명을 체험하고 난 뒤에 이번에는 인간계에 회의를 느끼고 불도에 되돌아오고자 하는데, 육관대사는 이러한 성진을 오히려 질책하며 현실과 꿈이 결코 둘이 아니며 하나도 아니라고 가르친다. 현실과 꿈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는 것은 그 두 세계, 즉 불도의 세계와 세속의 인간계의 어느 한편만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세계를 모두 긍정하는 것이며, 두 세계를 아우르는 참된 이치를 깨닫게끔 가르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씨남정기」는 남주인공 유연수를 중심으로 하여 본처인 사정옥과 첩인 교채란이 벌이는 처첩갈등으로 엮어진 작품이다. 「사씨남정기」는 봉건적 가족제도의 모순이라 하 수 있는 처첩갈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것은 이 작품의 작자인 김만중 자신이 연루되어 귀양을 가기도 하는 사건인, 숙종을 중심으로 들여 성진이 새로운 꺠달음을 얻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재밌는 것은 작품의 후반부에 육관대사의 말이다. 인간계의 부귀공명에 미혹되었던 성진은, 불도에 되돌아오고자 하는데, 육관대사는 질책한다.장자가 “나비의 꿈에 장자가 된 것인가? 장자의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마침내 분간할 수 없다”라 하 였으니, 어떤 일이 꿈이며 어떤 일이 참인지 누가 알겠는가?육관대사는 장자의 호접지몽을 얘기하며 성진을 꾸짖는다. 인간계에 회의를 느끼고 불도에 돌아오려고 하는 성진을 칭찬 할 줄 알았던 나는 이 부분에서 육관대사에게 같이 꾸지람을 들었다. 「구운몽」을 통해 김만중은 육관대사처럼 두 세계를 아우르는 참된 이치를 깨닫게끔 가르치고 싶었나보다. 또 김만중 자신도 성진처럼 번뇌와 고민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하였다.야담의 세계조선 후기 사회의 해체과정은 전국면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기본 동력은 생산력의 괄목할 만한 발전에 있다. 그 가운데 이앙법?이모작의 확산, 시비법 발달, 품종개량 등 농업기술상의 변화를 우선 꼽을 수 있다. 특히 농민들이 새로운 농업기술을 적극 도입하도록 자극했다. 농업경영상의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농민층 분화를 초래하였다. 다수의 농민들은 자작농에서 소작농으로, 심지어 임노동자나 유민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농업 내부의 관계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상업?수공업?광업 분야에서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했다. 18세기 후반 서울의 분위기를 이옥은 「시간기」란 글에서 전하고 있다. 서울은 돈을 매개로 분주하던 교역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시정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군상이 자신의 얼굴을 속속 드러내게 되었다. 야담의 세계는 이같은 인물들의 초상화라 할 만큼 폭넓게 펼쳐져 있는데, 그 혈성과 관련지어 비상한 관심을 끄는 부류는 바로 ‘이야기꾼’이다. 야담의 세계가 다양한 편폭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상하층의 생활을 두루 체험할 수 있었던 이들에게 힘입은 바 크다. 자신이 여기저기서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