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실험에 대해 반성한다. 그 이유는 어떤 종도 다른 종보다 우월하다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논의는 우선 다른 동물이 가치있다는 것을 주장 하는게 아니라, 우리 인간이 가치 있지 않다는데 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이 다른 종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논의하기 전에 일반적인, 동물들의 고통에 대해서 논해 보겠다. 간단히, 현재 가축화된 돼지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오늘날 공장식 축산 농장에 사는 대부분의 암퇘지는 가로 2미터 세로 60센티미터의 작은 생식 우리에 갇혀 지낸다. 바닥은 콘크리트이고 금속 울타리로 둘러싸인 생식 우리는 새끼를 밴 암퇘지들이 걷기는커녕 몸을 돌리거나 옆으로 눕기도 힘들 만큼 좁다. 이런 환경에서 석 달 반을 지낸뒤, 그 암퇘지들은 약간 더 넓은 우리로 옮겨져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인다. 자연 상태에서 새끼 돼지들은 10주 내지 20주쯤 젖을 먹지만, 공장식 농장에서는 2주에서 4주 만에 강제로, 젖을 떼고, 어미에게서 분리되어 다른 곳으로 보내진 뒤 통통하게 살이 오르면 도축된다. 어미는 금방 다시 임신해 생식 우리에서 같은 생활주기를 반복한다. 보통 암퇘지는 다섯 번에서 열 번 정도 그런 주기를 반복한 뒤 도축된다.”(- 호모데우스119p) 과거의 어떤 시대보다 가축화된 대형동물은 그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기에, 생존과 번식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가축화된 돼지들은 말 그대로 그 어떤 때 보다 잘 먹고, 잘 번식 한다. 혹자는 이것을 보고 야생에서, 굳이 먹이를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자연재로부터 인간이 적극적으로 보호해 주고, 전염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돼지가 가축화되기 전의 돼지보다 낫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의 예시로든 가축돼지의 삶이 야생돼지의 삶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돼지들은 고통 받는다. 돼지들이 고통 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욕망과 동물의 필요가 모순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돼지들은 욕구를다. 이것은 과거 그 종의 생존과 번식의 필요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필요를 현대의 돼지도 계속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 우리 인간의 그들의 필요를 무시하고 그들에게 생존과 번식 제공하며 유도할 수 있는 방법(농업혁명에서의 동물의 가축화)을 알게 되ㅇ?ㅆ다. 잔인하다. 온갖 욕구를 가지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갇혀, 먹고, 싸고, 출산 할 뿐이다. 어떠한 필요와 욕구도 충족시키지 못한채 그저 살아간다. 우리 인간이 그들의 필요를 배려할 만큼 너그럽지 못하기 때무이다. 동물들의 필요보단 돈을 아끼는 것이 중요하니까 말이다. 자연은 냉철하다. 진화는 전체를 아우를 뿐, 개체의 행복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번식과 생존이라는 필요조건이 성립되기만 한다면, 진화는 그것을 선택한다. 인간은 이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고도화된 과학문명을 이룬 현대인도, 그 어떤 시대보다 번영을 누리고 있다 말 할 수 있지만, 이 사회의 개개인이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것 과 일맥상통한다. 첫 번째 근거를 정리하자면, 동물도 조상의 필요를 이어받아 욕구와 필요를 가지며, 우리 인간은 그 필요와 욕구를 무시하며, 생존과 번식이라는 필요조건을 성립시켜 무한한 고통을 동물들에게 가하고 있다. 동물들의 필요와 우리의 욕망이 모순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논의를 통해 가축화된 동물 뿐 만 아니라 실험동물 또한 욕구를 가지기에, 동물시험에 반대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 두 번째 논의는 우리인간만이 가치 있다는 생각(인간중심주의)를 깨보려고 한다.“ 그 어떤 종도 다른 종보다 우월하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 리처드 도킨스의 말이며, 내가 진행할 논의의 기둥이 될 명제이다. 우리 인간이 어떻게 세상을 지배했는가를 들여다봄으로써, 인간의 가치에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구가 45억년 전에 생성된것에 빗대어 인류는 극히 최근까지도 먹이 사슬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인류가 먹이사슬의 정점에 뛰어오른것은 불과 10만년전 호모 사피엔스가 출연하면서 부터였다. 호모 사피엔스는 같이 살고있던 어가면 각각의 관계를 기억하기 매우 힘들진다. 이 때부터는 공통의 신화, 전설 , 이야기가 필요하게되고, 허구를 바탕으로 집단이 공통의 가치관을 가지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허구가 모을 수 있는 무리의 수는 제한이 없기에, 수천명에서 수십억명까지 가능하고 인간이란 종은 수많은 종보다 한무리의 최대 수용 개체수가 많게 된다.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것에 대해 말할 수 있게되었다. 이렇게 무리가 모인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동물을 쉽게 이길 수 있었고 그것이 인류를 최상위 포식자로 올려놓은 이유이다. 그리고 그 허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나오는 이론이다. 그럼 유발하라리의 이론을 바탕으로 현재 우리를 바라보자. 우리는 왜 종잇조가리에 인생 대부분의 신경을 쏟는것일까? 모든이가 그것이 가치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을 상호주관성이라고 한다. 우리 인간의 주관하나하나가 모이면, 그것은 객관적 실체로서, 존재성을 발휘한다. 국가는 어떤가. 당신은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라는것에 의심을 품어본적이 있습니까? 없을 것이다 그이유는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대한민국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사회속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이 존재한다고 믿기에 대한민국은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현재 만연해있는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초예측-p314) " 감정은 우리 사적인 삶뿐만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절차에도 의미를 제공한다. 누가 국가를 통치해야하는지, 어떤 외교정책이 채택되어야하고 어떤 경제조치가 취해져야하는지 알고싶을때 우리는 성경에서 답을 찾지 않는다. 교황의 명령이나 노벨수상자 협회의 결정에 복종하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국사에서는 민주적인 투표를 통해 국민들에게 당면 문제에대한 생각을 묻는다. 우리는 유권자가 가장 잘 알고, 개개인의 자유선택에서 정치권력이 나온다고 믿는다." 우리 민주주의 제도는 ‘유권자가 가장 잘 알고 옳은 결정을 한다.’ 라는 근본없는치있다는 생각도 종교적인 관념이라고 말했는데, 이또한 이데올로기며, 그는 민주주의 자유주의와 함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세상을 주름잡는 인간을 숭배하는 종교,이데올로기를 ‘인본주의’라고 칭했다. 우리는 인본주의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그렇기에 우리가 은연히 다른 종보다 가치있다고 생각하며, 동물들을 무심하게 죽이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두 번째 논의를 정리하자면, 나는 동물의 가치를 강조한것이라, 우리 인간의 가치를 부정했다.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가치와 우월성을 근거로 동물을 해할 수 없다. 나는 동물실험에 강력히 반대한다.한국동물보호연합에 따르면 인간과 동물이 ‘공유’하는 질병의 비율이 1.16%라고 발표하였다.농림축산검역본부< 3R원칙>Replacement대체 동물실험을 수행 하지 않고도 연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것으로 동물실험을 대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최근 조직배양이나 컴퓨터를 이용한 모의실험기법이 발달하면서 동물실험을 대체할 방법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동물실험을 해야 할 때라도 좀 더 하등한 동물 종으로 실험이 가능하다면 고등한 동물 종을 하등한 동물 종으로 대체해야 합니다.Reduction감소가능한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의 수를 줄이는 것으로, 보다 적은 수의 동물을 사용하여 필적할 만한 정보를 얻거나, 동일한 동물수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에도 통계적으로 유의한 자료와 결과를 얻을 만큼의 수는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통계적 분석법을 잘 활용하여 최소한의 동물수로도 의미 있는 분석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분석을 할 수 있는 실험설계만이 윤리적으로도 허용될 수 있습니다.Refinement개선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없어 최소한으로 동물을 이용할 경우 동물에게 가해지는 비인도적 처치(inhumane procedures)의 발생을 감소시켜 주는 것을 말합니다. 즉, 통증과 스트레스를 경감시키고 동물의 행복을 향상시켜 주는 것을 말합니다. 실험계획서, 실험방법’는 어떤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쾌락과 고통의 양을 기준으로그 행위에 대해 가치 평가를 내린다.이 관점을 따를 경우에 그러한 살인은 그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도 않고 고통과 쾌락을 느낄 주체 자체를 아예 없애기 때문에 이를 나쁘다고 볼 근거는 없다.따라서 피살자가 겪게 되는 고통의 증가라는 ‘직접적 이유’를내세워 그러한 형태의 살인을 비판하기는 어렵다.고전적 공리주의의 관점에서는 피살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겪게 되는 고통의 증가라는 ‘간접적 이유’를 내세워 인격체에 대한 살생을 나쁘다고 비판할 수 있다.살인 사건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은 비인격체와는 달리 자신도 언젠가 살해를당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되고 이로 인해 고통이 증가하는 결과가 발생하므로 살인이 나쁘다는 것이다.이에 비해 ‘선호 공리주의’는 인격체의 특성과 관련하여 그러한살인을 나쁘다고 보는 직접적 이유를 제시한다.이 관점은 어떤행위에 의해 영향을 받는 선호들의 충족이나 좌절을 기준으로 그행위에 대해 가치 평가를 내린다.따라서 고통 없이 죽이는 경우라고 해도 계속 살기를 원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살려고 하는선호를 좌절시켰다는 점에서 나쁜 것으로 볼 수 있다.특히 인격체는 비인격체에 비해 대단히 미래 지향적이다.그러므로 인격체를 죽이는 행위는 단지 하나의 선호를 좌절시키는 것이 아니라그가 미래에 하려고 했던 여러 일들까지 좌절시키는 것이므로 비인격체를 죽이는 행위보다 더 나쁘다.‘자율성론’은 공리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여살인을 나쁘다고 비판하는 직접적 이유를 제시한다.이 입장은어떤 행위가 자율성을 침해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기준으로 그행위에 대해 가치 평가를 내린다.인격체는 비인격체와는 달리여러 가능성을 고려하면서 스스로 선택하고,그 선택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을 지닌 자율적 존재이며,그러한 인격체의 자율성은존중되어야 한다.인격체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파악하여 그 중하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이러한 선택은 가장 근본적인 선택인데,죽지 않기를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