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시인 김남주
- 최초 등록일
- 2008.12.15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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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남주 시인에 대한 일대기와 시에대한 견해, 생각등을 적음
목차
1980년대 이후 한국민족문학을 대표하는 저항시인 김남주
시대적 배경과 그 시대의 문학특징
김남주 시인의 시대와 불화
한국의 체게바라 김남주 시인
본문내용
1980년대 이후 한국민족문학을 대표하는 저항시인 김남주
김남주 시인은 70년대 초반부터 줄기차게 반민족 반민주적인 양상의 시를 짓던 시인으로 48년의 짧은 생을 자신이 그려왔던 시처럼 살다 갔다.
김남주 시인은 1496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출생이다. 봉학리가 그의 고향이고, 그는 거기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뒤 전라도에서 가장 명문 중의 하나인 광주 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광주제일고등학교는 일제 시대 학생운동의 봉화를 울렸던,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지금도 광주시 누문동에 가면, 당시 학생운동의 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다. 그러한 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한 김남주 시인은 전남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한다.
그가 대학을 들어가던 때는 1960년대였다. 1960년대는 동학농민전쟁과 3·1운동 이후 다시금 시민봉기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한반도는 시민혁명, 민중혁명의 자리를 잡아 주었던 4월 혁명에 휩쓸려 있었고, 그러한 4월 혁명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시민혁명은 그 서막을 올렸다고 보아도 무관하다. 그러나 이듬해인 1961년 5월 16일, 5·16사태가 터졌고 시민혁명이 싹을 틔운 보람도 없이 대한민국엔 군사정치·군사문화의 나팔 소리만이 가득히 울렸다. 이 시기에 최고회의, 중앙정보부법이 공포되고, 동아·조선일보의 군정연장항의, 제3공화국탄생, 연이은 비상계엄선포가 자행되었다. 뒤이어 국군월남파병, 한일협정조인, 한미행정협정 발효, 3선 개헌안 국민투표 등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대형조치와 사건들이 한반도 전역을 흔들었다. 1972년엔 유신시대, 긴급조치시대가 한반도의 파고를 높이는가 하더니 나중에는 대향 검거사건도 속출하였다.
유신시대였던 1973년, 김남주 시인도 혼돈하는 시류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그는 유신체제를 거부해야 한다는 지하신문인 함성, 고발을 발간하였다가 10개월간 처절한 감옥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10개월이라는 투옥생활의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1979년 ‘남민전사건’으로 또다시 투옥되었다. 그의 삶은 1988년 12월 형 집행지로 석방될 때까지도 고뇌와 투쟁의 연속이었다. 햇빛 한 줌조차 그리워하게 만들었던 10여 년 간의 투옥 생활 뒤 그는 지병을 얻었고 그로 인해 출소 후에도 많은 고생을 했다. 결국 그는 췌장암이라는 불치병을 선고받은 3개월 뒤 타계하였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그 시련과 고통을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