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미당 서정주에 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6.02.07
- 최종 저작일
- 199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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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당 서정주에 관한 리포트입니다.
수려한 문체와 주옥같은 작품 이면에는 친일파라는 낙인과 해방후 정치문인으로 활동하였던 안타까운 시인 서정주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미당 서정주
2. 친일 시인으로 정치 문인으로...서정주
3. 관련자료
본문내용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수학하고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같은 해에 김동리.김달진.오장환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을 주재하는 등 활발한 시단 활동을 벌였다. 서정주가 친일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42년 7월 평론 [시의 이야기-주로 국민시가에 대하여] 를 매일신보에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친일시인으로 작심하고 친일 어용 문학지 [국민문학]과 [국민시가]의 편집일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친일작품을 양산했다. 당시의 문단 비중에 비해서 상당한 분량의 친일작품을 남긴 것이다. 평론 1편, 시 4편, 단편소설 1편, 수필 3편, 르포 1편 등 합계 10편의 친일 작품을 썼다.
친일작품을 연대별로 살펴 보면 1942년 평론 [시의 이야기-주로 국민시가에 대하여], 1943년 수필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 [인보(隣保)의 정신] [스무살 된 벗에게] [보도행], 시 [항공일에] [헌시 (獻時)], 소설 [최체부의 군속 지망], 1944년 시 [무제] [오장 마쓰이 송가] 등이 있다.
서정주는 친일문학 활동뿐만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나서 1943년 10윌 엿새 동안 일본군 경성사단의 추계 훈련에 종군하고 참관기를 쓰기도 하였다.
해방 후 조선청년문학가렵회 시분과 회장을 맡고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 한국문인협회 회장 등 문단의 감투를 쓰고 이승만의 전기를 접필하는 등 `정치문인`으로 5공화
국 때까지 맹렬한 활동을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