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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일반] 세게화의 덫
    서 론내가 이 책을 알게된 것은 1998년 한 선배에 의해서 였다. 당시 우리 나라의 경제는 1997년 IMF의 정책에 따라서 외환이나 재무 상태가 그들의 관리하에 있었고, 수많은 기업 - 대우 같은 대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 들이 무너지거나 도산하였으며, 살아남은 기업들도 업계간 인수 합병이나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살아가기 위해 애쓰던 때였다. 이 때 힘들던 기업으로는 벤처 기업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강점이던 건설 업계나 나라 경제 살림의 기본이 되는 제조업체 그리고 금융 업계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대학에 갓 입학하면 누구나 갈 수 있다고 생각되었던 유럽 배낭 여행 등의 사치(?)스럽던 낭만은 사라지고, 입학하면서부터 취업난과 경제난을 어느 정도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민의 정부에서는 세계화 를 외치며, 노·사·정 모두에게 협조와 이해를 구하며, 나라 전체의 구조 조정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 중에 알게 된 세계화의 덫 은 일종의 미래 예측의 예언서적인 성격과 과거에 대한 평가서적인 글들로, 대체로 암울한 우리의 미래를 그렸다. 20 대 80의 사회 로 묘사된 앞으로의 미래는 당장 어찌할 수 없는 작은 나에게도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또한 무턱대고 세계화 를 주장하기보다는 보다 우리의 현실에 맞고, 합리적인 세계화 를 통해서 무장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였다. 채무가 많은 대기업이나 - 이를테면 대우 같은 - 금융기관 - 제일은행 같은 - 을 무조건 정리만 해서 해외 매각을 하려는 생각만 하지 말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민족 자본의 회생 가능성을 열어두고, 공적 자금이나 공공 자금, 국가가 가진 채권, 담보 등을 통해 보다 이른 시기에 투자해서 살렸으면 보다 낳은 결과가 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물론 세계 열강들이 우리 시장에 대한 개방 압력과 우리의 외환 위기가 지나쳤기에 불가피한 결과라고도 생각되지만, 우리 나라의 관료들 - 특히 외교 담당 관료들 - 에게는 이 책을 한 번 읽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듯 하다.이 책을 쓴 한스 피터 마가 있다면 밝은 미래도 공존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본 론이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두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그것은 세계화 란 무엇이고, 덫 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우선 책의 제목이 세계화의 덫 이고, 이 책의 서문에는 세계화 의 본질에 대해 자세히 정의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화 란 나 같은 보통 사람에게는 예외적인 말인 듯 싶었다. 세계화나 국제화를 외치고 다니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의 몫으로 생각되었지만, 이 책에서는 이미 일상 생활과 결부되었음을 지적한다. 세계화 란 나라간 국경 자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처음부터 지구촌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사는 보다 공세적이고 전략적인 활동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기업이나 어떠한 단체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 아닌 개개인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이를테면 현재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혼선을 거듭하면서 세계 경제나 정치적인 안정의 중심인 미국이 흔들리자 세계 각 국의 주식은 일제히 폭락하고, 이에 국가의 구성 요소인 각 국민들의 경제 생활까지도 불안하게 된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공감이 갔다. 게다가 90년대 이후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의 분쟁이 종식된 이후 미국의 국제적인 위상은 가히 적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러한 세계의 중심이 흔들리자 세계 각 국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른바 국제화 시대 속에서 굵은 선으로 그어져 있던 국경 자체의 의미가 퇴색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본, 노동, 상품 및 정보, 범죄, 환경을 위협하는 공해 물질까지 모든 것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인 것이다. 링컨이 죽었을 때 그 소식을 모든 미국인이 알기까지에는 일주일이나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 반대편의 소식조차 생중계로 알 수 있는 시대이니 만큼 각각의 연결고리들은 보다 견고해졌고, 유연하게 전할 수 있게 되어 세계는 하나가 된 것이다.18세기 말 맬서스가 인구론 을 쓰면서 고민한 문제들은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고민들과 비슷하지만 점점 달라지는 경향을 띠는 것 같다. 맬서스의 시위해 세계 도처에서 미국이나 서유럽으로 몰리고, 이제는 우리 나라에서도 코리안 드림 을 이루기 위해 동남아의 젊은이들의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세계화 의 덫 인 듯 하다. 전 세계 각 영역들 사이의 격차는 20/80의 사회로 불릴 만큼 커지는데, 그들 사이의 상호연관성은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진국마저도 이 책에서 언급되는 거간꾼 의 농락에는 속수무책으로 유린되기 때문에 결코 안전한 철옹성으로 생각하기에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선진국 내에서도 20/80의 법칙은 유지되기 때문에 역량 있는 생존 근거는 부족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선진국들의 세계화라는 덫에 빠져들고 있다. 겉으로는 모든 국가가 자유 경쟁을 하는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고자 하지만 이는 그 뒤에 숨어있는 선직국들의 음모를 모를 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들은 지금 현재 미국의 세계화 정책에 의해 피해를 보고 있다. 결국 세계화를 통해서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는 나라들은 미국을 비롯한 소수의 선직국들이며 이는 세계화가 진정 세계의 모든 나라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소수의 강국들만을 위한 세계화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그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일단 우리는 현재 많은 기업들이 무너지거나 또는 합병을 하는 상황에서 수많은 실업자들을 배출하고 있다. 실업자 문제는 가장 큰 세계화의 덫 중 하나인데 「세계화의 덫」의 저자인 슈만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일반적으로 실업문제는 세계화 과정에 수반되는 현상이며, 이는 시장논리로서만 본다면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보다는 새로운 대안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그 예로서 새로운 조세제도를 도입해 세계화로 인한 부의 공정한 분배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또 국가는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국제환경이 빨리 변화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변화된 상황에 쉽게 적응하도록 교육과 직업훈련에 상당히 투자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방안들이 모두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그들이 받아들이려는 것은 민주주의였으나 지금 그들에게 남은 것은 시장경제뿐이라는 말을 한다고 한다. 그만큼 적자 생존의 경쟁은 강자와 약자를 가리지 않고, 가장 비인간적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하는 듯 하다. 물론 살아남은 강자들의 세계에서도 20/80의 법칙은 존재하기 때문에 무한 경쟁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옳은 세계화의 길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의 현실은 이미 이러하므로 우리는 이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이 책은 각 장의 제목만으로도 그 장의 내용을 알 수 있을 만큼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글들을 가지고 그 내용을 이끌어 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동안에 문제시되었던 것들을 보다는 보다 더 현실적인 안목을 가지고 그 동안의 역사에 비추어서 서술을 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책만의 의미를 느꼈다. 제 1장부터의 제목을 보면 제1장은 20 대 80의 사회 라는 소제목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경쟁적인 사회의 결과를 함축하는 단어이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리차드 코치가 쓴 『20 대 80의 법칙』이라는 책을 보면 그는 역설적이게도 20대 80의 법칙을 통해서 성공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다. 리차드 코치는 책의 방향을 미래에 대한 예측보다는 지금 우리가 투자하고 있는 20%의 노력만으로 결과의 80%를 효율적으로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책을 읽다보니 정말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나는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미래를 비관하는 말들로 일관하고, 다른 하나는 같은 생각을 통해서 모두가 효율적으로 잘 살자는 말을 한다는 것에서 그랬다. 얼마 전에 서점에서 본 글 중에 맥도날드가 진출해 있는 국가간에는 전쟁이 없다 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지금 우리의 세계를 디즈니 세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앞으로 소외당할 운명에 처해진 80%의 인구를 위해 온갖 보고 즐기는 하류 문화가 흥성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는 각자가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그을 하기도 한다. 미래의 후손들은 아직도 세상이 온건하게 보였고, 그래서 잘만하면 세상을 제대로 바꾸어 나갈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었던 황금 같은 저 1990년대를 더욱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 나라의 상황이 이 같은 말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환경인지라 더욱 미래가 두려워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 자체가 어찌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적 일 수도 있을 것 같다.제 3장에서는 세계금융시장의 독재라는 주제로 세계를 대상으로 자신의 이윤을 추구하는 글로벌 경제 플레이어 - 나쁘게 말해서는 거간꾼인 - 들이 무모하게 결국인 자신들의 성장 자본마저도 해체하고 있음을 꼬집었다. 그들의 가진 엄청난 자본을 바탕으로 금융시장의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국가를 불러들여 뒷수습을 하려고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정도로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제 금융계의 거물급 인사나 기관들이 금융 위기와 같은 유사시에 긴급사태 수습을 기대할 수도 있었던 장치마저도 끊임없이 파괴시켜 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는 정말로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장을 읽으면서는 나도 모르는 어떤 막연한 두려움이 느껴졌다.제 4장인 늑대의 법칙에서도 여느 장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비관적인 결론을 내었다. 이것은 탈규제화에 대한 저자들의 생각을 말한 것인데 탈규제화가 가져오는 결과로는 선진국에서는 일자리의 소멸을 의미하고 그러한 희생의 결과가 결코 후진국의 국민들과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였다. 민족국가라는 개념은 이제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 단일한 정부와 기구로는 상황을 통제하기는 문제들이 너무 복잡해진 것이다. 게다가 그것을 이끄는 관료들은 단기적인 안목과 정권의 획득이라는 생각에 몰입하여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필요악 이라는 말도 있듯이 국가라는 존재를 믿어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듯 하다. 점점 가속화되어 가는 개방화 추세는 좋든 싫든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인문/어학| 2002.12.07| 7페이지| 1,000원| 조회(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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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듀이의 교육사상
    존 듀이의 교육사상1) 생애실용주의 이론을 완성시킨 존 듀이는 미국 버몬트주 벌링톤에서 태어났다. 1875년에 버몬크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1879년부터 1881년까지 교사로 재직하였다. 그 후 존스 홉킨스 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당시 유럽 및 영국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던 헤겔의 관념론에 입각한 철학사상에 심취하게 된다. 후일 그가 초기의 헤겔 철학 단계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도 변화, 과정, 유기적인 상호작용의 헤겔적 사유방식은 여전히 그의 이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듀이는 박사학위 취득 후 1884년에 미시간대학교로 옮긴 이후 10년간 그 대학에서 강의하였다. 그리고 난 후 1894년에 시카고 대학의 교수가 되어 교육학과, 철학과, 심리학과의 학과장으로 학문에 정진하였다. 1894년부터 1904년까지 그는 듀이 학교 라 불리는 대학 실험학교를 운영하며 그의 심리학적, 교육학적 가설들을 검증하고 실천하는데 노력하였다.이 실험학교는 4세에서 14세까지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놀이·자연학습·구성·자기표현 등의 방식을 통하여 상호 협동적인 삶의 경험 을 증진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 학교는 학습자를 북돋아서 학습자 자신들의 경험을 활발하게 재구성하도록 고안된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수업은 다섯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단계의 수업은 실제적인 활동과 초보적 경험을 하도록 하였으며, 둘째 단계는 문제 발견과 그 문제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하도록 돕는 것이며, 셋째 단계는 문제 해결을 위해 실제 사실에 관련된 자료를 발견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넷째 단계는 가설을 세우거나 문제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단계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는 문제 해결 방안을 실제적인 행위를 통해 검증하도록 한다. 이러한 수업방식은 한국에서는 듀이의 반성적 사고 라는 개념 안에 포괄하여 소개하고 있으나, 사실은 듀이가 자신의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인 경험의 교육철학을 실험학교에 적용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이 수업 프로그램의 특징은 축소된 지역사회 와 온실적 사회 로서의 학교 기능을 교육관에 대한 비판과, 경험의 개념에 입각한 진보적 교육관으로 나누어 설명하도록 하겠다.(1) 전통적 교육관에 대한 비판듀이는 자신의 실용주의적 교육론을 제시하면서 지금까지 교육현장에 뿌리깊게 내려온 전통적 교육과 그 형태에 대해 폭넓은 비판을 가하면서 새로운 진보적 교육에 대해 상세히 논의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논의는 주로 「민주주의와 교육」과 「경험과 교육」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이 두 책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한다.1 전통적 교육 일반의 측면전통적 교육 구조는 본질적으로 위로부터 교수-학습을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그러한 교육은 단지 성숙을 행하여 배우는 학생에게 성인의 표준과 교과 내용 및 방법을 부과한다. 성숙한 성인이 위로부터 부과하는 것은 학생들의 경험, 능력을 별로 배려하지 않는다. 바로 그러한 상황이 학생들로 하여금 학습의 진전에 적극적으로 참여치 못하게 한다.듀이는 이에 대해 학교 교육이 시작된 이래 지난 600여년 간 사람들이 그저 배우고 죽은 것처럼, 그저 행하고 배우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배운다는 것은 이미 책이나 선인들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습득한다는 뜻이 된다. 더욱이 가르쳐지는 내용은 본질적으로 고정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하나의 최종적 산물로서 가르쳐지는 것이며, 그것이 원래 형성되게 되었던 방식 혹은 분명히 미래에 발생하게 될 변화 등은 거의 고려되고 있지 않고 있다.요구되는 교과 내용, 학습 방법과 행위 방식들은 학생이 이미 지니고 있는 경험의 테두리를 넘어 선다. 일정한 교재와 방법이 어떤 다른 시기에 어떤 다른 개인들에게 효과적이었음이 입증되었다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래서 듀이는 교재와 방법이,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개인들에게 교육적인 내용을 가지는 경험을 산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2 교육목적의 측면전통적인 교육목적 혹은 목표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미래의 책임과 삶의 성공을 위한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이며, 이는 수업 자료 속에 포는 그 체계들을 새로운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 된다. 특히 교과서는 과거의 지식과 지혜를 대표하는 것이며, 교사는 학생들을 이러한 재료들과 효과적으로 연결시키는 자이다. 말하자면 교사는 지식이나 기능을 전달하고 행위 규칙을 강요하는 매개체이다.듀에 따르면, 전통적인 교육은 교육 자료를 크게 줄여서 미리 소화된 교재라는 음식물로 한정해 버렸다. 학생들은 외부로부터 처방된 그 교재를 알약으로 섭취할 것이 요구되었다. 만약 학생들이 그것을 섭취하지 않고 남겨두거나, 혹은 신체적인 게으름에 빠지고 마음이 갈피를 못 잡는 정신적인 게으름에 빠져 결국 그 교과에 대하셔 혐오감을 일으킨다면, 그 학생에게 잘못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문제가 교과내용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교재가 제시되는 방법에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없었다.4 학습자의 측면교사중심의 전통적인 교육에서는 학생의 경험이 무용지물로 간주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무감각해지고, 학습 의욕을 잃는다. 학생들은 기계적인 훈련으로 특수한 기능을 습득함으로써 새로운 상황에 지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판단력이나 능력을 제한 받게 된다. 또한 그들은 공부라면 권태나 지루함을 연상하게 된다. 전통적 교육 실제에서는 학생들이 배운 것은 학교 밖의 사회적 삶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서, 학교 밖의 삶에 대한 아무런 통제력을 길러 주지 못한다.듀이는 이러한 전통적 교육관에서 벗어나 해로운 교육철학, 즉 진보적 교육철학을 제시한다. 그는 위로부터의 부과는 개성의 표현이나 함양으로 대치된다. 외적인 훈련을 자유 활동으로 대치된다. 교재와 교사에게서 배우는 것은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것으로 대치된다. 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 교육 실제에서 이루어진 훈련을 통한 기능과 기술의 습득은 새로운 진보적 교육 실제에서는 직접적이고 생동력 있는 흥미를 자아내는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서의 기능과 기술의 습득으로 대치된다. 그리고 요원한 미래를 위한 준비로서의 교육은 현재의 삶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지만은 않다. 어떤 경험을 비교육적이기 때문에 경험과 교육이 서로 직접적으로 동일시 될 수는 없다. 어떤 경험이라도 이후의 경험의 성장을 막거나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 경험은 비교육적인 것이다.여기서 비교육적인 경험이란 무감각을 낳을 수도 있고 감수성이나 감정의 결핍을 가져올 수 있는 경험이다. 또 즐겁지만 태만하거나 부주의한 태도를 조장하는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은 수록되는 경험의 질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다른 한편으로 매우 특수하게 서로 연관되지 않은 개별적인 경험들도 비교육적일 수 있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 자체로서는 좋거나 혹은 매우 흥미로운 것들이지만, 서로 축척적으로 관련되지는 못한다. 그리하여 힘은 분산되고 그 사람은 주의가 산만해진다. 개별적인 경험은 활발하고 생생하며 흥미있는 것일지라도, 그 경험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지 않다면 인위적으로 산만하고, 분열된 습관을 만들어 낸다. 그리하여 미래의 보다 풍부한 경험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제한되고 그 결과는 또 다시 이후의 경험 영역을 좁혀 놓게 된다.경험이 교육적이냐 비교육적이냐는 경험이 가진 질 에 달려 있다. 듀이는 경험의 질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즐거움 혹은 불쾌함이라는 즉각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나중의 경험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측면이다. 전자의 경우, 교육자의 임무는 학생들이 반감을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활동에 열중하게 되는 중류의 경험을 마련하는 것이며, 그러한 경험은 바람직한 미래의 경험을 증진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즐거움을 넘어서는 것이다.후자의 경우, 누구도 혼자 살거나 혼자 죽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경험도 혼자 생겨서 혼자 없어지지는 않는다. 바램이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모든 경험은 이후의 경험 속에서 생명을 이어간다. 따라서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의 과제는 후속하는 경험 내에서 충실하고 창조적으로 살아나가게 될 그러한 종류의 현재의 경험을 선택하는 것이다.2 경험의 원리교육이 경험 내부의, 경험에 의한의 욕구나 변덕에 응할 것을 자동적으로 요구하게 되는 태도를 형성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그때마다 하고 싶어하는 바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주는 상황을 찾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난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과 인내심이 요구되는 상황을 싫어하거나, 그러한 상황에 비교적 무능력하게 된다.이러한 성질의 지속적인 경험은 이후의 경험의 질을 결정하는데 부정적이다. 반면에 어떤 경험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주도력을 강화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어려움을 극복할 만큼 충분히 강한 욕구와 목적을 이루어 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경험의 지속은 이후의 경험의 질을 결정하는데 긍정적이다. 이런 점에서 교육자의 근본적인 책임은 어떤 환경 조건에서 실제 경험이 형성되는 계속성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경험이 올바른 성장으로 인도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교육자들은 가치 있는 경험을 형성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이나 사회적 환경을 활용하고 개선 할 줄 알아야 한다.둘째로 상호작용의 원리이다. 상호작용이라는 말은, 경험의 교육적 기능과 힘을 성명하기 위한 두 번째 원리이다. 이 원리는 경험 속의 두 가지 요소, 즉 객관적 환경과 개인은 계속적으로 상호 작용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그가 관련을 맺고 있는 다른 인간 그리고 집단이라는 환경에 어떤 방식으로든지 참여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참여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간의 상호작용을 전제하고 있다. 특히 듀이는 사회적 환경과 개인간의 상호작용에 관심을 가진다. 사회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은 개인들의 마음속에 지적, 정서적 성향을 형성하고,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정한 충동을 일으키고 강화하는 활동을 하게 하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활동 속에 개인들을 참여시킨다.개개인이 사회적 환경과 상호작용 한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보면, 일련의 상황 속에서 산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한 개인과 사물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상호작용이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
    교육학| 2002.12.07| 8페이지| 1,000원| 조회(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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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주의 사관] 일본의 역사 말살정책과 민족사관 평가A좋아요
    「일본의 역사 말살정책과 민족사관」서 론일본의 역사 말살정책이란 한 마디로 과거 식민지 시대 때 일본이 가졌던 식민지 사관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은 당시 한국 침략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와 같은 사관을 펼쳤으며 이로 인해 그들의 침략정책에 또한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였으며 전혀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매우 주관적으로 역사말살정책을 이어갔다. 그리고 민족사관이란 이와 같은 일본의 식민지 사관에 대응하여 보다 민족적인 이념의 형성과 함께 한국의 국권회복과 독립의 의지를 지닌 사관이다. 비록 한일합병으로 인해 국가의 모습은 잃었다고 할 지라도 당시 우리의 조상들이 한국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서 다음의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본 론1. 일본의 역사 말살 정책(1) 식민지 사관의 특징일본이 처음으로 한국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약 19세기경이며 보다 적극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시기는 청일전쟁 이후 일제의 대륙 진출의 기운이 활발해지면서부터이다. 당시 이들은 업적을 보면 만주에서 가져온 광개토대왕비문의 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는데, 일본은 그 내용을 매우 주관적으로 해석했다. 즉, 백자의 신라는 옛날부터 식민지였으며 대대로 조공을 받쳐왔는데 외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자. 가야, 신라를 식민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임나일본부설의 제창과 함께 한국사 즉, 조선사에 있어서 논란을 제기하였다. 그 주된 내용을 보면 조선사학을 그들의 국학 한학을 배경으로 하여 한국사를 일본 고대사학의 연장부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 외에도 일본은 일본과 조선의 조상은 같다는 일성동족론을 펼치면서 조선인이 일본에 의해 흡수되는 과정을 정당화하기도 했다.이와 같이 청일 전쟁 이후 한국에 있어서 역사 말살정책을 폈던 일본은 또한 러일 전쟁을 통하여 기존의 조선 사학 중심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의미의 동양 사학으로 그 배경을 옮겼다. 즉, 지녔던 이유는 중 또 다른 하나는 바로, 만약 한반도의 역사적 범주를 만주까지 확장시킬 경우 조선은 일본의 역사 범주보다도 훨씬 더 큰 영역에 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은 조선의 역사를 한반도 내로 귀속시키면서 그들이 조선 보다 더 큰 역사적 범주를 가진다는 우월감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이러한 반도적인 것을 극복하는데 있어서의 한일합방을 한국사 전개의 새로운 계기로써 작용하였다 하여 역시 일본의 합리화와 정당화를 주장하고 있었다.두 번째로 식민지 사관의 특징은 정체사관이다. 이는 말 그대로 한민족을 정체된 민족으로 규정하고 따라서 한민족의 주제적인 역사적 발전은 없다는 이론을 펴고 있다. 특히 한국사에 있어서 청동기 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여 한국의 독자적인 국가 경영의 능력을 부정하였다. 또한 한국의 근대화에 있어서도 한국은 왕조교체 등의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구조에 아무런 발전을 가져오지 못했다고 판단 나아가 이는 근대사회로의 이행에 필요한 봉건제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한국은 전근대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는 논리를 폈다. 이렇듯 일본은 한국을 정체된 사회로 규정함으로써 한국을 근대화시키기 위한 일제의 역할과 사명을 강조하고 한국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단군이 한국을 세웠다는 단군조선 조차 부정하면서 은나라의 기자가 내려와 나라를 세운 기자조선을 조선 건국의 시작으로 보았다.세 번째로 식민지 사관의 특징을 든다면 바로 한국과 일본은 같은 선조로부터 피를 나눴다는 일선동조론이다. 이에 의한 일본의 주장은 바로 일본인 중에서 한 부류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중국화 되면서 지금의 조선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인들에게서 중국화를 제거한다면 원래의 종족인 일본인으로 되돌아온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이론은 바로 한국이 태고이래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한일합방을 합리화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한일 양국의 근친관계는 후일 내선일체로 민족말살정책의 역사적 근거를 제시한 것를 결하여 다 만 독립국의 舊夢을 추상시키는 폐가 있게 된다. (중략) 오늘의 밝은 세상이 오로지 병 합의 은혜에 因由함을 망각하고 다만 舊怨을 회상하여 도리어 改進의 기력을 失하는 염려가 없지 않다 할 것이다. 이와 같으면 어찌 조선인 동화의 목적을 달할 수 있겠는 가 (「조선반도사 편찬요지」)이는 조선 반도사 편찬을 필요로 하는 이유의 주된 것이다. 만일에 이 책의 편찬이 없다면 여하의 조선인 독립의 목적을 달성 할 수 있겠는가 하여 그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더욱 부여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당시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우리의 역사가들이 활동한 업적을 한번 살펴보자. 먼저 박은식 선생의 「韓國痛史」가 있으나, 당시 일본은 조선사를 멸하여 그 자취를 모두 쓸어버리기 위해 일본인의 취향에 맞지 않는 역사, 전기, 지리 등을 포함한 각종 서적을 분소하였다. 여기에는 현재의 「중등보급역사지지」, 「유년필독」, 「동국사략」, 「월남망국사」와 신채호 선쟁의 「을지문덕전」과 박은식 선생의 「미국독립사」, 「서사건국사」 그리고 장지연 선생의 「이태리독립사」, 「법국혁명사」 등이 포함되었다. 따라서 이 때 한국의 역사는 장지연 선생의 「유학사」와 이능화 선생의 「조선불교통사」와 같은 것만 유지되었을 뿐 정치사 종류의 서적은 불가능했었다. 따라서 많은 역사가들이 이러한 국내적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외로 망명을 갔고, 다만 당시 육당 최남선 선생은 국내에서의 활동을 유지하였다. 선생은 당시 한국에 있던 일본인들이 조선고서관행영을 만들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조선광문회를 만들고 신문관을 만들어 계몽사상의 보급에 힘쓰는 등 국내에서 활동맥락을 유지해주신 것이다.식민지 사관의 두 번째 시기는 3.1운동 이후부터 만주침략까지인데 이 시기에 일본은 조선, 동아 일보발단, 경성대학 등을 통해 한국에 있어서 문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즉, 보다 직접적이지 않은 음성적인 방법으로 한국의 역사를 말살하고자 한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일본은 초기에 시작한 조선사 편찬 작업을 활발하게 진을 바탕으로 성립된 역사학이다. 이것은 구한말 애국계몽사학을 이어 받아 박은식, 정진보, 신채호 등에 의해서 학풍으로 성립되어 1920~30년대 학문적 체계화를 이룩하였다. 이러한 민족주의 사학은 우리 민족의 주체성과 우월성을 강조하여 강력한 민족자주성을 찾아 일제에 대항하는 정신적 기반을 제공하려 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의 주 내용은 정신사과에 기초하고 있는데 비록 국가는 그 외형을 잃었다고 하더라고 그 정신만 살아있으면 민족은 살아있는 것이며 민족이 살아있다면 언젠가는 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민족주의 사학은 1910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은 국권회복을 위한 민족운동의 차원으로 이루어 졌으며 그 이후에는 국가 독립을 위한 하나의 정신사관으로 자리를 잡아 나갔다. 그럼 여기서 그 구체적인 내용을 당시 민족주의 사학의 핵심적이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알아보겠다. 우선 「韓國痛史」를 저술한 박은식을 들 수 있는데 박은식이 주장한 정신사관은 바로 신 이다. 즉, 이는 정신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는 국가의 형이 없더라고 신 즉, 정신만 있으면 우리는 다시 독립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그가 저술한 한국통사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옛사람이 이르기를 나라는 멸할 수 있으나. 역사는 멸할 수 없다고 하였으니, 대개 나 라는 형이고 역사는 신이다. 지금 한국의 형은 허물어 졌으나 신만이 존속할 수는 없 는 것인가. 이것이 통사를 저술하는 까닭이다. 신이 존속하여 멸하지 않으면 형은 부활 할 때가 있을 것이다.두 번째로는 위당 정진보가 주장한 얼 의 정신이 있다. 정진보는 「조선사 연구」에서 역사는 천번만번 변하더라도 그 척추는 바로 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얼이 죽으면 민족도 죽는 것이며 역사란 바로 이러한 얼을 찾는 모습이라고 했다.세 번째 인물로는 신채호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추상적인 신이나 혼 또는 얼 대신에 보다 구체적인 고유한 사상체계를 중시하였다. 그는 화랑도의 사상인 낭 을 한국 고유의 사상으로 선포라고 민족사의 흥망은 바로 고유사상인상은 어디까지 조선사상이다. 비록 예 로부터 조선이 중국.인도사상의 감화를 많이 받았으나 특수한 환경에서 특수한 생활을 하게 된 조선인은 구원한 역사를 통하여 일종 특수한 조선심을 형성함에 이른 것으로 서 그것이 세종에게 의하여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세종의 조선심의 대표자라고 부르고 싶다.라고 하여 우리 나라의 독특한 정식세계로서 조선심에 대한 견해는 나타냈다.이와 같은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형성된 민족주의 사학은 무엇보다도 역사를 통한 하나의 독립운동과 구국운동의 전개해 나갔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2) 사회경제주의 사학한 시대의 사상은 그 시대적 맥락에서 나오는 것인데 당시 한국은 일제의 침략에 의해서 핍박해진 생활과 과거부터 내려오던 계급과의 모순으로 인해 사회가 극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러한 사회 속에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막스와 레닌의 사상이 세계적으로 펴지면서 그 과정 속에서 한국의 일부 좌파지식인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사회경제주의 사학의 근본 이념은 봉건적 독재 및 착취의 배제와 타도를 주장했으며 또한 외세 즉, 제국주의 세력의 침입을 반대하였다. 즉, 모든 민족은 평등하며 따라서 누구도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상호간의 평등을 내세운 사학이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지배와 봉건지주의 착취아래 놓인 상태로 일본과 대등한 국가와 조선인 모두의 평등을 이루어야 한다는 민족적 과제가 주어진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상의 유입은 당연한 결과였고 이는 기존의 민족주의 사관들까지 인정하게 되었다.이와 같은 사학이 주심에 있었던 백남운은 그의 「조선사회경제사」에서우리 조선의 역사적 전개의 전과정을 가령 지리적 조건, 인종학적인 공상, 문화형태의 외형적 특징 등 다소의 차이는 인정되더라고, 외관적인 소위 특수성을 다른 문화민족 의 역사적 발전의 법칙과 구별되어야 하는 독자적인 것이 아니고 세계사적인 일원적인 역사법칙에 의하여 다른 제민족과 거의 동궤적 발전 전개를 거쳐온 것이다.라고 하여 유물사관의 공식을다.
    인문/어학| 2002.12.07| 9페이지| 1,000원| 조회(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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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Ⅰ. 미국 외교정책의 궁극적 목표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전세계 부의 50%를 소유, 태평양과 대서양 양쪽 연안에 대한 경제적 지배체제를 완성했다. 그리고 미국은 이와 같은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세계지배를 위한 나름대로의 정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미국 내의 보수 강경파를 대표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 (National Security Council) 비망록 68」의 내용을 보면, 소련 체제 안에 파멸의 씨를 싹트게 함으로써 양국간의 협상에 있어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 하고자 하는 반격전략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전략은 미국 내에서의 희생과 규율을 요구하면서 실천에 옮겨졌다.미국 내 또 다른 한쪽에서는 조지 캐넌(George Kennan)이 중심이 되는 온건파가 존재하였는데 그들이 1948년 국무성 정책팀을 위해 쓴 「정책기획연구 (Policy Planning Study 23)」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은 전세계의 6.3%의 인구로서 50%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분명 다른 국가나 민족으로부터 불만을 살수 있는 요소이기에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힘의 강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논리에서는 사회복지와 관련된 어떠한 사상도 모두 공산주의로 판명 하고있다. 따라서 이들은 공산주의의 침투와 같은 위협에 대해서는 강권 체제의 정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미국이 제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세게 제1의 경제강대국으로 성장한 만큼 그들의 계획은 치밀했다고 볼 수 있다. 2차세계대전 중 미국 국무성과 외교위원회는 주요지역 이라는 이름으로 전후 세계에 대한 계획을 발전시켰는데 여기서 주요지역이란 미국의 경제적 요구에 종속되어 움직일 만한 지역으로 중동과 천연자원의 공급처와 시장으로서 주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3세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미국은 이와 같은 주요지역에서 그들이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무력을 통한 방법도 피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 민족주의자들시에는 무장계획도 배제하지 않고 있었다. 미국의 이와 같은 정책은 1945년 이후 한국에서도 적용되었는데 미국은 해방 직후 국민에 기반을 둔 한국 정부를 해체시키고 일본 파시스트 경찰과 일제 때 미국에 협력한 일부 한국인들을 중심으로 한국을 억압하였다. 특히, 제주도의 농민 봉기 진압 시에는 무장세력을 동원되어 약 3만에서 4만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미국이 이끄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제3세계의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이다. 따라서 미국은 민족주의의 세력을 막기 위해서는 군부와 동맹을 맺고 미국에서 벗어나려는 토착세력에 대해서는 짓밟았으며 자유주의 세력에 대해서는 오직 투자가들의 권리와 보호만을 인정해주는 범위만을 허용하였지 그 이외 민중의 자유가 허용되는 경우에는 민중의 세력을 말살시켰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정부가 국민의 요구를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투자가들의 요구를 우선시하는 모순된 사회 현상을 낳았다.미국은 약하고 가난한 나라에 대해서도 간섭을 하였는데 당시 국제사회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라오스나 그라나다가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특히 미국은 라오스에서 가장 기초적인 사회혁명이 일어나자 바로 살인적인 비밀 폭격을 단행하였다. 이는 작고 가난한 나라가 국민에게 더 나음 삶을 제공한다면 다른 나라에도 그 파급효과가 미친다는 이유에서였다. 즉, 미꾸라지 한 마리가 연못을 흐린다는 생각에서 전세계가 미국의 투자가들의 뜻에 맞춰져야지 만일 그 범위를 벗어난다면 결과는 참혹한 것이었다.1970년대 들어서 세계 경제는 3개의 축으로 형성되는데 첫째로는 일본 중심의 ¥경제권이다. 일본은 제2차세계대전에서의 패전 이후에도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을 거치면서 재건의 가능성을 확대시켰다. 두 번째는 독일을 주도의 유럽 경제권인데 현재 유럽은 유럽공동시장의 형성과 유로화의 도입을 통해 세계시장에서의 주도권 확대의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미국 주도의 달러 경제권인데 이는 NAFTA{) 북미자유무역협정 [北美自由貿易協定, North A조는 단지 특권층의 이익만을 협조 할 뿐 오히려 자국민을 고문하는 라틴 아메리카 정부에 더 많이 분배되는 불균형의 추세에 있다. 또한 미국은 미국 투자가들의 요구에 맞는 동맹만을 추구한다. 이는 이와 같은 정책은 수출을 위해 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반발이 일어날 경우 정부의 테러와 고문을 이용 진압한다. 여기서 테러란 먼저 경찰을 이용 국민을 진압한 다음 군부를 이용한다. 이는 항상 미국이 타국의 군부와 친분을 쌓아두는 이유이기도 한데 군부의 이용 같은 경우 정부의 정복의 방법으로도 사용된다. 이와 같은 무력의 방법이외에도 경제를 파탄시키는 경제전쟁이 있는데 이는 한 국가의 경제가 파탄될 경우 결국 그 책임은 국민들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 방법 또한 정부의 정복에 효율적이 방법으로 이용되었다. 특히 경제 파탄 이후 등장하는 IMF{) 국제통화기금 [國際通貨基金, International Monetary Fund]세계무역 안정을 목적으로 설립한 국제금융기구. 세계무역의 안정된 확대를 통하여 가맹국의 고용증대, 소득증가, 생산자원 개발에 기여는 자유화를 강요하며 외세의 개입과 그들을 허용하는 경제를 강요하기 때문에 미국 투자가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도 과거 IMF체제하에 경제 구조정책에 들어갔는데 당연히 모든 구조가 외국 투자가들로 하여금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이익을 벌어가게끔 하는 것이었다.미국이 해외에서의 정책의 경우를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엘살바도르는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독재자들이 국민을 억압, 고문, 살인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 독재가 Somoza가 실권을 상실함으로써 미국은 통치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 또한 교회 소속 성경모임과 같은 민중조직이 싹틈으로써 민주주의라는 위협이 증가하였다. 이에 미국은 1980년 대주교 오스카 로메로(Oscas Romero)가 군사 원조의 중지를 요구하자 그를 암살하였으며 암살 2주전에는 엘살바도르를 봉쇄하고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였다전에 그 씨앗을 잘라 나른 나라에 본보기로써 보여주고자 함이었다.과테말라는 1944년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을 토대로 한 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어 자주적 경제 발전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미국은 이를 민주주의의 위험성 있는 바이러스로 표현하고 과테말라가 공산주의를 박멸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CIA는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시키고 과테말라를 도살장으로 즉, 종족 말살의 대대적인 학살을 가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당연히 미국 언론에는 보도조차 되지 않았으며 과테말라 신문사는 폭발 당하였다.파나마의 경우도 위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파나마는 전통적으로 소수 유럽 특권층에 의해 통치를 받았다. 그러나 1968년 오마르 토리호스가 쿠데타를 성공해 정권을 잡았으나 이후 사고사로 죽고 1983년 마누엘 노리에가(Manuel Oriega)정권을 잡았다. 노리에가는 마약 밀매에 관여하면서 부정 선거 등을 단행하였으나 미국은 노리에가가 미국에 협조를 한다는 조건으로 눈감아 주었다. 하지만 1980년대 중순 노리에가가 미국의 협조에 느슨해지고 파나마 운하와 관련된 관리권이 2000년으로 완전히 파나마로 넘어가는 상황이 되자 이제는 좀더 조정이 수월한 정권이 필요하였다. 따라서 노리에가를 제거하기 위해 먼저 경제 파괴를 시도하였고 이어 군사 쿠데타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군사 쿠데타는 실패하고 대신 정권은 다시 부유한 백인 층에게로 넘어갔다. 즉, 미국은 자신들에게 이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모든 부정을 눈감아주나 아닐 경우에는 부정을 폭로하고 이익이 있는 한 잔인한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파나마의 경우에서도 단지 미국의 심복자만이 바뀌었을 뿐 독재라는 정치적 상황은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미국은 아시아 쪽에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특히 성공적 발전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보기를 두려워해 인도차이나에서도 똑같은 유형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즉, 미국의 제3세게 전략은 바이러스를 제거 한 후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베트남 전쟁이 있는데 미국은 베트남에서 자주적 발상 미국에 대항하는 제3세계를 제압하는데 있어서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는 폭력의 광장에서 분쟁을 해결하기를 원했다. 즉, 미국은 외교적 우단이 위기를 완화시킬 것을 두려워했으며, 따라서 전쟁을 준비하는 동안 줄곧 연계문제들에 대한 외교를 막았다. 그리고 외교를 거부함으로써 페르시아 만에서의 주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으며 미국의 지배적 위치도 강화시킬 수 있었다.동유럽에서도 미국은 그 영향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1980년대 소련의 세력이 물러감에 따라 더욱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동유럽은 1980년대 제국의 세력이 물러나고 대중운동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련은 이와 같은 대중운동을 오히려 지지하였으며 과거 폭력 사용도 사과하였다. 따라서 소련과 동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한 상태이며 대신 독일이 이끄는 서유럽과 안전지대에서 대기하고 있는 일본 그리고 행동 개시를 서두르는 미국의 손 바로 앞에 놓여 있다. 특히, 미국은 동유럽을 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즉, IMF체제를 동유럽이 받아들일 경우 동유럽에 대한 착취는 보다 손쉬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이와 같이 미국은 세계를 상대로 경제전쟁이라는 효과적 무기를 통해 싸우면서 세계 제일의 경제국이라는 위치에 올라가 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불법적 경제 봉쇄와 약소국에게만 IMF규정을 강요하는 등 자연적 법칙이 아닌 힘의 논리를 사용해 왔다. 그리고 그 힘은 현재 소련의 붕괴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더욱 자유롭게 이용되고 있다. 미국이 추구하는 목적은 제3세계 대중들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하기에 미국은 모든 문제의 해결 방법에서 외교적 해결보다는 힘의 논리를 추구한다. 따라서 미국은 흔히 다른 국가 특히 약소국과의 협상을 피하고자 한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부시 행정부가 제재나 외교의 방법은 제쳐놓은 채 군사력만을 주요한 정책 수단으로 택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볼 수 있을 것이다.Ⅲ. 국내에서의 세뇌미국의 관심사는 겉으로는 국가 안보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대중운동을 지휘이다.
    사회과학| 2002.12.07| 6페이지| 1,000원| 조회(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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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주의자의 꿈 평가A좋아요
    서 론1990년대까지 세계 경제 대국이라고 불리 오던 일본은 과거의 화려했던 그 모습을 분명 잃어가고 있다. 90년대 나타난 한국의 IMF와 함께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의 경제 위기 속에서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이었던 일본은 과거의 그 화려했던 위상에도 불구하고 1991년 이후에 와서는 내리막길을 피하지 못했다. 주가와 지가는 무려 7~8년간 장기침체와 장기하락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였으며, 1997년 가을에 이르러서는 일본이 그렇게도 자랑했던 금융분야에 있어서의 파산까지 현실로 다가왔다. 이는 전후 일본이 가진 경제시스템적인 문제와 함께 당시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기 시작한 일본자체에 대한 신화에서부터 그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45년 이후 정착된 일본의 경제시스템은, 그 성공담이 신화의 수준까지 이를 정도로 성장그래프가 거의 상향직선을 그리고 있다. 기업경영자, 노동자, 소비자, 행정관료와 학자, 언론매체에 이르기까지 일본경제와 관련된 현상은 일본신화에 의해 일어나고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일본경제와 관련된 일본신화의 대표주자는 주식신화, 토지신화, 금융신화의 세 가지이며, 이와 더불어 일본식 경영신화와 일본사령탑신화(재,정,관 삼위일체신화)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1989년 사상최고치를 기록한 닛케이지수가 1990년대 들어와서는 초폭락으로 이어지면서 주식신화가 붕괴가 붕괴되었으며, 2년 후에는 이를 이어 토지신화의 붕괴가 그리고 이와 함께 전후 사회에서부터 이어져왔던 일본 사의 거품이 사라지면서 나타난 금융기간의 불신은 일본 경제의 몰락에 있어서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이와 같이 일본의 거품 경제가 사라지면서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는 알게 모르게 아니 어쩌면 보다 적극적으로 과거 메이지 시대를 비롯한 과거 팽창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내가 이번에 읽은 책인 『일본주의자의 꿈』 이 바로 이와 같은 일본인들의 일본주의를 향한 꿈에 대해서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인 시바 료타로를 비롯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회에서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허망한 의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물론 작가는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전혀 없는 일본의 여러 국수주의적인 주장들을 객관적으로 때로는 조금은 포용적인 성격을 뛰면서 비판하고 있다. 나 또한 어느 정도 시기를 두고 계속적으로 이어져 오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 독도의 영유권 문제, 위안부 문제 그리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한일 두 나라 사이의 과거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를 볼 때마다 도대체 저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의 구조와 그들 사회 속에 내재되어 있는 역사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를 알고 싶었는데 『일본주의의 꿈』 이라는 책은 그러한 면에 있어서는 나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럼 다음에서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들을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본 론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의식구조 속에 공통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요소가 있다면 이는 바로 일본의 자만과 자기 중심적 사고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과거에 있어서는 침략전쟁을 일으킨 하나의 배경이 되었으며 현재에 와서는 『일본주의자의 꿈』에서 일본주의라고 일컫는 새로운 이념의 기초가 되었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책에 나와 있는 기러기 행렬형 모델 즉, 모든 경제, 문화 등 사회적인 면에 있어서 일본이 그 중심으로서 주변 국가들을 이끌어 나간다는 주장과 현대판 일본아시아주의를 들 수 있겠다. 책 속에서 작가인 김용범씨는 물론 이와 같은 주장에 객관적인 근거와 함께 때로는 약간의 포용적인 성격을 뛰면서 비판하고 있다.먼저 기러기 행렬형 모델이란 기러기들이 떼지어 날아갈 때 형성되는 행렬의 모양처럼 동아시아의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일본을 선두 기러기로 앞세워 따라가게 된다는 연쇄적 경제발전 방식을 말한다. 여기서 일본은 발전의 동력을 일으키는 기동축이 되고, 한국은 전파축이 되어 경제발전의 힘을 동남아시아로 전파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발상법에는 수직적 인간관계의 사회구조를 지닌 일본사회의 가부장적 잔영이 깊게 깔려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아직 사고에서 동아시아를 주도해 나가는 기동축이라는 점은 작가가 지적 한 봐와 이미 그 한계점에 이르렀다. 중국과 한국보다도 메이지 시대를 거치면서 개항을 통한 서구화와 근대화를 먼저 한 일본이 다른 동아시아의 나라들보다 먼저 경제 발전에 도달 한 것은 사실이나 이를 통해 다른 여러 주변국가들을 이끌어 나갔다는 점은 지극히 그들의 입장과 시각에서만 역사를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이 다른 주변 국가들에게 안겨준 경제적 이익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보다도 일본 경제 발전에 따른 희생양 역할을 한 국가와 민족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 역시 메이지 시대{) 메이지 시대는 일본의 근대적 통일국가가 형성된 시기이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성립하 였고, 정치적으로는 입헌정치가 개시되었으며, 사회 ·문화적으로는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또,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천황제적 절대주의를 국가구조의 전분야에 실현시키게 되었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국가를 이룩한 일본은 구미에 대한 굴종적 태도와는 달리 아 시아 여러 나라에 대해서는 강압적 ·침략적 태도로 나왔다. 1894년의 청일전쟁 도발, 1904년 의 노일전쟁의 도발은 그 대표적인 예이며, 그 다음 단계가 무력으로 한국을 병합한 것이다.이후 팽창한 일본의 힘 앞에 식민지 시대를 맞이했을 뿐 아니라 현대 사회에 와서도 일본 제품 생산의 소비 시장으로서 일본에 의한 경제적 손실을 무시 할 수 없을 것이다.이미 앞에서도 언급한 식민지근대화론을 잠깐 살펴본다면 즉, 일본이 한반도와 대륙 침략을 위해 설치한 생산 기반 시설들을 침략에 의한 식민지 시대를 완전 무시한 채 단지 70, 80년대 한국 경제에 이바지를 했다는 점에만 그 초점을 맞춘다면 이는 분명 오류가 있는 주장인 것이다. 역사는 중립적인 시각을 가지고 그 역사가의 역사의식이 반영되는 것이지 단지 편파적인 시각만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올바른 역사가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일본인들의 자기 중심적 사고의 또 다른 예로는 책에서 언급한 현대판 일본아시주의란 한마디로 일본 중심주의 또는 일본우월주의로 풀어서 설명할 수 있다. 즉, 앞에서 말한 자기 중심적이며 자만적인 성격을 뛴 일본인들의 의식구조를 한마디로 표현한 단어가 아닐 듯 싶다. 그렇다면 일본아시아주의를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아시아를 일본의 하위구조에 넣고, 그 위에 선 일본의 위대함과 자신감을 표현한 말이라고 이해해도 될 듯 싶다. 이에 대해 보다 구체적 설명으로는 원래 아시아주의는 메이지 국가가 한반도와 중국대륙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데 기반이 된 침략사상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메이지 유신의 일등공신인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한론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을 치자는 의미의 이 정한론에서부터 발원한 아시아주의는 이후 아시아에 대해 위대한 사명과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일본이라는 주장과 함께 정아론으로까지 그 줄기를 이어간 것이다.이와 같은 일본아시아주의에 대해서 저자는 기본적으로 제국주의적인 일본민족주의, 일본정신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인의 선민의식을 바탕에 깐 채 왜곡된 아시아관을 전개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라고 강조하고 있는 일본은 분명 겉으로는 아시아가 지배하는 세계를 꿈꾸는 듯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내면에는 분명 지난 과거의 대륙팽창시기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나오는 허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이렇듯 일본인들의 의식구조 특히 역사인식에 있어서는 극히 자기 중심적인 성향을 나타내는데 이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로 연결 지어지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이런 의식을 가질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자면 책에서는 바로 일본의 국민작가라고 할 수 있는 시바 료타로{) 후쿠오카현[福岡縣] 출생. 와세다대학교 문과를 중퇴하였다. 1909년 시집 《사종문(邪宗 門)》을 간행하여 그의 지위를 확보하고 계속 남국적 정서가 풍기는 강렬한 감각의 시집 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한편 1918년에 스즈키 미에키치[鈴木三重吉]와 함께 《빨간 새》 를 중심으로 한 동요운동을 시작하였고, 고 있다. 그는 일본의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소설 작가가 아닌 일본인들에게 새로운 역사인식을 파급할 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역사가로서 인식되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지니고 있었던 역사인식의 방법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 그는 과거사를 정리할 때 자신이 취하고 싶은 부분만을 취득, 이를 서술하였다. 즉, 시바 사관의 새로운 역사 읽기는 메이지의 밝은 면만을 찬양한 나머지 메이지의 어두운 면, 구체적으로 말하면 메이지의 대외 팽창주의와 침략행동에는 을 눈감고 만 것이다. 시바는 침략전쟁인 러일 전쟁을 조국방위전쟁으로 호도했고, 한반도의 일본 식민지화를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 속에서 빚어진 어쩔 수 없는 결과 불가피한 결과로 정당화했다. 하지만 이와 같이 잘못된 역사인식방법에서부터 비롯된 그의 저서들은 일본 국민들의 광범위한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특히 비즈니스맨과 경영자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경영 철학서로서 그 위치를 다지면서 일본인들의 민족주의적인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하나의 국수주의적인 역사인식을 가지고 온 것이다.시바 료타로가 가지고 있는 국수주의적 사고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앞에서 언급한 메이지 시대와 함께 러일 전쟁을 조국방위전쟁으로 미화시킴으로서 한반도를 비롯한 중국대륙침략의 정당화이다. 특히, 러일전쟁을 배경으로 내용을 전재한 시바의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은 동양의 작은 나라가 서구의 나라를 이긴 기적과도 같은 전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이 러시아를 이겼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접어두고서라도 그들이 이를 조국방위전쟁이라고 일컫는 점은 특히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용납이 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러시하의 남침을 방어하기 위했음을 강조 그들의 전쟁을 정당화 뿐 아니라 일종의 영웅의식까지도 포함시켜 일본의 위대함 만인에게 알리는 시바의 소설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인 한반도 즉,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장소가 바로 한반도였음을 간과하고 있다. 러일전쟁은 분명 한반도 침략을 위다.
    인문/어학| 2002.12.07| 6페이지| 1,000원| 조회(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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