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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주거환경계획] 산업혁명과 도시화시대 평가A좋아요
    ?산업혁명과 도시화시대1.산업혁명의 전개와 도시화 현상?18세기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인한 공업화사회의 도래는 사회구조의 변화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고, 서구사회는 도시화, 산업화된 근대사회로 진입?산업혁명의 필연적 결과로 도시규모 확대, 인구 증가와 주택문제가 심화됨-->서민 주거지역의 위생상태를 비롯한 전반적인 환경의 질은 최악-->지하주거가 성행, 최소한의 시설도 갖추지 않은 간이숙소 및 임대용 주거공간들이 난립백투백(back-to-back)이라는 툭이한 유형의 노동자주택이 등장-->심각한 물의 부족과 오물처리의 어려움=====>사망율 증가?19세기 중반부터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행해지기 시작?1848년 ?공중위생법(Public Health Act)?이 제정되어 주거환경을 비롯한 전제적인 도시환경에 대해 규제와 통제?지방도시들도 조례를 제정하여 주거환경을 개선하기위한 제도적장치를 마련-->조례주택(by-law housing)이 확산?환경의 균질화라는 부작용을 초래?혼잡하고 황폐해진 도시에 계획과 질서의 개념을 부여?중산계층들은 도시의 황폐화와 슬럼화를 피해 교외로 이주시작-->도시들의 규모가 빠르게 확장-->1850년 이후 도심과 교외를 잇는 철도망이 확충된 소위 교통혁명에 의해 가능?도시인구의 이동추세는 19세기말 호워드에 의해 주창된 전원도시운동과 연결?20세기의 신도시운동으로까지 이어지는 탈도시화의 초기현상?런던을 위시한 대도시에 5,6층 규모의 임대용 아파트가 건축되기 시작-->중층 아파트가 도시주택의 새로운 유형으로 정착되기 시작-->20세기 근대건축운동의 전개와 함께 소위 국제화한 주거형식으로 정착2. 산업혁명기의 영국의 노동자주택?19세기 버넷의 노동자계층의 주겨형식 분류?지하주거(cellar dwelling)--------------??간이숙소(loading house) ??셋집(tenement house) ?--->노동자주택의 일반적인 유형?백투백주택(back-to-back) ??테라스하우스(terrace house)의 주요도시들은 독자적인 건축규제를 시행하거나 ‘공중위생법’에 근거한 조례를 제정-->백투백 주택의 건축을 방지하거나 또는 적어도 규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주택 주변의 공간과 길의 폭 등을 규제하는 데 중점, 급배수시설에 대한 규제를 행함으 로 한경의 질적 향상에 큰 도움-->도시 내부에 공간적인 여유와 융통성을 부여하고 주택 내부의 위생적 측면에서 많은 진전?부정적인 결과로써 소위 ‘조례주택’이 일률적으로 건축-->법이 정한 최소한의 규정에 맞추어서 주택을 대량으로 건설함으로써 주거환경의 균일화 와 하향 평준화가 이루어짐-->건축의 질이 위생적 기준이나 구조적 기준에 의해서 결정되어버리는 결과를 초래?어떤경우든 백투백 주택을 대신하여 전후면이 서로 통하는 서민용 타운하우스의 전형적인 형식으로 정착?건축규제에 의한 조례주택의 일반화는 서민계층의 주거환경 향상에 상당한 기여?조례에 의한 서민용 타운하우스가 일반화되면서 노동자 주택을 비롯한 서민주택의규모가 확장?서민용 타운하우스의 평면구성은 기능적인 측면보다는 경제적 측면에 의해 결정?조례에 의해서 일반화된 서민용 타운하우스는 새롭게 개발되는 주거지역에 광범위하게 적용-->1870년대 이후 런던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의 교외로의 확장에 이 주거유형이 광범위하게 적용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영국 도시주택의 기본적인 유형으로 남게 됨?20세기 접어들면서 조례주택의 일반화는 전원도시운동의 주창자들로부터 혹심한 비판을 받게됨-->첫째, 제정된 법규들이 가로의 구성을 필요 이상으로 엄격하게 규제하여 지극히 천편일률적 인 가로 패턴을 초래했다-->둘째, 조례주택이 그 전면 폭에 비해 내부로 너무 깊이 들어감에 따라 주택 내부가 어둡고 침침해짐4. 중산층 교외주택의 확산과 도심 아파트의 등장?19세기 중반부터 과밀화되고 더러운 도심을 떠나서 전원에서의 쾌적한 생활을 추구?영국은 교위의 단독주택이,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등에서는 교외의 주택과 더불어 도심에서는 중 층 아파트가 일반화 됨-->도시의 지리적 팽창과 더불어 더욱 유가 있었음-->도시화 현상이 현저해지면서 주거지역의 우생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개선하기 위한 법적 규제를 미리부터 마련함으로써 주거지역의 심각한 슬럼화에 대비할 수 있었지만 서민주거지역에서의 위생 문제는 매우 심각, 전염병도 빈번하게 발생-->1860년대 이후 건축가를 위시한 환경개혁가들은 도시에 적합한 주거유형을 강구하기 시작했고, 결국 위생적인 측면에서 양호한 도시형 아파트가 개발?독일의 경우 초기의 노동자주택은 영국에서 시범주택으로 건축되었던 노동자용 아파트에서 영향을 받음-->1860년대 이후 노동자용 아파트들이 여러 곳에 건축됨(베를린 주택사업협회에 의해 주도됨)-->대상 계층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식을 취함-->소형 아파트에서 탈피하여, 규모가 큰 중복도형의 대형 아파트 또는 미음자형의 블록을 구성하는 중정형 아파트로 발전-->이후부터 독일의 아파트는 주로 중앙에 중정이 형성되는 블록형으로 정착?1880년대에는 베를린의 새로운 도시계획에 따라 폭이 좁고 안으로 긴 대형부지가 양산되면서 한 대 지내에 여러 개의 중정이 연속해서 배열되는 대규모 주거단지가 곳곳에 생겨나게 됨-->민간 개발업자들에 의해 개발됨에따라 위생적으로 매우 열악한 환경을 형성-->고에크의 주동으로 새로운 노동자용 아파트 유형이 제시되기 시작->건물 전체 형상은 종래와 같 은 복합중정형을 취했으나, 계단의 수를 늘리고 코너에 위치한 주택의 평면을 세심하게 처리함으 로써 채광 및 통풍의 문제를 극복하고 훨씬 개선된 주거환경을 제시?고에크와 메셀에 의해서 제시된 개방된 중정형 아파트 개념은 1895년에 형성된 비영리 구빈 기관의 주선에 의해 베를린의 여러 지역에서 실현됨-->이후 대규모의 서민용 주거단지 개발을 위한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했고, 서민용 아파트라도 교외 의 단독주택에 버금가는 환경적 수준을 달성할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근대건축가들의 서민용 아파트 계획에 이념적, 계획적 선례를 제공?185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도 도시 내의 위생문제가 최대 이슈로 부각-> 관련된 법규가 급한 과제?20세기 전후해서 과밀한 도시와 주거문제의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개념과 계획안들이 제시-->호워드의 ‘전원도시’개념: 대도시와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지역에 전원과 도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는 자족적인 도시를 건설낭만적이며 반 도시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한 이 개념은 20세기 주거환경계획에 가장 강 력한 영향을 미친 개념들 중의 하나1899년 영국에서 ‘전원도시 협의회’가 결성1903년 레치워스를 대상으로 전원도시의 구체적인 실현이 시도, 전원도시운동이 전개됨-->가르니에의 ‘공업도시 계획안’?일차대전의 종결과 함께 소위 근대건축운동이 전개-->도덕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황폐해진 사회를 새로운 물리적 환경의 보급을 통해서 개혁-->기계문명이 가진 논리성과 속도감에 기반을 둔 새로운 환경을 추구-->철학적 명제로서 ‘시대정신’의 개념을 설정, 슬로건으로서 ‘새로운 정신’ 제시-->기계의 기능과 건축생산을 연계, 소위 기능주의를 환경 창조의 첫 번째 수단으로 설정-->이상적 주거의 개념: 공업생산이 가능하고 적절한 채광과 통풍 등 위생적 요구를 충족-->주거환경에 있어서 사회적인 요구의 중요성은 개인적인 요구에 비해서 격하, 무시-->근대건축가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환경은 단위주거=>주거공간의 최소화 도모-->1927년 슈우드가르트에서 독일공작연맹 주최로 열린 ‘주택전시회’에서 근대건축가들의새로운 주거 개념이 처음으로 가시화 됨그로피우스는 조립화의 가능성을 제시, 르 코르뷔지에는 필로티와 개방적 평면 개념을 제시전시회에서 소개된 주택들은 철근콘크리트로 구축되었고,‘기능적’으로 계획되었으며, 새로 운 생활을 담는 주택==>라 사라즈에서 근대건축 국제회의 결성, ‘주거-단지-도시계획’그리고‘합리적 계획’과 ‘표준화’를 주요 주제로 하여 공동의 활동을 전개==>주거의 양적 부족현상을 개선하는데 결정적인 기여주거유형에 있어서 역사적 연속성을 간과 -> 소위 유형적 혁명이라는 부정적결과를 초래평균적 인간을 위한 평균적 주거유형 창출, 하나의 전형으로 작용성과 기능적 우위성을 강조-->소외감을 줄이기 위해서 사회적 교류와 공동의 서비스가 가능한 커뮤니티 공간이 형성되어야함 =>거대한 녹지공간과 레저시설로써 응답-->주택 내부의 가사용 시설을 최소화하는 대신 시설을 공동화함으로써 주부는 비효율적인 가사 노동에서 해방?‘살기 위한 기계’로서의 주택-->합리적으로 설계된 주택은 가 지역의 여러 가지 상황에 관계없이 효율적으로 기능해야 하고, 모든 기후 조건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어야 하는 것-->대중소비사회의 문화적, 기술적 보편화 현상에 잘 부합-->‘기초위에 축조된 바닥과 견고하게 방수처리된 천장, 그리고 빛이 통하거나 통하지 않아도 무방한 벽’으로 구성되는 단순한 주거형태==>‘도미노 주택’은 이러한 개념에 따라 제시 됨콘크리트 공법을 염두에 두고 계획, 내부공간은 구조체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자유로운 공간 구획을 가능=>‘건축의 5원칙’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구조체구조체로 디자인된 것이며, 외부 및 내부의 공간구성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1920년 전후 도미노 주택의 실제 모델로서‘시트로앙 주택’을 제시-->‘자동차와 같은 주택’이란 의미 함축==>주택도 자동차 생산과 같은 방식으로 대량 생산 될 수 있음?1922년‘삼백만 인을 위한 도시’를 통해 집단을 위한 주거 환경의 모델을 제시-->현대사회에 걸맞는 도시의 표준으로 제시되었으나, 개념적으로 매우 급진적이며 혁명적-->미래지향적인 도시구성 원리와 함께 과거의 도시구성 원리 또한 반영-->요철형의 선형주택: 외부공간을 둘러싸는 요철형의 굴곡을 가지는 거대한 규모의 집합주택시설의 공동화와 집합화가 강조중정을 둘러싸는 블록형 집합주택: 독립주택의 공간요소가 모두 반영도시주택의 기본형으로 정착되어 오늘날까지 지속4. 일자형 아파트의 등장과 그 일반화 과정?1920년대 이후 새로이 등장한 집합주택의 형식은 일자형의 중층아파트-->종래의 중정형 집합주택에서 더욱 개방적으로 변화한 형식, 독일에서 시작-->1920년대 초반 헤슬러는 일련의 중,저층 주거단 방식
    공학/기술| 2005.03.18| 13페이지| 1,500원| 조회(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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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건축이란 평가A좋아요
    건축이란...요약사람이나 물품 ·기계설비 등을 수용하기 위한 구축물(構築物)의 총칭.본문건축이란 인간의 여러 가지 생활을 담기 위한 기술 ·구조 및 기능을 수단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공간예술이다. 건축은 용도라는 목적성에 적합하여야 하며, 적절한 재료를 가장 합리적인 형식을 취하여 안전하게 이룩되어야 한다. 이로써 건축의 본질은 쾌적하고도 안전한 생활의 영위를 위한 기술적인 전개와 함께, 공간 자체가 예술적인 감흥을 가진 창조성의 의미를 가진다. 이 공간예술을 다루는 작가, 즉 건축가의 입장에 있어서 건축의 공간은 실용적 대상이고, 3차원의 지각적(知覺的) 대상이며, 자기인식의 실존적 대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단순한 건조기술(建造技術)을 구사하여 만들어진 결과로서의 구축물을 건물(building)이라 하고, 공간을 이루는 작가의 조형의지(造形意志)가 담긴 구축의 결과를 건축으로 표현하고 있다.N.페프스너는 이 건축과 건물이라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차고(車庫)는 건물이고, 대성당(大聖堂)은 하나의 건축이다. 사람이 들어가는 데 충분한 넓이를 갖춘 것은 모두 건물이지만, 건축이라는 말은 미적 감동을 목표로 설계된 건물에만 사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의 생활을 위해 건조되는 댐 ·교량 등의 토목구조물은 건축에 포함되지 않으며, 분묘 ·탑 ·기념비 등도 역시 건축과 유사한 방법으로 구조되나, 인간의 생활을 담는 기능이 아니므로 또한 건축과 구별해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건축을 이루는 요소는, 매우 다양한 결합으로 판단되나, 대체로 다음의 3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① 예술적 감흥을 목표로 하는 공간형태(空間形態), ② 진실하고도 견실한 구조기술(構造技術), ③ 편리성과 유용성으로서의 기능이다.다만 이와 같은 3가지 요소는 낱낱의 성질로서 남는 것이 아니며, 개별적인 해결로써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건축의 3요소는 서로가 상호 완결적인 관계로서 종합적으로 이루어질 속성에 있는 것이다. 인간생활과 공간과 기능을 엮어내는 작업을 설계(設計)가장 추상적인 단계에서 구체적인 형상으로 끌어 올리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먼저 계획과정이란, 사실상 건축의 당해 문제에 따라 채택방법이 다르나, 보편적으로 착상(着想)→분석(分析)→종합(綜合)→전개(展開)→이상화(理想化)라는 기본적인 틀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목표로 하고자 하는 건축의 성격은 이 기본계획 과정에서 대부분 이루어지게 되며, 거의 한 건축가의 모든 역량이 발휘되어 건축적인 성과를 가름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계획설계가 완성되면, 이를 바탕으로 하여 실제적으로 공사에 임할 수 있는 실시 설계도를 작성한다.이 설계도란 마치 교향악단에서의 악보와 같은 것으로서, 가급적 면밀한 내용을 정확히 기술하지 않으면 안된다. 설계도의 내용은 토목·구조·건축·가구·실내장식·전기·위생·냉난방 기계설비 그리고 조경(造景)을 대상으로 하는 설계도와 시방서(示方書)·내역서 등을 포함하여 작성하는 작업이다. 물론 설계자는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있어서도 시공자에게 해석하여 주고, 설계 당시에 없던 문제점이 발견되면, 현장에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감리과정이 뒤따른다. 이 감리과정 역시 공사가 설계도대로 이행되는지를 감독하고, 공사의 정밀도, 공사결과의 하자요인을 예방하게 하는 중요한 작업이다.3. 구조건축은 우선 물리적으로 토지에 정착하여, 바닥·벽·지붕의 요소를 결합하는 공간의 구축수단으로 이루어진다. 즉 건축의 구조는 건축에 미치는 자연 또는 인위적인 여러 현상을 합리적으로 이어 짜맞추는 방법으로서, 구조공학은 수학과 역학(力學)에서 출발하여 응용역학·재료역학·구조역학 등의 분야를 포함한다. 사실상 건축이란 이와 같이 여러 분야에서 모색하는 가장 안전하고 내구적이며,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종합적 수단을 통하지 않고서는 최선의 건축이란 불가능하다. 이는 결국 건축이란 그 과정이야 어떻든 만들어진 종국적인 결과로서 존재가치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건축의 구조는 구체적인 양상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세분할 수 있다. 구체재료(軀體材料)에 의한 분류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은신처(shelter)로서, 소극적이나마 권역을 공간으로 구축하게 되었고, 그 후 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발전의 역사를 이루어왔다. 이 발전의 역사는 물론 매우 진취적인 경험을 통해 이룩되어 왔던 시기도 있었으나, 사회적인 영향에 따라 침체한 시대도 있었다. 양식적(樣式的) 관점에서 볼 때, 대체로 건축이 그 양식적 기원(起源)에서부터 근대건축에 이르는 사이, 항상 이원적(二元的)인 발전과정을 거듭해 왔다고 보여진다.즉, 건축예술은 이지적(理智的)인 양상과 감성적(感性的)인 양상을 반복하며 이루어져 왔다. 그리스의 건축이 그들의 합리적이고도 순수한 이성(理性)의 문화와 함께 가장 이지적인 고전성(古典性)을 남긴 데 비하여, 로마의 건축은 보다 감각적인 이상의 추구로 건축을 완성한 것 같다. 다시 르네상스의 건축이 보다 이지적인 사고의 결과였다면, 이에 비하여 바로크의 정신이란 상대적으로 훨씬 감성적인 목표에 있었던 것 같다. 더욱이 건축의 역사는 항시 이지적인 것 다음에 감성적인 것, 고전적인 것 다음에 바로크적인 것, 합리적인 것 다음에는 관능적인 것 같은 이원성이 반복하고 회귀(回歸)하는 주기성을 가지고 진화해왔다.6. 서양건축사건축의 원류(源流)는 인간의 가장 원시적 생활영역인 주거의 양상에서부터 나타나며, 대체로 구석기시대의 동굴주거에서부터 수혈주거(竪穴住居)로 발전되어 가는 과정을 찾을 수 있다. 프랑스의 퐁 드 곰(Font de:Gaume), 르 콩바로(Le Combareaus), 에스파냐의 알타미라(Altamira), 카스틸로(Castillo) 등은 동굴주거의 유구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이다. 신석기시대는 주거의 취락형성을 이루게 되었으며, 구조의 기술이 발달하여 점차 항상주거(杭上住居) ·수상주거(水上住居) 등이 지역적 환경에 대처하여 출현하게 되었다. 청동기시대(BC 2200~BC 1200)에는 목재가공법이 발전되어 왔고, 그 중 후기(BC 1700~BC 1200)에는 본격적인 목조건축이 맞춤법을 합리적으로 구사하며 지어지게 오랜 건축사의 조형(造形)의 표본이 되고 있다. 이오니아식 신전은 아테네의 에렉테이온 신전(Erechtheion temple, BC 420∼BC 393)과 아르테미스 신전(BC 356), 미레투스의 아폴로 디 디메우스 신전이 있다. 코린트식 신전은 아테네의 올림피에이온(Olympieion, BC 174)이 대표적이다. 로마는 세계 제패의 이상을 구현하는 것이 꿈이었으므로, 건축은 그리스의 것과 비교하여 심오하고 세련된 예술성보다는 규모의 방대함과 호화로움을 자랑한다. 재료면에서는 방대한 공사량의 건축을 완성하는 데 있어 대리석만으로는 불가능하여 테라코타 ·석재 ·벽돌 등을 같이 사용하였으며, 로마 부근에서 생산되는 석회암을 주재료로 하였다.로마 건축에서는 볼트 구조법을 체계화하여 반원 볼트(tunnel vault) ·교차 볼트(cross vault) ·구면 돔(cupola) 등의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에트러스컨 건축의 개선문(Arch of Augustus, BC 3)과, 로마의 주피터 카피톨리누스 신전(Jupiter Capitolinus temple, BC 509) 등이 있다. 로마 건축은 포룸 신전(Forum) ·바실리카(Basilica) ·공동욕장(Thermae) ·극장 ·원형투기장 ·경기장 ·개선문과, 궁성으로는 로마의 판테온(Pantheon), 로마의 카라칼라 욕장(211∼217), 로마의 콜로세움(Colosseum) 등이 현재까지도 유구로 남아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초기 그리스도교 시대 건축은 고대가 중세로 옮겨지는 과도기의 건축이었다. 건축양식상으로는 로마 건축의 계승이고, 로마가 멸망한 뒤에는 로마의 문화적 유산과 영향이 그리스도교 정신 밑에서 개변(改變)되어 새로운 건축양식 창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건축은 고대 로마의 전통과 기술을 계승하여, 교회당은 로마의 바실리카를 기본으로 삼았고, 전형적인 양식화로서 완성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 밖의 건축적인 내용으로서는 로마 신전의 기둥을 그대로 실내에 이용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기둥이나 엔타블레이튜어 사용은 그 시대의 요구에 적합하도록 새로운 고안을 하게 되었다.이탈리아는 B.셀리니, L.기베르티, 도나텔로, F.브루넬레스키 같은 장인(匠人)과 예술가들이 건축을 완성하는 데 협력하여 최고의 예술품으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건축물은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플로렌스의 성로렌초성당(1425), L.B.알베르티가 설계한 플로렌스의 성마리아노벨라(St. Maria Novella), D.브라만테가 설계한 로마의 칸셀레리아궁(Palazzo della Cancelleria, 1495~1505) 등과 S.라파엘로, G.B.비뇰라가 설계한 여러 건축물이 있으며, B.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로마의 카피톨(Capitol, 1540~1644)과 성베드로성당(1506~1626)이 유명하다.바로크 건축양식은 17~18세기의 반동개혁과 전제정치에 의하여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고 성대한 문화활동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다. 중상주의(重商主義)와 도시문화의 발전, 시민계급의 경제적 성장과 함께 자연과학의 지식이 확대되고, 철학적 이론의 심화가 건축활동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건축은 구조 ·표현 ·장식이 하나의 건축적 표현효과를 위하여 구사되었다. 따라서, 바로크는 르네상스에 비하여 규모가 크고, 전체나 부분 취급이 양감적(量感的)이고 감각적이었으며, 조각적이어서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이 양식은 후기에 이르러 감각적 표현 위주에 몰두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었다. 전성기 바로크는 프랑스의 루이 11세 집정기간이며, 프랑스 바로크 최후의 단계는 로코코 양식이 되었다. 로코코는 바로크가 매우 둔중한 인상을 주는 데 비해서 세련된 아름다운 곡선으로 표현되었고, 여성적인 인상을 주었으며, 화려한 것이 특징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궁전의 싸롱에서 애용되었는데, 귀족계급 부인들의 장식품 등 기호 ·취미에 영합되어 성행하였다. 이탈리아의 G.베르니니, G.포르타, D., C.마데르나가 초기의 건축가였으며, F.보로미니, A.포조 등의 다재다능한 건축가하였다.
    공학/기술| 2005.01.07| 10페이지| 1,500원| 조회(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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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음악] 서양음악의 이해
    1850년대 이전의 서양음악사라 하면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 낭만주의 음악 등으로 매우 광범위하여 여기서는 고전주의 음악에 대해서만 알아보기로 하겠다. 그리고 고전주의 음악의 대표적 작곡가인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다.1. 시대적 배경서양 문화사에서 1750년부터 1825년까지는 고전주의 시대로 분류된다.고전주의 시대는 18세기 후반의 독특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시작되었다. 18세기 후반은 구체제(프랑스 혁명 이전의 유럽 사회 체제)의 몰락과 새로운 정치·경제 체제의 확립으로 특정 지어지는 시기였으며 특히 귀족으로부터 중산층으로의 힘의 전환이 이루어졌던 때였다. 이 시기의 지적 생활 양식의 향상과 과학의 진보는 특히 눈부신 것이었다.고전주의 시대는 이러한 개혁과 계몽, 합리, 과학, 산업의 시대와 함께 그 문을 열었다. 라틴어의 "Classicus"는 원래 "납세자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고 , 후에 "모범적"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그러나 "고전주의"라는 말이 사용된 이래 그것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의미로 정의되어 왔다. 문학과 예술에서의 가장 우수한 상태를 일컫는 일반적인 의미와 고대 그리스 및 고대 로마의 문화와 관련된 상태를 일컫는 특정한 의미가 그것이다. 그래서 고전주의라는 말속에는 우수한 것의 극치를 지향하고자 하는 의욕을 담고 있고, 그와 동시에 그 우수한 것의 극치는 과거에 이미 성립되어 계속 존재해 왔으며, 그것은 전통을 계승함으로써 다시 도달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고전주의는 예술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의 적절한 통제 및 자제, 논리적 표현과 정교한 기교의 가능성,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통찰력 등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견해는 예술가들로 하여금 작품 속에서 정연한 질서와 안정성, 화성적 조화를 추구하도록 고무하였다. 그래서 고전주의 예술은 "단순 명료하고 법칙에 따른 외적 상태"와 "자연적이고 유기적이며 긴장에 찬 내적 체험"을 결합함으로써 "형식과 내용의 이상적인 결합"과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그리고 더 나아가 "아름다운 영혼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2. 음악적 특징고전주의 음악은 일반적으로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1770년부터 1825년까지의 음악을 말한다. 그것은 위대한 음악적 실험 정신이 성취한 인류사적인 업적이었다. 당시의 음악가들은 장.단음계 체계의 가능성을 폭 넓게 탐색하였고, 절대 음악적인 기악 작품을 위한 대규모 형식을 확립 발전시켰으며, 반복 형태의 이상적인 소나타 형식을 발견하는 한편, 독주 및 2중주 소나타, 3중주와 4중주, 여러 가지 실내 악곡, 협주곡, 교향곡 등의 갖가지 연주 형태를 확립하였다.만약 고전주의라는 말을 "당시의 전통적인 형태의 고수"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 말은 비엔나 악파의 작곡가들(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에게는 적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전통을 고수하는 데에 집착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음악 형태를 찾아내기 위해 대담한 시도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하이든의 초기 교향곡과 현악 4중주곡들은 후기의 그것들과 크게 달라졌고 그러한 경향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작품들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들이 18세기 중엽의 시인들과 미술가들처럼 정서적 표현에는 무관심한 채 형식적 규칙에만 열중하였다면 사람들은 그들을 고전주의 음악가들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가장 깊고도 고귀한 정서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작품을 서서히 채워가고 있었고, 베토벤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깊은 감동과 열정으로까지 진전되어 있었다. 요컨데 그들은 각기 자신의 고귀한 음악적인 상념의 표현에 가장 적합한 음악 형태를 만드는 데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시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고전주의라는 말은 그들의 음악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문학과 미술의 경우 고전주의 시대는 18세기 중엽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으나, 음악에서의 고전주의는 몇 십년 후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고전주의 음악이 계속되고 있던 19세기 초기에 다른 분야에서는 이미 낭만주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었으며,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의 후기 작품들 속에는 이미 낭만주의적인 특성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그래서 음악에 있어서 고전주의라는 말은 "질적으로 가장 우수한 상태"를 지칭하는 의미로서 이들 비엔나 악파에 적용된다. 그들이 남긴 작품들, 특히 교향곡과 협주곡, 피아노 소나타, 2중주곡, 3중주곡, 4중주곡 등은 그 후의 작곡가들이 능가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하였으며 그들이 기악 작품들에서 사용했던 역동적인 작곡 기법은 주제의 전개 과정과 완전하게 일치하였다. 그들이 완성한 광대한 악곡 구조들은 논리적이고 타당한 것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 충분할 만큼의 융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 속에서 음악적 사고와 음향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였던 것이다3.모차르트(1756 ~ 1791)모차르트의 음악과 관련하여 우리는 절대적 음악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베토벤, 그리고 베를리오즈, 쇼팽과 같은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많은 음악들이 자서전적인 것과는 달리,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그가 겪어온 고생과 실망의 자취를 찾아내기란 매우 어렵다. 또한 자연에 대한 그의태도, 또는 당시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었던 프랑스 대혁명, 또는 그와 연관되어 널리 유행한 새로운 사상들에 관한 모차르트의 태도를 그의 음악에서 정확히 짚어낸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위와 같은 사건들의 영향이 그 음악 속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이 모두가 모차르트의 음악에서는 가다듬어진 고전적 아름다움으로 변형, 승화되어 반영될 뿐이다. 모차르트는 음악이라는 그의 내면세계에서 참 삶을 살았으며, 그리하여 일상생활은 그에 병행하는 골치 아프고 공허한 것으로 보일 때가 많았다.모차르트의 이름을 불멸의 것으로 만든 많은 작품들이 빈에서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에 작곡되었다. 형식과 내용, 갈랑 양식과 학구적 양식의 완벽한 종합, 그리고 외형적으로 세련된 아름다움과 내면적으로 텍스처와 감정의 깊이가 마침내 모든 종류의 작품들에서 동등하게 조화되었다. 이 시기 모차르트에게 영향을 준 것은 꾸준한 하이든 연구와 J.S.바흐의 발견이었다. 바흐의 영향은 깊고 오래갔으며 모차르트의 말기 작품 전체에 대위법적 텍스처가 갈수록 많이 사용된다는 점, 그리고 「마술피리」와 「레퀴엠」의 심오하고 심각한 분위기 등에서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모차르트의 600곡이 넘는 작품들은 주제별로 분류되어 1862년에 쾨헬에 의해 처음 정리되었으며, 그 후 주기적으로 최신 연구 결과를 반영한 새 목록들이 나오고 있다. 쾨헬 K' 번호는 세계적으로 모차르트 작품을 분류, 지칭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4. 베토벤(1770 ~ 1827)베토벤은 본 교회의 가수였던 그의 아버지로부터 첫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제 2의 모차르트로 만들려고 하여, 1776년에 베토벤을 모차르트 앞에서 연주하도록 했고 모차르트는 그의 장래를 예언했다.베토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로부터 잘 발전된, 그리고 더 자라날 수 있는 양식과 음악적 형식을 물려받는다. 그는 새롭고 강력한 힘이 인간 사회에 널리 퍼지는 시기에 살았고 그 힘은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작품에 넘치게 된다. 괴테나 나폴레옹처럼 베토벤은 18세기 전체를 통해 준비되었으며 프랑스 혁명으로 마침내 폭발하는 거대한 역사적 융기의 아들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베토벤의 작품은 그 전 시대의 성취를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외부 조건과 자신의 천재적 재능으로 그는 유산을 변모시켰으며 낭만시대의 여러 특징을 이루는 근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고전적도 아니고 낭만적도 아닌 베토벤으로서, 그의 모습은 두 세기에 발을 디디고 우뚝 솟아있는 거인상처럼 그 스스로 하나의 시대를 이루고 있다.
    예체능| 2003.06.05| 3페이지| 1,500원| 조회(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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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독후감 모음 평가A+최고예요
    교 양 독 서목 차1. 무정 (이광수)2. 사회계약론 (루소)3. 리바이어던 (T. 홉스)4. 분노의 포도 (J.E. 스타인벡)5. 시간의 역사 (스티븐 호킹)6. 자유론 (J.S. 밀)7. 파우스트 (괴테)8. 햄릿 (세익스피어)9. 목민심서 (정약용)10. 님의 침묵 (한용운)11. 삼국유사 (일연)12. 홍길동전 (허균)13. 폭풍의 언덕 (E. 브론테)14. 정신현상학 (헤겔)15. 논어 (공자)16. 탈무드 (마빈 토케이어)17.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18. 국부론 (아담 스미스)19. 역사의 연구 (토인비)20. 주역21. 순수이성비판 (칸트)1. 무정 (이광수)경성학교 영어 교사 이형식은 오후 두시 사년급 영어 시간을 마치고, 내리쬐는 유월 볕에 땀을 흘리면서 안동 김 장로의 집으로 간다. 김 장로의 딸 선형이가 명년에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하여 영어를 준비할 차로 이형식을 매일 한 시간씩 가정교사로 초빙하여 오후 세시부터 수업을 시작하게 된다.이야기의 서두는 경성 영어 학교 교사 이형식이 장안의 부호 김장로의 고명딸인 선형의 영어 개인 지도를 부탁 받고 첫번 방문하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본래 형식은 동경 유학을 마친 당대 일류 지식인이나 일찍이 고아가 되어 역경을 겪은 데다 내성적 성격이라 여성 교제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뛰어난 미모인 선형에게 반한다. 그리고 그 날 밤 하숙집에 돌아와서 형식은 뜻밖의 손님인 박영채를 만나게 된다. 영채는 이형식이 어릴 때 고아일 적에 형식을 데려다 기르고 자식처럼 대하여 준 은사 박 진사의 딸인데 장차 형식의 아내가 될 사람으로 정혼했었다.그러나 박 진사의 개화 운동이 세상 사람들의 개화 문명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실패하고 집안이 망하자 형식이는 영채와 이별하게 되었는데, 7년만에 해후하여 그 뒤 영채가 감옥에 계신 아버지를 도우려 기생이 되고 형식을 사모하며 수절해 왔다는 전말을 듣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형식은 눈물을 흘리는 한편, 그녀가 기생이라는 혐오감과 미인이라는 유혹의 갈등을 주체하지 못한다. 문을 나선다.』이 장면은 사실 휴머니티가 듬뿍 넘쳐나는 명 장면이다.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없다고 하더라고 사회에는 어떤 애정과 보살핌이 '그래도' 남아있는 것이다. 미국은 그러한 전통이 여전히 남아있다. 돈을 벌면 그것을 아낌없이 기부한다. 처음엔 우리 식으로 단지, 쇼맨쉽, 홍보효과, 세금기피현상 정도를 이해했는데 미국의 경우는 그것이 청교도적인 양식, 기업문화의 차이에서 생긴 것이란다. 그들은 돈을 번 것은 바로 사회의 도움과 덕택이란 것을 알기에 돈을 일정정도 벌면, 그것을 사회로 환원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다거나 칭찬 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어쨌든 조드 일가는 계속 고물 트럭에 운명을 기탁하고는 서부를 향해 달린다. 그리고 이번엔 할머니가 차안에서 삶을 마감한다. 그들은 곧 한 농장에서 일거리를 구한다. 하루 일하고 1달러를 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곧 조드는 그 농장의 비밀을 듣게 된다. 내일이면 또 다른 구직자가 몰려올 것이고, 일당은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일 할려는 사람은 계속 밀려올 것이고, 일당은 또 다시 더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직을 결성하여 임금 저하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트라이크 파업을 펼쳐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주장을 하는 옛 고향 전도사 캐시의 말을 반신반의하던 죠드는 이내 그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된다. 그는 파업 주동자를 쫓아 나선 농장주패거리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자본주의 악덕기업주의 주구(미친개)를 때려누인다. 그리고 톰은 또다시 쫓기는 자가 되어, 한밤중에 가족과 함께 몰래 그 농장을 빠져나온다. 그러곤 다시 트럭을 몰고 간다.그들이 그렇게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가 마지막으로 찾은 농장은The Farmworkers' Wheat Patch Government Camp (Department of Agriculture)이다. 그곳은 자유-민주-평등의 모토아래 운영되고 있었다. 농장 일꾼들은 자체적으로 조직을 만들고, 규율을 만들고, 조합을 운영해 가는 것이다. 아것이 아니라, 몇 번이나 도중에서 좌절과 단념도 하고, 가필 수정도 행해져 노심초사 끝에 오늘날에 남겨진 형태가 된 것이라고 한다.천재의 시대들의 시대라는 르네상스를 거쳤던 괴테는 한 인간의 완성이라는 거작을 이룩했습니다.17세기 독일 문학의 천재라는 괴테의 필생의 대작 파우스트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것은 천재성이라기 보다 오랜 세월동안 괴테 자신의 고뇌하고 진리를 추구하던 삶에서 비롯된 깊은 깨달음이라 말하며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파우스트의 경우 스토리보다 본질과 내면을 꿰뚫는 인물의 대사와 진행이 작품의 생명입니다. 그러나 아주 짧게 내용을 요약하고 날 떨리게 했던 대사들을 소개할까 합니다.전체 내용은 와 으로 구성됩니다. 1부에서 파우스트는 현실에서 더 이상 진리를 얻지 못하고 악마와 계약을 합니다.진리를 찾고 그 순간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고 할 때까지 악마는 파우스트 박사의 종이 된다는 개악입니다. 비극 1부에서는 온갖 쾌락과 즐거움을 맛봅니다. 소녀 그레트헨과 사랑에 빠져 기쁨을 얻습니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을 유혹하여 임신케 한 나머지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를 죽게까지 합니다. 혼자 남아 멍해져 버린 그레트헨은 낳은 아기를 물 속에 버리고 감옥에 갇혀 처형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감옥에서 미쳐 버린 연인을 바라본다.2부의 내용은 복잡하지만 간략히 스토리만 요약합니다. 2부에서 파우스트의 활동영역은 과거에서 미래, 인간 세계에서 그리스 신화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활하다.1막에서는 궁핍한 황제에게 부를 주고 2막은 미의 여신 헬레나를 찾아가는 과정 3막은 헬레나와의 사랑과 좌절 4막은 새로운 목표와 희망, 그것을 이루기 위해 황제에게 땅을 얻는 과정 5막은 꿈을 실현하려 하는 과정과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으로 종결된다.8. 햄릿 (세익스피어)챨스 & 메리 램(세익스피어의 원작각본을 18세기 램 남매가 읽기 쉬운 소설체로 바꾸었음)이 쓴 에서 편을 한번 더 읽어보았다. 사실 고전(古典)이란 것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더 새로운이루는 그 「그리움」은 사랑, 그리움, 찬미, 존경, 연민,아쉬움 등 가지각색의 감정과 관념의 복합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 뭐냐. 만해가 애써 찾아서 갈고 닦아낸 님이라는 그 귀중한 한국말…열려져 있는 말, 모든 계층과 그 영역을 횡단하는 말, 어느 대상에 가 붙든 그것을 끝없이 새롭게 변형시키고 심화시키는 말, 우리를 목마르게 하는 말, 침묵 속에서 노래를, 어둠 속에서 빛을, 그리고 타다 남은 재를 다시 기름이 되게 하는 기적의 말… 그 입체적인 시의 말을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망치로 두들겨 펴서 납작하게 만들어 놓았는가. 자유롭고 아름다운 한국말의 그 님을 정치와 종교의 울안에 가두어 가축처럼 길들이려 했는가.「군말」에서 불교도인 만해는 연꽃대신 장미화나 길 잃은 양과 같은 기독교적 상징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민족운동가인 그가 충무공의 이름이 아니라 이탈리아를 통일한 마시니의 이름을 거명하고 있다.예수도 부처도 산신령도 한국에 오면 예수님 부처님 산신령님이 되듯이,만해의 님은 세계의 모든 것을 싸버릴 만큼 크고 넓기 때문이다.님의 뜻보다는 아무래도 그 님이 누구인지 궁금하다고 말하는 독자 가 있다면 「군말」의 맨 마지막 시행을 정독하면 될 것이다.「군말」의 구조는 석가, 칸트, 마시니로 시작하는 「그들의 님」에서 「너희들에게도 님이 있더냐」의 「너희들의 님」,그리고 「나는 해 저문 벌판에…」로 끝맺음하고 있는「나」의 님으로 구성되어 있다.즉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갈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양이 그리워서 이 시를 쓴다」의 마지막 대목에서 만해는 나의 님이 누구인지 명시하고 있다.만해가 그리워하고 있는 대상은「돌아갈 길을 잃은 어린 양」이다. 그리고 그 그리운 것들은 그에게 시를 쓰게 한다. 그에게 예불을 하게 하는 님이 있고 독립선언문을 읽게 하는 님이 있었다면, 그에게는 시를 쓰게 하는 또하나의 님이 있었던 것이다. 늑대에 잡혀먹는 양이 아니다.길잃은 어린양들 미로 위에 서 있는 어린양들(무구성)은 시를 갈망하는 어넘지 못하는 한계가 존재함도,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 없이는 역사가 발전할 수 없음도 일깨워주고 있다. 자칫 현재로서는 시기 상조이고 비현실적인 주장이나 논리라 할지라도 이러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음 세대를 기약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급진적이고 위험한 발상이었지만 봉건적 신분질서에 도전했다는 사실은 모순을 혁파하려는 지식인의 강건함을 드러내주는 점이라 하겠다.홍길동전이 지닌 우리 시대의 가치라 할 수 있다.당시 민중의 삶은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음에도「효」와「충」이라는 덕목이 사회 저변에 흐르고 있다.그 어떤 당위성으로도 이를 넘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개개인들의 삶에서는 이러한 정서가 변질되고 파괴되었다 할지라도 아직 남을 평가하고 비난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세상에서는 어떤 문제를 고립시켜 단순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관계를 일일이 밝혀내야만 해결의 실마리들을 찾을 수 있다.그래서 무슨 책이든 줄거리만 안다거나,그걸 읽으면서 지금의 나와 적절히 결부시켜 사고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고전이란 사회의 유산은 될 수 있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그로부터 어떠한 것도 배울 수 없다.13. 폭풍의 언덕 (E. 브론테)이 작품은 구성이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조잡한 작품이란 평을 들었으나, 재평가 받으면서 에밀리 브론테의 뛰어난 구성력과 주의 깊은 집필이 주목되었던 것이다.황야의 언덕 위에 선 폭풍의 언덕이라는 저택에는 언쇼 부처와 아들 힌들리, 딸 캐서린이 살고 있으며 머슴을 부려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한편 평탄한 영지에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라는 훌륭한 저택을 가진 린튼 부부가 아들 애드거와 딸 이사벨라와 더불어 살고 있다. 외부에서 이 두 집에 드나드는 것은 힌들리의 아내 프랜시스와 이야기의 주인공인 히스클리프 두 사람뿐이다. 다른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는 로크우드와 넬리 딘, 장소도 하이츠와 그레인지 이외엔 가머튼 교회뿐이고, 작중의 성격도, 세계도 한있다.
    독후감/창작| 2003.04.27| 40페이지| 5,000원| 조회(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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