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루소의 소개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1712-1778)는 1712년 한 시계공의 아들로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자마자 사망하였고 그는 아버지의 밑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자랐다. 그가 열살 되던 해 사소한 싸움으로 아버지가 제네바를 떠나게 되어 목사에게 위탁되었다가 숙모의 집에 유숙하면서 고달픈 나날을 보냈다.1728년 16세에 프랑스를 향한 방랑을 시작하고 1732년 사보이 지방에서 후원자인 바랑 부인을 만나 집사로 일하면서 철학자, 문인, 음악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할 기회를 얻는다. 이때부터 1740년까지가 그의 생애 중에 가장 행복한 나날이었다. 30세 때 파리에서 디드로를 만나 를 중심으로 모인 지식인 집단 '철학자들'에서 중심역할을 하고 오페라를 작곡하여 왕과 왕실로부터 인정받기도 했다. 37세 때 반종교성향의 글로 구속된 디드로를 만나기 위해 뱅센으로 가는 도중 디종 아카데미 현상 모집 제목을 보고 1750년을 발표한다. 이 논문은 인간은 본래 선하지만 사회와 문명 때문에 타락했다는 그의 사상의 중심주제를 잘 보여준다. 5년 뒤 디종 아카데미의 질문에 답하는 2번째 논문 을 완성한다. 이것을 의 맥을 잇고 있다. 그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인류생활 초기단계에서 재구성했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건강하고 행복하고 착하고 자유로우나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면서부터 악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본래의 신교(칼뱅이즘)로 개종하였다. 그는 갖가지 사건을 거치면서 디드로와 결별하고 백과사전파 특히 볼테르의 적이 되기에 이른다.1758년 몽모랑시 마을의 몽루이라는 작은 집에 은거한 루소는 뤽상부르 원수의 후원으로 일에 전념하여 (1761),(1762),(1762)의 세 권을 내놓게 된다. 는 두 애인 사이의 편지 형식의 소설인데 루소가 알았던 모든 여인의 추억이 담겨있다. 의 출판은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파리의 고등법원은 이 책을 압수하여 태울 것을 결정하였고, 루소는 체포를 면하기 위해 몽모랑시를 떠나야만 했다. 그는 제네바로 가려 하였으나, 제네바 시의회도 과 을 규탄하였다. 그는 모티에에서 3년 간 피신해 있으면서 등을 썼다.1765년 9월 모티에를 떠나 생피에르 섬으로 피신하였으나 그 곳에서도 견디지 못하고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초청으로 영국으로 건너갔다. 흄은 그를 도와 조지 3세에게 연금을 받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루소는 영국 지식인들이 자신을 조롱하고 있고 흄도 마찬가지라고 의심했다. 그는 여러 가지 정신분열증 징후를 보였으며 마침내 이름을 숨긴 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1768년 56세의 나이로 동거녀였던 테레즈와 결혼했다.마지막 10년 동안 루소는 주로 적들의 비난에 대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자서전적 그을 썼는데, 가장 중요한 책은 이다. 또 적들이 씌운 혐의에 답하기 위해 를 썼다. 에서는 초기의 강렬한 열정이 온화한 서정성과 진지함으로 나타난다. 그는 말년에 정신적 평온을 얻었고 프랑스 대귀족 콩티 공과 지라르댕 후작의 영지로 피신했다가 세상을 떠났다.2. 이 쓰여진 배경루소는 1740년에서 1741년 사이에 리용의 법원장인 마블리의 집에서 가정교사를 지냈다. 이 때, 그는 비록 가정교사 생활은 실패하였으나 마블리의 장남 이름을 딴 이라는 논문을 쓴 바 있는데, 교육론을 저술하려는 루소의 생각은 이 무렵부터 싹튼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지만, 에밀의 집필의 직접적인 동기는 루소의 후원자인 슈농소 부인으로부터 자식의 교육에 관한 조언을 요구받은 일이었다. 또, 데빈 부인도 자식에게 교육적 서신을 보내면서 루소의 비평을 얻곤 했는데, 이 일 역시 집필 동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3. 의 소개루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