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주제 : 결혼과 이혼오늘날 교회 안에서의 이혼은 급증하고 있다. 기독교 원리적인 차원에서는 계속해서 이혼을 반대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혼하는 기독교 가정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더 이상 교회와 목회자는 기독교 가정의 이혼을 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차원에서의 적극적인 대응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교회에서는 이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의 형태로 이 문제를 대처해 왔다.첫 번째 이상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혼이라는 것은 있을 수 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이혼한 가정이 교회 내에 있다면 그 가정을 정죄시 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두 번째 이상주의적 태도와는 반대로 이혼을 방임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이니 교회에서는 개입하지 말자는 입장이다. 미국에서는 강단에서 이혼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교인중의 다수가 이혼을 경험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적인 윤리관으로 인해 대부분 사람들이 이혼을 바르게 여기지 않으나 다수의 교회가 방임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세 번째 치료적인 자세로써 이혼의 현실을 대하는 태도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기독교가정의 이혼율이 급속히 증가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이것을 정죄시 한다거나 방임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에 대한 치료적인 자세를 준비하는 것이다. 예외를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특수한 상황에 처한 자들을 위해서 부득불 결혼에 실패하여 헤어진 자들에 의해서 교회는 이들의 아픔을 함께 하며 그들의 멍에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혼자들은 이혼으로 인한 상처가 아물기 전에 그들을 대하는 교회의 외면과 냉담함에 더 충격을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위로와 용서하심을 경험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혼한 사람은 종종 예배시간에 가족들끼리 앉아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가장 외롭게 느낀다고 말한다. 이혼한 사람과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들은 물론 혼자 사는 사람들도 교회에서 편안하게 느끼도록 해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방황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혼을 권유하거나 이혼의 정당성을 인정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이미 물을 엎지른 이들을 무책임하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들을 돌보고 보살펴야 할 것이다. 이들이 잘했는가 잘못했는가를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라면 이들에게 어떻게 하셨을까 깊이 고민해보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유대교의 제도화는 정통을 보전하고 유지하는데는 성공했으나 개인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하나님의 진리를 깊이 이해하는데 실패하였으며, 하나님과 더불어 온전한 내적 체험을 하는데도 실패하였다.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의 교육은 계속해서 제도주의화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기독교의 제도화현상이 주는 좋은 점도 있었으나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먼저 교회 내부적인 문제로 비자발적 헌금, 교회내의 계층화 현상, 소외감의 파생, 윤리적?종교적 메시지의 상대화 등이 나타났고, 사회변동의 영향으로 인한 외부적 제도화의 문제로는 내부지향적 재정구조, 교회간의 계층화 현상과 교파 분열의 현상, 공동체의식의 침체, 신조의 변질과 세속화 현상 등이 나타났다. 제도가 때로는 효과적인 복음증거나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고 지도하는데 반드시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교회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데는 필수적 요소가 아닌 것 같다. 교회의 생명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먼저 정검해 볼 필요가 있다. 제도는 비판하면서 조심스럽게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도는 모든 운동의 생명에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제도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가 될 때 제도는 그 효용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고 급기야 제도 때문에 생명력이 저하되는 불행이 오게 될 것이다. 저자도 제도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지만 제도의 위험성에 대해서 더욱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제도가 주는 이익에 비해 제도로 인해 나타날 위험이 훨씬 많고 크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은 흔히 구원을 단지 형식적으로 주어지는 어떤 사면증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해도 되며, 구원받음으로 인해서 어느 정도의 지위를 획득한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구원은 단 한 번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리는 구원의 처음 체험을 강조한 나머지, 구원의 과정을 잊어버리기 쉽다. 신약성서에는 구원을 과거의 사실로, 현재의 체험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로 설명하고 있다. 나 또한 이 사실을 조직신학 수업을 통해서 배워서 알고 있지만 순간순간 잊을 때가 많이 있다. 즉, 구원의 개념과 중생의 개념을 착각할 때가 많이 있다.현대 기독교, 그리고 내가 경험한 기독교에서도 구원에 대한 과오가 넘쳐난다. 혹자가 말한 ‘값싼 구원’이라는 개념이 현대 한국 교회에는 널려 있는 것 같다. 부흥사의 치유의 능력으로 교회가 마치 병을 고쳐주는 병원이 된 적도 있었다. 그것은 단지 육체의 욕망을 해소해줌으로써 주목받는 한순간의 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치유의 기적은 기독교에서 일부분에 속한 것이지 기독교 전체로 매도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범하는 과오는 이뿐만 아니라, 구원 뒤에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위험천만한 오해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구원과 생활을 따로 보는 것이다. 사람의 생활 양식이 그를 구원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사람의 생활양식은 그가 하나님과의 연합의 질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구원은 현재 그 사람의 생활 전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에세이주제 : 실천한국 교회는 그동안 양적 성장에만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예수님의 가르침의 참된 의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나만 잘 먹고 잘 살라고 가르치시지 않으셨다. 우리 교회만 성장하면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현재 한국교회는 자신의 교회에 대한 관심과 집중만 있을 뿐 사회 참여에 대한 실천이 매우 부족한 형편이다. 이제는 사회 참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진정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그동안 한국 교회들은 양적인 성장에 비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교회의 바른 모습과 그 사명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여 교인들의 생활이 이중적으로 되었고, 사회 속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죽은 신앙이 되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교회에 나오면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 같지만 세상에 나가면 비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변한다. 주위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리스도인들끼리 모여 있으면 정말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지만 각자가 속해있는 사회 속으로 들어가면 가장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사람들이 되어 버린다.교회는 항상 성경에 비추어 부족한 것, 잘못된 것들을 개선해 나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한국 교회는 달라져야 한다. 교회의 사명감을 회복해야 하고 바른 교회로 세워가기 위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각오로 힘써야 한다.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하며 영혼 구원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명이지만 그와 함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실천적 신앙이 병행되어야 하겠다. 생활 속에서 말씀을 지키고 따르며 각각의 주어진 영역에서 빛이 되고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기 위해 애쓸 때 그 복음의 말씀이 누룩이 되고 살아 역동하는 말씀으로 역사할 것이다.한국 교회는 이제 사회에 책임이 크다. 전체 인구 중 교인 수가 차지하는 비율은 높지만 이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더 이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이원론적인 사고를 벗어나 사회참여 없이는 더 이상 복음이 확산되기 힘들다는 것을 인식하고 교회안의 개혁과 함께 주변의 지역 사회에서부터 모든 분야에 이르기까지 지도자의 위치에서나 또는 보이지 않은 뒤에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되는 사회로 이끌어 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겠다. 특별히 교회의 전문이 되어야 할 사랑의 실천(봉사와 구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약하고 고통받는 자, 소외된 자 편에 서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과목명 : 교육목회론제목 : 청소년 전도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논문제목)이름 :학과 및 학번 :제출일 :지도교수 :목차서론1. 목적 진술2. 연구 배경3. 연구 방법본론Ⅰ. 청소년의 이해1. 청소년의 발달 특성2. 청소년과 문화Ⅱ. 청소년 전도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들1. 학교 복음화를 위한 전도방법2. 청소년을 위한 전도방법결론서론1. 목적 진술청소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여 그들이 올바른 성경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관을 가진 건강한 청소년으로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학교 교육내용과 청소년 전도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의 개발이 필요하다. 교회학교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전도한다면 청소년들에게 분명한 목적의식을 심어주게 되며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청소년들은 중복된 행동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대부분의 교회에서 청소년을 위한 목회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으나 막상 전도에 대해서는 주로 장년들을 위한 전도 프로그램을 펼칠 뿐, 청소년을 위한 전도는 중요시 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회의 미래는 청소년들에게 달려있다. 그들을 잘 양육하고 지도하는데 필요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앞으로 기독교 문화를 이끌어 나가야 할 청소년들에게 교회학교에서 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2. 연구 배경연구자는 교회학교 중등부에서 전도사로 봉사하면서 나름대로 학교심방도 하고 전화심방을 통해 많은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을 만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그들에게 대한 관심과 사랑이 뒷받침 된다면 얼마든지 청소년들을 전도하는 일이 어렵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소 청소년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연구자는 어떻게 하면 청소년 전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본 논문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 을 알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전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3. 연구 방법많은 책들과 논문자료를 통하여서 연구하였다. 책의 내용을 분석하여 교회학교에서 청소년과 관련된 내용들을 중심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청소년의 기관으로 중등부의 전도방법들을 면밀히 검토해서 청소년들에게 효과적인 전도프로그램과 방법들을 모색하였다. 여러 교회들의 전도에 관한 자료들을 참고하여 좀 더 효과적인 전도방법을 모색하였다.이 논문에서는 교회학교에서의 청소년의 이해와 청소년의 발달특성, 청소년과 문화, 그리고 청소년 전도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들에 대해 논의하였다.Ⅰ. 청소년의 이해1. 청소년의 발달 특성청소년에 대한 개념은 시대나 학자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어 왔다. Gary R.Collins는 청년기를 “성숙을 향해 성장하는 시기”라고 말했으며 이것은 10대에서 20대초까지 계속되며 이 시기를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으로 변화를 가지는 시기이다라고 말했다. 이때에 반항과 끊임없는 혼란을 겪게 되는 시기라 보았다. 즉, 청소년은 완성상황이 아니라 계속적인 성장과정의 단계로 볼 수 있다.청소년들은 11세부터 14세까지 급격한 성장을 이룬다.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많은 내적인 신체적 변화 과정을 겪고 있으며 아직 완전히 성숙되지 못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 인간의 삶에서 초기 3년을 제외하고는 이 시기가 가장 커다란 신체적 성장을 이루는 시기이다.청소년기의 정서는 수시로 변화하며 예측하기 어려운 경향이 있다. 행복하고 자신감에 넘쳐 있던 청소년이 갑자기 열등감과 우울증에 빠지며, 아무도 알지 못하는 문제에 사로잡혀 혼자 고민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다고 판단할 때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특히 기독 청소년들은 기독교인이 되면 많은 것들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얽매여 기독교인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이러한 정서는 모든 행동의 기초로서 행동의 표출 방법과 방향을 규정하고 더 나아가서는 모든 정신생활을 지배하게 된다.사래서 청소년은 특별한 사회적 신분으로서 신체적, 심리적으로 성숙하게 되고 욕구가 강하게 나타나는 상태에서 자율 생활로 옮겨지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청소년들은 기성세대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한다. 이들은 가정에서 독립하여 생활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며 자신이 성인으로 대접받기를 원하며 스스로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청소년들은 종교적인 통찰이 가능해지는 이 시기에 신앙적인 면에서 또 한편으로는 강한 부정적인 태도의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부정적인 태도는 종교에 대한 강압이나 강요, 과학과의 거리감, 종교가 실제로 자신의 삶과 관계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 시기에 확실한 경험과 납득할 수 있는 대화와 가르침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이 시기는 어려서 갖게 된 종교에 대한 비판력이 생기게 되는 시기이다.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의심하기도 하며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확인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2. 청소년과 문화청소년은 미래 사회의 주역이며 청소년기는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되는데 필요한 자질이 계발되는 중요한 시기이므로 우리 사회의 미래는 오늘의 청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청소년에 대한 정의는 시대 또는 사회에 따라 다양하다. 왜냐하면 청소년이란 개념 자체가 통시적인 것이 아니며 산업사회에 들어와서 강조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청소년이란 말은 라틴어의 ‘adolescence'에서 유래한 말로 그 뜻은 ’성장하다(to grow up)' 혹은 ‘성숙하다(to grow to maturity)'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청소년기가 아동기와 성인기 사이의 소위 “성숙기”, “성숙 과정의 시기”, “성숙을 완성하고 있는 시기”를 뜻하는 것이다. 사회학적으로 청소년의 연령기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회의 특징에 따라 청소년기가 단축될 수도 있고 길어질 수도 있다.손종국은 타일러(Edward B. Tyler)의 말을 인용하여 “문화 또는 문명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 습득한 지식, 믿음, 예술, 관습, 기타 모든 습관을 다 포함하는 복합적인 총체적이다”라고 했다. 또 사회학자들은 사회구성원들이 생활을 통해 배운바 행위의 유형이며 전통의 의식과 믿음의 총체를 문화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를 그릇이라고 생각한다면 문화란 그릇에 담긴 내용물이라고 한다.Ⅱ. 청소년 전도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들1. 학교 복음화를 위한 전도방법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4,500개 중고등학교 530만의 십대들이 있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효과적으로 전도할 수 있을까? 입시위주의 획일화된 교육풍토 속에서 갈등과 문제를 지니고 있는 그들을 전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학교 내에 있는 청소년들의 영혼을 돌아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를 위해 십대들을 전도할 수 있는 접근방법은 가장 가까이서 지도하는 교사들이 깨어 기도하는 일일 것이다. 십대들을 영적으로 훈련시킬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투입되어 보다 적극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기존의 교회학교 학생들을 학교 안에서 모으고 교사들로 하여금 신앙을 유지하도록 돕는 일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학교를 복음화 할 비전을 갖게 하고 실제로 전도와 제자화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열매 맺는 학교 복음화 전략은 누구보다도 십대 자신들이 십대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십대들은 그들 세대의 독특성 때문에 십대 자신들에게 의해서만 접근되어지는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저들의 닫힌 세계에 생명의 씨앗을 심고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생명 있는 즉 훈련된 십대가 십대에게 생명을 전해주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교회학교의 일방적인 교사위주의 방식에서 벗어나 십대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스스로가 말씀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며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기본적인 육성을 할 수 있도록 지도력과 자발성을 함양해야 할 것이다.즉 교회학교 교사는 학생들이 몸담고 있는 학교들의 영적현실에 관심을 가져주고 그 속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 그들로 하여금 학교 복음화를 실천하는 데까지 이르도록 도와야 한다.2. 청소년을 위한 전도방법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청소년들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 즉 모본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청소년들로 성장시킬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훈련은 제자화인 것이다. 제자 훈련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가운데서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제자훈련이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영적인 성숙에 이르고 그가 영적인 재생산을 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청소년은 복음화 되어야 하고, 전도에 참가해야 한다. 십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성숙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삶을 기초로 두어야 한다. 또한 교회의 지도자들은 현재 교회내의 청소년들을 양육하고 말씀에 기초를 두어 제자훈련 된 청소년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나가 복음을 전하게 해야 한다.따라서, 제자 삼는 일은 청소년에게 대한 밀접하고도 의무적인 사역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부수적으로 일시적인 사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제자훈련은 피 훈련자로 하여금 예수님의 인격들 닮도록 하는 것이며, 예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생활 속에서 역사하여 예수의 증인으로서 세상으로 보내져야 한다.청소년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성경을 묵상함으로 그들의 삶의 필요에 대한 적절한 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청소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적으로 인격적, 체계적으로 파고든다면 그들의 삶은 변화될 것이다.LeRoy Eims는 제자에 대한 훈련목표를 이렇게 말했다. “청소년의 신앙 성장을 돕기 위해서는 마음 가운데 단계적인 성장계획을 세우고 있어야 하며 그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전에 자신이 갖추어야 할 어떤 목표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는 이러한 배경에서 양육의 단계를 전도, 확립과정, 무장과정, 전문화 훈련 과정으로 구분하며, 각 단계의 결과로 초신자, 전도를 할 수 있는 제자,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일꾼, 자기 힘으로 이 훈련과정을 반복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한다.
『셀 교회론』을 읽고생물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셀(cell)이라는 단어가 매우 익숙하다. 셀(cell)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그동안 배워왔던 내용과 그림들이 눈에 선하다. 셀(cell)을 구성하는 수많은 세포소기관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모든 세포소기관들은 서로 기능적으로 연계되어 있어서 하나의 셀(cell)을 유지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또한 각각의 세포들 역시 서로 협력하여 하나의 생명체를 유지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셀 교회론』이라는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이 책의 내용은 셀(cell)의 특성을 갖고 있는 교회에 대한 것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즉, 교회를 구성하는 구성요소들이 서로 기능적으로 연계되어 있어서 하나의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과 각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교회 간에 협력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셀 교회론』을 읽어 나가면서 나의 예상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예상 이외에 내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에 충분한 다양한 주제들이 많이 들어있었다. 그 중에서 하나가 복음이 가져온 삶의 과정과 목적의 변화이다. 나는 가끔씩 구원이란 단순히 약속된 영원한 미래를 보장받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구원은 미래의 약속, 즉 미래의 구원뿐만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구원이 된다. 구원은 과거의 원죄로부터의 구원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인생의 목적의 변화와 삶의 과정의 변화를 수반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구원이라는 것이 1회성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의 변화, 즉 날마다 새로워지는 계속적인 변화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러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구원을 바라볼 때 나의 구원을 재점검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나는 구원을 1회성의 사건으로 받아들여 미래의 약속된 천국의 소망만을 가지고서 내가 주인이 되어있는 현재의 생활에 안주하면서 만족하며 살고 있는지 아니면 날마다 나에게 주어진 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하루하루 처절한 몸부림을 치며 나의 인생의 주인을 주님으로 바꾸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