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삶의 목표- 특기?적성 교육의 문제점을 중심으로6개월 전 쯤 교육실습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실습 과정 중 하나가 학생들이 기록한 신상 카드를 보며 진로상담과 학교생활에 관련 된 면담을 참관, 진행하는 일이었다. 상담 준비를 위해 여러 가지 설문지, 신상기록 카드 등을 훑어보며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학생들 절반 이상이 장래 희망 란에 ‘교사’를 적어 낸 것이다. 적잖이 놀람과 동시에 사범대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꽤나 기분이 좋았다. 예전과는 다르게 선생님들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건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다.내 생각에 짜 맞춘 기분 좋은 기대로 임했던 상담에서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왜 선생님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일제히 ‘안정적이고, 여자가 평생 하기 좋은 직업이기 때문’이었다.(실습학교는 여고였다) 그 중 한 학생이 가장 장황하게 그 이유를 꿰고 있었다. ‘안정적이고, 퇴근시간이 일정하여 여자가 하기에도 좋으며,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아도 잘릴 염려가 없고, 방학 때 쉬어도 월급이 나오는데다가 어른들이 보는 인식도 매우 좋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앳된 여자아이 입에서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는 말들은 지금까지의 내 핑크빛 기대를 깨기에 충분했다.선생님이란 직업이 정말 네게 맞는지 생각해 보았느냐고, 그 일이 좋으냐고, 다른 일은 하고 싶은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생각 해 보지 않았다고 했다. 더욱 난감한 것은 그 다음이다. 그렇다면 네가 정말 즐거워하는 일, 하면서 좋은 일, 돈이나 직업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결같이 그런 걸 생각 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일단 점수를 올리고 좋은 대학에 간 후에 생각하겠다는 것이다.내겐 꽤나 놀라운 일이어서 실습담당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어느 순간부턴가 그런 분위기가 흐르더니 이젠 문과는 다 교사, 이과는 다 의사가 꿈’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어린 학생들은 사회의 기성세대들이 보는 시각으로 조건 좋은 직업 하나를 고른 셈이었다. 마샤가 말하는 정체성 유실다.) 대졸 취업희망자는 초중고를 거쳐 대학까지 대략 16년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 이다. 그런데 그들이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무슨 일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현재 대학생, 대졸 취업 준비생들과 중?고교생은 소위 6,7차 교육과정 세대들이다. 하지만 6,7차 교육과정의 교육목표를 간단히만 살펴보아도 위와 같은 상황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6,7차 교육과정의 개정과 또 그 즈음 등장한 ‘교육비전2002; 새 학교문화 창조’는 하나같이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삶을 개척하고 설계하는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상을 주된 목표로 삼고 있다. 또한 현재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는 세대의 대부분은 또한 7차 교육과정 세대들이다. 7차 교육과정은 자율성과 창의성에 바탕을 둔 학생중심 교육과정이라는 큰 목표를 가진다. 이에 따라 세계와 시대의 변화에 스스로 적응할 수 있는 자기 주도적 능력과 학생의 적성?능력과 진로에 적합한 학습자 중심교육을 중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운영 면에서 지역 및 학교의 교육과정운영과 편성에 자율성을 확대 한다는 것이 그 기본 방향이다.자신이 삶을 개척 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목표가 필요 한 법이다. 자신이 설계하는 삶 역시 설계의 처음 단계는 내게 맞는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어떤 방면에 흥미를 갖고 있는지를 충분히 탐색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에 대해 충분히 알고, 그 후에야 자신의 삶의 목표를 정립하는 것이 가능하다.특기란 남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기술이나 기능을 말한다. 특수한 기능은 특정한 영역에서 발휘하는 우수한 능력이다. 적성이란 어떤 일에 알맞은 성질이나 적응 능력을 말한다. 즉 특정 활동이나 작업을 수행하는 테 필요한 능력의 발현 가능성 정도를 의미한다. 일반 지능 또는 능력이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가능성을 지칭하는 데 반해서 적성은 구체적인 특정 활동이나 작업에 대한 미래의 성공가능성을 예언하는 데 주안을 둔다. 적성은 구체적인 활동의 성질과 내용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구분된다. 학육의 면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음에 기인하여, 7차 교육과정의 특기?적성교육은 학교 현장에서 다루기 힘든 예체능과 기술교육을 방과 후에 실시하여 학생의 소질, 적성 및 취미, 특기 등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따라서 특기?적성교육은 학생들의 삶의 설계와 관련하여 자아를 탐색하고 자신의 특기?적성?소질을 확인하여 자율적인 삶의 목표 정립에 도움을 주는 활동이어야 한다. 또한 교육부의 목표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부가 제시한 「1999 특기적성 교육활동 운영 계획」에 따를 때 특기적성 교육의 목적은, 1. 학생의 소질, 적성 및 취미, 특기 등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 제공 2. 특기적성 교육활동과 연계한 동아리 중심의 학생 문화 창달 3. 사교육비를 경감시키며 학교의 시설과 지역사회의 인적자원의 활용 극대화이다. 이는 지금까지 위에서 살펴보았던 특기?적성교육의 중요한 역할과 일맥상통하는 목표이다.하지만 초등학교는 초등학교대로 중?고등학교는 중?고등학교대로, 특기?적성교육은 그 비중 있는 목표에 상대할 만한 수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6차 교육과정의 특별활동이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학생들의 참여와 흥미를 전혀 끌지 못 한데는 교육부의 목표와 다르게 학교 현장에서 여러 가지 미비점과 애로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설과 기자재의 절대적 부족, 강사의 질과 수급의 문제, 충분한 활동을 할 절대 시간의 부족,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가 반영되지 않는 특활반의 편성문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실질적인 문제점을 간과한 채, 특기?적성교육의 비중만을 더욱 강조하는 시행령이 등장한 것이다. 그 성급한 운영과 일단 시행만 하면 될 것이라는 방만한 행정 당국의 자세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 특기 적성교육은 말 그대로 ‘해라’ 한마디로 시작되었다. 2001년도까지 특활이라는 이름 아래 자율학습이나, 한 달에 한번 시행되는 전일제 특별활동을 시행하고 있던 학교에 2002년부터 갑자기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없애고 특기?적성교육을 중심으로 한 방과 후 교 학생들의 자율에 의해 편성?운영되어야 하지만, 프로그램 편성에 학생들의 요구는 반영되지 않는다. 설사 반영하고 싶어도 강사 수급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문제는 자명하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극명해진다.사실 특기?적성교육이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곳은 초등학교 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학생과 교사 학부모 모두에게 입시부담이 적고, 학업에 대한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이다. 사실 초등학생과 학부모들은 나름대로 방과 후 교육과정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학부모들은 사교육비가 많이 부담되는 음악, 미술, 무용, 체육 등 예?체능 과목을 방과 후에 학교에서 교육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또 이런 과목의 다양한 개설을 희망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학업에 대한 부담감이 적은 초등학생들은 이러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초등학교 특기 적성교육은 학생의 특기와 소질 계발에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는 강사수급 문제, 강사의 질, 강사료 문제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프로그램의 편성, 운영의문제와 프로그램 질과 관련한 문제이다. 각종 프로그램, 특히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가 반영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은 외부 강사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순수하게 사명감과 학생들의 교육을 생각하는 그 방면의 전문가를 구하거나, 교육을 담당 해 줄 수 있는 명예교사의 수급문제는 사실상 힘이 들다. 이는 저소득층 학생이 많은 학교일수록 더욱 심해진다. 또한 이런 프로그램을 사설 학원이나 강사에게 맡기는 것도 문제가 많다. 사설학원의 특기?적성 교육의 참여는 좋은 인적 자원이나 물적 자원의 학교와의 교류라는 취지보다는 특기?적성 교육의 시행으로 인해서 시장이 확대되었다는 상업주의의 논리에 부응하고 있는 쪽에 가깝다. 이런 경우 학교와의 강사료 문제로도 마찰을 피할 수가 없다. 또한 교사가 특기?적성 교육업무를 맡을 경우 특기?적성 교육활동 조직에서부터 즈음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고등학교의 경우 당장 자신의 전공을 선택하여야 하기 때문에 입시 문제에 앞서 진로?적성교육이 무시 될 수 없는 시기이다. 따라서 진로?적성교육 면에서의 특기?적성교육의 목표가 간과될 수 없음은 물론이요, 어느 때 보다 강조 되어야 할 시기가 이 때이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대입이라는 목표를 둔 학생들에게는 아무리 잘 짜인 프로그램이라 해도 정규수업이 과중한 학생들로서는 또 다른 수업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쯤 되면 학부모들 역시 특기?적성교육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입시제도 때문에 여전히 학생들의 내신 성적에 관심이 높고,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에 대한 요구도 여전히 남아있다. 더욱이 교과 교육을 보충하는 내용을 지양하고 보충수업을 없애면서, 사교육비 부담이 도리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여전히 입시만을 생각하고 학생들의 다양한 성장통로를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않는 교사, 내 자녀는 무조건 좋은 대학에 보내기만을 바라며 자녀의 건전한 자아 형성과 진로 탐색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학부모, 학교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철저한 사전준비 없이 덜컥 시행하며 실적 평가에만 치중하는 행정이 만들어낸 파행이다.특기?적성교육의 취지가 무색해 졌음은 물론이요, 학교 현장에서는 아예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러한 운영상의 문제점을 별도로 친다면 진로?적성 교육면에서의 특기?적성 교육은 여전히 유효한 교육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자율학습, 보충수업이 폐지되고 제대로 된 특기?적성 교육이 운영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하지만 결국 이것이 우리 교육이 딛고 선 현실이기도 하다. 큰 기대나 거창한 성과보다는 학생들의 건전한 자아 형성과 성장 통로를 모색하는 학부모의 의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특기?적성 교육의 그 본질적인 원칙에 입각한 교사의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겠다.또한 학생들의 자율적이고 창의적 삶의 태도가 한두 가지 교육 정책으로 것이다.
나는 웃고 있었다.하지만 웃지 않았다.우린 늘 그렇게 산다.히히덕대고 있지만, 그렇게 쉽게 키득댈 수 없는 다른 많은 씁쓸한 것들을 안고 산다. 한잔 술을 기울이며 왁자지껄 잡담 반 농담 반을 떠들어대도 각자 다른 생각, 다른 상념을 감추곤 한다.연극을 보는 내내 웃었다. 그 웃음 뒤에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난 그냥 마구 웃었다.끝나고 나오며 내내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보면서 웃었는지, 무엇 때문에 웃을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나는 라이방이 뭔지 모른다. 연극을 보러 가면서도 그것이 뭔지 몰랐다.팜플렛을 잃으면서 그것이 레이-밴을 표현하는 것임을 알았다.좀 어이없게도 우리가 그것을 표현하는 말은 ‘관광버스기사안경’이었다. 가수 비가 쓰고 나와 ‘복고선글라스’라는 말로 유행하기 전까지 그것은 말 그대로 운전기사안경이었다.그것은 멋이 아니다. 극의 첫 장면에서 주인공 셋이 라이방을 쓰고 거들먹대지만(내겐 거들먹대는 걸로 보였다) 결코 멋있지 않은 소품이다. 그것은 그냥 운전이라는 그들의 하나의 생활이다.택시기사는 흔하다. 일도 험하고, 돈도 되지 않지만 너무 흔하다. 썩 부유하지도 극히 모자라지도 않은 내 주위의 어른들 중 몇몇은 택시를 몬다. 그들의 꿈은 절대 택시기사가 아니었다. 아무도 그것을 꿈 꾼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평생에 명함 한 장 파지 못하는 직업’이라 표현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택시를 몬다. ‘어쩔 수 없이 이거라도 해야 먹고 사니까...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운전이라도 하는 수밖에 없어서’ 그 일들을 한다. 운전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너도나도 운전을 한다. 기술도 아니고, 특기도 아니지만 그것은 그들의 직업이다. 씁쓸하다. 하지만 그 씁쓸함이 현실이고 직업이다. 아니, 당신들의 표현을 빌자면 직업이 아닌 ‘돈벌이’다. 어렸을 때부터 보며 자라왔던 주위의 그와 비슷한 직업을 가진 어른들은... 술 한 잔이 들어가면 늘 씁쓸해지곤 했다. 그리곤 곧장 축축 늘어지는 이야기를 덮고 그저 그런 농담을 받아내며 껄껄 웃어버렸다. 내 방에서 누워 그 시끄러움 속에서 잠을 청하던 나는 그 과장된 웃음 속의 쓸쓸함을 들으며 자랐다.그리고 똑같은 연극을 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예전 라이어의 주인공 직업이 택시기사였던 것이 생각났다. 지금이나 그때나 그다지 직업을 강조한 것 같진 않지만, 그때엔 아무 생각 없이 보이던 직업이 지금은 너무나 크게 보였다. 의 세 주인공은 굳이 택시기사가 아니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이란 항상 이런 식으로 생각지 못한 곳에서 맞물린다.연극은 거의 내내 슬펐다. 특히 세 남자들이 보여주는 회상 부분은 유독 그랬다. 하지만 한 순간도 오롯이 그 감정에 젖지 않게 한다. 슬픈 그 장면에서 내내 웃게 만들고 있었다. 또한 그들이 갖고 있는 그 슬픔을 그대로 덮는다. 그뿐이다. 더 이상 보여주려고도 같이 슬퍼하게 하려고도 만들지 않는다. 속에만 가지고 있을 뿐 아픈 걸 남에게 보여주려 하지 않는 그 모습은 역시 웃지만 웃을 없게 만드는 묘한 아이러니를 품고 있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재미있는 공연’이었지만 마냥 가볍고 즐거운 작품은 분명 아니었다.전체적인 감상 외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이동하는 네 개의 벽과 분리되는 테이블이었다. 한동안 어떻게 만들어놓은 건지 곰곰이 뜯어보기도 했다. 이동하는 무대는 봤어도 떨어졌다 붙었다 하는 무대장치는 처음 보았는데, 그게 또 최소한의 무대장치로 여러 가지 효과를 내 주는 것 같아 독특했다. 테이블이 분리 되는 것도 독백과 대화를 딱 부러지게 구분 해 주어서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테이블이 빙빙 도는 엔딩은 마치 그걸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다소 우스웠다.배우들의 연기 역시 실망스럽지 않았다. 막상 비교하자니 좀 다른 차원일지 모르겠지만, 자꾸 예전에 보았던 라이어와 비교가 되었다. 라이어는 대학로 공연을 봤었지만, 우연히 대전 공연도 볼 기회가 생겨서 큰 시간차를 두지 않고 같은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소극장 공연을 텅텅 빈 객석의 엑스포 아트홀에서 보는 것도 어색했지만,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처음의 느낌조차 잘 살지 않는 그들의 연기였다. 연기나 발성, 화술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나지만, 이 사람들은 대사 전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음에 실망을 넘어서 놀랍기까지 했다. 극 스토리 전개도 무지 빠른데 대사 전달이 되질 않으니 웃어야 할 장면에서 못 웃는 관객들이 생겼다. 같이 보던 사람이 방금 뭐라고 한거냐고 자꾸 물어봐서 짜증이 훨훨 났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하지만 을 보며 좋았다고 느낀 것은 위에서 말했던 분명치 않은 선을 오가며 교차하는 희?비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들의 연기였다. 지킬 선을 지키며 넘지 않았고, 자기감정에 혼자 빠져서 극의 묘한 경계를 흐트러뜨리거나 하지 않았다. 또한 1인 다역을 소화 해 내는 여배우의 연기 역시 인상적이었다. 여배우 한 명이 대 여섯 명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안타까웠던 것은 그녀의 목소리가 유독 귀에 거슬렸다는 것이다. 복식으로 발성을 하고 있는 것도 알겠고 분위기를 바꾸려 애 쓰는 것도 느껴졌지만, 말 그대로 ‘애쓰는 것’이 느껴졌다. 택시기사를 유혹하는 사모님 역할부터 고등학생 딸, 술집 마담, 아나운서 등의 역할을 혼자 하고 있었는데, 딸과 사모님, 마담의 목소리와 어투가 거의 똑같이 들렸다. 딸이 아버지에게 철없이 보채는 것이나, 사모님이 택시 기사를 유혹하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때문에 여배우가 나오는 횟수가 늘어날 때 마다 점점 더 보는 것이 거북살스러워 졌던 것이 조금 아쉽다.
◇ 목 차◇Ⅰ. 개관과 발전Ⅱ. 주요개념1. 인간관2. 성격이론① 성격의 구조② 성격의 발달③ 자아실현경향성3.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4. 부적응 행동의 발달Ⅲ. 상담의 과정과 기술1. 상담의 목적과 목표2. 상담의 과정3. 상담의 기술① 공감② 무조건적 긍정적 배려③ 진실성Ⅳ. 요약Ⅴ. 공헌과 한계인간중심상담이론의 개관Ⅰ. 개관과 발전인간중심상담은 1930-1940년대에 미국의 심리학자인 Carl R. Rogers의 상담이론에 근거하여 발전되었다. 당시 상담은 정신분석학과 지시적 상담이 주된 세력이었고, Rogers는 이에 반대하며 비지시적 상담을 표방하면서 새로운 상담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이 비지시적 상담은 후에 내담자 중심 상담으로, 다시 인간중심적 상담으로 이름이 바뀐다.)인간중심 상담의 기본 이론은 “if~than”의 가설로 설명될 수 있다. 만약(if) 카운슬러의 태도에서 어떤 조건이 나타난다면, 그때(than) 내담자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어떤 조건이란 성공적인 상담을 위해서 반드시 요구되는 것으로, 성실성, 무조건적 긍정적 배려, 공감적 이해의 세 요소를 말한다.Rogers는 전문가로서 활동하는 동안 그의 이론을 계속해서 발전시켰다. 그의 이론은 크게 네 단계를 거쳐 발전하였다.ⅰ 비지시적 단계(nondirective stage:1940~1950)ⅱ 내담자 중심 단계(client-centered stage:1950~1957)ⅲ 경험적 단계(experiential stage:1957~1975)ⅳ 인간중심 단계(person-centered stage:1975)Ⅱ. 주요개념1. 인간관Rogers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신뢰하였고,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며 합리적이라고 믿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선천적으로 자기의 운명을 성취할 수 있으며, 자기의 생을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다.Rogers는 1951년에 다음과 같은 인간관을 제시하였다.∮ 모든 인간은 자기가 중심이 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험의 세계은 어떤 실제적인 사실이 아니라 현상적 장 속에서 개인이 그것을 어떻게 지각하는가 하는 점이다.자아란 전체적인 현상적 자 또는 지각적 장으로부터 분화된 부분인데 ‘나’에 대한 일련의 인식과 가치로 이루어진다.② 성격의 발달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아실현 경향성이라는 동기를 가진다. 이에 따라 유아는 자기의 유기체를 고양시키는 것으로 지각되는 경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자기의 유기체에 해가 되는 것으로 인식이 되는 경험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선천적 능력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유기체적 가치와 과정’이다.유아는 성장함에 따라 ‘내가 아닌(not-me)’, '저 바깥에 있는(out-there)' 사물과 사건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잠시 후에 인간은 ‘나’와 ‘내가 아닌 것’을 정확히 구별해 내고 자기 것과 남의 것을 똑똑히 가려 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자아개념이 발달한다.자아에 대한 각성이 나타나면서 긍정적인 관심에 대한 욕구도 일어난다. 이는 온정과 애정에 대한 욕구인데, 선천적인 것으로 모든 인간 속에 내재되어 있다. 아이는 이 욕구가 충족되기도 하고 좌절되기도 하는 무수한 경험을 함으로써 조금씩 의미 있는 타인들이 자기에게 주는 관심에 근거하여 학습된 자기 존중감을 발달시키게 된다.아이가 점점 자라가면서 의미 있는 타인들로부터 긍정적인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구는 유기체의 실존적인 욕구와 충돌하게 된다. 때로 유기체적 욕구와 필요에 의해서 발생되는 아이의 행동은 부모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이럴 때 아이는 자기의 유기체적 가치화 과정을 억누르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관심과 애정의 욕구를 채워주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를 마치 진정한 자신의 것인 양 채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가치의 조건을 습득하게 된다. 여기서 이 가치의 조건은 자기존중 체계로 통합되어 아이가 가치의 조건에 따라 행동하게 되면 긍정적인 자기 관심의 욕구를 충족할 수가 있다.③ 자아실현경향성Rogers에게 있어서 인간의 중핵적인 경향성은 자치하도록 행동하고 발전하도록 하는 압력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여기서의 자아개념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Rogers는 개인이 사회 속에서 자아개념에 일치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무조건적인 긍정적 배려, 일관성, 공감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있다.이와 같은 자아실현 경향성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자아실현경향은 신체 전체의 생리적 과정에서 기인된다.∮ 자아실현경향성은 단순히 긴장 감소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긴장을 증가시키 기도 한다. 자아실현경향성이란 인간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해 주는 그 어 떤 것을 성취하거나 달성하고자 하는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자아실현경향성은 모든 사람의 삶의 경험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자아실현경향성은 완전한 최종 단계가 아니다 .오히려 자아실현은 좀 더 능력 있는 사 람이 되는 과정이다.3.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Rogers가 생각하는 자아실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며 자기가 아닌 어떤 것을 가장하거나 진정한 자아의 일부를 숨기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사람들을 Rogers는 특별히 ‘충분히 기능을 발휘하는 사람(fully functioning person)’이라고 불렀다. '충분히 기능'한다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능력과 재질을 발휘하여 자신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방향으로 이동해 나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이다.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은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경험에 대한 개방성이는 방어성과 반대 개념이다. 가치의 조건에 대해 아무런 제제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위협 받는 것이 없으므로 방어하지 않는 것이다.∮실존적인 삶실존적인 삶이란 경직성, 완벽한 조직, 경험에 대한 의도적인 구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아와 인성의 유동적인 조직, 경험속에서 구조의 발견, 최대한의 적응력을 의미한다.∮자신의 유기체에 대한 신뢰실존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유기체가 가장 만족스러운 행동에 도달하는 믿을만한 수단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의사결정의Rogers의 이론에서 위협은 인간의 그의 경험과 자아개념 사이의 부조화를 인식할 때 생긴다. 이 때 인간은 자신의 자기일관성을 보존하고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지게를 사용하게 된다. Rogers는 인간이 사용하는 방어기제를 두 가지로 설명했는데 그것은 왜곡과 부인이다.왜곡은 부조화적 경험의 의식이 허용되기는 하지만 이것이 단지 개인의 현재의 자아상과 일치하는 형태로만 허락될 때 생긴다. 이는 일종의 합리화로서 자신의 자아개념이 손상 받지 않는 방향으로 경험을 사실대로가 아니라 그릇되게 지각하는 것이다.부인은 위협적인 경험의 의식적인 인식을 완전히 피함으로써 자기의 자아구조의 통합을 보존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자아개념과 합치되지 않는 경험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것이다.그런데 만약 개인의 자아개념과 그의 경험에 대한 평가 간에 너무 큰 부조화가 생기면 그의 방어기제는 작용할 수 없데 된다. 이러한 ‘무방비’상태에서는 부조화를 일이키는 경험이 의식 속에 그대로 상징화됨에 따라 자아개념은 산산조각이 난다. 따라서 자아가 위협적인 경험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지 못할 때 성격파탄과 정신병리가 발생한다.Ⅲ. 상담의 과정과 기술1. 상담의 목적과 목표인간중심적 상담에서는 어떤 특별한 행동의 변화에 상담의 목적을 두기 보다는 오히려 한 개인이 전체적으로 계속적인 성장의 방향으로 향하게 하도록, 그래서 궁극적으로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은 목적으로 삼는다. 그것은 내담자는 이미 자신 속에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적절한 관계성만 조성되면 자신의 문제들에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더 좋은 방법들을 발견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2. 상담의 과정인간중심적 상담모형의 상담과정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상담의 과정이나 문제해결에 대한 내담자의 책임과 주체성을 강조한다.∮ 수용적인 상담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수용적인 상담관계의 분위기에서 내담자가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고 그러 충분히 표현되고 나면 성장을 위한 긍정적인 충동들이약하고 감정적이긴 하지만 표현된다.⑥ 상담자는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하고 인식했던 태도와 마찬가지로 표현되는 긍정적인 감정을 수용하고 인식한다. 이 과정에서 통찰과 이해가 이루어진다.⑦ 이러한 통찰, 자기의 이해, 자기 수용은 전체의 상담과정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측면 이다.⑧ 가능한 결정과 가능한 행위의 경로를 명료화 하는 과정은 이 통찰의 과정과 혼합되어 있다.⑨ 아주 작긴 하지만 매우 의미가 있는 적극적인 행동이 나타난다.⑩ 앞의 단계가 잘 달성이 되며 자기의 행위를 더 깊이 보는 용기를 가짐에 따라 더 완전 하고 정확한 자기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⑪ 내담자는 점점 더 통합된 긍정적 행위를 한다.⑫ 조력의 필요성이 감소되고 상담관계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내담자가 갖게 된다.3. 상담의 기술인간중심상담에서는 내담자의 성장가능성, 자아실현 경향성, 자기지도력을 믿기 때문에 상담자의 지시적인 태도, 권위적인 입장, 분석적인 자세를 거부한다. 또한 상담의 기법보다는 카운슬러의 인간됨, 상담관계 그 차제를 중요시 하게 된다. 상담관계에서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있는 그대로 이해되고 수용되는 경험을 하는 신뢰를 경험하게 되므로 방어기제를 사용하지 않고 자유로이 자신을 노출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므로 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① 공감공감이란 상담자가 내담자의 생각, 감정, 경험에 대하여 상담자의 주관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내담자의 입장에서 듣고 반응하는 것이다. 때문에 공감은 ‘타인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 또는 ‘타인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던져주는 하나의 언어반응이 아니라 ‘함께 하는(being with)’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일반적으로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공감적으로 반응하는 요령은 ¤ 상담자가 내담자 자신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내용을 주의 깊것이다.
2006학년도 학사학위 논문다산의 서신에 나타난 교육사상 고찰-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중심으로 -대 학 교국 어 교 육 학 과2006학년도 학사학위 논문다산의 서신에 나타난 교육사상 고찰-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중심으로 -대 학 교국 어 교 육 학 과교수지도학사학위논문다산의 서신에 나타난 교육사상 고찰이 논문을 학사학위논문으로 제출함.년 월 일대 학 교국 어 교 육 학 과◇ 차 례 ◇Ⅰ. 서 론Ⅱ. 본 론1. 서간문2. 정약용의 삶과 문학1) 다산의 생애2) 문학3) 3. 다산의 서신의 작품분석1) 아버지로서의 다산2) 교육을 통한 가르침3) 효와 제4) 실학사상의 반영4. 작품의 의의1) 가정교육2) 민중적 기초정신의 다산3) 시사점Ⅲ. 결 론Ⅳ. 참고문헌Ⅰ. 서론다산은 잘 알려진 대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집대성자로 사회, 경제, 정치, 과학,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독자적인 견해와 이론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특히 교육적 측면에 있어서는, 주자학적 지배이념을 거부하고 경전의 본래정신으로 돌아가, 즉 수사학적 이념으로 분석 도출하여 인간중심의 새로운 교육관을 전개하였다. 그는 유학적 실용주의적 교육사상가로 이상적 교육을 목민관상의 형성에 두었다. 이에 따라 경서를 포함해 유학서를 포함해 다양한 교재로 유학적, 역사적 지식을 제공하는 교육내용과, 사고과정을 중시해 의미 연상에 의한 학습법을 창안하고 인지훈련과 과제해결 방법으로 통합적 교육방법을 시도했다. 다산은 특히 주체적이고 실용적인 교육을 강조했다.다산의 많은 저작들이 그의 사상을 잘 반영해 주고 있지만, 그의 이러한 교육사상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보냈던 서신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자신의 처지와 국가의 현실 앞에 두 아들들에게 당부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말하는 인간관과 교육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아가 이것이 현대의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어떤 것인가? 이러한 물음의 답변에서 우리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그가 전해주는 시사점을지 때문으로 파악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경국대전」과 중국의 「대명률」을 기본원리로 하여 조선과 중국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였다.(2) 시문학근래에 나는 내 상자에 들어 있는 구고를 뒤져보았다. 풍상을 겪기 전에 옥당에서 마음껏 노닐 때에는 지은 시편이 슬픈 기색을 띠고 기운이 막혀 있었다. 장기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을 때에는 시가 더욱 슬퍼져 비통하게 흐느꼈다. 강진에 온 후에 지은 것은 대부분 툭 터지게 마음이 넓어진 표현이나 뜻을 지니게 되었는데, 수난을 겪기 전에는 이를 수 없던 경지이다. 이러한 기상을 지니면서부터는 슬픔이 없는 데 가깝게 되었다.-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집에 있는 두 아들에게 보낸 글에 나오는 말이다. 자기의 시를 세 단계로 나누어서 단계마다의 특징을 지적했다. 처음에 관직에 순조롭게 나아갈 때의 시는 글재주만 자랑하는 정신적 사치에 가까운 씨를 썼으니, 슬픈 기상을 띠고 기운은 막혀 있었다. 그러다가 장기에서 귀양살이가 시작되면서 옥당에서 노닐 때 지녔던 환상이 깨어지고 사상의 틀이 파괴되었으며, 험난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자기의 절박한 처지를 비통하게 호소하는 시가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통한 시는 자기의 처지에만 집착한 것이다. 강진에서 귀양살이가 오래 계속되자 이와 같은 협소한 안목에서 벗어나게 되는 전환이 마련되었다. 민중이 겪는 고난을 널리 이해하면서 고독에서 벗어나고, 고난의 정체와 해결 방향을 알 수 있게 되면서 막혀 있던 시야가 열려서 마음이 넓어지고 뜻이 터진 시를 쓰게 되었다. 이러한 시는 처절하기 이를 데 없는 고난을 다루면서, 민중생활의 보람과 의지를 긍정하고 절망을 노래하면서 희망을 고취하기 때문에, 슬픔이 없는 데 가깝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다산은 유배생활을 하며 19세기 초 조선의 농촌 사회를 대상으로 삼아 그 사회의 섬세한 부분까지 자세히 살펴보고 당대 사회의 내적 모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한시를 많이 창작하였다. 그래서 사회 제도의 모순, 관리나 토호들의 횡포, 애절한 심정을 시로 적어 외동딸에게 선물한다. 아마도 시집간 딸에게 아버지로서 죄인의 몸인 것이 늘 부담스러웠을 것인데 그 미안함을 매조도에 담아 보내지 않았을까.(3) 아들의 죽음 앞에서 - 막내아들이 죽다(1802년 12월)우리 농아가 죽었다니 비참하구나! 비참하구나! 가련한 애. 나의 몸이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있을 때 이런 일까지 닥치다니. 정말 마음을 크게 먹을 수가 없구나. 너희들 아래로 무려 사내아이 네 명과 계집애 하나를 잃었다. 그 중 하나는 낳은 지 열흘 남짓해서 죽어버려서 그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겠고 나머지 세 아이는 모두 세 살 때여서 품에 안겨 한창 재롱을 피우다가 죽었었다. 이 세 놈들은 나와 네 어머니가 함께 있을 때 죽었기에 딴은 운명이라고 쳐버릴 수도 있어 이번같이 간장을 후벼 파는 슬픔이 북받치지는 않았다. 내가 이렇듯 먼 바닷가에 앉아 있어 못 본 지가 무척 오래인데 죽다니! 그 애의 죽음이 한결 서럽고 슬프구나. 생사고락의 이치를 조금 깨달았다는 나의 애달픔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네 어머니야 품속에서 꺼내어 흙구덩이 속에 집어넣었음 에랴! 그 애가 살았을 때 어리광부리던 말 한 마디 한마디, 귀엽던 행동 하나하나가 기특하고 어여쁘게만 생각되어 귓가에 쟁쟁하고 눈앞에 삼삼할 것이다. 더구나 여자들이란 정이 많아 이성에 의지하지 못하는 것이 심상인데 얼마나 애통스럽겠느냐! 나는 여기에 있는데다 너희들은 이미 장성하여 밉상스러울 것이니 생명을 의탁하려고 했던 바는 오직 그 아이였을 것이다. 더욱이 큰 병환을 치르고 난 뒤 아주 수척한 무렵에 이런 일만 이어지니 하루 이틀 만에 따라서 죽어가지 않는 것만도 크게 기이한 일이구나. 가령 내가 그런 경우를 직접 당했더라면 아버지라는 것도 잊은 채 다만 어머니가 슬퍼하는 것처럼 되고 말았을 것이다. 아무쪼록 너희들은 마음과 뜻을 다 바쳐 어머니를 섬겨 오래 사시도록 하여라.이 뒤부터라도 정성스런 마음으로 타일러 두 며느리로 하여금 아침 저녁으로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맛있게 해드리고 방이 순탄한 환경 가운데 써진 것으로 그 참된 뜻 음미하기에는 더없이 빈약한 것임을 발견한 터라 자신의 독서 또한 이 유배의 땅 강진에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아들들을 격려하고 교육한 것이라 볼 수 있다.)다산은 아들들이 자포자기하지 않고 학문을 계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독서의 중요함, 특히 역경과 독서의 본질적 관계를 말하고 있지만 점점 독서에 관한 일반론이 아닌, 자신의 저서를 읽어줄 것을 바라는 아버지의 훈육과 요구로 확장된 사상을 매듭짓는다.유배와 폐족이란 역경 가운데 참된 독서가 가능함을 발견한 정다산,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 성과는 누구보다도 그의 아들들에게 보여주는 개인적인 것이 당연하며,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편지로 전하는 독서의 성과일 것이다. 특히 역경 가운데에서의 독서였던 만큼, 그 가치는 컸으며, 그 가르침의 토대에는 그가 결국 아들에게 썼지만, 그 글이 개인적이지 않고 사회를 내다보는 사상관에 연유하였음을 금방 알 수 있게 된다.요즈음 한두 젊은이들이 원, 명 때의 경조부박한 망령된 사람들이 가난한 괴로움을 극한적으로 표현한 말들을 모방해다가 절구나 단율을 만들어 당대의 문장인 것처럼 자부하여 거만하게 남의 글이나 욕하고 고전적인 것처럼 자부하여 거만하게 남의 글이나 욕하고 고전적인 글들을 깍아내리는 것은 내가 보기에 불쌍하기 짝이 없다. 반드시 처음에는 경학 공부를 하여 밑바탕을 다진 후에 옛날의 역사책을 섭렵하여 옛 정치의 득실과 잘 다스려진 이유와 어지러웠던 이유 등의 근원을 캐볼 뿐 아니라 또 모름지기 실용의 학문, 즉 실학에 마음을 두고 옛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글들을 즐겨 읽도록 해야 한다.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뒤라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이 된 뒤 더러 안개 낀 아침, 달뜨는 저녁, 짙은 녹음, 가랑비 내리는 날을 보고 문득 마음에 자극이 와서 한자식,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깨우치는 것도 시의 중요한 기능이라는 말이다.26))그 밖의 글쓰기에 관한 편지에서 다산은 각종 글을 지어 책을 만드는 법에 관해 쓰고 있다. 그는 주서여패(朱書余佩)라는 책을 만들 것을 당부한다.이제 한 권의 좋은 책이 될 수 있는 체제를 보내니 이 체제에 의거해 「주자전서」가운데서 취택하여 책을 만들어서 뒷날 인편에 부치면 내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감정해 보겠다. 책이 다 된 후에는 좋은 종이에 깨끗하게 적고 내가 지은 서문을 앞에 실어 항상 책상 위에 놓아두고 너의 형제가 아침 저녁으로 암송하도록 하여라.이 편지에서 정약용은 아들들에게 주희의 글을 모은 「주자전서」의 글을 골라 책을 만들도록 지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약용은 책의 제목부터 목차, 소제목, 글의 양, 쓸 내용, 줄여야 될 부분, 반드시 넣어야 할 부분, 참고문헌까지 일일이 예를 들어 일러주고 있다. 이는 그 만큼 정약용이 아들들의 공부에 직접적으로 신경 써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아들들에게 주자의 학문을 공부토록 하는 모습에서 정약용의 교육관을 엿볼 수 있다.다산은 또한 두 아들들에게 제경이란 윤리서를 만들 것을 이른다.제 1 원본(原本 : ‘효제라는 것은 위인의 근본이니라’ 구절 같은 논어 ? 맹자 ? 중용 ? 예 기 가운데서 격언 10여 조목을 뽑아 머리로 삼는다.)제 2 기거(起居 : 가장 아랫목에는 앉지 않으며 문 한가운데 서지 않으며 빨리 가고 천 천히 지나가는 것 같은 것)제 3 음식(飮食 : 밥을 흘리지 않는 일이나 남의 집에 가서 국을 간 맞추지 않는 일 같 은 것) …………… (생략)제경이란 소학을 바탕으로 새로 쓴 어린이용 윤리교과서를 말한다. 정약용은 아들들이 제경을 짓겠다고 하는 것을 칭찬하며 손수 차례와 편목을 만들어 지도해주고 있다. 이 편지에서도 역시 아들들에게 참고해야할 책까지 직접 정해주는 정성을 보여주고 있다.다산은 강진 유배시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손수 한문교과서를 만들어 사용했다. 다산은 ‘천자문’ ‘소학’과 같은 )
버들잎이 주제가 된 설화와 그 의미에 대하여1. 들어가며언제인지 분명하진 않지만 어렸을 때, 강화에 계시는 할머니께 들은 옛날이야기 중 도깨비에게 바쳐진 처녀가 버들잎으로 도깨비를 물리치는 이야기가 있었다. 본 과제의 주제 선정에 도움이 될까 하여 찾아 본 결과, 강화 지역에 그와 비슷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었으며, 함께 버들잎이 주제가 된 설화를 찾을 수 있었다. 버들잎이 잠깐 등장하는 소재로 다루어 진 것이 아닌 주 제재로 등장하는 설화는 5편을 찾을 수 있었으며, 몇 가지는 공통된 이야기 구조를 보였다. 그것을 바탕으로 설화에서의 버들잎이 나타내는 의미에 대해 생각 해 보도록 하겠다.2. 버들잎이 주 제재로 등장하는 설화1) 언청이 입술 덮은 버드나무잎)내용 : 무더운 여름 한 언청이가 버드나무 밑에서 잠을 자려 한다. 그런데 입술 때문에 침이 계속 뭍어있게 되니 파리가 자꾸 달라붙으므로, 입에다 버들잎을 붙여 가린 채로 잠을 잔다. 그 모습을 본 지나가던 귀머거리가 그 모습을 보고 누워있는 사람이 버들피리를 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귀머거리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저 놈의 소리같이 슬플까”라며 피리 소리가 들리는 체 말한다.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언청이가 버드나무 밑에서 잠을 청한다.▷ 자신의 입술과 침을 가리기 위해 버들잎을 입에 붙인다.▷ 귀머거리가 지나가며 그 모습을 본다.▷ 누워있는 사람의 피리소리가 들리는체 한다.2) 버들잎과 누이의 지혜)내용 : 옛날에 학방에 다니는 잘난 총각과 옆집 사는 예쁜 아가씨가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하루는 밤에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아가씨가 담 밖으로 베를 넘겨주면 총각이 그것을 잡고 담을 넘어가기로 편지로 약속을 한 것이다. 총각이 들뜬 마음으로 그날 학방에 가서 공부를 하는데 선생님이 그의 행동이 이상한 것을 눈치 챈다. 그리하여 몰래 그의 책 속을 들춰보니 오늘 밤에 만나기로 한 편지가 들어있는데, 학생은 그것도 모르고 학방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선생님은 학생 대신 아가씨를 자 선생님은 살인을 저지른다.▷ 뒤늦게 그 자리에 도착한 총각은 처녀가 죽었음을 확인한다.▷ 총각은 놀라서 신발 한 짝을 떨어뜨린 채 그곳을 떠난다.▷ 떨어뜨린 신발 때문에 총각은 살인자로 지목을 받고 사형을 언도 받는다.▷ 사형 날 아침, 그의 누이의 세숫물에 벌레구멍이 세 개 난 버들잎이 뜬다.▷ 누이가 그 버들잎의 의미를 해석하여 살인자를 찾아내고 총각은 사형을 면한다.3) 버들잎이 풀어준 살인사건)내용 : 어느 서당이 있었다. 어느 날 우물가에 물 길러 왔던 색시가 서당의 생도에게 보름 날 밤에 만나자는 신호를 보낸다. 헌데 그 생도가 신호를 풀이를 못한다. 선생한테 물어보니 보름 날 밤에 만나자고 하는 신호라 하는 것을 알려 준다. 그런데 막상 그 날이 되자 선생이 다른 날 보다 수업을 훨씬 더 하여 늦게 끝내는 것이다. 시간이 늦어져 선생의 집에서 생도가 함께 자게 되는데, 생도가 잠들 것을 보고 선생은 자기가 대신 색시에게 찾아간다. 하지만 색시가 그의 말을 듣지 않자, 선생은 그만 색시를 죽여 버리고 집에 들어온다. 선생이 집에 들어오는 기척에 잠이 깬 생도는 정신을 차리고 색시의 집에 찾아간다. 하지만 색시가 이미 죽었음을 확인하고 놀라서 집에서 뛰쳐나오는데, 그만 자기 신발이 아닌 색시의 고무신을 신고 나왔다.다음날 신발 때문에 원에 붙잡혀 간 생도는 자신이 안 죽였다고 우기면 문초를 당할 것이 두려워 죽였다는 자백을 한다. 하지만 고을 원님이 보니 그는 사람을 죽일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형을 집행하기 전날 원님이 세수를 하는데, 그의 세숫물 위로 한가운데 구멍이 뚫린 버들잎이 떨어진다. 하지만 원님은 해석을 하지 못하고, 그의 딸에게 그것을 말한다. 딸이 살펴보니 그 날은 바람도 없고, 더구나 주위에 버드나무도 없었다. 딸은 생각하다가 구멍이 뚫어진 버드나무 이파리인, 유공엽(柳孔葉)을 찾으면 그가 범인이라 말을 한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원님은 유공엽을 찾았는데, 그는 바로 생도의 선생이었다. 그를 문초하니 그가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울 정도로 하루 종일 그를 가르친다. 그리고 그가 지쳐 잠이 든 사이에 선생이 대신 약속장소로 가서 명주실을 타고 넘어 여인에게 간다. 여인이 반항한다고 소리를 지르려 하자 당황한 선생은 그만 여인을 찔러 죽이고 도망간다.한편 자다 일어난 이 아이는 급히 여인에게 찾아가고, 여인이 죽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놀라서 황급히 도망을 치는데 그만 경황이 없어 자기 고무신을 벗어놓고 뛰어나온다. 두고 온 신발 때문에 범인으로 지목을 받아 옥에 갇히게 된다. 한편 어느날 까치가 죽은 여인의 집에 구멍 뚫린 버드나무 잎사귀를 하나 물어다 주고 간다. 그것을 여인의 아버지는 해석을 하지 못하고, 고을 원님에게 가져가지만 고을 원님도 해석을 하지 못한다. 헌데 원님의 딸이 그것을 보고는 버드나무 유(柳)자, 구멍 공(孔)자, 이파리 엽(葉)자라고 해석을 하고 유공엽을 찾으니 서당의 선생이었다. 그래서 결국 남자는 풀려나게 되었는데, 그 죽은 여자의 혼이 와서 살려 준 것이라 한다.정리 해보면 다음과 같다.▷ 부잣집 외동딸과 잘난 남자가 만나기로 편지로 약속을 한다.▷ 그것을 우연히 알게 된 서당의 선생은 남자가 잠든 사이에 자기가 대신 여인을 만나러간 다.▷ 여인이 반항을 하자 선생은 그만 여인을 찔러죽이고 도망친다.▷ 뒤늦게 일어난 남자가 약속 장소로 가지만, 여인이 죽어있음을 알게 된다.▷ 남자는 황급히 도망치다가 그만 신발을 두고 온다.▷ 신발 때문에 범인으로 지목된 남자는 옥에 갇힌다.▷ 어느 날 여인의 집에 까치가 구멍 난 버드나무 잎을 떨어뜨려주고 간다.▷ 여인의 아버지도 고을 원님도 해석하지 못하는 의미를 원님의 딸이 해석하여 범인을 찾 고 남자는 옥에서 풀려난다.5) 버드나무 잎이 제일 무섭다)내용 :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힘이 들이 쉬고 있는데 도깨비가 나타난다. 도깨비는 삼일 안에 큰 딸을 안주면 나무꾼을 죽이겠다고 한다. 아버지는 근심이 되어 딸들에게 얘기를 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다가 큰딸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말을 한다. 큰 딸은 아버지를 살깨비가 탁 널부러지는 것이 아닌가. 셋째 딸은 그 길로 아버지에게 가서 장정들을 시켜다 버들잎을 많이 뜯어 온 몸에 칭칭 감아 도깨비를 퇴치하였다.정리 해보면 다음과 같다.▷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도깨비를 만난다.▷ 도깨비는 첫째 딸을 요구한다.▷ 첫째 딸이 도깨비에게 바쳐졌지만, 도깨비가 먹으라는 사람의 다리를 먹지 못해 갇히고 만다.▷ 도깨비는 둘째 딸을 다시 요구했지만, 그녀 역시 첫째 딸과 같은 이유로 갇히게 된다.▷ 다시 바쳐진 셋째 딸은 도깨비가 먹으라는 사람의 다리를 배 안에다 꽁꽁 묶어, 먹은 척 을 한다.▷ 도깨비는 셋째 딸과 함께 살기로 하고, 자신이 버들잎을 무서워함을 알려준다.▷ 셋째 딸은 버들잎으로 도깨비를 퇴치한다.3. 버들잎의 등장 유형위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의 설화에서 버들잎은 조금 다른 용도로 등장을 한다. 그것을 각기 분류하고 거기에 맞는 의미에 대해 생각 해 보도록 하겠다.1) 약점을 가리는 용도☞ 위의 설화에선 언청이의 약점인 갈라진 입술과 그 때문에 묻어나는 침을 가리는 용도로 버들잎이 쓰였다.2) 범인을 암시해 주는 예지의 용도☞ 위의 세 설화에선 공통적인 구조를 많이 보이는데 나타나는 지역은 경북 상주, 경북 완주, 강원도 인제 등으로 다양하다. 버들잎이 기능하는 면 또한 내용의 구조와 마찬가지로 일치한다. 이 유형의 설화가 각기 다른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은, 옛날이야기의 한 구조로 광범하게 분포 되었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여기에서는 버들잎이 살인범을 알려주는 암시의 역할로 쓰였다.)3) 퇴치의 용도☞ 지하괴물제치(地下怪物除治) 계열의 이야기로) 도깨비를 퇴치하는 용도로 버들잎이 등 장한다.)4. 등장 유형에 따른 버들잎의 의미언청이는 기형의 일종으로, 윗입술이 찢어져 토끼의 입술 모양을 띠므로, 토순(兎脣)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1000명 중에 1명꼴로 생기는 드물지 않은 장애이기도 하다.) 현재야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겠지만, 과거에는 그에 대한 수술법이 없었을 것이니, 한번 언청이로 태어난 사람은 그것을르치는 선생이 그 사실을 알게 되고, 학생이 자는 틈을 타서 자신이 대신 색시를 만나러 간다. (일부러 학생과 아가씨가 만나지 못하도록 한다.)▷ 색시가 말을 듣지 않자 선생은 색시를 죽인다.▷ 뒤늦게 약속장소로 간 학생은 색시가 죽었음을 확인한다.▷ 그는 놀라서 뛰어나오다 그만 신발을 바꿔 신고(혹은 떨어뜨리고) 나온다.▷ 남아있는 신발 때문에 그는 범인으로 지목되고 사형을 언도 받거나 옥에 갇힌다.▷ 학생과 관련한 누군가에게 구멍이 뚫린 버드나무 잎이 떨어진다.▷ 다른 사람들은 해석을 하지 못하고, 학생의 누이나 원님의 딸(여자)이 그 의미를해석하여 범인을 찾아낸다.위 이야기 구조는 앞의 세 설화에 모두 공통된 것이다. 이야기는 선생이 여자를 죽이지만 학생이 대신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다는 것으로 절정을 맞으며, 구멍 뚫린 버들잎으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벗고 사필귀정한다는 구조를 보인다.이야기를 살펴보면 여기서 아가씨를 대신 만나려 꾀하고 또한 죽이는 사람이 학생의 선생이란 사실이 흥미롭다. 대체로 우리의 문화에서 선생님이란 아버지와 일맥상통할 만큼의 존경의 대상이며, 사회적 지위가 낮지 않다. 그런 선생님이 학생 대신 여자를 만날 수작을 하고 더구나 그 여자를 죽이는 행위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욱이 선생님은 그 범행장소에서 도망쳐 아무렇지 않게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의 제자는 옥하 갇히거나 사형을 언도받는다. 이런 절정의 상황에서도 선생님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문화적 코드와는 역행하는 모습이며, 이로 인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분노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본다.이 때 학생이 살인범이 아닐 것이라고 고뇌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고을 원님이나 그의 누이이다. 그들은 사람의 됨됨이를 놓고 아닐 거라 추측하지만 이렇다 할 물증이 없으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그들에게 구멍 난 버들잎이 떨어진다. (유공엽 또는 유충삼) 분위기는 신이하다. 바람도 잔잔하여 나뭇잎이 떠다닐 정도가 되지 않고, 더욱이 주변엔 버드나무도 없는데 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