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와 늑대를 듣고수학교육050457정화미프로코피예프Sergey S. Prokofiev 1891~1953러시아 작곡가.농업기사의 아들로 태어나 중부 러시아의 드넓은 자연속에서 성장하였다. 어머니에게 피아노의 기초를 배우고 음악에 소질을 보여 5세 때 이미 피아노곡을 작곡하였고, 9세 때 오페라《거인》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1902년 R.글리에르 등에게 작곡을 배우고, 1904년 글라주노프의 권고로 1914년까지 10년간 페테르스부르크음악원에서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관현악법, 리아도프에게 대위법, 체레프닌에게 지휘와 작곡, 에시포바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재학중 작곡을 계속하는 한편, 1908년 〈현대음악의 저녁〉이라는 모임에 참여하면서 국내외 전위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악마적 암시》 등의 자작곡을 연주하여 피아니스트로 데뷔하였다. 제1차세계대전 때에는 가정사정으로 병역을 면제받고, 1914년 졸업한 뒤 전통에 구애받지 않는 대담한 작풍으로 발레곡 《알라와 롤리》《어릿광대》와 1917년 《바이올린협주곡 제1번》과 《고전 교향곡》 등을 작곡하여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시베리아, 일본을 거쳐 1918년 미국으로 망명하였고,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전개하여 피아니스트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22년경부터 소련 거주의 친구들과 편지왕래를 시작하여 조국으로부터의 거듭되는 귀국요청에 따라 1927년 귀국하여 각지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으며, 이후 소련을 자주 왕래하다가 1934년 영주 귀국하기로 결심하고 가족과 함께 이듬해 귀국하였다. 1936년 당국의 문화방침(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의하여 어린이를 위한 교향적 이야기《피터와 늑대》를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피터와 늑대는 용감한 소년 피터가 숲 속의 늑대와 싸워서 착한 오리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음악으로 나타낸 것으로 러시아의 현대 음악을 대표하는 프로코피에프가 특별히 어린이들을 위하여 작곡한 것이다.제2차세계대전 때 독일과의 전쟁 중에는 소개지의 각처에서 창작활동《바이올린 소나타 2번》 《교향곡 제5번》 등을 작곡하여 원숙기의 걸작들이 탄생하였다. 1945년에는 심장마비로 입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평화》를 개정하기도 하였고, 1948년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 등과 함께 당국으로부터 서구를 따르는 형식주의자라는 비판을 받는 등 창작 경향에 제약을 받았다. 이후 병고로 인하여 창작활동이 급격히 쇠퇴하다가 1953년 3월 스탈린과 같은 날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났다.초기에는 드뷔시, 스크랴빈, 스트라빈스키의 영향을 받아 복잡한 화음과 힘찬 리듬을 통해 원시적인 격렬함을 추구하는 작풍을 지녔으나 러시아혁명을 계기로 고전주의적 경향으로 바뀌었으며, 망명시기의 혼미기를 거쳐 영구귀국한 뒤 사회주의 리얼리즘(당국의 문화 노선에 따른)에 의한 간결하면서 서정적인 작풍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음악양식으로 4개의 기본노선을 말하고 있는데, 즉 고전적인 선, 혁명적인 선, 토카타 또는 모터 선, 서정적인 선이 바로 그것이다.대표작품으로 동화음악 《피터와 늑대》 《교향곡 제5~7번》《고전 교향곡》 《피아노 협주곡 3번》 발레곡 《로미오와 줄리엣》 《신데렐라》 오페라 《전쟁과 평화》오라토리오 《평화의 수호》 영화음악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이외에 바이올린 소나타, 피아노 소나타 등이 유명하다.피터와 늑대의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어느 날 아침, 피터(바이올린)는 목장에 나가, 고양이(클라리넷)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새들(플루트)을 구한다.이 때, 할아버지(바순)가 여기는 늑대가 있어서 위험하다고 하면서 피터를 데리러 온다.두 사람이 사라지자, 숲 저쪽에서 늑대(호른)가 달려 나와서, 미처 도망치지 못한 오리(오보에)를 한 입에 삼켜 버린다. 그러자 피터는 악독한 늑대를 잡기로 결심하고, 새들과 힘을 합쳐 올가미로 멋지게 늑대를 사로 잡는다.악곡의 줄거리:피터의 주제 가락 (바이올린) : 어느 날 아침, 호기심 많은 소년 피터는 문을 열고 넓고 푸른 목장으로 나갔습니다.작은 새의 주제가락 (플루트) : 큰 나뭇가지 위에는 피터의 친오리가 뒤뚱거리며 걸어옵니다. 오리는 피터가 깜박 잊고 문을 잠그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연못에서 목욕을 하려합니다.고양이의 주제 가락 (클라리넷) : 피터는 숲 속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심해!" 피터의 고함 소리에 놀란 작은 새가 훌쩍 나무 위로 날아올랐습니다.할아버지의 주제 가락 (바순) : 할아버지는, 피터가 제 마음대로 목장을 나간 것에 대해 무척 화를 내셨습니다. 그리고 근엄한 표정으로, 피터에게 주의를 줍니다.늑대의 주제 가락 (호른) : 피터가 집으로 들어가자, 숲 속에서 커다란 회색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늑대를 본 고양이는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사냥꾼의 주제 가락 (팀파니) : 피터가 올가미에 늑대가 걸려들었습니다. 바로 그때 숲 속에서 사냥꾼들이 총을 쏘며 늑대의 발자국을 따라왔습니다.피터와 늑대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유용한 교육적 내용을 담고 있어서 원래의 클래식으로도 많이 들리고 있지만 변형되어 동화발레라는 이름으로도 우리나라에서 많이 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동화발레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피터와 늑대는 의상이나 동작 음악 모두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만들어지고 연출된 발레작품이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느끼고 이해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게끔 만든 것이다. 친절한 해설이 가미되고, 악기의 특색을 활용하여 등장인물과 상황을 표현한 프로코피에프의 음악도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으며, 기존 발레 동작에서 과감히 벗어난 움직임도 볼 수 있다. 원곡 피터와 늑대는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음악동화로 소규모의 관현악단(orchestra)과 낭독자(speaker)에 의해 진행되는 클래식 음악이다. 등장인물을 특정한 악기(또는 악기의 조합) 음색과 음악적 주제에 의해 표현하기 때문에 아동을 위한 교육적 효과와 호응이 큰 유명한 클래식음악의 수작(秀作)이며, 이미 수많은 음반과 연주회를 통해 대중에게 익숙한 음악작품이다.발레공연은 이러한 뛰어난 원작음악을 바탕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이 발레극으로는 국내 처음으로 제작, 발레의상과 가면인형(머리에 뒤집어 쓰는 인형)을 착용하고 각 캐릭터별 특징적인 몸동작을 가미한 무용을 선보이게 된다.감상음악을 들으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조수미의 낭랑한 목소리였다.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동화라는 것이 느껴지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이야기의 등장인물과 사물이 모두 오케스트라의 악기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준다.그리고 각각의 악기와 등장인물을 매치해서 하나하나 들려준다. 각각의 악기와 등장인물을 연상시키는 악기의 배치가 아이들에게 악기의 소리에 대한 형상을 상상하게끔 한다. 눈을 감고 가만히 들어보면 정말 그 소리와 어울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바이올린,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 팀파니라는 악기를 그냥 듣고 쉽게 각악기의 음색을 구별할 수 있는 어떤 계기도 되어줘서 또한 음악 교육 효과도 높여줄 수 있다. 이 곡만 열심히 한번 들어도 이 정도 악기 구분은 연상법으로 쉽게 할 수 있다. 보통의 클래식이라 함은 일단 따분함으로 다가오기 쉽상인데 이 곡은 시작부터 끝까지 그런 점을 찾아 볼 수 없는 것도 큰 장점이라 하겠다.이곡 한곡을 수업에서 틀어준다면 예상컨대 모두들 좋아하며 끝까지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 고학년의 아이들보다는 구연동화식의 동화를 좋아할 나이인 저학년이 더욱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상상력 측면에서도 그렇고 순수함이 더욱 넘치는 나이에서 이런 곡을 듣는다면 어른이 이 곡을 들었을 때보다도 훨씬 더 큰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본인만 해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들려주시던 말도 안 되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 상상하면서 몹시 좋아하던 생각이 난다. 게다가 그냥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조수미의 훌륭한 나래이션과 함께 그와 어울리는 음악은 멋진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글과 그림은 쉽게 그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하긴 하나 상상력을 길러주는 데는 좋지 못하다. 또한 글만으로는 뭔가 아쉬운 점이 있는데 이처럼 음악이 주가 되는 동화라면 더욱더 큰 교육적 효과가 있다. 똑듣더라도 모두 다른 새를 연상 할 것이다. 어떤 아이는 참새를 또 어떤 아이는 제비를 상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모두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또한 이 음악을 듣고 생각한것인데 내가 직접 피터와 늑대라는 곡으로 수업을 한다면 아이들에게 이 곡을 들려주고 난 뒤 아이들에게 모듬을 구성하라고 한 뒤 한 가지 동화를 골라 각각을 아이들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악기, 트라이앵글, 실로폰, 캐스터네츠 등으로 동화를 직접 만들어 보라고 해보고 싶다. 아이들을 상대로 조사해 본 결과 음악의 활동 영역 중 기악 활동과 감상 활동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기악 활동을 좋아하는 이유로는 대부분 `직접 연주하는 데서 오는 재미`를 이유로 들었다. 감상 활동을 좋아하는 이유로는 ‘곡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많았다. 또한 감상 활동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특이한 답변으로는 `그냥 듣기만 하면 되고, 만들 필요가 없어서` 라는 답변이 있었는데, 이를 통해 아동이 창작 활동에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감상 활동이 아무런 활동 없이 곡을 듣기만 하는 활동이라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창작 활동을 좋아한다고 답한 학생은 예상외로 한 명도 없었는데, 이에 의문을 갖고 지도교사의 조언을 구한 바에 의하면, 그동안 창작 활동을 많이 경험해보지 못하여 아동에게 인지도가 낮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답변들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피터와 늑대같은 음악동화를 만들어보라고 하는 수업은 아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다라고 생각된다. 물론 피터와 늑대같은 완성도 있는 곡을 바라지는 못하겠지만 각각의 악기 음색을 연구해보고 최대한으로 살리려고 아이들도 노력할텐데 그러는 과정 속에서 악기들의 음색을 잘 이해할 수 있을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러한 수업을 통해 각각 학년에 맞는 아이들이 그러한 작업을 함으로써 음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없애고 재미를 느끼게 되는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화에 본다.
[국어와 문화 Report]1.2문화란 무엇인가?‘문화’의 정의를 좀 더 정교하게 내려보고자 한다. 이것이 어려운 개념임을 인지하면서 시작하는 것은 중요하며, 우리는 계속적으로 이 정의를 개선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진행중인 과정 속에서 첫 시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Keywords(1976)」에서 문화이론가이자 비평가인 Ramond Williams은 문화라는 개념을 근대 사회 지식의 4~5개의 핵심 개념중의 하나로 간주했다. 그는 그 용어가 곡물을 경작하거나 동물을 길들이는 개념(예를들어 그것의 핵심적인 근대적 의미로 파생된 ‘agri-culture'와 같이)과 물질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계몽주의 시대에 ‘문화’, 그리고 그것의 유의어인 ‘문명’이라는 용어들을 좀 더 ‘야만적이고’, 덜 개화된 사회의 대조적으로 유럽 문명이 성취한 인류의 발전과 진보의 일반적, 보편적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낭만주의 운동, 민족주의의 생성과 더불어 독일 작가 헤르더(Herder)의 영향하에 ‘문화’라는 용어는 다른 국가와 민족들의 다양하고 특수한 문화와 연관짓게 되었다. 즉, 그것은 오늘날 복수형으로 자주,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 쓰이는 의미인 특정 그룹, 민족, 국가, 혹은 시대의 생활상을 묘사한다. 그것을 ‘문화’란 용어가 특정사회 그룹 혹은 시대의 개별적이고 구분되는 ‘삶의 방식’을 지칭하는데 사용될 때 우리가 생생히 발견하게 되는 의미인 것이다. 19세기의 후반기에는 매튜아놀드(Matther Arnold)의 유명한 책인 「문화 그리고 무질서(Culture & Anarchy)」에 따르면, 문화라는 용어는 예술, 철학 그리고 교육과 관련되어 지적으로 세련된 상태를 지칭하는 현재 영어의 더욱 제한된 의미를 획득했다. 이러한 의미는 보통 사람들, 상대적으로 덜 세련된 대중들이나 하는 ‘통속문화’ 혹은 대중 미디어, 대중 소비와 연관된 ‘대중문화’와 대조적으로 ‘고상한 예술’을 지칭할 때 쓰이는 것처럼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문화’라는 개념이 어디에서 사용되어지든지 간에 우리는 이 모든 의미의 흔적들을 아직도 생생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아마도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나타났던 여기서 사용되는 개념과 가장 관계있는 정의는 인문 사회 과학의 생성과 관련되어 있다. 이 정의는 문화의 관계를 ‘의미’로 강조시킨다. 윌리엄(Williams)은 문화가 예술과 학습뿐만 아니라 직관과 일상적 행동의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표현하는 삶의 특정한 방식의 묘사라는 점에서 이것을 문화의 ‘사회적’정의라고 부른다. 그러한 정의로부터 나온 문화에 대한 분석은 특정한 삶의 방식, 특정한 문화를 함축적으로, 명백하게 의미와 가치를 명료화시킨다.(Williams. 1961.p57) 이것은 사회내에서 개인들을 함께 묶어주는 공유된 지식을 제공하는 사회학적 전통에서의 ‘집단적 재현’과 유사하다. 사회학의 기반 인물이었던 에밀리 뒤르크하임(Emile Durkheim)에 따르면 집단적 재현이란 기본적으로 사회적이며, 그들의 행동, 제사, 제도, 신화, 종교적 믿음, 예술을 통해 표현된 특정 사람들의 공유된 의미, 가치, 규범을 지칭한다. 이것은 소위 ‘최초의’ 사람들로 불리는 고고학 연구의 기초를 이루었다.윌리엄은 문화, 의미 그리고 의사소통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상당히 강조한다. ‘우리의 경험의 묘사는 관계망을 형성하기 위해 나온 것이고, 예술을 포함하여 모든 의사소통 구조는 문자 그대로 우리 사회조직의 부분들이다’라고 그는 주장한다(1961, p55) 의미를 교환하는 과정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과 같으며, 비교와 상호소통의 긴 과정은 우리에게 중요하게 연결되어 있는 삶이다.(ibid) 따라서, 그를 위해서는, ‘문화’를 연구하는 것과 ‘사회’를 연구하는 것 사이에는 거의 혹은 전혀 구별이 없다. 넓게 말해서, 그는 사회의 문화적 의미와 가치들이 사회적, 제도적 관계를 반영하고 표현한다고 가정한다. 우리의 보는 방식은 실제로 우리의 삶의 방식이므로, 의사소통의 과정은 사실상 공동체의 기부, 접대, 그리고 긴장과 성장, 변화의 성취로 이끄는 새로운 의미의 비교인 과정이다.사회학과 문화적 연구분야에서의 이어지는 발전들은 윌리엄의 중심성에서 의미, 의사소통, 언어의 주고받기 문화의 강조를 고수하여 왔다. 그러나 그들은 복잡한 사회에서 유일하게 하나의 ‘전체적 삶의 방식’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의문시했으며, 그 자신만의 용어로 연구될 필요가 있는 의미의 생성과 순환의 과정을 더욱 강조했다.어떻게 의미가 실제적으로 생성되나? 사회안에서 어떤 의미들이, 어떤 그룹에 의해서 공유되는가? 어떤 다른, 대립되는 의미들이 통용되는가? 어떤 의미들이 논쟁이 되고 있나“ 다른 의미군들 사이의 논쟁이 어떻게 사회의 권력 게임과 권력에의 저항을 반영하는가? 새로운 진보역시 내용에 반대되는 문화의 형태인 의미를 생성하고 순환시킴으로써 특정한 메커니즘(조직)에 더욱 강조를 둔다. 그리고 이것은 교대로, 의사소통 과정 그 자체에, 그리고 의미가 조합되는 (예를 들어 언어) 매개체에 주의를 집중한다. 언어가 단순히 사회적 관계와 사회제도의 반영인가, 아니면 사회를 구성하는 방법인가? 사회 이론과 문화 연구 분야에서 최고의 이론가들은 문화의 중심성과 상대적인 자율성을 훨씬 많이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단순히 사회로부터 문화를 읽을 수는 없다.
실력양성운동1.실력양성운동의 전개과정① 자강운동단계-문명개화를 통한 국권회복, 교육진흥식산흥업 등 실력양성을 통한 국권회복 주장, 애국심의 고취 강조▶자강운동론의 4계열?윤효정 등 헌정 연구회계 인사와 권동진. 오세창 등 천도교계 인사, 정운복. 최석하 등 서북학회계 인사 등 권력지향적 속성을 가진 ‘대한협회계열’→한국의 보호국화 불가피→‘선실력양성 후독립론’주장→국민 다수의 신임 받는 정당으로서의 정부 조직 주장→1910년 천도계열 제외하고 운동에서 탈락?장지연. 박은식. 남궁억. 류근 등 유교개혁론 입장의 ‘황성신문계열’→동양삼국연대론 받아들임, 한국 보호국화 비판→‘선실력양성 후독립론’ 주장→점진적인 문명개화노선→박은식과 같이 대한매일신보계와 입장을 같이한는 방향으로 전환한 경우 제외 운동에서 탈락?양기탁. 신채호. 장지연등 국수보전을 강조하는 ‘대한매일신보계열’→한국 보호국화 비판→1908년까지:‘선실력양성 후독립론’1909년부터:‘후독립’ 주장→1910년 국외에서의 무장투쟁노선 채택: 국외 독립군기지 건설사업?윤치호. 안창호. 이승훈. 최광옥 등 실력양성을 통한 국권회복을 가장 강조하고 또 인격수양의 측면도 강조하는 ‘청년학우회계열’→교육진흥과 실업진흥 강조: ‘선실력양성 후독립론’→‘인격수양’ 강조 ; ‘청년학우회’ 창립→105인사건으로 한때 큰 타격, 1910년 이후 동경유학생 출신들 중심으로 동조세력의 확산②실력양성운동론이 이론화되는 단계:1910년대 신지식인층에 의해▶실력양성론의 대두 배경: 1)일본 유학생들 신지식인층 대두2)일제의 산업 정책과 사회 정책: ‘문명개화’표방하면서 산업 개발, 문명 교육의 보급, 민풍 개선등 각종 지배 정책 구사▶1910년대 신지식인층의 실력양성론의 논리-‘선실력양성 후독립론’-실력양성론 →교육진흥론: 실업교육. 과학교육 강조→산업진흥론: 실력양성론 중 가장 큰 비중(“위로부터의 자본 주의화” 지향)- 1910년대 신지식인층이 제시한 사상: 서양의 신사상(개인주의. 과학주의 . 산업진흥론 등)-구사상에 대한 비판: 양반제도 등의 계급제도. 조혼 등 혼인제도. 분묘 등 조상 숭배 사업-1910년대 신지식인층의 실력양성론과 구사상. 구관습개혁론은 1920년대 초의 ‘문화운동’의 이론 준비라 볼 수 있음.③문화운동단계: 1920년 초반▶3.1운동 이후 국내외에서 ‘절대독립론’과 ‘국외에서의 외교운동-국내에서의 만세시위운동 연계론’: 서구 열강 및 미국의 한국 독립에 대한 지원(1919년 미국에서 국제연맹 제 1차 회의, 1920년 여름 미 하원의원단 한국 방문, 1921년말의 워싱턴 회의(태평양회의)) →그러나 냉담한 반응!∴타력 의존하는 독립운동 단념, 자력 키우는 ‘실력양성운동’ 필요하다는 주장의 대두1)‘정의 인도 원칙에 입각한 세계개조론’ 후퇴, ‘사회진화론적 세계관’ 대두2)사회 경제적 기반: 민족자본가 계층-3.1운동 이후 회사령 철폐 후 1919,20년경 한국인들 사이 각종 회사열풍-조선토착자본의 자본축척‘가능성’ - ‘민족자본가’계층이 생겨남∴1920년대 초반 실력양성운동은 민족자본가 계층의 사회경제적 입장 대변하는 성격 지님3)‘관념론적인 개조론’의 영향-1910년대 말~1920년대 초 1차대전 종전 직후 세계는 ‘사회개조’ ‘세계개조’ 열풍→3.1운동 후 대중화※한국에 가장 큰 영향 미친 쿠와키 겐요쿠의 문화철학→‘문화주의는 곧 인격주의’라 주장, 문화는 교화. 계몽. 인격완성등의 의미로 이해∴한국 신지식인층에 큰 영향 미쳐 문화운동에서 인격완성(즉 수양)과 정신개조 크게 중시▶문화 운동의 이론적 기초: 신문화 건설. 실력양성론. 정신개조. 민족개조론이 이론적 기초→1922년경 ‘민족성 개조론’:동아일보의 송진우, 개벽의 이돈화. 김기전. 현상윤. 이광수 등에 의해 제창, 이광수는 수련동맹회 결성(민족개조론 실천을 위해 '개조동맹‘의로서)▶문화운동의 흐름?청년회 운동-1919년말 ~ 1920년말 :신문화건설의 중심적 역할°설립목적-지.덕.체의 함양 등 인격수양. 풍속개량. 실업장려. 공공사업 지원°주요사업-강연회, 토론회, 야학강습회, 운동회°1920년말 조선청년회연합회 결성으로 절정-구습개혁, 인격수양, 지식교환, 산업진흥, 세계문화에의 공헌?교육진흥운동°목표-초기: ‘신문화건설’후기: ‘실력양성 위한 신지식 습득°교육열 급증→학교 입학지원자수 증가→학교설립운동 전개→학교 설립 조건 강화로 광범한 학교설립운동으로 발전 못함°서당개량, 주야강습호 설치운동 전개°신지식 교육이 기본적 목표°‘민족교육운동’으로 전개 못됨?물산장려운동(1922말 ~ 1923초 절정)→위기의식이 심화된 민족자본가들이 일으킨 운동°주도세력:민족자본가 상층, 그들 대변하는 실력양성운동론자들°한때 ‘토산품애용’측면에서 일정 성과 거둠°그러나 생산력, 새로운 회사나 공장설립이 뒷받침 안됨∴실패함◎문화운동 대두에 대한 일제의 입장:‘문화운동’이 ‘온건노선’의 운동으로서 대두한데 대해 크게 안도‘문화운동’을 체제내적인 운동, 동화주의 지향하는 친일어용적인 운동으로 유도하고자 함④자치운동단계:?1차 자치운동(1923 ~ 24)°국내 동아일보계, 천도교 신파 최린, 국외 안창호 등이 연결되어 ‘독립운동을 위한 준비단계로서의 자치권획득운동’ 이라는 구상하 정치결사 구성하려함→무산?2차 자치운동(1925 ~ 27)°1925년말 총독부. 일부 일본인들이 먼저 자치론 들고 나오면서 한국인 자치론자들 고무하였던 데에서 비롯°최린 중심의 동아일보계가 총독부와 연결되면서 진행→실현가능성 상당히 있어보임→위기의식 느낀 좌파 민족주의 자들이 사회운동자들과 연합전선 형성, 신간회 탄생 →실패
인사아트센터를 다녀와서10월 28일 금요일 오전수업을 마치고 바로 서울행 차를 탔다. 인사동에 들려 전시회를 둘러보기 위해서이다. 쌀쌀한 날씨지만 인사동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천천히 인사동만의 분위기를 느끼며 둘러보는데 여러 갤러리들을 구경하고나서 쌈지길 앞에 있는 인사 아트센터가 눈에 띄었다. 현대적인 감각의 멋진 건물 자체가 시선을 끌었다. 둘러보기로 하고 발길을 옮기는데 건물 자체가 하나의 미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멋져서 천천히 계단으로 건물을 구경하면서 올라가보았다. 2층에서 도우 展을 열고 있어서 호기심에 발을 들여놓았다. 운사회가 주체가 되는 전시회였다.운사회는 한국화단의 거목인 운보 김기창선생의 문화생과 평소 가까이 지내셨던 화우들이 자리를 함께하여 발족한 한국화 단체라고 한다. 「운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의미로 雲思會라 이름하여 금년 제4회전을 갖게 되었단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하나의 단순한 모임이라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 것은 특별히 운보선생께서 생전에 깊은 애정을 갖고 돌보셨던 농아청소년 중에서 미술에 재능있는 학생들을 선발하여 저희 회원작품과 함께 전시를 하고, 상을 주어서 그들을 격려하므로 미래에 제2의 운보와 같은 훌륭한 화가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와 꿈을 갖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2회「꿈나무 찾기전」을 개최 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그 전시장에 몸이 불편하신 말도 제대로 못하시는 장애를 가지신 분이 나와 둘러보며 이것저것 물어보자 전시장에 있으신 분이 누가 봐도 정성스럽게 답변을 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모습이 전시장을 둘러보는 내 시선을 가게 했었다. 멋진 작품을 떠나 이 모습하나도 하나의 작품이다 싶을 정도로 인상이 남았고 좋아 보였다.이 도우 展은 2005년, 제 4회전으로 22명의 회원작품과 후원회원을 위한 소품, 그리고 15명의 서울지역 농아학교 학생 선정작품 등, 50여점이 전시되었다. 그래서 많은 작품들을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어서 개인전보다 더 좋았던 점도 있었다. 그 중 생각나는 작품은 추상화인데 온통 녹색으로 된 그림인데 무엇인가 포근한 느낌과 함께 편안함을 주는 그림이어서 한참동안 보고 서 있었던 그림이다. 또한 그 옆에 걸려있던 회색의 공장들 사이로 떠다니는 구름이 있는 그림도 몽상적인 느낌을 줘서 멋지게 보았다. 작가들의 작품은 인사동에서 늘 보는 것처럼 감탄을 자아내게 할 정도의 완숙한 느낌들이었다.하지만 이 전시회만의 인상적인 특징은 작가들의 작품이 걸린 맞은편 벽에 농아 학교 학생들의 아직은 덜 여문 풋풋한 그림들이었다. 한 아이는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는데 뭔가 추상적인 느낌이 나면서도 그림자체에서 순수함이 느껴졌다. 또 수묵채색화중에서 유리병에 담긴 한 송이 국화 그림이 있었는데 정말 단순한 그림이었다. 단지 유리병에 국화 한 송이 였을 뿐인 그림이었는데 여백의 미와 함께 마음의 안정을 주는듯한 멋진 구도의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보고 계신 수녀님 3분이 계셨는데 그 분들 또한 그 그림 앞을 떠나지 못하시고 는 그 그림을 보고 계속 왠지 마음에 든다고 하시며 계속 쳐다 보시고 계셨다. 농아들이 그렸다는 느낌에 이것도 하나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그 그림들 속에 더욱더 진실된 마음이 담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하나 더욱더 의미 있어 보이고 멋진 그림들이었다.
같은 과 친구들과 모여 “가야금이 내게 말을 걸어오다”공연을 보러 갔다. 클래식 공연이나 피아노 공연같은 것은 가끔 보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국악공연은 난생 처음으로 가는 것이어서 조금은 설레이고 또 한편으론 지루하지만 않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가게 되었다. 택시에서 내려서 본 청주 예술의 전당은 생각보다 꽤 좋은 편이었다. 조그마한 건물이고 별 꾸밈없을줄 알았는데 멋진 한옥식의 건물이었고 꽤 넓어서 일단 기분이 좋았다. 건물안에 들어가니 일층이 아니라 지하로 내려가라고 한다. 지하로 가보니 큰공연장이 아니라 소공연장이었다. 게다가 표도 없이 그냥 방명록에 이름만 쓰면 된다고 하여 이름을 쓰고 공연장에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팜플렛을 받고 나서 그 팜플렛에 나온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가야금을 들고 환하게 웃고 계신 여자분 사진이었는데 아주 단아하기도 하고 너무 아름다우신 분이셔서 처음엔 모델인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후 직접 이분이 나오셔서 그분이 정말 가야금 연주자 송수현씨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표 구하기가 힘들줄 알고 조금 일찍 갔더니 기다려서 공연장에 들어갔다. 소공연장이라서 공연장이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들었다. 의자도 그동안 보러 다녔던 공연장보다 훨씬 작게 놓여져 있었고 확실히 달랐던 것은 무대 장식이었다. 낮은 무대 위에 다기가 보기좋게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무대 뒤편에는 다섯가지 색으로 된 천들이 쭉 나열되어있었다. 일단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낮은 무대였다. 무대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낮았다.조금 있으니 불이 꺼지고 사회자가 나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들어야 할 곡은 “천년만세”라는 곡과 “정남희제 김윤덕유 가야금 긴산조”라는 두곡이었다. 사실 처음에 팜플렛을 보고 두곡인걸 알고 그럼 너무 일찍 끝나는 거 아닐까 하고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긴산조라는 곡은 다른 곡에 비해 길고 이곡을 공연하는 횟수도 아주 작다는 설명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렇다면 이 곡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아주 작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들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천년만세”라는 곡은 국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면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설명하셨다. 나도 이 곡은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다. 이곡에 대한 설명이 팜플렛에는 세종때부터 있었던 악곡으로 천년만세라는 명칭은 계면가락 도드리, 양청도드리, 우조가락도드리를 하나로 묶어 부르는 아명이다. 국악의 정악곡으로 줄풍류에 속하며 악기편성은 거문고, 가야금, 세피리, 대금, 해금, 장구 외에 앙금, 단소가 곁들여 7~8명으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고, 현재도 세악합주로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곡 중의 하나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이날 공연에서는 가야금과 단소 단두가지로만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 “천년만세”는 정악가야금으로 연주되며 산조가야금과 다르게 터치를 중요시한다고 하였다. 즉 한음 한음 또랑또랑하게 터치하는 오른손 테크닉이 중요하다고 한다. 사회자의 설명이 있은 뒤 곧 연주가 시작되었다. 가야금은 송수현분이 단소는 이동수분이 연주하였다. 처음 듣는 소공연장 국악공연인데다 자리가 앞쪽이어서 아주 자세하게 볼수 있었고, 소리도 아주 미세한 소리까지 잘 들려서 두근두근 떨리기까지 했다. 가야금 소리에 이어 단소를 불기 시작하는데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국악시간에 직접 불고 있는 단소를 부는 모습을 보니 더욱 친근감도 들면서 입모양과 부는 자세를 자세히 보게 되었다. 그런데 마치 다른 악기를 부는 것 같았다. 너무나 미세한 소리, 그리고 떨림까지 내가 부를 때와는 사뭇 다른 악기와 같았다. 그래서 감탄하며 가야금 연주가 메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천년만세”에서는 단소 부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단소와 가야금의 소리가 한데 어울려 대체로 조금 긴장된 분위기와 함께 정중한 분위기가 났다. 가야금의 손모양을 보면서는 감탄을 계속 하였다. “천년만세”는 처음 들어보는 공연이라 내가 긴장하고 감탄하는 사이에 조금 일찍 끝이 났다.그리고 나서 다시 사회자가 다음곡 “정남희제 김윤덕류 가야금 긴산조”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긴산조라는 곡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지만 정말 긴곡인 듯 했다. 팜플렛의 설명에 따르면 김윤덕류 가야금 긴산조는 안기옥, 정남희 선생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며 정남희 선생으로부처 구심전수로 전승받은 가락에 모자라는 장단, 특히 24박이 한 박으로 구성되지 않은 부분들을 새롭게 짜 넣어 옛 선인들의 진정한 진앙의 한배를 느낄 수 있도록 다듬어 놓았으며 그 형식과 구성에 있어서도 우조, 계면, 평조의 구분이 확실하고 장수(장별)에도 정확을 기하고 있으며 그 흐름이 뚜렷하면서 남성적인 것이 특색이라 하겠다. 특히 단모리 가락의 묘법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읏 말발굽소리,봉황소리, 개구리소리에 이르기까지 삼라만상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정남희제 김윤덕류 가야금산조의 특징이라고 하였다. 공연장에 일찍 도착해서 팜플렛을 미리 꼼꼼히 보았었는데 가야금으로 말밥굽소리나 봉황소리, 개구리소리를 어떻게 낼까가 제일 궁금했었다. 그리고 전곡인 “천년만세”와는 다른 가야금인 산조가야금으로 연주한다는 설명이 있었고 산조가야금은 가야금이 작고 2개의 나무를 붙인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까 정악가야금은 오른손의 테크닉이 중요한것과 다르게 이번 산조가야금은 왼손의 테크닉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불이 꺼지고 송수현씨가 나오셔서 가야금 연주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장단을 장구와 맞추었다. 다시 서서히 작은 소리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가야금 소리가 텔레비젼으로 잠깐씩 듣던 것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들으니 그 떨림이 조금 더 섬세하고 미묘한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가야금을 켜는 손놀림을 자세히 본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소극장이고 앞자리다 보니 아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 섬세한 손놀림은 정말 압권이었다. 손이 특히 오른손은 조금 더 머물던 자리에서만 머무는데 왼손은 왔다 갔다 정말 짧은 시간에 손이 춤추듯이 혹은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는데 손의 움직임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공연을 감상하다 맨 앞자리의 관객을 보았는데 손이 절로 송수현씨의 손을 따라서 움직이고 있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소리는 내가 늘 가요정도에만 익숙해서인지 공연 전에 궁금했던 개구리소리나 봉황소리, 말발굽소리는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어서 아쉬웠다. 확실히 안 듣던 소리라 그런지 소리를 듣는 안목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가요는 들으면 쏙쏙 들어와서 멜로디가 머리 속을 맴도는데 반해 국악은 조금 낯선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훨씬 더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빠른 멜로디가 반복되서 급하게 만드는 서양음악보다는 "느림의 미학“이 느껴졌다. 또한 이것이 정말 우리의 얼이 담긴 소리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억지로라도 조금씩 국악을 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우리 세대가 계속 이어나가야 할 우리 음악이라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그리고 선생님이 되면 학생들에게 어렸을때부터 국악을 듣는 안목을 길러주어야겠다라는 생각도 했다.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참 뜻깊은 공연이었고 다음에 가까운 곳에서 다시 이런 공연이 있으면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