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하면 교사의 직능발달(professional development)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교사의 직능발달(professional development)이란 교사 개인의 발달욕구를 전제로 하여 교사 개인의 개성을 발달시키고 직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직업 능력을 향상·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이난숙 전계논문 (1992) PP53~57▶제도적 차원1. 교사의 발달 수준에 따른 연수활동(=눈높이 연수활동)교사의 전문성 발달과 일정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제도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은 교사연수 활동이다. 하지만 연수활동은 대부분 젊은 교사의 몫으로 돌아가거나 교사들의 최소한의 질적 수준을 유지시키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즉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교사연수 프로그램들이 교사의 발전과 성장의 최소 기준이 되고 있음에는 동의하지만, 점차적으로 다원화, 전문화 되어져가는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보다더 실제적인 연수활동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승진지향단계생존단계 →성장단계 →성숙단계→안정·침체단계 →쇠퇴단계↘직업적 좌절단계여러 교육학자들은 학생들의 발달단계를 제시하고, 각 단계의 특성에 따라 학생에게 적합한 교육을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사들 역시 교직생활 가운데 위에서 제시된 것과 같은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교사들에게도 교사들의 발단단계와 그 특성에 알맞은 교사연수 활동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생존단계(교직경력 : 1 ∼ 5년)에 처한 교사들은 수업 내적으로는 교육대학에서 배운 이론과 실제상황에서 오는 괴리감 속에서 혼돈을 느낄 것이며 외적으로 학급경영과 수많은 업무들 속에 교사직에 대한 회의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생존 단계에 있는 교사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각각의 상황에 대한 해결능력과 대처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따라서 연수활동 자체가 형식적인 활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의 각각의 발단단계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들과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편성하여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실제적인 자기연찬의 과정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실제적인 연수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2. 교사의 안식년제필자는 지난 4년간의 교대 교육을 받으면서 가장 대답하기 어려웠던 난제는 초등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질문이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사회적 인식의 대부분이 누구나 가르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되어 있음을 지난 투쟁의 경험은 확연히 깨닫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초등교원들은 전문성은 의심받아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다양한 요인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제도적 측면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교사의 자질 영역에 대한 발달은 남교사의 경우 생존단계와 성장 단계에서 교직 입문시에 비하여 교사 사질이 오히려 부적 발달을 하는 반면, 여교사는 지속적으로 꾸준히 교사자질 영역에서 정적인 발달을 보이고 있다.{) 윤홍주 敎師의 發達과 成長 P94이런 연구자료를 통하여 필자는 생존단계와 성장단계에 걸쳐 교사는 교수활동 이외에 행정적 업무들과 다양한 잡무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위의 두 단계를 겪은 뒤에도 교사의 직능발달(professional development)을 위해 현장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현실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필자는 교사들에게도 일정기간의 교직에 대한 경험을 쌓은 뒤에는 안식년제를 실시하여 그 동안의 교육적 경험과 현상에 대한 자료를 통하여 자신만의 연구물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기간을 통하여 새로운 교육적 이론들을 체득하여 학교 현장으로 돌아갔을 때 보다 적합한 교육을 실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조직적 차원1. 다양한 형태의 연구활동 모임의 활성화각 단위 학교나 시·도 교육청에서는 교사들의 관심사에 따라서 연구활동 모임을 할 수 있도록 정신적/물리적 환경 등에 대한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 이런 모임의 활성화는 교사의 자발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한 교사의 직능발달은 물론 초등교육의 전문성 향상, 그리고 이로 인한 파급효과는 기대이상 일 것이다. 이런 현상은 외국의 경우 미국의 NCTM(수학 교육 학회), 그리고 유치원 교육의 레지오 아밀리에 국내의 경우 초등의 경우 학급경영 연구회 등이 그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교직단체들 또한 교원의 복지와 교육제도의 개선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다양한 기호와 개성에 따른 연구활동들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다양한 연구사례 소개와 교사 경험 프로그램들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박은혜 외 초임교사를 위한 입문교육 프로그램 모형개발에 대한 연구 「한국교사교육」PP220∼2392. 교사(교육의 실천가)+교장(학교의 운영자)+전문가(교육적 이론가)(= Three for one system)최근 교사들의 현장에 연구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현장으로 눈을 돌려보면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속에서 출발해야 하는 현실에 있다. 대부분 대학원 진학을 통하여 이런 활동들이 시작이 되어지지만 교사들의 교직 기간동안 지속적인 연구활동을 위해서는 교사, 교장, 전문가 정기적인 교류활동이 조직되어야 할 것이다. 교사들이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이론과 실제의 차이점들에 대한 문제점들을 전문가 관점에서 해결 방안을 제시해 주고 전문가 또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연구활동을 진행할 수 있다. 교장 역시 교사와 전문가를 연결해주는 매개적 역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학교와 교사들에게 나타난 다양한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기회를 갖게 된다. 이런 체계를 바탕으로 교사들은 점차적으로 교육적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독자적인 연구활동을 진행시킬 수 있을 것이다.▶개인적 차원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차원은 개인적 차원이다.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서 물가로 인도할 수는 있지만 결국 물은 말이 마셔야만 한다.1. 너 자신을 알라!!아이는 부모의 거울 이라는 탈무드의 속담처럼 학생들 또한 부지불식간에 교사의 특성을 배우고 또한 나타낸다. 따라서 학생들의 발달단계에 있어 교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교사가 생각하는 범위 이상 일 수 있다. 따라서 교사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부족한 부분을 메우며 자기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노력들이 기반이 될 때에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학생들의 생활 속에서 배제되지 않고 발걸음을 맞추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특별히 교사의 인성에 대한 중요성은 모든 교사에게 적용되는 사항이겠지만 특별히 발달단계상 결정적 시기에 해당하는 초등학생들의 교육에 임하는 초등교사들의 바람직한 인성형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적으로 교사들은 인성형성을 위해 봉사활동에 참여,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의 교류활동 등을 통해 긍정적이고 거시적인 안목 등을 형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
♤원핵 세포와 진핵세포의 차이점세포 소 기관원핵 세포진핵세포핵명확한 구조 없음; DNA는 있으나 세포내 다른 부분과 구분되지 않음有세포막有有미토콘드리아無:세포막에 산화효소 존재有소포체無有리보솜有有엽록체無: 광합성은 크로마토포아에서만 일어남녹색식물에 있음Ⅰ.원핵 세포원핵세포는 가장 간단한 세포이다.원핵생물의 특징은 염색체가 세포질과 직접 접촉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핵생물과는 달리 원핵생물에는 미토콘드리아, 엽록체가 없으며 리보소옴은 작고 세포벽이 있기 때문에 커다란 분자를 분비하거나 흡수하는 능력은 상당히 제한된다.원핵생물에는 한 개의 염색체가 있다. 이것은 연속된 원형의 겹가닥 DNA이다.원형질막(plasma membrane)은 지질과 단백질의 혼합물이다. 반투과성 막으로서 저분자나 이온이 세포에 드나드는 것을 조절하고 있다.메소조옴(mesosome)은 원형질막이 세포질로 만입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막이 여러 층으로 겹친 구조이며, DNA에 부착점을 제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과 분비활동에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세포벽(cell wall)은 원형질막 바깥쪽에 있으며 세포 전체를 싸고 있다. 세포를 단단하게 하고 세포를 삼투압의 기계적인 압력으로부터 지탱시켜 준다. 박테리아에서 세포벽은 지질, 다당류, 단백질이 단단하게 채워진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벽 구조에는 그람양성과 그람음성인 2종류가 있다. 남조류에서 세포벽은 셀룰로오스와 같은 단순한 다당류로 구성되어 있다.편모(flagellum)는 단백질성 세포소기관이며, 세포 표면으로부터 길게 돌출 되어 있으며 길이는 다양하다. 세포를 액체 내에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리보소옴(ribosome)은 단백질을 합성하는 복잡한 세포소기관이다. 단백질과 RNA(rRNA)의 복합체이다. 복합체는 2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큰 하위입자와 작은 하위입자이다.원핵생물이 생합성에 사용하는 에너지가 공급되는 주요 원천으로는 두 종류가 있다.첫째는 해당회로에 속하는 1군의 효소가 glucose 등 영양물질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ATP를 합성하는 경우이다. ATP에 의해 저장된 에너지는 많은 생합성 효소에 의한 동화작용, 즉 생합성에 사용된다. 두 번째의 경우는 원형질막내에 있으며 전자전달사슬(계)을 통해 운반되고 최후에는 그것으로 산소가 환원되어 물이 된다. 남은 수소이온은 운반단백질에 의해 박테리아의 막 밖으로 보내어지므로 세포의 안과 밖 사이에 PH의 농도경사난 전기 화학적 농도경사가 발생된다.광합성세포, 즉 남조류와 광합성을 하는 세포는 가시광선의 에너지를 포착하여 물질대사를 위한 에너지로 만든다. 남조류의 경우에는 라멜라(lamellae)로 불리는 광합성막 안에 특별한 색소가 있어 빛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ATP합성을 위한 화학에너지로 만든다. 원핵조류는 유일한 탄소원으로서 이산화탄소를 사용한다. 즉, 탄소를 세포의 복잡한 분자로서 고정할 수 있으므로 이들을 무기영양생물이라 부른다.광합성 박테리아는 원형질막에 박테리오로돕신과 같은 특별한 단백질을 가지고 있다. 이 단백질은 빛을 받으면 막을 통해 수소이온을 방출하고 수소이온의 농도경사를 일으킨다. 이리하여 생긴 PH농도경사와 전기 화학적 농도경사는 ATP를 합성하는데 사용된다. 생합성을 위한 탄소는 유기화합물의 분자로부터 얻어야 하므로 이는 유기영양생물이라 불린다.원핵생물의 생식(reproduction)은 무성생식이다. 원핵생물의 분열에서는 DNA의 응축은 일어나지 않는다.Ⅱ.진핵세포진핵세포는 간단한 원핵세포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구조들을 가진 복잡한 세포이다.핵(nucleus)은 핵산(DNA와 RNA), 단백질 저분자와 이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진핵세포의 DNA는 개개의 염색체에 나누어져 있다. 염색체의 수는 종에 따라 다르다.진핵세포의 염색체는 일련의 DNA분자이며 단백질과 결합하여 염색질(chromatin)이라 불리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인(nucleolus)은 핵의 일부분이며, 여기에 4종류의 리보소옴RNA(rRNA)이 생성된다. 중심부는 밀도가 높고, 섬유질이며 DNA와 단백질의 복합체로 이루어져 있고 rRNA의 전사가 이루어진다.중심체(centrioles)는 핵 근방에 2개가 있다. 중심체는 투불린(tubline)이라 불리는 단백질의 중합에 의해 이루어진 관모양의 구조로 세포분열시에 미소관(microtubule)의 구성을 조절하며 방추체를 형성한다. 식물세포에서 방추체는 중심체 없이 형성한다.핵막(nuclear membrane)은 2중의 막구조이며 핵막 표면에는 핵공(nuclear pore)이 분포되어 있다. 세포질과 핵의 물질교환은 양쪽 방향으로 모두 핵공을 통해 이루어진다.원형질막(plasma membrane)은 원핵세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단백질, 탄수화물, 지질로 이루어져 있다. 골지체와 같은 몇몇 세포소기관은 세포막과 직접 접촉하고 있지 않다.세포벽(cell wall)은 원형질막의 바로 바깥쪽에 있지만 식물세포에만 있다. 세포에 강도를 부여하는 많은 층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셀룰로오스의 긴 사슬이 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세포질(cytoplasm)은 핵의 바깥쪽을 구성하는 원형질인데, 원형질막의 내부를 구성하는 부분이다. 세포소기관이 진핵세포의 세포질에 있다.
활기찬 학급을 위하여~~ 겅호!!얼마전 신문에서 여러 회사들이 추구하고 있는 '감성경영'에 대하여 다룬 기사를 읽은 적이있다. 내용인 즉은 경제적 불황으로 인하여 침체된 회사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하여 '지각의 날' 또는 '선물받는 날' 등의 날을 지정하여 직원들의 사기를 고양시키겠다는 경영전략이었다. 이 기사를 접하면서 필자는 결국 어떤 행위에 있어서도 핵심은 '사람'이고, 그 사람의 기분이나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과 도출될 수 있다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이러한 관점은 얼마전에 읽었던 '겅호'라는 책의 내용과 맞물려 '교사로써 나는 어떻게 학생들과 함께 학급을 운영해 나갈 수 있을까?' 또한 '학생들에게 어떤 가치들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등에 관한 생각을 해 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이 책은 침몰직전의 회사가 공동의 노력으로 회생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눈길을 끈 것은 회사의 회생과정에서 나타난 3단계의 '겅호정신'이었다.첫 번째로 제시된 정신은 '다람쥐의 정신(가치 있는 일을 한다)'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것이다. 필자는 이 정신이 무엇보다도 학급의 유기적인 운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급에서 학생 자신이 맡고 있는 일들이 눈에 띄지 않거나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을지라도, 본인이 하는 그 일이 학급을 위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도록 교육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교사는 학생 스스로가 얼마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소중한 존재인가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 '다람쥐 정신'을 통해 자기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존감의 마음을 심어줄 수 있다면 '10대 성매매'나 '자살'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두 번째로 소개된 비버의 정신(목표달성에 필요한 일을 스스로 결정한다)은 어떤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시나 강요하지 말고 환경과 여건을 마련해 주자는 내용이다. 즉 그들의 생각, 감정, 욕구, 희망 등을 존중하고, 경청하며,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흔히들 교사하면 '권위적'이란 단어가 연상된다는 현실을 바라볼 때, 이 비버정신이 교사에게 시사하는 바는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려운 일은 피하려하고 모든 일을 부모에게 의지하려는 이 세태 속에서, 비버정신은 학생들에게 어려서부터 자기일에 대한 목표를 스스로 정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때로는 힘든 도전도 마다하지 않는 태도를 심어줄 것이다.마지막은 기러기의 선물(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한다)로, 이 정신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교생실습이나 수업발표를 통해 피부로 깨닫게 된 점이다. 좀 특이한 점은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일의 진행과정에서도 서로를 응원해야 한다고 이 책은 소개하고 있다. 이는 결과보다는 과정중심을 지향하고 있는 현행의 구성주의 교육과 일맥상통한 면이 있는 듯 하다. 우리 사회에서도 칭찬과 격려에 관련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칭찬하는 프로그램이 유행했을 정도로 기러기 정신은 우리 삶에 있어 윤활유와 같은 존재임에 대해서는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유럽 근대화의 역사적 의의와 한국 근대화의 시사점』序論 : 오늘날 현대 세계는 WTO의 출범과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의 확산으로 각 국 경제는 빠른 속도로 하나의 시장경제권으로 통합되는 소위 세계화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얼마전 중국의 WTO가입과 유로화의 출범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뒷받침한다. 이런 시대의 조류는 종전의 한시적이고 단편적 역사인식에서 시간과 공간의 다층성(多層性) 인식과 세계간의 다계적(多系的)·복합적(複合的)인 인식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역사(Global History)인식을 대두시켰다. 즉 Oslo-세계역사대회에서 회자된 바와 같이 역사를 20C의 모든 장르를 통합하여 비교하는 "비교종합사(比較綜合史)" 관점의 문화사가 등장한 것이다. 근래 우리들 또한 세계사의 흐름에 편승하여 급변하는 세계 변동에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며 짧은 시간 내에 성공적 '근대화(近代化)'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한국근대화는 근래 'IMF'의 국가비상체제와 계속되는 구조조정 그리고 최근에는 각 종 "게이트"에 관련된 정관계 인사들의 비리가 밝혀지는 등 사회 곳곳에서 단기간의 근대화에 따른 부작용들을 타나내고 있다. 이에 우리는 한국근대화가 종결선상이 아닌 진행상황에 있음을 직시해야 하며, 그 과정 위에 세계사의 과정이 혼재되어 진행되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이에 필자는 유럽의 근대화를 바탕으로 '근대화'의 의미를 재조명하며 유럽 근대화의 역사적 의의와 비교연구를 토대로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대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本論 : 근대화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우선 전통사회와 근대사회의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파슨스(Talcott Parsons)는 근대사회는 전통사회에 비하여 지역적 및 사회적 이동성(mobility)이 높고, 1차산업 중심의 폐쇄경제가 전통사회의 경제기반인 데 비해, 근대사회는 2차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교환경제를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근대화란 사회·경제·정치·문화적인 요소들이 전통(사회)적인 특징으로부터 근대적인 것으로 대치되거나 바뀌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의 근대화 역시 14,5세기의 봉건 사회의 붕괴기로부터 18세기 후반의 근대적 시민사회의 확립기까지 4세기라는 긴 시일에 걸쳐 이런 과정들이 전개되면서 위와 같이 몇 가지의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 정치적 발전의 가장 큰 특징은 지방 분권적 봉건 정치질서로부터 절대주의 국가를 거쳐 근대적 국민 국가를 성립했다는 것이다. 시민 혁명은 근세 초기의 절대주의 국가의 불완전성을 지양하고 진정한 국민 국가의 성립을 가능케 했으며 정치 근대화의 또 다른 특색인 민주주의의 확립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 경우도 진정한 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해선 통일된 국민국가 형성의 필요성에 대해 숙고해 봐야할 것이다. 이에 반해 라이샤워는 근대화의 정치 형태로 민주주의 외에 후진국에서 급격한 근대화의 과정에서 舊요소와 新요소의 중첩으로 대두될 수 있는 전체주의 또한 근대화의 정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논하였다. 이런 논리는 한 국경제를 고도성장의 궤도에 올려놓아 한국근대화 성장의 기틀을 이룩한 지도자로서 평가를 받는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시대'를 열어 독재정치를 통한 장기집권을 통해 한국 사회·경제구조에 자율적 창의성을 억압하여 파생시킨 독재자로도 평가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뒷받침하고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저개발국가들 또한 전체주의의 요소를 바탕으로 급격한 근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현실에 있어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전체주의 자체가 옹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사회, 경제면의 근대화에 있어 봉건적 토지 소유 관계의 해체와 공동체적 규제의 소멸, 이 두 가지가 유럽 근대화의 무엇보다도 중요한 두 개의 선행 조건이 되었고 더불어 임금 노동과 자본에 입각한 자본주의의 발전과 시민계급의 성장은 이 두 선행조건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산업혁명'을 통하여 비약적인 발전과 그 체제가 완성되었는데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 볼 점은 산업혁명 당시 증가된 인구의 의식주를 해결방법이 지배자들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생산수단과 산업관리를 고안해 낼만한 지력과 재력가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오늘날에도 후진국에선 애시톤(T. S Ashton)교수가 말한 증가하는 인구의 의식주의 해결과 '비기계화의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공업화'를 근대화의 중심과제로 삼고 있는 현실이 재연되고 있다.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근대화의 추진 세력의 중심으로 시민 계급이 성장하였다는 점이다. 즉 정치 담당 계급이 봉건귀족으로부터 시민계급으로의 변화이다. 이런 시민 계급의 성장과 질적 양적 강도는 근대화의 잣대가 되기도 했다.유럽 근대화는 이러한 외면적 변화와 특징 외에 그것을 넘어선 '또 다른 무엇'이 있었는데 이는 '과학적 인식'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연 과학의 발달이나 산업 혁명과 공업화의 원동력이었으며 물질적 풍요와 지속적인 과학 기술을 발전케 한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자연과 사회에 대한 합리적인 사고 즉 합리주의와 더불어 과학적 인식은 유럽 근대 정신의 근간이 된 '진보사상'을 탄생시켰다. 진보사상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를 변혁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보다 향상된 상태로 진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원동력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구 근대화를 촉진시킨 가장 중요한 힘의 하나로 오늘날까지 서양사회를 전진시키는 힘이 되고 있다. 끝으로 개인은 어떤 권력이나 사회 집단도 침범할 수 없는 인격의 소유자라는 인식과 신념이 진정한 근대적인 인간결합의 토대가 되어 자유주의의 근간을 이루었고 근대사회 형성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다면 상당히 장기기간에 걸친 발전의 소산인 유럽의 근대화는 이념, 즉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다. 자유는 만인의 것이며, 자유와 평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또한 평등은 법적 평등만이 아니라 경제적 평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것이 서구 시민 사회의 이념이며 서구 근대화의 이념인 것이다. 이와 같은 유럽 근대화의 일련 과정을 바탕으로 이제 한국근대화 과정을 살펴보고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먼저 우리 근대화의 움직임은 17세기 이후 영농 기술의 개발을 위시하여 상공업이 발달하고 신분제의 붕괴되는 등 유럽에서와 같이 근대 지향적인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을 수용하지 못한 위정자들로 인해 안으로부터 싹트기 시작한 근대적인 요소를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한 체 일제식민지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속에서 우리 민족은 항일 의병, 갑신정변, 갑오개혁 등을 통하여 근대화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일제가 근대화의 침체를 강요하는 상황에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해방 후, 남북분단과 6·25전쟁의 발발로 근대화 작업의 추진은 어쩔 수 없이 1960년대까지 미뤄지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은 1960년대부터 비로소 시작하게 된 현대화의 과정에서 근대화적 요소도 함께 포함하고 추구하며 발전해 나가게 된 것이다. 1970년대부터 근대화의 필수적인 요소인 '공업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공장 근로자들의 노동력 착취와 인권의 유린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무시한 채 19세기적인 방법을 적용하여 급격한 공업화를 추진하여 단기간 내에 외형적인 근대화를 이룩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근대화 궁극적 목표인 자유와 평등의 이념들은 오히려 퇴보되었다. 즉 물질적 풍요와 생산체계의 근대화는 이룩하였으나 그 전개과정에서의 모순, 실패로 내면적 근대화는 같이 성장치 못하고 유리되어 있는 현실이다. 이는 아이들의 체형과 체격은 과거에 비해 성장하였지만 체력은 오히려 떨어진 것과 같이 우리는 반쪽 짜리 근대화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들을 근대화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 상고와 근대화 정책의 딜레마(생산의 합리화와 사회정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딜레마)에 대한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유럽의 근대화는 국민 아래로부터 자발적인 움직임이었고 우리의 경우엔 갑신정변이후로 근대에 이르기까지 위로부터의 근대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내면적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국민들의 자율적인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이전과는 달리 각 종 시민운동(참여연대, 녹색연합 등)을 통하여 시민들 스스로가 사회변혁에 중심에 서있으며 사회개혁의 방향을 만들어 가고 있다. 본인은 이와 같은 시민운동들이 내면적 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며 참여적 시민운동의 활성화가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 A. G. Frank는 근대화의 이론가인 Rostow의 단계이론에 대한 비판으로 나온 종속이론의 내용과 같이 우리의 근대화 상황이 과거 유럽의 상황과는 틀리다는 걸 인식하고 기존의 서구 중심적 인식에서 탈피하여 우리의 주체적 시각을 정립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서구는 근대화를 넘어서 세계화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상황임을 추이해보면 주체적인 근대화론의 요구는 더욱 절실하다. 필자는 국민들이 내면적으로 근대화란 것이 이중으로 이질적인 사회로의 발전이므로 그것은 혁명적 사실이고 혁신적인 작업임을 인식하고 그 바탕에 진보사상을 내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과거 급변하는 대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제치하에서 근대화의 흐름이 단절되었던 것을 상기하여 최근 세계화의 물결속에서 적절한 대응과 대처를 통해 열강에 종속이 되는 일들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學問中心敎育課程에 대한 考察▶序論21세기는 최첨단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정보화사회라고 한다. 정보사회에서는 전세계를 거미줄처럼 연결한 통신망을 바탕으로 정보와 지식이 자유롭게 유통되어 현재의 물리적 공간개념이 희석되고 세계적 수준의 공간 변동으로 자본주의의 국경을 초월한 공간의 재구조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홍수와 같이 쏟아지는 정보들이 각 각의 개개인에게 필요할 때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을 개념으로는 연결되지 않고 있다. 정보가 우리의 머리 속에 들어와서 지식화 되지 않는 한 그 정보는 마치 마시긴 했지만 몸에 흡수되지 못하고 배출되어 버리는 물과 똑같다고 볼 수 있다. 몸에 흡수되지 못한다면 아무리 물을 마신다 해도 갈증을 해소할 수 없고 몸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도록 도울 수 없듯이 인식의 주체에 의해 지식화 되지 않는 정보는 그것이 아무리 높은 가치를 지닌 정보라 해도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보화시대를 맞이하여 '존립근거'마저 흔들리고 있는 학교교육에 있어 지향해야 할 목표점이라고 생각한다. 상술하자면 학교교육은 학생들에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정보를 지식으로 연결 지울 수 있는 '사고의 틀'이 형성되도록 교육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고의 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내지는 무엇을 가르쳐야 '사고의 틀'이 형성될 수 있나? 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에 제 3차 교육과정에 도입되어 아직까지도 교육과정의 基底를 형성하고 있는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本論교육이란 학생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그 의미를 규정할 수 있다. 그 '어떤 것'에 해당하는 것을 '교육과정탐구'의 저자 이홍우씨는 브루너의 '知識의 構造'가 보다 최신의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논의에 들어가기전, 브루너가 주장한 '知識의 構造' 이론이 대두되었을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지식의 폭발적 증가로 인하여 이전과 같은 암기위주의 주입식교육으로는 평생을 두고 학습해도 모든 지식을 배울 수 없게 되었으며 '스푸트니크 衝擊' 경제공황으로 인하여 진보주의의 반성이 일어나던 시기이다. 브르너가 쓴 「敎育의 過程」이란 책은 브루너의 저작이라기보다는 '우즈 호울 회의'의 종합보고서적인 성격으로 이미 일어나고 있는 동향을 事後的으로 요약 정리한 것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미 미국의 여러 학자들이 일관된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벌여왔던 것이다.이제 본 논의로 들어가서 브루너의 「敎育의 過程」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언뜻 보기에는 「敎育의 過程」이 이전의 형식도야이론과 동일하게 생각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대조를 통해 그 성격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양자 모두 학문적 지식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지만 형식도야이론은 교과의 의미가 장차 활용될 '일반적 능력'(=생활사태와 관련하여 부각)에 의하여 설명될 수 있으나 「敎育의 過程」에서는 '知識의 構造'라는 용어 자체가 생활사태와 관련된다기보다는 교과의 자체의 내적 성격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敎育의 過程」이 대표하는 교육과정 동향은 교과의 知的 性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교과중심 교육과정'과 대비하여 '學問中心 敎育課程'이라고 불리는 것이다.다음으로 브루너가 주장한 '지식의 구조'의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브루너는 구조를 파악한다는 것은 '한 가지 현상을 여러 가지 현상과 관련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또한 그 구조의 이점으로는 ① 이해를 돕고 ②쉽게 기억하고 ③학습 이외에 상황에 적용(=일반적 전이)하며 ④고등지식과 초보적 지식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지식의 구조를 가르친다는 것은 '일반적 개념과 원리에 의하여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할' 때 그 이해하는 내용을 가리키며, 지식의 구조를 가르친다는 것은 그런 이해를 가지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마지막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은 지식교육 그 자체에 대한 회의와 불신에 대하여 피터스와 허스트가 주장한 '先驗的 正當化'이다. 피터스와 허스트는 내재적 가치에 의하여 규정되는 교과를 가르켜 부르는 이름을 '지식의 형식'이라 하였다. 이 '지식의 형식'은 앞에서 살펴본 '지식의 구조'와 비록 그것이 나타내는 관심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동일하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지식의 형식은 왜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피터스와 허스트는 그 자체가 '지식의 형식'이며 그 질문자는 '지식의 형식'이 가치 있다는 결론을 그 질문의 가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곧 그들이 주장하는 '선험적 정당화'이다.이상에서 간략하게 '지식의 구조'와 '지식의 형식'을 바탕으로 학문중심 교육과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학문중심교육과정에 시사하는 바(=던져주는 의의)는 무엇인가?우선적으로 각 학문의 진리탐구를 통하여 사물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 探究의 과정 속에서 학생들에게 현상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을 제공하여 준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특히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에 하루빨리 올바르게 정착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들은(표면적으로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추구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실상 '어떤 현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점의 접근보다는 '어떤 현상에 대한 결과들을 어떻게 하면 많이 기억할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 머무르고 있다. 즉 과정보다는 결과중심의 교육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에 기인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 사회에 표면적 지식인은 넘쳐나지만 내재적인 사고의 틀을 갖춘 지혜로운 사람은 적은 듯하다.다음으로는 교과의 전체적인 이해와 본질적인 핵심에 대한 접근을 통하여 원리의 이해에서 오는 높은 전이가치와 장기간의 기억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브루너는 '핵심적 확산'의 예를 들고 있다. 본질에 대한 탐구에 대한 주체적 학습과 그 과정속에서 오는 발견의 기쁨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흥미와 참여도를 높인 것이다. 이는 최근 교사 중심의 교육으로부터 학습자 중심의 교육으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시도되고 있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위에서 상술한 학문중심 교육과정의 시사점들에도 불구하고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현실을 바라다보면 여러 가지 한계점들이 느끼게 된다. 이를 학교현장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교과에 있어서 '지식의 구조'를 형성할 수 있을까? 란 생각이 든다. 물론 수학이나 과학같은 비교적 엄밀하게 체계화된 교과에는 구조를 확인하는 일이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학이나 미술같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나타내는데 있어서는 창의적이고 개인에 따라 다르게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는 교과이기 때문에 '지식의 구조'의 논리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다음으로 생각해 볼 것은 교육과정의 수업동안 떠나지 않는 의문에 대해서이다. 학문중심 교육과정에서는 교과의 구조를 파악함으로 인하여 한 가지 현상을 여러 가지 현상과의 관련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곧 학문중심 교육과정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관점의 눈을 사회로 돌려보면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돌아가야 할 사회가 부조리와 비합리적인 양상이 편재되어 있다. 오히려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 지식인들이 사회에서 나타내는 행동양식은 다분히 불합리하고 자기중심적인 측면들이 적지않게 나타나고 있다. 실례적으로 '청소년 성매매'로 인해 공개된 명단 중에는 대학교수, 의사, 대학생 등 소위 지식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상당수가 존재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이 사고과정에 있어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비단 이성의 작용뿐만 아니라 감성적 측면도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근대 이후로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면서 그에 반하는 감성적 측면은 이성과 반대되는 것, 열등한 사람들에게서나 발현되는 요소 정도로 그 위치를 격하시켜왔다. 그러나 최근의 일어나고 있는 감성마케팅, 감성공학 등을 현상들과 위의 예를 비추어 생각해 보면 인간은 행동을 규정하는 것에는 합리적 측면뿐만 아니라 감성적 측면도 있음이 주지되어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즉 인간에게는 이성적 사고를 근거로 내지는 합리적인 행동양식 일평생을 살 수 없는 모순적인 측면이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학문중심교육과정중에는 이러한 측면들을 고려하여 보완되고 수정되어야 한다.마지막으로는 이론과 현실에서 오는 한계점들을 지적하고 싶다. 물론 앞의 것들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으나 좀 더 구체적으로 학교 현장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브루너는 교사들은 그 교과에 대한 지식의 구조를 파악하고 나서야 지식의 구조를 논리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장 교사들은 지식의 구조화 대한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간헐적인 연수제도가 있지만 '지식의 구조화'란 것이 짧게는 수년에 걸쳐 길게는 수십년 아니 일생동안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교사들에 대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대학이나 대학원에서부터 교육이 이뤄져야 하며 현장교사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도 병행되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더불어 초등학교의 교사의 경우로 국한시켜 생각해 본다면 초등학교 교사는 모든 교과에 대한 지식의 구조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사견이지만 하나의 과정을 충실히 구조화하는 과정도 버거운 현실에서 모든 교과에 대한 지식의 구조화를 이루어 내야만 한다는 사실은 불가항력처럼 느껴진다. 이에 대한 논의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