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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사기]청계천답사기
    Ⅰ.청계천-청계천의 역사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으로 서울의 서북쪽에 위치한 인왕산과 북악의 남쪽 기슭, 남산의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도성 안 중앙에서 만나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연장 10.92km의 도시 하천이다. 청계천 유역은 총 면적 50.96㎢로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1394년 서울이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정해진 이후 도성 안을 지리적으로 구분했을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구분하는 상징적인 경계선으로 작용했다.도성 내에 있었던 청계천은 주민 생활에 위해 요인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컸는데, 무엇보다 하천의 범람이 문제였다. 1407년 서울의 하천이 범람, 근본적인 조치를 위해 1411년 11월 개거도감(후에 개천도감으로 이름이 바뀜)을 설치하고 52,800명의 인원을 동원한 대규모 개천공사가 시작되었다. 이때의 공사는 일부 구간의 하상을 파내고 하폭을 넓히는 한편 돌과 나무로 제방을 쌓는 것이었다. 개천 역사가 종결된 후 개천도감은 그대로 행랑조성도감이 되었다. 이후 세종 때에는 도성의 개수와 방수, 방화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수성금화도감이 설치되었고 성종 때에는 개천가에 버드나무를 심어 수해에 대비했다.한편 개천은 최적의 자연적인 하수도이기도 했다. 조선 초기 그 용도를 둘러싼 논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종대에 개천의 용도는 하수도로 낙착되었다. 이는 조선 후기 인구의 증가와 자연재해 빈발이라는 상황에서 개천이 존재의 이유를 잃게 되는 근본적인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해 서울의 인구는 점차 증가하여 하수량 자체가 늘어났고 백악과 남산 일대의 수목이 땔감용으로 남벌되고 일부가 경지로 개간됨으로써 토사의 유입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 영조 때에는 준천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영조는 1760년 2월 20만 인원을 동원한 57일간의 대역사를 시작하였다. 준천사업은 하천을 준설하는 동시에 수로를 직선으로 변경하고 양안에 석축을 쌓는 행태로 진행되었다. 이후 준천은 정부의 재정 곤란 속에서도간 일부를 메운 일이 있었지만 이것이 청계천의 본격적인 복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청계천을 복개하여 그 터를 이용하려는 계획은 1926년에도 수립되었다. 대광교에서 주교정까지를 철근 콘크리트로 덮어서 1만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이 곳에 택지와 상가 위락시설을 조성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청계천을 복개할 경우 홍수시에 배수가 곤란하다는 이유로 당국에 의해 기각되었다.청계천 처리 문제가 본격적으로 고려되기 시작한 것은 1931년 이후 일제가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으로 치달으면서 조선을 대륙병참기지로 설정하고 경성을 그 중심에 놓으면서부터였다. 이른바 '대경성 계획'이라는 것이었는데 1934년의 시가지 계획령을 계기로 서울의 전반적 개조에 대한 구상이 본격화되었던 것이다. 청계천의 전면 복개 구상은 1935년 최초로 발표되었다. 당시 경성부의 마치다 토목과장은 청계천을 전면 복개하여 도로로 만들고 그 위로 고가철도를 놓는 구상을 발표했다. 대경성 계획으로 영등포를 비롯한 1군8면이 새로 경성에 편입될 경우 당시의 시설만으로는 늘어나는 교통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민간의 교통수단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된 것은 군부의 교통수요였다. 용산, 영등포 공업지대에서 생산되는 군수물자를 만주로 신속히 이송하기 위해서는 경성-의주간, 또는 경성-원산 간 도로와 철도의 보완이 필요했고 토지수용비가 필요없는 청계천을 새로운 도로, 철도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구상은 재정 문제를 내세운 조선 철도국의 거부로 좌절되었다.1936년에는 광교와 삼각정 사이를 우선 복개한다는 안이 마련되어 1937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광화문 우체국-삼각정 간을 복개하고자 하였다. 이와 동시에 1939년에는 복개 후 청계천을 자동차 전용도로로 만들려는 안이 마련되었다. 또 1942년부터는 삼각정 동쪽 지역의 청계천을 개수할 계획이 수립되었다. 청계천의 전면 복개안은 1940년 일제가 확정해 놓은 것이었지만 전쟁에 쫓기던 일본이 이를 완수하기란 불가능했다. 5m, 폭 16∼54m의 청계천을 철근 콘크리트로 복개하였다. 이 방대한 공사는 완성되기까지 총 16억 6,170만 환의 공사비가 소요되고 연 24만 2천명의 인원이 동원되었다. 그 후 1965년부터 1966년까지 동대문의 오간수다리에서 제2청계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오늘날 마장철교까지의 복개구간은 1978년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마장철교 부근의 복개지에 조성된 주차장 견인소에서부터 중랑천과 합류되는 지점까지는 복개되지 않은 채 흘러가고 있다. 복개된 청계천의 위생상태를 개선하기 위하여 청계천 양안에 차집관거 공사를 1984년에 착공하였으며, 1992년에는 하수도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하수도 재정비사업이 실시된 바 있다.청계천에 대한 복구공사가 완료된 이후 복개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상가가 밀집하고, 교통량이 폭주하면서 도심에서 외곽으로 진행하는 새로운 도로의 신설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도로 위에 새로이 고가도로가 만들어졌다. 서울시내에서 고가도로가 제일 먼저 가설된 것은 1968년에 준공된 아현 고가도로이다. 서울시에서는 아현 고가도로 건설의 경험을 살려 청계고가도로 공사를 동시에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1967년 8월 15일 공사에 착공하여 1971년 8월 15일 완성되었다. 총 연장 5,650m에 도로 폭이 16m에 이른다. 1967년 청계고가도로 건설에 앞서 이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진행되었고 그 자리에 거대한 건물군이 들어섰다. 바로 세운상가였다. 1976년에는 동대문운동장 주변의 월남민 밀집지대에 대한 재개발이 단행되었다.-청계천 복원사업1.사업개요○ 사업기간 : 2003.7.1~2005.9.30○ 사업의 공간적 범위 : 청계천로(태평로 시점 ~ 동대문 ~ 신답철교) 및 삼일로와 그 주변 5.84km○ 사업의 시간적 범위 : 기준년 2003년, 중기 목표 2008년, 장기 목표 2013년○ 주요공정- 고가도로 및 복개도로 철거- 구조물 보강, 상수도 및 차집관거 이설- 양안도로 조성 및 교량건설- 수로 굴착, 유지용수 및 호안 정비- 005.9 : 우기대비 시설물 보완 및 준공4.소요예산○ 사 업 비 : 총 3,577억원- 공사비 : 3,476억원- 감 리 비 : 72억원- 역사유적 복원비 : 29억5.사업의 타당성○지속가능한 도시 패러다임으로의 변화최근 국제사회에서는 개발과 보전의 조화를 통한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보편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청계천복원사업은 서울을 개발 위주의 도시, 차량 중심의 도시 이미지에서 사람 중심의 도시,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도시 이미지로서 21세기 새로운 도시관리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려는 흐름과 함께 한다.○생태환경의 회복최근에는 시민들의 삶의 질(Quality of Life)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어 세계적으로는 환경친화형 도시설계가 보편적으로 지속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청계천복원사업은 청계천에 맑은 물을 다시 흐르게 하여 생태계의 복원은 물론 서울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환경친화적 도시로 거듭나게 하는 프로젝트이다.○청계고가와 복개의 위험요인 예방청계천 복개는 기능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던 개발시대의 산물이다. 1958년에 건설된 청계천 복개구조물과 청계고가도로는 3ㆍ40년이 지나 이미 시멘트와 철근은 부식되었고, 구조적 결함 등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청계천 복개 내부의 매탄가스량 : 도로변의 23배(42ppm)/ 청계천 복개 내부의 일산화질소량 : 도로변의 14배 (0.897ppm)/ 청계고가 안전도 : 전체 C등급, 부분 D 또는 E 등급/ 청계천 복개 구조물의 보수비용 : 매년 20억/ 주한미군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청계고가 진입 금지령 시행)○역사문화 공간의 회복청계천복원사업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인 광통교 등 역사유적을 복원하여 민족의 자긍심을 되찾는 사업이다.○지역 간 균형 발전청계천 주변지역은 대부분 4ㆍ50년 이상 된 건물들이 밀집해 있어서 상주인구 감소는 물론 도시환경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더욱이 강남권과 강북권의 불균형문제 해소는 서울시 균형발전의 과제.- 외국기업 활동여건 완화청계천 일부 지역을 외국인 투자촉진지구로 지정, 입주 외국기업에 대해 세제혜택과 사업인허가 관련 원스톱 서비스 제공외국기업 유치를 위한 수준 높은 외국인 학교 설립, 외국인 커뮤니티 조성과 배우자의 고용을 지원하는 방안 검토국제경제자문단(SIBAC), 외국인투자유치협의회(FIAC) 운영대중교통중심운행, 도심 전역 교통혼잡구역 지정, 통과교통 우회처리 등 적용DMC 디지털 미디어거리 조성, DMC 단지 내 종합정보통신센터 건립, DMC 내 애니-컴플렉스조성국제 규모의 이벤트 유치를 통한 국제도시로서의 서울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서울 국제 만화애니매이션 페스티벌(SICAF) 확대 운영, 서울컬렉션, 패션스쿨 규모확대ㆍ설립ㆍ홍보, 도심 인쇄산업을 서울형 신사업으로 육성, 컨벤션산업육성기반 마련- 기업하기 편리한 환경 조성기술집약형 중소기업 중점적으로 예산 지원중소기업지원 원스톱 서비스망을 구축ㆍ강화, 서울경제센터 설립, 테크노빌딩(아파트형 공장)설립 확대,산학연 협력기술확대 등을 시행○지속가능한 발전의 구현청계천복원과 더불어 서울시의 도심 관광자원화를 위한 청사진은 시민광장 조성, 4대문 안 문화관광벨트의 조성이며 이들 사업으로 인해 서울시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다음과 같다.-도심 역사화로 자연스런 역사교육의 현장 조성-보행자 중심의 교통문화 정비-상권과 역사적 유물의 연계로 도심부의 대내외적인 경쟁력 향상-도심 역사화로 도심부의 전통문화 재현과 단절되고 훼손된 역사적 자원들을 복원-서울 도심은 생태하천과 광장들이 어우러지는 생태고시로 조성-개발연대의 마감, 지속가능한 발전의 구현을 통해 청계천복원사업은 상실된 자연친화적인 도시로서의서울의 이미지를 되살리고, 지난 시대 발전의 성과에 묻혀 잊혀졌던 자연친화적인 우리의 생활환경의중요성을 되새기고자 하는 의미를 갖고 추진하였다.○미래지향적 도시환경 창출청계천복원은 도래하는 환경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미래지향적인 시도이며, 미래지향적 도시환경은 현재와는 다른 자연과 사회가 균형과 조화 숙에.
    생활/환경| 2006.07.31| 9페이지| 3,000원| 조회(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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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클베리핀]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읽고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읽고모험을 그린 허클베리핀은 어렸을 적 만화로 무척 재밌게 본 책이어서 일이년에 한번씩 읽곤 하였다. 그런데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읽었는데 역시나 마크 트웨인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선 이 책은 허크가 아이들과 싸우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러다 아버지의 발자국을 보게 된다. 허크의 아버지 펩의 신발에는 못으로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허크는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자 허크의 절친한 친구이자 왓슨부인의 노예인 짐에게 달려다 자기가 이제 어떻게 되는지 점을 쳐달라고 한다. 그래서 허크는 집을 떠나기로 결심을 한다. 그날 밤 펩은 집에 몰래 들어와 허크를 납치해간다. 그 이유는 허크의 어머니가 600$를 남겨놓았는데 상속자가 허크로 되어있기 때문에 허크를 납치한 것이다. 그 이유를 듣게 되는데 허크는 자신이 죽은 것처럼 위장하고 펩의 집을 탈출하여 Jackson섬으로 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의 모험이야기 이다. 그곳에서 800$에 뉴올리언즈로 팔려갈 위기에 처해지자, 허크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마을에 전해져 어수선해진 틈을 타 탈출한 짐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부터 허크과 짐의 모험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허크은 음식을 구하러 마을로 건너가지만 그곳에서 살인자(도망자) 노예가 Jackson섬에 있다고 마을사람들에게 소문이 나자 그 마을 남자들은 그곳으로 가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달려가 짐과 함께 카누를 타고 도망치게 된다.그 다음 2번째 모험을 하게 되는데, 내가 가장 감명 깊게 본, 다시 한 번 인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작가는 노예문제를 짐과 허크의 대화를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항해를 하다가 폭풍우가 몰아치게 되는데 그 곳에서 한척의 난파선을 발견한곤, 양식을 구하기 위해 허크과 짐은 배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허크는 그 배는 이미 살인 음모자들이 점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짐은 그곳에서 펩의 시체를 보게 된다. 하지만 짐은 허크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말하면 이제 더 이상 자신과 함께 케이로우까지 가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허크에게 말하지 않는다. 황급히 배에서 빠져나온 허크과 짐은 그들의 카누가 강물에 떠내려갔기 때문에 살인 음모자들의 보트를 훔쳐 타고 달아난다. 보트를 타고 항해를 하다가 허크과 짐은 노예제도에 관에 이야기를 하게 된다. 짐은 허크에게 노예제도는 옳지 않다면 모든 인간은 자유로워야한다고 설득하지만 허크는 그때, 자신이 나쁜 짓을 하고 있고, 불법 도망자의 도피를 도와주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현재 상태의 허크는 마을에서 보고 배운 노예라는 개념으로 짐을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미국인들이 그릇된 노예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곤 허크는 짐을 고발하기로 마음먹고, 짐을 속이고 사람들에게 고발하려 하지만 결국 거짓말을 하고 고발하는 것을 포기한다. 저녁이 되자 또 항해를 시작한다. 또한 항해를 하다가 허크와 짐은 대화를 하게 되는데, 이 대화에서 짐은 허크에게 프랑스 사람은 사람이 아니냐면서, 논리정연하게 비유를 하면서, 당시 사람들의 믿음과는 달리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평등한 존재이며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며, 허크를 지배하고 있던 이데올로기적 도덕관념을 바꿔놓는 중대한 사건이 된다.이제 곧 3번째 모험을 떠나게 된다. 이 모험도 두 번째 모험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노예제도를 짐을 통해서 비판하고 있다. 항해 중 큰 배와 부딪치게 되어 짐과 해어진 허크는 그랜져퍼드 가문과 마주치게 된다. 그곳에서 허크는 자신을 쉐퍼슨가문의 George라고 속인다. 허크는 그랜져퍼드 가문의 아들인 빌리와 친구가 된다. (이곳은 미국의 남부지방으로, 노예제도가 더욱 더 심한 곳이다.) 빌리는 보여줄게 있다면서, 허크를 창고로 데리고 간다. 그곳에 갇혀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짐이었다. 그리곤, 짐은 그 곳에서 잠시 노예생활을 하게 된다.허크와 빌리는 낚시를 하러 가다가 일을 하면서 맞고 있는 짐을 보게 된다. 낚시를 하고 온 허크는 곧바로 짐에게 달려간다. 그리곤 허크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노예인 짐에게 사과를 하게 된다. 그 뒤 식사하러 들어온 허크는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랜저퍼드 농장에서 폭력과 유혈로부터의 도피가 계속된다. 미시시피강을 따라 한참 내려온 허크와 짐은 케이로우를 지나쳐왔다는 것을 알게 되어, 둘은 케이로우행 배를 타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던 중 바로 마지막 모험으로 이어진다.4번째 모험은, 허크와 짐은 난파선에서 보았던 살인 음모자들을 만나게 된다. 공작과 왕을 자칭한 그들은 허크와 짐에게 자신의 사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짐을 고발하겠다고 협박해서, 할 수 없이 그들과 동참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허크와 짐은 바보들을 속여 등쳐 먹고사는 직업적인 사기꾼과 함께 살기도 하며, 어느 대령이 사형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마침내 허크는 인간 되는 것이 수치스럽다는 경험까지 하기에 이른다.- 혹은 추악한 배우의 생활을 보기도 하고, 자기를 희생하여 세 명의 순결한 처녀들의 상속을 도와주기도 한다.
    독후감/창작| 2005.06.06| 3페이지| 1,500원| 조회(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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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전통문화] 토정 이지함에 대하여
    토정 이지함에 대하여조선 중종 때. 주역팔괘(周易八卦)에 능통한 형중(馨仲) 이지함(李之函)이 있었다.이지함은 그 유명한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문하에서 학문을 했고, 한때는 아산(牙山) 현감의 벼슬에도 있었으나 적성이 맞지 않는다 하여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고 말았다.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총명하고 남 돕기를 좋아했던, 그는 성장하여 결혼을 해서도 자신보다는 남을 위하는데 더욱 힘을 썼다. 부인과 자녀들은 남다른 고생을 함에도 불구하고 불만을 토하거나 그것으로 인해서 싸움하는 법은 절대 없었다. 나이가 더 할수록 학문과 인격이 높아감에 따라 비록 없이 살긴 해도 그를 따르고 존경하는 사람이 날로 늘어 그들은 그들대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지함의 조언대로만 실행했다.의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기였으므로 몸이 아파도, 장사가 잘 안되어도 이지함 말대로만 하면 모두 이루어졌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문전에 사람들이 줄을 이어갔다. 이지함은 주역팔괘에 능통하였던 터라 그 괘를 응용해서 닥쳐올 액을 미리 내다보고 피할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소문에 소문을 듣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작은 골목길에 위치한 집을 놓아둔 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는 마포 나루터에 기둥과 상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순전히 흙으로만 쌓아올린 정자, 즉 일종의 토굴을 만들어 그곳에서 기거했다. 그런 연유로 세상사람들은 이지함을 토정(土亭)선생이라 부르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봐 달라고 하는 통에 순서를 기다리려면 며칠씩 걸리곤 했다. 토정선생은 그런 폐단을 줄이고자, 주역팔괘를 응용하여 미래를 알아볼 수 있는 예언서로 소위「토정비결(土亭秘訣)」을 만들어 그 내용에 기준하여 예언을 해 주게 되었다.그런데, 그「토정비결」이란 책이 너무도 신기하게 미래를 잘 맞추자 우매한 백성들 중에는 근면성과 성실성을 무시한 채 약은 꾀로 악용하는 폐단이 일기 시작하여 할 수 없이 절반 정도만 맞고 절반 정도는 맞지 않도록 「토정비결」을 고쳐버렸다. 토정선생은 몹시 가난해 밥솥이나 갓(冠), 신발 등을 제대로 구할 수가 없어 쇠붙이(鐵)로 두들겨 만든 쇠 갓(鐵冠)을 쓰고 다녔고, 솥에 구멍이 났을 때는 쇠 갓을 뒤집어 놓고 솥으로 대용했고, 신발은 나무를 파서 만든 나막신을 신고 다녔다. 특히. 토정선생은 세상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항해 기술로 제주도를 왕래하여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광풍(狂風)이 몰아치는 악천후에 닻을 단 큰 배 들도 항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판국에 토정선생은 유유하게 조각배를 이용하여 제주도를 자주 왕래하였던 것이다.어떤 의미에서 그랬는지는 아직도 신비 속에 쌓여있으나, 일엽편주로 항해를 할 때면 꼭 닭 네 마리를 배의 귀퉁이에 매달아 균형을 유지하여 침몰의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길을 가다가도 지팡이에 턱을 괸 채 서서 잠을 자기도 했다.그가 남긴 저서로는 개인의 운명을 매년마다 볼 수 있는「토정비결」과 주로 국가의 운을 비록(秘錄) 예언한「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이 있는데, 그 학술적 근거는 주역팔괘에 두었던 것으로「토정가장결」에는 우리나라 국운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다. 원숭이·쥐·용(申子辰)해는 병란이 있고, 범·뱀·돼지(寅巳亥)해는 혼란과 옥사 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대로 임진왜란·병자호란·을사사화·을사오적신(乙士五賊臣)들의 매국노(賣國奴)사건과 1926년 항일학생 시위운동사건 등은 그가 예언한 일면을 그대로 실증해 주었다.토정선생은 호걸(豪傑) 기인(奇人)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어려운 기문기답(奇問奇答)으로도 유명했다. 어느 사람이 선생에게, "세상에서 가장 부자는 누구요?"하고 질문하자, "부막부어불탐(富莫富於不貪)이라 하여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를 욕심내지 않는 것이라."고 했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인(貴人)은 누구요?"라고 질문하자 선생은, "귀막귀어부작(貴莫貴於不爵)이라 하여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귀인은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한 적이 있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누구요?"고 질문하자, "강막강어부쟁(强幕强於不爭)이라 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다투지 않는 것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이처럼. 토정선생은 보통사람으로서는 몇날 며칠을 두고도 생각지 못할 명답을 즉석에서 하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달인(達人)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한번은 조상의 제사를 모셔야 하는데, 제수 살 돈이 없어 쩔쩔매자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를 머슴에게 주면서 어느 곳, 어느 시각에 그곳을 가면 얼마에 산다는 사람이 있을 테니 팔아 오라고 했다. 하인은 시키는 대로 가르쳐 준 장소에 가 보았더니 토정선생이 예언한 대로 그 장소에 아니나 다를까 인상착의 하나 틀리지 않은 한 노파가 그 가보를 보더니 두말하지 않고 사갔다. 하도 신기하여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하면서 집으로 돌아 왔다. 하인을 본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내년 이맘때면 반드시 오늘의 그 시간에 그 가보를 다시 팔려고 그 장소에 나올 테니 그때 다시 사 오라."고 했다. 하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정말입니까? 아니, 정말로 그 사람이 다시 팔러 나온다고요. 그런 경우가 어디 있어요?" 그러나 선생은 웃음을 띄우며, "기다려 보라."는 것이었다. 일년이 지나고 다시 작년처럼 제삿날이 다가왔다. 하인은 혹시나 하면서도 그 장소로 가 보았다. 그랬더니 선생이 예언한 그대로 그 노파가 그 가보를 다시 팔려고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토정선생의 많은 예언에 비하면 그러한 예언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사소한 것이었다.
    인문/어학| 2005.01.04| 3페이지| 2,500원| 조회(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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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과 사회] 대체복무에 대하여
    대체복무에 대하여얼마전 서울에서 모 판사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에 대해 병역거부 무죄를 선고하여 신문지상을 비롯하여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킨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라는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병역 거부에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는 연예인들도 군대를 가지 않으면 지탄받고 연예생활을 원할히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까지 문제가 되는 것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 지지모임인 평화사랑 등은 우리 헌법에 명시된 국방의 의무와 개인의 양심의 자유가 상충될 경우 인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이들 병역 거부자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 차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만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국민의 평등한 공적 부담 원칙과 현실적으로 병역을 기피할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개인적으로 군대를 다녀온 사람으로써 대체복무에 대해 별로 곱지 않은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부터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현실적으로 국가가 행하는 국방서비스는 필요하고 이는 군대가 수행하며 그 혜택은 전 국민이 받고 있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어떤 형식으로든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그 대가를 20대 남성의 군복무만으로 받고 있다. 이것부터가 말도 않되는 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군복무 가산점등은 여성들의 말도안되는 평등권 시비에 종적을 감추어버리지 않았는가? 희생은 남성들이 다지고 혜택은 아무것도 없고. 여하튼 문제의 시작은 그 외의 다른 수단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종교적 신념으로 집총 자체를 거부하며 기본 군사훈련조차 거부하고 징역을 선택해왔다. 그런데 최근 평화주의 인도주의에 입각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개인이 종교적 신념등 내면적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그 개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의사가 있다면 그는 그 양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책임을지지 않고 개인의 양심만을 주장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양심을 대가로 무임승차를 하겠다는 말밖게 되지않는다. 따라서 그동안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상응한 책임을 져온 셈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들이 부당한 책임이 과연 군복무의 의무를 지는 사람과 비교하여 적당한 수준인지 또는 그것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종교가 아닌 개인의 가치관으로서의 양심을 이유로 사회대다수가 부담하는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인지가 논의의 초점이 될 것이다.법원은 판결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20조를 인용하지 않고 굳이 양심의 자유를 규정한 19조를 근거로 삼았다(사실 판사의 개개인의 의견이 많이 작용하는 판결이지만 양심의 자유를 인용한 판결은 이번 판사가 사실상 처음이고, 거의 대부분의 판사들이 양심의 자유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개인이 지닌 내면적 준칙으로서의 양심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죄를 선고한 자체로 그들의 개인적 인권이 침해받고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그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마저 면제받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나오는 것이 대채복무 도입이다. 문제는 어떤 형태의 대체복무라도 현행 군복무를 대체하기에적당하지 않다는 사회의식이다. 예전에 군복무를 할 당시에 아주 재미있는 전역일 계산기라는 프로그램을 아마도 군대 다녀오신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전역일까지 남은 날과 함께 만약 이 시간동안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면 얼마를 벌수 있을것이란 멘트가 나오는데, 군복무의 기회비용은 근무 외 시간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수 있었을 것이다. 근무외 시간에 사회로부터 격리된다는 점에서 어찌됐던 근무외 시간 자유가 보장되는 대체복무에 대한 공감대는 쉽사리 이루어지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크게 두가지가 함께 이루어 져야 한다. 먼저 현역 복무 환경을 개선하고 그에 대한 많은 혜택을 주어 현역 복무에 대한 유인을 높여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직도 요원하고도 먼 일이긴 하지만 예전보다 많이 복지가 늘어났다고 하니 더 나은 처우를 기대해 볼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마음대로 무조건적인 충성을 요구하기 보다는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합리적인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병역을 수행하면 정말로 자신의 인격적 가치가 파멸될 것이라 생각할만큼 진지한 고민의 결과로 나오는 양심을 구별해내기 위해 대체 복무의 조건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현역의 1.5배 이하의 기간에 현역보다 높은 봉급을 받는다면 현역 복무를 택할 사람은 아마도 없은 것이다. 일반인이 보기에 저건 정말 확고한 신념이 없으면 못하겠다 싶을 정도의 부담이 지워져야 형평성에 맞을 것이다.
    사회과학| 2005.01.04| 3페이지| 2,500원| 조회(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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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의 이해] 나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다를 읽고
    나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다.손정의라고 하면 일본 소프트방크 사장이라고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한때 손정의라는 이름이면 무엇이던지 다 되던 때가 있었다. 1999년에 그가 손을 대기만 한다는 소문만 돌면 그 기업이나 주가의 가치는 폭등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이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손정의에 대해 쓴 책으로 손정의가 특히 일본에서 핍박받고 있는 재일동포라는 것 때문에 우리에게 더욱 와닿을수 있는지도 모르겠다.하지만 벤처의 거품과 인터넷 광풍의 사그라듬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손정의를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 하지만 손정의에 대한 인물과 그의 안목은 반드시 배워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크게 두가지 관점에서 손정의를 평가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손정의가 어떤기업을 사서 몇배의 가치를 얻는 투자 수익을 얻었다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사업을 일구어내었는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번째는 인터넷 광풍이 휘몰아닥칠 때 그를 우상화하여 객관성을 상실하였던 경험을 교훈삼아 광풍이 지나간 지금그를 무턱대고 폄하하기 보다는 배울건 배우고 타산지석으로 사을 건 삼는 기회를 가지자는 모습을 이책에서 보여준다.이 책에서는 손정의의 강점을 추진력, 넓게 그리고 멀리 내다보는 시야, 두둑한 배짱, 지치지 않는 끈기, 강한성취욕 등으로 요약하여 나타내고 있다. 허드슨과의 과감한 협상, 과감한 베팅으로 일발역전해 버린 pc잡지, 지프 데이비스 인수 등의 일화에서 그가 정말로 타고난 사업가, 창업가임을 읽을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본 사람들은 그를 운 좋은 도박사라고 속단할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처음 사업을 시작하기 전 1여년의 시간을 들여서 25가지 조건에 맞는 사업아이템을 찾았다는 점 등 그의 신중한 판단과 고민에 대해서는 쉽게 간과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5.01.03| 1페이지| 1,500원| 조회(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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