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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음과 수면양상에 대한 연구 파워포인트 저일
    소음과 수면양상에 대한 연구Ⅰ. 서론1. 연구의 필요성 ① 수면은 환자들에게는 휴식과 안정의 기회를 제공하고 생리적- 정신적 항상성을 유지하는데 절대 필요함 ② 중환자실의 경우는 다양한 내적. 외적인 주변의 환경요인들로 인해 환자들이 충분한 휴식을 방해 받음 ③ 소음은 개인의 지각능력과 사고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소음과 수면장애의 악순환 야기시킴④ 병원의 기술적인 진보와 함께 복잡한 기계장비, 그리고 더욱 많은 집중적인 치료와 활동의 결과로서 중환자실의 소음 수준은 점점 증가 ⑤ 국내는 중환자실 입원환자의 수면양상에 변화를 야기 시킬수 있는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인 소음과 수면양상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된 논문은 제한되어 있음2. 연구목적① 중환자실의 야간 소음수준및 환자의 소음 인지정도를 측정 ② 중환자실 입원환자의 수면양 및 수면 질을 파악 ③ 중환자실의 소음과 중환자실 입원환자의 수면양상과의 관계를 분석Ⅱ. 문헌고찰 (본론)1. 중환자실의 소음 BaKer- 소음에 대한 인지가 개개인마다 다양하며 똑같은 소리도 사람에 따라 다른 반응 소음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생리적 영향 -심리, 사회적 영향 미국 환경 보호청 -수면을 위해서는 35dBA이하가 요구됨2. 중환자실 입원환자의 수면양상 김명애(1986): 중환자들의 수면양 -내과계 중환자실: 150.6분 -외과계 중환자실: 146.6분 -심혈관계 중환자실: 266분 -호흡기계 중환자실: 104.1분 3. 중환자실의 소음과 중환자실 입원환자 의 수면양상 Morganrhk White(1983):수면방해 요인으로 소음, 간호활동, 조명, 통증, 불안, 기계장비의 순으로 인식 Southwell(1995):수면방해의 우선요인은 수음Ⅲ. 연구방법(1) 연구 설계 중환자실의 야간시간대 소음수준및 소음에 대한 환자의 인지정도와 중환자실 입원환자의 수면양상간의 관계를 알 아보기 위한 서술적 상관관계 연구(2). 연구 대상수원에 위치한 A종합병원. 1999년9월 28일 부터 10월 31일까지 입원한 환자를 임의 표출. 34명을 총 연구대상으로 함 대상자 선정은 만 18세이상의 성인남녀로 지남력이 있고 언어적 소통이 가능하고 청력에 이상이 없는 자로 연구의 참여에 동의한 환자를 대상으로 함(3) 연구도구① 소음측정 도구 · Sound Level Meter를 사용하였고 소음수준의 측정범위는 40dB-100dB로 정함 · slow response mode로 측정 ② 수면양상 측정도구 · 평상시 가정과 중환자실로 나누어 각각의 기상시간 및 취침시간, 낮잠양, 밤수면양, 일일 총수면양을 포함한 수량적인 측면을 측정(4) 자료수집 방법반 구조화된 질문지로 1999년 9월 28일부터 1999년 10월 31일까지 자료수집을 실시함 연구자가 병원의 동의를 얻은 후 중환자실에서 적합한 대상자를 선정하여 연구참여의 동의를 얻어 야간 시간대의 소음을 측정하고 병실로 올라가는 당일 전날 밤 수면양상에 관해 면담을 하면서 질문지를 완성하였음(5) 자료분석 방법SPSS WIN 8.0을 이용해 전산처리 통계분석 방법 - 대상자의 일반적 특성: 실수와 백분율 이용함 - 중환자실의 소음과 수면양상정도: 평균과 표준편차를 이용 - 중환자실의 소음과 수면양상관계: Pearson product moment correlation coefficient를 산출 - 일반적 특성에 따른 소음과 수면양상 정도는 t-test와 one-way ANOVA를 이용함Ⅳ. 연구 결과(1) 중환자실의 소음 간호사, 의사, 병원직원들의 말소리 중환자실내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 주위 다른 환자의 이야기나 신음소리 보호자 및 방문객들의 말하는 소리 회진할 때의 소리 침대난간 올리고 내리는 소리 침대, 의자 운반차 끄는 소리 각족 기계에서 발생하는 소리 전화벨 소리, 전화 목소리 산소 가습기에서 나는 소리(2) 중환자실 입원환자 수면양상밤 수면양상- 집에서 평균 6.8시간인데 반해, 중환자실에서는 5시간 미만에 해당하는 사람이 20명(58.8%)으로 가장 많았으며 평균 4.9시간이었음 일일 총 수면양- 집의 경우 21명(61.8%)이 7시간 이상이라고 응답하였으며 중환자실에서는 16면(47.1%)이 5시간 미만이었다고 응답함 * 평소 집에서 보다 중환자실 입원 후의 수면질이 부정적 반응 나타냄(3) 중환자실 소음과 수면양상소음 인지정도가 높을수록 밤수면양과 수면의질이 감소됨을 알수 있음. 소음원의 유형별 인지정도와 수면양상의 관계 - 의료진에 의한 소음과 밤 수면 양 및 수면 질 과의 관계가 통계적으로 유의한 역상관관계 - 의료진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 의한 소음 또한 밤수면양과 수면질과의 관계도 통계적으로 유의한 역상관관계 소음 인지정도가 높은 집단이 인지정도가 낮은 집단에 비해 밤 수면양이 적었음 소음 인지 정도가 높은 집단이 소음 인지정도가 낮은 집단에 비해 수면질이 상대적 낮음(4) 대상자의 일반적 특성에 따른 소음과 수면양상연령, 종교, 성별, 직업, 교육수준, 장소별, 기계 부착수, 중환자실 입원기간, 방의 형태 등의 9개의 변수를 독립변수로 하여 실시함 소음수준- 일반적 9개의 변수 중 연령, 장소, 기계부착수, 방의 형태에 따라 통계적으로 유의한 점수 차이를 보임개방형태에 입원한 환자들이 독방에 입원한 환자들보다 소음에 대해 높게 인지 밤수면양- 중환자실 입원기간이 6일 이상으로 긴 환자들이 입원기간이 5일 이하로 짧았던 환자들에 비해 밤 수면양이 적었음 수면의 질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점수 차 이를 보인 일반적 특성 변수는 없었음Ⅴ. 논의(1) 중환자실의 소음수준 및 소음에 대한 환자의 인지 정도 -내,외과계. 심혈관게 중환자실 모두 34-47dB을 초과하고 있어 중환자실 입원환자들이 입원 후 소음으로 인해 수면에 영향 받을 수 있음을 예측 (2) 중환자실 입원환자의 수면양상 - 이 결과는 freedman, Schwab, Richard, Bairnsfather의 중환자실 환자의 입원 전 후 정상 성인과의 밤수면양상을 비교하고 보고한 결과를 부분적이나마 지지(3) 중환자실의 소음과 중환자실 입원환자의 수면 양상과의 관계 소음 인지정도가 높을수록 밤 수면양과 수면질이 통계적으로 유의한 역상관계 주변 소음횟수나 소음수준의 정도와 관계없이 개인이 자극원으로 유입된 소리에 대한 인식정도에 따라 수면의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음 (4) 대상자의 일반적 특성에 따른 소음과 수면양상 중환자별, 환자의 부착 기계장치의 수, 방의 형태에 따라 소음수준에 차이 소음인지정도는 방의 형태에 따른 차이외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영향 주는 변수 없음Ⅵ. 결론 및 제언1. 결론 · 연구결과 - 연구결과에 의하면 객관적 소음수준보다는 개인의 소음 인지정도가 수면양상 즉 밤 수면양, 수면질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음 - 간호사들은 중환자실내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한 개인의 인지정도를 감소시킬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간호중재 방안을 모색해야 함2. 제언1) 간호실무 (1) 환자들은 집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수면양 상의 변화를 겪고 있으므로 간호사들은 중환자실 입원환자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는 간호중재 계획을 세울 것을 제언함 (2) 객관적인 소음수준보다는 개인의 주관적인 소음 인지정도가 수면양상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침을 알수 있으므로 개인의 소음에 대한 인지정도를 감소 시킬수 있는 구체적인 간호중재법을 개발 할 것을 제언함2) 간호연구외적 타당도를 높이기 위해 대상 표본수를 증가시켜 반복연구를 해볼 것을 제언함 24시간을 기준으로 시도해 보거나 일주일 정도의 기간을 설정하여 시간별, 요일 별에 따른 추후 연구를 해볼 것을 제언함 객관적인 측정방법을 이용하여 소음과의 관계를 연구해 볼 것을 제언함 반복적으로 수행하여 일반화의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음{nameOfApplication=Show}
    의/약학| 2008.01.27| 21페이지| 1,000원| 조회(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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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교폭력 예방대책
    학교폭력 예방대책최근 우리나라 학교폭력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학교폭력은 집단화되면서 그 규모 또한 거대해 지고 있다. 텔레비전 뉴스나 영화에서 보던 그런 조직폭력단과 비슷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폭력의 유형은 다양해지고 있으며, 점차 그 연령이 낮아 지고 있다. 또한 여학생들의 폭력도 늘어나는 추세이다.학교폭력이 왜 발생했을까? 학교 폭력의 발생원인에 대해 살펴보자.첫째, 가정의 약화이다. 자녀를 한 자녀만 둔 가정, 맞벌이 부부의 증가와 이혼, 결손가정이 늘어나면서 가정의 기능은 약화되고 있다. 가정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가정에서 배울 수 있는 사회화의 과정이나 타인을 배려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하게 되면서 원만한 인간관계 형성을 방해하고 있다.둘째, 대중매체를 통한 폭력의 경험이다. 요즘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아름다운 선율에 폭력이 난무하는 영상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져 시도 때도 없이 TV를 통해 방송된다. 이러한 매체에 아무런 주의없이 노출된 우리아이들은 폭력을 어떻게 생각할까? 폭력사람을 쉽게 때리고, 죽이고, 폭력에 복종하는 게임이나 TV프로그램, 영화, 만화 등은 폭력에 대한 미화시키고 있다.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이러한 것들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며 힘(=폭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영웅시한다.셋째,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시설이 부족하다. 방과 후 학생들은 어떤 여가를 즐기고 있을까? 도서관, 학원이 대부분이고 노래방이나 영화관 등 이 고작일 것이다. 좀더 계획적인 프로그램을 통한 문화시설이 있다면 친구들과 선후배들 간의 활동을 통해 소속감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이를 바탕으로 학교폭력의 예방대책에 대해 살펴보자. 학교폭력은 폭력이 일어난 뒤 학생이나 학교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처벌하는 등의 방법이 대부분이었다. 폭력이 일어난 후의 대책이 아닌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적극적 방법이 필요하다.
    교육학| 2006.07.17| 2페이지| 1,500원| 조회(1,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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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역사와 이데올로기를 읽고 평가A좋아요
    역사와 이데올로기‘역사와 이데올로기’는 서양 역사학의 유럽중심주의 이데올로기를 우리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한 책이다. 서양사의 각 주제들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서양사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식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며 함께 생각하기 위한 토론의 자리도 글 속에 남겨놓고 있다. 이 책은 7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서 어떤 내용이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제1권에는 서양역사학의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이론적인 면을 비롯하여 고고학, 헬레니즘, 중세도시, 르네상스, 인종주의, 식민주의 등의 다양한 역사학 주제를 다룬 7편의 논문을 수록하였다. ‘역사와 이데올로기’ 제1권에서는 1장과 7장을 빼고는 고·중세부분과 관련되어 있다. 새로 나올 2권에서는 주로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근대와 관련되는 여러 주제를 다룰 계획이라 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우리 나름의 관점에서 서양사 내지 세계사의 체계를 재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각장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1장에서는 주로 서양 역사학의 유럽중심주의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그 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대강의 틀을 제시하고 있다. 서양의 근대 역사학은 19세기 이해 크건 작건 수많은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아왔다.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인종주의, 식민주의, 유럽중심주의, 냉전이데올로기 등 무수히 많다. 그 가운데 유럽중심주의는 서양사 서술에서 가장 중요하고 포괄적인 역할을 해온 이데올로기이다. 유럽중심주의란 유럽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태도이다.유럽중심주의는 근대화의 산물로서 계몽사상에서 발전한 유럽 문명의 우월이라는 생각이 산업화와 자본주의, 근대국가의 발전, 그 결과로서의 비유럽 세계에 대한 정치·군사적 우위에 힘입어 현실적으로도 실증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유럽중심주의는 유럽예외주의와 오리엔탈리즘으로 구성된다. 유럽예외주의는 유럽 자신에 대한 규정이라면 오리엔탈리즘은 그 상대방인 비유럽에 대한 규정이다.유럽은 고대부터 다른 지역과는같은 역사적 사실이 특히 중요하게 취급된다. 이것들이 유럽을 근대 사회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유럽의 우월성을 구현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건들로 인식되기 때문이다.이 같은 유럽중심주의를 퍼뜨린 학자들은 헤겔·마르크스·베버 등 19~20세기 초의 거장뿐이 아니다. 브로델·홉스봄·월러스틴 등 20세기 후반의 대가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16세기 이래 세계 경제는 서유럽이 중심, 남동부 유럽이 반주변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가 주변부였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18세기까지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은 중국이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서양의 역사학은 객관적인 역사서술을 목표로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유럽중심주의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목적에 봉사하고 있다. 그리스문명은 오리엔트 문명과 과도하게 대비되어 한쪽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문명으로 설정되고 다른 쪽은 전제적·노예적 문명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그 후의 전체 역사에 걸쳐 유럽과 비유럽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 된다. 또 중세시대에 들어오면 유럽만 부각되고 비잔틴제국이나 이슬람 문명권의 비중은 축소된다. 이들 지역의 문화 수준이 유럽보다 휠씬 높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도 그렇다. 이런 식으로 쓰는 서양사는 얼마나 뒤틀리고 불균형한 형태의 것인지 말할 필요도 없다.1990년대 이후에는 유럽중심주의적 서양사 또는 세계사를 해체하고 세계사의 바른 모습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점차 본격화되고 다양한 연구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왜곡된 아시아의 모습을 교정하기 위한 작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 작업은 결국 세계사에서 유럽단일중심주의을 다중심주의로 대치하는 작업이고 다른 문명권의 역사적 가치를 존중하는 작업이다. 아시말해 유럽을 세계사의 중심 지위에서 밀어내어 다른 지역과 동등한 가치를 갖는 한 지역으로 만드는 작업이고 유럽사를 ‘보편사’에서 ‘지역사’로 격하시키는 작업이다.200년간 쌓아 올린 서양 근대 역사학의 거대한 인시체계를 극복하려면 현재의 세계사래왔던 것과 같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이다. 그것은 서양사학이 수입학문으로서 우리의 현실과 진정한 관련을 맺어본 적이 별로 없고, 우리의 눈으로 세계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2장에서는 고고학에 담겨있는 유럽중심주의를 다루고 있다. 고고학은 발전 과정을 통해 식민주의적 사고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되었고 문화를 서열화라는 계서적 사고를 그 안에 발전시켰다. 고고학은 식민주의뿐 아니라 인종주의나 민족주의, 유럽중심주의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고고학의 유럽중심주의는 아메리카와도 관련되나 특히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지역, 또 아프리카와 관련해서이다. 이 지역은 유럽과 인접해 있고 유럽과 많은 문화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그리스 고고학은 과거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편취된 고고학이다. 유럽인들은 고대 그리스 문화의 유산을 집단적, 독점적으로 편취함으로써 세계를 지배할 문화적 우월성의 근거를 마련하려한 것이다.서유럽문명의 기원으로 간주되는 그리스문명을 부각시키기 위해 서양 학자들은 이집트·메소포타미아·아프리카문명을 왜곡·과소평가했다. 북아프리카 문명의 일부인 이집트문명은 아리아족이 만든 것으로 강변됐고, 메소포타미아문명은 전제·부패·폭력 등이 특징으로 해석됐다. 또 그리스문명은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서유럽과의 관련이 단절됐고 비잔틴문명·이슬람문명에 더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도 이를 철저하게 무시했다.객관적 과거란 존재할 수 없으며 고고학 지식이란 그때그때마다 사회적·개인적 편견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상대주의적 견해가 발전하게 된다. 고고학에서 일반론적인 법칙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최근 고고학에서 고고학사가 새로운 연구 분야로 떠오르는 것은 방법론과 관련된 이런 반성 때문이다. 고고학이 이데올로기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고학 방법론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3장에서는 고대 그리스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헬레니즘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헬레니즘이. 그리스문화주의, 또는 그리스중심주의 정도의 의미이다. 이렇듯 고대 그리스 정신 정도로 풀어 이해할 수 있는 말인데 유럽인 자신은 물론이고 그들이 구축한 역사학에 세뇌되어 버린 우리도 이 헬레니즘을 기독교와 함께 서구문명의 양대 기축이라고 간주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종교적 확신에 가까운 이런 믿음의 역사가 기껏 200-300년밖에 되지 않는다.18세기 유럽에서 그리스 붐을 조성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미술사학자 빙켈만(1717-1768). 독일 태생인데 나중에는 로마 바티칸 궁전 도서관에서 근무했다. 이 때 빙켈만은 도서관 수장고에서 수많은 그리스와 로마시대 조각 모사품을 보고는 매료돼 그 연구성과를 1764년 `고대미술사'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여기에서 빙켈만은 고대 그리스 사회를 `유럽의 소년기'로 자리매김했다. 이것이 물론 빙켈만의 독창적인 견해는 아니었으나, 18세기 유럽이 그리스를 그 문명의 근원으로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극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근대의 헬레니즘이란 그리스인들, 특히 아테네인들이 헬레네스와 바르바로이로 구분한 그리스 중심적 인식체계를 18세기 이후의 유럽인들이 유럽인 대 비유럽인이라는 더 큰 틀로 확대한 것이다. 그리고 근대 유럽인들이 이런 방식으로 그리스 문명을 수용한 것은 자신의 역사적·문화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그리스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것은 그 역사상이 왜곡되어서만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서양인들이 그리스를 지렛대로 해서 세계를 보는 방식을 만들어낸 것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그리스를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유럽인들이 구축해 놓은 이분법적인 세계사 인식의 잘못된 틀을 넘어서야 한다.4장에서는 중세도시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유럽의 중세도시가 자유로웠다는 것은 오랫동안 서양중세사를 지배해온 이데올로기이다. 중세도시에 대한 찬미는 중세 시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대까지 소급된다. 자유로운 도시의 발전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유럽과 비유럽을 구분하는 날카로운 선이 된다.중세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봉건적인 농촌 사회를 붕괴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은 유럽의 중세 사회를 봉건적인 농촌과 비봉건적인 도시로 구분되는 ‘이중적 사회’로 파악하는 것이다.도시가 성장하기 이전, 즉 14~16세기까지 유럽 도시의 모습은 별로 인상적이지 못하다. 당시 이슬람이나 중국의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하다. 도시의 규모도 작고 인구도 휠씬 적다. 이렇게 도시가 빈약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근대 이전에 유럽에서 상공업이 덜 발달했다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는 플랑드르와 이탈리아 지역밖에 없었다.유럽중심주의적인 역사가들이 경제활동이 없는 도시는 도시가 아니라느니, 아시아 도시들은 ‘가짜’도시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선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제기 된것이다. 유럽을 무언가 특출한 역사적 과거를 가진 곳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아시아 도시의 성격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유럽중심주의자들이 말하는 것만큼 정치적 성격이 강한 것도 아니고, 아시아 경제가 18세까지도 유럽보다 휠씬 활력이 있었고 발전했었다는 주장도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유럽 도시와 아시아 도시 사이에 질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5장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제로 서양사에서 르네상스란 14세기 16세기 사이에 그리스·로마의 고전고대 문화에 기초해 새로운 문화가 발전했다고 하는 시기를 가리킨다. 우리가 오늘날 보통 ‘르네상스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주로 부르크하르트의 영향이다. 르네상스가 바로 근대 세계 속에서의 서양 문화의 우위를 정당화시켜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이 19세기 이래 서양 사람들의 큰 호응을 받아온 것은 그 주장 속에 담겨 있는 이런 유럽중심주의적 이데올로기 때문이다.르네상스 문화가 서양 근대 문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부르크하르트가 이야기 하듯이 그렇게 직접적인 것은 아니었다. 비유럽 문화와 관련해 르네상스.
    독후감/창작| 2006.07.17| 6페이지| 2,000원| 조회(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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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거울에 비친 유럽을 읽고
    ‘거울에 비친 유럽’을 읽고 · · ·서양사 관련 책은 거의 개론서만을 공부해 오고 읽어 왔기에 서양사의 새로운 주제의 책을 읽어보는 기분은 새로웠다. 너무 크지 않은 책 크기 또한 부담이 없기에 책을 사서 바로 읽을 수 있는 용기 또한 생겼다. 하지만 서양사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인지 내용의 이해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서양사에 대한 나의 무지에 대해 다시 한번 반성을 하게 되는 계기다 되었다.이 책은 유럽인 스스로의 거울에 비춰본 유럽 반성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유럽 출판사 5개가 모여 제작중인 총26권에 이르는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의 첫 번째 시리즈이다. 조셉 폰타나는 유럽사에 대한 지금까지의 관점을 일그러진 거울들로 이루어진 유령의 집에 비유하고 있다. 거울에 비친 유럽은 유럽사를 왜곡시켰다는 야만의 거울, 기독교의 거울, 봉건제의 거울, 악마의 거울, 촌뜨기의 거울, 궁정의 거울, 미개의 거울, 진보의 거울, 대중의 거울 총 9가지 거울을 키워드로 내용을 전개하고, 마지막에 '거울들의 방 밖에서'라는 장을 첨가하여 모두 열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비유럽인들, 비기독교들, 농민들, 민중들, 여자들)보다 우월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자아도취적 혹은 자기 합리화적 세계관을 만들어 왔다고 말한다.아홉 개의 왜곡된 방을 가진 유령의 집에 살고 있는 유럽, 자신들이 이런 착각과 환상 속에서 살고 있음을 반성하는 이 시점에 유럽의 것을 배우고 익히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우선 그들의 반성의 목소리를 주위 깊게 관찰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왜곡된 환상을 이해 하기위해 지금부터 ‘거울에 비친 유럽’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겠다.그리스, 로마와 같이 유럽 문명의 중심에 있었던 문명들은 스스로를 규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남과의 구별을 위해 '야만인'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냈다. 그리스인이라는 개념은 ‘야만인’이라는 개념과 동시에 만들어 졌다세계가 자신들의 세계와 야만인의 세계로 되어있다고 믿었다. “그리스인만을 친구로 삼으십시오. 다른 야만인들은 짐승 다루듯 해야 하고요." 알렉산더 대왕에게 이런 조언을 했던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여자들은 치아 개수가 남자보다 적으며, 따라서 열등하다고 확신했다. 그런 편견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평균적 정서이기도 했다. ‘야만인’ 이라는 용어는 원래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것은 그리스어를 할 줄 모르거나 ‘더듬거리다’는 것을 위미하는 의성어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에 정치적ㆍ도덕적 성격을 가미한 것이 바로 페르시아 제국과의 전쟁이었다. 헤로도토스는 이 전쟁을 그리스의 자유와 아시아의 민족들 즉 전제주의간의 대결로 묘사했다.야만의 거울이라고 하는 왜곡된 표면을 통해 인간을 바라보는 습관은 그 경계 너머에도 다른 세계가 다른 문화가 심지어는 자기네 것보다 우수한 과학과 기술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많은 지식인과 정치가들은 우리 사회가 대중이라는 또 다른 야만인들로부터의 위험에 직면해 있고, 따라서 문명의 파괴를 막으려면 이들에 대한 일정한 선을 긋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낮선 것, 나와 다른 것을 처음 대할 때 우리는 그 것에 대해 이질감을 갖게 된다. 자신과 다른 무엇을 인정하고 수긍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자기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오만에 빠지는 것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전통적인 역사관에서 고전 문화의 유산과 함께 ‘유럽적인 것’을 특징짓고 있는 두 번째 요소는 기독교이다. 권위가 확립된 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견해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이에 따라 이제 다원주의의 모든 측면은 배제되고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아니면 소급하여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초기 기독교의 모든 특징들을 하나로 묶어 그 외 다른 경향은 개인적인 것이라 하여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만들고 이제 추방되어야 할 것으로서 새로 의미가 주어진 ‘이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정굴은 이처럼 왜곡된 거울 속에서 완성되었으며, 비록 여러 가지 이름을 갖고 있지만 거의 언제나 동방적 기원, 이론적 요소들, 부도덕, 마법과 같은 몇몇 공통적 측면들을 가진 다른 얼굴들을 대조시켰다. 초기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공인된 기독교로의 전환은 수많은 변화를 동반했다. 탄압받던 신앙이 안정된 종교로 바뀌지 이제 이 종교는 사회 속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사회를 지배하고자 했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 제국의 공공 질서를 기독교화하고 가람들의 습관과 풍속을 바꾸려고 했다.중세 유럽의 사회와 문화의 형성처럼 대단히 복잡한 과정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기독교’., ‘이교주의’ 혹은 ‘이단’등 지나치게 일반적인 개념들을 갖고 단순화하는 것은 신앙의 ‘순수함’을, 다시 말해 신앙의 해석자로서 어떻게든 이것을 독점하려 했던 억압자들의 빈곤하고 애매모호한 언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상황을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독교는 무엇보다도 위협받고 있는 사회질서를 고수하기 위해 제국의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서로마제국의 멸망은 지금까지 유럽 중심의 역사기술의 눈으로 보면 몰락이지만, 실제로는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의 서양사는 이슬람문화와 동로마제국의 로마 정교문화, 기독교문화가 삼분되면서 다양한 문화가 형성되는 시기였다는 것이다.그리스. 로마적인 사고방식은 로마가 망한 후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오히려 그 구분은 더욱더 강화됨으로서 유럽은 하나의 체계 즉 봉건제를 근간으로 하는 또 다른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당시의 유럽 사회에는 봉건제의 출현이라고 하는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이것은 하나의 사회가 세 가지 ‘위계’ 혹은 ‘신분’으로 나뉘고, 각 집단은 서로 다르면서도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사회적 구도를 정당화해주는 체계였다. 봉건제와 기사도라는 말은 매우 다양한 측면을 포함하는 하나의 복합체를 가리키고 있다. 조르주 뒤비는 ‘봉건제’라는 말은 두 가지의 근본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하는데,치적인 것으로서 주권의 해체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토적인 것으로서 “모든 토지와 이러한 토지를 통해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포함하는 하나의 종속의 망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사회적 대변화들은 경제 성장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일 수도 있다. 그것은 영주들이 점점 해방되어 번영해가는 농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형태로 예속시켜둔 채 보다 큰 생산력을 착취하기 위해 이용한 전략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 지역에 따라, 즉 각각의 경우가 전개되는 상황에 딸라 서로 달랐다는 바로 그 사실이 봉건제의 발전이 ‘응답적 성격’을 가진 것이었음을 증명해준다. 즉 그것은 하나의 반응이었던 것이다. 기사 계급이라고 하는 봉건제의 거울이 ‘대중’ 즉 보통 사람들이 수행했던 주인공 역할을 감추기 위해 사용되어왔던 것이다.이번에는 ‘다른사람’이 야만인이나 이교도가 아니라 ‘이단’과 ‘불신자’로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 즉, ‘이단들’을 고립시키고 탄압했던 교회의 행동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유럽으로 이해하고 있는 지역의 창립 회원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은 왜 외부인으로 간주되는 것일까? 이런 유대인의 박해는 바로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문화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교회가 이들을 소외시켜 버렸으며, 유대인과 기독교도 간에 ‘접촉적 친교’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데 열을 올린 것도 교회였다. 11세기 이전에는 있었던 것 같지 않은 이러한 증오와 편견이 어떠한 집단적 불행이라고 ‘내부의 적’ 탓이라는 신화를 만들어온 교회에 의해 조장된 것이다.그리고 중세말 사회가 대도약하자 유럽인들은 다시 무지한 시골뜨기들의 위협이라는 가상의 신화를 만들어 냈다. 농민들을 조롱 대상으로 만든 것(농민들은 ‘멍청하기 때문에 조롱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농민들의 완고한 저항에 대한 적대감의 표현이었다.)은 식자계층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것은 농민들의 저항의식에 대한 은연중의 공포감을 반영하는 다. 그것은 경멸이라기보다는 증오이고 공포였다.새로 만들어진 유령은 유럽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기존의 질서를 위협했던 “통속적이고 멍청하고 그리고 사악한” ‘촌뜨기들’이 새로운 유령이 되었다. 물리쳐야할 적의 모습은 이제 ‘촌뜨기’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것은 ‘고상한 것’ 과 대치되는 ‘비천한 것’을 특징으로 하는 야만, 무지 천박함의 모든 색깔을 포함했다.또한 세속적 십자군에서 태어난 문화 속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유럽은 중세의 음울함과 르네상스의 ‘근대적’ 찬란함을, 종교개혁과 미신 혹은 마법을, 그리고 과학의 합리성과 마술의 무분별함을, 궁정풍의 세련됨과 ‘촌스런’ 조잡함을 대치시키는 그런 신화를 믿고 있다.다른 대륙의 민족들을 발견하면서 야만과 미개라는 허구의 신화를 조작하기 시작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무시하는 것은 그들의 문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무지와 그들의 정신적 지평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하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한 야만인. 인종차별의 계보는 21세기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최초의 인종차별주의 이론가들(몽테스키외, 뷔퐁, 볼테르)의 계몽적 전통으로부터 여러 인종들이 서로 다른 기원과 성격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으며, 이 주장을 객관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론을 제공한 의학적 전통으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인종차별주의는 과학적 연구를 통해 어떤 정당성도 없다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여전히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미개한 민족들은 가르침을 받아야 할 “어린아이 같은 민족”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세계사에 대한 지식은 식빈지 개척자들로 하여금 뒤떨어진 국가들의 발전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러한 이론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세계사’는 일련의 왜곡 위에 서 있을 수 밖에 없다. 진보의 ‘동인’을 이해하는 방식에서부터 그러하다. 유럽이 우월한 이유에 대한 해석은 대개 에너지와 기계라고 하는 두 가지 핵심적 요소로 단순화된 기술 발전에 대한 편향된 생각에 근.
    독후감/창작| 2006.07.17| 5페이지| 2,000원| 조회(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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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역사 서술과 해석
    제 13장 歷史의 敍述과 解釋1. 역사서술과 역사해설(1) 역사학 연구방법① 사료수집 ②사료고증 ③ 사료소화(2) 사료를 소화한다 = 역사를 쓴다.- 문장과 사상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3) 역사 서술과 해석은 역사의 2대 요소- 역사서술 : 이미 발생했던 복잡한 사건을 꺼릴 것 없이 서술해 내는 것.- 역사해석 : 대개 역사가 발전하는 궤도와 그 의의의 소재를 밝히는 것.- 역사가는 사료에 근거하여 역사를 쓴다고 하지만, 그것이 출현하게 되면 그것은 역사의 서술이 아니고 바로 역사의 해석이다.(4) 역사서술과 해석은 문장에 의해서고 원동력은 사상- 어떻게 문장과 사상을 운용하여 서술하고 해석을 진행시키고 있는 가에 성공이 달려있다.2. 서술의 편중과 해석의 편중(1) 서양사학계 논쟁① 서술에 치우친 역사가- 역사는 진실로 묘사하는 데 속하는 하나의 작품이고 여행기록서와 같은 것.- 서술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 역사가의 천직이유 : 역사적 사건이 갖고 있는 구체성과 독특성에 기인, 역사적 사건은 특수한 시간과 우연한 환경 속 에서 발생, 역사사건은 과정이 중복된다.② 해석에 치우친 역사가- 인류의 과법에는 간단한 형태가 있었으며 인류역사의 복잡하고 방대한 만상은 모두 해석을 통해서 그 속에 포용할 수 있다.- 서술이란 ‘해석의 한 가지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3. 역사해석의 진체(眞諦)(1) 역사해석① 표면적 : 역사발전의 궤도와 의의가 있는 곳을 밝히는 것.② 실제적 : 역사사실 사이에 맺어진 관계를 소통시키고 진술하는 것.③ 역사가는 바로 어느 한 시간과 어느 한 공간에 있었던 복잡하게 얽힌 역사사실을 그 서로 맺어진 관계를 소통시키고 비교하여서 어떤 현상과 의의가 나타났는가를 발견하고 지적④ 역사해석과 역사서술은 실제로 서로 의지하는 관계. 하나의 종합적 서술⑤ 수많은 역사사실을 함께 서술하여 의의를 부여하는 것이 이른바 역사해석인 것이다.4. 역사서술과 역사해석의 용해(溶解)(1) 서술과 해석이라는 예술은 이 두 가지를 한 용광로에 넣어 녹이는 것① 서술할 때 : 한 가지 사건 뿐 만 아니라 관계되는 일들도 서술② 역사사실의 연원·원인·발전·영향을 서술하여 역사의 전체적 발전과 과거·현재·미래 3자간의 관계도 서술. 서술 범위가 확대되면 여러 가지 해석은 자연히 그 속에 융합되게 된다.③ 해석할 때에는 대강령을 세워 놓고 개괄적인 설명을 쓴 다음에 역사사실로 그 내용을 삼고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나타날 수 있는 논란의 소지도 최소한도로 줄여야 한다.(2) 서술과 해석을 한 용광로에 녹인 두개의 예①『史記』의 ‘儒林列傳’- 작자가 유학을 공부했던 名家의 전기를 쓰기 이전에 먼저 유학의 출현과 그 발전을 하나의 개괄적으로 서술한 것.- 표면적으로 보면 사건진술, 유학이 일어났던 綠故와 차례로 전해진 흔적 및 성쇠의 관건을 모두 넣었다. -> 서술과 해석이 융합②『後漢書』‘西羌傳’- 서강전을 다 쓴 다음 더 나아가 羌戎의 흥쇠와 그들이 중국에 침입한 뒤에 끼친 참화의 여러 가지 사적을 썼다.- 역사가가 뜻을 쌓아서 해석해 나아 간 것이며 서술 속에서 해석을 갖추고 있다.(3) 새로 역사책을 쓸 때에는 서술한 것이 모두 새로운 의미가 있어야 한다. 해석도 반드시 견실한 역사연구의 성과에 의거해야 한다.5. 역사법칙과 역사해석(1) 해석은 일반 법칙 아래서 진행, 일반법칙이 없다면 해석하기가 어렵다.(2) 일반법칙① 자료로 귀납 : 자료가 빠지고 흩어져서 완전치 못한 것에서부터 귀납된 일반 법칙 적용 하기 어렵다.이론에서 연역 : 이론이 반드시 실제에 부합하지 않음.② 일반법칙을 찾아서 해석을 해 나아가는 것이 역사가가 모든 작업과정 가운데서 만나는 가장 곤란한 것 중 하나③ 역사의 일반법칙은 증거에서 나온다.④ 얻어낸 일반법칙을 수정하고 일반법칙을 버리게 되는 것이 하나의 건전한 과정이다.⑤ 일반법칙의 어휘는 마땅히 완곡성과 신축성을 가능한 유지
    사회과학| 2006.07.17| 3페이지| 1,500원| 조회(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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