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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카톨릭의 마리아론
    선교신학 세미나 소논문로마가톨릭의 마리아론2012년 5월 28일침례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신약학 전공최 정 운목 차Ⅰ. 서론 .............. 1Ⅱ. 마리아론의 역사 ......... 11. 기독교 초기 마리아론의 태동 ................ 12. 테오토코스 논쟁과 에베소 공의회 .......... 23. 중세 시대의 마리아론 ............... 3Ⅲ. 로마가톨릭 마리아론의 주요 교리와 반론................ 41. 마리아 종신 처녀설 .. 42. 마리아 무죄 잉태설 ... 되기 전까지 마리아론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그러기에 일차적으로는 마리아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기독교 역사 이래 마리아론이 가톨릭교회 안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으며, 중요한 교의적 개념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봄으로 마리아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꾀하고자 한다. 또한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회에서는 이를 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개신교 신학자들의 사례를 통해서 또한 성경적, 신학적 근거를 가지고 주요 교리들을 비판해 보고, 동시에 마리아론을 대신할 수 있는 개신교만의 대안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해 보고자 한다. 먼저 마리아론의 등장과 초기 교회 역사 속에서 다루어진 마리아론의 형태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마리아론의 역사1. 기독교 초기 마리아론의 태동4세기경, 로마 카타콤의 벽면에 그려진 초기 성모자 성화 마리아론의 기원은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기독교회에서는 순교자에 대한 공경이 대중신심으로 가장 두드러졌다. 순교자들에 대한 공경에 이어 초대 교회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구약과 신약 및 대망(待望)과 성취(成就)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로마의 카타콤에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그린 프레스코화가 그려졌으며,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청한 가장 오래된 기도는 250년경에 작성된 ‘성모께 보호를 청하는 기도(sub tuum praesidium)’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가 고통 받는 인류와 임금들의 임금이자 심판자인 아들 예수 사이를 중개하는 연민 어린 존재로 인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 전승을 토대로 마리아의 공경 사상은 서서히 자리 잡아 왔지만, 교회의 공식적인 교의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2. 테오토코스 논쟁과 에베소 공의회테오토코스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하나님을 뜻하는 ‘테오스(Θε??)’와 출산이라는 뜻의 ‘토코스(τ?κο?)’라는 두 개의 단어를 합친 합성어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하나님을 낳은 사람’이 된다. 본래는 남성형 명사이지만, 슬라브어로 번역되었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 하나의 교리가 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마리아론의 주요 교리 내용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성경을 근거로 비판해 보고자 한다.Ⅲ. 로마가톨릭 마리아론의 주요 교리와 반론1. 마리아 종신 처녀설(영원한 동정)1) 마리아 종신 처녀설평생 동정인 마리아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기 전에도 동정이었으며, 예수를 낳는 중에도 동정이었으며, 예수를 낳은 후에도 동정이었다는 개념이다. 여기서 잉태 이전의 동정성은 남성의 활동 없이 잉태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출산시의 동정성이 의미하는 것은 출산의 고통이나 동정성의 파괴 없이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출산 후의 동정성은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출산 후에도 마리아가 인간적인 결혼 생활을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평생 동정인 마리아 교의는 마리아가 인생 전반에 걸쳐 ‘영원한 동정녀(?ειπ?ρθενο?)’였으며, 그녀의 유일한 소생은 예수 한 사람뿐이었으며, 그마저도 동정의 몸으로 기적적으로 잉태하여 낳은 것이라고 가르친다.기독교 초기 신앙고백인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조에도 마리아를 ‘동정녀’라고 불렀다. 이 교리는 점차 발전하여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553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어머니이시며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셨다.”라고 고백함으로써 교회의 가르침으로 공식 선포되었다. 그리고 649년 라테란 시노드는 “성모님은 해산 전에, 해산 중에, 그리고 해산 뒤에도 동정녀이셨다.”라는 말로써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을 더욱 강조하였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도 이 교리를 다시 확인하였다.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기 전에 동정이었다는 이론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근거로 하고 있다. 한국어 성경을 포함한, 대부분의 번역된 신약성경에는 ‘형제들’이라고 표현된 이 단어의 그리스어 원문은 ‘아델포이(?δελφο?)’이다. 이 단어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형제들’을 뜻하지만, 같은 민족이나 씨족, 이복에서 제외되는 유일한 예외로서 마리아를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며, 그녀가 원죄 없이 잉태된 유일한 인간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1854년 12월 8일 교황 복자 비오 9세는 1851년부터 1853년까지 세계 모든 가톨릭 주교들의 자문을 받아 초대 교회 때부터 이어져온 로마 가톨릭 신자들의 성모 신심과 봉헌, 교부들의 증언,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성경 구절을 근거로 하여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Ineffabilis Deus)》을 반포함으로써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었음을 가톨릭교회의 교의로 선포하였다. 그리하여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은 12월 8일로 제정되었다.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교의는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정의된 교황 무류성의 해당 조항에 따라 선포되었다.2) 마리아 무죄 잉태설 비판중세 가톨릭 안셀무스, 베르나르도, 토마스 아퀴나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핵심 진리가 약화된다고 하여 마리아의 무죄 잉태를 반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경중심인 개신교에서는 여러 구절들을 근거로 마리아가 무죄하다는 이론 자체를 반대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롬 3:23),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한 죄가 모든 인류에 미치게 되었다는 사도 바울의 설명은 결국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무죄설은 비성경적이며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3. 마리아의 승천1) 마리아의 승천 이론2004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루르드를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강론 중 요한복음 14장 3절을 성모 승천 교의의 주요 근거 가운데 하나로서 언급하였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있게 하리라.” 마리아의 승천은 그리스도의 이와 같은 약속의 보증이라고 말하면서 이는 인간들의 부활과 승천의 희망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와 똑같은 피조물인 마리아도 하나님의 은총에 보답하는 겸손과 순명의 덕행으로 하늘나라에 불러리아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임금이며 더 나아가 하늘나라와 온 우주의 통치자이므로, 그 어머니인 마리아는 당연히 천상의 모후로 불러 마땅하다고 언급한다. 일반적으로 모후(母后)란 말 그대로 임금의 어머니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교황 비오 9세는 “주님께서는 성모님을 하늘과 땅의 모후로 세우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모든 천사들의 무리보다 그리고 성인들의 계급보다 더 높이 올림을 받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드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의 오른편에 서 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모성의 기도로 가장 강력하게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며 당신께서 원하시는 바를 얻으십니다. 성모님께서는 결코 실망하게 되실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천상의 모후라는 용어는 교회로부터 공식적인 인준을 받기 전부터 마리아에게 전구를 요청하는 기도와 그녀에게 헌정된 종교 문학 작품 및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을 주제로 한 그림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며, 가톨릭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최근 들어 우주 공간에 대한 현대 과학의 이해를 반영하여 가톨릭교회에서는 마리아에게 ‘우주의 모후’라는 호칭을 쓰기도 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 것이 그녀가 천상의 모후가 된 궁극적인 이유라고 말하였다. “마리아가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여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은 그녀를 피조물 가운데 가장 많이 총애하였으며, 그리스도는 그녀에게 하늘과 땅의 모후라는 영예를 주었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하늘나라로 들어 올림을 받아 그녀의 거룩한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고 여겨지며, 요한계시록 12장에서 나온 바와 같이 태양을 입고 그리스도를 낳은 여인으로 묘사된다.2) 천상의 모후 비판성경에서는 단 한 번도 마리아를 통치자의 자리에 앉힌 경우가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만물을 다스리며 통치하는 임금이 되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고전 15:27-28, 엡 1:22, 빌 3:21, 히 2:8, 계 21:5). 마리아의 천
    종교학/신학| 2021.09.17| 18페이지| 3,000원| 조회(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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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의 본질과 권위 - 마태의 교회관
    1. 연구 목적이러한 맥락에 따라 마태 공동체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의 교회의 본질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마태의 이야기는 과거로부터의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의 의도는 복음서 저자와 그의 공동체의 삶과 동시대적이다.2) 마태는 유대인들과의 적대적인 관계 속에서 그들과는 차별화된 공동체로서, 율법과 유대교 전통이 중심이 아닌 부활하여 살아계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공동체를 그리고 있다. 또한 임박한 종말론 속에서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재림하시기까지 인내하며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야 할 자신의 공동체에게 필요한 교훈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교회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의 바탕이 되는 반석 되신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교회이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이고, 천국의 열쇠를 부여받은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공동체이다. 마태의 교회관은 비록 마태의 신학적인 관심사와 상황 속에서 나타난 교회관이라 할지라도 오늘날의 교회가 반드시 연구하고 추구해야 할 교회의 본질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그 교회에게 주신 참된 권위를 올바로 행사할 때 그리스도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합당 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특별히 마태의 교회관은 마태복음 16장 16-20절에 가장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에 마태복음 16장 16-19절을 중심으로 마태의 교회관을 연구하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자 했던 교회의 본질과 그 교회에 부여하신 권위를 중심으로 마태 공동체의 상황 속에서의 교회의 본질로서의 모습, 나아가 오늘날의 교회가 함께 고민하며 추구해야 할 교회 원형의 모습을 연구하며 정리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발단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획하시고 세우시고자 하셨던 교회의 본질과 또 그 교회에게 주시는 참된 권위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오늘날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고, 지역 교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의 원형의 모습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였다.
    학위논문| 2016.03.14| 92페이지| 3,000원| 조회(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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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율법과복음의충돌(마가복음)
    신약신학 세미나 소논문복음과 율법의 충돌-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와 유대인과의 논쟁을 중심으로 -2012년 12월 17일침례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신약학 전공최 정 운목 차Ⅰ. 서론 1Ⅱ. 유대교 사회에서의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2Ⅲ. 복음과 율법의 충돌31. 복음과 율법의 긴장관계41) 죄사함 논쟁42) 안식일 논쟁53) 정결법 논쟁72. 복음의 결과와 확장91) 생명과 치유와 변화92) 복음의 확장: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로9Ⅳ. 결론 및 제언11참고자료12Ⅰ. 서론예수는 공생애 시절 유대인들, 특별히 바리새인 서기관들과 잦은 갈등과 마찰을 빚었고, 결국 그 갈등의 결과로 십자가 처형이라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방인 중심의 공동체였던 마가교회의 상황에서 복음이 유대인 문화를 넘어 이방인에게로 확산되는 개념은 마가신학의 하나의 독특한 면이라 할 수 있겠다. 마가에게 있어서 예수는 하나님의 약속된 구원적 통치의 시작이라는 견지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한 존재이셨으며, 동시에 자신을 통하여 이 복음을 역사 속에서 성취한 존재이셨다.그런 의미에서 마가복음에서 복음은 율법과의 갈등과 긴장을 뚫고 그 절정을 향해 나아간다. 마가복음서 전체에 흐르는 복음과 율법의 긴장관계는 마가복음 신학에 대한 좌표 역할을 한다. 이 양자의 긴장관계는 마가복음서의 이야기가 시종일관 독자들의 긴장을 재촉하며 빠른 속도로 전개되도록 촉매 역할을 한다. 이 긴장의 절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며, 즉 십자가의 사건이 긴장의 절정이 되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백부장의 고백 혹은 확인은 이 긴장관계의 붕괴와 더불어 복음이 유대인의 틀을 깨고 확산되는 기점을 제공해 준다.다른 공관복음과는 다르게 마가복음에서 복음은 율법과의 충돌을 통해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로 확산되고 있다. 복음으로 오신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어떠한 충돌을 경험하였고 또 그 복음으로 인한 결과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밝힘으로 복음의 가치와 위대성을 논하고자 한다. 일단 마가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 유대인 분리되지 않은 종교생활을 장악하고 있던 제사장들의 역할은 점점 쇠퇴하였으며, 반면에 율법을 기록하고 가르치던 서기관들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증대되었다. 서기관들의 역할이 단순한 율법이 기록에서 벗어나 율법을 가르치는 기능까지도 포함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동승하면서 그 중요성과 영향력이 확대되었고, 이로 인해 예수님 당시는 율법의 영향력 증대에 비례하여 서기관들의 영향력도 증대되었던 것이다.서기관들은 포괄적인 모세의 계명에 대한 세부 지침을 만드는 등 율법을 이론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러한 작업의 결과가 많은 유전들을 만들어 내어 민중들을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들이 끊임없이 율법을 이론적으로 발전시킨 결과물들은 민중들에게 중요한 신앙생활과 일생생활의 지침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들을 얽어매는 명에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종교가 생활을 지배하는 상황 속에서 종교규범 자체가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규범이었으며 일상생활의 윤리 규범들이 바로 종교 규범이었기 때문에 민중들의 어려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과거의 특정한 상황에서 지켜지던 많은 율법과 구전들이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에도 여전히 강요되고 있었다. 장로들의 유전은 사람들이 율법을 파괴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울타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러한 울타리가 율법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장치가 되었던 것이다.Ⅲ. 복음과 율법의 충돌마가의 이야기는 갈등의 이야기이며, 이 갈등의 이야기를 앞으로 추진시키는 힘이다. 주요 갈등은 예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일어나며, 종교 관원들과 유대 군중을 형성해간다. 군중은 예수님께서 체포되시기까지는 그분을 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관원들이었다. “친근한 서기관”들을 제외한 종교 관원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무리들이었다.예수와 충돌하는 사람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혹은 바리새인의 서기관들로 제시된다. 서기관들은 유대교의 거룩한 전승의 연구와 교를 용서함(2:1-12), 제의적인 정결(2:15-17; 7:1-23), 금식(2:18-22), 안식일(2:23-28; 3:1-6), 이혼(10:2-12), 예수의 권위(11:27-22), 세금문제(12:13-17), 부활(12:18-27), 가장 으뜸 되는 계명(12:28-34),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12:35-37) 등이다. 이방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하며 복음의 확장을 방해하던 대적자들과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주제들은 복음과 율법의 긴장관계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마가복음서에서 선언하는 ‘복음’을 뚜렷하게 드러내 주는 상대적인 역할을 수행한다.1) 죄사함 논쟁마가 시대에는 질병이 죄의 증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그의 죄를 용서받는 것은 치료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예수님께서 그 중풍병자를 용서한 것을 목격한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예수님께서 스스로 신성모독죄를 범했다고 생각했다. 즉 용서를 선언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권위를 그 자신에게 돌리셨고 하나님의 위엄을 침해시켰다는 것이다. 예수는 중풍병자를 치료해 주시기 전에 죄사함을 먼저 선언했다. 예수가 믿는 자들에게 주려는 근본적인 것은 죄사함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다. 예수는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중풍병자 치유 사건을 활용했다. 그런데 죄사함의 주제는 유대교 지도자들도 심각하게 다루는 것이었다. 그들은 오경의 율법을 기초하여 성전에서 드리는 속죄의 제사를 근거한 죄사함의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그런데 예수는 그들의 견해와 전혀 다른 죄사함의 길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것이 유대교 지도자들과 심각한 마찰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 마가는 이 사건을 죄사함이라는 신학적 주제에 대하여 예수와 유대교 지도자들 사이의 충돌과 관계시킨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먼저 예수의 선언에 의문을 제기했다. 예수는 역질문을 통하여 죄사함을 하나님의 권세와 관계시켰다. 예수는 인자가 땅에서 치유하는 사건에서 예수는 근본적으로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진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사람들을 얽어매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은 지도자들에 대하여 분개하면서 그들과 충돌했다. 예수는 선한 일을 위하여 안식일을 선용하고 치유하심으로 생명을 구하시는 반면, 관원들은 악을 행하고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이용한다(3:4, 6).또한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더욱 감시를 받게 된다. 거기 한 편 손 마른 사람이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그를 고치실 것인가 아닌가를 보기 원했다. 그들의 규칙에 따르면 안식일에 이런 사람을 치유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죽음의 위험에 처한 위기적 상황이 아니었고, 다른 날에 치유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논쟁과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유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율법에 관한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대한 그들의 해석에 도전하신다. 예수님께서 제기하신 수사학적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항상 합법적이라고 주장하신다. 이와 같이 바리새인들의 율법에 관한 옹졸하고 사랑이 없는 이해를 노출시키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고치신다. 결과적으로 논쟁 첫 순환 주기 끝 부분에서 예수님과 종교 관원들 사이에 갈등이 이미 죽음으로 몰고 가는 데까지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3) 정결법 논쟁마가는 예수와 유대교 지도자들 사이의 대립 사건들을 이미 한데 모아 보도한 바 있다(2:1-3:6). 그런데 마가는 이 문맥에서 또 다른 대립 사건을 전달한다. 그것은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는 유대교의 정결법과 관계된 대립이었다. 이것은 씻지 않은 손 곧 불결한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는 위생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지 말라는 장로들의 전승을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지키지 않은 데서 발생한 것이었다. 장로들의 유전은 음식과 관계된 정결법을 비롯하여 유대인서 다룸으로써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는데 있어서 유대교의 유전들이 걸림돌이 되었던 것을 반영한다.예레미아스(Jeremias)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가장 강조했던 것은 안식일법과 정결법이었다고 말한다. 바리새파 공동체의 신입회원은 바리새파적 정결 규정들과 십일조 규정들을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했고, 바리새파 공동체 가운데 압도적인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평민들도 바리새파적 십일조 규정들과 정결규정들을 준수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그처럼 강조한 정결 의식에서 중요한 것은 씻는 예식이다.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이 이야기는 본래 마가 공동체가 이방인들을 포용하는 관행을 정당화해 주었다. 이 이야기는 또한 인종적/종교적 정체성을 지키도록 기능하는 제도로서의 정결체계가 인간을 보호하기보다는 오히려 억압할 수 있음을 설득해 준다. 공동체의 정체성과 경계에 대한 지배적 이념을 넘어 마가는 하나의 대안적 비전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열린 공동체’로의 지향이다. 예수는 모든 음식을 정결하다고 선언한다. 그러니 종래의 기준으로 볼 때에 부정한 음식을 먹는 사람들, 예를 들면 이방인들이나 이스라엘의 불가촉천민들도 모두가 정결한 사람이 된다. 하나님 나라의 성결한 백성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정한 사람들을 이렇게 정결하다고 여겨주는 것은 마가복음 안에서 예수의 일관된 행동이었다.예수께서 사람이 음식으로 부정해질 수 없다고 선언하였을 때(막 7:15), 그는 그로써 마가가 설명한 것처럼(7:19) 모든 음식이 정함을 밝힐 것이며, 의식적으로 지켜지던 모든 전통들을 원칙적으로 무효화시킨 것이다. 자신의 권위에 근거해서 예수는 모세법에 나타난 정결의식의 원칙을 거부하였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의가 더 이상 율법에 의해서 중개되지 않고 예언자들에 의해서 예견되었으나, 지금은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실현 과정에 있는 하나님의 새로운 구속행위에 의해서 중개된다. 결국 예수가 제시하려는 복음은 율법과 전통을 뛰어 넘는 새로운 국면의 인간 삶을 포함하있다.
    학위논문| 2013.11.09| 14페이지| 3,000원| 조회(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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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태의 교회관-교회의본질과권위
    마태복음 세미나 소논문마태복음의 교회론2012년 12월 10일침례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신약학 전공최 정 운목 차Ⅰ. 서론 1Ⅱ. 교회의 시작과 출발과 기초21. 베드로의 신앙고백22. 계시의 특수성23. 반석의 의미9Ⅲ. 교회의 정체성: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121. 음부의 권세2. 교회의 권세Ⅵ. 교회의 권세: 천국의 열쇠(매고 푸는 것)를 가진 교회121. 천국의 열쇠122. 매고 푸는 권세12Ⅴ. 결론 및 제언13참고자료13I. 서론“교회(εκκλεσια)”는 사복음서 중에 마태복음에만 등장한다. 그만큼 복음서 중에 교회의 복음서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마태복음은 교회에 대한 관심과 교훈을 찾기에 적합한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 대한 많은 이해와 이미지,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진정한 교회의 기초, 정체성, 그리고 그 교회에게 부여하신 권위에 대한 교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말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마태복음 17장 16-18절의 말씀은 교회에 대한 교훈을 제대로 얻을 수 있는 본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이 본문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현대 교회가 다시 한 번 붙들어야 할 교회에 대한 이미지와 정체성에 대해, 그리고 그 기초와 권위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교회, 그 출발점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이었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의 권세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순간까지 든든히 설 것이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처음과 나중이며, 시작과 끝이 되신다(계. 1:8). 먼저 절의 순서를 따라 교회의 기초, 다음에 교회의 정체성, 이어서 교회를 대표하는 베드로에게 주신 천국의 열쇠 개념 연구를 통해 교회의 권세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마태복음의 교회론을 살피기 위해 먼저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히브리어 ‘카할’의 헬라어 번역인 ‘에클레시아’를 신약에서는 교회라고 통칭한다. 곧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무리’, ‘하나님의 백성’, 또는 ‘하나님의 공동확립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교회의 출발과 시작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다.Ⅱ. 교회의 시작과 출발과 기초1. 베드로의 신앙고백“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베드로의 이 고백은 초기 기독교인들의 핵심적인 신앙고백이었다. 하나님 앞에 살아계신 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것은 아마도 그 지역의 잡다한 신들과 대조되는 진정한 하나님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표현은 가이사랴 빌립보의 신들처럼 살아 있지 않은 이 세상의 신들과는 대조되는 참되신 하나님을 나타낸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이 고백을 높이 평가하시며, 그를 축복하신다. 그리고 곧바로 그의 교회를 세우실 것을 말씀하신다. 따라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주님이 세우고자 하셨던 당신의 교회의 출발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출발점의 핵심이 베드로의 고백의 내용의 요지는 예수께 대한 신앙고백이다.베드로의 신앙고백의 내용의 두 가지 요지는 첫째,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고, 둘째 예수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오직 나사렛 예수가 이스라엘과 온 인류가 기다리던 그 메시야, 곧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것, 또한 그 예수가 사람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에 근거한 신앙이야말로 예수의 교회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앙고백의 공동체이며, 예수께 대한 신앙고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2. 계시의 특수성베드로가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하나님이 알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역사하심으로써 예수에 대한 이 결론이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전달되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비록 인간의 이성과 추리 과정을 통한 것이지만, 예수께서는 그의 신앙고백을 인간의 이성과 추리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계시, 즉 하나님께서 공인하시는 진리로 인정하신다. 그리스도는 예수가 메시야 되심을 하나님의 계시로 아는 자들과 베드로 위에 자기 교회를 세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설립의 권세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전체를 가리킨다. 이런 맥락에서 “내 교회”란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존재를 깨닫고 믿음으로 그분과 하나로 결합된 연합체를 가리킨다. 반석은 그리스도와 그에 대한 신앙고백이며, 따라서 그 핵심은 교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이다.‘페트로스’와 ‘페트라’는 정확하게 동일한 단어가 아니다. 페트로스는 남성형 명사로서 ‘돌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페트라’는 여성형 명사로서 ‘바위’라는 의미를 갖는다. 아마도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부여하시고자 한 이름은 ‘바위’라는 뜻의 ‘페트라’였겠지만, 이 단어의 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남자인 시몬에게는 적절하지가 않았고, 따라서 그 남성형 명사인 ‘페트로스’를 부여하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반석’의 심상은 안정과 지구력을 암시한다. 이 안정과 지구력은 심지어 지옥 문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다. 비록 이 땅위에 세워진 지역교회는 영적 전투 가운데 있는 불완전한 교회이지만, 영원한 우주적 교회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할 것이다. 이어서 교회 정체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Ⅲ. 교회의 정체성: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1. 음부의 권세“음부의 문”이라는 은유는 구약성경과 구약과 신약 중간 시대의 기록들에서 발견된다. 이는 “사망의 문”과 동의어이다. 음부/스올은 죽은 사람들의 영역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이 어구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를 가정할 때, “죽음의 권세” 또는 단순하게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즉 교회를 이기지 못하는 것은 죽음의 권세 또는 죽음이다. 또한 다른 해석으로 ‘하데스의 문들’이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데스의 문들’은 구약의 ‘스올의 문들’을 번역한 것으로, ‘죽음의 문들’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의 이 말씀은 베드로를 그 기초로 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으로서 소멸되구원되는 것을 보았다(마10:8). 예수의 사역에서 들끓었고 그의 제자들이 동참한 죽음의 권세들과의 이 메시야적 투쟁은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며, 교회가 이 투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도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는 영원하며, 안전하다.Ⅳ. 교회의 권세: 천국의 열쇠(매고 푸는 것)를 가진 교회1. 천국의 열쇠“천국의 열쇠”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에 참여하는 길을 소유하고 제시하는 권세를 가리킨다. 천국의 길을 깨닫게 된 베드로는 천국을 열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다(23:13). 그런데 이 열쇠는 베드로뿐만 아니라 예수의 참된 정체를 깨닫고 그와 연합된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권세이다. 예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스스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기 때문에 그들을 정죄하였다(눅 1152). 동일한 사상이 마태복음에도 나타난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지식은 “계시로 인한 영적 소유”이다.베드로에게 위임된 권한은 계시, 즉 열 두 제자와 함께 가지고 있는 영적인 지식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천국의 열쇠는 베드로가 자신이 통과한 계시의 문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도 인도해 들일 수 있는 영적인 통찰력이다.베드로는 교회를 대표하여 천국의 열쇠를 받았다. 그것은 과거 초대교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이해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에게 주신 영적인 특권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복음을 선포할 때 묶여 있던 생명의 문들이 하나하나 열리게 되고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문 앞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2. 매고 푸는 권세“매일 것이요... 풀릴 것이다”는 말은 신학적 수동태로서 하나님의 능동적 활동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랍비들이 ‘허용된 것’(‘풀다’), ‘허용되지 않장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해석은 단순미래수동태의 의미와 거의 다르지 않다. 미래완료형은 땅에서 매인 것은 땅의 결정에 앞서 하늘에서 이미 매여져 있게 될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태가 피하고자 했던 단순미래수동태의 의미와는 분명히 다른 의미를 주기 때문에 그가 위도했던 것을 가능성이 좀 더 짙다. 그 경우에 마태는 땅에서 내린 어떤 결정에도 무조건 찬성하는 하늘의 자동 고무도장이 있다는 생각을 피하기 위해 우회적 시제를 사용했을 것이다. 반대로, 땅의 결정의 권위는 정확하게 말해서 하늘에서 이미 된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에 내재한다.이 동사들은 관행적으로 그리고 확실히 옳게 율법이 요구하거나 금지하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에서 흔히 사용되는 랍비적 어법의 ‘매는 것(binding)’에 비추어 설명되고 있다. 따라서 이 용어들은 가르침의 기능을 말하고 있고 좀 더 명확하게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속(binding)할 수 있는 할라카적인 판결을 하는 것 중 하나를 말한다. 이 경우에 16:19에 나타는 베드로의 ‘열쇠의 권세’는 누가 천국에 받아들여 질 수 있고 없는가를 결정하는 문지기의 권세라기보다는 그의 직분의 열쇠가 그로 하여금 집안 일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청지기(steward)의 권세이다(일반적으로 이 열쇠의 비유에 구약의 배경으로 여겨지는 사 22:22에서처럼). 따라서 할라카적인 판결이 궁극적으로 특졍한 율법에 대해 누가 ‘죄인’이고 아니고를 인정하게 될 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누가 천국의 소속이다 아니다 하는 선언의 의미나, 또는 좀 더 명확하게 말해서 자주 이 구절이 분명히 요한복음 20:23의 비슷한 언어의 영향하에 읽혀지고 있는, 개인의 면죄나 유죄 선고의 의미는 이 용어들의 본래의 의미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여기서 목적하고 있는 권위는 규율적인 판단의 권위보다는 좀 더 직접적으로 가르침의 권위이다.18장의 문맥은 실제로 이 권위적 선언이 제자공동체의 일치성과 회원 자격에 영향을 줄 것을 암시하고 있으하다.
    학위논문| 2013.11.09| 15페이지| 3,000원| 조회(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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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브리서의 설교 스킬(최정운)
    히브리서 세미나 소논문히브리서의 설교 skill-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의 설교와 비교하여-지도교수 장 동 수2012년 6월 4일침례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신약학 전공최 정 운목 차Ⅰ. 서론 .............. 1Ⅱ. 설교적 특징 .. 11. 구조 .............. 12. 수사학적 표현들 ......... 2Ⅲ. 설교문 작성 .. 31. 청중 이해 ......... 73. 명확함 ............ 7Ⅳ. 결론 .............. 8참고자료 ........... 9Ⅰ. 서론현대에 들어와서 Buchanan 같은 신학자는 히브리서를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하나의 설교로 이해했으며, 또한 France는 히브리서 저자를 성경강해자로 보기도 하였다. 또한 히브리서는 최초의 완전한 원기독교 설교이며, 고대 수사학의 모든 수단과 언어 양식들을 전제하면서 이것들을 기독교로 끌어온 최초의 설교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여러 가지 책들과 논문들을 통해 볼 때 오늘날 히브리서의 설교적 관점의 이해가 다각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특별히 이러한 설교적 관점에서 히브리서는 역사적으로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와의 유사성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주목을 받아 왔다. 둘의 특징을 보면, 모두다 제의적으로 주조된 사유형식을 갖고 있고, 계시에 대해 날카롭게 가르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역사를 생생하게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인조만큼은 히브리서의 묶음쇄와 어느 정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다.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보통 설교문을 작성할 때 서론과 결론, 도입과 마무리가 같은 주제 안에서 통일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 중에 종종 처음 도입 부분에서 중심 주제와는 상관없는 예화나 유머들이 사용될 때가 있다. 커다란 대 주제 안에서 시작과 끝을 같은 주제로 맞추는 것은 신약성경을 기록한 저자들 곧 고대 설교가들인 스데반과 히브리서 저자가 보여준 본받을만한 모범적인 설교의 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 수사학적 표현들히브리서에는 두운법(1:1), 수구반복(11장에서 8번), 대조법(7:18-21; 10:11-12), 모운(10:26-27), 연결사 생략(11:33-34, 37), 교차대구법(2:8-9; 7:23-24; 10:38-39), 다아트리베 논쟁법(diatribe, 3:16-18), 생략법(12:25), 중언법(5:2), 전치법(2:9), 곡언법(4:15), 리듬(1:1; 1:6; 2:1; 2:8) 등의 수사학적 요소들이 풍부하게 등장한다.스데반의 설교에도 역시 ‘너희들’과 ‘하나님’, ‘우리’와 ‘너희들’을 번갈아가며 설명하는 대조 기법과, 이스라엘 조상들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이어가는 반복 기법 등 수사학적 표현들이 풍부하게 등장한다.이러한 두 설교의 다를 수밖에 없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표현방법이라든지, 연설기법 등 말 그대로의 수사학적인 표현과 방법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논지를 펴 나간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설교자들 역시 현대에는 수사학이라는 어딘가 모르게 낯선 표현방법을 고수하고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문학적, 글쓰기 방법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설교자로서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겠다.히브리서와 스데반의 설교의 특징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스데반의 설교와 히브리서를 비교해가면서 설교문 작성과 전달이라는 설교 스킬적인 부분에 대해서 간단히 다루어 보고자 한다.Ⅲ. 설교문 작성1.들이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으로 이어지는 인물들을 예로 들어 사람들을 다루시고 인도하시고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보여준다. 특별히 스데반 설교의 두 가지 주제인 율법과 성전의 개념들을 설명하면서 그것을 신약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히브리서도 구약 인용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구약적 개념들과 성경 구절을 통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것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또 그것을 그리스도 중심의 기독론적 재해석으로 이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스데반의 설교와 히브리서의 구약 인용은 예화 사용에 빗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의 주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예화를 찾는 것은 오늘날 설교자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화가 빠진 설교는 어딘가 모르게 건조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주제에 딱 맞는 적절한 예화 사용이야말로, 설교를 더 감질 맛나게 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더욱이 일반적인 예화의 사용도 필요하지만, 스데반 설교와 히브리서에서 주가 되는 성경 말씀과 이야기를 활용하는 예화 또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4. 그리스도 중심적스데반은 설교의 대 주제인 구약의 율법과 성전을 예로 들면서 하나님의 약속과 임재의 상징이었던 율법과 성전 대신 이제 새로운 하나님의 임재와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다. 스데반의 설교는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이와 매우 유사하게 히브리서 역시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의 기독론적 해석과 논증이 곳곳에 소개되고 있다. 거쓰리는 히브리서의 주요 성격은 구약성경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한 점인데 이는 무한한 가치가 있으며, 이 한 가지만으로도 히브리서의 정경성에 관한 회의적 논의들을 넘어서 정경에 가입될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스데반의 설교와 히브리서는 그리스도 중심적이라는 점에서도 역시 상당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기독교를 포함하는 그 어떤 종교에도 자신을 말씀하셨다”라는 표현은 과거 하남이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고, 최종적으로 이제는 이 마지막 날에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는 것을 대조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직접화법을 통해 청중으로 하여금 더욱 더 집중하게 하고, 실제적으로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장점이 있을 수 있겠다.오늘날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 중에 많은 경우가 “누구누구가 말했습니다.” 또는 “어느 어느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설교자는 “성경이 말씀하셨습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스데반과 히브리서 기자처럼 보다 생생한 표현으로 청중들에게 호소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라는 표현으로 다가간다면 훨씬 효과적인 설교사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설교문 작성은 설교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너무나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아무리 잘 작성된 설교라도 잘 전달되지 않는다면 결국 설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잘 작성된 설교가 잘 전달되도록 해야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데반과 히브리서의 기자의 설교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Ⅵ. 메시지 전달1. 주목 끌기“청중의 주목을 끌 방법을 알지 못하면 그들의 주목을 받을 자격도 없다”고 말한 스펄전처럼 스데반의 설교에는 여러 가지 주목을 끄는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먼저 설교의 처음부터 아브라함이라는 유대 민족의 가장 중요한 조상의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중요한 인물들과 그에 따른 사건을 소개함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쉽게 집중해서 듣도록 하기 위해 이야기와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히브리서 역시 ‘우리 조상들’이라는 표현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중요한 인물들과 개념들을 활용하여 청중들로 하여금 자신의 설교에 집중하게 만들고 있다. 이 외에도 긴장을 자아내는 강한 경고구절과 마음을 녹아내리게 하는 격려의 메시지 등을 통해 청중으로 하여금 계속해있다.
    학위논문| 2013.11.09| 11페이지| 3,000원| 조회(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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