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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감상문] 삼국지를 읽고
    삼국지를 읽고....'젊어서는 삼국지를 읽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할 정도로 독자로 하여금 생각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이 책은 아쉽게도 친구의 권유로 보게 되었다. 옛 사람들의 전투에 굉장히 관심이 많던 나에겐 그 삼국지란 책은 내가 그 곳에서 직접 경험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우 실감나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삼국지, 그것은 중반부터 나뉘어 지는 유비, 조조, 손권을 가리킨다. 우선 이 책의 주인공 격인 유비, 그는 한마디로 덕으로써 사람을 다스리고 인의를 매우 중요시 여기는 인물이다. 그를 다시 말해 군자라고 할 수도 있으련만 어떤 이는 그를 정통주의자란 이름으로 깎아 내린다. 그러나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인의를 지나치게 중요시해 큰 것을 그르친 일도 적지 않았으며 따지고 보면 촉이 후에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결과를 낳은 것도 그의 정치이념 때문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지금 현대인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믿음과 덕을 매우 중요시하고 인의에 어긋나면 아무리 큰 이득이 있을지언정 마다하는 그런 정신 때문에 아니었을까? 우선 그가 삼국의 한 왕으로 자리잡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대표적으로 촉의 오호 대장, 그리고 참모로서 더욱더 큰 활약을 했던 제갈량이었다. 먼저 삼고초려로 유명했던 '제갈량', 그는 화려한 책략과 술사, 또한 전쟁기구 발명까지 정말 뛰어났던 병가이며 참모였다. 아마도 제갈량, 그가 없었다면 유비가 삼국 중 한 왕으로써 자리잡기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유비의 죽음 후에 삼국통일이란 더욱더 큰 대업을 이루려는 발판에서 하늘의 뜻이 아니었는지 '여섯 번째 기산 행'에서 병으로 죽고 만다. 난 이전에 유비와 오호 대장이 하나둘씩 죽어 갈 때 책을 몇 일씩 덮어두었다 다시 읽기 시작했던 것처럼 그의 죽음 또한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또한 제갈량의 화려한 술사, 계략 등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의심이 들만한 것들이 적진 않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더욱더 실감나고 이 이야기 전체가 신비롭고 흥미로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촉의 오호 대장이다. 그들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 은 그 시대의 '무'에 있어서는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뛰어났던 인물들이었다. 우선 관우, 장비는 유비와 '복사꽃 동산에서 맺은 의'로 의형제로 된 장수들이었다. 그들의 무예는 정말 뛰어나 유비의 양팔로써 대업에 큰 역할 했지만 아쉽게도 그들에게도 단점은 있었으니 관우의 남달리 강했던 자존심과 장비의 불같은 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이 제명을 재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고 크게는 촉의 운명을 당긴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선왕의 죽음을 가져 왔기 때문인데, 바로 그때부터 촉이란 나라의 기강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들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깝고 조운이란 장수를 보면 더욱더 그들이 안스러워 진다. 성산의 조자룡, 그는 유비와 동탁 토벌전때 한번 만난 후로 서로에게 푹 빠져 있었다. 그 후 공손찬 밑에 있다가 유비에게로 돌아오는데 그는 평생의 크고 작은 싸움에서 거의 모든 승리를 거머쥐며 촉의 오호 대장 중 한 명이 된다. 그에게 장점이 있다면 단점이 없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는 자신의 화려하고도 현란했던 '무'를 맘껏 펼치다 제 명에 죽게 된다. 그렇게 '성산의 조자룡'이란 전설적 이름을 남기고 간 장수였다. 그리고 '마초, 황충',그들도 조자룡 못지 않은 무와 용맹성을 가진 장수였다. 우선 마초는 제갈량의 꿰임에 빠져 촉으로 들어오게 되었지만 그 후론 진실로 촉에 몸과 맘을 다 바친다. 서량에서 몇 안 되는 병사를 이끌고 대군을 거느린 조조 진채에 쳐들어 가 조조의 간을 콩알만하게 만들었던 '금마초', 정말 그의 용맹성과 대담함이 그를 오호 대장으로 이끈 원동력이었을 것이다.마지막으로 노장 황충, 그는 나이가 비록 많았지만 힘과 용맹은 젊은 장수 못지 않았다.그리고 노장답게 지혜도 갖추었으니 누가 감히 그를 업신여기며 무시할 수 있으랴...... 이렇게 유비에겐 듬직한 오호 대장과 항상 의지할 수 있는 참모가 있었다. 그리하여 '촉'이란 나라를 일궈내긴 했지만 조조와 손권 땅에 비하면 영토는 매우 적은 편이었고, 그래서 병력 또한 그들에 비하면 적어 삼국통일이 어렵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삼국 중 한 군왕이 되었던 조조, 그는 혁명적, 계몽적, 개혁파로 현대인들에게 다시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와 사랑을 받고 있다.그는 가후, 순욱, 진궁, 사마의, 등 이 시대 제일의 일급 모사를 거느렸고 하후돈, 하후현, 장료, 장합, 이전, 등 손꼽히는 많은 장수들을 거느렸다. 그는 유비, 손권에 앞서 군사를 일으켜 천자를 끼고 먼저 대 평원을 평정하니 그의 영토는 삼국 중에서 가장 크고 번창했으며, 나중에 사마염이 진이란 나라로 삼국을 평정할 때에도 그 대 영토를 기반으로 정복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문원들을 싫어하여 많은 일급 귀재들을 죽이게 되나 그에겐 결단력이 있었으며 임기응변에 뛰어났고 많은 모사들의 의견에도 일일이 귀를 기울여 군왕다운 왕이 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삼국 중 가장 든든했던 나라로 발 돋음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마지막 군왕인 손권, 그는 손책, 손견등의 맹주의 후손으로 대 영토를 이어 받아 덕으로 나라를 평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유비가 '1주'의 땅만 거느렸던 것에 비해 그는 '6주' 이상의 대 영토를 차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통일이란 더 큰 대업을 이루려 힘쓰진 않고 자신의 나라만 지키려는 소극적 자세이다. 그래서 그는 많은 싸움에서도 크게 이기지도, 지지도 않게 된다. 또한 그런 자세가 그의 패망에 대한 더욱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 하여튼 이렇게 위,촉,오 세 나라가 모두 삼국통일에 각기 나름대로 신경을 썼건만 천하의 삼국통일의 영광은 사마염의 '진'이란 나라가 얻게 된다. 그래서 너무나도 뜻밖이었고 내 개인적으로 촉이 이루길 바랬지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결과에 너무 안타깝고 아쉬웠다. 하여튼 삼국지란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것 같다.작게는 친구와 친구사이의 '의', 부모와 자식간의 '정', 상 하급자간의 '존경과 배려', 크게는 나라에 대한 '충성'일 것이다. 또한 우리들에게 큰 야망을 품게 해 주는 그런 명서인 것 같다. 그래서 참 뿌듯하고 감회가 컸다.
    독후감/창작| 2003.12.27| 2페이지| 1,000원| 조회(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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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감상문]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성자가 된 청소부,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제가 지금 말씀드린 이 작품들은 우리 나라 최고의 작가로 손꼽히는 류시화 시인의 작품들입니다. 아마 여러분께서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17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제 삶에 가장 의미가 있었던 그 작품은 위에 열거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류시화 시인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작품을 제가 감히 소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나 이 책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여러분~ 하인리히 뵐의 '계산에서 빠진 여인'이란 책을 아십니까? 주인공인 남자의 직업은 다리 위를 지나다니는 사람의 숫자를 세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한 사람의 오차를 냅니다. 그 이유는 사랑하는 한 여자를 자신의 계산에서 빼기 때문입니다. 의미 없는 사람들과 함께 열거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죠.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저 역시 이 책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다른 작품들과 함께 놓아두기가 싫었습니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제가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좋아한다는 작품입니다. 많이 들어 보셨죠? 정말 이 책을 만난 건 저에게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미래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고,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제 생각의 틀을 바꿔놓았습니다. 혹시 누군가 이렇게 말 할지 모릅니다. 보잘 것 없는 책 한 권이 그렇게 대단하냐고, 변화라고 해도 별 거 아니지 않냐고....네 그렇습니다. 저도 한 권의 책이 저를 이만큼 변화시킬지 몰랐습니다. 이 책을 읽고 한 동안 나름 대로의 허무함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을 때 저 역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너무 지쳐있었습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목표가 무엇인지, 그 누구를 위한 목표인지도 알 수 없었고 오로지 지금 중요한 것은 당장 쟁취였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구속하고 있고 그것들 때문에 나 자신이 답답하고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매우 힘들고 지쳐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 힘들었던 시간에 한 권의 책을 만났습니다. 그 책을 통해 전 처음으로 인도를 알게 됐습니다. 물론 어릴 적부터 인도라는 나라는 알고 있었습니다. 힌두교, 간디가 출생했던 곳, 지저분하고 낙후된 나라... 그러나 책 속의 인도는 또 다른 인도였습니다. 그들의 말도 안되는 이론과 생활방식, 생각, 관념...그 모든 것들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것과 자신의 것을 구분하지 않는 그들, 다른 사람이 돈을 내고 끊은 기차의 자석에 앉아 이 자리가 영원히 당신의 것만은 아니라며 미안한 구석하나 보이지 않는 그들, 남의 가방을 뒤져 물건을 꺼내가면서도 이것은 당신이 잠시 맡아 둔 것 일뿐 결코 당신의 것이 아니라며 가져가 버리는 인도인들에게서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것이 그들을 자유롭게 하고 나를 이렇게 구속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그 책이 말해주었습니다. 나 자신을 구속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라고, 나만이 나를 구속할 수 있고, 나만이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전 몰랐었습니다. 제 자신이 저를 보이지 않는 밧줄로 묶고 있었던 것을,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를 찾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벗어나야 했습니다. 나 자신에게서 말입니다.욕심과 집착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이 두 가지는 언제나 사람을 부족하게 만듭니다.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밑 빠진 독처럼 말입니다. 욕심과 집착에서 허우적대던 저를 이 책이 건져주었습니다.류시화 시인이 다녀온 인도라는 나라는 풍족한 나라입니다. 겉보기엔 가난해도, 너무 헐벗고 굶주려 있어도 인도인들의 마음 하나하나는 너무나도 풍족해 보입니다. 그들의 발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해 보입니다. 욕심이 없는 그들이기 때문이기에 그렇습니다. 먹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돈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합니다. 우리네 삶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능하지 않지만 어쩌면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가 이상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독후감/창작| 2003.12.27| 2페이지| 1,000원| 조회(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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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감상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의 탄생을 위하여'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란 소설은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 이문열의 소설로 이 소설로 이문열은 1987년 이상 문학상을 받았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영화로도 제작된 적이 있었고 나에겐 삼국지로 더 알려진 이문열의 작품으로 오래 전에 읽은 작품이다. 하지만 막상 지금 읽고 독후감을 쓰니 어렸을 때 읽은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물론 영화도 보았지만 이 소설에 감추어진 진실을 볼 수 있었다. 영화의 장면과 비교해 가면서 읽는 재미도 아주 즐거웠다.소설은 서울 어느 명문 초등학교에서 시골의 작은 어느 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나(한병태)'가 겪은 일을 삼십년이 지난 후에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서울 명문 초등학교에서 전학온 '나'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학교생활에서 엄석대라는 독재자가 있는 시골 초등학교의 방식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저항한다. 하지만 이미 학교 전체에서 독재체제를 확고히 하고 있는 엄석대를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다. 엄석대라는 아이는 보통 아이들보다 나이가 두세 살 많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아이들을 조종하면서 '나'를 궁지로 몰아 넣는다. 엄석대의 독재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해 '나'는 많은 방법을 총동원하지만 담임선생님의 막대한 신임과 권력 옹호로 번번히 실패한다. 결국 '나'는 엄석대의 독재체제에 순응하고 편입된다. 그리고 엄석대의 막대한 지원과 신임으로 편안한 학교생활을 누린다. 엄석대의 완전한 독재체제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새로운 담임선생님이 배정되면서 그 진실이 밝혀진다. 정기고사에서의 엄석대의 높은 점수의 비밀(학급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엄석대의 시험지를 작성해 주는 것, 당시 엄석대는 전교 1등을 하고 있었다.)이 밝혀지면서 단 하루만에 붕괴하고 만다. 급장직 박탈은 물론 학급아이들의 맹렬한 비난으로 다시는 학교는 물론 근처 동네에서도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삼십년이 지난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엄석대의 떠올린다. 그리고 실제로 엄석대의 모습(경찰에 잡혀가는 모습)을 봄으로써 소설은 막을 내린다.이 소설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학교에서 그 사건들이 전개된다는 점과 이문열만의 독특하면서도 진솔한 인물분석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손에서 책을 떼어 놓지 못하게 했다. 엄석대의 독재체제와 '나'의 저항과 마지막의 반전 또한 우리들의 흥미를 자극하는데 충분하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평가나 감상은 일반적으로 이렇다. '민주주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이 소설에서 학교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엄석대는 독재자로서 마땅히 비판받을 인물이다.',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님은 학급아이들을 독재에서 구해준 본받을 만한 인물이다.' 등등…… 하지만 솔직히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주목한 점은 엄석대의 대응자세였다. 엄석대가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힘이 세다는 이유로 그만의 완전한 독재체제를 이룩했다고 볼 수 없다. 그는 독재체제에 아이들을 편입시키면서 빼앗기만 하기보다는 그에 따른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학급아이들이 다른 반에서 맞는 일이 없고 반이 엄석대의 지시 아래 어떻게 보면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되었다. 또 교내 단체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것도 한 예이다. 엄석대의 성적작성에서도 모두가 공평하게 돌아가면서 하게 함으로써 최소한 엄석대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의 부당한 석차바꿈은 없게 했다. '나'를 자신의 독재체제에 편입시키는 태도는 치밀함과 그만의 지혜를 볼 수 있다. 엄석대라는 아이는 '나'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직접 나서기보다는 다른 아이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압박을 해왔다. 그 뿐만 아니라 '나'가 자신의 독재체제에 순응하자 그에 따른 엄청난 보상을 해줌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보다 더 확고히 했다. 새로 전학 온 나에게 여러 가지 자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것과 '나'를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대우했다는 것에서 엿볼 수 있다. 엄석대의 그런 놀라운 능력, 즉 상대방의 마음을 훤히 꾀 뚫고 있고 사람들을 잘 리더할 수 있다는 점은 비록 그가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진 독재자라고 할지라도 본받아야할 점이 아닌가 싶다. 다음에 나오는 부분은 내가 가장 동감하는 담임선생님(엄석대를 신임한 선생님)의 말이다.「짐작은……간다. 모든 게―맘에 차지 않겠지. 서울식과는……많이 다를 거야. 특히 엄석대가 급장으로서 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못 돼먹고―거칠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게 바로……이곳의 방식이다. 자치회가 있고, 모든 게 토론과 투표에 의해 결정되고―급장은 다만 심부름꾼일 그런 학교도 있다는 건 나도 안다. 아니 서울 아이들같이 모두가 똘똘 하면……오히려 학급은 그렇게 운영되는 게 마땅하겠지. 그러나 거기서 좋았다고……그게 어디든 그대로 되는 건 아니다. 이곳은 이곳의 방식이 있고……너는 먼저 거기 적응할 필요가 있어. 서울에서의 방식이 무조건 옳고 이곳은 무조건 틀렸다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해. 굳이 그게 옳다고 고집하고 싶다면……너의 태도라도 바꿔. 네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고 반 아이들 모두와 싸우려 하거나―외토리로 빙빙 겉돌아서는 안돼. 봤지? 오늘……육십 명 중에 네 편은 단 하나도 없었어. 네가 꼭 석대를 급장 자리에서 쫓아내고……우리 반을 서울에서 네가 있던 반처럼 만들고 싶었다면……먼저 그 아이들을 네 편으로 만들었어야지. 석대가 이미 그 아이들을 휘어잡고 있어서 어찌해 볼 수가 없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그래도 너는 내게 달려오기 전에 아이들로부터 먼저 네 편으로 돌려놨어야 했어. 그게 안되니까 내게 왔다고 할지 모르지만……그리고……아이들이 어리석으니까 선생인 내가 고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틀렸어. 설령 네가 옳더라도……나는 반 아이들 모두의 지지를 받고 있는 석대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네가 반드시 믿고 있을 것처럼……아이들의 그 지지란 것이 실상은 석대의 위협이나 속임수에 넘어간 거짓된 것일지라도……마찬가지야. 나는 어쨌든……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석대의 힘을……존중하지 않을 수 없어. 지금껏 흐트러짐 없이 잘돼 나가던 우리 반을..... 막연한 기대만으로는 흩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지. 거기다가……어쨌거나 석대는 전(全) 학년에서 가장 공부 잘하고……통솔력 있는……모범적인 급장이다. 무턱대고 비뚤어진 눈으로만 보지 말고……그의 장점도―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무엇보다도 그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그들과 함께 새로……시작해 보아라. 석대와 경쟁하고 싶다면……정당하게 경쟁해라, 알겠니……」
    독후감/창작| 2003.12.27| 3페이지| 1,000원| 조회(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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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사] 중국 역사 총정리
    -역사 자료-삼국시대후 한말 황건적의 난을 계기로 각지에서 군웅이 할거하였는데 이들 할거 세력들은 동탁의 난을 계기로 그들의 세력 확장에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 가운데서 천하를 삼분하여 나라를 세운 촉한(蜀漢). 위(魏). 오(吳)를 삼국이라한다.이 삼국 가운데 중원 지역에서 기선을 제압한 것은 위의 조조였다. 조조는 당대 일류의 전락가로 전투시에는 항시 진두에 서서 장병들을 직접 지휘하였다. 그는 장안에서 도망해 온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를 맞아들여 천자의 명을 빙자하여 군웅들을 호령하였다. 당대 최고의 명문 출신 원소를 관도의 대전에서 격파함으로써 중원 통일의 기초를 구축하였다. 그 후 승상이 되어 권세를 휘둘렀고 208년 천하 통일의 대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대군을 강동으로 출동시켜 손권. 유비의 연합군과 적벽에서 일대 결전을 벌였으나 이 전투에서 대패함으로써 조조의 천하 통일의 꿈은 깨어지고 대신 삼국이 정립되는 형세로 바뀌었다.촉한의 유비는 제갈공명을 삼고의 예로써 맞아들이고 오나라 손권과 연합하여 적벽에서 조조의 80만 대군을 격파함으로써 서서히 기반을 구축해 간다.유비가 죽은 후 제갈공명은 후주 유선을 도와 중원회복을 목표로 전후 두 차례에 걸쳐 애국 충정이 넘치는 출사표를 올리고 6차에 걸쳐 조조의 뒤를 이은 조비의 위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오장원의 진중에서 일생을 마쳤다.또한 오나라의 손권은 그의 형 손책이 죽은 후 가업을 이어 강동에서 오나라를 세워 산월족을 귀순시키고 강동의 미개발 지역을 개발하여 그의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형주의 영유권 문제로 형주를 지키던 관운장을 맥성에서 생포하여 죽임으로써 유비와 일전을 벌이게 된다. 결국 유비는 이 싸움에서 패하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병이 들어 일생을 마치게 된다.이들 삼국은 반세기 동안 역사에 가가 그들의 발자취를 남겼고 마침내는 오장원에서 제갈공명과 오랫동안 대치했던 위나라 대장군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세운 서진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다.제국 분열기1) 삼국시대:(220-80) 패하여(???)인물추천과 선발은 호족에 의해 좌우 -귀족적 관료제도의 근간이 됨@ 황제권의 강화: 황제권이 귀족사회의 우위에 있었음.7) 남조의 문벌귀족사회@ 사회구성: 士族, 평민, 부곡(호족에 예속된 전호), 노예의 4계층@ 북방귀족층(僑姓)과 토착의 강남귀족(吳姓)과의 대립: 전자는 이민집단을 기반으로 강력한 무력소유하며 관직독점, 유민을 전화, 노비, 식객으로 수용하여 황무지를 개척하고 농경에 종사 : 토착귀족은 삼국시대 오정권과 결탁이래 대토지소유자로 귀족지위를 지킴@ 귀족계급은 世族과 寒門 피라미드적인 상하구조: 문벌의 고정화, 즉 구품중정제에 의해 강화.@ 귀족사회: 남조의 경우, 왕조의 흥망과 관계없이 지배귀족으로 존속: 名族의 예로, 랑시에 (琅邪)의 왕王씨, 양샤(陽夏)의 시에(謝)씨 등@ 배타성: 같은 계층이 아니면 '같이 앉거나'(同坐)나 '서로 아는체'(相知)하지 않음 - 같은 신분간에 만 결혼하여 혼교에 의한 자기붕괴 방지와 내부 유대강화하는 신분적 內婚制( 梁武帝 때의 는 귀족간의 혼인시 열람하는 지침서)@ 관직에서 소외되는 한 귀족일 수 없는 한계, 즉 황제권 밑의 귀족제라는 특수성이 있음, 비록 위의 몇몇 가문의 예가 있지만 황제가 점차 한문 또는 寒人을 등용하여 견제@ 대토지소유: 강남( 티베트 고원 동부에서 시작된 5,500km의 양쯔강(揚子江 또는 長江)의 개발이 후한말이후 화북의 대규모 이민에 의해 시작, 그러나 본격화는 동진성립이후 - 관개사업과 수도작의 성행 - 특히 북방이주 호족집단에 의해 이루어짐: 화북의 선진농업기술이 도입@ 六朝문화: 오와 동진, 남조의 4왕조를 합쳐 부르는 시대로, 강남의 6왕조하에서 이루어진 문화: 귀족문화와 강남의 온화한 기후와 풍토: 서예의 王羲之(321-79)시의 陶淵明(376-427) 등: 강남개발을 위해 지리학의 발달 (: 비약적 농업을 보여주는 @장원경제의 발달(종족단위로 남방으로 이주하여 경제적, 군사적 개별 단위로 성장)과 상업경제의 위축서진시대호족 출신 사마의는 조조 이래 위나백리였으나 현재는 3만리)5) 토지사유제의 확장내지 공인: "使黔首實田以定賦"(216)6) 도로등 건설7) 동전과 도량형 통일8) 문자통일: 小篆(서주시대에 사용하던 대전을 간소화한 것)으로 통일하고 나중에는 더욱 간소화하여 隸書로 문자와 자체가 통일9) 사상통일: '焚書坑儒'(기원전 213) - 국가에 의한 사상통제의 선례가 됨으로써, 동양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의 상실분서: 리스의 건의에 의해, 史官에 소장된 책 중 秦紀외에는 모두 소각. 그 외에도 점복, 의약 및 농업에 관한 책외는 모두 소각; 예것을 기준으로 현세를 비난하는 자는 일족을 주살하고, 관리가 알고도 고발하지 않으면 같은 죄로 처벌.(5) 진의 붕괴(진 Ch'in- China)1) 진시황제의 죽음(210)로 왕권쟁탈의 심화2) 六國의 지배층이었던 1만호를 수도 한양(咸陽)으로 강제이주 시키는 등 봉건제 잔재의 부상을 막으려 노력했으나, 결국 봉건제의 잔재인 지방유력자(豪族)과 새로운 신흥 중간지주층의 중앙집권에 대한 반발.3) 대규모 토목사업: 阿房宮(690m x 114m)의 완성(212)을 위해 70여만 명 동원; 진시황묘의 조성( 높이 20장, 동서 1,600척, 남북 700척); 만리장성 수축; 운하축조; 도로건설4) 사상통제: 유학을 신봉하는 신흥지주세력의 반발자극- 분서갱유.5) 농민반란(209-206):주동자 천청(陳勝: 用耕)과 우 꾸앙(吳廣: 빈농)출신6) 漢楚항쟁시앙 위(項羽: 232-202) 초국 귀족 후예로 지앙쑤에서 숙부와 함께 기병초기연합과 분열: 진왕은 리우에게 항복 - 시앙 위가 수도 한양은 접수- 당시 리우는 10만군, 시앙은 40만군; 전후 분봉을 둘러 싸고 불만고조- 202년 리우가 시앙을 격파하여 한양과 가까운 창안(長安)에 도읍하여 한(漢水: 양쯔강 지류)을 건국.*전한(기원전 206년 기원후 8)(1) 한의 의미는 진의 통일과 중앙집권화 작업을 완성: 보다 완화된, 타협적 방법을 통해.1) 리우 팡(漢高祖)는 군국제도 점차적 실시개국공신이나 친족에게는 각가 문제점 → 중요한 수공업은 대부분 정부에서 경영 ⇒ 관노비, 죄수, 징발된 공호 중심으로발달·결과 : 상업발달, 도시번영, 무역활발(발달)·의의 : 화북 중심이었던 경제활동을 남북으로 분산, 남북간 생산력의 차이 근접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남북조 시기는 북방 이민족들이 중국 내부의 혼란을 틈타 밀고 내려와 북조(北朝)를 구성함으로써 단명(短命) 왕조간의 이합집산이 극히 복잡하던 시기였다. 북방 이민족의 침입이 중국에게는 물론 불행이었겠지만 그러나 중국의 통일을 더욱 앞당기는 역할도 하게 되었고, 이 시기에 전래된 불교(佛敎)는 중국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아 중국 지식인들에게 폭넓은 사유세계를 제공했으며, 민중들에게는 현실에서의 고통을 이겨나가게 할 수 있는 소박한 내세관(來世觀)을 제시해주었다.그러나 이 시기를 무조건 암흑시기로 부른다면 그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왜 그럴까? 비록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기에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러나 대규모 정벌이나 국면을 뒤흔들만한 대규모 정벌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를 제2의 전국시대(戰國時代)로 말하긴 했지만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의 전국시대와는 성격상 다르다.위진남북조 바로 이전 왕조는 진한(秦漢)이다. 진나라와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여 450여년을 통치했기 때문에 중국은 이미 정치 체질이 그 이전의 전국시대와는 판이하게 변해 있었다. 전국시대(戰國時代)는 주(周)왕조를 모태로 탄생한 경쟁적인 제후국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진한(秦漢)는 전형적인 중앙집권 왕조였다. 중앙집권이 약화되면서 지방 호족(豪族)들의 영향력이 거세지며 한(漢)왕조는 붕괴되어 위진남북조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제후국들의 투쟁으로 성립된 전국시대와는 성격상 당연히 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중앙집권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대규모 동원도 사실상 힘들 수 밖에 없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위진남북조 분열 시기의 군대병력은 강제 동원이 아니라 모병제로 조직되었다.이처럼 중앙정부의 약화와 지방 호족의 등장 황제의 자리를 선양하도록 협박했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나라가 진(晉)나라다. 우리가 보통 진한(秦漢)에 이어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라 하는데 진(晉)이 바로 이 나라다.그러나 촉(蜀)과 오(吳)를 정복한지 불과 10년, 진(晉)나라는 왕조의 내분으로 다시 분열되기 시작했다. 사마씨 황실 내부에서 일어난 세력 싸움은 그 여파가 여러 지역으로 번져갔으며 중앙권력이 약해지며 일부 소수민족들도 독자적인 정권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진(晉)나라는 북방을 포기하고 남방으로 쫓겨나게 되었는데 역사적으로는 동진(東晋)이라 칭하게 된다. 남쪽으로 이동했는데 왜 동진(東晋)일까? 대내적으로는 왕자들 사이에 권력 다툼이 일어 정국이 혼란했고, 대외적으로는 흉노족 선비족 등 변방의 다섯 이민족 국가들이 진(晉)왕조가 혼란한 틈을 타서 중원(中原)으로 몰려와 약탈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는 여덟 명의 왕자들이 난리를 일으켰다고 해서 팔왕지란(八王之亂)이라 하고, 변방 이민족의 침입을 오호지란(五胡之亂)이라 부른다. 이에 진(晉)나라는 지금의 남경(南京) 쪽으로 피난을 가서 겨우 왕실을 유지하게 된다. 남경은 중원 땅으로부터 보자면 동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동진(東晋)이라 불렀던 것이다. 동진(東晋)에 이어 건립된 송/제/양/진(宋/齊/梁/陳)왕조들도 한결같이 단명으로 끝났다. 결국 그 다음 통일 왕조 수(隋)나라가 건립되기까지 중국은 극심한 단명 왕조의 교체기를 겪어야만 했다. 역사상의 용어로는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이란 말로 이 시기를 개괄하는데, 그만큼 짧은 기간에 수많은 국가들이 난립하였다는 뜻이다. 이렇게 단명 왕조들이 난립했기 때문에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못난(?) 황제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들의 행태를 보면 황제라기 보다도 오히려 예술가에 가까울 지경이다.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를 일컬어 낭만주의(浪漫主義) 시대라 일컫는 이유도 사실상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나관중 《삼국지연의》의 낭만적 세례를 받아 드라마틱하게 엮어진 위촉오 삼국시대의있다.
    인문/어학| 2003.05.08| 18페이지| 1,000원| 조회(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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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으로 본 중국사상 요약 평가D별로예요
    몸으로 본 중국 사상 요약(가노우 요시미츠 지음,소나무)제1장 양왕(藥王)- 치유신(治癒神)의 탄생 -1. 실크 로드의 의사와 환인(幻人)고대 도시 중에 타키시라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이 도시는 기원전 5세기부터 천년 동안문화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번성하였다.이 도시는 인도 지방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실크 로드의 요충지였다.타키시라에는 대학가 의학 학교가 많았다.이때타키시라에 지바카라는 소년이 건너왔다.그는 의사가 되어 편력의로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것처럼 보인다.자바카의 치료술은 거의가 외과 수술이었다.이러한 외과적 치유는 신앙을 모으는 방편이기도 했다.지바카는 석가와 관계가 깊다.석가에게서 받은 치유권을 이용하여 민중의 고뇌를 구제했을 것이라는 추정된 점을 미루어 보면 그렇다.그의 치료법은경험과 합리적인 의술에 의해서 뒷받침 됐다고 할 수 있다.고대 인도가 외과학에서 거둔성과인 것이다.외과의 기초는 수술용 기구와 해부학이다.기구들은 주로 절개용이었으며 여기서 말하는 해부학은 서양의 의학적인 의미에서의 해부학이 아니라 국부해부학을 말한다.여기서 인도 의학이 중국 의학에 미쳤던 영향에 대해서 살펴 볼 필요성이 있다.인도 중국연결 통로인 도로 개통이 전제 조건이다.여기서 실크 로드가 나온다.실크 로드의 개념은서 아시아,시리아,로마까지를 포함한다.실크 로드는 인도와 중국간에 교통이 있었음을 보여준다.이 교통로를 자세히 보면 서남,남해 오아시스 루트가 있다.의학의 전파에서는 오아스루트가 주요한 위치를 차지했다.오아시스 루트의 종점에 진이 위치하는데 인도 상인이 여기서 중국과 접촉했다는 가설에 부딪치게 된다.설득력 있는 근거로 진 나라의 의사 그리고기상천외한 수술을 행한 유부를 들 수 있다.확실하지는 않지만 자료의 문맥을 보아 외과수술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중국의 치료법은 중극의 전통에서 벗어나 있다는 느낌을받는다.진 나라 양의의 명성은 외과 치료법에 의한 것이었다.결론 지어 중국의 의학은 인도 외과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 치료로 들어간다.편작은 예리하게 간 침을 태자에게 찔러 그를 소생시킨다.여기서 중국 의학사상 최초로 침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아주 새로운 요법으로는 볼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당시의 요법을 앞 시대에 끼워 넣은 것은 분명히 아니였을것이다.이러한 이유에서 편작은 새로운 병리사상과 치료 요법을 내걸고 등장한 사람으로등극했으며 약간은 과장된 기적 치료 일화를 남기고 간 사람으로 기억된다.편작은 깊히 알고 보면 전체적인 요법을 목표로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침술 뿐이 아닌 자연 치유력과물리 요법,약물 요법에도 주력했던 것이다.편작에 관한 의료 일화가 세 가지 있었는데 앞에서 잠시 언급한 기사회생이 그 중 하나였고 첫번째 일화는 예언 설화이다.옛날에는 병이무엇이며 어떻게 변하는 가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러면서 점이 끼여들기 시작했다.고대에는 병의 예언이 샤먼의 관할이었던 셈이다.병을 얻으면 제일 먼저 의사가 아닌 샤먼을 찾아가 점을 쳤던 것이다.그러다가 샤먼이 처형되었다.편작의 예언의 중심 모티브는 병명을맞힌다든다 병의 경과를 예측한다는 점이다.예후의 문제였다.예후란 정확히 말하자면 “환자,즉 질병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즉 의학에 속하는 것"을 뜻한다.앞으로 일어날 일의 추측이며 이말은 예후복점에서 유래된 말이다.그만큼 점의 요소가 필연적으로 작용했던것이다.편작과 관련된 의학 설화의 마지막은 망진 설화이다.편작의 예견술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병증의 역사에 대한 지식과 진단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편작이 가장 자랑하던 진단법이 바로 망진이었다.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인식이 없을때 편작은 질병이 주리에서 혈맥 그 다음은 장과 위 그리고 최종적으로 골수로 이동한다고 투시하고 있다.마지막설화의 테마가 투신술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질병의 전망이나 과정을 미세한 징후부터내세워 끝내 죽음에 이르는 길로써 보여준다.질병의 전귀를 예언했다고 할 수 있다.질병을장소와도 연관이 있겠지만 시간과 함께 움직인다는 생각을 개입하면서 질병의 치료에도시간과 공간이 계통에 작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용어면에서 보면 석과공의 예를 들수 있다.뭐니뭐니 해도 의학과 의술이 테크놀로지에 의해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은 의료 기계영역일 것이다.앞에서 말한 침의 발명이 금침이나 은침이 대표적인 예이다. 편작은환공의 시기 때 테크노폴리스인 제 나라에 머물었었던 기록이 있다.환공은 학관을 세웠는데 편작은 여기서 의술뿐만이 아니라 철학이나 사상 방면에서도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편작은 여기서 도망을 친다.그 이유는 치료 실패였다.환후를 투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편작은 의사의 도리를 완수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러면서 의학계에서 계급 의식이싹트기 시작했다.『사기』에 서술된 여섯 가지 불치들을 보고 알 수 있듯이 계급 의식은내경 의학에도 이어지게 된다.편작이 편력으로 나선 이유 중 하나가 계급의식하의 의사라는강자의 입장에 서지 않고 약자의 입장에 섰기 때문이다.편력으로 나선 두번째 이유는 테크놀로지면에서 찾을 수 있다.새롭게 개발된 의료기구들을 사용하면서 민중들 사이에 발전된 의료 기술들을 보급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편작은 그 시대의 풍조를 받아 제자집단을 거느리면서 편력했다.그의 의료집단에서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으며 테크놀로지를 주무기로 사용하였다.이런 점을 미루어 보아 편작 일행은 기술자 집단과 일맥 상통했다.두 집단 모두 계급적 자각에 이른 전제 군주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통한다.우리는편작의 의술을 하나의 테크놀로지로 보는 사상을 갖고 계급의 하층인 약자의 입장을 선택했다는 것을 보고 기술집단 , 여기서는 묵자가 이끄는 집단의 사상과 어느 정도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편작을 받드는 의료 집단은 황하 유역 서쪽 방면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곳곳마다 기적적인 치료를 행하면서 진의 왕의 시의와 대결하게 됐다.편작은 그 대결에서 패하며 끝내 암살 당한다.이와 같이 하여 치유신으로서의 편작 전설은 시작되는 것이다. 편작은 여기저기서 편력 활동을 하면서부터 치유신으로서의 숭배를 받던 것이다.제2장 신의(神醫)- 정통 의술을 사용하여 민중 사이에서 포교 활동을 행했다.하지만 역병이 유행하면서 불안이 많아지고 결국 도교의 발흥이 일어났다.불교의 신도가 늘어나면서 장각의 치료법이 널리 퍼졌다.그 특정한 치료법에는 지팡이가 빠지면 안됐다.지팡이는 의료의 상징이었다.거기서 멈추지 않고 토착신의 의미까지 가졌었다.지팡이는 재앙을 떨쳐버리는 의미도 있었겠지만 병을 거기에 전이시키기위한 주문 도구였을 암시도 하고 있다.장각의 이러한 치료법에는 특이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죄의 고백이 있다는 것이다.병을 개인의 책임으로 봤으며 그 치유는 그 환자의 선악에의존한다고 생각했다.이런 사고는 천벌설이라는 원시적 신앙을 근원지로 두고 있다.어떤금기 사항을 침범함으로써 신이 내린 벌이 있는데 그 벌이 바로 질병으로 나타난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이런 주장은 묵자가 가장 먼저 내세웠다.치료법에는 제사,기도 그리고 고해 형식이 있다.2. 화타의 의술전염병이 유행하던 이 시기에 앞의 주술적,종교적 의술이 행해졌다.이때 화타의 의술또한 등장했다.신의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어지며 병든 사람 모두의 마음 속 병을 고쳐 주는신으로 기억된다.신의의 뜻은 인간의 기술을 뛰어넘는 의사라는 것이다.『열자』에 나오는세 의사들의 진단과 계량 의시들에 대한 평이 있는데,첫째 의사는 현재의 신체적 수준을 고려하여 병인을 찾고자하는 보통의사라는 평을 받았고 두번째 의사는 병의 원인을 선천적인 데서 구하고자 하여 양의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세 번째 의사는 신체와 인간을 완전히 부정하고 하늘이 정한 것은 인간의 지혜가 미칠 수 없다고 하여 치료를 아예 문제 삼지 않았다.계량은 그를 신의라고 평가했다.언뜻보기에는 의사가 환자에 무신경해 보이지만그 와중에 환자와 의사가 주고받으면서 정신적 통찰로 연결되면서 그 병을 낫게 하는 힘이 솟아난다고 생각한 것이다.신의란 정신 요법은 기술과 외과 수술을 모두 할 수 있는 의사인 것이다.이 당시 행해졌다고 하는 뛰어난 치료에는 경이적인 기술이 많았다.기괴라기까지 한 의술이었다.화타의 의술은 신기을 받은 뒤 사라졌다.곧,여기에 사상면에서의 커다란 전환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화타의 치료법에서는 병이 있는 장소와몸을 열려고 생각하는 방식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중요시 된다.여기에 관련지어 의문이 제기된다.화타의 사상에 걸맞게 왜 해부학이 중국에서 발달하지 않았냐 하는 것이다.이는 의학을 새롭게 하려 시도했다 해도 중국의 의학은 변함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액체 병리설을 받아들이는 한 본래 해부학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에서화타가 갑자기 등장하여 의학의 기원을 중국 전통에서 찾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화타의‘여는’의학은 신비주의 가려져 서서히 발자취를 감췄다.제3장 기(氣)- 중국 의학의 수맥 -1. 풍(風)과 수(水) -기의학(氣醫學)의 생성‘의’라는 글자는 병을 다스리는 기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어원은 샤먼에서 구하고 있다.당시의 신비주의 사조가 반영되고 있다,유희는 ‘기’의 개념을 도입했다.의학적인용어를 원용해서 구별하였다.의학 이론의 병인론이 도입된 것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의학 이론은 선진 시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은 나라 사람들은 바람을 관리하는 조신의 신앙이 있었던 것 같다.그들의 문화에 풍신이 존재했을 것이다.그들은 만물의 등질적 근본성인을 생각하여 ‘기’의 개념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에는 병인론의 역할이크다.병의 원인을 악령이나 귀신에 귀결시키는 존재론적 질병관에 입각한 사고이다.여기서말하는 바람도 일종의 신비한 힘을 가리킨다.경험론적 병인론의 대표적인 것으로 육기설을들 수 있다.육기설은 기상 조건과 병의 관계를 파악한 뒤 내세운 학설이다.풍이 ‘기’로대체되는 과정 속에서도 바람은 주요한 병인으로 인식되었다.편작은 자신이 제시한 육불치론을 통해서 경험의학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죽음을 예언한 이야기도 했으며 질병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동하며 그에 따른 각각의 치료법이 대응한다고 했다.여기서 알 수 있는바와 같이 진단과 치료는 모두 경험적인 경향을 띠고 있으며 병리를 기술할 때에도 음 위해
    인문/어학| 2003.05.08| 14페이지| 1,000원| 조회(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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