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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신 경제학의 이해
    “신 경제 사회학의 이해”공유식,김혁재,박길성,유홍준 지음경제사회학에 대한 소개경제사회학의 태동 및 경제학과의 관계에 대해서 사회학 형성 초기의 경제학과의 마찰로 볼때 19세기 후반에 사회학이 독립된 학문 영역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기존 사회과학 분야와 긴장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특히 경제학과는 여러 측면에서 충돌을 빚게 된다.그중 하나로 방법론을 들수 있는데 꽁트가 정치경제학을 형이상학적 비생산적이라서 과학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 것에서 비롯된다.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되어 영국,프랑스 및 미국으로 확대된 방법론 대논쟁을 거치면서 꽁트가 경제학을 추상적.연역적이라고 비판한 반면 정치경제학자들은 꽁트의 주장을 공허한 경험주의라고 평가하면서 사회학이 경제학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나갔다.이후 19세기 후반에 한계효용학파가 등장하면서 경제학은 엄격히 경제적인 문제에만 분석을 국한시켜 사회과학 분야에서 최고의 과학성을 확보하고자 시도하고 사회학에 잔여범주를 넘기게 되었다신고전경제학의 문제로 인간은 경제행위를 분석할 때 개인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추구하는 자율적이고 원자화된 합리적 경제인으로 가정된다 이런 경제 현상은 경제인들이 집합적으로 행한 행동결과인 셈이다.신고전경제학자들도 인간행위에 비합리성이 개입되고 효용극대화와는 다른 의도가 추구될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지만,이런 측면을 분석에서 배제함으로써 절제된 모델구성을 하고 예측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시도한다.이러한 분석 목적에 따라 궁극적으로 개인이 분석단위가 되고,연역을 통한 이론모델을 구성함으로써 도구주의적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학의 시도가 나름대로 유용성을 갖는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지나치게 단순화된 가정과 이에 기반한 추상적 모델형성 때문에 실제로 발생하는 경제행위와 그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인간이 행하는 일상의 경제활동은 경제적.합리적 동기와 비경제적.비합리적 제사회학자들은 경제이론이 설명해내지 못하는 경제현상이 많다는 점을 주목하여 사회학이 경제현상의 핵심문제에 관심을 두어야 하며 실제 이렇게 함으로써 경제생활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제도로서의 경제통합된 단일 조직이론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 통합을 이루지 못한 단계이다.비록 포괄적이고 통합된 이론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복잡한 조직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정립된 이론적 관점들에서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특히 주요한 이론적 관점들 각각의 장점과 한계를 나타내고 이들간의 차이점과 상호보완점을 규명하는 것은 조직연구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경제학과 사회학은 몇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중 합리성 개념을 보면 풀 샤뮤엘슨은 많은 경제학자들이 합리적 행동과 비합리적 행동을 기준으로 경제학과 사회학을 구분해왔다고 지적하였다. 즉 합리성은 경제학의 영역이고 비합리성은 사회학의 영영이며,두 영역은 상호 침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경제학과 사회학이 구분되어왔다이러한 구분은 사회학에 불리한 타협이었다고 할 수 있다.조지 호만스가 관찰했듯이 사회행위에 대한 수많은 접근들 중에서 이를 경제화로 보는 접근이 가장 무시되어왔다.그러나 경제화는 삶의 매순간 적용되는 행동원리인 것이다. 단 사회학을 할 때만 제외하고 사회행위에 대하 설명원리로서의 합리성을 포기하는 것은 사회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다.거래비용경제학의 기본원리를 바탕으로 인간은 주어진 한계 내에서 경제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며 조직을 효율적으로 만들고자 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강조할 가치가 있다.거래비용경제학에 대한 최근의 비판으로 1930년대부터 거래비용경제학의 기원을 찾을 수 있지만,이 접근을 조직화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한 것은 지난 15년에 불과하다. 거래비용경제학에 대한 초기의 비판은 동의어반복성에 집중되어 있다.비록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비판은 각 거래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각 지배구조에 결합된다는 전략에 의해 완화되었으며,게다어지고 있다.서로 경쟁적인 가설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면,논증 가능한 함의를 제시해야할것이다.기능주의자들의 설명은 네 가지로 구분되는데 매우 안이한 입장은 팽글로시안적 설명방식이다.또 다른 한편에 있는 것은 완전한 기능주의인데,이것은 엘스터와 연결된다.이 둘 사이에 위치한 것이 말리노프스키와 머튼의 기능주의적 설명이다.팽글로시안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가능한 세계 최선의 것들 중에서도 가장 최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라노베터가 주장하는 소수의 경제학자들만이 팽글로시안에 가까이인 자본주의의 경제제도를 팽글로시안의 잔재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거의 어떤사람도 이러한 시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경제학자와 사회학자들이 합리성.비합리성이라는 축을 따라 자신의 영역을 구분해왔다는 것은 여전히 논란의 여자가 남아 있다.그넘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경제학자와 사회학자 각각에 의해 채택된 경제조직에 대한 접근들은 이런 일반적인 지향과 일치한다.따라서 초합리성은 경제학적 접근 속에서 특징지어진 것으로서,거기에서 기업은 이윤극대화의 목적이 부여되는 생산기능으로 표현된다.여기서 적절한 기준이 되는 자료는 가격과 산출물이다.반면에 사회학자들은 기업을 대립적인 이해관계들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지는 관료제로 보았다.문화로서의 경제문화란 무엇인가 파슨즈는 문화와 사회구조를 분석적으로 구분했다.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다분히 인위적인 것이다.실제로 사회관계의 유형,즉 사회구조는 문화를 습득하고 표현하는 창구가 되며,인지의 유형,즉 문화는 사회구조를 구성하는 데 깊이 연관되어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따로 떼어내어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은 자칫 간과할 수도 있는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여기에서 문화란 사회적 인지를 말하며,사회적 인지란 의식적 사고 및 당연시하는 것들의 내용과 그 범주이다.문화란 공유된 인지이며,그것은 이론적으로 관련있는 집단 내에서 다양한 형태를 띤다.따라서 문화를 이해하려면 문화의 영역과 특정집단 내어 문화적 이해가 얼마나 퍼져 있는가에 대.따라서 규범적인것과 근본적인것 법론자들이 말하는 행위의 당연시된 각본을 구분하지 않는다.경제분석에서의 문화적 쟁점으로 문화와 경제가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가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사람들로 하여금 의도된 경제적 합리성에 따라 행동하게 만드는 분류체계에 관한 것이다.그리고 그러한 행동이 적절한 것인가,또는 누구와 교환할 것인가 하는 상황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적절성의 원칙에 관한 것이다.물론 그런 변화가 문화적으로 유형화된 것은 아니며 다만 개인적인 특징이나 성격적인 특질에 달린 것이고 사회와는 무관한 것임이 증명될 수도 있다.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경험적으로 증명해볼 가치가 있다.다음 쟁점으로 경제제도의 이른바 각본화 및 기업이나 사장같은 상징들의 원래 기능과 의도된 합리적 경제행위에 따라 일어난 실제 결과와의 차이에 관한 것이다.이 글의 목표는 문화와 경제의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몇 가지 흥미로운 문제들과 그 해결에 영향을 미치게 될 몇 가지 생각들을 설명하는 것이다.구조로서의 경제사회학과 경제학에 보이는 인간행위에 대한 과잉사회화된 개념과 과소사회화된 개념에서 완전경쟁시장이라는 이상적인 시장은 학문적인 공격을 잘 이겨왔는데,부분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규제적 경제구조라는 생각을 정치적으로 매력적인 것이라고 인정해왔기 때문이다.공격을 견딜 수 있었던 다른 이유는,분명하게 이해되지는 않지만,경제분석에서 사회관계를 제거함으로써 최소한 경제 영역에서는 질서의 문제에 대한 지적 부담을 덜어주었기 때문이다.홈스의 주장에 의하면,무질서는 사회적.경제적 거래가 신뢰,그리고 부정의 부재에 기반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그러나 개개인들이 자연상태에서처럼 아무런 사회관계나 제도적 맥락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이런 거래들은 이루어지지않을 것이다.경제 생활에서의 배태,신뢰,부정에서 1970년경부터 경제학자들은 이전에는 무시했던 신뢰와 부정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윌리엄슨은 현실적인 경제적 행위자는 자기 이익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기회주의 에도 관심을 가진다고 주목하였다에도 이미 듀로처가 이런 명제를 제시하였음을 주목할 것이다.이는 현대 경제학 이론의 가정,즉 경제적 이익은 비교적 점잖은 수단을 통해서만 추구된다는 특이한 가정을 지적한 것이다.홉스적인 문제는 이런 개념화로 교묘하게 처리된다.그너라 홉스가 분명하게 인식하였듯이 자기 이익 이라는 의미는 원래 폭력이나 협잡을 배제하지 않는다.시장과 위계구조의 문제에서 경제생활에 대한 배태 접근을 구체적으로 적용한 예로서 필자는 윌리엄슨이 시장과 위계 및 이후의 논문들에서 제시한 영향력있는 주장을 비판하고자 한다.윌리엄슨은 경제생활이 어떤 조건하에서 위계적 기업의 영역 안에서는 수행되고 이 영역을 넘는 시장과정에 의해서는 수행되지 않는가를 물었다.그의 대답은 신제도경제학파가 일반적으로 강조하는 내용과 일관되게,어떤 상황에서 발견되는 조직형태는 경제적 거래비용을 가장 효율적으로 다루는 형태라는 것이었다.결과가 불확실하고 자주 반복되며 상당한 정도의 거래특정적 투자 예컨대 각가 다른 일들에 대해 매번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 쉽게 대체될 수 없는 돈과 시간, 에너지 등이 필요한 거래들은 위계적으로 조직된 기업 내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확실하고 반복적이지 않으며 거래특정적인 투자가 필요하지 않은 거래들은 기업간에 즉 시장 영역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이 논문에서 필자는 대부분의 행동이 상호간의 관계의 연결망에 긴밀하게 배태되어 있다고 주장하였고 그러한 논지는 인간 행동에 대한 과소사회화된 견해와 과잉사회화된 견해라는 양극단을 피하는 것임을 주장하였다.필자는 이러한 주장이 모든 행동에 적용된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서는 두 가지 이유에서 경제적 행위에 초점을 맞추었다 첫째로 경제행위는 그것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원자화된 행위이론을 강하게 신봉하고 있기 때문에 부적절하게 해석된 전형적인 행동사례이고 두번째로 사회학자들은 신고전경제학이 자신의 연구영역이라고 주장한 주제에 대해서는 진지한 연구를 삼가해왔다.그들은 경제학자들의 가정,즉 현대사회에서 사회관계는 중심.
    경영/경제| 2005.03.30| 7페이지| 2,000원| 조회(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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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물학]이기적 유전자 비평 평가A좋아요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저자:리처드 도킨스과목: 과학사의 이해학과: 기계공학부학번: 60002728학년: 2학년 성명: 반상수Ⅰ. 서론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특별할게 없다. 단지 레포트 제출을 위한 나열된 책 중 손에 잡힌 것이 이 ‘이기적 유전자’ 라는 책이었다. 이 책의 출간의 뿌리를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이기주의의 번성은 1960년대와 70년대 제기된 생물학의 자연선택 이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1960년대 죠지 월리암즈는 ‘적응과 자연 선택’ 에서 자연 선택의 근본적인 단위를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라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선택이란 생존 경쟁에서 살아 남는다는 의미이다. 어떤 것이 선택의 단위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정확하게 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성질을 갖는 것은 유전자와 무성생식으로 번식하는 개체뿐이다. 유성생식을 하는 개체와 집단은 이런 성질을 갖지 못한다. 이 때문에 유전자는 개체보다도 더 근본적인 선택의 단위가 된다.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세포핵의 염색체 속에 있는 10만개 내외의 유전자 때문이다. 유전자는 다음 세대의 몸의 설계도에 관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몸의 특질뿐만 아니라 행위의 특성까지도 결정한다. 유전자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속해서 자신을 복제해서 자신의 영속을 도모한다. 70년대 리처드 도킨스는 이 개념을 더욱 확장해서 내놓은 것이 ‘이기적 유전자’인 것이다.서문의 내용과는 다르게 본문 중간 중간 아무런 생물학적 지식이 없는 내가 읽기에는 좀 알아듣기 힘든 말들도 있었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깜짝 놀랄만한 이 책의 핵심 주제를 곧 접할 수가 있었다.바로 만물의 영장이라는, 진화의 가장 이상향이라는 인간이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유전자’ , 그전까지는 그들 존재의 유무를 오감으로는 느낄수 조차 없던 그런 몸 속의 작은개체의 유지를 위한 생존기계라는 말이다. 충격적이었다. 믿기 힘들고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치부 시켜 버리기에는 그가 써놓은 내용들은 반신반의 하는그 주제는 바로 인간의 존재 이유라 주장하는 ‘이기적 유전자’이다.?사람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도킨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기타 모든 동물들이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 유전자의 성향은 극히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이기성을 이해하는데에 그 정의가 주관적인 것이 아닌 행동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보는 시선에 의해 이타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무의식적인 이기적 동기에 따라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 안하는지에 대해 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과 악에 의한 이기적인 행위와 이타적인 행위의 구분이 아닌 행위의 결과가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낮추고 그 행동의 대상자의 생존가능성을 높인다면 그 행위가 이타적인 행위라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이타적행위자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면 (지상에 집을 짓는 많은 새는 여우와 같은 포식자가 접근할 때 다친척하여 포식자를 유인함으로써 자기 새끼의 생명을 구한다. 또 일벌은 집단의 생존에 필요한 먹이의 저장을 수호하기위해 생명유지에 필요한 내장과 연결되있는 침을 사용한다.) 결국은 이기적행위인 것을 볼 경우가 많다. 여기서 이기적이란 말은 자신의 유전자 보존을 위한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인 것이다.이런 이기적이라 볼수 있는 자신의 유전자보존행위를 위해 선택한 길이 생존기계이다. 오늘날 자기 복제자들은 외부로부터 차단된 로봇속에 안전하게 그리고 거대한 집단으로 떼지어 살면서, 복잡한 간접 경로(인간의 경우 눈, 입, 귀 등)를 통하여 외계와 연락하고 원격 조정기로 외계를 조작하고 있다. 그것들은 도킨스 자신속에도 그리고 주변 모든 생명체에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고 그것들의 유지야 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고 말한다.그렇지만 인간의 행동을 살펴 보면 이런 도킨스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만은 볼 수 없다.예를 들어 일본에서의 유학생이 일본 시민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일이 있었다. 이외에도 도 이외의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그 상황이 그들의 목숨을 요구 하기도 한다. 이미 유전자의 생존만이 전부가 아닌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킨스가 말하는 이타와는 다른 이타가 실현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2. 인간의 본성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본성에 관해 논했던 철학자들은 수도 없이 많다. 동양에는 공자, 맹자, 순자 등이 서양에는 루소, 루크, 프로이트, 마르크스등 정말 많은 학자들이 본성에 관해 한마디씩 던졌다. 하지만 그들의 말처럼 인간의 본성이 쉽게 정의 내려지는 것일까?단순히 성악설, 성선설, 성무선악설등과 같이 몇마디로 정의 할수 있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까?인간의 본성은 정의할 수 없는 가변적 존재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두가지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유일한 생물적 존재이다. 아직은 우주로부터 오직 하나뿐인 생명의 신비를 간직한 지구의 굴레 속에서 독자적으로 생태 적응과 지능 계발로 지배적 생태 중심에서 존재해오고 있는 고등동물과에 속한 대단하면서도 우주역사적으로는 미미한 존재인 것이다. 이렇한 전제를 바탕으로 위에서 말한 두가지 본성을 구분지어 보면 하나는 지극히 단순한 동물적 본성이다.자신의 생명과 존재 유지를 지상의 과제로 삼아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을 철두철미하게 준수하고있는 진보적 가치를 지닌 존재이다. 더불어 이러한 자연법칙을 지나쳐 생명 수탈의 환희 까지 만끽하는 잔인한 존재 이기도 하다. 자기에게 필요한 절대 기준을 상실하고 상상속의 무한대의 소유 본능을 가진 동물적으로도 야만의 존재이다. 기회적으로 부여된 지능으로 물리적 능력을 확대하여 보다 강한 외부의 경쟁자를 필요 이상으로 강압하고 살상하고 있는 영구 존속을 허락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다른 하나는 인간 본성은 이성적 본능을 지닌 심약한 본성이라는 것이다.존재하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살피고 인간 질서의 필요성을 규범하고, 마음껏 사고하며 설정된 규범과 질서를 손속시키기 위해 희생도 불사하는 인간적으로는 의롭다할 만큼 물질적 심성에서 멀어진 나타난다. 예를들어 동물적 본성이 강조된 인간의 모습은 살인자나 범죄자로 불리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것이고, 본성이 강조된 인간은 성인이라 불리는 모습으로 비춰질 것이다.이렇게 유전적인 영향과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받아 완성되어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볼수 있는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기계’로 불리우는 인간에서는 사회적 환경의 영향이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도킨스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는데 그것이 바로‘밈(Meme)' 이다.40 억 년이 지나는 동안 원시수프 안의 단순한 아미노산에 불과했던 원시 생명체는 진화를 거듭하였다. 인간이라 불리우는 생체기계로 진화하면서 가장 특기할 만한 사실은 뇌가 생겼다는 것이다. 처음에 뇌는 유전자의 입장에서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뇌는 감각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근수축의 제어와 조정을 가능하게 했고 더 나아가지난 일을 기억하게 해줄 뿐 아니라 뛰어난 사고능력으로 유전자와 생존기계의 생존율을 높여주었을 것이다. 뇌는 인간에게 의식을 갖게 해주었다. 따라서 인간은 자아를 가지게 되었고 자기 의지로 행동하게 되어 유전자의 지시대로 행동하지 않았다.그리하여 유전자 대신 새로운 복제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 것은 유전자(Gene)에 대비되는 밈(Meme)으로써 인간의 문화의 요소를 모두 포함한다. 예를들어 노래, 사상, 선전문구, 옷의 패션, 도자기를 굽는 방식, 건물을 건축하는 양식 등등이 있다. 유전자가 정자나 난자를 통해서 하나의 신체에서 다른 하나의 신체로 건너뛰어 유전자 풀에 퍼지는 것과 똑같이, 밈도 넓은 의미에서는 '모방'의 과정을 통해서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건너뛰어 밈의 풀에 퍼진다.밈은 이 사람 저 사람을 거쳐서 전달되게 된다. 만약 그것을 수용하는 유전자가 밈에 대해 더 이상 긍정적인 반응을 가지지 않게 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게 될까? 유전자는 도킨스의 이론을 따르면 반드시 자신의 생존의 극대화가 목표이다. 그런 유전자가 밈에 대한 거부를 일으킨다면 결국 인간의 본성 중의 하 모순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유성 생식을 택한 것일까?유성생식에선 무성생식과는 다른 특이한 결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50대 50의 유전자 배합에 의해서 기대되는 영향, 그것이 바로 돌연변이이다. 만약 돌연변이가 유전자의 불멸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면 그 돌연변이화된 유전자는 유전자풀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질것이고 그로 인해 다음의 유전자 생존 기계에게 좀 더 이기적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게 그것이다. 이런 이론에 비추어 인간의 사회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방향으로 돌연변이화 된 유전자가 퍼지게 된다면 결국 사회적 본성을 상실한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사회적 본성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 존재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다른 동물과의 구분되어 지는 경계라 볼수 있는 도덕의 상실이 이루어진 곳에선 더 이상 인간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 도킨스의 밈의 개념을 비판한 다른 학자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프란츠 부케티스는 ‘사회생물학 논쟁’ 에서 그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회생물학 논쟁’ 은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에 내제된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부케티스는 사회생물학 논쟁의 배경과 원인을 비판적으로 규명하였다. 그는 사회생물학이 사회·문화적 과정들을 오직 유전자 극대화의 원리로만 설명하려고 할 때 환원주의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다고 하였다.부케티스는 먼저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인 줄리앙 드 라메트리의 ‘기계인간’ 이란 책을 언급하였다. 라메트리는 인간이 하나의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사회생물학이 인간을 '유전 기계' 로 규정하는 한 라메트리의 명제와 사회생물학 사이의 연결고리는 뚜렷해진다고 하였다.사회적 행동의 유전적 기초를 얻는 것은 아직 쉽지 않다. 부케티스는 사회생물학자들이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모델일 뿐이고, 그 모델들도 결국에는 유전학과 생물 진화에 대한 보다 광범위하고 심오한 통찰을 통해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사회생물학자, 유전학자, 생태학자들이 함께 하는 학제적 공동 연것이다.
    독후감/창작| 2004.11.12| 7페이지| 2,000원| 조회(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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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문화] 교육제도와 의식의 개혁 평가B괜찮아요
    ▶▷ 교육제도와 의식의 개혁 ◁◀Ⅰ. Introduction【교육제도의 부실한 변화】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그동안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대학입시만 하더라도 그동안 참 많이도 변화했다.대학입시의 변천을 보면 크게 네가지 정도로 구분해 볼수 있는데 1960년대까지 시행하던 대학별 단독시험제는 1969년부터 예비고사제로 교체된다.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병행하던 예비고사제는 1981년 본고사 폐지와 함께 실행된 학력고사로 바뀌게 된다. 명칭은 아직 예비고사였지만 본고사 폐지로 입시제도의 성격은 학력고사에 가까웠다. 그동안 약간의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1994년부터 수능이 시작된이후 까지 계속 그 명맥을 유지했었다. 이렇게 많은 제도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입시제도의 변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해찬의 열린교육 역시 당시의 의도와는 달리 최악의 학력수준이라는 02학번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많은 변화를 꾀하였지만 모두가 원하는 모습을 갖춘 교육제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럼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Ⅱ. Thesis【교육의 목적의 변화 필요】그 동안의 우리나라 교육은 강제에 의한 교육이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적성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는 것만이 공통된 적성은 아닌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학교라는 틀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게 사실이다. 대학만이 그들의 인생을 보장해 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그러한 사회의 시선을 피해 어쩔수 없이 학업에 매진해야만 한다. 이로인한 강제성을 띈 교육은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기대하기가 힘들어 지고 그에 따른 폐혜가 파생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때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대학이라는 목표를 심어준다. 그 목표가 최종목적지가 되게끔 대학만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들 학생들 모두가 학업에 맞는 적성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같은 목표가 설정되어있기에 그들은 모두 입시준비를 하게 된다.그렇다 하더라도 학업성취면에서는 큰 차이를 낳게 된다. 이런 차이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만들어 내는 곳이다. 신입생 선발을 둘러싼 문제도 여기에 먼저 우선순위를 두고 생각함이 마땅하다. 그럼 대학의 역할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어떻게 학생들을 선발해야 할까? 대학의 평가대상은 개인의 능력과 자질이다.세상에는 별의별 능력과 개성을 지닌 인재들이 필요하고, 대학은 그들을 길러낼 책임을 지고 있는데 규격화된 기준에 맞추어 일률적으로 선발하는 방식으로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가에 회의를 가지고 있다. 천사람의 인재를 뽑아 쓰기 위해서는 천 가지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말을 언뜻 본적이 있다. 마침 나는 충남 부여에 자리잡은 ‘한국전통문화학교’ 에 몸담고 있다. 우리 학교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을 맡을 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문화재청에서 설립한 대학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항상 어떻게 하면 그 목적에 맞는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다. 국?영?수의 기초학력이 튼튼한가도 무시할 수 없지만, 또한 우리 문화재와 전통문화에 얼마나 애정과 남다른 재능이 있는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재에 대한 지식과 식견이 뛰어나면 신입생 면접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일부는 전통공예나 문화재 수리 분야의 능력과 경험을 기준으로 선발하기도 한다. 어디 우리 대학만 그럴 것인가. 대학이 백화점식 나열을 지양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 있는 분야를 특성화하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시대의 추세가 그러하다면 신입생 선발 역시 그에 걸맞게 변화해 가야 하지 않을까? 수능시험 같은 시험성적 하나로 일류대에서 삼류대까지 등급을 매기는 불평등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위의 주장과 같이 일률적인 기준에 의한 학생선발은 문제점을 가지게 된다. 국?영?수 중심의 학생선발은 등급화된 대학의 학벌?학연주의를 고조시키고 하위권 대학생들의 설땅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은 억지에 의한 주입식 교육이 아닌 학생들에게 자신의 적성에 맞는 길을 열어주는 장이 되어야 한다. 원할때, 필요한 사람만이 받는 교육으로 변해야 하는 것이다.Ⅲ. An회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학벌과 학연의 문턱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은게 현실인 것이다. 교육제도 역시 너무 고착화되어 있는 것이 문제다. 이미 들러붙을대로 들러붙어서 작은 변화로도 크게 흔들리는게 현재의 우리 현실이다. 이렇다고 해서 급격한 변화를 추구 하다가는 사회구조가 전반적으로 붕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 몇몇의 의견 역시 이러한 변화들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이다. 학부모들은 학교 교육수준에 대해 굉장한 불신을 가지고 있으며 사교육에 많이 의존한다. 그리하여 사교육비의 지출은 더욱 증가되고 학교수준은 점점 저하되고있다. 이렇게 우리나라 교육의 패닉현상은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다. 중간 중간 변화라는 이름으로 시행됬던 새로운 제도들의 실패로 이러한 불신은 이미 극에 달한 상태인 것이다.《뉴스메이커 2004-10-15 14:36》「지난해 서울대학교에서 발표한 '누가 서울대학에 다니나' 란 자료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서울대 수석 입학생들은 인터뷰할 때마다 "과외는 안 했고요, 학교수업에 충실했습니다" 라고 밝혔고 어려운 환경에도 꿋꿋하게 공부한 이들이 많아 위안을 삼고 아이들에게 큰 소리라도 칠 수 있었죠. 그런데 그 자료를 보니 대부분 강남지역에 살며 고소득-전문직 아버지에, 맹렬 어머니를 둔 것으로 드러나 그야말로 '아버지의 경제력과 어머니의 정보력' 이 서울대 입학의 비결로 밝혀졌습니다.부자도 아니고 정보력도 없어 죄책감에 시달리던 부모들에게 더 커다란 대못을 박는 결과가 또 밝혀졌더군요. 명문 사립대학들이 1학기 수시모집 전형에서 고교간 학력차를 반영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서울 강남의 학생들에게 적건 크건 가산점을 인정한 것이지요. 네티즌들을 비롯, 국정감사에서도 한바탕 '남북전쟁'이 또 벌어집니다.그렇다고 강남 학생들이 행복한가요. 그 학생들의 부모는 환경좋은 강남으로 이사하기 위해 집을 팔아 전세로 살거나 융자까지 얻어 과외를 시키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또 학생들 역시 전국 모의고사는 등급이 높은데 정작 학교 과를 나은 셈입니다. 내신성적만이 아니라 수능이나 논술도 마찬가지로 기준이 없습니다. 외국에서 귀국해 논술시험 채점에 참가했다는 한 대학교수의 경험담도 참 억장이 무너집니다.“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어찌나 학생들이 논리정연하게 논술을 썼는지 감동했죠. 그런데 계속 채점하다보니 다 비슷비슷한 거예요. 동료 교수에게 물어보니 "그거 다 논술학원에서 알려준 공식대로 써서 그래요"라고 하더군요. 처음에 감동해서 높은 점수를 주다가 그 다음부터 비슷한 내용에는 점수를 낮게 주게 되더군요. 또 공기 나쁜 곳에 갇혀서 계속 과자, 음료만 먹으며 채점하다보면 솔직히 나중에는 짜증이 나서 잘 읽게 되지도 않아요. 하루에 보는 논술시험이나 부풀린 내신성적으로 무슨 인재를 뽑아요?"강북에 살게 된 것도, 논술시험에 뒤늦게 채점받게 된 것도, 계속 한심한 교육정책에 시달리는 것도 다 팔자소관이고 재수 탓일까요. 우리 아이들에게 "네 팔자다" 라고 말하면 그만일까요...」위의 내용에서도 알수 있듯이 모두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발버둥쳐봐야 결국 시달리는 것은 자신들의 몫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무엇하나 기대하지도 않은채 현실에 맞추어 가는 것이 정도가 되어버린것이다.Ⅳ. Synthesis【적성에 의한 교육제도】그러므로 더욱더 필요한 것이 교육제도의 개혁인 것이다. 이러한 불신과 결코 변하지 않는 현실이기에 시급한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동안 실패했던 교육제도의 원인이라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사회와는 맞지 않는 교육제도를 유지하며 그것을 보수해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도입해 있는 교육제도는 미국의 그것과 거의 흡사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이 성공적이지 못한 것일까? 미국의 교육제도의 성공의 밑바탕에는 그 나라의 경제적 지원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만한 투자와 지원이 밑받침 된 제도이기에 우리가 비슷한 성질의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실패하게 된 것이다.이런 점을 바탕으로 다른, 즉 우리가 받아 들여할 교육제도로서 독일의 교육제도를 제안한다. 독일교육이고, 4학년(9살)이 되면 지금까지의 성적과 아이들의 적성, 부모의 의견, 셈의 의견등을 종합해서 학교가 나뉜다. 이 점이 중요한 것이다. 일률적인 진학이 아닌 적성에 기초를 둔 의견의 종합에 의해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시험 역시 보지 않는다.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진학하는 학교는 3종류로 나뉘어진다.첫 번째, 김나지움(Gymnasium)으로 우리나라 말로 바꾸면 인문계정도의 학교가 되겠다.김나지움의 목표는 ?대학진학?이 기본으로(본인의 의견에 따라 졸업가능) 매년 2차례 학기말에 성적표 성적이 나쁠경우에는 유급이 되기도 한다. 5~13학년 기간 중 11학년에서 수준이 대폭 올라간고 졸업 하면 아비투어(서술형 시험으로서 우리나라의 논술과는 개념자체가 다름)라는 졸업시험을 통해 졸업을 하게 된다.두 번째, 하웁트슐레(Hauptschule)라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공고나 상고의 의미로 받아들일수 있다. 이곳은?기술?배우는 곳이고, 그룬트슐레 졸업하고 난 뒤인 5학년(10살)부터 9학년(14살)까지의 5년제로 이루어져 있다.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할수도 있고 레알슐레나 김나지움으로 진학 할 수도 있다. 우선 과목은 기본적으로 비슷한데(독일어, 수학, 영어, 기초과학, 예술, 역사) 내용이 김나지움이나 레알슐레보다 깊지 않고 그대신 기술을 주로 배우게 된다. 졸업 후 대다수의 학생들이 마이스터슐레(Meisterschule : 장인학교)에 들어가서 장인 자격증 공부를 한다. 장인은 의외로 상당히 다양한데 전기기술자, 제빵사, 요리사, 부어스트(소시지)만드는 직업 등등 다양하고 장인 자격증 따기가 대학 졸업하는것 만큼 어렵다고 한다. 자격증만 있으면 충분한 소득이 보장되고 우리사회의 그것들과는 다른 대우를 받는다. 실업계학교는 한국과는 달리 공부 못한다고 가는곳이 아니라 위에서 썻듯이 적성에 따라 가는 곳이므로 당연히 열등감 같은 것도 없다.세 번째, 레알슐레(Realschule) 역시 실업학교인데 하웁트슐레랑은 조금 다르다. 회계등등을 기본과목과 더불어 배우고 역시 것이다.
    인문/어학| 2004.10.31| 5페이지| 2,000원| 조회(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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